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를 밝힌 지혜를 새 주역들에게: 기독운동, 내가 살아온 이야기
선생님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자니 근현대사를 듣는 것 같았어요. 살아온 날들 속에 역사의 사건들이 담겨있고 그 사건들 중심에 계셨지요.
박종렬 선생님 같은 선배들 이야기를 들으면 언제나 놀라워요. 그런 역사를 경험했다는 것만도, 그리고 쉽지 않은 선택들을 해온 그들의 인생길 보자면 말입니다. 대단해 보이지만 정작 선생님 본인은 별 거 아닌듯 담담하게 말씀하셨어요. 실제로 처음부터 이런 삶을 바라고 준비했던건 아니었던 거죠. 지금이 되기까지 몇가지 변화의 시점들을 발견하게 돼요.
당시 민주운동은 활발했는데 정작 교회에서는 역사 공부를 하지 않았다고 해요. 사실 지금도 교회에서 역사 공부를 한다면 낯설긴 하겠죠. 하지만 과거를 기억하고 지금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역사 공부는 당연히 필요한게 아닐까 싶어요. 역사 공부라는게 단순히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같은게 아니니까요. 역사를 공부 하는 속에 과거와 현재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하늘뜻 있을겁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다른 책을 보고 공부하면서도 지금 우리 삶으로 연결하는 능력이 필요해요. 제가 모임하고 있는 KSCF에서는 작년부터 동학, 5·18 공부하며 기행까지 다녀왔어요. 그 시간들 통해 시대와 장소가 다르더라도 얼과 정신 이어 우리가 지금을 살아가는 배움의 실력은 쌓여가고 있어요. 기행에서 만난 선배님들도 역사 공부 많이 하라고 하셨던 것 기억하며 역사 공부에 마음 두길, 그들이 어떤 사건을 마주하며 살았는지, 무얼 위해, 뭘 꿈꾸고 살았는지 찾아봅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선생님은 4·19와 같은 사건들을 하나님의 역사라고 해석하셨어요. 하나님은 멀리, 나와 상관 없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 삶 가운데, 지금도 계속 일하고 계시는 분이시죠. 지금 보면 4·19 역시 크나큰 사건이라 볼 수 있지만 당시 그들에게는 이렇게 중요하게 기록될 사건으로 생각 했을까요? 그저 시급한, 꼭 해야만 하는 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 특별하다고 여길 수 없는 너무 현실적인 문제들이었는데 그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느끼고 있었어요.
하나님의 역사다 아니다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그저 그렇게 믿고 행함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 행함에 함께 하는 이들, 남는 결과들로 해석할 수는 있겠지요. 지금 4·19를 보면 그렇다고 해석할 모습들 있습니다.
작고 사소해 보이는 지금 우리의 모임도 일상도 그래요. 매번 만나는 이들, 반복되는 일상과 할 일들 때로 익숙함에, 지겨움에 가볍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반복 속에서 차이를 발견하고 감사와 기쁨을 느낀다면 어떨까요. 그 기쁨을 함께 누리자고 하나 둘 초대해 함께 한다면 이 역시 다시 돌아볼 때 하나님의 역사라 기억할 수 있겠지요. 그러니 이렇게 강의 통해 배움 하는 것도 평소의 모임과 사소한 일상도 정성껏 살아가며 쌓이는 시간들이 역사를 만들어 가는게 아닐까 생각해요.
선생님은 여러 운동하시며 역할도 많이 맡으셨어요. 동일하게 말씀하시는건 내가 하려고 그런건 아니었다고. 제안을 받기도 했고 내가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기도 하면서 했다고요. 인생사 새옹지마라 하지요.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지만 어떤 기운에 끌려 이런 삶을 살았던 겁니다.
내가 만났던 관계들, 부모님, 할머니, 친구들은 내가 선택했나요. 그냥 구경 삼아 갔던 광화문에서 옆 사람이 총 맞아 쓰러지는걸 볼 줄 알았을까요. 같이 운동하던 동지들이 하나 둘 없어져 내가 그 역할을 하게 될 줄 알았겠나요. 그럼에도 일관된 삶을 살아갈 수 있던 거는 살아갈 바를 분명히 세웠기에 가능했던게 아닐까요. 그리고 그 뜻을 함께 할 동지들 역시 있었고요. 때로는 내 뜻이 약해질 때 더욱 강하게 세워가는 동지들 보며 다시금 일어서기도 했겠고요. 그렇게 함께 하는 힘으로 어느새 지금에 이르렀을 겁니다.
지금의 삶을 살아가는 각자도 지금이 되기까지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만남과 배움 속에 내가 머무는 장소가 바뀌고, 보내는 시간이 달라지고, 만나는 이들도,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일상을 새롭게 살아가고 있는데 다 내 계획, 생각한 대로 였나요? 어쩌다 보니, 함께 하다 보니 그 기운에 힘입어 지금이 됐네요. 내가 했다 할 수 있는 거는 계속 자리를 지켰던거? 그마저 그냥 함께 하면 좋아서 그랬어요.
한 시대를 밝힌 지혜. 이게 지혜다 하고 정리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의 역사 속에 이러한 배움, 관계들을 발견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그 지혜를 이어 받은 우리도 전하는게 우리의 역할이겠고요. 그러니 이게 역사니, 저게 지혜니 거창할 거 뭐 있을까요. 그저 우리의 일상, 우리의 만남, 이 즐겁고 풍성함 함께 누리자고 초대합니다. 오늘 만남이, 지금의 작은 순간이 지혜가 솟아나는 역사로, 좋은 날로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