성호사설과 순암선생 문집에서 등장하는 여국(女國)기록들
여국(女國)
옛날부터 서쪽에 여국(女國)이 있다고 한다. 《직방외기(職方外紀)》에 보면, 다만 “달단(韃靼)의 서쪽에 옛날의 여국이 있었다. 그 나라 풍속에는 봄철에 남자 한 사람만이 그곳에 오는 것을 허용하였고 아들을 낳으면 죽여 버렸는데 지금은 다른 나라에 병합하고 그 명칭만 남아 있다.”고 하였으니 이 말이 가장 근사하다.
그러나 아들을 낳기만 하면 죽여 버렸다고 하니, 그럼, 봄철에 들어오는 남자는 반드시 다른 나라에서 빌려오는 것일 터인즉 이는 한때의 습속일 것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보면, 중국 12주 가운데서 대체로 남자가 적고 여자가 많은 주(州)가 많다. 예주(豫州)ㆍ청주(靑州)ㆍ연주(兗州)ㆍ병주(幷州)의 4주는 남자 2에 여자 3, 양주(揚州)는 남자 2에 여자 5, 형주(荊州)는 남자 1에 여자 2, 유주(幽州)는 남자 1에 여자 3의 비율이나 옹주(雍州)는 남자 3에 여자 2, 기주(冀州)는 남자 5에 여자 3의 비율로서, 대체로 옹주는 남자가 가장 많고 유주는 여자가 가장 많다. 그러나 유주는 요동의 요소이다.
그 산(山)은 의무려(醫巫閭)이고 그 소산물은 고기와 소금이다. 지금 들으면 그 지역에는 여자가 적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이 몰래 여자들을 그곳에 팔아넘기곤 한다고 하니, 알 수 없는 일이다. 순(舜)이 기주ㆍ연주ㆍ청주ㆍ서주(徐州)ㆍ형주ㆍ양주ㆍ예주ㆍ양주(梁州)ㆍ옹주ㆍ유주ㆍ병주ㆍ영주(營州)의 12개 주를 설치하였는데, 우공(禹貢)에 와서 유주ㆍ병주ㆍ영주를 폐지하고 9주로 만들었고, 주관(周官)에 이르러는 서주ㆍ양주ㆍ여주를 폐지하고 유주와 병주를 첨가하였다.
남자와 여자가 많고 적은 문제도 그 가운데 있을 것인데, 그 여국은 북호(北胡)의 서쪽으로서 아세아(亞細亞)와 구라파(歐羅巴) 중앙에 끼여 있을 것이니, 생각건대 본래 여자가 많은 지역이었기 때문에 풍속이 그대로 이루어진 듯하다. 그러나 남녀의 정욕은 선천적으로 막을 수 없는 것이며, 이미 생식의 길을 열어 놓았으니 마침내는 막을 수 없었을 것인데, 옛적에는 있었다가 지금은 없어졌다는 말이 믿을 만하다.
우리나라도 그 지역의 유주와 가까워서 본시 여자가 많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고려 충렬왕 때 대부경(大府卿) 박유(朴楡)가 상소하기를, “우리나라는 남자가 적고 여자가 많은데 계급이 높고 낮은 구별이 없이 아내를 한 명으로 제한하였고 아들이 없는 사람도 감히 첩을 두지 못하는데, 외국인으로서 입국하여 사는 자들에게는 제한 없이 아내를 얻게 하므로 신(臣)은 인물이 모두 북쪽으로 넘어갈까 염려되니, 관리들에게는 첩을 두도록 하되 그 계급에 따라서 그 수를 조정하여 일반 사람에게도 아내와 첩을 한 명씩 두게 하고 첩들이 낳은 자식도 나라에 벼슬할 수 있기를 적자(嫡子)와 다름없이 한다면 배우자를 잃는 사람도 없어질 것이요, 사람도 흘러나가지 아니하여 인구가 날로 늘어날 것이다.”고 하자, 여자들이 이 말을 듣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당시에 한 대신이 그 아내가 무서워 그 건의를 무시해 버렸다고 한다.
대부가 처첩을 두는 것은 법에서 금하지 않은 것인데 아마도 그때에 왕이 원(元) 나라 공주에게 장가를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듯하며, 조선에 들어와서는 서선(徐選)이 법을 세운 후부터 개가(改嫁)한 여자의 자손에 대하여 앞길을 막아 버렸다. 그러므로 양반집에서 과부가 되면 모두 죽을 때까지 수절하였고 천한 사람들도 이 풍속을 따라 개가하지 아니하였는데, 남자는 첩을 많이 두어도 금하지 아니하였으니 거의 사리에 맞는 듯하다. 또 듣건대, 경상도와 전라도 해변 지역에는 남편 없는 여자로서 나그네가 요구하면 쉽사리 얻을 수 있다 하여, 제주도에는 한 사람이 아내를 셋 내지 다섯까지 두는 사람이 있다 하니, 이것도 물[澤]이 가까운 곳에서는 여자가 많다는 증거이다.
순암선생문집 제2권 / 서(書) 성호 선생께 올림 신사년
정명장(正名章)에 관한 선유들의 논설이 혹 마음에 맞지 않은 것들이 있기 때문에 나의 견해가 충분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고 늘 의심해 오다가 급기야 《맹자》의 절부준해(竊負遵海)를 읽고 나서는 제왕가(帝王家)의 부자 사이의 윤리가 종묘사직보다도 더 중하여 이 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교를 보니 거기에도 맹자의 그 말을 인용하셨기에, 저의 어리석은 견해가 과연 망녕된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어 너무 다행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괴외론(蒯聵論)은 그 당시의 사정을 여지없이 밝혀 놓았으니, 그야말로 역사를 읽는 전범이라 하겠습니다. 이에 비로소 천하의 의리가 무궁하여 한 겹을 뚫고 나면 또 한 겹이 있는 것이 마치 파뿌리를 까면 꺼풀 속에 꺼풀이 또 있는 것과 같아, 자기의 일시적 견해를 옳다고 여겨 다시 생각해보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또, “권력(權力) 두 글자에 대하여도 과연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동탁(董卓)이 홍농왕(弘農王)을 폐하고, 환온(桓溫)이 해서공(海西公)을 폐할 때, 그들인들 어찌 그 임금의 악을 드러내 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밝히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동탁ㆍ환온에서 끝난다면 그것은 이윤(伊尹)의 뜻이 없는 자이다.”라고 하신 조항을 읽고, 남의 신하된 도리로서는 권력과 총애가 자기 손아귀에 있다 하여 함부로 무엇이거나 해서는 안 되겠다는 점을 더욱 알게 되었습니다.
사설(僿說)은 하교에 따라 타당하다고 여겨지는 대로 제 의견을 말씀 드리겠지만, 그러나 내용을 수정하는 일에 있어서는 마치 보석 가게에 들어간 것처럼 눈에 보이는 것이면 모두가 진귀한 보물 아님이 없으니, 그 중에서 무얼 고른다는 것이 너무도 어려워 대단히 두렵습니다. 이번에 보내 온 사설 끝권을 보았더니 일일칠조(一日七潮) 조항 끝에 말씀하신 장경성(長庚星)은 아마 틀린 것이 아닌가 합니다.
언젠가 청인(淸人)이 쓴 자서(字書)를 보았더니 《일통지(一統志)》를 인용하여 말하기를, “광동(廣東)의 경주(瓊州)는 조수(潮水)의 차가 크고 작음이 장성(長星)ㆍ단성(短星)에 따라 결정되지 달의 차고 기욺과는 관계가 없다. 한 달에서 절반은 동으로 흐르고 절반은 서로 흐르는 것은 역시 큰 바다 속의 변국(變局)이다.” 하였습니다. 여기서 이른바 장성ㆍ단성은 바로 지금 월력의 끝장에 써놓은 바로 그것입니다.
왜국의 동남해(東南海) 해동기(海東記) 지도에는 동북해 속에 있는 것으로 되어 있음 가운데 여인국이 있는데 지금 이름으로는 팔장도(八丈島)라 합니다. 이 곳은 남자는 10명에 2~3명 꼴이고 거의가 여자여서 세상에서 여자 고을이라고 부른답니다. 그리고 또 도서편(圖書篇)을 보면 거기에도 여인국(女人國)이 있고 그 곳 풍속도 말해 놓았는데,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지금 여국(女國) 조항을 보았더니 이러한 기록이 실려 있지 않았기에 감히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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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에 여국이 있다는 기록과 왜국 어딘가에 여국이 있다는 기록까지.....
그냥 표류한 사람들이 어쩌다가 여성 비율이 높은 마을을 보고 여국이 있다고 믿은게 아닐까 의심되기까지 한다.
그러고 보니 도현신 작가님의 책 『한국의 판타지 백과사전』에서도 여국(女國)이 등장하는 걸 볼 때 뭔지는 몰라도 여성으로 구성된 나라가 동쪽 또는 서쪽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고 추정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