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구는 행정구역상 성동구 영동출장소로 출발하였다
1968년부터 토지 구획 정리 사업에 의해 계획적으로 개발되면서
교통문제가 우선적으로 고려되었다.
1969년에는 한남대교(제3한강교)가 가설된다.
이 한남대교의 건설에 따라 강남지구의 시가지 개발이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다.
그리하여 도심과 곧바로 이어지는 한남대교 (漢南大橋)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과 강남구 압구정동 사이를 잇는 다리이다.
1966년 1월 19일 착공하여 1969년 12월 25일에 준공되었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 준공에 맞추어 서둘러 건설한 다리이다.
영동대교(永東大橋)는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 광진구 자양동과 강남구
청담동을 잇는 총연장 1,065m의 한강 다리이다. 동2로에 속해 있고, 동2로의
종점인 남단 교차로에서 영동대로와 연결된다.
1973년 11월 8일 개통되었으며 준공 당시 한창 개발중이던 강남 지역을
바로 연결함으로써 강남 개발을 촉진시키는 데 기여했다.
성수대교(聖水大橋)는 서울특별시의 한강에 위치한 다리이다. 성동구 성수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을 잇는다. 성수대교는 길이 1,161m 너비35m(8차선)이며 한강의
11번째 다리로 1977년 4월에 착공하여 1979년 10월에 준공하였다.
최초로 120m 장 경간으로 건설 되었으며 그 구조상 게르버 트러스교로서 교하공간이
넓어 광활한 한강수면에 경관을 이루고 있으며, 교량 양단에 완전한 입체교차시설도
갖추고 있다.
동호대교(東湖大橋)는 서울특별시 성동구 옥수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을 연결하는 다리이다.
1980년 6월 착공하여 1985년 2월 2일 준공되었다. 한강에서 15번째로 만들어진 다리이다.
약 1.2km이다. 서울 지하철 3호선의 옥수역과 압구정역을 연결해주는 철도교 역할도 하는
다리등이 잇달아 가설되었고, 강남대로, 영동대로와 올림픽대로, 남부순환로가 직교식으로
연결되어 바둑판 같은 도로망이 형성되었다.
성동구 영동 출장소로 있었으며 강남에 단독주택은 거이없고
국민주택이라고 하여 1단지부터 14단지까지 각지역 요소에 지은 주택밖에 없었다
강남이 적극적으로 개발을 시작하면서 부동산 업자와 건축업자들이 모이면서
구체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하였다
매봉산도 은마아파트(당시는 논이였음)로부터 현 럭키아파트까지 연속 산이였고
개포동과 연결된 도로는 하나도 되어있지 않았다
1975년 10월 1일 성동구 명일동 등을 분리하여 강남구가 설치되었다
강남구 명일동, 하일동, 고덕동, 상일동, 길동, 둔촌동, 암사동, 성내동, 풍납동, 천호동,
송파동, 석촌동, 삼전동, 가락동, 이동, 오금동, 방이동, 문정동, 장지동, 거여동, 마천동,
잠실동, 신천동, 일원동, 수서동, 자곡동, 율현동, 세곡동, 역삼동, 포이동, 개포동, 도곡동,
논현동, 신사동, 학동, 압구정동, 청담동, 삼성동, 대치동, 염곡동, 내곡동, 신원동, 양재동,
우면동, 원지동, 잠원동, 서초동, 반포동
1979년 10월 1일 하일동, 외 27개동을 분리하여
강동구로 분리하고
1988. 1. 1. 강남구관할의 11개 법정동(서초동 잠원동 반포동 방배동 도곡동 양재동
우면동 내곡동 원지동 염곡동 신원동)을 분리하여
서초구를 신설하였다
매봉산도 1970년대부터 개발과 동시에 외지사람이 드러오기 시작하여 산책로로
이용되면서 사람들이 오르내리게 되었고 1978년 5월 18일 아침에 올라 왔든
고 이금석 고 김병국 고 이호천 오선영 윤병주 이종길 박종철 고 이수철 문영만
허종대 오동환 조순재 등 15 명이 모임을 갖기로 의견을 모으고
회장에 이호천 부회장 허종대 총무 조순재 체육부장 오선영 홍보부장
오동환 으로 추천하여 매일 산에 오르게되어 매봉조기회가 출발하게 되었다
당시 강남에는 국민주택단지를 중심으로 민간 개인들이 집을짓기시작하여 날로 발전하고
외지에서 많은 사람이 유입되니 매봉조기회원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다
1982년 김왕경(전 강남구의회 의장) 이광묵(은광재단 이사장) 마광수(역말 도당제 회장)
세사람의 협조하여 매봉산 정상에 국기대와 새마을계양대를 설치하였다
그당시는 시민들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관공서를 비롯해서 각 회사에서도 12 : 00 가
되면 모두 나와서 국민체조를 15분씩하고 점심 식사 시간을 갖게되어 있었다
우리조기회에서는 아침에 매봉산에 올라오면 국민체조를 모두 모여서하고 체조량이 부족하여
조기회 스스로 매봉체조를 만드러 추가로하고 국기계양식을 거행하며 국기에 대한 맹세를 모두
합창하여 30 여년동안 현재까지 계속하고있다
1974년 한국노장 마라톤협회가 조직되고 이어서 한국중고령자 마라통협회가 설립됨에 따라
두단체에서 계절따라 전국 각지에서 육상동호인 마라톤대회가 개최되니 강남에서도
1975년 윤병주내외 고 이금석내외 심길수내외 김병국내외 박종철 이종길 이필순 등
24명이 서을 영동육상연합회를 조직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하든중
1978. 5. 매봉조기회가 조직되어 육상마라톤부와 산악회가 신설되어 회원 다수가
참가하고 활발이 움지겼다
1974년 조직된 영동육상연합회 초대회장은 심길수가 4년 다음에는 윤병주 회장이 20여년간 계속
유지 발전시켰으며 영동육상연합회와 매봉조기회 육상부 등산부 회원들은 모두 중복 가입되어 있어
불가분의 관계이다
매봉산은 1960년도 광주군에서 서을로 편입될 당시 공원부지로 지정되었고 도곡그린공원으로지정되기는
1991년이였으며 도곡동 역삼동 대치동 개포동 등지에서 하루에 1000 여명의 주민이 여가를
선용하고 건강을 위하여 올라오지만 토지 모두가 사유지여서 구청에서 공원시설이나 체육시설을 임의로
설치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주 빈약하다
매봉조기회에서도 정상의 운동시설이나 아래 배드멘트장등을 회원들이 일일이 삽과 꼭괭이로 파서
설치하여 활용하였기때문에 지주들의 진정에 의하여 여러변 고난을 겪었다
초대회장 이호천은 (1978.5. - 1979. 5.)
원주민으로 무난이 1년동안 회 운영을 하였다
회원들이 정상에 체조 할 장소를 만들기위하여 일요일마다 삽과 꼭괭이로 산을 깍아 직접 운동장을
만들고 아령과 역기등 운동기구를 구입하여 체력증진에 노력하였다
낮에는 사람이 없어서 운동기구를 보관할 장소가 필요하여 창고를 짓기로하고
밑에서 물과 모래 세멘트등 건자재를 회원들이 일일이 메고 와서 창고를 만들고 운동기구를
보관하였다
매봉조기회 발족과 때를 마추어
한국일보사가
1) 국민건강을 위하여
2) 나를 위해
3) 가정을 위해
4) 사회를 위해
5) 나라를 위해 라는 스로건으로 국립극장 광장에서 남산을 한바퀴(10000보 약 7km)도는
남산 거북이 마라톤대회를 시작하였다
1978. 5. 셋째일요일 회원 책킨넘버 1000장을 각 기관 사회단체 체육단체에 배포하고
시작한지 어언 3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한국일보사는 거북이처럼 서들지않고 꾸준이
계속하여 서울시민의 건강증진에 크게 기여 하고있다
우리매봉조기회에서는 500---600번까지의 책킨남버 100장 받아다가 매월 30여명이
장장 20년동안 다니면서 회원간의 친목을 다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홍보도하고 몸도 단련시켰다
윤병주씨가 영동육상연합회 회장 생활체육 서울시연합회 부회장 전국육상연합회 부회장으로
재직시는 매월 30여명이 참석하여 20여년간 성황을 이루었으나 회장직을 사임하면서 리더가
없으니 본대회에 불참하게 된것도 10여년이 되었다 현재까지도 개인적으로 다니는 사람도 있다
1979년부터 매봉산 주변이 매우 더러워서 매주 첫째 일오일을 대청소일로 정하고 회원
모두가 산과 거리청소를 5년간 하였다
이호천 초대회장은 매봉조기회 고문으로 오랜동안 조기회발전을 위하여 물심양면으로
많은 노력을하다가 고인이되셨다
2대 허종대 회장은(1979.5. - 1980. 5.)
젊은사람으로 패기 찬 사람으로 명예심도 많아서 매우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1979년 10월 노장마라톤협회가 밀양에서 전국 마라톤대회를 개최할 때는 밀양이 자기고향으로
조기회원 40여명을 동원 매봉에서 처음으로 원정경기에 나갔으며 회원들에게 우승을 강요하여
대회에 출전한 윤병주 선수는 10 km 를 무리하게 달리다가 결승점을 얼마 않남긴채 기절하는
불상사도 있었다 이로써 달리기에서 무리해서는 않된다는 교훈을 남겼다
이것이 매봉조기회 단체 처음으로 지방 처녀출전이였다
매봉산에 나무가없어 1979 년부터 매봉산에 회원들의 성금으로 묘목을 사다 매봉산에 식목행사를
30여년 실시하여 매봉산을 푸르게하였고 지금은 나무에 비료주는 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세멘트 하치장을 하다가 사업실페로 1 년후 사임하였다
3대회장 심길수는(1980. 5. - 1982. 5.)
회장에 취임하면서 사재 100 만원을 희사하여 매봉조기회원들 유니폼을 만드러
배부하니 모두가 같은 유니폼을 입고 각종 행사에 참석 단결된 모습을 과시하고 많은
활동을 하였다
매봉정상에 헬스장을 개설하고 철재로 가건물을 지어 위에 텐트를 치고 비가와도
운동할수있는 건물을 만드러 놓았다 이모두가 회원들의 성금으로 성사되었다
노장마라톤대회에 출전하고 등산을 좋와해서 산악회를 조직 전국 명산을 모두 다녔다
현 베드멘트장이 당시는 야산이였으나 회원들이 삽과 꼭괭이로 산을 깍아 운동장을 만드러
매봉조기회 자체 배구대회 베드멘트대회 야유회와 총회도 개최하였다
1981년 새마을 운동 중앙회에서 전경환회장이 개최하는 새마을 전국 경진대회
(중앙회에서 일산까지 약30 km 걷고 일박야영)에 회원 36명이 출전 매봉기를 들고
매봉조기회가와 새마을노래를 부르며 잀불란하게 행동하여 전국 모범단체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당시 유니폼은 매우 아름다워서 오랜동안 회원들이 애용하고 각종대회에 출전 할 때마다
입고나가서 단결력을 과시하였다
이때 "의무이행에 권리있다" 라는 스로건 아래 조기회 회칙과 매봉조기회 노래도 만드렀다
매봉조기회 슬로건 의무이행에 권리 있다
매봉 조기회 노래
1) 이른 아침 잠을 깨면 매봉산으로 댤려간다 단숨에 국기대 아레
사방에서 모여든 매봉가족들 하나 둘 셋 넷 매봉조기회
2) 안개속을 헤쳐가며 오르고 내려 호루라기 소리에 발을 마추어
우리마음 뭉치니 힘이 솟누나 하나 둘 셋 넷 매봉조기회
3) 이슬맻인 산책코스 뛰고 또 뛰어 아침공기 마시니 기분도 좋와
우리들의 건강은 가족의 행복 하나 둘 셋 넷 매봉조기회
1980.3.1. 등산부를 조직하여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 정상 소금강 경포대 등을 등정하고
관광차를 1 년간 계약하고 월 1회씩 전국 명산을 등산하였다
1980.6.월 광능내 수목원 회원전체 야유회 실시
1980년 7월 매봉자체 배구대회 개최
1980년12월 매봉조기회 송년회를 개최하기 시작하여 30여년간 현재까지 계속 실시하고 있다
조기회가 활성화되기 위해서 회장 심길수 부회장 윤병주 김현달 김흥록 총무부장 오성영
재무부장 김영규 홍보부장 오동환 조직부장 이수철등이 중심이되어 사재를 지출하고
단결하니 날로 발전하였다
4대 김 현달회장은 (1982. 5. - 1984. 5.)
조기회를 활성화하기위하여 매봉간부들로 구성한 진우회를 만드러
이들이 모든 행사나 사업에 주동이되어 조기회를 이끄러 나갔다
당시 12명으로 구성되었든 진우회는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5 명이 계속하고있다
(회장 김현달 부회장 윤병주 김영식 김흥록 이유직 전회장 심길수 총무부장 오선영
재무부장 김형규 홍보부장 오동환 회원 송홍섭 이종록 정동욱 등)
매월 한국일보사가 주최하는 남산 거북이 마라톤대회에 단체로 참가하여
매봉조기회기를 앞에들고 매봉노래를 부르며 단체로 행동하니 한국일보에
여러차레 기사화되고 일본 아루게 아루게 협회와 연대되어 일본 아루게(걷기)대회에
출전하기도하고 노장마라톤협회가 주최하는 건강달리기 마라톤대회에 출전하였다
이때 젊은 회원간에 각자 취미에 따라 (등산. 애주가. 고스톱.등) 매구회. 와 남우회.
건우회.등 친목회가 조직되어 지금까지 유지된다
당시는 사계절 계양할수있는 태극기가 않이여서 아참에 계양하였다가 저녁에는 하강식을
하든 때여서 저녁에 국기를 내릴사람이 없어 도꾸리에 사는 중고생 2명을 선발하여
장학금을주고 국기를 내리게 하였다 두 사람에게 3만원식 주는것을 10년간 실시하였다
회장을 사임하고도 등산부와 마라톤부를 계속활성화시켰다
2000년도에 뉴우지랜드로 이민하였다
5대.6대. 김흥록회장 (1984. 5. - 1988. 5.)
김흥록회장이 리드하는 당시가 매봉조기회의 전성기라고 할수있다
아침마다 운동후 가요합창을 30분씩 매일하여 많은 가요를 회원들에게 보급하고
1978 년 실시한 한국일보 남산 거북이마러톤대회 20년간 단체 참가하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 개인적으로 많이 참석 한다
1980년 부터실시하는 세게일보사 건강달리기대회에 매봉조기회육상부원은
매월 둘째 일요일 잠실운동장에 나가 5km 달리기를 30회 참석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건강증을 윤병주 내외 고 이금석 고 김병국 등 20여명이 받았다
아침마다 노래연습을 하여 부녀합창단이 조직되어 각종대회에 출전 환영식장에
부녀합창단원들의 활동으로 타단체의 모범이되고 매우 좋은 반응을 얻어다
1984. 9.30 전국 국제마라톤대회 페막식에서 매봉부녀회원들이 한복을입고 무대에서
가요합창을 불러 전국 단체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한복을입고 만찬장에서 합창함)
안동준(8선의원)씨를 모시고 김흥록회장과 오선영이 전국노장마라톤협회에
진출하여 상임부회장과 총무부장을 역임하니 매봉회원들의 해외원정경기에
참가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노장마라톤협회와 일본 이찌노세키시와 자매결연을 맺어 해마다 일본과 한국이
교차 진행하는 한일 친선 마라톤대회에 1989년 9월 매봉회원 35명이
일본 이찌노세키대회에 출전하여 윤병주씨외 4명이 입상하고
한국 선수단원들은 일본 대사관의 환영만찬을 받았고 한복을 입은 여자합창단원의
감미로운 음악에 일본인들의 열열한 환영을 받았고 이어서 도쿄 오사카 교도
세도나이가이해협을 거쳐 규슈까지 일본 일주 관광을 하고 돌아왔다
1990년 11월 세계베트랑 아세아 마레이지아 쿠아라룸풀에서 개최되는 육사경기에
매봉회원 40명이 출전하여 박순희여사가 5000m에 출전 우승하고 6박 7일의
동남아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고
1994년 12월 미국 하와이 국제마라톤대회에 매봉 육상회원과 영동육상 연합회원등
38 명이 출전 42.195 훌코스를 완주하고 하와이 섬 오하우섬 등4박 5일의 관광을
마치고 귀국하였다
하와이 국제 육상경기는 전문선수를 제일 앞선에 세우고 자기 기록대로의 출발선에 정열
출발하기 때문에 물결흐르듯이 진행되며 경기시간은 8시간을 주기때문에
10,000여명이 달리지만 혼잡하지 않으며 자기의 체력단련시혐의 기회이기도하다
일본사람들은 회사나 기관에서 직원들 극기훈련차원에서 많이 출전시킨다
이때가되면 일본에서 비행기가 없어 한국에 와서 비행기를 타고가는 사람이
많아 한국에서도 매우 혼잡하다
이 경기에 가서 배운 점은 출발하여 돌아오는 길이 같은 길인데도 중간회전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우리경기에서는 중간회차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반환점에서 표지를
주는것 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며 배워야할 사항이라고 생각했다
경기를 마치고 다음날부터 관광을 하는데 모두가 다리에 알이 배서 걷지를 못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침구사 고 이금석씨가 침과 부황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86. 아세안 오림픽대회에는 매봉회원 7 명이 성화봉송을 하였다
이중 윤병주 박순희 아들 윤연수 세가족이 출전하여 이목을 끄렀다
당시 아들 연수는 16세의 소년 중학생 이였다
당시는 국가안보에 불안을 느껴 대회기간중 매봉산 정상에 장거리포를 설치하는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성화봉송대는 공수부대원이 외곽에서 같이 호위하며 뛰고
경찰 싸이카로 호위하였다
1987년 사하라 태풍이 불어서 전국에 많은 피해를 입었을 때는 매봉회원들은 수재민 돕기
모금은동에 동참하여 성금 100여만원과 라면 의류등 생필품등을 KBS 방송국에
전달하였다
김흥록회장은 영어회화가 능숙하여 국제대회 때마다 한국노장마라톤협회의 위상을 향상시겼다
한국 노장마라톤협회 회장을 사임하고 충주에 이거하여 살다가 고인이되었다
7. 8.대 회장 이상준(1988. 5. - 1992. 5.)
이상준 회장은 군인출신으로 조기회의 사무정리를 철저이하여 업무상 기틀을
마련하였다
매봉조기회 연례정기행사인
1) 정원보름 윳놀이 적사대회개최(베드멘트장에서)
2) 봄등산대회 (청계산 북한산 마니산등)
3) 매봉조기회 자체 베드멘트대회개최
4) 5. 월 매봉조기회 정기총회 개최(베드멘트장)
5) 하기휴양 대회(강원도 삼포해수용장 10년간 다님)
6) 음10월 상순 매봉산제 거행(매봉정상)
7) 추계등산대회와 야외 단합대회 (전국 유명산)
8) 매봉송년회 개최(베드멘트장에서) 등을 성실이 잘 수행하였다
88 오림픽 대회에는 86 아세아 오림픽대회 성화봉송 경혐을 살려서
매봉조기회원 들만의 성화봉송단을 조직하여 성화 봉송을하였다
경쟁이 치열해서 영동고등학교 운동장에서 달리기 시혐을 보아 선발하였다
이때에도 윤병주 박순희 부부가 주동이 되어 추진하였고 동시 출전하였다
국민들 관심을 고조하기위하여 팀당 연예인 한사람씩을 배치하였는데 우리팀에
온 연예인은 달리기를 마치고 엠브란스에 실려가는 해프닝도 있었다
윤병주는 88오림픽대회중 매봉회원10명과 대학생 영어교사등 40여명을
다리고 보도본부 출입통제관으로 자원봉사하고 이어서 장애자 오림픽대회에는
주경기장 출입통제관으로 자원봉사하여 김집 체육부장관 표창 보건부장관
장애자 기장을 수여받았다
88오림픽대회를 성공리에 마치고 잉여자금으로 일반 국민체육을 향상하기위하여
국민생활 체육협의회가 구성되자 윤병주씨는 생활체육 서울시육상연합회 부회장 5년
생활체육 전국 육상연합회 부회장에 취임하면서 매봉육상회원들은 전국에서 개최되는
경기에 참가하고 교양교육과 수련회에도 참가하여 매봉육상부가 매우 활성화 되었다
1997년 세게 베트랑 육상연합회 오키나와 대회에 매봉회원10명과 생활체육 회원 30명이
참가하여 5명이 입상 하였다 (윤병주회장이 한국선수 단장으로 참가하였다)
1998년 5월 한중친선 마라톤대회(중국 연길)에 매봉회원 윤병주 내외 고 이금석내외등
15명과 생활체육회원20명이 참석하여 경기하고 백두산과 북경등을 관광하고 돌아옴
전국 생활체육회에서는 중국 동포를 돕기위하여 자전거 기념품과 생필품등을 준비하여
행운권추첨을 통하여 나누어주는 행사를 5년동안 계속하였다
월드컵 축구경기가 한일 양국 공동개최로 양국 정사간에 민간 체육향상을 위한 민간교류
체육대회를 양국이 격년제로 실시하게되어
1998년 10월 한일친선 민간인 체육 일본 후지현 대회에 매봉회원 10명과
생체회원 120명이 참석하고 박순희여사가 5000m 에 출전하여 우승하였다
당시 생활체육 전국육상연합회 부회장이든 윤병주회장이 단장으로 인솔하였다
1990. 년부터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매봉조기회원중 손복시의원 김완경구의원등
다수가 지방의원으로 진출하여 김완경회원과 조성명 회원은 강남구의회의장등으로
활동하였다
1988년 강남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황병태 의원께서는 아침이나 저녁에 산에 오는데
어두워서 불편했든 가로등 전기시설을 매봉산에 설치하는데 많은 노력을 해주셔서 지금은
언제나 불편없이 산에 갈수있게 되었다
매봉회원의 수가 많아지고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모이게되니 이일규 대법원장을 비롯하여
신성택 대법관 부모님 이대용 월남공사(월맹군 푸료생활8년)와 예비역 고급장교 대학교수
고급공뭔출신등 다양한 인사가 참여하였다
각종 선거철이 되면 각방면에 입후보할 사람들은 빠짐없이 매봉조기회를 방문한다
선거직 역대 강남구청장은 매봉조기회를 수시로 방문 순시한다
9.10.대 유광래회장은(1992. 5.- 1996. 5.)
매봉정상 운동시설의 둘레를 막았다
위에만 비를 않맞게 포장하니 비바람이 불면 비가 드리쳐서 운동을 할수없고
겨울에 너무 추워서 주의를 첨막으로 막아서 비가 오나 겨울에도 안에서 운동을
할수 있게 되었다
1992년 7월 매봉조기회 육상부 여자회원 엄대교 박순희 이필순 윤부순 등
10여명이 MBC 방송국에서 개최하는 여의도 주부 건강 달리기대회에 출전하여
박순희 윤부순 두 사람이 입상하였다
1993년 5월 한국 사회체육 진흥회에서 주최하는 남북이산 가족 인간 띠 잇기
달리기대회 (갈현동에서 임진각 까지)에 매봉조기회 육상부원 30여명이 출전 하였다
1993년 한국 사회체육센타 육상중앙회에서 개최하는 마라톤대회에 선수30여명이
출전하여 국내유일의 부부동반 단체로 모범단체상을 수상하였다
모든 행사의 주관을 전국육상연합회 부회장 윤병주의 후원아래 이루어 젔다
매봉 하계휴양회를 강원도 삼포해수욕장으로 정하고 회원40 - 80여명이 민박을 하면서
3박 4일 일정으로 건강을 다지고 회원간의 친목을 도모하고왔다
이런행사를 10여년 계속해서 시행하였다
11. 12.대 김왕경 회장은(1996. 5. - 2000. 5.)
강남구 구의원을 2회연속 당선활동하였고 구의회의장까지 역임하시어
매봉조기회 발전에 획기적인 역활을 하였다
베드멘트장 토지매입을 강남구청과 지주간에 주선 협조하여 매입하였고
베드멘트장 옆에 공중화장실 설치토록 구청에 건의 신축함
매봉산 베드멘트장에 식수가 없어서 곤란하여 구청과 혐의 공중 식수 설치
회원들의 성금으로 베드멘트장을 현재의시설로 건축하는등 조기회 시설확충에
많은 노력을 하였다
정상 운동실에 테레비를 설치하여 아침뉴우스를 듣게하여 모든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간남구청장 배 베드멘트대회에 출전하여 우승하고 최고 다수참가상을 수상하였다
이어서 서울시장기 배대회에 출전하여 3등입상하여다
13.14.대 박민수 회장은(2000. 5. - 2004. 5.)
회원들의 성금으로 운동기구 확장과 회원간의 친목과 단합 화합에 각별이 노력하였다
2002년 부산아세아 올림픽대회 성화봉송에 윤병주내외를 비롯하여 회원10여명이 출전 하였다
이로써 매봉조기회원들은 86 아세아 올림픽 성화봉송부터 88 올림픽
02 부산올림픽 대회 월드컵 대회 성화봉송에 모두 참가하였다
베드멘트 자체대회를 개최하여 강남에 있는 베드멘트 동호회 인원이 모두 옵써버로
참가하여 성대이 거행하였다
이를 계기로 구청장배 서울시장배대회등에 참석하고 자체대회를 매년실시하였다
15.16.대 윤 병 주 회장은 원칙주의자로(2004. 5. - 2008. 5.)
회장에 취임과 동시에 매봉운동시설 확충과 국기계양대 교체 점유 토지매입을
촉구하는 진정서을 구청에 제출하였으나 사유지여서 구청에서 운동시설을 개선치못한다고하여
토지를 매입해줄것을 촉구하고
매봉조기회 내 기조부와 베드멘트부 인원이 400여명이 넘게 방대하여 두팀간에
화합이 잘 되지않자 기조부와 베드멘트부를 각자 독립하여 운영하도록 분리하고
등산대회 야유회 하계휴양대회 송년회 강남구청장배 베드멘드대회 서울시장기대회등
중요행사에는 양팀회원 모두 참석 합동으로 행사하도록 하였다
4년동안 종은 글을 계시판에 일주일 단위로 계시하여 산에 오는 모든 살람들
정신교육을 실시하여 많은 호응을 받았다
김준열 변호사와 김관곤(전 mbc 방송국 음향국장) 두분이 많이 도와주셨다
오랜된 TV 화면이 잘 나오지않아 최재익 회원이 21 인치 TV 를 사서 기증해주었다
강남문화원 후원을 받아 2004년 매봉조기회원 40여명이 관광버스로
백제 문화권 탐방(부여 공주 1 박 2 일) 을 실사하여 회원들 친목과 사기를
높이고
계속해서 2005년에 회원45명이 관광버스로 경기도 여주지역 문화 탐방과
도자기 문화체혐 실습 등 2회 무상으로 실시하였다
강남문화원과 매봉조회간에 유대가 잘 되어 있었다
매봉조기회 활동사항을 지역신문(강남포스트)에 기고하여 매봉조기회 홍보에 힘 쓰고
매봉조기회 30 주년 기념행사에 회원들에게 T샤쓰(25,000원)를 무상지급하고
강남구청장 표창장을 회원 2명에게 수상케하였다
토속적으로 시행하든 매봉산제를 유교식으로 개선하여 축문도 읽고 도포와 두건도
쓰게하여 전통 유교방식으로 개선 정립하고 회원않인 다른 산에 오는 모든사람에게
참여케 함으로서 참석인원이 배가하고 구민간에 친목도 돈독케하였다
2004.6.매보조기회 노인회원들의 매일 아침 커피타임을 만드러 휴식공간을 만들어
회원간의 대화의 장을 만들고
2008.4. 회원간의 친목을 도모하기우하여 첫주와 셋째주 아침에 조찬모임을 만드러
10여 원로회원들이 성황리에 현재까지 계속 유지되고 있다
강남구청과 서울시에 여러경로를 통하여 매봉조기회 점유 토지를 매입하도록
4년동안 다방면으로 노력하여 토지매입을 성사시켜 체육시설과 국기계양대를
현대시설로 교체하는 게기를 마련하였다
김왕경(전 강남구의회의장)조성명(현 강남구구의회 의장) 채수용(전 강남구의회 부의장)
김세현 김강민 (전 구의원)
손복(전 시의회 의원) 김진수(시의원)등이 많이 도와주셨다
2004년 5월 회장에 취임하고 연레 행사인 동해안 삼포해수욕장 하기 수련회를
가려고하니 조기회 기금이 고갈되어 윤병부 100 만원 서상선 100 만원등 사비를
부담하여 회원40 여명이 삼포해수욕장에 가서 김평환 회원이 생선 60여만원을 기부
최재익 회원이 보신당 1 마리를 기부하니 오희려 사상유레 없는 호화수련회를
하고 왔다
2006년 7월 폭우로 강원도를 비롯하여 전국에 수해가 극심하여 매봉조기회에서는
하기휴양을 취소하고 수재의연금 2,130,000 원을 거출 KBS에 전달하는등
불우 이웃돕기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2007.8월 명지산 하기휴양
회원 45명 참석하여 명지산 등산과 계곡에서 회원간의 체력단련과 친목을 도모하였다
2008년 노인회원들 10여명이 전북 담양 죽노원 소쇄원 등 담양 문화탐방을 하였다
2008.5월 전주 군산간 벗꽃 100 리길을 회원 40여명이 참가 관광버스로 1일 즐거운
벗꽃 나드리를 하였다
그외 능암온천 문경온천 경북 영주온천 풍기 인삼축제 도산서원 고성 전망대
큰 얼굴 공원 안동 화해마을 백양사 강천사 마이산 소백산 등 전국 명산과 유적지를
계속 탐방하였다
17. 18.대 염상열은 (2008. 5. - 현재)
정상 체육시설을 강남구청에서 매봉정상 토지 매입후에 기존건물은 헐고
새로 건축할 운동시설을 작게 설계되어 구청과 여러번 협의하에 현시설로
개축하고 운동기구를 보강받고 매봉조기회 기득권을 포기하고 전 구민에게
개방하여 구민 모두가 누구나 운동 할 수 있게하였다
2009.3월 지리산 순천만 향일암 등 1 박 2일 나드리
현재 산에오는 김완경회장 박민수회장 현직 염상열회장등은 본인에게 직접
의견을 물어서 가감 첨가하였으면 하고 상세이 기술하는것을 보류하였읍니다
이상 기슬한 내용중 저에대한 기사가 너무 많은 느낌이 있고 불필요한 부분은
과감이 삭제 편집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