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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1일
아름다운 10월이 가고 가을의 끝자락 11월이 왔다. 새벽에 눈을 뜨니 아들과 딸이 벌써 일어나 학교에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아무래도 토요일이라 발걸음이 가벼울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산에 가기에 좋은 날씨라 아내와 안산에 올랐다가 정상을 거쳐 내려오면서는 집에서 가져간 사과를 먹으며 11월을 시작했다. 지하철도 가깝지만 집 근처에 쉽게 오르고 걸을 수 있는 산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12시 지나 산에서 내려오니 딸이 와 있고 삼겹살로 점심을 먹는 중에 이발을 하고 왔다는 아들도 들어와 자리를 차지한다. 유행을 따라 최신형으로 앞과 뒤는 길고 옆의 머리는 짧게 만들어 나름대로 한껏 멋을 부렸는데 아무렴 인물이 훤해서 머리 스타일과 관계없이 보기 좋은 아들이다. 오후 1시30분에 종로3가 외국어학원으로 스페인어를 배우러 다니는 아들과 지하철을 함께 타고 나오다가 스페인어를 배워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잘 생각하고 열심히 수강하라고 보내고 나는 충무로에서 4호선을 이용하여 학원에 도착했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여러 일처리를 하며 오후를 보내는데 오늘 논술수업이 없다는 아내가 전화를 하여 9월에 마라톤 마치고 돌아오면서 먹었던 동신병원 주변에 있는 감자탕 집으로 외식을 가자고 한다. 이른 저녁에 집으로 오면서 교보문고에 들어가 마라톤 런링라이프 11월호를 펼쳐보니 내가 제출한 풀코스 체험기가 실려 출간되었다. 세상의 시름과 싸운다는 제목과 나의 개인사진 그리고 아내와 딸과 찍은 사진도 뒷면에 자리하고 있어 6권을 구입하여 집에 도착했고 바로 가족을 태우고 감자탕 집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2일 가뿐하게 일어나 아침식사를 했다. 일요일인 오늘 아들은 동네에 사는 고등학교 선배들과 축구를 한다고 일찍부터 준비하고 아내는 과일을 챙겨서 안산에 오른다. 나는 어제 구입한 마라톤 체험기 후기를 작성하고 영식이와 도봉산에 가기로 약속이 되어 종로에 나가 그를 만났다.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도봉산 근처 방학역에 내리니 대신고 강부장과 기완이 친구가 기다리고 있고 나중에 영식이 고향 선배라는 분도 합류했다. 방학능선 코스로 2시간을 걸어 우이암에 올랐고 정상을 향해 더 가다가 점심시간이 되어 중턱에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금방이라도 눈이나 비가 올 것 같은데 기온까지 쌀쌀하여 가까스로 식사를 마쳤다. 평소에 혼자 안산이나 북한산을 다니다가 오늘처럼 여럿이 동행을 하니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인 자유나 사색의 시간이 없고 때로는 의견이 분분하여 시끄럽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여러 명이 다니다보니 술을 많이 마시게 되어 불편한 점이 많았는데 3시경 도봉산 입구로 내려와서도 또 막걸리와 소주를 마시게 되었다. 지하철을 타고 제기동에 와서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왔는데 오늘은 잃어버린 하루 같았다. 재미는 있었을지라도 개인의 시간이 없고 술 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 혼자 갔더라면 빨리 내려와 요양원이나 학원에 가서 일처리를 했고 아들이나 가족과 식사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3일 월요일 아침, 어제는 하루가 아까운 시간이었다. 혼자든 몇 명이 가든 생산적이고 의미가 있는 산행을 해야지 나중에 온 사람들까지 합세하여 다녔더니 아예 뒤죽박죽이 된 시간이었다. 아침까지 어지러워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10시에 어머니 C.T 결과를 봐야 해서 내부순환도로를 달려 원자력병원에 도착했다. 형과 동생이 와서 함께 담당 의사의 설명을 들으니 직장에 혹이 있고 콩팥 쪽에 일부 전이가 되어 있다고 한다. 그나마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복부 주변으로 배설이 되도록 장루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인데 현실이 믿기지 않아 다른 병원에 가서 재진단을 받고 싶은 심정이었다. 요양원으로 돌아와 원장과 오늘 결과에 대하여 상담을 하니 장腸에서 출혈이 계속되면 생명이 위독하니 수술하여 상처 부분을 봉쇄하고 배설기관을 외부로 돌출시켜야 한다고 원자력병원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이론적으로 이해가 되지만 마지막까지 그렇게 고통으로 지내야 하는 것인지 어머니의 험난한 시간을 생각하니 삶이 기구하기만 했다. 오늘부터는 내가 직접 고등부 수업을 하는 날이라 요양원을 나와 점심을 사 먹고 학원에 도착했다. 저녁에 학생들을 대면하여 처음으로 수업을 했는데 분위기는 어수선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강의를 하고나니 나름 보람이 있었다.
4일 새벽에 일어나 뉴스를 보니 오늘은 금년 들어 가장 추운 날이라고 하여 아들을 학교에 내려주고 돌아와 아침식사를 했다. 10시경 체육관에 갔다가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니 아무도 없고 아내는 한양아파트 아주머니들과 안산에 올라 커피를 마신다고 전화가 온다. 점심을 먹으려고 하는데 충무로 인쇄소 사장한테 연락이 와서 그를 만나 생태탕으로 식사를 했다. 인쇄소 사장은 내가 청산학원에서 강의를 할 때 광고지나 책자를 전담하여 처리해 준 사람이다. 작은 가게를 꾸려가다가 사업이 잘 되어 확장을 했고 이후 부도가 나서 추락했다가 현재는 30명이 넘는 종업원을 둔 큰 인쇄소 사장으로 변신해 있다. 식사를 하면서 그의 살아온 과정을 들어보니 소설을 써도 남을 듯하고 지옥을 몇 번 오갔을 정도다. 3시에 학원으로 들어가 어제 결정한 고등영어 선생을 출근하게 하여 6시30분 화목반 수업을 맡기고 2교시에 나도 들어가 수업을 하여 보니 월수금반에 비하여 분위기도 좋고 진지한 면이 있어 오늘은 수업이 한결 수월했다. 돈 걱정으로 잠을 못 잔다는 장원장은 흔적이 없더니 저녁이 되어서 들어와 돈이 생길 수 있도록 기도를 하고 왔다고 한다. 지금까지 어려울 때마다 항상 주님이 자신을 도와주었다며 마치 금전처리를 마무리 할 것처럼 자신감에 차 있다. 8시에 피곤하여 수학선생에게 마무리를 부탁하고 집에 왔고 논술수업을 마치고 10시에 온 아내와 삼겹살로 저녁을 먹었다.
5일 얼마 전부터 신문구독을 중지시키라고 아내에게 부탁을 해 놓았는데 오늘 아침에도 현관문을 열어보니 여전히 배달이 되어 있다. 이것도 못하나 하는 불만의 마음이 생긴 아침에 식사를 하고 아들을 태워 학교에 갔다가 집으로 와서 학원광고를 구상하여 만들었다. 11시경 운동을 가려다가 차 소음이 생겨 공업사에서 수리를 하고 들어오니 아내는 산에 가 있고 나 혼자서 식사를 했다. 오후에 요양원과 학원에가려고 와이셔츠를 입는데 주름이 그대로 있어 투덜거리며 다른 옷으로 갈이 입고 나왔다. 차를 몰고 내부순환도로에 진입하여 정릉 근처에 다다르자 이번에는 바퀴에 펑크가 나서 보험에 연락하여 수리를 받았다. 오늘은 아침부터 일이 풀리지 않더니 요양원에서도 하혈을 계속한다는 어머니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다. 학원으로 이동하면서 정식이 사무실에 들러 마라톤 잡지를 전달하고 학원으로 향하는데 어제 처음으로 수업한 영어선생이 급한 사정으로 수업을 할 수 없다고 통보를 한다. 학원 복도에서 마주친 장원장은 나의 도움으로 강사료는 일단 해결했는데 이제는 차량 기사들 월급으로 어제 교회에 다녀온 모습과는 다르게 걱정을 하며 서성거리고 있다. 학원 총수입이 적지 않은데 강사나 직원들의 월급이 너무 높아 수익이 적고 결과적으로 운영을 잘못한 장원장이 안타깝기만 하다. 밤에는 중등부 3학년 교실에 들어가 고등부 수업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 나왔는데 의젓하고 진지하여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6일 아침 9시에 눈을 뜨니 아들은 학교에 갔고 아내는 아파트 값이 떨어져 고민하다는 민정이 엄마와 잠실 아파트에 간다고 나선다. 오전에 잠을 자고 노량진에 가서 김성만 학원에 들어가니 오픈 2달이 지나서 이제는 안정이 되었다며 내년 1월에 동영상 촬영을 시작하자고 한다. 하지만 나는 경기학원을 운영하기 때문에 당분간은 동영상에 매진할 수 없다는 현재의 입장을 설명하고 일정이 많아 금방 일어섰다. 노량진 거리에는 수능이 임박해서인지 긴장감이 감돌고 움추린 사람들 사이로 하늘이 잔뜩 흐리기만 하다. 학원에 들어와 어제 출강을 못 한다는 선생을 대신하여 면접을 본 선생들 중에서 새로운 선생을 가까스로 선정하였다. 이미 정해진 강사가 그만둔다거나 다음 날 나오지 않을 경우 어제 면접한 사람들 중에서 다시 선택하는 경우에 자존심이 있어서 대부분 거절하고 다시 광고를 하여 뽑는 경우가 많다.
어수선한 중에 수학선생과 국어선생이 늦는다고 연락이 오고 영어수업은 다음 시간부터 하기로 해서 일단 오늘은 내가 들어가 문제풀이로 자습을 시켰다. 숨 쉴 틈도 없이 하루를 보내고 10시30분에 집에 돌아오니 아들은 딸의 방문 앞에 서서 불 끄고 이불 잘 덮고 자라고 외치고 있다. 동생을 생각하고 염려하는 아들이 오늘은 대견하기만 하다.
7일 무국으로 식사를 했다. 새벽에 아내의 콧소리가 심하여 잠을 깨고 기온까지 내려가 으스스한데 모락모락 김이 나는 아침 국물은 따뜻하고 좋았다. 학교에 가는 아들에게 의젓하게 행동하라고 당부하고 홍제천으로 나가 성산대교 아래까지 12킬로를 달리고 돌아왔다. 다음 주에 하프코스 마라톤 출전이라 연습으로 달렸는데 차가운 날씨임에도 땀이 주룩 흐른다. 아내는 오늘 학교에 가지 않는 초등학교 논술반 학생들을 이끌고 안산으로 역사체험 한다고 올라가서 나 혼자 점심을 하고 집을 나섰다. 학원에 도착하여 우선 장원장과 미팅을 하고 발전 방향에 대하여 서로 토의를 했는데 일처리 방식이 다르니 어려움도 많다. 학원은 금액의 일부를 투자한 내가 운영을 하고 소유자는 대주주 장원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서로 생각하는 방향이 언제나 일치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늘 방문한다는 선생들 면접시간이 5시로 되어 있어 그 사이 신설동에 가서 새로운 임대예정자에게 1층을 설명하고 어머니를 뵈러 요양원으로 향했다. 낙엽이 뒹구는 거리도 그렇지만 요양원에서 보이는 밖의 풍경도 완연한 만추晩秋 아름다움 그대로였다. 5시에 서둘러 들어와 면접을 하고 저녁에 강의까지 마치니 금방 10시가 되어 간다. 낮부터 밤까지 여기 저기 다니고 강의를 하는 나를 돌아보니 어느 순간 많이 바쁘게 생활을 하고 있다.
8일 가을이 깊어 가는 토요일이다. 격주로 맞는 휴일 토요일이라 아들과 딸이 늦은 시간까지 잠을 자고 있다. 9시가 거의 되어 가족이 식사를 하고 아내와 딸은 광화문 삼청동 길이 단풍으로아름답다고 구경을 가고 아들과 나는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마라톤 연습을 위하여 힐튼호텔 앞에 도착하여 홍제천을 출발했다. 아들과는 거의 1년 만에 다시 달리게 되는데 그 동안 많이 자라서 마치 마라톤 선수같이 듬직하기만 하다. 성산대교 아래까지 왕복 12킬로를 달렸고 초반부터 나를 잘 따라 온 아들은 지치지도 않고 후반에는 오히려 나를 앞질러 출발점에 들어섰다. 집으로 와서 점심을 먹고 종로3가 토익학원에 가는 아들을 태워다 주고 경기학원으로 가는데 도심의 차량 정체가 심하여 학원에 3시에 도착했다. 오전에 달리기 하고 바로 나왔더니 오후가 피곤하여 힘들었는데 면접을 마치고 대일학원 선배였던 과학팀 유하영선생과 커피를 마시며 지난 시절을 이야기했더니 정신이 맑아졌다. 저녁에 녹번동 강선생 집에서 여러 사람들이 술을 마신다고 영식이 전화가 왔지만 피곤하여 가지 않고 집에서 식사를 했다. 가을이라 그런지 요즘 밥맛이 좋아 체중이 늘어나는 기분인데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은 말이 살찐다는 것이지 나는 말馬이 아니라 걱정은 없을 듯하다.
9일 오늘이 어쩌면 단풍구경으로는 마지막 일요일이 될 것 같다. 그 동안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이 많지 않아 가을이라도 만끽하기로 계획을 세워 남산으로 올랐다. 집에서 가깝고 아들과 나는 마라톤 연습도 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다. 아침식사를 하고 어제도 달려서 다리가 아프다는 아들까지 태우고 남산 케이블카 아래로 갔다. 나와 아들은 순환도로를 1시간 달리기로 하고 아내와 딸은 걷다가 중간에서 만나는 것으로 했다. 부자지간에 이 아름다운 서울의 남산을 달리는 과정은 쉽지도 않겠지만 살면서 이런 기회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다. 누구라도 부러워할 우리의 모습을 남기며 중턱을 달리다가 운동기구가 많은 장충헬스에서 아내와 딸과 합류하여 정상을 올랐다.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과 가까이 보이는 안산 그리고 흐릿하게 우리 집도 자리를 차지하여 가을 속에 머물러 있다. 정상에서 을지로 중국집으로 내려와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오니 예보도 없던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시내를 거쳐서 요양원에 도착하여 어머니를 뵈고 아내의 수업이 3시에 있어 내부순환도로를 거쳐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오후에 집에 있는데 북한산에 간 영식이 전화가 왔고 6시에 학원에 간다는 아들이 배가 고프다고 하여 간식을 사 먹으라고 4천원을 주었다.
10일 어제 저녁에 삼겹살을 많이 먹어서 아침까지 더부룩하다. 감기에 걸린 아내는 기침을 심하게 하더니 급기야 거실에 나가서 혼자 잔다. 바이러스 때문에 옮길까 봐 혼자 있겠다는데 안타까운 마음에 방으로 일으켜 들여 보냈다. 오늘 학교에서 단체로 충무로 한옥마을 관람한다고 여유를 부리는 아들은 딸보다도 늦게 현관을 나서고 딸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식사를 거르지 않고 그것도 많은 양을 먹어서 비대해질까 걱정을 했는데 이제는 밥도 잘 먹지 않고 군것질도 안하여 오히려 반대의 걱정이 생겼다. 오전에 BMW 차를 몰고 성산동 센터에 들어가 오일과 전구를 갈고 다시 장안동에 가서는 뒷바퀴 2개를 교체했다. 학원에 수업을 가는 중에 요양원에 들어가 어머님을 뵙고 중간에서 맛있는 김치찌개로 늦은 점심을 사 먹었다. 오후에 선생들과 교무실에서 미팅을 하고 수업을 마친 뒤에는 방학특강 교재선택, 강사구인, 예비고3 수업일정 등 업무를 늦게까지 처리했다. 일이 많아 힘들고 신경이 많이 쓰이지만 느긋하게 인내심을 가지고 최선으로 생활을 해 나갈 것이다. 밤 9시30분에 집에 들어오니 아들이 인사를 하고 멀뚱하게 바라만 보는 딸에게 가더니 강제로 일으켜 목까지 눌러 나에게 인사를 시킨다. 장난기 섞인 아들의 행동이었지만 일을 하고 늦게 돌아오는 아빠를 소가 닭 보듯이 쳐다만 보는 상황이 아들이 보기에도 미안했을 것이다.
11일 학교에 가는 아들이 빼빼로 날이라고 선생님에게 줄 과자를 준비했고 딸도 사겠다고 2천원을 받아 갔다. 빼빼로 데이는 무슨 날인지 언제부터 생겼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과자를 팔려는 상술이 작용했을 것이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체육관에 나가서 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점심을 함께 먹었다. 오후에 내일 모레가 수능일이라 영식이 아들 혁준이에게 격려 선물을 주려고 방배동에 갔는데 만나지는 못하고 관리실에 맡겨만 두었다. 아파트를 나서면서 우연히 영식이 부인을 만났는데 수능을 준비한 아들 혁준이나 남편인 영식이 사업 등으로 마음의 고생이 심했는지 예전에 본 모습과 다르게 나이가 들어 보이고 딴 사람 같았다. 방배동에서 강변북로를 따라 요양원에 도착하여 병실에 들어서니 어머니의 침실 창밖으로 보이는 짙붉은 감나무 잎이 가을이 가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낼 모레가 수능일이라서 진우 조카와 통화하여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라고 격려하고 내일 오후에 보기로 했다. 요양원을 나와 4시에 학원으로 들어가니 선생들은 미도착이고 일찍 온 수강생이 초콜릿 막대를 가져와서 흐믓한 마음으로 받았다. 일정을 마치고 저녁에 대전에 다녀온다는 영식이를 만나러 용산에 나가서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을 먹고 집으로 왔다.
12일 차를 수리하기로 예약을 해서 이른 시간에 성산동 BmW센터에 들어갔다. 접수를 마치고 수리까지 완료하려면 12시는 된다기에 고객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달리기 연습을 하러 근처에 있는 월드컵공원으로 나갔다. 이번 주 일요일에 바로 이곳에서 아들과 하프코스 21.095킬로를 달리게 된다. 월드컵 경기장 2층 외곽부분을 35분 약 5킬로 거리를 달리며 월드컵의 함성을 느껴보기도 했지만 아침을 거른 상태라 배가 고파서 더 머무를 수 없었다. 아래로 내려와 월드컵경기장 홈플러스 매장에 들어가 식혜 1잔을 마시고 걸어서 새로 지어 웅장하고 깨끗한 마포구청 지하식당으로 옮겨서 3천원 식권을 구입하여 점심을 사 먹었다. 식사 후 구청 실내를 돌아보니 헬스 에어로빅 동호회실 등 다양한 복지시설을 갖추었고 층간마다 에스컬레이터가 작동되어 최신식 건물로 손색이 없을 정도다. 다시 차량 센터에 들어가서 수리한 차를 인수받아 집에 도착하니 내일 수능일이라고 학교에서 일찍 돌아온 아들이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다. 낮잠을 자고 3시경 집을 나서 조카를 만나 수능 선물을 전하고 학원에 들어가 수강생 현황을 파악하며 수능을 보는 수강생들에게는 전화를 하여 격려했다. 얼마 전에 뵌 부천 고모님이 걱정되어 동생 정환이한테 큰 병원에서 다시 검사를 해 보라고 전화를 하고 밤 10시에 집에 와서 아들과 식사를 했다. 아침 저녁으로 기온 차이가 심하다보니 감기에 걸린 사람들이 주변에 많은데 아내도 계속 기침을 하며 밤을 보내고 있다.
13일 오늘은 수능일인데 날씨가 포근해서 다행이다. 이른 아침에 58만 수험생들은 초조하게 고사장에 들어설 것이다. 수능시험으로 아들의 중학교는 휴교가 되어 있고 딸도 듣기평가를 마치는 10시에 등교하여 늦은 시간에 무국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오전에 공부한다는 아들이 밥을 먹자마자 컴퓨터를 하여 안산에 함께 가자고 했더니 게임이 남았다고 거절하여 아내와 올라갔다. 11월 중순인데도 안산의 단풍이 아직도 절정인 것을 보니 올해는 계절이 작년보다 10여일 늦는 것같다. 정상을 거쳐 집에서 가져온 사과와 귤을 먹고 12시30분에 내려와 우동을 만들어서 따뜻한 점심을 먹었다. 아들도 합세하여 허겁지겁 먹더니 나중에는 밥 한 공기까지 금방 치우는 대단한 식성을 보여 놀랐다. 우리 집은 나도 아침을 거르지 않지만 가족들이 대체적으로 식사를 잘하여 쌀의 소비량이 다른 집에 비하여 눈에 띌 만큼 많다. 낮잠을 자다가 요양원에 가서 어머니를 뵈고 신설동을 거쳐 학원에 도착하니 엊그제 수업을 시작한 고등영어 선생이 분위가 어색하다고 또 강의를 그만둔다. 사람을 잘 뽑는 것도 쉽지 않지만 호흡을 맞추며 함께 긴시간 가는 것은 더 어려운 일로 역시 무슨 사업이든 가장 힘든 일이 사람을 쓰는 일이다. 유독 영어선생의 교체가 심하여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지만 다시 구인광고를 올리며 오늘 수능을 확인하니 언어는 평이한데 영어와 수학은 어려웠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우선 조카 진우에게 전화를 하여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니 낮고 우울한 목소리로 뜻대로 되지 않았음을 말한다. 조용하고 착한 진우가 재수까지 해서 불안하고 복잡한 마음 일테지만 아무튼 수고했고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위로를 했다.
14일 거실에 나가보니 새벽에 기침을 많이 한 아내가 또 혼자 자고 있어 안방으로 들여보내고 7시가 되어서는 아들을 깨워 계란반숙을 만들어 밥과 주었더니 어제 학원에서 늦게 돌아와 식사를 많이 했다고 조금 먹는다. 날씨도 쌀쌀하고 힘들어 보이는 아들을 어제 수리하여 부드럽고 소음도 들리지 않는 차에 태우고 학교에 갔다가 곧바로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했다. 점심을 먹으러 집에 들어 왔더니 아내는 감기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동학이 엄마랑 안산에 올랐다고 전화가 온다. 오후에 차를 몰로 신설동에 가서 1층 세입자 임대광고 현수막을 설치하고 학원으로 가서 어제 영어선생이 갑자기 그만두어 오늘 의욕이 넘치는 선생을 다시 구했다. 실력이나 강의기법 등은 알 수 없더라도 기대를 해 볼 수 밖에 없고 어제 수능이 끝났으니 다른 선생들도 새로운 마음으로 수업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아들에게 전화하니 뜻밖에 경찰서에 가 있다고 하여 이유를 물으니 자기 이름을 도용하여 사이버 상에서 사기치는 사람(친구)을 잡겠다는 것이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없고 아들에게 도대체 누가 무슨 사기를 친다는 것인지 밤10시에 집에 와서 물으니 내용은 말하지 않고 경찰이 알아서 처리한다고 해서 그냥 왔다고 한다. 아마 아들의 이름을 아는 친구들이 장난삼아 했을 것인데 아들의 당돌한 행동으로 경찰이 더 당황하지 않았을까 한다.
15일 주말 날씨가 흐리다. 아들과 딸이 손에 든 것도 없이 가벼운 걸음으로 학교에 가고 아내는 청주에 김장하러 간다며 나선다. 요즘 학교는 토요일을 격주로 쉬고 오늘처럼 학교에 가는 날도 2시간을 보내고 집에 온다. 선진국을 모방하여 주 이틀 휴일제로 가기 위한 연습인데 조만간 금요일까지 5일만 학교에 등교하는 날이 올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뒹굴거리다가 11시에 마지막 가을을 보내기 위하여 안산에 올랐다. 아직도 붉은 단풍과 노란 은행잎이 장관을 이루어 작년보다 긴 가을의 시간임을 분명하게 알린다. 산을 돌고 정상을 거쳐 내려오는데 비가 내리고 집에 1시에 들어오니 아들은 미도착이고 딸만 와 있다. 아들의 수업이 종로에서 2시에 시작해서 초조하게 기다리는데 2시에 집에 온다고 전화를 한다. 1주일에 한 번 가는 파고다 외국어학원 수업을 어쩌자는 것인지 몇 번 나가더니 또 불성실하다고 야단을 했다. 이어 아내에게도 전화하여 중학교 2학년 아들을 어울리지도 않게 외국어학원에 등록시켜 시간이나 금전만 낭비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후에 학원에 도착하여 업무를 보고 저녁이 되어 강의실에 들어서니 예상한 대로 결석이 많아 테스트 중심으로 강의를 마쳤다. 내일 마라톤 일정으로 바로 집으로 왔더니 낮에 무엇을 하고 왔는지 학원도 가지 않은 아들이 잠만 쿨쿨 자고 있다. 깨워서 식탁으로 불러 사람이 무엇을 하면 정신을 차리고 끝을 보고 마무리를 할 줄 알아야지 이렇게 철저하지 못하고 자기 일 하나도 완수를 못하여 도대체 어찌 할 거냐고 질책을 했다. 이번뿐 아니라 아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무엇을 배운다고 등록하면 한 두 번 또는 한 달 정도 다니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 세상에 쉬운 일이 없는데 조금 힘들다고 그만두고 또 아내는 그런 아들을 다시 여기저기 등록을 시키는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교육을 시키고 있다. 나는 하는 일에 목숨을 걸고 반드시 이룬다는 심정으로 지금까지 20년 넘게 외길을 가고 있는데 아들은 왜 살아가면서 필요하고 중요한 집념이나 의지가 없는 것일까.
16일 어제 비가 와서 그런지 아니면 아들을 많이 꾸짖은 이유인지 아침이 무겁고 우울한 시간이다. 마라톤을 하는 날인데 선뜻 내키지 않아 준비도 안하다가 이미 접수도 했고 아들과 1년에 한 번 약속된 시간이라 어찌할 수 없다. 번호표와 칩을 부착하고 식사를 간단하게 한 뒤에 어제 일로 인상만 찌푸린 아들을 태우고 출발지 상암동 월드컵공원으로 갔다. 8시30분에 도착하여 준비운동을 하고 한강을 따라 달리다 동작대교를 돌아오는 하프코스 21.095킬로를 아들과 9시10분에 출발했다. 9월27일 풀코스 이후 오늘 달리는 이 곳은 그동안 땀을 흘리며 내가 오갔던 익숙한 홈그라운드 같은 곳이라 편안한 마음이고 눈에 보이는 강물과 풀 한 포기마저 나를 응원하는 것 같았다. 50분을 달려 동작대교 아래 반환점 근처에 이르자 뿌연 안개 속으로 한강 건너편 방배동 친구의 신삼호아파트가 우뚝 솟아 강 건너에서도 나에게 힘을 보태주고 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응원하는 목소리보다 친숙하여 돌아오는 시간에도 지치기는 커녕 속도가 더 생기는 오늘의 레이스였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거의 100여명의 주자들을 제치고 골인하면서도 힘이 남아 100미터 달리기 하듯이 들어왔을 정도다. 오늘 하프기록은 1시간49분으로 10킬로를 거의 55분에 달렸으니 좋은 기록이고 오늘 출전 선수중 350등을 했다. 풀코스를 이렇게 달린다면 4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숨을 고르고 있으니 아들이 2시간1분이 되어 들어온다. 집에서 칩을 아들과 바꿔 착용하여 서로의 기록이 바뀌어 통보되어 왔고 보스턴 마라톤에 출전했던 신종태 친구는 나보다 2초 뒤인 353등으로 골인했다.
17일 잘 자고 일어났다. 50일 전에 풀코스를 달리고 어제 하프코스를 달렸는데 생각보다 잘 달려 다음 풀코스 도전에 자신감이 생긴다. 동작대교 반환점을 돌기 200미터 전에서 앞서 반환점을 돌고 나가는 아들을 만나 손을 마주쳤으니 전반부에서는 아들보다 약 400미터 뒤쳐진 상태였다. 그러나 결국 12분을 먼저 내가 들어왔다니 후반 레이스에서 얼마나 경쾌하게 빠른 속도로 달렸는지 짐작을 할 만하다. 중학교 2학년 아들도 작년에 이어 연속으로 하프코스에 참가하여 쉽지 않은 완주를 했으니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도 마라톤과 다르지 않는 여정이니 살아가면서 아무리 힘들고 고독한 상황이 온다해도 중단하거나 주저 앉아서는 결코 골인의 감동이 없다는 과정을 교훈으로 새겨야 할 것이다. 아침에 힘이 드는지 태워달라기에 아들을 학교에 내려주고 돌아왔다. 아내는 10시경 산에 간다고 나가고 나는 약수동으로 가서 마원장을 만나 차용증을 쓰고 점심을 먹고 돌아왔다. 부대찌개를 점심으로 먹었는데 몇 달전 떠나간 성우와 먹은 식당이어서 밖의 날씨만큼 마음도 시렸다. 오늘은 학원 중등부 3학년들이 처음으로 고등부에 올라오는 날이라 일찍 나가서 자료를 준비하는데 신설동 임대문의가 들어와 택시로 갔다가 계약서까지 작성하고 돌아왔다. 이따금 바람이 불어 거리에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가는데 더욱이 내일은 서울 기온이 영하 5도까지 내려간다니 이제는 겨울도 머지 않은가 싶다. 학원에서 O.T하고 교재를 배부하며 설명회까지 마치니 밤 10시가 되었고 차를 가져가지 않아 시내버스로 집에 돌아오는 동안 얇은 양복에 추워서 고생을 했다. 요즘의 내 모습을 보니 작년에 비하여 많이 바빠졌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스스로 놀랍기만 하다. 터널 같았던 1년의 시간이 더 강해진 나를 만든 것인데 지금의 마음처럼 변함없이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18일 새벽에 뉴스를 보니 서울 기온이 영하 5도로 내려갔고 바람으로 체감 온도는 더 떨어진 추운 아침이다. 어제 저녁에 아내가 만든 돼지고기 김치찌개가 맛이 있어 아들과 오늘 아침까지 연속으로 먹었다. 날씨가 추워서 아들을 태우고 학교에 가면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나중에 훌륭하고 멋있는 아들이 되라고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눈만 감고 말이 없는 아들은 내 마음을 언제나 알아갈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는 딸이 다니는 학교에 교통정리 하는 날이라고 나가는데 날이 추워 고생할 것 같고 내가 대신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1시간쯤 지나 학생들의 등교가 끝난 시간에 다시 들어와 동네아주머니들과 김장거리를 가지러 파주에 가고 나는 체육관으로 나갔다. 운동을 마치고 어제 새롭게 계약을 마친 신설동 1층에 가서 내부를 점검하며 점심은 고려대 인근에서 닭곰탕으로 해결했다. 곧장 요양원에 가서 어머니를 뵈니 식사는 잘 하시는데 안색이 좋지가 않아 걱정스러웠고 학원에서는 어제에 이어 오늘은 화목토반 OT와 교재배부 그리고 수업설명회를 가졌다. 밤 10시에 집으로 가려고 밖에 나오니 어제처럼 날씨가 추워 차를 몰고 곧장 아들이 다니는 홍제역 근처 수학학원으로 가서 한참을 기다리다 태우고 집에 왔다.
19일 어제보다 오늘이 더 추워 새벽에 최저 기온이 영하 6도를 알린다. 어제 밤에 아들과 들어와 삼겹살을 먹고 잠들었고 아침에 식사를 하려니 반찬이 어제 먹던 콩나물국과 김치뿐이다. 학교 가는 아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계란후라이를 서둘러 만들어 주었더니 이것도 먹는 둥 마는 둥 한다. 오늘도 날씨가 추워 아들을 태우고 학교에 내려주고 집에 오니 아내는 어제처럼 교통정리 하러 일찍 나갔고 딸은 내가 산에 다니며 끼는 등산장갑을 하고 학교에 갔다. 기온이 낮고 날이 추우니 어쩔 수 없지만 올 겨울에는 춥지 않도록 사랑하는 딸에게 예쁜 장갑을 얼른 선물해 주리라 생각을 했다. 아침에 운동을 가야 하는데 배가 고프고 입술에 종기까지 생겨서 컨디션이 좋지 않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안방에 드러누웠다. 피곤하고 스트레스가 쌓이면 어김없이 입 주변에 종기가 생기는데 학원에 신경쓰고 날씨도 차갑다보니 병이 난 것이고 무엇보다 건강관리를 못한 내 책임이다. 11시30분경 아내가 돌아왔고 어제 먹다가 남은 삼겹살을 구워 점심을 하는데 오돌뼈까지 소리내어 먹는 아내가 좀 무시무시 하게 보였다. 어디서나 천천히 조용하고 부드럽게 음식을 먹는 것이 건강을 위하여 필요하고 보기에도 좋다고 학생을 가르치듯 주문했다. 1시에 집을 나서 신설동과 요양원을 들렀다가 학원에 도착하여 장원장과 현재의 학원 상황을 이야기하고 수업까지 마치고 밤 11시경 집에 들어가니 왠일인지 아들과 딸이 일찍 자고 있고 청주에서 일전에 담근 김장김치가 도착하여 저녁식사 하면서 먹으니 지금까지 올라온 것 중에서 최고의 맛이다.
20일 늦은 밤에 한국과 사우디 국가대표 축구경기를 보고 새벽에 잤는데도 아침이 되니 몸이 가볍다. 청주에서 어제 온 김치가 맛이 있어 흥이 있게 식사를 하고 아들을 태우고 학교에 가려고 미리 내려와 차에 시동을 켜고 기다렸다. 잠시 후에 교복 상의도 안 입고 목 티셔츠에 잠바만 걸치고 가방도 없이 나온 아들에게 단정하지 못하다고 지적을 했더니 점심을 먹고 양재역으로 학교에서 탐방학습을 간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가방에 단어장이라도 넣고 교복을 착용하는게 바람직할 것 같은데 학교에서 사복을 지시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고 바로 학원에 가니 오후 1시가 되었고 대일학원에서 함께 근무했던 형문태 선생과 약속이 되어 기다리니 홍삼정 1박스를 들고 와서 딸의 결혼식이라고 참석을 부탁하며 청첩장을 건넨다. 점심을 먹으러 밖으로 나오니 날이 잔뜩 흐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내 첫눈이 펄펄 내려 겨울이 왔음을 실감하게 한다. 저녁에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니 11시가 지났고 학원에서 돌아온 아들을 식탁에 앉히고 앞으로 학교에 갈 때는 어느 경우든 교복을 착용하고 밤11시 이후에는 핸드폰을 식탁 위에 놓고 방에 들어가기 등을 지시했더니 불만스러운지 대답이 없다.
21일 아침에 거실에 나오니 화장실에 들어간 딸을 빨리 나오라고 아들이 문을 쾅쾅 발로 차고 있다. 아들한테 안방 화장실을 사용하라고 했는데 내가 방에 있으니 불편했던 모양이다. 딸한테 먼저 학교를 가는 아침 7시10분부터 40분까지는 오빠가 준비할 수 있도록 피해주라고 달래고 식사를 마쳤다. 오전에 집을 나와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하고 청주에서 온 김치가 예전과 다르게 내 입맛에 잘 맞아 집에 돌아와서 라면으로 식사를 했다. 아내는 송죽원 자선찻집에 간다고 나갔는데 전화를 하니 창민이 엄마와 교보문고에 가 있다. 학원에 영식이가 온다기에 바로 나가서 커피를 마시며 학원 상황과 재정 전반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면서 가급적 인수할 수 있도록 설명을 했다. 재력이 있는 영식이가 학원에 관심이 있어 장원장과 조율을 해서 매입을 하면 모두가 긍정의 효과를 얻을 수가 있을 것이다. 3시에 수업을 시작하여 저녁에 마쳤고 3학년 학생들이 없는 학원은 텅빈 것처럼 공간이 남았는데 그나마 새로운 수강생들이 등록을 하여 다소 위안이 된다. 집으로 오는 중에 친구 형준이 전화가 왔고 홍제동으로 온다고 하더니 차비도 없는 놈이 와서 식사값과 택시비까지를 모두 내가 지불했다. 하는 일이 어렵다니 그럴 수 있고 죽마고우로서 나도 당연히 할 일이지만 정신을 놓고 자포자기하고 살아가는 모습은 언제까지 지켜볼 수는 없다.
22일 일어나니 산에 가자는 영식이 문자가 와 있다. 우리끼리 간다면 몰라도 또 자신의 고향 사람들 몰고 오면 괜히 시간 낭비이고 그것보다 어머니를 뵈어야 하고 오후에 수업도 있어서 어렵다는 문자를 보냈다. 아들과 딸이 휴일 토요일이라 늦게 일어나 식사를 9시가 지나서 한다. 오전에 신설동 1층 임대문의가 있어 서둘러 갔더니 온다는 사람은 소식이 없고 형한테서 급격하게 어머님의 체온이 올라 응급실로 들어가셨다는 전화가 온다. 돌아가실 것 같다는 생각으로 정신없이 병원 응급실에 가니 주말이라 의사나 직원이 거의 없고 갓 대학을 졸업했을 젊은 의사 한 명이 어머니를 지키고 있다. 체온이 너무 높고 검사수치도 안 좋다면서 오늘 중환자실로 가지 않으면 위험하고 그렇게 해도 2,3일 후에는 장례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선언을 하며 이 곳 위생병원에는 중환자실이 없으니 다른 병원을 수소문 하라고 대책 없는 말을 한다. 상대의 심중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껄이는 의사가 철이 없지만 나로서는 경황이 없고 심난하기만 했다. 병원에서 연계하여 구급차로 이동시키면 좋겠는데 어느 병원으로 가서 수속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허둥대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응급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밤 8시가 되자 일반병실이라도 자리를 줄테니 그 대신 돌아가셔도 괜찮다는 각서를 쓰라고 한다. 돌파구가 없으니 어쩔 수 없었지만 어머니의 생명을 내 손으로 포기하는 것같아 비통함이 말할 수 없었다. 결국 하루에 18만원 하는 호흡 맥박 심장박동수 등을 체크하는 모든 기기가 구비되어 있는 1인실 특급병실을 정했다. 4,5시간 간격으로 통증이 올 때마다 진통제를 투여하면서 혹시 운명하실까 두려워 어머니 곁에서 눈을 뜨고 밤을 보낸 긴 시간이었다.
23일 어제 밤11시 위독하다는 소식에 매제도 오고 퇴계원에 사는 동서 용구아빠도 다녀갔지만 어머니와 있으면서 일요일 새벽을 혼자 맞이했다. 어제 밤에 연락을 받고 일찍 온 외과 과장이 복막염이라 오늘 수술을 해야 한다고 결정을 내려 그나마 병명을 알 수 있어 안도를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일찍 나온 여동생에게
자리를 맡기고 집에 들렸다가 식사하고 다시 11시에 병원으로 갔더니 곧이어 시작되는 수술을 위하여 코에 영양제 호스를 삽입하는데 고통스러워 하는 어머니를 볼 수가 없었다. 마취와 함께 12시40분에 수술실로 이동했고 억지로 담담한 나와 다르게 형과 형수는 초조해 하고 여동생은 눈물을 흘리며 수술실 문 앞에 서 있다. 89세에 돌아가신 할머니 그리고 50세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와 큰형님이었지만 우리 집에서 오늘처럼 수술실에 들어간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4시간이 지나 수술실 문이 열리자 자존심을 잃지 않으려는 듯 눈을 부릅뜬 어머니는 수술대와 함께 중환자실로 이동을 하신다. 어머니와 가족의 소중함 그리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현실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다시 느끼게 하는 시간이다. 밤에 보호자 한 명이 필요해 내가 자청했고 자리를 지키다가 주무시는 틈을 타서 밖으로 나가 식사를 하고 돌아왔다. 환자의 숨소리가 이승임을 알리는 조용한 병실과 바람에 낙엽이 뒹구는 소리가 들려오는 깊어가는 초겨울의 밤이다
24일 중환자실에 어머니를 두고 밤새 대기하라고 했는데 아침이 될 때까지 아무런 호출이 없어 별일이 없다는 안도감,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은 오늘을 두고 하는 말이다. 새벽에 집으로 가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9시 면회시간에 맞추어 다시 병원에 도착했다. 개인일정으로 바쁘다는 영식이가 면회를 하겠다고 9시에 왔고 시간이 되어 함께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긴장으로 뵌 어머니는 의식이 회복되어 정상으로 돌아왔고 나에게 밥은 먹었느냐고 첫 마디를 하시는데 고맙고 사선을 넘나드는 어머니에게 자식으로서 최선을 다 하리라 다짐을 하였다. 영식이와 10시경 병원을 나와 신설동 대성집으로 들어가 해장국으로 늦은 아침식사를 하고 경기학원 운영에 대하여 시간을 할애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학원으로 가서 금전적 어려움으로 아파트까지 위기에 직면한 장원장과 만나 영식이가 학원을 인수하는 문제까지 논의하였다. 긴 시간 이야기를 마치고 오후 4시가 되어 밖으로 나와 동태찌개를 먹고 친구를 보내고 저녁에 수업을 시작하였다. 이틀 동안 병원생활로 컨디션이 좋지가 않아 수업후 일찍 집에 왔더니 역시 몸살과 감기로 기침하고 밤새 고생을 하였다.
25일 새벽에 자다가 밖으로 나가 보일러를 조절한다는 아내가 어떻게 했는지 방이 뜨거워 견딜 수가 없어 일어났다. 거실에 나와 몸을 식히고 감기로 기침까지 하며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피곤한 아침을 맞이하였다.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아내와 아들을 태우고 나와 아들 학교에 갔다가 병원으로 이동했다. 형과 동생 그리고 정환이 동생까지 와서 기다리다가 시간이 되어 중환자실을 들어가니 밤새 지루했다고 하소연을 하고 그러다 투정을 부리시기도 한다. 집으로 오는 중에 정환이를 외대 앞에 내려주고 경동시장으로 가서 아내가 과일을 사는데 아침부터 피곤한 채로 다니다보니 이것도 지루하고 짜증스러웠다. 집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나니 잠이 쏟아져 자다가 4시경 일어나 학원으로 출발했다. 고3이 없으니 고1,2 수업만 하면 되어서 기말고사 범위를 수업하는데 기침이 계속 나와 매우 힘들었다. 집에서 아내가 챙겨준 과일 달인 물을 계속 마셨더니 그나마 좀 낫고 친구들 전화가 와서 통화하니 영식이는 또 대전에 정식이는 사업차 내일 베트남에 간다고 한다.
26일 아침에 피곤하고 감기 몸살이 계속되어 밥도 먹히지 않아 다시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아들과 딸이 학교에 평소와 같은 시간에 나가는데 동지가 가까워져 밤 시간이 길다보니 7시나 8시가 되어도 밖은 컴컴하다. 중환자실 면회 시간이 9시라 집에서 8시에는 나서야 되는데 몸이 좋지 않아 망설이는 중에 형이 오늘은 쉬는 날이라고 하루 종일 있겠다 전화가 와서 그대로 누워서 보냈고 면회를 마친 형이 잠시후 전화를 하여 별 탈이 없다고 소식을 알린다. 다행스런 마음이었지만 작장암으로 생명이 길지가 않아 또 의식이 사라지고 사경을 헤매는 시간이 올 것이라 일시적인 안도일 수 밖에 없다. 늦게 아침 식사를 조금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오늘 만나서 학원 매수를 의논하는 장원장과 영식이 문서를 내가 미리 만들었다. 사람들은 나를 얼렁뚱땅 대충 일처리를 하는 생각이 없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는데 완성을 하고 정리하면서 보니 이렇게 정확하고 철저하게 만들 수 있나 싶어 내가 스스로 놀랍기만 했다. 일찍 학원으로 나가 영식이를 만나 식사를 함께하고 장원장괴 미팅을 주선하여 서로 양보하는 마음으로 허심탄회하게 협상을 하라고 당부했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이 지금을 두고 하는 말처럼 금전적으로 어려움을 격는 장원장은 좋은 기회이고 재력이 있어 학원에 미련이 있는 영식이도 마찬가지다. 학원 수업을 마치고 영식이와 통화하여 오늘의 결과를 물으니 서로간 타산이 맞지 않아 인수를 안 하겠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내가 직접 관여는 못하지만 아무튼 허망했고 오늘도 학생들을 열심히 지도한 선생들과 밖으로 나와 식사를 했다.
27일 새벽에 잠이 들어 늦게까지 자고 있는데 비가 오는 이유로 아들을 태워 주라고 아내가 깨운다. 벌떡 일어나 창밖을 보니 새벽까지 멀쩡했던 하늘에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제법 많이 내리고 있다. 아침도 거르고 아들을 태우고 학교에 갔다가 종로를 경유하여 9시에 중환자 어머니 면회시간에 맞추어 도착했다. 10여분 대화를 마치고 형과 함께 담당 외과 과장을 만나니 정상으로 돌아왔는데 연로하시어 회복이 늦다고 한다. 정상의 기준이 무엇이든 회복이 되었다고 해도 그것은 일시적이고 생사를 결정하는 더 큰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어 착찹한 마음이 가시지 않고 비가 내리는 초겨울의 위생병원 밖의 정경이 슬픔으로 내려와 앉는다. 차를 몰고 서울 숲 근처에 일을 보러 갔다가 전화를 받고 신설동에 갔더니 3층 창문 사이로 비가 들어와 어수선하다. 비가 그치면 옥상부터 수리할 것이라고 세입자와 대화를 하고 미안한 마음에 청소를 해주고 내려왔다. 아침도 거르고 배가 고파서 김치찌개로 밥 두 공기를 먹고 일어나니 화곡동에 사는 막내 고모께서 오늘 저녁에 어머니 병문안을 온다고 알린다. 학원에 도착하여 어제 영식이와 결렬된 상황을 장원장한테 전해듣고 다시 좋은 결과를 만들어 보자고 이야기를 하고 예비고1 화목반에 들어가 수업을 했다. 아직은 수강생이 적어 썰렁했지만 즐거움으로 열심히 강의를 마치고 나오니 나름 보람도 생겼다. 여동생 그리고 형수님과 오늘 어머니 병문안 온 막내고모는 신내동 해물탕 집에서 식사를 한다고 연락을 하여 감사함과 고마움을 전했다.
28일 눈을뜨니 7시가 지났고 밖은 아직도 어둡다. 시험도 다가오고 겨울로 진입하는 추위가 있어 아들을 학교에 태우고 가면서 요즘이 학교생활하기가 가장 힘들 때라고 말하니 왜냐고 묻는다. 일찍 일어나야 하고 날도 춥기 때문이라고 하니 자신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아들이 대견했지만 이제부터는 3학년도 되어가니 더 의젓하게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으면 좋겠다. 집에 돌아와 시골에서 아직 쌀이 도착하지 않아 누룽지 탕으로 식사를 하고 일주일 만에 안산에 오르니 화려했던 가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앙상한 나뭇가지 뿐이고 정상을 거쳐 운동기구가 있는 중턱에 내려오니 계절을 망각한 개나리가 노랗게 피어 있다. 오전에 아내는 분당에 사는 정목이네 집으로 동네 사람들과 점심을 먹으로 가는데 거리가 멀어 추운 날씨에 힘들 것같다. 라면을 먹고 현관을 나오는데 커 갈수록 예쁘고 살가운 딸이 학교에서 돌아오고 있다. 학원에 들어서니 지입 차량 기사들과 장원장이 그 동안 밀린 임금 문제로 옥신각신 어수선하다. 급여가 자주 밀리니 기사들 입장에서는 화가 나고 대책이 없는 장원장은 완전 죄인처럼 초라하기만 하다. 시간이 되어 강의를 마치고 베트남에서 돌아온 정식이와 식사를 하고 집에 오니 아들도 학원에서 들어온다.
29일 어제 밤 학원에서 늦게 들어온 아들에게 쌀이 없으니 라면이나 누룽지를 먹자고 하였더니 상황을 모른 아들은 자신은 나중에 자식을 굶기지 않겠다고 자신있는 목소리를 낸다. 당연히 그래야 하지만 인생이 뜻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살다보면 예기치 않게 어려울 때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시골에 논이 있어 쌀 걱정은 안하지만 정말로 가난으로 이런 상황이었다면 아들의 지나가는 말도 아픔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요즘 나름대로 학원을 살리고 일으켜 보자고 강사와 기사를 조정하고 기존 직원들에게도 임금을 조정하여 모두에게 미안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학원 일을 걱정하며 일어나니 비가 내리고 어제는 누룽지와 라면으로 보냈지만 아들의 입장도 있어서 새벽에 청진동 해장국 집에서 3인분 식사를 사 가지고 돌아왔다. 일찍 일어나 라면을 준비하던 아내는 새벽에 나갔다가 눈 두덩이가 심하게 부어 들어온 나를 보고 놀라서 묻는다. 해장국집이 새로운 건물로 이전하여 어둑한 새벽에 헤매고 다니다 투명한 유리에 부딪힌 것인데 생각보다 통증이 심하다. 7시30분에 선지 해장국으로 가족이 식사를 하고 아내와 아들을 태우고 학교에 갔다가 아들을 내려주고 병원에 가서 어머니 뵙고 신설동을 거쳐 학원으로 들어갔다. 크고 깨끗하고 세련된 시설과 규모에 놀라는 아내에게 설명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점심을 하고 다시 학원으로 나가서 초등부 선생들 강의료 조정건에 대하여 어려운 면담을 하고 저녁에는 영식이와 식사를 하고 택시로 집에 왔는데 오늘도 식사비나 택시비를 영식이가 모두 처리했다.
30일 일요일 아침 11월의 마지막 날을 맞이 하였다. 아침식사를 하고 어머니를 뵈러 아내와 함께 병원에 도착하니 일요일임에도 월요일처럼 사람이 많고 붐빈다. 위생병원은 안식일 재단으로 토요일을 공휴일로 하여 예배를 드리고 일요일은 월요일 개념으로 모두 출근하기 때문에 의사나 간호사 전직원이 정상 근무일이다. 서울 삼육대를 비롯하여 안식일 재단의 모든 중,고등 학교도 토요일에 쉬고 일요일에 등교하는 희한한 광경이 펼쳐지는 곳이다. 친구 노훈이가 삼육고 선생인데 일요일마다 출근하여 모임을 옮겼을 정도다.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는 어머니를 뵙고 집으로 왔다가 시험대비 보충을 하려고 점심을 먹고 다시 학원으로 나갔다. 작년까지는 노량진에서 주말반 수업으로 일요일 특강을 했었는데 오늘 보충수업 한다고 가다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학원에 도착하여 오랫만에 일요일 수업을 마무리 하고 며칠 전에 들어온 영어선생과 면담을 하였다. 강의도 잘 하지만 말없이 자기 일을 칼같이 처리하여 놀랐고 오히려 나이가 선배인 내가 배울 점이 많은 사람으로 면접한 보람이 있다. 2008년도 12월 마지막 달력 한 장을 남겨 놓고 집에 도착하여 식사를 하고 거실에서 잠이 들었는데 새벽 1시에 학원에서 아들이 돌아온다. 모레 화요일부터 기말시험이라 마지막 정리를 했다는데 자다가 일어나 아들의 차가운 얼굴을 쓰다듬고 방으로 들여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