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잔혹사
시댁제사 열세번에 증조모가 두 분이라
첫번째 정씨 할매 배태도 못해 보고
쓸쓸한 무덤 앞에 유인 정씨 상석하나
꽃다웁던 18세에 안타깝게 가셨는데
파평윤씨 고조모님 엄혹하고 모질어서
없는 살림 아닌데도 배 주리게 하셨다네
고조부님 한양길 가신다고 준비해 둔
오곡찰밥 장독대에 올려서 식혀 둔 것
한창나이 두 동서분 너무나 배가 고파
바가지 밑구멍을 뚫어 밥을 내먹고는
시어머니께 죽도록 혼이 나셨다는
거짓말 같은 옛 얘기 전해 들었나니
요 미구 같은 년들 무덤파서 간 내먹을
구미호 같은 년들 질탕한 욕을 먹었네
당시 여자들은 부엌에서 밥을 먹었는데
젓가락 쓰지 못하고 숟가락 총으로
반찬을 끌어와서 먹었다는 전설이 있지
그래서 옛날 갓날 할머니 세대들은
젓가락 사용이 서투셨던 모양이다
젓가락 쓰면 시아버지 눈 홀겨 보셨다네
아직도 이 증조모님 제사를 모시는데
시조부를 낳지는 않으신 전처 할매
이팔청춘 한창나이 장질부사 앓으시니
약 한첩 못 써보고 토하고 설사하다
거의 다 나았을 때 배가 너무 고파서
보리쌀 곱삶은 것을 허겁지겁 맨손으로
드시고 가셨으니 그 여한이야 어땠을지
새로 오신 안동손씨 증조모님이 낳으신
후손들이 지금의 시남매와 내 아이들
인심은 곳간에서 난다고도 하지만
여자가 여자를 학대하던 나쁜 물림
우리 시누이들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전주이씨 세종대왕 후손이라 국족이니
종부에게 제사참여 권한조차 없다하고
제사 준비 한다고 며칠이나 고심하던
외며느리 나에게도 서운하게 하셨는데
명절에 친정가라 허락하신 적이 없고
며느리를 대하는 야박함과 매정함이
혹여라도 아랫대로 이어질까 두렵나니
가난하고 무지하던 시대에도 인정 많던
양반집의 이야기들 흔히 전해 오나니
그 며느리 늙어서 시어미가 되건마는
그 내림을 끊지 못해 아직까지 거론되네
내방가사 동류님들 거의가 안동 출신
퇴계선생 중심으로 제자가문 후손인데
남녀구별 존비가 극심하던 시절에도
학교교육 못 받아도 가승으로 이어내린
여훈이나 내방가사 한글교육 받았으니
어디가도 꿇리지 않는 자부심과 결기있어
여자로서 지켜야 할 기본 지켜 나가면서
당당하게 내 주장도 할만하면 하면서도
봉제사 접빈객에 자녀교육 여축없네
모든 일은 여성들이 편안해야 이룬다네
그나마도 조상음덕 그늘이 깊었으니
자랄때에 보고 들은 것으로 참아내고
예의범절 솜씨입성 어느것도 빠짐없이
여든나이 지금까지 당당하신 모습이니
가가례례 가문예절 골골마다 다르다는
옛날 말 그르잖다는 조상님의 지혜 말씀
다시새겨 보면서 다시는 여성 억압
반복되지 않는 행복한 여성시대
꿈꾸며 원하는 것 모두모두 이루기를
두 손 모아 간곡하게 앙망앙망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