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수능 성적표가 배포되는 날, 한 SNS에 전 과목 1등급 성적표 사진과 함께 '2015 수능에서 만점을 맞았습니다' 로 시작되는 장문이 올라왔다. 아무런 수식이 없는 첫 문장은 담담했다. 글에서 어린 혁명가의 단단한 포부가 느껴졌고, 일면식도 없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우러났다. 불만과 비난보다는 냉정한 비판이, 옳고 그름의 판단보다는 더 나은 결론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 과정에 자신의 역할이 분명히 있고,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첫걸음이 '수능 만점'이었다고 말하는 부산 대연고 이동헌 학생을 만났다. |
편집부가 독자에게 ...
새 문을 열며 언제부턴가 아이들과 세대 차를 좁히려는 노력을 그만두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새롭고 유연하고 강한 아이들을 보면 우리의 미래도 그리될 듯해 뿌듯합니다. 수능 시험 만점을 받은 이동헌 학생을 만났습니다. 세상을 향해 열린 마음, 마음을 따르는 행동이 참 멋진 청년입니다. 대한민국의 많은 청소년과 청년들이 더 넓고 맑고 드높아지는 2015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_김지민 리포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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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플러와 색을 맞춘 바지, 투 블럭 커트로 멋을 낸 헤어스타일, 색을 맞춘 가방과 신발까지 예사롭지 않은 패션 감각이다.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그의 모습은 잔잔하지만 단호한 글을 통해 짐작했던 어린 혁명가의 모습은 아니었다. "제가 패션에도 관심이 많아요. 제가 원하는 대로 입는 스타일이죠. 하하하." 건네받은 명함에는 대연고등학교 학생회장, 부산청소년소통연대 청아재 대표라고 쓰여 있었다. |
수능 만점의 동기가 수능 이후 유흥비? |
교육에 대한 불만은 중학생 때도 있었다. 고등학생 때는 늘 최상위 성적을 유지했지만,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전교 20등 정도. 스스로 만족할 성적이 아니었다. 그때 처음 교육에 대한 불만이 생겼다. 흥미 없는 과목을 공부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중학생 때 불만의 원인은 저 자신이었어요. 한마디로 공부를 그만큼 열심히 안 한 거죠." 고등학생 때 토론 동아리에서 '창의력은 교육할 수 있는가' 를 주제로 토론을 한 적이 있다. 그때 교육 시스템의 본질적인 변화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구체적인 목표는 자연스럽게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로 연결됐다. 수능 만점의 목표도 그때 세웠을까? "수능 2주 전 친한 친구랑 장난 같은 내기를 했어요. 만점 받는 사람이 시험 끝나고 유흥비(?)를 다 내자고." 친구의 즐거움을 위해 꼭 만점을 꼭 받고 싶었다는 동헌 학생은 만점 받을 수 있다는 자기암시를 계속했다고 한다. "제가 좀 느긋한 편이에요. 수능 당일에도 전혀 긴장하지 않았거든요." 여유로운 성격이 수능 만점의 플러스알파로 작용한 것 같다는 동헌 학생의 말이다. 전 과목 1등급 성적표를 받은 느낌은 어떨까?
"처음엔 '대박'이라는 생각과 함께 무척 기뻤죠. 하지만 그 성적표가 자랑할 일이 아니라 평소의 생각을 다짐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SNS에 글을 올렸어요." 그가 올린 글의 일부가 떠올랐다. '남보다 많은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고, 학력을 중시하는 사회적인식으로 덕을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기심이나 특권 의식을 갖지 않고 모순적인 사회를 바꿔보고자 했던 초심을 잃지 않겠습니다.' |
동헌의 문제의식 - 일자리 |
그럼 그가 생각한 우리 사회의 모순은 무엇일까? "제 생각에는 '일자리' 가 가장 큰 원인 같아요. 취업을 위해 대학생들은 다양한 스펙을 쌓아야 하고, 고등학생들은 대학생이 되기 위해 입시 전쟁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는 입시 정책에도 할 말이 많은 듯했다. "EBS 교재도 수많은 교재 중 하나일 뿐이죠. 왜 EBS 교재여야하는지 이유를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요. 정확하게 검증된 건지 아닌지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으면서 교과서처럼 사용하죠." 공부할 교재를 나라에서 정해주니 학생들 입장에선 편하지만, 문제 풀이 위주 교재로는 사고의 틀이나 지식의 범위를 확장하기 어렵다는 것이 동헌 학생의 생각이다. "다른 친구들도 불만은 있지만, 당장 눈앞의 결과 때문에 생각할 틈이 없는 거예요."
그는 학생부 종합 전형이 상위권 아이들의 대입 수시 지원의 도구가 되어버린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상위권 학생들을 위해 교내 수상을 몰아주거나, 학생부 내용을 무조건 좋게 써주는 것이 현실이죠. 중·하위권 학생들이 상대적인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학생들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기준이 필요해요. " 본인도 많은 혜택을 본 사람 중 하나일 텐데? "그럴 수도 있어요. 인정합니다. 그래서 봉사 활동이나 대회 참가할 때 준비는 물론, 정말 성실하게 참여했어요." 공부 좀 한다고 혜택 받는다는 소리는 절대 듣기 싫었단다. |
동헌의 해결 방안 1 - 착한 정치 |
그럼 동헌 학생이 생각하는 해결 방안은 무엇일까. 건네준 명함에 대답이 담겨 있었다. '소통.' 그는 고2 때 부산 10여 개 고교의 동아리와 연합해 '부산청소년 소통연대 청아재' 를 만들고, 참석자 150여 명 규모의 '청소년열린포럼 YOUF(유프)' 를 열기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이 청소년의 사회 참여를 높일 방법을 찾으면서 만들어진 것. 사회 어른들의 조언을 듣기 위해 이준석(새누리당을 바꾸는 혁신위원회위원장,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 대표교사), 정석원 PD( EBS-TV<학교란 무엇인가> 담당 PD)를 직접 만나 의견을 듣기도 했다.
정석원 PD에게는 격려담긴 칭찬을 들었고, 이준석 위원장에게는 학생들의 사회참여는 '자뻑' 이라는 부정적인 답변을 들었지만 상처받지는 않았다. "다른 의견과 시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새로운 배움이니까요." 무엇보다 정치에 관심이 많다는 동헌학생, 혼탁한 정치에 대한 거부감은 없는지 궁금했다. "나쁜 정치는 사회를 망치지만, 좋은 정치는 사회를 살릴 수 있다고 믿는다" 는 그는 시스템의 변화는 결국 정치의 과정을 거쳐야 정책으로 활용될 수 있으므로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는 기성세대가 이전과 같은 권위를 유지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 '가만히 있으라' 는 한 마디가 어른들의 세계를 대변하는 것 같아요. 가만있으면 안 되는 시대잖아요?" 되묻는 그의 말에 기성세대이고 어른인 것이 부끄러웠다. |
동헌의 해결 방안 2 - 논쟁보다 토론 |
서울대 경영학과에 지원한 그가 준비하는 대학 생활은 어떤 걸까? 창업, '사회적 대안을 제시하는 청년들의 토론 단체' 만들기라는 대답이 바로 나온다. 창업 아이템도 있다고. 토론 단체는 어떤 단체나 정당, 성향과도 상관없는, 말 그대로 아무런 장벽 없는 토론 단체로 만들고 싶다. 그 단체가 사회의 여러 안건들에 건강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소통의 광장이 되기를 꿈꾼다.
"중학생 때부터 토론에 관심이 많았다" 는 동헌 학생은 찬반으로 편을 갈라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논쟁(debate)보다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의견을 수렴하고 사고를 확장하는 토론 (discuss)형식이 좋은 정책을 만드는 좋은 도구라고 생각한다. "디베이트 대회에 참여해 수상한 경험도 있지만, 디베이트는 자신의 주장을 위해 억지스러운 부분도 감수해야 하더라고요." |
이제 세상 속으로 |
그는 이제 갓 수능을 마친 고3이다. 동헌 학생의 집은 부산. 서울로 사람을 만나러 올라오고, 학교 동아리는 물론 연합 동아리를 운영하면서 도대체 공부는 언제 했을까. 부모님은 또 그렇게 분주한 아들을 어떻게 대하셨을지 궁금했다.
고3 때도 그날 해야 할 공부는 학교에서 마쳤다. 집에 돌아와서는 책도 읽고, 게임도 하고, 뉴스도 보며 자신만의 시간을 충분히 즐겼다. 부모님은 "잠자라" 는 말 외에 다른 잔소리를 하신 적이 없다고. 비결은 단순했다. "부모님이 원하는 성적을 드리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어요. 다행히 저는 그 사실을 조금 일찍 깨달았거든요. 하하하." 동헌 학생은 생각이 굳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다. 세종대왕을 가장 존경하는 이유도 그 시대에 그렇게 유연하고 포용적 사고방식으로 행동에 옮겼다는 것.
고등학생 때 읽은 책 중에서는 <백범일지>와 <학교란 무엇인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백범일지>는 리더로서 갖춰야 할 신념과 용기, <학교란 무엇인가>는 사회 시스템을 보는 시각을 키워주었다는 독후감을 들려준다. 동헌 학생은 자신이 남들보다 몇 걸음쯤은 앞서 시작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결코 그것을 누리지는 않을 거예요. 사회를 바꾸기 위한 도구로 사용해야지요. 현재의 성과에 매몰되지 않도록 늘 깨어 있겠습니다."
 요즘은 장하성 교수의 <한국 자본주의>와 카잔차카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있다. <한국 자본주의>가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의 자본주의를 이해하고 싶어 도전했다.
미즈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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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멋진 청년이군요...
교육에서조차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가 너무 커서 그게 참 문제인데... 어떻게 극복해야 할 지...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