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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韓의 모든 산줄기를 걷고 있는 산꾼-申京秀 동문
우리는 7월 서울 왕십리역 대합실에서 만났다. 산에서 내려와 등산객의 복장이었다. 44년 만에 만났지만 우리 둘의 대면은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미소 띤 얼굴은 머리카락의 숫자만 줄었을 뿐 고등학교 때와 변함이 없었다. 이 사람이 남한의 산줄기를 모두 타고, 산줄기에 이름을 붙이는 신경수 그 사람이란다. 2000년대 초 산을 자주 찾을 때 즐겨 찾던 한국의 산하라는 사이트에서 신경수라는 이름을 보았으나 그가 고등학교 동기 신경수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다 최근 최세영 사무총장으로부터 동일인임을 알고 만나기로 하였다. 명함을 보니 그는 紫霞라는 아름다운 號를 쓰고 있다.
2011년 소양용화단맥 용화산에서
- 紫霞, 오랜만에 만났다. 졸업 후 처음이다. 우리가 1학년 때 같은 7반이었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말해달라.
= 1951년 5월11일 6.25 전쟁 중에 태어나 누구나 그랬겠지만 어려운 어린 시절을 신촌에서 자랐다. 창천초등학교를 다니며 제일 부러웠던 것이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과외를 받는 것이었다. 그래도 용산중학교 시험에 붙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라. 그리고 동계진학을 하여 무난하게 학창생활을 하는 듯 했는데 고등학교 2학년 1학기 초 태평양전쟁에서 살아오신 아버지께서 그때 얻은 지병으로 돌아가시고 나는 2학기를 시작하자마자 수락산에서 야영을 하다 휘발유버너 폭발로 전신화상을 입어 1년간 치료를 하던 중 할머님까지 돌아가시니 3학년 1학기까지 학교를 건성으로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시험운은 있어 한양대 공대에 무난히 합격하여 꿈 많은 1학년을 보내던 중 이번에는 2학년 1학기에 어머님을 사고로 하늘나라로 보내드리고 학교는 휴학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밑으로 동생 3명이 있어 그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그리 한 것 같다. 禍不單行이라던가. 이듬해에는 여동생마저 사고사로 잃어 되는 일이 없고 조금 남겨주신 재산마저 모조리 탕진하고 말았다.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참으로 후회되는 일이다.
- 어려운 젊은 시절을 보냈구먼. 학교를 그만둔 뒤에는?
= 공무원시험에 합격하여 공직생활을 시작하여 가끔 근교산을 찾으며 평범하게 지내오며 결혼도 하고 야간대학교를 다니며 못다한 학업도 계속하였지.
- 먼저 산이야기를 듣기 전에 학교 때로 잠시 돌아가 보자. 중 고등학교 때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 중학교 때는 특별활동으로 규율부 활동을 하고 음악선생님이신 안병원 선생님의 허락 하에 독학으로 피아노를 공부하던 중 일제시대에 쓰던 악기들이 지하창고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선생님을 졸라 밴드부를 창설했어. 그러나 중3이 되는 바람에 활동을 못하게 되어 얼마나 아쉬웠는지 몰라. 용산고등학교 시험에 합격하여 중학교에 이어 규율부 활동을 계속하면서 문예부 활동을 하였다. 문예부에서 ‘가리방’을 긁어 문학지를 만든 기억과 검도부 활동 중 선배들이 후배들을 훈육한다는 미명하에 허벅지에서 피가 나도록 죽도로 맞은 사건이 발생해 그만 두어버린 기억이 나는구먼.
교외활동으로 소위 그 당시 일류 남녀고등학교 학생들로 이루어진 서우회라는 문예서클에서 활동을 하였다. 회원 중 여학생 아버지가 교육감이었는데 그 분이 자신의 반대에 불구하고 딸이 계속 나가자 불량서클로 오해를 해 무기정학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러다 당시 회장이던 정지용 군(경기고)이 교육감을 찾아가 설득한 결과 오해가 풀려 없던 일로 대반전이 일어난 일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그 때 그 회원들 중 맘이 맞는 선후배 몇 명은 지금도 만나고 있다. 하여튼 그 당시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내 나름대로는 꽤나 설치고 다닌 모양이야.
- 산에 가게 된 계기는 ?
= 앞에도 얘기했지만 공무원으로 있으면서 결혼도 하고 공부도 하던 중 1994년 당뇨증세가 발견돼 당뇨 극복을 위해 일주일에 야간산행을 합쳐 보통 3일을 북한산을 찾는 생활을 계속했지. 처음에는 북한산만 휴일과 토요일 오후 그리고 하루는 야간산행으로 즉 일주일에 최소 3일은 무조건 찾게 되었고 그런 생활을 1년을 하다가 보니 북한산 구석구석 안 가본 곳이 없는 북한산 매니아가 되어 있더라구.
산은 연결돼있다는 후배말 듣고 산줄기 타게 돼
- 산행을 하게 된 동기랄까 계기까지 이야기 하였네. 그러면 산줄기 타는데 집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 일반산행만 해오던 나에게 모든 산은 연결이 되어있다는 후배(25회)의 말을 듣고 지형도와 나침반을 읽는 방법을 혼자 배워 맨 처음 그린 마루금이 한북정맥이었어. 그게 1996년도 초이었다. 그때부터 單山을 오르는 일반산행을 접고 산줄기 사랑에 빠지게 되었지.
鐵原 수피령부터 시작하여 坡州 장명산에서 그 끝을 보았지. 사실 그 시절은 산줄기에 대한 개념이 확고한 선각자들 소수가 산줄기답사를 하던 시절이야. 登路도 확실치 않고 先踏者가 없으니 붙여놓은 시그널도 전혀 없고 지금처럼 GPS도, 산림청이나 지자체에서 설치한 안내판이나 이정표도 없던 시절이라 가끔씩 엉뚱한 곳으로 진행하는 속칭 알바도 심심치 않게 하던 시절이었지. 하여간 이 정도 체력이면 백두대간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드디어 대망의 백두대간 답사를 1996년부터 시작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종주기라는 것을 쓰기 시작하게 되었어. 내가 다녀온 경험을 後踏者에게 알려주어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였다.
- 얘기를 계속해달라.
= 그러던 중 旅菴 申景濬 선조께서 1769년 발간한 우리나라의 지리정보집합서인 “山徑表”와 조석필이란 분이 쓴 <태백산맥은 없다>라는 책을 접하고부터는 산경표 신도가 되고 말았어. 산경표는 오랜 옛날부터 그 지역의 방호를 위하여 고도로 발달해온 郡縣邑지도를 근간으로 하여 그 때까지 축적되어온 지리학적 지식과 정보를 학문적인 체계를 갖추어 족보형식으로 편찬한 책이야. 그래서 그때부터 산경표를 읽고 해석하기에 이르렀고 녹색연합 산하 단체인 녹색친구들 등산학교에서 해마다 “우리산줄기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계속하였어. 바로 그 우리산줄기이야기에서 산경표에 나오는 1대간 1정간 13정맥 이름과 흐름은 그대로 우리가 보전하고 그 외에 산경표에 이름이 없는 산줄기는 우리가 새로 이름을 지어 답사를 해보자하여 기맥 지맥 분맥 단맥의 개념을 도입하게 된 것이지. 1999년도 일이야.
- 말하자면 신경준 할아버지에 이어 신경수의 산경표가 만들어지기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구먼.
=건방진 얘기같지만 그렇다고 할 수 있다. 100km 이상 이어지는 산줄기와 산경표에 나오는 정맥 중 강줄기의 울타리를 제대로 치지 않고 다른 곳으로 흐르는 산줄기가 아닌 강의 울타리를 올바로 치는 산줄기는 100km가 안되더라도 높을 岐자를 써서 岐脈이라 하고, 그 시절 40대 중반인 내가 이틀 이상 걸려야 답사를 할 수 있는 30km이상 100km미만의 산줄기를 가지 枝자를 써서 枝맥이라 하고, 하루에 주파할 수있는 10km이상 30km미만의 산줄기를 짧을 短자를 써서 短脈이라 부르고, 10km미만인 산줄기는 원산줄기에 포함되는 것으로 보면서 단 특별한 경우에는 남을 餘자를 써서 餘脈이라고 부르자고 정의를 하였어.
그리고 그러한 산줄기 개개에 대해 이름을 지을 때는 그 산줄기가 어디서 왔는지 그 족보를 밝히기 위해서 대간 정간 정맥 기맥의 이름을 앞에다 가져다 놓고 그 산줄기중 지명도가 제일 많거나 제일 높거나 하여간 합당한 지명을 연결해서 이름을 짓자고 정의를 하였다. 예를 들어 백두대간 삼도봉에서 서쪽으로 분기한 산줄기가 있어. 그 산줄기중 제일 높고 지명도가 높은 민주지산의 이름을 가져오고 백두대간에서 분기하였으므로 모산줄기인 백두대간에서 백두를 가져왔어. 그 다음 분기한 산줄기중 제일 지명도가 높은 민주지산을 가져와 백두민주지지맥이라고 이름을 지을 수 있을 거야. 이러면 전국에 있는 모든 산줄기들의 이름을 다 지을 수가 있지. 그러나 이때까지는 개념정의만 해놓고 가고자하는 곳의 지형도를 구입해 마루금을 긋고 답사를 하던 중이라 전국적인 현황을 파악할 여지가 없었어.
쉬는 날이면 특별한 일이 없다면 무조건 무박산행을 떠났는데, 그때 몇몇 산악회 신세를 지면서 홀로 산행과 안내산행을 병행하다보니 한계가 있어 오로지 혼자 산줄기답사를 하기 시작했어. 혼자 하는 외로운 처지가 되고 말았지만 아이들을 다 키운 집사람이 길동무가 되어 한동안 같이하다가 집사람마저 허리가 안 좋아져 산행을 포기하기에 이르러 다시 솔로가 되었지.
2001년 <한국의 산하>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알게 되고 그동안 정리를 해놓은 모든 자료들을 올려 전국의 모든 등산인에게 공개했어. 그동안 “우리산줄기이야기”를 매년 수정 보완하고 있고 “우리산줄기로 본 산이야기” “내고향 산줄기이야기” “우리산줄기별 산줄기이야기” “산경표읽기” “산경표풀어쓰기” “우리산줄기수체계도” 등 수많은 답사기 등을 <한국의 산하>에 공개하였네.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지금도 그때의 자료들을 그대로 인용하는 블로그나 카페들이 많이 있네.
- 대단한 열정이다. 산줄기 이야기를 더하기 전에 대간 정간 정맥에 대해 설명해달라.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정리하는 의미에서.
= 大幹부터 말하겠다. 新羅末 道詵國師의 <玉龍記>에는 “우리나라가 백두에서 시작하여 지리에서 마쳤으니 그 형세가 물을 뿌리로 하고 나무를 줄기로 하는 한 땅이라....”라고 씌여있고 17세기 李瀷의 <星湖僿說>에는 “백두산은 우리나라 산맥의 祖宗이다....(중략) .... 대체로 일직선의 큰 산맥이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중간에 태백산이 되었고 지리산에서 끝났으니....”라고 적혀있다. 바로 이 산줄기를 우리나라 모든 산줄기의 기둥으로 삼고 오직 하나밖에 없는 커다란 산줄기라 하여 대간이라는 격을 부여하면서 이름도 백두를 붙여 백두대간이라고 한 것이지. 실제로 보면 이 백두대간은 나라의 높고 험한 산 대부분이 들어있고 나라를 동서로 나누고 있어. 백두산에서 지리산 천왕봉까지 도상거리 약 1625km, 실제거리 약 2200km나 돼. 또 백두대간에는 우리나라 10대강을 모조리 품고 있어. 북쪽부터 두만강 압록강 청천강 대동강 예성강 임진강 한강 금강 섬진강 낙동강.
- 그러면 正幹 正脈은.
= 정간은 長白正幹 하나야.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함경북도 지형을 북동쪽으로 두만강유역과 동해안유역으로 갈라놓는 산줄기야. 정맥은 강의 울타리이야. 그 끝은 바다이고. 다만 지형적인 또는 다분히 인습적인 이유 등으로 강에서 끝나는 정맥도 있지. 고로 어느 정맥의 능선에 서서 좌우를 내려다보면 그것은 전혀 다른 강이야. 그래서 정맥의 이름은 대부분 강에서 따왔지. 한강의 온전한 북쪽 울타리를 치는 산줄기는 한강의 북쪽이라고 하여 漢北正脈, 남쪽 울타리는 漢南정맥이라고 하듯 말이야. 산경표에는 모두 13개로 나와있지.
- 지금까지 공개한 자료를 간단하게 소개해달라.
= 2002년 봄 남한에 있는 1대간 9정맥에 이어 그때까지 일부 사람들에게만 알려져 있는 한강정맥(기맥) 땅끝기맥 진양기맥 답사를 마치고 나면서부터 그때까지 막연히 알고 있는 “山自分水嶺”이라는 산경표의 기본원리를 명확하게 알게 되었고 전국의 5만분의1 지형도를 모두 구입하여 마루금을 긋기 시작했지.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우리산줄기수체계도(가지식)”이야. 2003년부터 팔공기맥 위천기맥 등 각 기맥 산줄기 답사에 본격적으로 매진하면서 우리산줄기수체계도(가지식)에 거리 흐름 등을 표시할 수 없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고안해 낸 것이 2009년 4월에 완성한 “우리산줄기 樹體系圖(族譜式)”이야. 완벽하게 표 하나에 우리나라 산줄기와 산이 전부 들어가 있는 것으로, 이 안에는 1대간 9정맥 17기맥 120지맥 24분맥 약850개의 단맥을 합쳐 약1,000개의 산줄기와 수많은 여맥산줄기 등 우리나라 남한에 있는 모든 산들이 총망라되어 있으며 지맥(분맥포함)이상은 거리와 시점 종점까지 기록할 수 있게 되었지. 앞으로 계속 수정작업을 통해 각 지점간의 거리 방향과 단맥 여맥까지 흐름과 기점 종점을 기록할 예정이야. 지금까지 정리한 자료는물론 인터넷에 공개하였지.
정년을 얼마 안남기고 그동안 자료를 보전할 수 있는 방법이나 우리산줄기의 전반적인 내용을 전파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하다가 한창 유행하고 있는 블로그를 만들어 모든 사람들에게 자료를 제공하여 우리산줄기를 널리 알리고 싶어서 2010년 7월 블로그를 만들게 되어 현재 25만명 정도가 다녀갔어. 책으로 내는 것도 생각했는데 출판사에서 수익성이 없다며 자비로 내라고 하지만 그만한 여유가 없어 여태 못내고 있어.
남한 산줄기의 77%인 20000km 밟아•••지금도 주 2~4회 답사
- 그러면 밟아본 산줄기는 몇 개나 되나
= 이 族譜式樹體系圖에 따라 지난 2010년 11월 현재 1대간 9정맥 17기맥 120지맥 24분맥 총 171개 산줄기 약11,000km 정도 답사했다. 그 시점에서 아마도 인터넷 등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내가 아마도 전국 최초로 지맥급 이상 산줄기 답사를 완료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아닐 수도 있어. 이 세상에는 얼굴을 내밀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수양을 위해 정진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으로 생각되고 그분들은 자료도 남기지 않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지. 꼭 최초가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며 얼마만한 열정을 가지고 산에 대한 진실된 마음으로 답사에 임하였으며 그 마음이 변하지 않은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 후 약 850개 단맥산줄기를 꾸준히 답사한 결과 현재 약 400개 정도 답사가 끝나고 단맥산줄기를 전부 답사하기 위해 지금도 일주일에 2~4회정도 답사길에 오르고 있어. 몸이 마음을 따라줄 때까지 산줄기 답사는 계속할 것이야.
산을 다니면서 꾸준히 작업을 한 결과 2012년 말 “우리산줄기별산이름목록”과 “우리산줄기산이름분포현황”을 발표하게 되었지. 그 결과 우리나라 남한에만 이름이 있는 산봉우리가 총 8,600개 정도가 있는데 지금도 수정작업을 계속하고 있어. 아마도 앞으로 전국에 있는 모든 산줄기 답사가 끝나면 약 1만개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지금까지 단맥 산행을 계속해온 결과 약 600여개 산줄기 약 20,000km 정도 답사가 끝난 것으로 추정되네.. 10km이상 되는 산줄기 약 1,000여개의 합이 26,000km 정도이니 77% 정도 된 셈이야.
2011년 낙동장산대운분맥 대운산에서
- 언제까지 할 생각인가.
= 전부 답사 완료하는 시기는 내 나이 70 살로 잡고 있는데 주력이 급격히 줄어들고 여기저기 탈도 많이 나는 것으로 보아 몸이 따라가 주지 않을 것 같아 답답해.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몸과 마음이 따라주면 계속해야지.
- 자하에게 왜 산에 다니느냐고 묻는다면
= 이렇게 대답할게.
산으로 가는 행위는
하늘과 땅이 열려있는 공간으로 산으로 가는 행위는 가는 것입니다
모두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는 아무리 숨기려도 드러내는
산이 주는 혜택을 어떤 방식으로든지 우리는 누리고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세월이 변해도 억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산에 가서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이 있어 새처럼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은 산이 주는 축복입니다
나를 돌아보고 나를 잃어버릴 수 있는 곳
살아가는 동안 무수한 고통 속에서 어찌 먼저 죽어간 이들을 잊을 수 있을까?
산은 순간순간 잃어버릴 수 있는 기회를 자꾸 만들어줍니다
아무 대가없이 말입니다
그래서 열려있는 공간으로 나갑니다
산줄기의 원리는 山自分水嶺•••山脈은 日本人이 만든 엉터리
- 이왕 우리나라 산줄기 고수를 만났으니 산줄기에 대해 좀더 깊이 알아보았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산줄기의 특징이랄까, 본질이랄까를 설명해달라
= 우선 예로부터 있어온 <山徑表>와 <大東輿地圖>에 대하여 간단히 비교 설명을 하고 이야기하자. 무릇 모든 생물은 개개의 세포와 세포가 모여 하나의 가시적인 생명체를 만들고 그 작은 생명체들이 모여 서로 작용을 하는 과정에서 거대한 우주의 생명체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해. 이러한 불가분의 작용을 유기체적인 관계라고 하지. 우리 선조들은 산과 강을 이러한 하나의 유기체적인 자연구조로 보고 그 사이에 얽힌 원리를 찾는데 지리학의 근간을 두었다고 한다. 우리 산줄기의 구성원리인 山自分水嶺이란 말도 바로 이러한 유기체적인 사고에서 나온 범우주적인 철학관이었다고 할 수있지. 다음에 이야기할 산경표 등은 여러가지 구구한 이야기들도 많고 아직까지 공인된 것은 아니지만 바로 이러한 지리적인 인식체계를 가지고 우리 선조들께서 만드신 여러 지리서라는 생각을 해봐. 그 중에 1769년 여암 신경준이 펴낸 것으로 되어 있는 족보 형식으로 써 내려간 <산경표>라는 지리서와 1866년 고산자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가 그러한 노력의 한 결실이라고 볼 수가 있어. 앞서 얘기했듯이 산경표에선 우리산줄기를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분류해 놓았어. 이 산경표를 풀어서 지도로 작성하면 대동여지도가 되는 것이야. 두 분의 사신 것이 1세기가 차이가 나고 제작방식도 전혀 틀리는데 그 책과 지도가 일치한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사실이야. 한마디로 가슴 벅찬 이야기지.
산줄기 이야기를 하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사항이 몇 가지 있는데, 먼저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온 산맥과 우리 조상들이 언급한 산줄기가 어떻게 다른가야. 우리가 배워온 산줄기 예를 들어 태백산맥 소백산맥 차령산맥 등은 일본이 조선 강점을 기정사실화 해 가고 있는 무렵인 1903년 일본인 지리학자 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郞 1856~1935)가 14개월 동안 우리나라의 지질구조를 연구하고 “한반도의 지질구조도”를 발표하면서 그 때까지 통용되던 우리산줄기인 1대간 1정간 13정맥은 사라지고 산맥의 개념이 도입된 것도 모자라서 지리교과서에 실리게까지 된 것이다. 여기서 의심스러운 것은 그 당시의 기술수준으로, 그것도 개인이 단시간에 땅속의 지질을 알아내어 산줄기의 체계를 세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야. 아마도 식민지의 지하자원을 수탈할 목적으로 그리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생기는 대목이지. 우리 산줄기는 땅위에 실존하는 산과 강에 기초하여 산줄기를 그렸으며 그러므로 산줄기는 말 그대로 산에서 산으로만 이어지고 실제 지형과 일치하지만 일본인이 주장한 산맥은 땅속의 지질구조선에 근거하여 땅 위의 산들을 분류하였으며 그로 인해 산맥선은 도중에 강에 의해 여러 차례 끊기고 실제지형과 전혀 다른 인위적으로 가공된 산줄기가 되고 말았지.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그러나 면면히 흐르고 있는 우리의 누천년의 생활방식과 현재도 도도히 흐르고 있는 산줄기와 강줄기의 흐름이 어디 가나. 우리 산줄기가 얼마나 정확한가는 초등학교나 중고교 지리책에 나오는 기후대를 그려놓은 지도를 머릿속으로 그려보면 거의 100% 우리산줄기가 경계가 되는 것을 알 수가 있어.
- 자하의 이야기에 동감한다. 내가 지금 사는 곳이 江原道 春城郡(지금의 春川市) 北山面이었으나 소양댐이 만들어지면서 麟蹄郡 南面으로 행정구역이 변경되었어. 지금 날씨를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으로 면단위까지 검색하면 남면보다 북산면 날씨가 실제 날씨나 기온과 들어맞고 6백 내지 7백m 바로 산 넘어 洪川郡 斗村面과 우리 동네 날씨가 다를 때가 있어. 자하가 말한 산줄기로 군계를 정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지. 산줄기를 경계로 홍천군의 물은 홍천강으로 내려가고 우리 동네는 소양강으로 가서 청평댐에서야 만나니 작지만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네. 산줄기의 기본 원리가 山自分水嶺이라고 했는데 이 말을 풀이해주었으면 좋겠네.
=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산은 스스로 물을 가르는 고개라는 뜻인데 다른 마로 표현하면 “산은 물을 가르고 물은 산을 건너지 못한다.”라는 뜻이야. 더 쉽게 표현하면 “두 능선사이에는 계곡이 있고 두 계곡 사이에는 능선이 하나 있다". 그러므로 나라 안에는 산 없이 시작되는 강 없고 강을 품지 않은 산 없으니 산과 강은 하나인 것이지. 지도에 나라의 물줄기를 모조리 그려놓으면 나머지 공간은 모두 산줄기가 되는 셈이야. 이골 저골에서 물줄기가 모이고 모여서 하나의 강이 되어 결국 바다로 흘러가고 산줄기도 이산 저산 산줄기들이 여맥으로 단맥으로 지맥으로 기맥으로 정맥으로 정간으로 대간으로 모여들어 백두산으로 흘러가. 산과 강이 무질서한 것처럼 보여도 결코 서로 엉키거나 끊어지지 않고 물길이 있으면 어느 곳에서라도 강이 되어 바다로 흘러 나가고 어느 곳에서도 능선을 따라가면 백두산에 도착하게 되는 것이야. 산경표의 원리지.
金正浩 半島 憲法의 領土條項 鴨綠江 등 잘못 바로 잡아야
- 자하의 쓴 글을 보니 우리가 알고 있는 산줄기와 강, 영토에 대한 잘못 알려져 있는 게 있다고 했던데.
= 맞아.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을 알아야 앞으로 우리 산줄기를 찾는데 확고한 확신이 설테니까.
첫 째는 古山子 金正浩에 관한 이야기야. 10년 동안 팔도강산을 세 번, 백두산을 여덟 번 답사하여 대동여지도를 완성하였다는, 소가 자다가도 일어나 웃을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얼마 전 만하더라도 초등학교 교과서에 단골로 등장하였는데 이는 日帝强占期 때 날조된 내용임을 조금만 생각해보면 금방 그 답이 나와. 지금과 같은 측량기구도 없고 교통수단도 없는데 무슨 방법으로 전국방방곡곡을 측량하고 기록하여 지도를 만들었다는 말이야. 이는 일제가 김정호의 위대함을 비현실적으로 강조하여 그것도 몰라보는 조선왕조의 우매함을 입증하려 했고 정의롭고 개화된 일본이 이를 알아보고 이 지도를 이용해 청일전쟁 러일전쟁 토지조사 등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하며 그 가치를 아는 문화국가인 일본이 조선을 다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우민정치를 하기 위한 조작극이라는 것을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지. 사실 김정호는 백두산을 오른 적도 없고 전국을 답사한 적도 없고 오로지 그의 작업실에서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郡縣지도를 입수하여 그 축적을 바꾸고 내용을 통일시키고 그것을 과학적으로 재구성하였어. 즉 김정호는 초인적인 산악인도 아니요 신비한 측량기사도 아닌 위대한 지도제작자 편집자였던 것이지. 참고적으로 1997년부터 초등학교 교과서에 있는 김정호의 지도제작 과정에서 답사설이 사라지고 오로지 애국심과 애민정신으로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고 수정되었음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지.
두 번째는 헌법에 대한 이야기야. 대한민국 헌법 제1장 제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되어 있는데 도대체 뭐가 잘못 되었을까? 그것은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라고 역사적으로 더 내줄 것도 없는 최소한의 영토를 획일적으로 확정지어 더 이상 앞날의 발전 가능성을 포기하고 말았다는 것이야. 세계 많은 나라들은 헌법상에는 영토규정을 두지 않는다고 해. 왜냐하면 미래는 알 수가 없고 때가 오면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시절의 영토를 주장하겠다는 것이지. 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의 영역은 역사적 합법적 권리에 의한 그 고유의 영역으로 한다”로 바뀌어야 한다고 백두문화연구원이나 한국땅이름학회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
세 번째는 반도라는 말을 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야. 반도는 글자 그대로 반섬이란 뜻으로써 일본이 지어낸 용어이야. 자기네들은 온전한 섬인 全島이고 우리는 전도에 부속되는 반만 섬인 半島라는 뜻으로 일본이 근본국가이고 한국은 속국이란 뜻으로 지어낸 것이라고 생각해. 반도로 번역된 영어의 peninsula는 바다로 쭉 뻗친 대륙의 줄기라는 뜻으로 해석이 되는데 어찌 섬나라 사람들이 대륙의 일부를 가지고 섬과 비교하면서 우열을 가릴 수가 있는 것인지 어이가 없어. 뜻있고 힘있는 분들이 이의를 제기하고 토론하고 공인된 기관이나 학계에서 연구하게 하여 뭔가 다른 용어로서 정립하였으면 좋겠어.
네 번째는 鴨綠江 이야기야. 우리나라 지리 관련 책자 거의 모두가 압록강의 길이를 790km라고 적어 놓고 있어. 최장 길이의 하천 본류를 생략하고 국경하천을 측정한 수치로서 즉 백두산 남서 계곡에서 시작하는 물길을 잡아 계산한 것이야. 실질적인 압록강은 삼수지나 혜산 5km전 남쪽으로 흐르는 허천강을 본류로 삼아야 할 것이야. 산경표상 풍산 밑의 향령 태백산 근방 도면상 희사봉 근방이 발원지가 되는 것이지. 그러면 압록강의 길이는 925.5km가 되는 셈이지. 지금까지 압록강과 두만강은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하여 압록강은 서쪽으로 흐르고 두만강은 동쪽으로 흘러 우리의 국경을 구분 짓는다고 알고 있지. 과연 그럴까? 다녀온 동문도 많겠지만 한번 머리로 상상을 해봅시다. 압록강도 물, 백두산 천지도 물, 두만강도 물. 그러면 흐르는 방향만 틀리고 압록강과 두만강은 서로 물로 통해있다 하겠는데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섬이라는 이야기가 되는데. 이 무슨 허무맹랑한 얘기란 말이야? 어느 호수에 갇혀있는 물은 그 울타리 중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내리게 되어있어. 가장 낮은 곳이 두 군데가 될 수가 없기 때문에 자연의 이치에도 맞지 않는 말이야.
우리의 백두산 천지의 물은 오로지 達門으로 나와 長白폭포로 떨어져 二道白河를 이루며 松花江으로 흘러들어 黑龍江과 연결돼. 강이 있으면 그 양옆으로 산줄기가 존재하는 법. 그러므로 현재 우리의 백두산 백두대간은 그 산줄기가 만주로 연결되어 있다고 봐야해. 무협소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장백산맥, 천진산맥, 곤륜산맥을 지나 히말라야에서 끝을 맺는 실로 장대한 산줄기의 일부이지. 여기서 적당한 용어가 없어 습관대로 산맥이라는 용어를 쓸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어. 참 여기서 두만강도 마찬가지야. 무산에서 나라 경계를 빠져나와 서두를 지나 장백정간과 백두대간이 만나는 두류산군 장산에서 발원한다고 볼 수 있어.
아마도 우리나라가 섬이라는 것을 암시하여 자기네와의 동질성을 강조하고 반도라는 황당한 단어에 타당성을 불어넣기 위해 그리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가는 대목이야.
마지막 다섯 번째는 태백산맥에 대한 이야기야. 앞에서도 말했지만 우리 산줄기를 없애버리고 지도 위에 까만 사인펜으로 아무렇게나 북북 그어서 만들어낸 산맥들 중 태백산맥은 “한반도의 最長山脈이며 脊梁山脈으로 나라를 동서로 가르고 있다” 고 일본인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내용이야. 과연 그럴까. 아니야. 결코. 그들은 우리의 백두대간을 없애버리고 그 백두대간의 일부를 포함하고 잔가지를 덧붙여 크게 5개의 산맥으로 토막치고 말았어. 마천령산맥, 함경산맥, 낭림산맥, 태백산맥, 소백산맥으로.
그렇다하더라도 백두산에서 제일 가까운 마천령산맥에 백두산이 들어 있어야 하는데도 백두산이 지도에서 사라지고 말았어. 히말라야까지 연결되는 백두산이 없어져 버리다니 이 무슨 황당무계한 일인가? 민족의 성스러운 산, 단군왕검께서 나라를 세우신 곳, 백두산인데 거기서부터 나오는 민족의 자존심인 백두산을 없애버리므로 민족성을 말살하여 영원한 속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리했다고 한다. 그리고 동쪽으로 치우친 태백산맥이 나라의 등뼈라고 강조한 것은 지도를 잘 보면 알겠지만 진짜 태백산맥이 등뼈라면 중국에 허리를 깊숙이 숙여 절을 하는 노인의 모습으로 보일 것이야.
이유야 여하튼 물을 건너고 잔가지를 붙여서 일본이 날조해서 만든 태백산맥은 없다는 것이야. 오로지 백두대간만이 있는 거야. 우리 백두대간을 한번 봐. 당당하게 배를 앞으로 쭉 내밀고 가슴을 젖혀 목을 빳빳이 세우고 중국의 북경땅을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거나 호랑이가 앞발을 들고 만주땅을 할퀴는 형상처럼 보이지 않나? 일본인이 주장해 온 토끼같은 우리나라 지형은 역시 일본인이 한국인을 비하시키려고 만들어낸 이야기야. 토끼이야기는 바로 고토 분지로가 주장했다는 거야. 우리 산줄기에 대한 왜곡현상이 어느 정도인지 알겠지.
2012년 속리산 만수동계곡에서
산줄기勢와 길이 등에 따라 岐脈 枝脈 端脈 餘脈으로 分類
-어느 인터뷰에서 자하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 울컥하며 우리 산줄기에 대한 열정이 다시 살아날 정도라는 표현이 이해되는구먼. (申京秀 동문을 인터뷰한 <월간 산> 2014년 1월호에 이런 글이 나온다. (前略)...10년이 넘게 산줄기 강의를 해 온 탓에 이제는 산경표에 관한 달변가가 되었다. 산 좀 다닌 사람이라면 아는 내용인데도 그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 울컥하며 우리 산줄기에 대한 열정이 다시 살아날 정도로 솜씨 좋은 웅변가다(後略)... ) 이제 대간이니 정맥이 하는 말은 많이 알려져 있으니 紫霞가 만든 개념인 岐脈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 기맥이란 독립된 강을 가르는 분수령이되 강이나 산줄기 크기가 정맥보다 작은 것으로써 원칙적으로 그 끝이 바다에 이르는 산줄기를 정의했지. 예를 들면 호남정맥 내장산에서 분기하여 영산강의 북쪽과 서쪽 울타리를 치고 있는 영산북(서)기맥은 목포 유달산 바닷가에서 끝이 나요. 또한 이 영산강 남쪽 울타리는 영산남(동)지맥으로 역시 전남 영암군 삼호읍 용당리 목포등대 앞에서 목포시가지 유달산을 바라보며 만나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서해바다가 되고 말아.
물론 예외도 있어. 정맥의 반열에 들어도 부끄럽지 않은 세를 가진 漢江岐脈은 백두대간 오대산에서 분기하여 시종일관 북한강과 남한강을 나누며 서진하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兩水里에서 한강물과 합치는 산줄기야. 즉 이처럼 강에서 끝나는 기맥도 있다고 말 할 수 있어.
이 한강기맥은 차라리 정맥의 반열에 들어야 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 우선 산경표에서 언급한 산줄기 중 백두대간이 그 흐름을 낙남정맥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바닷가가 아닌 지리산 천왕봉에서 끝나버리고 말고 금남정맥이 바다하곤 거리가 먼 충남 부여읍 부소산 금강변에서 끝을 내듯 산경표에서조차 어떠한 이유를 가지고 강과 바다와 무관하게 정맥의 줄기를 이루고 있어. 또한 한강기맥은 그 세와 길이와 흐름이 산경표에서 언급한 어떤 정맥보다 뚜렷하고 중후하지. 굳이 비교하자면 한남금북정맥 금남호남정맥 금남정맥은 물론 한남정맥 금북정맥 낙남정맥도 그 세와 흐름에 있어서 한강기맥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야. 또한 북한강 남한강의 유장한 흐름이 다른 어떠한 강보다 힘차고 길어. 그 길이를 재본 것은 아니지만 북한강 남한강은 두 강 모두 청천강 대동강 예성강 임진강 금강 섬진강보다 길거나 비슷할 것으로 추측되고 이 산줄기에서 100km이상 되는 기맥 수준의 산줄기가 2개나 갈라져. 그 하나는 치악산 국립공원으로 치달리는 가칭 치악기맥이 분기하고 또 하나는 홍천강 북쪽 울타리를 온전히 치고 있는 가칭 홍천기맥이지. 자네의 집 근처 산줄기가 홍천기맥이야. 이러한 몇 가지 이유만으로도 한강기맥은 정맥으로 분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해. 한강정맥 즉 한강기맥은 백두대간의 오대산 두로봉에서 서쪽으로 갈라져 나와 계방산 운두령 운무산 대학산 용문산 유명산 소구니산 양평의 청계산을 지나 양수리까지 도상거리 약 155km 정도의 산줄기야. 구체적으로 정의하면 백두대간이나 정맥에서 갈라지는 100km 이상 산줄기와 그리고 산경표의 정맥과 달리 최근 실제 답사로 드러난 산줄기 등 이 두 가지를 기맥이라고 부르기로 했어. 즉 산경표에 나타난 금북정맥 금남정맥이 온전한 물가름을 하지 못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흐름을 탄 것으로 답사결과 드러났는데 물흐름을 가르는 실제의 금북정맥 금남정맥의 산줄기를 정맥이라고 칭할 수는 없고 따로 기맥이라고 하는 게 옳다고 보았어. 왜냐하면 이미 산경표에 정맥이 정의되어 있기 때문이지. 기맥까지는 독립된 산줄기를 형성하고 있으니 당연히 독립된 이름을 부여하는 게 맞아.
온전한 강줄기를 구분하고 있으면 산경표의 원리를 적용하여 그 강의 이름을 붙였지. 그러한 산줄기로는 “한탄기맥, 소양기맥, 홍천기맥, 위천기맥, 내성기맥, 금북기맥, 금남기맥, 영산기맥“이 있고 온전한 하나의 강줄기를 가르지는 못해도 기맥 반열에 든 산줄기는 그 산줄기 중 유명한 산이름이나 지명을 빌어 이름을 붙여보았어. 치악기맥, 팔공기맥, 비슬기맥, 가야기맥, 진양기맥, 땅끝기맥, 고흥기맥이 그것이지. 그런데 이 이름들은 앞으로 강줄기를 가르는 곳으로 검토를 다시 할 생각이야. 그 때는 이름이 바뀔 공산이 크다고 할 수 있지.
예외적으로 100km가 살짝 안되는 약 99km로 지역적 색을 가지고 있는 즉 우리나라 지형상 동쪽 끝 호미곶에서 끝나는 형산강의 온전한 남쪽 줄기를 이루고 있는 산줄기가 있지. 산경표의 원리대로라면 형(산)남지맥이라고 불러야 하고 내 이론대로라면 낙동토함지맥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길이도 좀 짧고 세도 좀 약하지만 지맥이라고 부르기는 좀 안타까운 면이 있어 땅끝기맥과 같은 맥락으로 동끝기맥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이미 먼저 답사를 마친 울산 포항 경주 대구 산님들께서 형남기맥이라고 명명하셨으니 그 분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나도 형남기맥이라고 부르기로 했지. 물론 앞으로 관계기관이나 학계에서 공식적으로 이름이 정해진다면 그에 따르겠지만. 내가 알고 있었거나 새로 찾아낸 기맥은 이상 17개가 있고 이중 내가 먼저 밟은 산줄기는 12개야. 이러한 기맥들은 찾는 이가 없어 등로가 없거나 흔적 정도 있을 뿐이야. 산줄기는 아니더라도 그 지방 사람들이 사랑하는 산들은 예외로 등로가 좋은 구간도 많이 있었어.
이 산줄기들의 답사가 끝나면서 얻은 결론은 역시 우리 산줄기는 예외없이 산으로, 산으로 이어진다는 점이야. 예외가 있다면 물길을 인위적으로 돌려놓거나 평토작업을 해 평지로 만들었을 경우뿐이야. 그래도 우리가 눈으로 보고 알지 못할 뿐이지 어디선가 물줄기를 가르는 선을 있을 것이야. 그렇지 않다면 강과 내와 천이 서로 뒤엉켜 우리의 땅은 수많은 섬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 말일세. 이로써 우리나라 남쪽에만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산줄기는 주맥으로 1대간 9정맥 17기맥이 있다고 할 수 있지.
- 산들이 겹쳐 보이는 중에서도 줄기가 보이는 듯하네. 한강기맥 말고 기맥 몇 개만 간단하게 설명해 줄 수 있나.
= 북쪽에서 산줄기 흐름에 따라 남쪽으로 살펴보면 한탄기맥은 한북정맥 분수령 근방 천산에서 서남쪽으로 분기하여 대부분 이북땅을 가르며 신성산 소이산 야월봉 천덕산 군자산을 지나 연천군 군남면 남계리 도감포에서 한탄강이 임진강을 만나 임진강물이 되는 산줄기를 말하며 남한구간 약 48.3km 정도의 산줄기이야.
소양기맥은 백두대간 금강산 남쪽 무명봉(산경표상 회전령)에서 서남방향으로 분기하여 도솔산 용늪 대암산 봉화산 사명산 오봉산(청평산) 춘천의 우두산 백노주에서 소양강이 북한강과 만나 북한강물이 되는 도상거리 약 123km 정도의 산줄기이고, 홍천기맥은 한강기맥 홍천 운무산 부근 청량산에서 북쪽으로 분기하여 소양강 남쪽과 홍천강 북쪽 울타리를 치며 매봉산 응봉산 소뿔산 홍천고개 가락재 대룡산 연엽산 봉화산을 지나 홍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본말마을에서 북한강물이 되는 도상거리 약 128km 정도의 산줄기를 말하지.
- 잠깐 쉬어가는 이야기 하나 하자. 앞서도 말했지만 홍천기맥은 현재 내가 사는 동네 근처를 지나고 홍천군과 인제군을 나누는 산줄기이네. 44번 국도로 차를 타고 서울을 왕래하다보면 이 산줄기를 넘게 되는데 양쪽에 내린 비나 눈의 양이 다른 경우가 많아. 또 하나. 내고향은 京畿道 坡州 交河일세. 한강과 임진강이 합치는 곳이어서 交河라고 한다네. 처음 산줄기를 탔다는 漢北正脈의 실제의 종착산(이 말이 맞나?)에 대해 물어봤으면 하네. 산경표에는 장명산으로 나오지. 이 점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네. 장명산은 교하에 있는 산으로 초등학교 때 소풍가던 산인데 그 산 밑을 흐르는 곡릉천은 한강으로 흐르고 진짜 한강과 임진강의 만나는데 있는 산은 그보다 약간 북쪽에 있는 오두산이네. 통일전망대가 있는 산이지. 한북정맥이 한강과 임진강을 가르는 산줄기라면 오두산에서 끝나야 맞지. 그러니까 紫霞의 말은 산경표상의 한북정맥은 놔두고 실제로 한강과 임진강을 가르는 한북정맥을 한북기맥이라고 부르자 이 말이구먼.
= 그렇지. 그런데 이 한북정맥은 좀 특이한 구석이 있다네. 즉 어디까지가 한강인가 하는 문제가 있는데 임진강을 지도고 사전이고 모두 한강의 지류로 표기하고 있어 그렇게 따지면 곡릉천도 한강의 지류야 그러면 굳이 오두산으로 갈 이유가 없어지네. 그렇다면 산경표를 따라주는 것이 순리일 것 같아 .
산줄기 찾아내 걷고 또 걷고 일일이 이름붙여
- 그러면 이 주맥에서 갈라져 나온 산줄기를 지맥이라고 했는가. 지맥도 설명해달라.
= 지맥이란 한마디로 강의 지류를 가르는 어느 정도의 세를 가지고 있는 약 30km이상 100km미만 되는 산줄기를 지맥이라고 부르기로 스스로 정의했어. 그러므로 원칙적으로는 바다에 이르지 못하고 강에서 그 맥을 다하게 되지. 예를 들면 한북정맥에서 갈라진 지맥을 예로 들면 멀리 화천 가평 포천의 일산(혜산)지맥, 화악지맥, 명성지맥, 연인지맥 등과 서울과 가까이 있는 우리가 익히 들어본 적이 있는 의정부에서 양수리로 가면서 주금산 천마산 예봉산으로 흐르는 천마지맥, 수락산 불암산 아차산을 아우르는 수락지맥, 그 외에 경기오악의 하나인 감악산으로 흐르는 감악지맥, 경기 소금강인 소요산으로 흐르는 소요지맥 등이 있지.
물론 바다로 빠지는 지맥이 없는 것은 아니야. 예를 들면 영산기맥에서 분기한 변산지맥은 그 끝이 서해바다로 흘러들고 선운지맥, 화원지맥 등도 마찬가지이야. 여수지맥, 천관지맥은 그 끝이 남해바다로 흘러들지. 동해바다로 흘러드는 지맥으로는 백두대간에서 분기한 철갑지맥 등과 낙동정맥에서 갈라진 육백지맥 장산지맥 등이 있어.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 있는데 그 수많은 지맥을 단순히 지맥이름만 거론할 경우 산줄기의 흐름을 한번에 알 수 없다는 난점이 있어. 그래서 내 나름대로 원칙을 세워 이름만 들어도 산줄기의 흐름을 알 수 있도록 하였어. 천마지맥을 예를 들어보지. 한북정맥 抱川의 서파 수원산에서 분기하여 양수리까지 이르는 커다란 산줄기야, 그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즉 가장 유명한 산이름을 하나 정해. 즉 천마산이 제일 유명하니까 우선 천마를 따오고 한북정맥에서 분기하였으니 한북을 천마 앞에다 가져다 놓으면 이 산줄기는 자연스럽게 한북천마지맥이 되는 거지. 이름만 보아도 한북정맥에서 갈라진 산줄기가 천마산을 거쳐 한강변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지맥은 대간, 정간, 정맥, 기맥에서 갈라진 산줄기로써 어느 정도 그 산세가 계속되는 산줄기를 말하게 되고 이렇게 이름을 지으면 대한민국에 있는 지맥은 다 망라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내가 발견한 지맥(분맥포합)은 남한 구간만 총144개 정도야.
- 이 작은 지맥에서 갈라져 나온 산줄기에는 어떻게 이름을 붙이고 있나.
= 나는 分脈, 單脈이라고 이름을 붙였네. 분맥이란 지맥과 같이 강의 지류를 구분하는 산줄기로 반드시 지맥에서 분기한 산줄기를 말해. 그 세력도 지맥과 거의 같아 만약 지맥에서 갈라지지만 않았다면 지맥으로도 부를 수 있는 정도의 산줄기야. 예를 들면 한남정맥 문수산에서 분기한 한남앵자지맥이 북쪽으로 흐르다 양지면 마수고개 가기 전 독조봉어깨에서 동쪽으로 한줄기를 떨구고 여주벌을 휘돌아 한강변에서 끝나는 약 67km의 산줄기가 있네. 특별히 이름을 붙일만한 산이름이나 명소로 회자되고 있는 곳이 없어 분기되는 산이름을 빌려와 이름을 짓는다면 한남앵자지맥에서 분기가 되니 일단은 한남앵자를 가져다 놓고 다음엔 독조봉어깨에서 분기해서 독조봉으로 흐르니 독조를 가져다 붙이면 그래서 한남앵자독조분맥이 되는 것이지. 내가 지금까지 발견한 분맥은 전국적으로 총 24개야.
지금까지의 산줄기는 최소한도 2일 이상 산행을 요구하는 약 30km이상의 산줄기를 말하는데 그러면 하루 정도면 답사를 할 수 있는 짧은 거리지만 뚜렷한 세를 이루고 있는 산줄기를 무엇이라고 부르면 좋을까 생각해봤지. 그래서 붙인 이름이 短脈이야. 봉우리 한 두 개가 아니고 대략 10km정도 이상 30km미만의 세를 가진 산줄기가 계속될 경우를 말한다고 보면 돼. 단맥은 대간, 정간, 정맥, 기맥, 지맥, 분맥 즉 모든 산줄기에서 분기하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가평의 축령산을 예로 들어보면, 한북천마축령단맥이 되는 것이야. 즉 한북정맥에서 분기한 천마지맥에서 다시 갈라져 나와 축령산으로 뻗어 나가다 강이나 그 지류를 만나 끝이 나는 약 10km이상 30km미만의 산줄기라고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여기까지 분류가 되고 산줄기 이름이 정해지면 대한민국 산줄기란 줄기는 거의 모두 다 포함하게 되네.
- 그럼 여맥은 무엇인가.
= 여맥은 그래도 표시가 되지 않는 10km 미만의 짧은 산줄기가 있어 이를 여맥(餘脈)이라고 이름 지었네. 대간, 정간, 정맥, 기맥, 지맥, 분맥, 단맥 즉 모든 산줄기에서 갈라져 봉우리 몇 개를 넘으면 끝이 나는 산줄기로, 굳이 이름을 붙일 필요가 있을 때만 사용하지.
- 이렇게 되면 남한에 있는 산이란 산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아우를 수 있게 되는 셈이네.
= 그러네. 덧붙여 말하면 이렇게 산줄기를 정해놓고 나면 어떤 산 하나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게 되네. 그 산이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끝나는지 그 산줄기가 있을 뿐이네. 그래서 사람들이 “어느 산에 다녀오셨어요”하고 물으면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혀. 산정호수로 유명한 명성산 알지? 그 명성산은 한북정맥 광덕산에서 갈라져 나와 박달봉 자등현 각흘산 약사령 명성산 삼각봉 여우봉 여우고개 지나 계속 되는데 주력 좋은 산꾼이라면 여우고개까지는 무난히 하루에 주파할 수가 있어. 그럴 경우 어디를 갔다 왔다고 해야 하나. 특정한 산을 대기 그렇지 않은가. 만약 상대방이 우리산줄기를 알고 있으면 “한북명성지맥 명성산 구간을 하고 왔어” 하면 되는 것이지. 즉 한북정맥 광덕산에서 갈래를 지고 나온 산줄기를 따라 자등현 각흘산 명성산 여우봉 여우고개까지의 산줄기 산행을 했다고 알 수 있게 되지. 현재는 그러한 산줄기 체계를 이해하는 등산객만의 이야기가 되겠지만 이름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이러한 우리산줄기 이야기가 보편화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야.
- 우리나라 산줄기를 잘 설명해 주었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런 산줄기 개념을 모두 아는 그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네. 8월 하순 현재 어느 산줄기를 걷고 있나.
= 백두대간 덕유산 근방 작은 산줄기 즉 단맥들을 답사하고 있으며 남해군의 섬 산줄기와 함께 가을 끝자락까지 걸을 계획이네.
- 산줄기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하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세. 자하를 21세기의 김정호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생각은.
= 앞서도 말했듯이 김정호 선조는 위대한 지도제작자였어. 잘못 알려진 내용이네. 김정호 선조에 대해 우리 고등학교 26회 후배가 쓴 글이니 한번 읽어보기 바라네. 참고로 노웅희 후배는 서울대 사범대 지리교육과를 나와 한양대 교수를 하다 지금은 (주)에듀메카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네. 1994년 <교실밖 지리여행>이라는 책을 펴냈는데 지금도 스테디셀러야.
대동여지도 서울부근
고산자 김정호에 대한 이야기가 왜곡된데는 신경수 선배님이 쓰신 것처럼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에 의해 왜곡된 내용입니다.
1993년 국민학교 5학년 2학기에 실린 내용입니다.
' 김정호는 억울한 죄명으로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그 때 나라를 다스리던 완고한 사람들이 '대동여지도'를 보고, 이 지도는 나라의 사정을 남에게 알려주기 위한 것이라고 오해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김정호의 피땀이 어린 지도의 목판본까지 몰수해 불사르고 말았으니,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외국과 거의 왕래를 하지 않았고,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기를 꺼리고 있었던 것이다. 김정호는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업적은 오늘날까지 찬란하게 빛나며 우리 가슴속에 살아있다. 아울러 그의 굽힐 줄 모르는 의지와 신념은 우리에게 영원한 가르침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해방후 50년이 넘도록 국정교과서에 실어 전 국민을 일제강점기 논리에 따라 인식하게 하였습니다.
김정호는 옥에 갇힌 적도 없고, 대동여지도의 목판본이 불살라진 적도 없습니다.
대동여지도가 목판본으로 인쇄된 것에 대하여 당시 조정의 절대적인 지원이 있었습니다. 병조판서를 지낸 신헌이 대동여지도 제작에 협조하였다는 글을 남겼고, 유재건은 사대부가 아닌 인재들의 행적을 기록한 이향견문록에 김정호가 죽은 지 얼마되지 않아 김정호의 전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김정호는 자시이후 궁정출입이 자유로운 3정승과 같은 대우를 받아 궁정출입이 자유로웠습니다.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만 목판으로 만든것이 아니라 최한기의 도움으로 지구전후도라는 세계지도 목판본도 만들었습니다.
목판본이라는 것 자체가 수요가 많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전에 제작한 청구도가 필사본이므로 대중적인 수요를 충족시키기 어려웠다고 판단됩니다. 이는 조선후기 상업받달에 따라 유통이 급성장하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대동여지도를 제작하기 위하여 김정호는 상당히 과학적으로 접근을 하였습니다.
우선 과거 우리나라 지도들을 모두 조사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대동여지도의 저본으로 여지도를 활용하였고, 최초의 근대지도로 평가받는 정상기의 동국여지도에서 사용된 축척을 발전시켜 축척을 적용하였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은 직접 답사하기도 하여 정확성을 높였습니다. 여러 설이 있지만 백두산 지역도 1번은 갔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또한 기준점으로 현재 보신각옆에 표석으로 새겨져있는 지점(경도로 표현)을 정한 후 나침반을 사용하여 방위와 거리를 표시하였습니다. 축척은 백리척을 사용한 정상기와 달리 십리척을 사용하였구요. 여기서 잠깐 확인하고 가실까요 대동여지도의 축척은?
1:160,000이라고 책들을 찾아보면 나옵니다. 하지만 대동여지도의 축척은 1:216,000으로 보는게 타당합니다. 왜냐하면 전자의 것은 10리를 4km로 환산했을 때 적용되고, 후자는 10리를 5.6km로 본 우리 선조들의 거리단위에 기초할 때의 축척입니다.
대동여지도의 우수성은 이와같은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제작한 지도로 매우 정확하며, 범례를 사용하였을 뿐 아니라 행정경계 표시방법, 거리, 가항하천과 비가항하천의 표시 등 목판에 새긴 내용의 풍부성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아는 김정호 이야기입니다.
이런 점을 볼 때 직접 산줄기 연구를 하고 답사를 하는 나는 일개 산꾼에 불과하네. 단지 세월이 지나면서도 그 열정이 식지 않으니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지. 산줄기연구 및 답사가로서 말일세.
- 산경표를 쓴 신경준 선생과 같은 申氏인데.
= 보통 납申자를 쓰고 있는 신씨는 크게 두 집안이 있는데 큰집격인 平山申氏가 대부분이고 본관이 高靈申氏는 얼마 되지 않네. 신경준 할아버지 나하고 같은 본관이며 내가 갖고 있는 족보에 실려 있네 직계는 아니지만 항렬로 보면 9대조 할아버지이야.
족보 내용은 아래와 같네
산경표의 저자
旅菴여암 申景濬신경준 선생의 일대기
字는 舜民이요 號는 旅菴이시다.
실학자이며 어문학자이시다
문과로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겸 經筵참찬관 춘추관 수찬관 知製敎이시다
공은 訓民正音韻解와 日本證韻을 써서 어문학에 공언하였고 與地考, 道路考, 山水考 등을 쓰시어 지리학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기타 많은 저술이 있다 與地圖跋文, 車制策文彊界考, 四沿考, 山水考, 伽藍考, 郡縣之制, 水車圖說, 素砂問答, 訓民正音韻解, 莊子辨解, 기타 여암전서에 목록되어 있다.
이거 내 자랑하는 것 같아 팔불출은 아닌지 모르겠네. 좀 쑥스럽구먼.
- 공무원생활과 산줄기를 타는 것과의 조화나 어려움은.
= 조금 어려웠네. 속칭 노는 날은 무조건 산줄기 답사길을 떠나곤 하는 바람에 각종 경조사는 집사람이 떠맡았지. 그때는 토요휴무가 없고 반공일이라 일단 가벼운 차림으로 배낭을 메고 출근을 했다가 일과 끝나고 시간이 남으니 북한산을 갔다가 내려와서는 곧바로 야간 교통을 이용해 해당 산줄기로 접근을 해. 그리고는 새벽부터 답사를 시작해 자정 무렵 집에 도착해 일단 노트에 답사기를 조금 쓰다가 쪽잠을 잤어. 그리고 자는 둥 마는 둥 일어나 출근해 점심시간과 일과 후에 짬을 내서 다시 노트에 작성을 하곤 했어. 공연히 직원들 눈치가 보이더라구. 그 시절에는 컴퓨터가 보급이 안된 시절이라 사진도 없고 그러다가 인터넷이 보급되고 조금은 편해졌지. 틈나는 대로 했으므로 그리 큰 어려움은 없었지.
빠듯한 생활 속 부인의 전폭 지원, 부부가 함께 다니기도
- 은퇴 후의 생활은 어떠한가
= 직장을 그만둔 지 6년이 되어 가지만 우리나라 산줄기를 전부 답사해야 하기 때문에 바빠서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야. 내가 나한테 한 약속 하나도 지키지 못한다면 과연 가족 사회 간의 약속을 지킬 수나 있을지. 직장 다닐 때보다 오히려 더 바빠졌다고 할까. 일주일에 2~3일간은 산줄기 답사를 가고 나머지 날들은 답사기를 쓰는데 한번 더 산줄기를 머리로 가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산줄기 답사를 하는 것보다 시간이 더 걸려. 그래서 항시 밀린 자료들이 쌓여 마음만 무지 바빠져. 책 원고도 작성해야하는데 손만 대놓고 아직도 지지부진 상태이고. 누가 말했나 백수가 과로사한다고.
경제상태는 연금으로 생활하지만 풍족한 것은 아니야. 산에 가느라 월 백만원 정도 쓰고 나머지는 집사람이 쓰는데 알뜰하게 쓰니 그나마 견디고 있는 실정이야. 대기업이나 정부 산하 단체 등 내부 산악회 등에 산줄기 답사팀을 이끌어 줄 수도 있는데 이제는 나이가 60대 중반이라 같이 나 자신이 산행하기가 버거울 것 같아 그나마도 꺼려지지만 제의해오는 곳도 없는 상황이야. 그렇다고 후원자도 없어 경제적으로는 애로사항이 많아.
- 틈만 나면 산으로 가는 남편에 대해 부인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 왕년에 한 7000km를 같이 답사를 한 경험이 있어 일주일 정도 산에 안가면 오히려 가라고 성화를 부리지. 다만 산에 가는 경비로 연금을 거의 40% 이상을 내가 가져다 쓰고 있으니 돈이 궁할 때는 가끔 한숨을 쉬며 불평을 한 적은 있지만 가는 것에 대한 불만은 없어. 다만 내가 워낙 무심한 사람이라 산행하면서 전화할 줄을 모르니 그 점이 답답한 모양이지만 태생이 그러니 어떻게 하나.
- 슬하에 자녀는.
= 딸은 시집가서 집에서 살림을 하고 아들은 계리사로 외국계 보험회사에 다니는데 아직 미혼일세.
- 산에 다니게 만든 당뇨는 지금 어떤가.
= 두 달에 한번 꼴로 검진을 하며 상태를 체크하고 있는데 완전 정상은 아니지만 생활을 하면서 음식이나 술 운동 등에 신경 쓰지 않고 당뇨약만 먹고 있네. 산이 주는 혜택을 무상으로 받은 결과가 아닌가하는 생각해. 그래서 산은 나에게 있어 신앙이네.
- 앞으로의 계획은
= 살아있는 동안 산행은 계속될 것이며 누천년 전부터 사용해온 우리산줄기이름을 널리 알리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일 생각이야. 구체적으로는 우선 내가 그려놓은 마루금을 다 답사하는 것. 두 번째로는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기관 대기업 등에서 설치하거나 발간한 각종 안내판 홈페이지 카탈로그 책자 그리고 각종 사전 등에서 나오는 인문지리 역사지리 등의 오류를 남김없이 수정 보완하여 전국의 우리산줄기이름을 전 국민이 일상생활이나 학문 등에서 지금의 태백산맥이 튀어나오듯이 그렇게 되게 만드는 것, 세 번째는 우리산줄기 체계인 산경표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고 나아가서는 우리산줄기 기본원리인 산자분수령을 전 세계가 배우고 응용하여 자기네 나라의 산하에 적용하는 시대가 오게 하는 것이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인데 한가지라도 할 수 있을지 영 자신이 서질 않네.
- 본인의 블로그나 책을 소개해달라.
= 다음블로그 블로그명 “우리산줄기이야기”
•우리산줄기 이야기 ←클릭하면 블로그로 들어오게 되고 거의 대한민국 남한의 모든 산과 산줄기 등에 대한 기록을 볼 수 있어. 블로그에 나의 답사기 대부분이 올라 있는 게 아래 카페와 다른 점일세.
다음카페 카페명 “산경표따르기”
• 산경표따르기 ←클릭하면 공동운영하는 산경표따르기 카페로 들어오게 되고 블로그와 마찬가지로 거의 대한민국 남한 의 모든 산과 산줄기 등에 대한 기록을 볼 수 있네.
• http://cafe.daum.net/woori.sanjulgi ←클릭하면 역시 산경표따르기 카페로 들어오게 되네.
- 號를 紫霞로 쓰고 있는데 누가 지어준 것인지, 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 북한산을 다닐 때는 호가 없었는데 호가 있어야하겠다는 생각이 갖게 된 것은 답사기를 쓰기 시작한 1996년도부터야. 다른 사람들은 별명 이른바 닉을 보통 쓰지만 어딘지 나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 후 고민을 하다 북한산의 아름다움에 푹 빠졌던 시절 인상 깊었던 곳 중 한군데가 떠올랐는데 그곳이 자하동천(紫霞洞天)이라는 곳이야. 물론 자하동천은 관악산에도 있고 전국에 많이 있지만 북한산 자하동천의 광경은 경험해 보지 않은 이는 그 신비함을 모를 것이야. 북한산 유원지에서 대남문으로 올라가는 대표적인 등산로에서 오른쪽 지계곡으로 들어가다 보면 부왕사지가 있고 집채만한 바위에 자하동천이라는 명문의 글이 있어. 그 길을 따라 죽 올라가면 부왕동암문이 나오고 넘어가면 삼천사가 나오게 되지. 그곳을 석양녘에 지나가다 짙은 숲속 하늘을 쳐다보면 보랏빛 노을이 곱게 물들며 나뭇잎도 보랏빛으로 물드는 듯해 .그래서 북한산 자하동천의 저녁놀을 생각하며 紫霞라고 호를 스스로 지었어. 본래 자주색은 신성한 색으로서 옛날 임금님의 의상에 쓰이고 있으며 신선들이 사는 곳을 자하동천이라고 한다지. 이 한몸 뭐가 그리 잘났다고 언감생심 죽어서라도 갈 수 없겠지만 그래도 그런 이상향을 꿈꿔보기라고 하겠다는 의미로 지었다고 이해해 주기 바라네
- 참으로 좋은 뜻이네. 나이를 먹으면 이름을 부르기보다 號를 부르는 게 좋다고 생각하네. 옛날에는 어른의 이름을 尊啣이라 하여 함부로 부르지 못하도록 했지. 나는 주역을 배울 때 주역선생이 周易 64卦 중 48번 째 卦인 井자를 따서 井齋라고 지어주셨고 최근에는 스스로 深岳을 써볼까 하네. 어릴 적 자주 갔고 초등학교 교가에도 나오는 고향의 앞산이 현재는 尋鶴山으로 불리지만 어렸을 적에는 深岳山으로 불렀고 옛 지도에도 심악으로 나와요. 京畿五嶽의 하나지. 거기에 지금 사는 곳인 깊은 산골과도 맞아 이 호를 고려중인데 호의 기본덕목인 겸손에 부합하는 지 그게 조금 염려되네. 그리고 현재 우리 농장이름이 紫雲이고 堂號도 紫雲齋인데 紫는 높고 좋은 뜻이 많은 글자이지.
2015년 7월 인터뷰하는 신 경수 사진 < 촬영 유 희락>
동문들이 산경표 카페 회원 가입하길 희망
- 질문자로서 말이 많았네. 끝으로 고교 동창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 우리 친구들도 산에 많이 가는 걸로 알고 있는데 산줄기를 한번 타보라는 것과 산행기를 써보라는 것 두 가지 권하고 싶네. 알고하는 산행으로 건강한 100세 시대를 열어가길 바라네. 그리고 부탁 하나. 산경표 따르기 카페에 회원으로 가입해서 모든 자료를 전부 가져다써도 좋으니 나의 바람이 이루어질 수있도록 會員數로 힘을 실어 주십사 하고 싶네. 마지막으로 표성흠 시인의 시로 산행하는 자세랄까 마음가짐이랄까를 대신하려 하네.
무례한 놈이 산에 오르면
표 성흠
산은 어머니 같기도 아버지 같기도 하다.
때로 수줍기도 하고 성도 잘 낸다.
해맑은 아침해 머리에 이고
벗은 알몸으로 다가오는가 하면
비바람 몰아쳐 안면몰수하기도 하고
무례한 놈이 산에 오르면 혼내주기도 한다.
산은 때로 젖물같은 샘물을 샘솟게 하는가 하면
목마른 갈증으로 아가리를 벌리고 선
캄캄한 절벽으로 솟아 길을 막는다.
산은 돌아가라 돌아가라 타이르고
인간은 꼭 정복하겠다 정복하겠다 한다.
산과 인간은 어버이와 자식 같아서
이기고 지고의 관계가 아니면서도 승부를 걸려고 한다.
무례한 놈은 '야호' 큰소리치며 산을 정복했다고 한다.
산은 넘어야 할 고지가 아니라 자신의 일부이며
돌아가야 할 고향이다.
그곳이 모태이기 때문에
어떤 후레자식이 자신의 모태에다가 기를 꽂으며
어떤 망나니가 자신의 어버이의 이마에다가 침을 뱉더냐?
산과 인간은 혈연이기에 서로 찾고 반기지만
무례한 놈이 산에 오르면 산은 운다.
- 유익한 이야기 많이 들었다. 살아가는 동안 건강한 몸으로 우리 친구 紫霞의 목표가 꼭 이루어지길 바란다. 고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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