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12일.
다시 찾은 제주 성산 슈퍼맨대회.
처음 성산대회를 찾은게 2008년 6월이었으니 시간은 참으로 무심히도 흘러 벌써 8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 짧지않은 시간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좋은 일이 더 많아 그저 삼종신께 감사하고 함께 한 동료들이 고마울 따름 입니다.
늘 같은 모습의 성산. 깨끗하고 조용한 자연에서 치르는 성산대회…앞으로 공항이 들어서면 이런 평화스런 분위기가 많이 훼손되겠지만 아직은 여유롭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 그대로 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 모습이 변한다할지라도 내가 기억하는 성산은 2008년 그대로 남아 있을 겁니다. 나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처럼 성산은 나에거 그런 곳이기 때문입니다.
2008년 6월 어느날, 슈퍼맨대회참가를 위해 처음 찾아온 성산. 장거리 대회는 처음인지라 몹시도 긴장된 상태로 임했던 대회였습니다. 그 시절, 딸아이와의 갈등으로 무척이나 힘든 상황이었는데 이 대회를 계기로 드라마틱한 반전이 일어나고, 그 후 8년이 흐른 오늘, 너무나 다행스럽고 감사한 오늘을 맞이하면서 그 때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주체할 수 없는 격한 감정으로 성산의 주로를 달렸던 그 날. 몸이 지치면 지칠수록 멘탈은 더 강해지고, 육체의 고통보다는 정신적 위로가 더 컸던 그 날. 내 평생 잊지 못할 그 날이...
그 말성쟁이 딸아이가 올3월 은행원이라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당당하게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취업을 축하한다는 은행장의 난화분이 저의 직장으로 배달되던 날 내가 이룬 그 어떤 성취보다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 큰 기쁨은 2008년 성산이 내게 준 선물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고, 그래서 그 선물은 시간이 갈수록 더 감사한 것이 됩니다. 몸 상태가 좋지않아 몸고생이 심했던 이번 대회였지만 그래도 그 때의 소중한 기억들이 있었기에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의 후기를 다시 보니 그 때의 감정이 다시 올라오는듯 합니다. 달리 표현할 수 없는 그 때의 감정을, 그 감사하고 감사한 마음을 늘 잊지 않고 살아야겠습니다. 그런 뜻에서 그때의 후기를 재탕해 봅니다. 그리고, 본 기회를 빌어, 대회 마치고 상태가 안좋아 염려와 함께 이것 저것 챙겨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하 2008년 성산대회후기 ----------------
머릿 속까지 찌르는 듯한 귀 통증을 머리를 부여잡고 달래다가, 또 두고 온 딸아이를 생각하며 조용히 흐르는 눈물을 닦다가 어느듯 부산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기내안내방송을 듣고 정신을 차렸다.
공항을 빠져 나와서는 곧바로 이비인후과를 들러 중이염이라는, 그래서 당분간 수영 등 무리한 운동을 삼가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발길을 마라톤 클럽의 회원이 운영하는 다대포의 내과 병원으로 돌렸다. 영양제라도 한 대 맞을 요량으로... 내과병원으로 가는 길에 혹시 대동에 자전거가 도착해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나 싶어 들렀더니 재광이 형님도 보이질 않고 자전거도 없다. 그냥 뻘쭘히 둘러보고는 곧장 다대포로 향했다. 그러면 오늘의 일정은 마무리가 되는 것이라는 홀가분한 마음을 가지고...
작년에 문기형님의 소개로 입회를 해서 그간 트라이애슬론 3번 그리고 년 초에 울산 듀애슬론을 뛴게 전부. 지난 5년간 마라톤을 놓지않고 그냥 그냥 해왔다는 게 그나마 밑천인 내게 성산슈퍼맨대회는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부담이 가는 대회다. 특히 바다수영은 너무나 겁이 나고, 그래서 수영 하나만 해도 힘이 쪽 빠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사이클은 더 더욱 미천하여 지난 2번의 밀양 라이딩 훈련에서 한 번은 70키로 지점에서 포기. 또 한 번은 100여 키로 남짓으로 그나마 훌륭히, 포기하지 않고 돌아온 게 전부이다. 특히나 약 2주 전 그 동안 타던 생활자전거를 처분하고 중고지만 새거나 다름없는 나에게는 과분한 자전거를 구입해서 셋팅도 제대로 안된듯 불안한 자전거를 가지고 두어 번 타 본 게 전부다. 불안한 마음에 대회 1주일 전 영일이형님 가게에 들러 그나마 안장높이와 핸들 높이 조정을 했지만 그 뒤로 연습다운 연습을 하지 못했으니 전체적으로 준비를 잘 했다고 보기에는 많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미 화살은 활시위를 떠나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고, 이제 나는 그 시간들을 되돌려 그 시간 속의 나를 본다. 대회 전 설레고 긴장된 마음과는 달리 편안하고 그리고 애틋한 마음으로...
예경이, 고 1, 우리 딸이다. 밑으로는 중 1 아들놈이 있다. 이 딸아이가 작년 중3때 뭐가 그리 힘들었는지 부산에서 학교 가기 싫다하여 자기 이모가 있고, 또 1살 적은 이종동생이 있어 굳이 제주도로 전학을 가겠다며 지 엄마와 아빠의 속을 새카맣게 만들더니 기어이 자기 뜻대로 하고 만 녀석이다. 우리는 졸지에 이산가족이 되고 만 것이다.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 했건만 우린 그런 경우가 못되었다. 자기 고집대로만 하고 부모 말은 뒷전인 딸아이가 미워 나도 맘이 편치 않았고, 그러다 보니 특히 나와는 알게 모르게 냉기류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딸이 이종동생과 성산대회 응원을 왔다. 새벽 잠이 많아 매일 힘들게 일어나는 놈들이 혹시 대회시작시간을 놓칠까 염려하여 밤을 그냥 지새우고 신제주에서 성산까지 대회장을 찾아왔다. 그렇게 밉던 녀석이 너무 고맙고 사랑스럽다. 기분이 좋아 클럽형님들과 동료들 보이는 대로 인사를 시켰다, 우리 딸이라고...
조그만 확성기를 통한 수영출발신호가 카운트다운과 함께 울리고 모두가 전방부표를 향해 돌진할 때 나는 힐끔 딸아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다짐의 말을 건넸다. "내 딸, 경이야, 아빠가 오늘 기꺼이 견뎌내는 모습을 꼭 지켜봐라. 그리고 그 모습을 통해 네가 앞으로 견뎌내야 될 많은 시련들을 무서워하거나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헤쳐나가기를 이 아빠의 작은 몸짓과, 그리고 네가 느끼기만 바랄 뿐 드러내 보여줄 수 없는 온 마음으로 빈다."
수영 첫 바퀴째, 호흡을 하면서 옆을 보니 치호형님이 보인다. 페이스를 가늠해보니 나랑 크게 차이가 나 보이지는 않는다. 잽싸게 옆으로 붙어서 페이스를 맞추고 그리고는 속으로 말했다. "오늘 치호형님이 내 수영멘토구나...요즘 클럽에서 멘토제를 한다드니만 잘 됐네. 형님이 알든 모르는 오늘 내 수영은 형님이 책임을 지도록 해줄테니 잘 한 번 끌어보이소 ㅎㅎ."
복권에 당첨된 기분이라고 할까. 암튼 마음이 편하다. 이제부터는 전방도 가끔씩만 확인하고 스트로크는 치호형님 따라하면 되니까... 1바퀴를 마무리하고 2바퀴를 시작할 시점에서 갑자기 딸아이가 보고 싶어졌다.
손동작만으로 제 자리에 떠서 응원하는 무리 속에서 딸아이를 찾아 시선을 여기 저기 정신 없이 돌렸다. 눈에 들어오지 않아 딸아이의 이름을 몇 차례 크게 불렀다. "경이야, 경이야...." 어딘가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듯하였으나 파악은 어려웠고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두 번째 바퀴를 시작했다. 그 사이 놓친 치호형님을 첫 번째 부표지점 조금 못 가 다시 따라 붙을 수 있었고, 2바퀴를 마무리할 즈음, 어디서 나타났는지 이상근씨가 스파트하며 앞서간다. 그렇다면 나도... 역주하며 따라붙어 수영3키로를 기분 좋게 마무리 하였다. 생각보다는 컨디션이 좋다는 것을 느끼며... 물 밖으로 허우적거리며 나오는 아빠를 사랑하는 딸이 반갑게 맞아준다. 그리고, 바꿈터까지 가는 동안 '아빠 대단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난 여태 그렇게 자기를 칭찬해 준 적이 없었건만...
싸이클은 또 다른 난적이다. 똥꼬는 얼마나 아플 것이며, 유바는 제대로 잡을 수나 있을런지, 그리고 보급을 줄 때 한 손으로 낚아챌 수 있을지, 땀이나 콧물이 정신 없이 흘러내릴 때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이 모든 것들을 해결할 수 있을지...
딸아이가 응원을 한다. "아빠, 정말 멋있어. 힘 내!"
이 한 마디에 나는 더 이상 무서운 게 없어진다. 그래, 가자. 내 사랑하는 딸이 저리 응원을 하는데 두려울 게 뭐 있겠는가. 온 몸으로 나가자. 내 딸아, 네가 아빠를 통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면, 그래서, 나중에 이 아빠보다 나은 사람이 된다면, 이 아빠가 뭘 겁을 내고 두려워하겠니... 가자 가자 앞으로... 한 발 한 발 페달에 힘을 주며 나의 두 번째 난적과의 싸움은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알게 모르게 5~7명의 드래프팅 그룹이 생겼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자전거에 부착된 센스가 잘못되었는지 회전수가 계기판에 나타나지 않는다. 심박 수는 140정도에서 왔다 갔다 한다. 이대로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김영선철인선배가 회전수를 100 이상 높이지 마라 했는데.... 요리조리 머리를 굴려봐도 정리가 안된다. 오직 하나, 이 드래프팅조를 놓치면 끝장이다.
후미에만 붙어서 덕 보는게 미안해 중간중간 앞으로 치고 나가서는 약간의 거리를 끌어보기도 했지만 나에게는 아직 무리인 것 같다. 미안하지만 염치 불구하고 다시 후미에 붙어 지옥까지라도 같이 갈 각오로 대오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몇 차례 진행감독관들이 호각을 불며 떨어지라고 할 때는 잠 간 벌렸다가 또 다시 찰거머리처럼 붙었다. '지는예 때리죽이도 못떨어집니데이..... 떨어지면 저는 진짜로 죽는기라예...^^
- 2편에서 계속
첫댓글 부라보~~~^.^
그때 형님은 딸을위해서 뛰셨군요 ^^ 예경이가 형님을 많이 닮았나 봅니다
와우~~이건 머~~ 흥미 진진합니다..ㅎ
참 뜻깊은 대회이네요. 수고하셨고 좋은추억 가슴에 고이 간직하시길 빌겠습니다.
소설을 읽고 있는 듯 상상하며 글을 읽어 내려 가고 있습니다. 흥미진진합니다. 2편으로 넘어갈게요~
자식 가진 부모에 아픔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같은 마음이 느껴 집니다. 앞으로 뻗어나갈 예경이와 형님을 응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