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5. 12. 16. 02:00
■ 분옥정(噴玉亭)
이 정자(亭子)는 조선 숙종 때, 성균 생원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추증된 돈옹공(遯翁公) 김계영(金啓榮)의 덕업을 기리기 위하여 순조 20년(1820년) 3월에 경주김씨 ‘치동문중’(致洞門中)에서 건립 하였다.
용계정사(龍溪精舍)라고도 불리는 분옥정(噴玉亭)은 주변 풍경을 고려하여 출입을 건물 뒤편으로 하고 앞면은 계류(溪流)를 향하도록 배치하고 있다.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丁(정) 자형 평면 목조 기와집으로 이 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를 지니고 있다.
☀이곳 포항시 기계면 봉계리 치동마을 입향조 일암(逸庵) 김언헌(金彦憲)이 청도에서 이곳으로 들어와 울창한 산림을 손수 벌채하고 터전을 잡으니 벌치동(伐致洞)이 된다. 그러나 벌 자의 어감이 거칠게 느껴져 벌 자를 떼어내고 치동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때가 1636년(인조 14년) 공의 나이 27세 되던 해 늦가을이었다. 윗대는 충청도에 살았다.
도감 김종한(1761년)에 의해서 가경 21년 병자 3월(1816년)에 착공하여 가경 25년 경진 3월(1820년)에 준공되었다.
▼아래 사진들은 인터넷에서 수집한 자료들입니다.
▲소재지 :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기계면 봉계리 739번지(봉계실 146)
▲분옥정 편액
▲경북 포항시 북구 기계면 봉계길 146(739본자)
▲분옥정의 누각(樓閣) 마루.
▲噴玉亭韻(분옥정운) - 月城 李英雨(월성 이영우)
-----------------------------------------------------------------------------------------------------------------------------------------------------
경신년(庚申年, 1920)년 4월 6일 월성(月城) 이영우(李英雨)가 수급자 미상의 친척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스승, 친구, 동문 등과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한다. 형식은 대체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족 동향 여쭈기, 자신과 가족의 안부 전하기, 현안 설명 및 부탁 사항, 마무리로 구성된다.
인편을 통해 보내준 서찰에 대해 즉시 답장을 올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다. 여러 가족의 근황이 궁금하다고 하며 평소 여러 가족의 일상생활 형편에 대해 염려하였다. 자신과 가족의 안부를 전하고 마무리했다.
▲간찰원문(簡札原文) / 문서 크기 : 54.4㎝(가로) × 19.7㎝(세로) / <필자 소장본>
경신년(1920) 4월 6일 이영우(李英雨)가 수급자미상에게 문안과 가족의 생활 형편을 염려하며 보낸 간찰(簡札)이다.
●탈초(脫草)
向者郵便修候。當不至洪喬浮沈耶。伏惟葽夏。本庭萱闈。筋力萬寧。阮府丈壽韻岡陵。退而棣樂湛重。僉允從穩侍否。伏溸區區。不任遠忱。重表侄省候。以冷祟數朔委褥。已極煎悶。而大姑主泄痢爲添。沈綿望餘。刀圭難效。神關盪敗。八耋湯候。不啻悶懼。不敢不告于姑主。所以討郵仰陳矣。似爲中滯未達。故玆因鄙族丈便。更告耳。餘不備。伏惟。
庚申四月初六日。重表侄李英雨再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