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무용총
손님을 맞는 모습을 그린 접객도, 표범 무늬 옷을 입은 5명의 남녀가 춤추는 모습을 그린 무용도, 사냥하는 모습을 그린 수렵도 등으로 유명한 무덤이다.
오른쪽 벽은 수렵도가 대부분의 면적을 차지하고, 왼쪽 벽에는 주인을 표현한 인물의 기마도와 주방 등의 가옥 2동 외에 5명의 남녀 군무상.9명의 합창대상이 그려져 있다. 이 장면의 특이함에서 무용총이라고 명명되었는데, 천장에는 연화문 등의 장식문, 사신도 일월상도를 포함한 그림이 있다.
고구려(5세기) 소 재 지 : 중국 길림성 집안현
서쪽 벽에 그려진 것으로 말을 탄 무사들이 호랑이 사슴 토끼 등을 사냥하는 모습을 평면적으로 그렸다. 산보다 큰 동물 나무줄기를 사자 꼬리같이 표현한 화면을 압도하는 나무 등 어린이 그림을 보는듯 하다.
쫓고 쫓기는 사냥의 모습이 실감나게 그려졌다. 고구려 고분 벽화는 전체적으로 채색과 운동감이 뛰어난 그림들을 보여주고 있다.
광개토대왕릉비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은 아버지의 공적을 기려 높이 6,3m의 비석을 세웠는데 이 비문에는 고구려 건국에서부터 광개토대왕까지의 역사를 간략히 기록하고 난 뒤 "천하 사방이 고구려를 최고의 성스러운 곳으로 알것"이라는 자부심에 충만하여 광개토대왕의업적을 칭찬하고있다.
장군총
중국 지린성 지안현에 있는 고구려시대의 석릉
소장/소재지 중국 지린성 지안현
시대 고구려시대
종류 석릉
화강암 표면을 정성들여 가공한 적석을 7단의 스텝피라미드형으로 쌓았는데,기단의 한 변 길이 33m,높이 약 13m이다.
기단의 둘레에는 너비 4m로 돌석을 깔았으며, 그 바깥둘레에 너비 30m의 역석을 깔아 능역을 표시하였다 널방은 화강암의 절석을 쌓아 지었는데,천장석이 있는 굴식 이며, 2개의 널받침이 있다. 기와를 통해서는 4세기 중엽 이후 5세기 전반으로 추정되므로 이 장군총의 연대는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전반일 것으로 보고있다.
[백제]
익산 미륵사지 석탑
익산 미륵사지는 미륵신앙이 만들어낸 우리나라 가장 큰 절터이며 백재 역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대찰이었습니다. 현재 있는 곳은 전라북도 익산시(이리시)에서 전분 금마 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미륵사의 창건에 관해서는 [삼국유사 제 2권 기이 제 2 무왕편] 에 나오는데 어느날 무왕과 그의 아내인 선화공주가 사자사로 가던 중 용화산 밑 큰 못 가에 이르렀을때 미륵삼존이 못에서 난타나 무왕과 선화공주는 예를 갖추어 절을 했다 합니다. 그리고 선화공주는 이곳에 큰절을 이룩하면 좋겠다고 간청하였더니 이에 무왕은 사자사지명법사의 힘을 빌어 하룻밤만에 못을 메우고 그 위에 절을 세웠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미륵사지라 합니다.
금동 대향로
백제금동대향로는 국보 287호이며 백제 금동대향로 높이 61.8cm,몸통 최대 지름 19cm,무게11.85kg으로 규모면에서 다른 박산향로와 비교할 수 없는 대작이다. 향로는 뚜껑과 몸체, 다리로 각각 따로 구리합금으로 주조되어 하나로 만들어 금으로 도금되었다. 뚜껑은 정상부에서 봉황이 턱밑에 여의주를 끼고 있고, 그 아래로 다섯 악사와 봉황,인면조신상,인명수신상 등 상상의 동물과 현실세계의 실재하는 호랑이 코끼리 멧돼지 사슴등 모두 42마리의 짐승과 5인의 악사를 비롯한 17명의 인물이 74곳의 봉우리와
그이 밖에도 6종류의 식물, 20군데의 바위, 산 중턱을 가르며 난 산길, 산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압체절으로 돌출되어 낙하하는 폭포등이 보이고 있다.
정림사지5??석탑/국보제9호/백제7ㅅ세기후반/높이 8.33m/충남 부여군 부여읍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으며,국보 9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탑은 익산 미륵사지석탑과 함께 백제시대에 세워진 탑으로, 백제의 석탑과 목조건축을 따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어 우리나라 석타브이 발전과정을 찾아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탑이다. 이 석탑의 초층탑신 4면에 당나라 장군 소정방이 백제를 무너트린 후에 새겨놓은 기공문을 보고 ,'??제탑'이라고 부르면서 백제가 멸망하던 시기에 건립되었을 것이라고 여겨지다가, 식민지시기에 이 절터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기와에서'정리;ㅁ사'라는 명이 양각되어 있는 것을 보고 이 절의 이름이 '정림사'이며 탑과 기공문이 아무런 상관도 없이 탑은 소정방이 기공문을 써 넣기 전에 건립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탑은 목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는데 미륵사지탑보다 더욱 정돈되고 세련된 수법으로 창의성을 보이고있다.
[신라]
첨성대
경북 경주시 인왕동. 국보 제 31호. 신라시대.동양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문대. 관측기구를 정상에 설치하고 춘분 추분동지 하지등의 24절기를 별을 통하여 측정하였고, 정자석을 동서남북의 방윌ㄹ 가리키는 기준으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금관총
1973년에 발굴되었는데 장신구류 8,766점, 무기류1,234점, 마구류504점, 그릇류 22점,기타 796점으로 모두 1만 1500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중 일부가 국립 경주 박물관 별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금관과 천마도장니이다. 금관은 지금까지 발견된 신라시대 금관 가운데 금판이 가장 두꺼우며 금의 성분도 우수하다. 또한 천마도장니는 천마총 출토품 가운데 세상을 가장 놀라게 한 유품이다. 장니란, 말 양쪽 배에 가리는 가리개로 흙이나 먼지를 막는 외에 장식물로도 상ㅇ되었다. 자작나무 껍데기를 여러겹으로 겹쳐서 누빈위에 하늘을 나는 천마를 능숙한 솜씨소 그렸는데, 지금까지 회화 자료가 전혀발견되지 않았던 고신라의 유일한 미술품이라 는 데 큰 뜻이 있다. 이 고분의 명칭을 천마총이라고 한 것도 여기서 연유한 것이며,지금은 이러한것들을 볼수있도록 무덤 내부를 복원하여 공개하고있다.
안압지
현재의 안압지는 극히 일부만 복원된 것이다. 신라시대에는 안압지가 아니었다.'기러기와 오리가 노니는 연못이라는 뜻의 이 이름은 신라가 망하고 폐허로 변한 후, 조선시대 묵객들이 갈대와 부평초가 무성하고 기러기와 오리만 날아다닌다 해서 붙인 이름이다. 기록에 의하면 이곳에 태자가 거처하던 '동궁'이있엇고 그 동궁을 '월지궁'으로 불렀다고한다.
손뿌러진다 ㅡㅡ
제공 ㅋㅋ 네이버임 ㅡㅡ.ㅋㅋ;;아힘듬..하나하나쳐서한건데 ㅡㅡ..아배아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