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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의 기초 1
1. [서예]란 어떠한 예술인가
고려 때 [서예(書藝)]란 관직이 있었다. [서예]가 여기서 비롯된 것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글씨를 쓰려는 우리 조상의 얼이 예로부터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예는 중국 문화권에 있는 유일하고 특수한 문화라고들 말한다. 비록 우리들의 서예와는 다르지만 서구 문화권 등에도 글씨를 남기기 위한 노력은 있었다. 중국 문화권에서 [서예]가 최근까지 이어져 왔던 것은 1900년대 초까지 필기 도구가 그렇게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솔직한 말일 것이다. 현대에 살고있는 우리들은 이미 필기 도구 없이도 글씨를 쓸 수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서예]가 필요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서예는 언어 전달을 위한 편리함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문자라는 언어 부호에 조형의 언어가 담겨있기 때문에 이 조형의 언어를 통하여 쓰는 이의 느낌을 보여주고 함께 나누자는 것이다. 서예는 하나의 추상예술이다. 예술이란 미를 함축하고 있어야 한다고 흔히 여기는데 서예에서는 '美'라는 말을 똑 떨어지게 정의하기가 지극히 어렵다. 회화, 조각, 건축 같은 대부분의 예술은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미추를 나름대로 느낄 수 있는 데 견주어 서예는 그 미적 개념을 아는 사람이나 또는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의 마음과 눈에만 보인다. 서예의 지고한 미를 보는 길을 찾으려면 우선 서예의 본질을 알아야 할 것이다.
2. [서]의 뜻
서(書)자는 본디 붓이나 송곳 따위의 연장으로 금석(金石), 죽백(竹帛), 종이 같은 것에 무엇인가를 바르거나 쓰거나 또는 새기는 것을 뜻하는 동사였다. 이것이 차차 연용되면서 글씨 쓰는 일, 글씨 그 자체, 책 따위를 모두 '書'라고 하게 되었다. 전서(篆書)의 서를 뜯어보면 손으로 붙이나 송곳들을 잡고 있는 것이고 어떤 물체에 먹이나 채색을 묻히는 일로 해석된다. 이것이 예서와 해서에서는 더욱 명확히 풀이되는데 곧 다섯 손가락으로 말하는 것으로서 말하자면 '글씨는 다섯 손가락을 통하여 붓으로써 심중을 토로하는 것'이란 해석이다.
3. 문자와 서예와의 관계
서예는 문자를 씀으로써 창출되는 예술이다. 중국 문자는 그림으로부터 출발하였다. 그 원시적인 그림문자가 차차 변화를 거듭하며 실용화, 장식화, 예술화되었고 그 과정에서 서예는'문자(文字)를 미화한 예술'로 인식되면서 끊임없이 발전해 왔다. 한글이나 중국문자나 모두 우주 자연의 이치에서 출발하였으면, 특히 한자는 표의문자이기 때문에 글자마다 의상(意象)이나 미적인 요소를 생성할 때부터 함축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실용성을 벗어나지 못하다가 서성이라 일컫는 왕희지가 예술의 기운을 불어넝게 되면서 지고한 예술성을 지닌 일문(一門)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서예를 중국에서는 서법(書法), 일본에서는 서도(書道)라 한다. 이 세 단어의 의미를 새겨 보면 먼저 글씨가 변화해 온 여러 가지 법을 폭넓게 익히고 도를 닦는 마음으로 글씨에 임하며 나아가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서예는 문자를 떠나서는 성립할 수 없다. 흔히 사군자나 일본의 전위(前衛) 서도 따위를 서예의 범주에 넣는데, 그것은 잘못이다.
4. [서예]는 그 사람의 표현
'서여기인(書如其人)'은 곧 '글씨는 그 사람' 이라는 표현이 있다. 여기서 기인(其人)의 의미는 그 사람의 외모가 아니라 그 사람의 인품, 교양, 학덕 등을 뭉뚱그린 의미이다. 사람마다 독특한 자기 필체가 있다. 이것은 심성이나 생각이나 생체 리듬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서양에서는 사인(Sign)이 그 사람을 대표하는 징표로 쓰였을 정도이다. 사실 한 날 한 시에 한 스승한테서 서예를 배워도 며칠 안 가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운필하며, 색다른 모습을 표현한다. 글씨는 마무리 잘 써도 소용이 없다. 그 사람의됨됨이가 되어 있지 못하면 주옥같은 글씨를 써도 아무 쓸모가 없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안중근 의사, 김구 선생, 그 밖의 학자, 성직자같이 존경받은 이의 글씨는 잘 쓰고 못 쓰고를 막론하고 선호하며, 매국노나 간신 모리배의 글씨는 거들떠보지 않고 소장하지도 않으려 한다. 그러므로 글씨를 쓸 때는 한갓 흥미나 아름다움의 창조에만 급급하지 말고, 글씨를 통해 마음을 다듬고 정서를 함양하며 나아가 더 나은 인격을 형성하는 일에 더 큰 뜻을 두어야 할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서예는 그 사람의 표현이다. 글씨만 보아도 그 사람의 성격이나 개성이나 심경 따위를 미루어 알 수 있다. 글씨를 함부로 쓰거나 잘못 배워서 글씨가 허물어지면 자기 자신도 허물어져 가는 것이요 정중하고 올바르게 글씨를 연마하면 글씨가 더불어 몸과 마음이 윤택해지고 훌륭한 작품도 남길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5.[서예]의 특유성
앞에서도 말했듯이 서예의 미는 한마디로 단정지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예술 규율의 공통성을 갖추고 있다. 문자와 글씨 쓰는 법이 서예를 제약하는 것이 아니라, 문자의 의미상에서 우러나오는 상상, 집중, 포괄, 변위(辨爲)같은 추상적인 개념이 겉으로 나타나는 것이어서 서예를 끊임없이 닦다 보면 문득 필설로 전할 수 없는 오묘한 비경을 느끼게 된다. 글씨에 점이나 획, 글자의 짜임, 장법(章法)등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자신도 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그러한 법의 한계를 떨쳐 버릴 수 있음이 서예의 진정한 맛이다. 운필(運筆)할 때의 심경과 생리가 우주의 기운에 부합될 적에 자연스럽게 흘러간 획, 짜임, 운등이 격조있는 품(品)을 이루는데, 이것은 자신도 다시 흉내낼 수 없으며 서예의 자랑스러운 점이기도 하다. 서예의 특유성을 몇 가지만 들어 보면 문자를 가지고 하는 예술, 문자의 모양과 뜻에서 생겨난 추상 개념을 표현하는 것, 한번 지나간 획은 다시 덧칠하지 않는 일회성, 생체 리듬이나 음악의 리듬과 같은 율동성 그리고 한 작품을 할 때 쉬었다가 다시 하지 못하는 순간성 등을 들 수 있다.
6. 學書前에 알아둘 점
書法(서법)은 선생에 의해서 배울 수도 있으나 그 精神(정신)과 興味(흥미)는 자기 스스로가 가져야 한다. 書를 法에 맞게 잘 쓰겠다는 참다운 精神이 없고 또한 흥미를 갖지 않으면 오랫동안 참고 견디지 못할 것이므로 글씨가 아무리 신묘함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참다운 글씨가 될 수 없는 것이다. 한점 한 획이라도 필법을 쓰지 않는 곳은 없으니 筆端(필단:붓 끝)에 全身精力(전신정력)을 모아 쓰는 것은 비유하면 춤 잘 추는 무당이 장대 끝에 神을 모으고, 창 잘 쓰는 武士의 힘이 창 끝에 이름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一點一劃(일점일획) 이라도 法에 어긋남이 있으면 完全(완전)한 書를 이룰 수 없으므로 그 根源(근원)과 變化(변화)를 硏究하여야 書의 眞理(진리)를 알 수 있을 것이다. 柳公權(유공권)이 말하기를「用筆在心하니 心正則筆正(용필재심하니 심정즉필정)이라」하였으니 書는 곧 心畵(심화)요 心鏡(심경)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사람을 선발하는데 身言書判(신언서판)을 取(취)한 것은 書로써 그의 사람됨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程明道(정명도)가 말하기를 [내가 글자 모양을 좋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바로잡기 위하여 글씨를 쓸 때 조심한다] 하였으니 글씨를 쓰고자 하는 사람은 마음을 安定(안정)하고 바른 정신을 가져야 좋은 글씨가 될 것이며, 이것이 習慣(습관)이 되면 자연히 올바른 사람이 된다하여 孔子(공자)는 六藝(육예:禮樂射御書數[예악사어서수])의 하나로 중요시하였다. 그러므로 書를 배움에 正法(정법)을 따라 배우는 것을 귀중하게 생각해야 하며,그 法을 모르고 글자의 모양만 닮으려고 만 한다면 헛된 먹 장난에 불과할 것이다. 正法을 통하여 한 서체를 본 받을 때에는 반드시 精一(정일)을 기하여 붓을 아무리 던져도 똑같지 않음이 없는 후에야 비로소 스스로 一家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7. 書法
書藝(서예)의 書法(서법)은 한 시대 한 개인의 특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전설 속의 蒼署(창힐)이 새의 발자국 모양을 보고 漢文字(한문자)를 만든 이후 書藝는 약 五千年 동안 東洋人의 生活과 文字의 변화와 함께 자연적으로 숭고한 정신성과 審美性(심미성)을 가진 동양의 學藝(학예)로서 그 시대, 시운을 말해주면서 발전을 계속하여 현재에까지 이른 것이다. 黃庭堅(황정견)은 [가장 꺼리는 것은 꾸미려(裝綴:장철)함이니 곧 글씨를 이루지 못한다]하였고, 또한 [古帖(고첩)을 臨(임)하지 아니하면 古人(고인)의 一定(일정)한 法을 알지 못할 것이고 ,古帖(고첩)을 널리 臨(임)하지 않는다면 古人(고인)의 一定(일정)한 法이 없음을 알지 못할 것이다]고 하였는데, 이 말의 뜻은 각각의 고첩을 임할 때에는 일정한 법이 있음을 알 때까지 노력해야 하고, 이것을 토대로 공부하면 자연히 일정한 법이 없음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8. 執筆과 姿勢
* 單鉤法(단구법): 拇指(모지, 즉 엄지)와 食指(식지, 즉 집게)만으로 잡는方法
* 雙鉤法(쌍구법): 指,食指,中指의 세 손가락으로 잡는다. - 이 두 方法은 손가락의 힘이 붓을 잡은 해당 손가락에 集中되기 때문에 細字를 쓸 때 適用된다.
* 발등법: 五指齊力法(오지제력법)즉 다섯 손가락의 특징을 활용해서 집필하는 방법 - 이는 필관 의 중앙 한쪽 면에 엄지손가락 끝을 대고 반대면에 中指를 식지와 평행한 위치에 대며 중지 위에 식지를 대고 다시 반대면 식지아래 나란히 無名指(무명지,第四指),小指(소지,第五指)의 끝 부분을 댄다.
* 虛掌實指(허장실지):撥 法(발등법)으로 필관을 잡았을 때 손바닥 안에 계란 하나가 다소곳이 들어갈 만한 상태의 집필을 가리키는 것인데 즉 손바닥 안은 虛(허)하고 손가락의 힘은 충실하다는 의미이다.
* 枕腕法(침완법): 왼쪽 손을 붓을 잡은 오른쪽 손목에 받치고 쓴다. (작은 자를 쓸 때)
* 提腕法(제완법): 오른쪽 팔뚝을 책상에 대고 팔목 부분을 들어 올리고 쓴다.(작은 자와 중간 정도 크기 의 글씨를 쓸 때)
* 懸腕法(현완법): 현완법은 글씨를 쓸 때 팔을 책상에 대지 않고 들어 올리고 쓰는 방법을 말한다. 그 래야만 자유로운 운완으로 전신의 기력은 충분히 발휘되고, 팔, 팔뚝, 팔목, 손가락 이 모두 움직여져서 온 힘이 붓끝(筆鋒)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 腕平掌竪(완평장수) : 집필이 제대로 된 다음에는 팔목을 平正(평정)하게 하고 손바닥은 세워야 하는 것 을 말하는데 [腕平]이란 집필했을 때 팔목 뼈가 지면을 향하고 팔은 지면과 평행을 이루는 것을 말하며 掌竪(장수)란 손바닥을 옆으로 세워 마치 맷돌질할 때의 상태와 같은 것 을 말한다.
9. 집필전반(執筆全般)에 관해 유의해야 할 사항
바른 글씨를 쓰기 위해서는 자세가 정확해야 한다. 바른 자세란 몸가짐이 자연스러운 상태에 있고 정신이 긴장하거나 흥분하는 일 없이 평안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의자에 앉아서 쓸 경우의 바른 자세는 다음과 같다. 우선 마음을 편안하게 가라앉히고 정신을 집중한 다음 책상에서 10cm쯤 떨어져 가슴을 펴고 앉는다. 손을 반드시 얼굴 중심 30cm 전방에 머물게 하고 팔은 둥글기가 마치 맷돌질하는 형태로 수제골(手蹄骨) 이 탁자를 향하게 하면 필관은 곧게 서도록 된다. 대지(大指)와 식지(食指)가 형성하는 호구(虎口)의 용안(龍眼)은 탁자와 수평을 이루어야 하며 왼손은 힘을 주어 탁자를 짚어 좌실(左實), 우허(右虛)가 되도록 한다. 그래야만 오른손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현완이 되게 한다. 여기서 현완이라 함은 팔 을 든다는 뜻으로 팔이 책상과 평행이 되도록 든다. 지면과 눈과의 거리는 30cm 정도를 견지하되 의연한 자세로 정좌하는 것이 원칙이나 상반신이 약간 앞으로 숙여지게 된다.
손가락은 일단 붓을 잡은 다음에는 고쳐 잡는 것이 아니며 손가락으로 붓대를 돌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또한 운필은 팔이 행하는 것이므로, 손목은 팔을 통해서 오는 上腹部(상복부)의 움직임에 따라서 동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등은 곧게 유지하여야 하며, 곧 등이 바르면 스스로 허리가 안정된다. 머리는 다소 앞으로 자연스럽게 숙이고, 종이는 자기 몸의 정면에 놓는 것이 이상적이다.
서예의 기초 2
1. 筆 法
지면에 점획을 揮毫(휘호)할 때 올바른 집필법과 자세에 의하여 붓의 성능을 잘 살려서 어떻게 하면 점획에 자세와 性情(성정)이 잘 표현되어 생동미 있는 書를 揮毫(휘호)할 수 있는가 하는 즉 筆의 使用法(사용법)을 말하는 것이다.
用筆(용필)의 시간적 연속에 있어서 筆運(필운)의 요령 즉 抑揚(억양),緩急(완급) 遲速(지속),筆壓(필압)等의 變化(변화)에 의하여 書에 筆의 氣勢(기세)를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운필이란 간단히 말해서 점을 찍고 획을 긋는 방법이라 할 수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1획을 쓸때 처음에 붓을 대어서 끝으로 붓을 거둘 때까지의 붓의 활용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붓의 운용 방법이다. 그리고 운필은 단순한 기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손을 함께 쓰는 수양이라 할 수 있다. 즉 마음을 바르게 함과 동시에 손의 움직임을 같이 해야하는 수양이다. [心手竝用. 心正卽筆正]
1) 頓(돈) 提(제)
붓은 상대적인 활동(예: 가고 멈춤, 느리고 빠름, 가볍고 무거움 등)에 의해서 움직여진다. 그리고 글씨를 쓰는 것은 이러한 모순 대립되는 움직임, 특히 頓(按)과 提의 반복 교대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 提 : 획을 쓸 때 붓끝을 당겨서 끌듯이 하는 것이다. 提는 붓을 점점 가늘어지게 하거나, 起筆 收筆 부분에서 붓을 누르고 난 뒤 붓을 움직일 때 행해진다. 구체적으로는 波 (파책)을 모을 때, 掠(약) 策(책)의 收筆 과정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 頓(按) : 提와 정반대로 붓끝을 누르거나 머무르는 것이다. 頓은 기필 수필의 꺾는 부분이나 방향전환시,그리고 점점 굵어지게 쓸 때 행해진다. 구체적으로 파책부분과 策 啄(탁)의 시작부분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하나의 획에는 굵고 가늠(粗細)의 변화가 있기 때문에 頓 提는 항상 한 획속에서 반복적으로 행해진다. 한 획이나 획 사이에 頓 提가 명확하면 할수록 粗細(추세)가 분명해지며, 粗細의 변화가 뚜렷하면 리듬감을 주어 肥瘦(살찌고 마름) 輕重(가볍고 무거움)의 변화도 나타나게 된다.
2) 轉(전) 折(절) 方(방) 圓(원)
* 轉 : 붓을 종이에 대고 둥글게 굴려 돌려서 모나지 않은 필획(筆劃)을 만드는 것이다. 행필과정에서 너무 오래 머물지 않도록 하고 속도를 고르게 해야 한다. 전서(篆書)나 초서(草書)에서 많이 쓰인다.
* 折 : 꺾는다는 뜻으로 모난 필획을 만드는 것이다. 주로 기필이나 수필할 때 방향을 바꾸는 데 쓰이며 획의 방향전환 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折의 방법은 우선 頓(누름)으로 붓끝을 눌러 굵게 하면서 잠시 멈추는 듯하여 행필의 방향을 바꾸어 꺾은 후에 붓을 점점 들어서 가늘어지게 提한다. 따라서 꺾이는 획은 折 전에는 頓, 후에는 提가 있어야 한다.
* 方 : 필획 중에서 획의 모양이 모난 것을 이른다. 그 모양이 方整(방정)하고 頓할 때 骨力이 밖으로 향하여 나타나기 때문에 '외척(外拓)'이라고 한다. 기필 수필할 때 붓끝을 꺾어서 움직이면 '방필(方筆)'이 된다. 한예(漢隸)와 북위(北魏)의 해 서(楷書)에서 많이 보이는 필획이다.
* 圓 : 붓을 댄 곳과 뗀 곳이 둥근 형태를 이루게 하는 것으로서 그 필획의 둥글고 힘이 센 듯한 느낌을 풍긴다. 획의 모양은 속으로 살찐 듯하여 강한 骨力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아 '내함(內含)'이라고 표현한다.
3) 中鋒(중봉), 측봉(側鋒), 은봉(隱鋒), 노봉(露鋒)
* 中鋒(정봉正鋒이라고도 함)은 한개 획을 쓸 때 필봉을 서선의 중간으로 행필한다는 뜻으로 설명하는데 붓의 털 부분을 전부 가지런히 하여 필봉의 위치를 항상 서선의 중간에 가게 하여 써 나가는 방법을 중봉용필, 또는 중봉법이라고 한다. 이렇게 용필을 하면 먹물이 종이 뒷면까지 힘있게 침투하여 웅경(雄勁)하고 절대로 경박하거나 태만해 보이지 않으며 병든 글씨 같지가 않게 되는 것이다. 筆鋒은 劃에서 骨(골)을 形成(형성)하게 되며 劃에서의 骨은 반드시 筋肉(근육)의 正中間에 와야되므로 한글서예는 물론 篆,隸,楷,行,草(전,예,해,행,초)의 모든 書法(서법)은 마땅히 中鋒을 爲主(위주)로 運用(운용)하게 되는 것으로 이 中鋒用筆은 바로 書法의 전통적 필법이 되고 있는 것이다. 中鋒 用筆을 하면 자연히 萬毫齊着(만호제착)도 되는 것이니 정확한 執筆(집필)과 運腕(운완)으로써 부지런한 연습이 또한 요구된다.
* 側鋒(측봉): 側鋒(측봉)은 흔히 偏鋒(편봉)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點劃의 어느 한쪽(側)으로 筆鋒이 치우치는 것을 말한다. 옆으로 劃(획)을 그을 때 筆鋒(필봉)이 上端(상단)이나 下端(하단)으로 치우쳐 가거나 아래로 내려그을 境遇(경우) 왼쪽으로 치우쳐 그어 졌다면 이것은 글씨를 쓴 것이 아니라 먹을 종이에 그냥 바른 것이 된다. 또한 편봉으로 운필을 하면 서선의 한쪽은 매끈하고 반대편은 서선이 거칠게 보이기 때문에 이렇게 쓴 글씨는 획형이 평평하고 가벼우며 힘이 없어 보인다. 중봉으로 쓴 글씨는 입체적이고 서선이 살아있는 듯하지만 편봉으로 글씨를 쓰게 되면 힘이 약하고 획형이 보잘것 없어 보인다.
* 立鋒(입봉): 立鋒(입봉)이란 收筆(수필)할 때 필봉이 휘어지지 않고 똑바로 선 상태를 말하는데 입봉이 되지 않으면 다음 획을 연속으로 쓸 수 없으므로 입봉이 되도록 練習해야한다.
* 隱鋒(은봉): 隱鋒(장봉藏鋒이라고도 함)은 鋒芒(봉망)을 안쪽으로 하여 밖으로 노출 되지 않게 하는 形式(형식)을 말한다. 하나의 획을 쓸 때 처음 부분에 필봉을 어떻게 들이대느냐에 대한 운용방법인데 붓끝 즉, 필봉을 서선의 처음 부분으로 밀어서 대면 붓끝이 감추어지게 된다. 이렇게 필봉을 감추어지게 대는 것을 장봉이라고 한다. 그래서 장봉은 붓을 순서대로 대지 않고 역으로 입필한다고 하여 역입(逆入)이라고 하는데 역입을 하면 필봉은 자연히 장봉으로 된다. 밀어 올렸다가 아래로 행필을 하고 횡획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미는 듯했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필봉을 행필한다. 그래서 이러한 필봉의 움직임 을 역입장봉(逆入藏鋒)이라고 하는데 이와 같은 방식으로 글씨를 써야 필력이 강하게 보이게 된다.
* 露鋒(노봉)
露鋒은 起筆할 때 鋒끝(筆鋒)을 생긴 그대로 紙面에 대어 鋒芒(봉망)鋒의 가장 끝, 뾰족한곳이 劃의 表面(표면)으로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노봉은 행서나 초서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연미(姸美)하며 활발한 느낌을 준다. 초심자는 반드시 장봉으로 써야 하며 노봉이 쉽고 편하다고 버릇을 들여 놓으면 헛일이다.
4) 기필(起筆), 행필(行筆), 수필(收筆), 절필(折筆)
* 기필(起筆) : 우선 가고자하는 방향의 반대쪽으로 붓을 대어 붓끝이 나타나지 않도록 한다 [逆入]. 가로획의 경우에는 붓을 댄 후 왼쪽으로 갔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움직이며, 세로획의 경우에는 붓을 댄 후 위쪽으로 향하여 갔다가 다시 아래로 향한다. 이렇게 하면 붓에 힘이 모아질 수 있다.
* 행필(行筆) : 붓의 움직이는 속도를 起筆 收筆보다 빠르게 하고, 한획마다 적당한 지점에서 머물러 붓을 세우는 과정을 2 - 3회 반복한다. [頓 提]
* 수필(收筆) : 붓을 거둘때는 오던 방향으로 돌려서 붓끝이 나타나지 않게 한다[回鋒회봉]. 가로획의 경우에는 오른쪽으로 가 던 것을 꺾어서 왼쪽으로 향하게 하며[無往不收무왕불수], 세로획의 경우에는 아래쪽으로 가던 것을 꺾어서 위쪽으로 향하게 하여 거 둔다 [無垂不縮무수불축]. 起筆 收筆 부분을 너무 의식적으로 표현하면 어색하므로 그 행동범위를 작고 자연스럽게 해야 한다.
* 折筆(절필): 曲線(곡선)은 小直線(소직선)의 連結(연결)이므로 小直線은 點(점)의 연결, 즉 직선은 점이모여 선을 이룬 것이라 한다면, 한 획을 그을 때에도 점을 찍어 나가는 마음으로 하되 그 획이 겉으로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全身精力이 筆鋒에 이르러 運筆할 때 그 획이 굳고 강하며 부드러운 느낌을 갖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 오랜 숙련을 통하여 마음으로 절필이 되도록 해야한다.
2. 임서(臨書)
* 形臨(형림) : 文字(문자)의 형태에 중점을 두는 방법으로서 주로 用筆,運筆(용필,운필)의 원리가 이해되면서 형상이 파악된다.
* 意臨(의림) : 筆法,筆勢(필법,필세)등을 이해 체득하면서 書 자체가 지닌 감정을 감지하는 방법. 즉 어림은 거기 있는 정신에 자기의 역량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 背臨(배림) : 형림과 의림으로 체득한 관념과 능력을 기초로 해서 範本(범본)을 떠나 연습하는 방법.
* 古人(고인)들이 어떠한 태도로 글씨를 썼는가를 이해하고 감상하기 위해서
* 전통적 표현 기법을 배워 書의 성격을 이해하고 체득하기 위해서
* 書의 창작술을 이해하기 위해서
* 法帖(법첩)에 依據(의거)하여 자기표현을 시도하기 위해서
3. 구생법(九生法)
좋은 글을 쓰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옛 문인들이 아홉 가지 새로운 멋을 찾았다.
* 生筆 : 붓모가 항상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어야 한다.
* 生紙 : 신선하게 잘 보관된 종이.
* 生硯 : 먼지나 때가 묻지 않은 신선한 벼루.
* 生水 : 항상 신선한 물을 사용하여야 한다.
* 生墨 : 먹을 간 직후에는 먹물이 (-)전하를 띠므로 30분 - 1시간 경과 후의 먹물이 좋다. 먹을 갈 때는 조금씩 물을 부어 간다.
* 生手 : 손을 깨끗이 하고 손이 피곤할 때에는 붓을 잡지 않는다.
* 生神 : 마음을 가라 앉히고 정신을 집중한다.
* 生眼 : 눈이 피로하면 붓을 잡지 않는다.
* 生境 : 글을 쓸 때에는 주위환경을 깨끗이 한다.
4. 문방사우(文房四友)
* 종이(紙) : 먹의 흡수와 먹색의 농도가 투명하게 나타나는 것이 좋다. 화선지가 널리 쓰이며 보관 시에는 햇볕이나 바람 닿는 곳을 피한다.
* 붓(筆) : 붓의 털 재료는 보통 양호필을 사용하고, 서예용 붓은 장봉, 중봉을 선택하는 것 이 좋다. 털이 곧고 끝이 뾰족하며 탄력있는 것이 좋다. 붓은 사용후 언제나 깨끗하게 씻어서 습기없고, 동풍이 좋은 곳에 보관한다. 먹이 묻어서 굳어진 붓은 벼루바닥에 문지르거나 먹으로 짓눌러 억지로 풀려고 하지 말고 물에 담가 두 어 저절로 풀리게 해서 사용한다.
* 먹(墨) : 비교적 가볍고 광택이 나며 향기가 나는 것이 좋으며 먹물을 갈아서 탁하지 않고, 부드러워야 한다.
* 벼루(硯) : 숫돌과 같은 성질의 것으로 먹이 맑게 갈리고 물이 잘 마르지 않는 것이 좋다.
5.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 한글서체
전서는 진한 이전의 여러 서체를 통칭하는 말이다. 전서는 크게 대전(大篆)과 소전(小篆)으로 나누고, 100년전에 발굴된 은상 시대의 복사문(卜辭文)도 대전으로 분류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이 시기에는 거북, 동물의 뼈등에 새긴 복사문 이외에도 청동기에 새기기도 하였는데 이를 금문(金文) 또는 종정문(鐘鼎文)이라고 부른다. 또한 대전은 주문이라고도 하는데 주나라 때 사주(史주)가 문자의 짜임을 실용적으로 간소화시켰으므로 붙여졌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주대의 석고문(石鼓文)이 있다. 소전은 진시황(B.C. 246-210)이 중원을 통일하였을 때 승상 이사(李斯)가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새로운 모양으로 정리한 것이다. 대전이 자연스럽고 질박하다면 소전은 반듯하고 중후한 감을 준다. 소전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진시황의 공적을 기록한 태산각석, 낭야대각석, 역산비가 있다. 소전은 모두가 원필이며 자형이 아래위로 길다.
※ 갑골문(甲骨文)
갑골문은 귀갑수골(龜甲獸骨)의 준말이다. 갑골문은 은나라 때에 점을 치기 위한 정복문(貞卜文)과 그 당시 사실을 적은 기사문(記事文0이다. 곧 제사. 전쟁. 사냥. 농사. 질병에 대한 길흉을 판단하기 위한 것으로서 거북의 배 부분의 뼈나 소와 사슴의 어깨뼈에 정인(貞人)이나 제주(祭主)가 의문이나 해답 그리고 점친 후의 징험들을 새겼다. 갑골문은 상형문자에 가까우며, 예리한 공구로 새겨서 직선이 많으며 획의 끝이 뾰족한 것이 그 특징이다. 갑골문은 1899년에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 금문(金文)
금문은 청동기 시대의 산물로 그 대부분이 종정(種鼎) 곧 종이나 솥 따위에 주각(鑄刻)하였으므로 종정문이라고 부른다. 그릇, 무기, 거울, 도장, 돈 같은 것에서도 발견된다. 동기에 문자를 기록하는 것은 상(商에서 한(漢)대에까지 이른다. 상대의 것은 그림문자도 많으며, 대개의 금문은 갑골문을 계승하고 진(秦)대의 소전(小篆)에 이어지는 대전(大篆)이다.
※석고문(石鼓文)
대전 자체(字體)의 가장 구체적인 작품이며, 중국역사상 가장 오래된 각석으로 북모양으로 다듬은 돌에 세겨져 있다하여 석고문이라 부른다. 돌의 수는 10개이고 표면에 700여자가 실려 있으나, 판독이 가능한 글자 수는 270여자,현재 통용되고 있는 글자 수는 470여자 정도이다. 만들어진 시기에 대해서는 학설이 분분하나, 동주의 위열왕 4년(기원전 481)에 진나라에서 만들어졌다고 하는 설이 유력하다. 석고문은 4언구로 현재 내용이 완벽하게 이해되어 있지는 않지만, 대체로 전국시대의 진나라 군주가 사냥을 하는 것과 영토의 개척으로 도읍을 세운 것, 제사에 관한 일들이 기술되어 있다. 석고문은 금문과 소전의 중간에 속하고 금문보다 잘 정리되어 있다. 그리고 소전보다 방편(方遍)하고 복잡한 것이 있고 자체는 대체로 정방형을 이루고 있다.
진시황은 중원을 통일한 뒤 군현제를 실시하여 중앙집권 체제를 갖추었다. 이에 따라 공문서 등이 증가하면서 전서를 간략하게 만든 새로운 서체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 때 만들어 진 것이 예서이다. 예서는 한나라로 그대로 이어지면서, 해서, 행서, 초서 등 여러 서체로 다시 분화 발전하였다. 예서는 1cm정도의 폭을 갖는 죽간(竹簡)에 쓰였던 초기에는 세로로 긴 형태였으나 목판과 비석으로 옮겨가면서 점차 가로로 충분한 길이를 갖게 되었고, 이때 파책의 형태가 나타나게 되었다. 여기서 파책은 빈 공간을 조형공간으로 만들어 가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로써 예서는 나름대로 조형성을 갖게 되었고, 후대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전서는 대칭을 맞추어야 하고 곡선이기 때문에 쓰기에 불편하다. 그리하여 곡선을 직선으로 바꾸고 원필도 방필로 많이 바꾸고, 필획도 줄여서 쉽게 쓰게 한 것이 예서(隸書)이다. 기록에 보면 예서는 장막(程邈)이 만들었다. 그가 죄를 지어 감옥에 있을 때 십 년을 연구하여 예서 삼천자를 지어 진상하였는데 진시황이 좋게 여겨 어사를 시켰다. 예서란 말은 진대의 복역수를 도예(徒隸)라 하였는데 정막이 그러했으므로 예(隸)자를 따서 지었다. 예서에서 파책(波 )이 없는, 곧 전서와 근접한 것을 고예(古隸)라 하고 파책이 있는 것을 팔분(八分)이라 한다. 예서는 전한과 후한에 걸쳐 끊임없이 발달하였다. 조전비와 예기비 같은 유려형(流麗型), 장천비 같은 방정형(方整型), 하승비(夏承碑)같은 기고형(奇古型)들로 분리되며, 그 수많은 서적(書蹟)은 이루 나열할 수 없을 정도이다. 예서의 자형은 납작한 것이 보통이다.
※ 예 기 비(禮 器 碑)
예기비가 새겨진 것은 약 1800여 년전 후한의 환제 영수(永壽) 2년의 일이며, 한래비 라고도 부른다. 이 비문의 내용은 노나라의 제상이던 한래의 공적을 칭송한 글인데, 그는 공자를 존중해 그 자손 일족에게는 일반인과 다른 특별한 대우를 해야 한다고 주장, 징병이나 노역을 면해 주는 등, 진심어린 예우를 다했다. 또 그는 진시황제의 폭거 이후 산뚱성 취무에 있던 허물어진 공자묘(이곳은 한이후 역대의 비가 많아 곡장비림(曲章碑林) 이라 불린다.)를 수리하고 제사에 쓰이는 가장 중요한 기구류, 즉 예기를 정비하고 또 공자의 생가를 수복하고, 묘 주변의 배수 사업 등도 했다. 이와 같은 한래의 작업에 감동한 사람들이 그의 높은 덕을 기리고자 돌에 새긴 것이 바로 이 예기비이다. 한비는 중후한 것과 연미(硏美)한 것이 있는데 이 비는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는 중용을 지키고 있다. 문자의 구성이 알맞고 운필이 정교하여 높은 품격을 지니고 있는 비로서 새김도 훌륭하고 글자 수도 많아 예서를 익히는데 적당하다. 그리고 예기비의 선조(線條)에 관하여서는 유(여윔),경(단단함),청(맑음),정(곧음)이 언급되어진다.
해서는 문자의 부호를 있는 그대로 바르게 쓴 형태를 말하며, 이런 까닭에 정서(正書)라고도 불린다. 예서가 더 실용적으로 변모하면서 위진 남북조 시대에 와서 해서의 특유한 풍격을 이루었다. 역사적으로 볼때 동한 말에 이르러 해서보다는 행초서가 널리 유행하였다. 그러나 행초서가 다시 해서화를 추구하게 되는데,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시기에 만들어진 이른바 북위(北魏)의 해서와 이를 더욱 단아하게 만든 수당(隋唐)시기의 해서가 그것이다. 북위의 해서는 예각을 많이 사용하였기 때문에 날카로운 획과 비대칭의 조형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으며, 수당의 해서는 직각을 사용하여 대칭의 안정된 조형을 추구한다. 수당 초기의 구양순 등이 북위에서 수당으로 옮겨오는 역할을 하였다면, 뒤에 오는 안진경은 대칭의 미학을 완성하였다고 할 수 있다. 종요와 왕희지를 거쳐 초당의 구양순, 우세남, 저수량이 북위서를 계승하고 왕희지법을 더하여 방필에 원필을 가미한 완미(完美)에 가까운 체계를 이루었고 그 후 안진경이 출현하여 거의 원필을 이용하여 웅장한 남성적인 해서를 완성하였다. 해서의 자형은 정방형에 가깝다.
※ 안근례비(顔勤禮碑)
안씨가묘비와 더불어안진경해서의 2대 역작 중의 하나이다.
비가 세워진 연도는 정확히 알 길이 없으나, 비문 중에 기재된 사실을 감안해 입비(立碑)는 안진경의 말기의 글씨로 추정되어 진다. 비는 사면각이나 셋째 면은 갈아 없어졌고, 약 1천 6백 여자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안근례비는 비의 자획이 온전하며 특히 삼면의 글씨는 원필이며 강,유가 잘 조화되어 있다.
또한, 장봉의 표현이 세련되어 있으며 그의 해서 중에서 가장 우수한 기교 표현 작품이라 한다.
안진경의 필법은 구양순의 경우와 다른 바 없으나 구법(歐法)보다도 약간 붓을 세우며, 안서(顔書)의 가로획은 우상향세(右上向勢:손에 쥔 붓을 그대로 댄 후 일단 조금 띄웠다 오른 쪽으로 그음)의 수법을 사용한다. 구(歐)의 배세(背勢), 안(顔)의 향세(向勢)라고 부르는 이 상대적인 조형수법은 해서 기법의 양극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이 비의 내용은 안진경이 그의 증조부인 안근례의 일대기를 써 놓은 것이다
※ 구성궁예천명(九成宮醴天銘)
이 비는 당태종 6년(632)에 당태종이 수나라의 인수궁을 수리하면서 만든 구성궁에 샘물이 뿜어 나오게 된 것을 기념하여 만든 비이다. 문장은 위징이 쓰고 글씨는 황제의 명에 따라 구양순이 특별히 정성들여 썼다.구양순의 나이 75세때의 서(書)로 구양순이 왕희지의 필법을 배웠으나, 이미 글씨는 구양순 자신의 자체였다. 그리고 해서의 필법이 극에 달했다고 평가된다.
전각은 양문으로 되어 있고 구성궁예천명의 여섯 글자가 2행에 있고, 본문은 24행으로 되어 있다. 남북서풍을 융합한 수대의 서풍을 전,예서에 바탕을 둔 구성법으로 방향을 바꾸어 장방형의 형태로 씌어져있다. 내핍법(內逼法) 혹은 배세(背勢)에 따르고 있으므로 점,획이 중심에 모여 있으나, 비의 결체는 여유가있고 전절(轉折)과 구부러진 곳의 용필은 아주 훌륭하다. 구성구예천명비는 새 시대 감각을 불어 넣은 것으로 화도사비(化度寺碑)와 더불어 구양순의 대표작이다. 해서를 쓰는데 있어서 정통이라 할 수 있으나, 너무도 정제된 필획의 구성을 하고 있어서 자칫하면 형태만을 모방하는 것에 그치기 쉽다.
※ 장맹룡비(張孟龍碑)
육조 시대의 대표적인 해서이다. 서도에서의 힘은 적절한 조화가 따라야 한다. 결구법이 바로 그것인데, 장비액(張碑額)은 그런 것의 본보기라 하겠다. 본문도 점획의 배치에 따라 소박하다기 보다는 오히려 이지적으로 당대(唐代)의 서와 같은 정제미를 나타내고 있다. 경중의 배합, 각도의 변화, 그리고 글자의 흐름에 따라 그것들을 조절하는 의욕적인 필력, 이러한 모든 요소가 큰 비석에는 필요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흔적들을 표면에 나타나지 않게 할 것, 여기에 서도의 비결이 있다. 장맹룡비는 북위서 가 유행하던 때의 이상형이라고 할 수 있다. 용문(龍門)의 강함과 예리함, 정도소(鄭道昭)의 온화함, 고정비의 완성된 계획성 등이 함축되어 있는 훌륭한 유산으로 여겨진다. 비면은 해서로 26행,한 행에 24자씩 새겨져 있고, 비음은 이 비를 세움에 있어서 관계가 있었던 사람들의 관위 성명을 연서한 것이 10여단 있다. 이 비의 비액에서 '청송(淸頌:덕을 칭송한다)'으로 표현 되는 바와 같이 송덕비이다. 장맹룡은 당시 불교가 성행하고 있었지만, 공자와 맹자의 학문을 깊이 믿는 유교를 선양하였다. 그 공적 이 컸기 때문에 향당(鄕黨)들이 이에 감탄하여서 장맹룡의 덕을 기리고자 비를 세웠고, 그의 일대기에 관한 것과 칭송이 그 내용이다.
행서는 초서와 해서의 중간 형태로 아마 해서와 거의 동시에 생겨나서 발전했으리라고 짐작된다. 왕희지의 난정서(蘭亭書)는 고금에 빛나며 그 후 당의 저수량과 안진경을 거쳐 청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발달하였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해서, 행서, 초서가 널리 쓰이면서 당 이후에는 전서와 예서가 거의 사용되지 않다가 청나라 초기와 중기에 비학의 풍토가 일어나면서 다시 문인 묵객의 작품에 전서와 예서가 등장하여 지금까지도 작품에 널리 쓰이고 있는 것이다.
※ 난정서(蘭亭敍)
행서의 용(龍)이라 불리는 난정시서(蘭亭詩敍)는 왕희지가 51세 때에 '흥에 겨워서 쓴' 작품으로, 고금의 서적중에서 영원히 빛나는 밝은 별이라 하겠다. 동진의 목제(穆帝) 영화(永和)9년 3월에 명승지 난정에서 우군장군(右軍將軍) 왕희지의 주재하에 성대하고 풍아(風雅)로운 모임을 가졌다. 거기서 각지의 명사들이 모여 시를 지었는데 이것으로 난정집을 엮었다. 여기에 왕 희지가 전서(前序)를 보탰는데 이것이 유명한 난정서가 된 것이다. 즉석에서 시편의 서(序)를 짓고 쓴 것이지만 서(書)뿐만 아니라 문장이나 사상도 지극히 높은 수준의 작품이라 한다. 이 진적은 줄곧 왕가(王家)에 진장되어 7대째인 지영(智永)에게까지 전해졌다가, 당태종이 왕희지의 글씨를 몹시 사랑하여 이 난정서를 입수했다. 후에 당태종은 이를 존중히 여겨 "천하 제일의 행"라 명하고 죽을 때 관속에 같이 넣게 함으로써 아쉽게도 진적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 집자성교서(集字聖敎序)
홍복사(弘福寺)의 승려 회인(懷仁)이 칙령에 의해 궁중에 비장(秘藏)된 왕희지의 법첩중에서 집자한 서이다. 몇몇 조수와 함께 무려 25년간에 걸친 비상한 각고끝에 집대성한 것이다.{감형 3년(672) 12월 8일 경성법려건립(京城法侶建立)} 집자성교서는 변이나 방을 취합하거나 점획을 해체, 합병시키거나 했는데, 사진술(寫眞術)도 없던 당시에 그 노고가 어떠했는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내용은 당태종이 명승 현장삼장(玄奬三藏)의 신역불전(新譯佛典)이 완성된 것을 기념하여 지은 성교서(聖敎序)와 당시 황태자였던 고종이 그 경전 번역까지의 경과를 적은 술성기(述聖記)와 그리고 현장삼장이 번역한 반야심경(般若心經)이 함께 비문을 이루고 있다. 30행에 각 행마다 80 여자씩 1904자로 되어 있다. 이 성교서는 당대(塘代)의 모본이기는 하나 왕희지 행서의 진수를 파악하는데 불가결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서(書)는 왕희지의 진적으로부터 집자하여 새긴 천하의 명비로 품격이 높고 형이 정제되어 습벽이 없다. 게다가 용필이 유려하고 다채로와 한없는 정기를 깊이 간직하고 있어 예로부터 행서 입문에 필수적 교본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편, 왕희지의 조형원리는 엄격히 정돈된 구조가 아니고, 부조화(不調和)라고 생각될 정 도로 비뚤어진형태의 것들이 많다. 그러나, 그 비뚤림은 각도나 용필에 일정한 벽이 없이 종횡 무진으로 변화하고 있다. 부 조화속의 조화와 변화의 원칙을 이 집자성교서에서도 잘 볼 수 있다. 집자성교서는 이때 만들어진 원비(源碑)와 송대의 탁본을 가장 귀하게 치는데, 명의 시대에 이르러 원비가 절단되었기 때문에 그 이전 것을 미단본(未斷本), 그 이후 것을 이단본(已斷本) 이라 구분해 부른다.
한나라 때 예서가 주로 쓰였지만 초서의 기원이라 볼 수 있는 특유한 서체가 대나무나 나무조각에 쓴 편지글 등에서 나타났는데 그것이 곧 장초(章草)이다. 장초는 획이 예서와 비슷하나 글씨의 짜임은 초서에 가깝다. 장초의 장(章)은 사유(史游)가 지은 급취장(急就章)의 서체에서 이름 붙여졌다. 장초는 그 뒤에도 계속 발달하여 왕희지에 이르러 초서의 완전한 체계를 굳히게 되었다.
※ 행초서(行草書)
행서는 문자의 부호를 있는 그대로 갖추고 있으면서 동적인 형태로 만든 서체이다. 초서는 부호를 생략하여 동적인 형태로 만든 것이다. 이 둘은 동적인 흐름을 같이 보여주기 때문에 서로 어울려 많이 쓰이고 있다. 획들이 서로 이어지면서 형태를 만들어내는 행초서는 쓰는 이의 감정을 있는 그애로 드러내어 사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또한 수많은 자연스런 형상은 서예를 문자의 기록보다는 회회로 까지 인식시키기에 충분하였다. 이런 이유로 행초서는 서예가 뿐만 아니라 화가들도 반드시 익혀야되는 필수과목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1)고체(古體)
고체는 한글이 처음 반포되었을 때의 옛 서체를 말한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처음 만들었을 때 를 둥근 점모양 그대로 쓴 [훈민정음해례본]과 를 짧은 방형으로 바꾸어 쓴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등 두 가지 서체가 있었다. 고체는 방형의 모양으로 썼기 때문에 대칭의 조형성을 갖는 장엄한 성격을 가졌다. 고체는 선조 때까지 이어졌지만 새로운 서체를 예견하는 점진적인 변화도 갖게 되었다.
2) 한글의 판각화(板刻化)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글을 보급시키기 위하여 한글로 된 책들을 많이 만들게 하였다. 한글이 널리 보급되면서 더욱 많은 책들이 필요해졌고, 이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목판본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여러 곳에서 만들어진 목판본의 서체는 단아한 맛을 지니거나 조형적 완성에는 미치지는 못하였으나 지방마다 또는 판각자 개인의 성향도 나타나게 되었다. 한글의 판각화는 고체가 이미 퇴화한 뒤 나왔으므로 한글의 변화된 여러 서체를 목판의 제작에 잘 어울릴 수 있는 형태로 제작되었다. 따라서 필사형태와 그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재료의 변화에 따른 글씨체의 발굴에 더욱 관심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3) 궁체(宮體)정자
궁체는 대궐의 글씨라는 뜻이다. 궁체를 궁녀들이 쓴 글씨라고 이해하고 있는 것은 잘못이다. 궁녀들이 많이썼기 때문에 잘못 알려진 것일 뿐 여러 왕과 대신들도 궁체를 썼다. 한글이 만들어진 뒤 왕실에서는 철저히 한글을 지켜왔다. 특히 왕후를 중심으로 이 전통을 지켜왔고, 따라서 한글은 내전을 중심으로 하나의 체계를 이루어 발전하였다. 궁체라고 불리는 한글서체는 선조 이후에 나타났으며, 크게 정자와 흘림으로 나뉜다. 정자는 한자의 당해와 흐름을 같이 한다. 이 글씨는 장중함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절제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창제 당시의 고체가 모든 글자의 길이를 같은 크기로 구속하였다면 궁체는 그 길이를 글자의 모양에 따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조형적인 자유로움을 얻게 하였다. 이점이 바로 궁체의 조형적 성격을 결정짓는 요인이라고 하겠다.
4) 궁체(宮體)흘림
궁체흘림은 한문의 행서에 비유된다. 선조전후 한글이 널리 보급되면서 한글은 기호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조형을 찾기 시작하였다. 글자 크기의 구속을 벗어나며 자유로움을 얻은 한글은 붓의 역동적인 흐름을 담을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서체를 요구하였고, 이 요구가 바로 궁체 흘림의 출발이 된다. 흘림은 처음 비교적 자유로운 모양이었으나 점차 정제과정을 거치며 정형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한글은 부호가 단순하여 한자의 초서와 같이 생략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따라서 생략의 길보다는 도리어 정형화의 길을 선택하여 지금 우리가 쓰는 흘림의 모양으로 정착되었다.
6. 서예에서 잘 쓰이는 말
서예가 본디 중국에서 시작되었으므로 한자어로 된 서예 용어가 많다. 여기에서 잘 쓰이는 말의 뜻을 알아보자.
* 법서(法書) 전통적인 서법에 근거를 두고 있는 글씨이다.
* 속서(俗書) 법서의 반대라고 할수 있다. 서법에 근거를 두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쓰는 글씨이다.
* 비갈(碑碣) 비석의 형식으로 사각을 이루고 있는 것을 비라 하고 둥근 모양의 것을 갈이라 한다.
* 비학(碑學) 비의 원류, 시대, 체제, 탁본의 진위와 문자 내용등을 연구하고 고증하는 학문이다. 첩학과 상대되는 말인데, 청나라 초기 이전에는 법첩을 숭상하다가, 완원이 남북서파론을 제창하고 포세신이 북비의 중요성을 부르짖음에 따라 비각을 숭상하는 풍조가 생겨 크게 성행하였다. 이로 인하여 비학은 북파라 하고 첩학은 남파라 부르게 되었다.
* 첩학(帖學) 법첩의 원류와 우열 그리고 서적의 진위와 문자 내용 등을 연구하고 고증하는 학문이다.
* 법첩(法帖) 돌이나 나무에 모각된 법서와 그것의 탁본들이 포함된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고전 법서의 책자들을 법첩이라 부른다.
* 자체(字體) 글지의 형체, 이를테면 전자체, 예자체, 해자체 등을 말한다.
* 서체(書體) 문자의 체세를 일컫는다. 자체와 비슷한 말이다.
* 속자(俗字) 이체자의 일종이다. 본래의 글자와는 조금달리 민간인들 다수가 사용한 간체 따위를 말한다.
* 필획(筆劃) 자형을 구성하는 갖가지 형상의 점와 선이다.
* 조충서(鳥蟲書) 전서의 변체로 획이 새나 벌레의 모양을 이룬다. 춘추 전국 시대에 자주 사용 되었다. 무전 진 시대를 전후로 인장에 쓰이던 전서체로서 그뒤로 전각에 쓰이는 문자가 되었다. 무는 일종의 헝겊인데 헝겁에 글씨를 쓰면 이리저리 늘일 수 있는 이치대로 전서가 상하좌우로 늘이거나 줄이기 쉬워서 사용되었다. 명과 청 시대에 와서 문이들 전각을 새기는데 반드시 전서를 사용한 것은 이 때문이다.
* 금예(今隸) 예서에서 해서가 발전되었는데, 위진 이후 곧 종왕 이후의 예서의 변체를 금예라 한다. 곧 해서이다.
* 종왕(鐘王) 종요와 왕희지 또는 그 필법을 이르는 말이다.
* 이왕(二王) 왕희지 부자 또는 그 필법을 이르는 말이다.
* 안류(顔柳) 안진경과 유공권 또는 그 필법을 이르는 말이다.
* 비백(飛白) 일종의 특수한 풍격의 글씨인데 어느 장인이 흰가루를 사용하여 쓸 듯이 글씨를 채옹이 보고 개발한 것을 '비백서'라 한다. 요즈음 우리가 흔히 말하는 비백은 획이 마르거나 거칠 때 또는 부지불식간의 속도에서 희게 나오는 특수한 선질을 일컫는다.
* 현침수로(懸針垂露) 세로획을 형용하는 말인데 곧 아래 끝의 뽀족한 모양이 침을 매달아 놓은 것 같다 하여 현침이라 하고, 아래 끝에 마치 이슬이 맺혀 있는 모양이라 하여 수로라 한다.
* 역입평출(逆入平出) 붓 쓰는 법의 한가지로 붓을 댈 적에 획이 나아갈 방향의 반대편에서 들어와 장봉하여 만호제착을 만들어서 나아가는 것이다.
* 잠두안미(蠶頭雁尾) 예서의 한일자에서 앞 부분이 누에머리, 파책 부분이 기러기 꼬리와 같이 생긴 데서 나온 말이다.
* 서미(鼠尾) 현침이나 약획 등의 끝부분이 털같이 뽀족하지 않고 쥐꼬리의 끝부분같이 도톰한 모양을 내는 것을 말한다.
* 마제잠두(馬蹄蠶頭) 한일자에서 처음의 모양이 마치 말발굽같다 하여 마제라 하고 끝나는 부분이 누에의 머리같다 하여 잠두라 한다.
* 절차고(折叉股) 굽어진 획을 긋는데 중봉을 하는 방법과 그 획의 모양을 형용하는 것으로 붓을 바르게 세워 둥글게 비틀려 돌아감을 말한다. 금비녀를 구부렸을 때 그 둥근 형체를 보존하는 형상을 연상하면 된다.
* 옥루혼(屋漏痕) 필획의 원활함이나 생동감을 표현하는 것으로 단순히 긋는 획이 아닌 호흡과 맥박이 있는 획을 그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낡은 집에 물이 새어 벽을 타고 내릴 때 물이 곧바로 떨어지지 않고 주름을 내며 마디를 이루고 흐르듯이 획도 그러한 맛이 나야 한다는 표현이다.
* 추획사(錐劃沙) 붓 쓰는 방법으로 붓을 세워 중봉으로 쓰는 법이다. 곧 송곳으로 모래사장에 글씨를 쓸때 송곳이 바로 서지 않으면 확실한 획이 나타나지 않는다. 만일 옆으로 뉘어 쓰면 모래가 획을 덮어 버려 획이 어렴풋이 나타나는 이치이다.
* 인인니(印印泥) 참으로 어려운 표현으로 필봉이 저절로 획 중에 감춰지고 쓰고자 하는 생각과 뜻이 획보다 앞서야 한다는 황정견의 해석이다. 인주에다 도장을 찍으면 그 본래의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그대로 나타나는 데서 형용된 말인데, 말하자면 붓을 댈 때 심경이 안온하고 필법도 표준이면 능히 마음에 둔 글자를 유감없이 구성할 수 있다는 표현이다.
* 영련(楹聯) 보통 대련이라 한다. 양쪽 기둥에 걸어 놓는 일이 많아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 임지(臨池) 연못에서 글씨를 공부한는 것을 일러 임지라 한다.
* 제발(題跋) 서적이나 비첩, 서화 따위에 서명을 하거나 제목 또는 설명을 다는 것을 말한다. 본래는 앞에 쓰는 것을 제라 하고 뒤에 쓰는 것을 발이라 하는데 지금은 대개 작품의 본문을 쓰고 뒤에 서명이나 설명 따위를 쓰는 것을 말한다.
* 돈좌(頓挫) 돈은 굵은 획으로 변해 갈 때 붓을 약간 틀면서 누르는 동작으로 전절의 관절 부분에서 하는 동작을 말하며, 좌는 획의 방향이 바뀔 때 붓의 쓰는 면을 바꾸어 주는 것을 말한다. 돈좌를 모르고 필관을 손가락으로 돌린다거나 계속 한면으로 쓰면 결코 의미있는 획을 그을 수 없다.
* 전절(轉折) 획의 방향이 바뀔 적에 붓을 궁글려 붓의 방향을 바꾸는 것으로 전은 원필에 쓰는 방법이며 절은 방필을 쓰는 방법이다.
* 결구(結句) 한 글자를 구성하는 것을 말한다. 간가라고도 한다.
* 장법(章法) 행간의 좁고 넓음 또는 자간의 좁고 넓음에 따라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는데 이러한 공간 포백을 하는 법을 장법이라 한다.
* 낙관(落款) 작품을 할 적에 본문을 다 쓰고 나서 서명을 하고 전각을 찍는 행위를 말한다. 말하자면 서명 날인을 한꺼번에 일컫는데 요즈음에 와서는 서명도 낙관한다고 표현하고 도장도 낙관이라 하는 경향이 있다.
* 전각(篆刻) 전서를 새긴다는 뜻으로 ,도장을 말한다. 전각에는 성명인, 아호인, 한장, 장서인, 수장인, 관인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7. 永字八法(영자팔법)의 意味(의미)
해서(楷書)의 기본적인 필법을 갖춘 문자로서 '永'字가 있다. 이 '永'字에는 문자구성상 특징이 되는 필획이 비교적 고루 갖추어져 있어 옛부터 이 문자를 연습함으로써 필법의 기초를 연마하는데 활용해 왔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글씨입문의 초보단계에 이 '永字八法'의 숙달을 통해 필법을 익히게 있다. 永字八法에는 다음과 같은 각부분의 명칭이 있는데 각 필획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어원을 통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어 그것을 바탕으로 설명을 가해보기로 한다.
一. 側(측) : 이것은 점획(點獲)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永字의 첫머리 점이 마치 側(옆)으로 기울어 있다는 데서 유래한 것 이다. 그러므로 '側'으로써 점획을 쓸 때에는 반월형(半月形)으로 기울어진 머리를 연상케 하는 모양이 되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점획에는 실로 여러가지 형태의 것이 있어서 모두를 '側'로 처리해서는 물론 안된다.
二, 勒(늑) : 말을 말안장으로 누르는 느낌과 같다 하여 지닌 이름이다. 특히 이 획의 수필은 벼랑에서 말을 힘껏 누르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하여 붙여진 것이다. 이 획은 이른바 '一'字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보기에는 가장 원시적인 획인데 흔히 '한일字 조차 제대로 쓰기 힘들다' 고 한탄하 듯 얼핏 단순한 것으로 생각되기 쉽다. 그러나 실은 이 단순함 속에 의미 깊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획 수가 적고 구성이 단순하면 할수록 쓴 사람의 성격이 잘 나타나는 법이다. 이 一畵은 글씨 가운데 그 수가 가장 많을 뿐 아니라 결구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畵의 성공여부로 작품 전체의 우열을 결정하게 되는 수가 적지 않다. 앞서 말한 통속적인 말과는 반대로 '한일字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쓸 수 있게 되면 대부분의 글자는 바르게 쓰게 된다'는 말을 명심할 필요가 있겠다.
三, 弩(노) : 마치 활을 당겨 힘껏 당길때의 勢(세)를 닮았다고 해서 칭하는 말이다. 이것은 내리긋는 획(竪劃)이다. 竪劃(수획)의 본질은 그 명칭으로도 짐작이 되는 것처럼 수직이 원칙이다. 그런데 단순한 수직이 아니라 상하끝부분에는 돌을 튕겨낼 만한 弦(현)이 매어져 있는 것이어서 여기에는 집중된 힘이 있지 않으면 안된다. 한편 상하의 힘에 대응해서 중간부분에는 탄력성이 주어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는 다소 彎曲性(만곡성)도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전체적인 성질을 통해서 생각할 때, 수직은 단순한 직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시각적인 직선일 필요가 있는 것이며 그런 만큼 중간부분의 彎曲性과 이 上下의 힘찬 상대관계는 이 획의 佳拙(가졸)을 결정하는 요건이 되기도 한다. 특히 이 획에 있어 중요한 점은 鋒의 움직임에 따라 전체의 佳拙을 결정하게 되는 성격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대체로 漢字는 縱書(종서)이므로 이 획이 수직으로 보이지 않거나 중심을 통하지 않는다면 하나의 문자가 굽거나 흐느적거리게 보이게 되어 결국 전체의 구성이 우습게 되어 버린다
四, 적(趯): 이것은 공이 튀는(躍) 것 같은 筆勢(필세)에서 붙혀진 이름이다. 공이 벽에 부딪혔을 때, 그 탄력으로 벽을 차고 튀어나오듯이 이 획이 갖고 있는 내용도 그 힘의 변화와 같은 성질의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따라서 이 획이 갖고 있는 중요한 의의는 내용에 있어서의 힘의 분배와 그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勒'이나 '弩'에 있어서는 기필에서 수필까지 사이에 시간적으로 극단적인 불연속성이 없으나 이 획은 '跳躍(도약)'이 주체인만큼 오히려 극단적인 리듬감이 수반된다. 이러한 리듬감이 주체가 되면 筆毛의 성질에 따라 역할이 달라지기도 한다. 즉, 剛毛筆(강모필)은 특별히 의식을 하지 않아도 탄력성이 있으나 軟毛筆(연모필)은 기량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五, 策(책) : 이 획은 말에 채찍을 치는(打) 筆勢를 가진 것을 가르켜 생긴 명칭이다. 보통, 말에 채찍을 댈 때에는 옆으 로 하되 위를 향해서 치게 된다. 이 획은 어느 만큼 勒(늑)의 성질을 가졌다고 볼 수도 있으나 筆勢에서 보면 전혀 다른 것이다. 이 획이 勒과 전적으로 다른 것은 수필이다. 이 수필의 경묘함은 의미가 깊은 바 있어 많은 연습을 통해서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六, 약(掠) : 이 획은 두발을 빗어 내리는 모양을 생각케 하는데서 온 말이다. 긴 머리를 빗을 때, 먼저 빗을 머리 위에서 부터 넣고 머리털을 따라 끝부분까지 빗어내리게 되는데 이 빗에 힘을 넣는 방법과 筆意(필의)가 흡사한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이 획의 특징은 마치 빗을 머리에서 뗄 순간에는 엉킨 머리털을 세게 풀어주어야 할 때, 순간적인 힘이 빗에 가해지는 것처럼 수필에 있어서도 鋒에 가해지는 힘이 순간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을 말한다. 물론 보통 쓰이는 '掠'이 모두 이러한 운필에 따라야 한다고는 할 수 없으나 이 명칭이 생긴 어원을 깊이 생각할 때, 거기에 이러한 '鋒의 약동'이 느껴지지 않은 것은 적어도 바른 운필이라고 말할 수 없겠다. 보기에 따라서는 다음 '啄(탁)'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전혀 성질이 다른 것이며, 그 근본적인 차이는 수필에서의 봉을 다루는 방법 여하에 달려있다 하겠다.
七, 啄(탁) : 이 획은 새가 모이를 쪼을 때의 주둥이를 닮은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닭이 쌀을 쪼을 때 보면 주둥이를 콕콕 하고 재빨리, 그러면서도 날카롭게 움직이는데 이 때의 주둥이 움직임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掠'(약)에 비하면 붓은 훨씬 가볍고 예리하고 빠른 것이 된다. 이 획은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긋는 것이어서 '策'과는 반대의 형상을 보이고 있으나 운필은 비슷한 면이 있다. 이러한 의미에 서 '策'은 '勒'의 변형이라기 보다는 '啄'과 한 그룹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는지 모른다. 이 획은 마치 '側'처럼 가벼운 運筆(운필)이 특징이다. 그래서 자칫하면 지나치게 경묘해 지는 나머지 조잡해 질 수도 있기 때문에 많은 경계가 필요하다.
八, 책: 이 획의 고기를 자르는 기분으로 붓을 이끈다는 뜻에서 붙여졌다. 고기를 자를 때 처음에는 칼에 가볍게 힘을 넣었다가 점차 힘을 세게 더하면서 최후에 쭉 빼는 방법과 같은 뜻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운필에 있어서는 이 기분을 그대 로 붓에 나타내면 좋은 것이 된다. 이 기분은 관념상으로는 매우 쉬운 것 같으나 실제 운필은 대단히 어려운 것이어서 일반적으로 책은 힘든 획의 하나로 치는 것이다. 이획의 특징은 한 획 속에 가는 부분과 굵은 부분이 두드러지게 섞여있다는 것이며 또하나의 특징은 한 문자의 최종획으로 사용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책은 그 문자의 성패나 분위기를 본질적으로 결정하는 일이 많다. 문자 속에서 이 획이 특히 눈에 잘 띤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집필과 운필 원론
운필법
앞서 정리한 집필법(執筆法)과 운필법(運筆法)은 거의 동시적이어서 엄격히 구분하여 설명하기는 곤란하다. 그러나 시작단계에서 순간적이나마 운필보다는 집필을 먼저 하기 때문에 편의상 구분하여 정리한다.
운필이란 간단히 말해서 점을 찍고 획을 긋는 방법이라 할 수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1획을 쓸때 처음에 붓을 대어서 끝으로 붓을 거둘때까지의 붓의 활용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붓의 운용방법이다. 그리고 운필은 단순한 기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손을 함께 쓰는 수양이라 할 수 있다. 즉 마음을 바르게 함과 동시에 손의 움직임을 같이 해야하는 수양이다. [心手竝用. 心正卽筆正]
• 鋒(봉) : 붓끝을 가리키며, 글씨를 쓰는 데 가장 중요한 부위이다.
• 前毫(전호) : 직접 지면에 닿는 부분으로서 一分筆, 二分筆, 三分筆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일분필은 작은 글자나 전서 (篆書)에서 많이 쓴다.다른 나머지 서체(書體)에서는 一,二,三分筆을 고루 사용한다.
• 副毫(부호) : 직접 지면에 닿지 않지만, 먹물을 저장하는 역할을 한다. 붓을 빨때 이 부분의 먹물을 깨끗하게 제거해 야 붓이 부드럽게 보존된다.
起筆(기필) 行筆(행필) 收筆(수필) -- [ 入筆 送筆 終筆 ]
각종 서체의 기본 점획은 크기와 종류에 관계없이 다음의 3단계의 과정을 거친다.
• 起筆 : 우선 가고자하는 방향의 반대쪽으로 붓을 대어 붓끝이 나타나지 않도록 한다 [逆入]. 가로획의 경우에는 붓을 댄 후 왼쪽으로 갔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움직이며, 세로획의 경우에는 붓을 댄 후 위쪽으로 향하여 갔다가 다시 아래로 향한다. 이렇게 하면 붓에 힘이 모아질 수 있다.
• 行筆 : 붓의 움직이는 속도를 起筆 收筆보다 빠르게 하고, 한획마다 적당한 지점에서 머물러 붓을 세우는 과정을 2 - 3회 반복한다. [ 頓 提 ]
• 收筆 : 붓을 거둘때는 오던 방향으로 돌려서 붓끝이 나타나지 않게 한다 [ 回鋒 ]. 가로획의 경우에는 오른쪽으로 가 던 것을 꺾어서 왼쪽으로 향하게 하며 [ 無往不收 ], 세로획의 경우에는 아래쪽으로 가던 것을 꺾어서 위쪽으로 향하게 하여 거 둔다 [ 無垂不縮 ]. 起筆 收筆 부분을 너무 의식적으로 표현하면 어색하므로 그 행동범위를 작고 자연스럽게 해야 한다.
붓은 상대적인 활동(예: 가고 멈춤, 느리고 빠름, 가볍고 무거움 등)에 의해서 움직여진다. 그리고 글씨를 쓰는 것은 이러한 모순 대립되는 움직임, 특히 頓(按)과 提의 반복 교대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 提 : 획을 쓸 때 붓끝을 당겨서 끌듯이 하는 것이다. 提는 붓을 점점 가늘어지게 하거나, 起筆 收筆 부분에서 붓을 누 르고 난 뒤 붓을 움직일 때 행해진다. 구체적으로는 破책(파책)을 모을 때, 掠(약) 策(책)의 收筆 과정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 頓(按) : 提와 정반대로 붓끝을 누르거나 머무르는 것이다. 頓은 기필 수필의 꺾는 부분이나 방향전환시, 그리고 점점 굵어지게 쓸 때 행해진다. 구체적으로 파책부분과 策 啄(탁)의 시작부분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하나의 획에는 굵고 가늠(粗細)의 변화가 있기 때문에 頓 提는 항상 한 획속에서 반복적으로 행해진다. 한 획이나 획 사이에 頓 提가 명확하면 할수록 粗細(조세)가 분명해지며, 粗細의 변화가 뚜렷하면 리듬감을 주어 肥瘦(살찌고 마름) 輕重(가볍고 무거움)의 변화도 나타나게 된다.
• 轉 : 붓을 종이에 대고 둥글게 굴려 돌려서 모나지 않은 필획(筆劃)을 만드는 것이다. 행필과정에서 너무 오래 머물지 않도록 하고 속도를 고르게 해야 한다. 전서(篆書)나 초서(草書)에서 많이 쓰인다.
• 折 : 꺾는다는 뜻으로 모난 필획을 만드는 것이다. 주로 기필이나 수필할 때 방향을 바꾸는 데 쓰이며 획의 방향전환 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折의 방법은 우선 頓(누름)으로 붓끝을 눌러 굵게 하면서 잠시 멈추는 듯하여 행필의 방향을 바꾸어 꺾 은 후에 붓을 점점 들어서 가늘어지게 提한다. 따라서 꺾이는 획은 折 전에는 頓, 후에는 提가 있어야 한다.
• 方 : 필획 중에서 획의 모양이 모난 것을 이른다. 그 모양이 方整(방정)하고 頓할 때 骨力이 밖으로 향하여 나타나기 때문에 '외척(外拓)'이라고 한다. 기필 수필할 때 붓끝을 꺾어서 움직이면 '방필(方筆)'이 된다. 한예(漢隸)와 북위(北魏)의 해 서(楷書)에서 많이 보이는 필획이다.
• 圓 : 붓을 댄 곳과 뗀 곳이 둥근 형태를 이루게 하는 것으로서 그 필획의 둥글고 힘이 센 듯한 느낌을 풍긴다. 획의 모양은 속으로 살찐 듯하여 강한 骨力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아 '내함(內含)'이라고 표현한다.
• 藏鋒 : 하나의 획을 쓸 때 처음 부분에 필봉을 어떻게 들이대느냐에 대한 운용방법인데 붓끝 즉, 필봉을 서선의 처음 부분으로 밀어서 대면 붓끝이 감추어지게 된다. 이렇게 필봉을 감추어지게 대는 것을 장봉이라고 한다. 그래서 장봉은 붓을 순서대로 대지 않고 역으로 입필한다고 하여 역입(逆入)이라고 하는데 역입을 하면 필봉은 자연히 장봉으로 된다. 밀어 올렸다가 아래로 행필을 하고 횡획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미는 듯했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필봉을 행필한다. 그래서 이러한 필봉의 움직임 을 역입장봉(逆入藏鋒)이라고 하는데 이와 같은 방식으로 글씨를 써야 필력이 강하게 보이게 된다.
• * 露鋒 : 장봉과는 달리, 서선의 방향대로 붓을 대어서 필봉이 나타나도록 하는 것을 노봉이라고 한다. 한 획을 쓸 때 붓끝이 밖으로 노출되게 하는 것인데, 글자와 글자가 연결되게 쓸 때 노봉이 나타난다. 또한 노봉은 작은 글자나 행 초서를 쓸때 많이 나타나게 된다.
• 中鋒 : 한개 획을 쓸 때 필봉을 서선의 중간으로 행필한다는 뜻으로 설명하는데 붓의 털 부분을 전부 가지런히 하여 필봉의 위치를 항상 서선의 중간에 가게 하여 써 나가는 방법을 중봉용필, 또는 중봉법이라고 한다.이렇게 용필을 하면 먹물이 종이 뒷면까지 힘있게 침투하여 웅경(雄勁)하고 절대로 경박하거나 태만해 보이지 않으며 병든 글씨 같지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서체의 용필은 대부분 중봉을 위주로 해야 한다. 특히 전서는 반드시 중봉으로써 써야 하며, 한글서예도 마찬가지 이다.
• 偏鋒 : 側鋒(측봉)이라고도 하는데 편봉이란 획의 가장자리 한편으로 필봉이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편봉으로 운필을 하면 서선의 한쪽은 매끈하고 반대편은 서선이 거칠게 보이기 때문에 이렇게 쓴 글씨는 획형이 평평하고 가벼우며 힘이 없어 보 인다. 중봉으로 쓴 글씨는 입체적이고 서선이 살아있는 듯하지만 편봉으로 글씨를 쓰게 되면 힘이 약하고 획형이 보잘것 없어 보 인다.
해서(楷書)의 기본적인 필법을 갖춘 문자로서 '永'字가 있다. 이 '永'字에는 문자구성상 특징이 되는 필획이 비교적 고루 갖추어져 있어 옛부터 이 문자를 인습함으로써 필법의 기초를 연마하는데 활용해 왔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글씨입문의 초보단계에 이 '永字八法'의 숙달을 통해 필법을 익히게 있다.
永字八法에는 다음과 같은 각부분의 명칭이 있는데 각 필획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어원을 통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어 그것을 바탕으로 설명을 가해보기로 한다.
• 側 (측) : 이것은 점획(點獲)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永字의 첫머리 점이 마치 側(옆)으로 기울어 있다는데서 유래한 것 이다. 그러므로 '側'으로써 점획을 쓸 때에는 반월형(半月形)으로 기울어진 머리를 연상케 하는 모양이 되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점획에는 실로 여러가지 형태의 것이 있어서 모두를 '側'으로 처리해서는 물론 안된다.
• 勒 (늑) : 말을 말안장으로 누르는 느낌과 같다 하여 지닌 이름이다. 특히 이 획의 수필은 벼랑에서 말을 힘껏 누르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하여 붙여진 것이다. 이 획은 이른바 '一'字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보기에는 가장 원시적인 획인데 흔히 '한일字조차 제대로 쓰기 힘들다' 고 한탄하 듯 얼핏 단순한 것으로 생각되기 쉽다. 그러나 실은 이 단순함 속에 의미 깊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획 수가 적고 구성이 단순하면 할수록 쓴 사람의 성격이 잘 나타나는 법이다. 이 一畵은 글씨 가운데 그 수가 가장 많을 뿐 아니라 결구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畵의 성공여부로 작품 전체의 우열을 결정하게 되는 수가 적지 않다. 앞서 말한 통속적인 말과는 반대로 '한일字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쓸 수 있게 되면 대부분의 글자는 바르게 쓰게 된다'는 말을 명심할 필요가 있겠다.
• 弩 (노) : 마치 활을 당겨 힘껏 당길때의 勢(세)를 닮았다고 해서 칭하는 말이다. 이것은 내리긋는 획(竪劃)이다. 竪劃(수획)의 본질은 그 명칭으로도 짐작이 되는 것처럼 수직이 원칙이다.
그런데 단순한 수직이 아니라 상하끝부분에는 돌을 튕겨낼 만한 弦(현)이 매어져 있는 것이어서 여기에는 집중된 힘이 있지 않으면 안된다. 한편 상하의 힘에 대응해서 중간부분에 는 탄력성이 주어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는 다소 彎曲性(만곡성)도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전체적인 성질을 통해서 생각할 때, 수직은 단순한 직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시각적인 직선일 필요가 있는 것이며 그런 만큼 중간부분의 彎曲性과 이 上下의 힘찬 상대관계는 이 획의 佳拙(가졸)을 결정하는 요건이 되기도 한다. 특히 이 획에 있어 중요한 점은 鋒의 움직임에 따라 전체의 佳拙을 결정하게 되는 성격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대체로 漢字는 縱書(종서)이므로 이 획이 수직으로 보이지 않거나 중심을 통하지 않는다면 하나의 문자가 굽거나 흐느적거리게 보이게 되어 결국 전체의 구성이 우습게 되어 버린다
• 躍(약) : 이것은 공이 튀는(躍) 것 같은 筆勢(필세)에서 붙혀진 이름이다. 공이 벽에 부딪혔을 때, 그 탄력으로 벽을 차고 튀어나오듯이 이 획이 갖고 있는 내용도 그 힘의 변화와 같은 성질의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따라서 이 획이 갖고 있는 중요한 의의는 내용에 있어서의 힘의 분배와 그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勒'이나 '弩'에 있어서는 기필에서 수필까지 사이에 시간적으로 극단적인 불연속성이 없으나 이 획은 '跳躍(도약)'이 주체인만큼 오히려 극단적인 리듬감이 수반된다.
이러한 리듬감이 주체가 되면 筆毛의 성질에 따라 역할이 달라지기도 한다. 즉, 剛毛筆(강모필)은 특별히 의식을 하지 않아도 탄력성이 있으나 軟毛筆(연모필)은 기량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 策(책) : 이 획은 말에 채찍을 치는(打) 筆勢를 가진 것을 가르켜 생긴 명칭이다. 보통, 말에 채찍을 댈 때에는 옆으 로 하되 위를 향해서 치게 된다.
이 획은 어느 만큼 勒(늑)의 성질을 가졌다고 볼 수도 있으나 筆勢에서 보면 전혀 다른 것이다. 이 획이 勒과 전적으로 다른 것은 수필이다. 이 수필의 경묘함은 의미가 깊은 바 있어 많은 연습을 통해서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 掠(략) : 이 획은 두발을 빗어 내리는 모양을 생각케 하는데서 온 말이다. 긴 머리를 빗을 때, 먼저 빗을 머리 위에서 부터 넣고 머리털을 따라 끝부분까지 빗어내리게 되는데 이 빗에 힘을 넣는 방법과 筆意(필의)가 흡사한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이 획의 특징은 마치 빗을 머리에서 뗄 순간에는 엉킨 머리털을 세게 풀어주어야 할 때, 순간적인 힘이 빗에 가해지는 것처럼 수필에 있어서도 鋒에 가해지는 힘이 순간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을 말한다.
물론 보통 쓰이는 '掠'이 모두 이러한 운필에 따라야 한다고는 할 수 없으나 이 명칭이 생긴 어원을 깊이 생각할 때, 거기에 이러한 '鋒의 약동'이 느껴지지 않은 것은 적어도 바른 운필이라고 말할 수 없겠다. 보기에 따라서는 다음 '啄(탁)'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전혀 성질이 다른 것이며, 그 근본적인 차이는 수필에서의 봉을 다루는 방법 여하에 달려있다 하겠다.
• 啄(탁) : 이 획은 새가 모이를 쪼을 때의 주둥이를 닮은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닭이 쌀을 쪼을 때 보면 주둥이를 콕콕 하고 재빨리, 그러면서도 날카롭게 움직이는데 이 때의 주둥이 움직임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掠'(약)에 비하면 붓은 훨씬 가볍고 예리하고 빠른 것이 된다. 이 획은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긋는 것이어서 '策'과는 반대의 형상을 보이고 있으나 운필은 비슷한 면이 있다. 이러한 의미에 서 '策'은 '勒'의 변형이라기 보다는 '啄'과 한 그룹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는지 모른다.
이 획은 마치 '側'처럼 가벼운 運筆(운필)이 특징이다. 그래서 자칫하면 지나치게 경묘해 지는 나머지 조잡해 질 수도 있기 때 문에 많은 경계가 필요하다.
• 책(石桀) : 이 획의 고기를 자르는 기분으로 붓을 이끈다는 뜻에서 붙여졌다. 고기를 자를 때 처음에는 칼에 가볍게 힘을 넣었다가 점차 힘을 세게 더하면서 최후에 쭉 빼는 방법과 같은 뜻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운필에 있어서는 이 기분을 그대 로 붓에 나타내면 좋은 것이 된다. 이 기분은 관념상으로는 매우 쉬운 것 같으나 실제 운필은 대단히 어려운 것이어서 일반적으로 책은 힘든 획의 하나로 치는 것이다.
이 획의 특징은 한 획 속에 가는 부분과 굵은 부분이 두드러지게 섞여있다는 것이며 또하나의 특징은 한 문자의 최종획으로 사용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책은 그 문자의 성패나 분위기를 본질적으로 결정하는 일이 많다. 문자 속에서 이 획이 특히 눈에 잘 띤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집필은 어떻게 해야 하나
執筆은 어떻게 해야 옳은가? -<東坡集> 讀書筆記(梁 山)
中國北宋의 문학가이며 서화가인 蘇軾은 字는 子瞻이요, 호는 東坡居士, 眉州眉山(지금의 사천성 경내) 사람이였는데
중국 역사상 大文豪로 널리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書法에서도 宋四家 ─ 蘇, 黃, 米, 蔡의 맨 첫번째를 차지하며 그의 書論도 상당한 이론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아래에 <東坡集>에서 논술된 執筆에 관한 대목을 읽은 나의 독서 필기를 공개하면서 서예계 동인들의 가르침을 기대한다.
蘇軾은 <東坡集>에서 執筆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獻之少時學書, 逸少從後取其筆而不可, 知其長大必能名世. 個以爲知書不在於筆牢, 浩然聽筆之所之, 而不失法度, 乃爲得之. 然逸少所以重其不可取者, 獨以其小兒子用意精至, 猝然俺之, 而意未始不在筆. 不然, 則天下有力者, 莫不能書也.”
원문을 차례로 해석하여 보기로 한다.
“獻之少時學書, 逸少從後取其筆而不可, 知其長大必能名世.”[譯文] 헌지(注:왕희지의 아들 왕헌지)가 어렸을때 붓글씨를 배우는데 逸少(注:왕희지의 字)가 뒤에서 가만히 뽑으려 하니 뽑히지 않았다.
하여 그가 크면 꼭 세상에 이름을 남기리라 생각하였다.
[注釋] 이 고사는 南朝·虞D의 <論書表>에서 나오는데 原文은 “羲之爲會稽, 子敬七八歲學書, 羲之從後製其筆不脫, 嘆曰, 此見書, 後當有大名”이다.
7~8세 밖에 안되는 어린이가 붓글씨를 연습하는데 뒤에서 몰래 붓을 당겨도 빠지지 아니하니 아버지가 감탄하여 이 애가 크면 꼭 서법에 큰 이름을 남기리라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데 꽤 많은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곡해하고 붓글씨를 잘 쓰려면 반드시 붓을 힘주어 꽉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후학을 그렇게 가르치는 폐단도 있다한다.
그러면 아래에 蘇東坡의 고견을 들어보자.
“個以爲知書不在於筆牢, 浩然聽筆之所之, 而不失法度, 乃爲得之.”
譯文 : “내(“個”는 작자가 자신을 自謙하여 이르는 말) 생각엔 붓글씨를 잘 씀에 붓을 튼튼히 잡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호연히 붓을 닿는(“之”는 닿다, 이르다의 뜻) 대로 놔 두면서도 법도를 잃지 않았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注釋] 참 옳은 말이다.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탈 줄 아는 사람은 처음 배울 때의 정경을 연상해 보노라면 이 문제가 자명해질 것 같다. 제가 아무리 핸들을 꽉 움켜 잡는다고 해서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다.
초보자일수록 핸들을 꽉 잡고 운전에 익숙할수록 손이 핸들에 닿는듯 마는듯 하는 정도의 힘으로도 충분히 방향을 잡을 수 있으며 심지어 한 손을 놓고도 탈 수 있으며 두손을 다놓고 타는 교예인들도 있지 않는가?
또 자전거가 나가는 방향을 따르면서 타야 평형이 유지되지 그와 상관없이 주관적으로 내 몬다면 필연코 넘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소동파가 말한 붓이 닿는 대로 나가면서 붓글씨를 쓰라는 말과 같은 도리인 것 같다.
그리고 속도에도 연관이 있다. 천천히 몰면서 곧게 가기는 힘들고 세워 놓고 평형을 유지하기도 힘들다. 붓들씨도 마찬가지이다.
느린 속도로 곧게 쓰자면 아무리 곧게 쓴다고 해도 찬찬히 들여다 보면 삐뚤거린 흔적이 남게 된다.
그렇지만 이것이 핸들이나 붓을 어느 정도로 꽉 잡는가에 의해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빠른 속도에서 더 작은 힘으로 방향을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큰 글을 쓰는가 작은 글을 쓰는가에 따라 손목과 손가락의 힘받는 부위가 달라지게 된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렇게 보면 왕희지가 자기 아들이 붓을 힘있게 잡았다고 천재로 취급하는데는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된다. 그러면 왕희지의 이 전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소동파의 하문을 보기로 하자.
“然逸少所以重其不可取者, 獨以其小兒子用意精至, 猝然俺之, 而意未始不在筆.”
[譯文] 그런데 逸少가 그토록 붓을 앗을 수 없다는 점을 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린 아들의 용의가 기특한데서 감싸는 것이지 붓과 상관없는 것이다.
[注釋] 하긴 그렇다. 글씨를 쓴다는 사람이 붓을 명심해 잡지 않고서야 어찌 붓글씨를 운운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7~8세의 어린 나이에 그처럼 명심할 수 있다는 것은 기특해 할 만도 한 일이라 하겠다.
“不然, 則天下有力者, 莫不能書也.”
[譯文] “그렇지 않다면 천하에 힘있는 사람은 글씨를 못쓰는 사람이 없지 않겠는가.”
[注釋]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이 붓글씨를 잘 써보려 했는데 붓글씨는 힘있게 써야 한다는 말을 듣고 그 힘을 키우려고 팔에 모래주머니를 매달고 몇년 연습했다는 것이다.
참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붓글씨의 힘이 어디에서 체현되고 어떻게 표현되는가?
이는 절대 쓰는자의 팔에 얼마만한 力學적 힘을 소유했는가에 있지 않으며 역시 붓을 얼마나 꽉 잡았는가에 있지 않다.
사람의 힘은 손가락을 통해 붓과 닿게 되고 나중에는 筆毫에 의해 종이에 닿게 된다.
붓과 손의 마찰력을 우리가 늘 하는 악수와 비교해 보자.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감격하여 손을 꽉 쥐는 것은 “감격”하였기 때문에 理志가 어느 정도 상실되여 손의 힘을 가늠 못하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상태에서 꽉 잡는 것은 실례가 될 뿐만 아니라 상대방(특히 여성일 경우)의 오해를 자아낼 수 있고 너무 슬쩍 힘주는 것은 냉정한 느낌을 주게 된다.
붓잡는 것도 아마 이와 같은 도리가 아닐가 싶다.
붓글씨의 힘(力度)은 기하학적 형태로 표현될 때가 많다. 만약 활을 든 사람이 앞에 있다고 하자. 그가 가장 위엄있어 보이고 가장 두려워 보일 때가 어느 때인가? 바로 화살에 시위를 먹여 당신을 겨냥하고 있을 때이다. 활을 쏟 다음이나 활을 쏘기 전에는 그다지 위엄이 없는데 이것을 彎弓待發이라고 한다.
화살에 시위를 먹였을 때의 기하현상은 활의 탄성한계를 넘지 않은 상태에서의 최대의 폭발력을 과시하는데 이런 기하학적 도형은 사람들에게 힘을 상징하여 준다. 간단한 예로 “元”字의 마지막 필획을 보기로 하자.
“D”로 쓸 때와 “D”로 쓸 때 전자는 탄성한계를 넘은 감을 주지만 후자는 포만된 탄성을 과시한다.
물론 이 때 후자는 더욱 힘있어 보이게 된다. 그러므로 이 때의 힘이란 인체 근육에 의해 강압적으로 전달된 力學的 힘이 아니라 기하학적 審美眼에서 형성된 힘이다.
“入木三分”이란 말이 있는데 붓글씨를 나무에 썼는데 어찌 힘있게 썼는지 목공이 대패로 三分정도로 밀어 버려서야 먹의 흔적이 없어졌다는 말이다.
그러면 이 때의 힘은 어떻게 체현되는가?
이는 함묵량이 같은 정황에서 두가지 요소와 연관된다.
하나는 筆毫가 널려졌는가 아니면 모여졌는가에 따라서 같은 軌跡을 지나는 筆毫의 수량에 관계된다.
다른 하나
는 속도의 완급에 관계된다.
속도가 늦으면 당연히 종이와 접촉하는 시간이 길어져 아래로 침투되는 먹의 수량도 많아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때 역시 사람이 근육이 붓과 종이에 가한 압력과는 관계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붓글씨를 쓰는 사람이 “팔에 힘이 올랐다.”
는 말을 종종 쓰게 되는데 이는 무슨 뜻인가?
그림에서 보다시피 硬筆로 글을 쓸 때에는 硬筆의 上下운동이 체현되지 않고 그저 평면에서 前後, 左右로 운동하므로 h가 기본상 常數로 된다.
그러나 붓글씨를 쓸 때에는 筆毫의 탄성한계 내에서 前後, 左右운동 외 上下運動으로 提按動作을 하므로써 글자의 굵기를 변화시키므로 이 때의 h는 변화하게 된다. 이 때의 이 변화를 순식간에 적응할 수 있는 힘,
바로 이것이 筆力이라는 말이다.
이 筆力은 被動的인 일면과 主動的인 일면이 있다.
被動的인 일면은 지면의 不平, 紙張의 不均, 심리상태의 돌변 등에 부득불 적응해야 된다는 말이고 主動的(능동적이라고도 할 수 있음) 일면은 작가의 흥분상태에 따라 이런 동작이 주동적으로 가해진다는 말이다.
즉 被動 상태에서는 외부로부터 오는 변화를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고 주동상태에서는 내부로부터 가해진 명령을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런 힘이 오른 사람은 그가 휘호하는 과정에 △h가 외계의 영향과 거의 상관없이 자유로이 변화를 완성하게
되는데 이때 옆에서 그의 글쓰는 팔을 다쳐도 그 팔은 시 원상태로 회복되는 정도의 힘을 갖게 된다.
알 수 있는바 이런 힘은 그 무슨 力學的 힘이 아니다. 따라서 붓을 힘주어 잡는 것과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여기에서 소동파는 오래동안 내려오면서 붓을 꽉 잡아야 글씨를 잘 쓸 수 있다는 틀린 관점을 바로 잡아 놓은 것이다.
그러면 執筆은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아래에 소동파의 다른 한구절을 보기로 하자.
“把筆無定法, 要使虛]而寬. 歐陽文忠公謂余 ‘當使指運而腕不知’, 此語最妙”
[譯文] 붓을 쥐는 데는 고정된 법이 없이 虛하고 (掌虛를 말하는데 손바닥안이 비어 있어야 한다는 뜻) 寬해야 한다.(긴장하지 말고 느슨하게 해야 한다는 말) 구양문충공(歐陽修를 가리킴)은 나에게 “손가락이 움직임을 손목이 몰라야 한다”고 말하였는데 이는 가장 묘한 말이다.
[注釋] 여기에서 소동파는 왕헌지처럼 붓을 힘주어 쥐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손가락은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으며 그 움직임은 손목이 감각할 수 없는 정도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바 붓글씨를 쓰는 우리의 손은 로봇의 손이 아니라 손목, 팔, 온 몸과 유기체로 배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서예학원을 돌아 보노라면 어떤 이들은 붓잡은 손이 로봇의 손일 뿐만 아니라 팔과 손목도 로봇이 되여 한 획을 그을때 손팔이 고정되고 온 몸이 따라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움직이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인 움직임을 제창하는 것이다.
예를들면 탁구운동선수가 볼을 깍을 때 오른손이 위로, 또 좀 왼쪽으로 운동하는데 운동선수의 상신은 그와 반대편으로 유기적인 움직임을 해야 할 것이다.
행진하는 사람이 오른 발을 앞으로 내디딜 때 오른 손은 유기적으로 뒤로 움직여야지 같이 앞으로 나간다면 실상 우스깡스러운 것이 아닌가.
소동파의 말대로 정상적인 사람은 오른 발이 앞으로 갈때 오른 손이 뒤로 간다는 것을 감각하지 못할 정도 자연스러운 것이니 우리가 붓글씨를 쓸 때 손가락의 움직임은 손목이 못느낀다는 말도 묘한 말이라고 봐야 하겠다.
여기에서 일부 한국인들이 붓글씨를 쓸 때 손가락은 움직이지 못하며 捻管(붓대를 유기적으로 돌리는 것)은 불가
하다고 하는 것도 좀더 생각해 봐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아래에 소동파의 말을 한마디 더 들어보자.
“方其運也, 左右前後, 却不免歡側, 及其定也, 上下如引繩, 此之謂‘筆正’, 柳誠懸之言良是.”
[譯文] 운필할 때 좌우전후로 (붓이) 경사지게 됨을 면할 수는 없으나 그것을 上下로 볼 때 마치 끈을 드리운 것처럼 (수직되게) 하는 것이 ‘筆正’이라고 할 것이니 柳誠懸(柳公權의 字가 誠懸임)의 말이 매우 옳은 것이다.
[注釋] 운필하는 과정에 붓이 좌우전후로 넘어질 수는 있지만 총적으로 그 중심선은 수직되여야 만이 中鋒運行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偏鋒運筆을 현대에 와서는 용허하고 있는 상태이지만 中鋒할 줄을 모르고 편봉을 쓴다는 것은 안 될말이라 하겠다.
붓을 연필 쥐는 식으로 경사지게 쥐고 쓴다면 筆腹이 아래에 닿고 붓끝이 위에 닿아서 한 획의 윗쪽은 곧게 나가지만 아랫쪽은 파도를 이루게 되니 이것이 집필을 잘못할 때 생기는 폐단이라 하겠다.
소동파의 말대로 집필엔 고정된 법이 없다지만 그래도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집필법이 있을 것이 아닌가? 아래에 沈尹默이 쓴 <書法論>에서 執筆에 관한 부분만을 적어 놓기로 한다.
“書家는 집필법에 대해 종래로 각기 부동한 주장을 갖고 있지만 나는 그 중의 한가지만은 정확하다고 승인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바로 二王으로부터 전해져 내려오고 당나라 陸希聲에 의해 서술되었던 把, 壓, 鉤, 格, 抵의 五字法이다.
筆管은 다섯손가락으로 쥐게 된다.
매 손가락마다 각기 자기의 쓸모가 있는데 선인들이 把,
押, 鉤, 格, 抵 다섯자로 그를 설명하는 것은 퍽 의의가 있는 것이다.
다섯 손가락이 각기 다섯 글자가 내포한 뜻대로 할 때에야 筆管을 온당하게 잡을 수 있고 잘 운용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이 다섯글자의 의의에 대해 하나씩 설명하고자 한다.
把자는 엄지손가락의 작용을 말하는 것이다.
엄지손가락의 배 쪽으로 힘주어 筆管의 안 쪽에 바싹 대는데 마치 피리를 불때 피리 구멍을 막아주는 것과 같지만 좀 경사지게 위로 향한다는 데서 이 글자로 설명하게 된다.
壓(=押)자는 식지의 작용을 설명한다.
押字는 구속한다는 뜻이 있다.
식지의 첫마디로 경사지게 아래로 筆管의 바깥측을 힘주어 대여 주는데 엄지 손가락과 내외로 맞대이면서 서로 배합하여 筆管을 잡아준다.
이렇게하여 筆管은 이미 온당하게 잡혀졌지만 그래도 기타 세 손가락의 도움으로 執筆을 완성해야 한다.
鉤자는 중지의 작용을 말한다.
엄지, 식지가 이미 筆管을 잡았으므로 중지의 첫번째와 두번째 마디를 구부려서 마치 갈고리처럼 筆管의 외면을 걸어준다.
格자는 무명지의 작용을 말한다.
格字는 막는다는 뜻인데 揭자를 쓸 때도 있다.
揭자는 막는다는 뜻 외에 밖으로 민다는 뜻도 있다.
무명지는 손톱과 살이 이어지는 곳으로 筆管에 바싹 대이고 힘있게 中指가 안으로 걸어 당기는 筆管을 막아주며 밖으로 밀어준다.
抵자는 새끼손가락의 쓸모를 말한다. 抵자는 바쳐준다는 뜻을 갖고 있다.
무명지의 힘이 작아 단독으로 中指가 안으로 걸어주는 筆管을 막아 주고 밀어 줄 수 없으므로 새끼손가락으로 무명지 밑에 바쳐서 힘을 더해 주어야 그 작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 손가락이 이렇게 결합되여 筆管을 긴밀하게 싸 쥔다.
새끼 손가락이 무명지 아래에 대여 있는 외에 기타 네손가락은 모두 筆管에 직접 대여 있게 된다.”
소동파의 논술은 형상적으로 執筆을 말했다면 沈尹默의 논술은 구체적으로 執筆을 말했다고 본다.
붓을 쥐는 데는 고정된 법이 없다.
하지만 붓을 어떻게 쥐는가에 따라 글씨의 풍격도 변할
수 있고 힘드는 정도도 달라질 수 있다.
소동파(1037~1101)는 지금부터 약 천년전의 사람이다.
虞◑는 南朝·宋·泰始年間의 書法家인데 <論書表>를 쓸 때는 明帝泰始六年이니 公元470年이다.
그 때로부터 근700년 후에야 소동파에 의해 執筆에 관한 오류적인 견해를 시정하게 되었다면 소동파로부터 또 천년이 지난 오늘까지 그런 오류적인 견해를 고집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꽤나 놀랄만한 일이라 하겠다.
옛날에는 인쇄술이 발달 못됐고 서법의 전파가 가족이나 師承관계에 의해 실현되었으므로 그 관점이 아무리 오류적이라 할 지라도 봉폐된 전파매체로 뿌리깊게 계승되어 나올 수 있었다면 오늘의 한국 현실에서는 왜 이런 오류가 있을 수 있는가?
분산되고 고립적인 서예학원은 학원지간의 교류를 거의 허용하지 않고 있으며 학원내에서 스승은 거의 신성한 존재로서 그 어떤 견해든지 무자비하게 注入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의 원인이라면 다른 하나의 원인은 배우는 사람이 듣는데만(스승의 가르침) 그치고 (책을) 보지 않는
데 있다.
총명이란 말은 耳聰目明에서 나오는데 귀로 듣는데 총기가 있고 눈으로 보는데 밝다는 말이니 듣기도 해야 하겠지만 많이 봐야 한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특히 현시대의 문명이 정보시대로 돌입하는 이 때에 책을 많이 보는 것은 縱적으로나 橫적으로 지식을 습득하
는 좋은 도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시름없이 쓴 독서필의라 부당한 점이 많으리라 생각되니 서예동인들의 가르침을 정중히 기다리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