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박한 미래를 위한 농부학교
(2012. 2. 11 ~ 11. 4)
............................................................................................................................
22강
한OO 선생님과 말씀 나누기, 논밭 둘러보기
정리 좌담회
2012. 6. 16
변현단 선생님
1. 큰 어른을 뵈러 가는 길
2. 말씀 나누기
3. 질의응답
4. 논밭 둘러보기
5. 뒷풀이 정리 좌담회
............................................................................................................................
1
큰 어른을 뵈러 가는 길
선생님 댁까지 4km 거리의 산길. 거처로 정한 민박집에 짐을 푼 다음, 그 거리의 반을 버스를 타고 올라가려 시도하다 포기하고 맑은 공기, 맑은 햇살, 초록이 숨쉬는 오붓한 길을 삼삼오오 걸어가는 풍경들. 그러나...
누누이 강조한 '소박한 미래'의 화두를 갖고 온 첩첩산중의 길이건만, 그 놈의 질긴 석유문명 중독과 편안함에 대한 심한 사시, 뜻깊은 이 잠깐의 시간 고작 4km도 걸어내지 못하는 여유없음과 성마름은 실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높고 험한 산 등산도 땀흘리며잘들 하는 세상인데...ㅠㅠ 길바닥에 드러누워 잠깐 시위를 펼친 것도^^ 전체의 분위기는 맞추어가되 그런 점에 분명히 반기를 들고 항의하기 위함 때문이었답니다^^
서로 상견례
절하시는 몸높이를 보면 그분의 인격이 보이는 법이지요. 오히려 저희들보다 더 납작 업디신 선생님의 모습에서 또 다시 감동^^
선생님을 처음 뵈옵는 자리, 가슴이 쿵쾅거리고 마음이 마구마구 설레였습니다.
선물 드리기
말씀을 나누기 전 변샘이 곡성 밭에서 뽑아오신 죽순이랑 갖가지 씨앗들, 놀량님이 직접 만드신 빵, 전기가 없는 한선생님 댁을 위해 한상섭님께서 마련해 오신 태양광 충전기 등을 선물로 드리며 스승에 대한 예를 표했습니다.
2
말씀 나누기
먼저 다소 정리되지 않은 분위기를 가라앉히시려 선생님 철학이 집약된 노래 한자락을 들려주셨습니다. 물은 막힘이 없는데 원래의 노래말은 막힌 채로 끝나잖아요? 그래서 제가 덧붙여 보았습니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 강물따라 가고싶어 강으로 간다 | 강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 넓은 세상 보고싶어 바다로 간다
바닷물아 파도쳐서 어디로 가니 | 구름따라 가고싶어 구름이 된다 | 구름아 둥실둥실 어디로 가니 | 동네에 가고싶어 비를 내린다
빗물아 모여모여 어디로 가니 | 동무들을 만나려고 냇가로 간다
물은 막힘이 없기 때문에 사람한테오면 사람이 되고, 나무한테 가면 나무가 되고, 짐승한테 가면 짐승이 되고, 땅에 스미면 땅이 됩니다. 깊은 곳에 가면 바다가 되고, 또 바다에 모이면 승화되어 하늘로 올라가지 않습니까?
여러분들 종교 있으세요? 먼저 참 종교 이야기 들려드리겠습니다. 저는 이때껏 참종교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참종교는 바로 녹색별 지구 자체가 참종교입니다.이 지구별은 조금도 부족함없이 온전히 갖춰져 있는 곳이고, 종교란 온전하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모두도 온전한 몸으로 초대되어 왔기 때문에 우리 삶 또한 온전해야 하지만, 우리는 대분분 그 온점함을 저버리고 살아갑니다. 종교의 문제는 저버리고 가느냐 온전히 잘 받들고 맞이하고 만나고 가느냐의 문제입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만나고 가느냐의 문제입니다. 이래야 가장 잘사는 것이고, 그렇지 않고는 잘 산다 할 수 없습니다.
'복 받으세요'라는 말은 잘못된 말입니다. '복 누리세요'가 바른 말입니다. 이미 누릴 것들 밖에 없고 모든 게 다 갖춰져 있는데 한눈팔 수가 없는 겁니다. 우리말에는 사실의 말=참말이 있고 꾸밈의 말=거짓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참으로 가느냐 거짓으로 가느냐... 어느것이 되어야 하느냐면 참으로 가는 마당, 즉 잔치마당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일이 놀이가 되어야 하고 그리되면 재미진 세상이 됩니다^^ 제가 이렇게 재미지게 산 지가 30년이니 이런 말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전체 웃음)
농사짓는 건 음... 아주!!!~~ 쉽습니다. 배울 게 하나도 없어요. 이처럼 삶도 배우는 게 아니라 (저절로) 터득되어지는 것입니다. 서로 듣고 하면서 터득되어져야 진가가 발휘됩니다. 이렇듯 농사처럼 쉬운 게 없습니다. 제일 쉽게 가는 건 배워진 것 만큼만 취하는 것입니다. 자급 자족이란 말은 서로 함께 쓰면 안됩니다. 자급은 뭔가를 억지로 이룬다는 뚯이 담긴 말이고, 자족은 저절로 된다는 뜻이 담긴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갖춰진 것은 저절로 된 것이고, 농사는 저절로 된 것이므로 자급하는게 아니고 자족하는 것-아주 쉬운 것입니다. 사실은! 씨앗을 내가 부리는 게 아니고 씨앗이 나를 부리는 겁니다. 씨앗의 생명이 펼쳐지도록 내가 심부름하니 주어지는 대가가 나에게 먹을 것이 오는 겁니다.
인사도 감사합니다는 한자입니다. 고맙습니다는 하늘이 같이 한다는 뜻의 우리말입니다. 이보다 좋은 인사가 어딨습니까? 하늘은 골고루 맞이합니다, 빠짐없이 맞이합니다. 세상에 제일 힘든건 꾸며서 가는 겁니다. 이런 거짓은 답이 안나오지만 참은 답이 나옵니다. 이 자연에서 느끼고 터득하고 하는 것이 가장 큰 우리 삶의 바탕을 이루어야 합니다. 얼마나 풍요로운지요!!!! 이쯤에서 제가 지은 시를 하나 들려드리지요.
소꿉놀이
지렁이 흙먹어 모래성 쌓고
개미들 땅굴파 술레잡기하고
거미는 줄늘여 재주부리고
벌나비 날으며 꽃중매 서지
이몸을 손놀려 씨앗뿌리네
소꼽놀이 잊은 삶 언제인가
새소리 들은 지 언제이든가
꽃향기 맡은 지 언제이든가
물소리 들은 지 언제이든가
만물은 소꿉놀이 잘도 하는데
(전체 박수)
어렸을 때는 소꿉놀이를 하고, 커서는 일놀이로 바뀌게 됩니다. 변화! 변화는 어떤 변화로 가야되는가? 참 변화!!!로 가야 합니다 (곧바로 사진을 가져다 달라 부탁을 하십니다) 농사는 이 땅에 뭘 심어 먹느냐는 관점이 아니라, 이 땅이 나에게 뭘 주시느냐 하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닭을 기른다'는 표현을 하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입니다. '닭이 자란다'고 해야 바른 표현입니다. 농사를 기른다, 자식을 기른다고 표현하는 데 모든 건 (저절로) 자라는 것이어야 옳은 것이지 기를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는 이처럼 뭔가를 자꾸 '기른다'는 생각쪽으로만 물들어져 있습니다. 농사도 땅이 잘 자라게 하는 데 그에 맞춰 거기에 씨앗을 모시면 되는 것이니 얼마나 쉽습니까!! 감나무도 여러가지 품종이 있습니다. 메마른 곳에서 잘되는 것이 있고, 투박한 데서 잘되는 것이 있고... 하여튼 환경에 맞게 각자 (저절로) 생명을 펼쳐가게끔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들 이 사진을 보세요, 하나는 썩었고 하나는 발효되었습니다. 여름에 밥을 해서 놔두면 쉬어버립니다. 이와 관련해서 과학선생께 물었습니다. 왜 쉬느냐구요? 대답은 세균에 의해 쉰다는 것. 정말 그런가요? 모두가 다??....
과학은 참~ 얼마나 잘못된 게 많은지요... 세균이 달라붙을 수 있는 조건이 되어야 쉬는 것이지, 무조건 세균에 의해 쉬는 게 아닙니다. 제가 농사지어 내어놓은 밥에는 세균이 달라붙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오히려 생명이 옵니다. 발효가 되는 것이지요.하얀 버섯곰팡이입니다,생명이 자랄 수 있는.... 관행농으로 농사지은 쌀을 썩은 생명의 것입니다. 유기농, 특히 속성퇴비 써서 짓는 농사는 이건 아주 비료쓰는 것보다 나쁩니다. 유기농이 정말로 큰 문제입니다. (사진에서 보시는) 이 밥은 영원히 안 썩습니다. 삭는 것과 썩는 것는 다릅니다. 썩어서 환원이 되는가, 삭아서 환원이 되는가는 서로 다릅니다.
이처럼 농사는 쉽습니다. 아무것도 안하는 것입니다.퇴비도 안 만드는 것입니다. 뭔가 만들지 않는 것, 퇴비도 만들지 않고 단지 볏집만 되돌려 짓는 것입니다. 적게 나오면 적게 먹으면 됩니다. 제몸 좋잖아요???!!!!^^ 이 사진 얘기로 설명만 하면 제 농사얘긴 다 끝난겁니다.
그렇다면 왜 농사를 지을까요? 일하는 이유는 바로 먹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먹는 것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먹어야 되는가요? 만물이 온전하고 우리도 온전히 초대되었다고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먹는 밥 또한 온전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먹는 것에 대해서도 온전하게 먹을 수 있는 길을 저버리기 가는 것 가운데 하나가 흰쌀밥입니다. 우주만물은 서로 살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학교선생님께서 토종닭(병아리 열마리)을 주셨는데 잘자라 병아리를 깟습니다. 겨울엔 21일만에 나오는데 여름엔 20일만에 나오는데, 병아리 적엔 서열이 없다가 자라면서 서열이 생깁니다. 먼저 나온 닭이 서열이 높은 편인데, 왜 서열이 생기는 걸깡요?
닭은 농사를 못지으니까, 약한 개체가 강한 개체(생명)을 받쳐주는 겁니다. 반면 사람은 농사를 짓고 저장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고로 조금이라도 서열이나 계급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오직 나눔만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34살때 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저는 그때 즉각 사고 팔지 않는 삶으로 바꾸어 지금까지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30년간 너무 재미지게 살았는데 어떻게 일일이다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까(웃음)
현미-메통쌀은 온전하므로 땅에 떨어져도 싹이 납니다. 통쌀은 껍질이 벗겨져 땅에 떨어져도 싹이 나지만, 흰쌀은 썩습니다. 통쌀을 통해 밥을 받드는 삶을 사십시요. 그러면 저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농사 등의) 효율이 엄청나게 높아지고 효율이 높아지면 저절로 나눔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쓸 데 없이 먹으니 일을 쓸데 없이 많이 하게 되고, 쓸 데 없이 땅을 많이 차지해야 됩니다. 쓸데없는 농사를 짓는 분들, 쓸데없는 농사가 너무 많습니다. 여러분은 농업인으로의 길을 가지말고 농사꾼으로 가는 삶을 사십시요. 농사꾼의 삶은 나눔의 삶, 잘사는 삶이 되고 나누지 않고 나 혼자만 사는 삶은 잘 사는 게 아닙니다. 나누는 삶이 아닌 삶, 평등관계가 이루어지는 삶은 옳지 않습니다. 저도 30년간 나눔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농사짓는 것은 다 남는 것입니다.
게다가 가장 최소한의 것으로 농사지으니 모든 것이 고맙습니다. 제 안에 고마움을 한없이 느낍니다. 가물어도 고맙고, 작년에 멧돼지가 와서 벼를 다 먹고 한가마니 남아도 고맙고(웃음) 그래서 야채로만 겨울을 지내니 몸이 좋아져서 고맙고... 이처럼 자연은 길이 무한대로 열려있어 흉년이란 게 없습니다. 예전에 녹색대학에서 와서 학생들이 제 얘기를 들은 후에 질문을 합니다. 가난을 어떻게 견디나구요...예끼!!!! 아니 가난이 대체 어디있습니까?!!! 가난이란 말은 꾸민 말(거짓)이고, 자본주의의 말입니다. 자연은 자고로 나누는 것이므로 가난이란 있을 수 없는 개념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소꿉놀이 대신 게임을 하는 데, 게임은 나눔이 성립되어지지 않는 것이고, 놀이는 나눔이 성립되어지는 것입니다. 원래 터득되는 게 공부인데 전부 다 자꾸 외워야만 하는 것이 공부인 줄 착각하고 있어 터득이 되지 않습니다. 제가 원래 거래안하는 삶을 사는 관계로 우리 아들은 처음에 학교를 안보냈어요(웃음) 애 엄마가 학교를 넣었습니다. 그래도 애는 학교는 보내기로 하고 숯가루를 만들어 아내더러 팔게했습니다. 그래도 제가 아들한테 늘 하던 얘기는 이랬습니다. 공부하지 마라, 숙제하지 마라, 숙제안했으니 기꺼이 매맞아라, 마냥 놀고 필요하다 생각이 들 때 배워라, 절대 미리 배우지 말아라^^
우리는~ 필요할 때 저절로 배워지게 마련입니다. 제가 배운 게 없지만 막힘없이 가게 되어있고 그래서 여태껏 잘 살고 있는데 왜 무엇을 미리 배웁니까? 그리고 애들한테 왜 일을 시킵니까, 놀게 해야지요^^ 애들은 소꿉놀이 해야지 일을 시켜 일이 역겨워지면 안됩니다. 철이 들기 전에는 소꿉놀이를 해야되고, 철이 들고 나면 일을 배우게 해야 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건 저축하지 않는 겁니다. 용돈 생기면 바로 즉시 까먹습니다. 함께 나눠 먹습니다. 아들녀석은 마냥 놀면서 책들은 가방 대신 빈 가방을 들고 다녔습니다. 제가 잘 놀게끔, 빈 가방 들고 다니게 했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풀무고등학교(홍성) 입학에 실패한 후 서울로 갔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19살 나이에 서울의 아는 사람을 찾아가 신문배달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고입 검정고시를 하더니 대학 안가고 이리저리 다니다 마루까는 일을 배워 돈을 벌어 집안의 가장노릇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작년봄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이땅에서 가장 잘 사는 사람이 아버지란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돈벌이를 즉시 끊어버리고 지금은 땅을 알아보고 다니고 있습니다.(웃음) 지금 34살이고 여자를 만나고 있는 중입니다. 아들녀석이 그 처자에게 해준 말이
가난하게 살려면 나랑 살고 그렇지 않으면 나랑 못산다고 했다는 겁니다. 얼마나 고마운지요...^^
저의 삶은 자본주의적으론 가장 가난한 삶이지만 자연적으로는 가장 풍요로운 삶입니다. 한번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잡지에서 취재를 나왔습니다. 가만보니 이 말 자체가 잘못된 것이더라구요~ 한아름은 가득하다는 뜻인데 작은 것이 는 아름답다는 뺀 말, 작은 것 이와의 다른 것은 제외되는 말, 즉 잘못된 말인 것이지요. 작은 것도 아름답다가 올바른 말입니다. 수판 놓을 때 계산이 잘 못 되었을 때 어떻게 하죠? 즉각 털어내어 버리지요?(웃음) 세상이 주판을 안배워서 그런지 털어낼 줄 모르네요(웃음) (계산기도 털어내는 기능이 있습니다. C, AC-김주호쌤(웃음))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제목을 고쳐야 되지 않겠느냐 하였더니 못고친다 그럽니다. 부수가 많이 나가서 못고친다고 그래요.... 그래서 이거 참 경륜이 쌓이면 쉽게 고쳐지지 않는 모양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경륜 쌓이기 전에 털어내야 하는데...^^ 승훈이 월요일 학교가서 자퇴서 제출하게 생겼네?!!!(웃음)
여러분께서 농부공부를 새로 시작하셨듯이 즉시 새로 털고 시작하시면 되고, 그것 만큼 쉬은 것이 없는데, 자꾸 생각만으로 어렵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고등학교 입학하기전 아이가 심장이 안 좋아서 이곳에 왔는데,메통쌀로 지어 밥을 먹어야 된다 했더니 아이엄마 이야기가 얘는 못먹는다, 시도를 해도 못먹어서 못했다는 얘기를 합디다. 근데 사실은 안먹은 것이지 세상에 못먹는 것이란 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흰쌀에 길들여있기 때문일 뿐이지요... 제가 그랬지요 '흰쌀보다 더 맛있게 먹는 길이 있다 , 한번해보자, 씹는 걸 150번 해보자.'라구요. 사실입니다(이렇게 하면 흰쌀밥보다 훨씬 더 맛있습니다) '그래 우리 한번 시도해보자' 그랬지요. 또 씹고 또 씹고 또 씹더니 내어준 그릇을 다먹고 왜 이렇게 맛있느냐는 겁니다. 이처럼 바르게 먹을 적엔 싫증이 안나고 잘 먹히고 음~~!! 소리가 저절로 나오게 됩니다.
그럼 밥은 어떻게 지어야 하느냐! 밥은 뜸을 들이지 않아야 합니다. 뜸들이는 게 참 안좋습니다. 달걀 반숙하듯이 뜸들이지 않고 지어야 합니다.뜸을 들이지 않는다는 건 설익은 것과는 다릅니다. 설익은 것은 아래는 타고 위는 안익어 독이 되는 것인데, 반숙은 제일로 변화가 잘 이루어진 상태, 맛이 제일로 좋게 되고 반숙이니 씹어야 넘기게 되고 그런 결과로 반숙한 밥먹는 시간이 가장 여유로운 시간이 됩니다. 온전하게 왔다는 것은 여유롭다는 것인데, 그저 강제된 노동을 하기 위해서 밥을 먹으니 허겁지겁 먹게 됩니다. 농민들 대부분이 진짜로 즐거운 일하기 싫어하고 기계를 통한 노동을 좋아하지 않습니까? 같은 이치지요^^
자꾸 자꾸 십으면 톡톡 터지는 질감이 이루말할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에게 친화가 빨리 오게됩니다. 메통쌀을 뜸을 들이면 이런 친화가 안오고 질깃질깃 하게 되어버립니다.압력솥에 밥을 할 때 끓기 시작해추가 돌기 시작하면 1분 30초 지나 불을 끕니다. 그리고 1분 30초 지나 김을 뺀 다음 휘~ 저어서 김을 빼서그 열로 인해 뜸이 들지 않게 합니다.
쌀은 물에 불려야 되지 않나요?-큰 이수정
쌀은 불리지 않고 일어서만 건져놓고, 강낭콩이나 팥같은 딱딱한 것은 한 3시간 정도 물에 담궈놓고 그렇게 밥을 하면 맛과 영양이 가장좋고 (저절로) 적게 먹게 됩니다. 이렇게 하니 나눔이 저절로 될 수 있는 밥상이 됩니다.
밥은 받든다는 뜻입니다. 밥을 받들어야 하는데 저버리거나 취하면 안됩니다. 밥은 내가 되는 것이므로 나를 받드는 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삶은 나를 받들고 가는 삶이 되어야지 나를 천대하고 저버리는 삶은 불쌍하다. 이 땅엔 저주는 없습니다. 가득한 아름다움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한가지 중요한 것! 아침을 안먹는 겁니다. 이건 엄청나게 중요한 겁니다. 좀전에 꾸민 것은 거짓이라고 제가 말씀드렸지요? 거짓, 저버리는 것은 쓸데없는 것이고 불필요한 것이지요. 쓸데없는 것, 쓸데없는 짓들로 인해 우리는 스스로를 엄청 괴롭히고 있습니다. 왜 아침을 먹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밥짓고 밥먹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일하고 밥을 먹어야 합니다는 말씀입니다. 일하고 나서 밥을 먹어야되는 데, 아침을 먹는 다는 것은 일하지 않고 배도 안고픈데 아침을 먹는 것이고, 그러니 아침을 먹는 건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아침을 먹게 되면 쓸데없는 짓을 하게 되고 배가 부르니 쉬고 싶고 일할 맛이 안납니다. 이처럼 아침을 먹고 일을 하게 되면 일이 억지요 고통이 되어 버립니다.
일 자체가 이미 댓가(먹을 것) 주는데 또 욕심을 내어 댓가를 바램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 바로 거래입니다. 댓가없는 나눔 대신 억지로 일함으로 인해 다른 댓가들을 자꾸 꾸미게 되고, 댓가가 충족되면 흡족해하고 그렇지 않으면 짜증을 내게 됩니다. 그래서 자식들이 돈을 잘 벌게 되면 자식더러 면서기라도 하라고 하게 됩니다. 이런 고통스런 농사일을 왜 시키느냐고.... 내자식만큼은 일안시기겠다고... 그렇게 하다보니 지금처럼 농촌이 피폐해지고 도시화가 되어버린 겁니다.
한번은 우리집에 오는 친구가 도올 김용옥씨에게 찾아가서 내 얘길 하면서 아침 안먹는 친구라 얘길 하니 음양이치에 어긋난다고 했다 그래요~ 그래 여기 내려와서 아침 안먹는 게 왜 옳다고 반박을 하길래 왜 안먹는 게 좋다는 얘길 안했느냐 그랬지요(웃음) 우리가 수년간 안먹어봤으니 알텐데 왜 사실대로 얘기 안했느냐 했더니 음양이치에 맞다는 말 이외에 다른 말을 못하더라구요^^
이놈아 뭔 음양이치야!!! 그랬지요^^ 도올 김용옥 선생이 한의학의 음양이치에 있어 착각한 게 있습니다. 아침 안먹는 건 음양의 이치가 아니라 온도의 이치, 온도의 음양이치에 의해 생각해야 합니다.
이곳 산골에서는 벼농사를 짓기가 참 어려운데요~ 그 이유는 물의 온도 때문입니다. 질소라는 영양이 작물에 흡수가 되려면 물의 온도가 22도 정도 이상 높아져야 합니다. 그래서 낮에 물대면 농사가 안되고 새벽에 기온이 가장 낮을 때 얼른 물을 대고 낮에 햇빛에 의해 서서히 물이 더워져야 영양의 흡수가 잘 이루어집니다. 겨울에 나무가 자라지 않듯 영양 흡수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지요? 음양이치는 그러면 겨울에 나무가 자란다는 것이겠네요? 겨울에 세상만물이 자라지 않듯 음양의 이치는 온도의 이치입니다. 빛을 받고 안받는 낮과 밤의 이치가 아닙니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빛을 받지만 찬물을 받아서는 작물(벼)이 수정도 안되고, 아침밥을 먹어서는 애기가질 확률도 굉장히 떨어집니다. 왜냐구요? 자연의 모든 만물은 온도에 의해 영양이 좌우됩니다. 온도가 가장 낮은 때(해뜨기 전 2시간 전~직전) 세상의 기운은 움츠림입니다. 밥먹는 건 펼침인데 새벽과 아침시간은 움츠림이므로, 밥먹어야 되요 안먹어야 되요? 안먹어야 되지요. 세상이 움츠림일 땐 뭘해야지요? 일해야지요!!!^^(웃음)
일하면 기운이 펼쳐지고 온도가 올라가 온 세상이 펼쳐집니다. 그때에 맞춰 세상과 님이 잘 오시게끔 부지런히 일을 하고 밥을 먹으면 됩니다. 모든 기운이 잘 펼쳐지니 하루 세끼 먹을 때 한그릇 양보다 두끼 먹을 때의 한그릇 양이 더 적게되고, 아침 안먹으면 저녁도 더 적게 먹게 됩니다. 이런 결과로 인해 저절로 나눔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뭐가 막 먹고 싶고 땡긴다고 할 적에 흔히 몸이 요구한다고 하는 데 이는 잘못된 겁니다. 사실은 뇌에서 착각하는 겁니다. 착각하는 걸 요구하는 걸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뭐가 막 땡길때가 입맛이 없을 때는 몸에서 순환이 안되니 뇌에서 피가 부족한 걸로 착각하게 되고, 그래서 뭐가 막 먹고 싶어지던지 입맛이 없어지게 됩니다. 화나고 스트레스 받을 때 입맛이 없어져 굶게되는 사람은 살고, 막 땡겨서 마구 먹는 사람은 죽습니다. 원래 이때는 반드시 굶어주어야 합니다.
우리 몸은 영양부족이 절대로 안 일어납니다. 먹은 것이 장에서 피가 되고 피가 모세혈관망을 통해 세포가 되고 세포가이 때가 됩니다. 서양의학 용어로는 신진대사라 하고 우리의학 용어로는 우리 몸의 흐름이라 합니다. 흐름이 좋으면 건강하고 나쁘면 허약합니다. 허약하면 아픔이 생깁니다.
아픈 걸 뭐라 그럽니까? 병이라 그럽니까? 아닙니다, 병은 꾸밈말로 빛을 가려졌다는 뜻이고 이렇게 되면 죽게 만든다는 말입니다. 사실은 아픔은 살리느라 아프게 만드는 것입니다. 아픈 것 자체는 살리는 것입니다. 우리말로 앓이. 배앓이,가슴앓이처럼... 앓이는 알아차린다는 말입니다. 우주만물중 우리 인간만 알아차리지 못하고 갑니다. 닭들을 비롯해 우주만물이 다 알아차리고 갑니다. 자기의 생명에 맞게끔 다 알아차리고 갑니다. 암이라는 앓이로 인해 죽는 게 아니라 그 앓이께서 더 살게 만들어주고 가는 겁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앓이를 모셔야 합니다. 아플 적에 앓이를 잘 모셔야 합니다. 따라서 병이란 건 세상에 없는 개념이니 약이란 개념도 없고 치료라는 개념도 없고 앓이 자체가 요법이므로 앓이 자체가 하시는 대로 따라야지 다른 요법은 없습니다. 이렇게 해야 의학의 온전한 요법으로 맞는 이치입니다.
예방주사가 뭡니까? 여러분? 다른 관점에서 보아, 앓이는 내보냄으로써 살려내는 역할을 하는 겁니다. 들어온 것이 변화되고 내보내지는 삼위일체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시화호가 막혀 죽고 썩었는데 이를 살리기 위해 통로를 만들어 주듯 그와 같이 앓이를 모셔서 미리 통로가 트이게 하는 것이 미리앓이(예방주사)입니다. 이처럼 앓이를 제대로 모셨을 때 우리는 원시반본(原時反本)-원래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감-하게 됩니다. 이렇게 앓이란 원래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새로운 통로를 열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앓이를 따라가야지 배척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앓이는 얼씨구 절씨구(어울려서 씨가 되고 저절로 씨가 된다)하며 맞이하는 것이고, 이때의 씨는 우리의 생명을 펼쳐지는 기본점입니다.
앓이가 일어났다는 건 어제의 삶이 잘못되었다는 것이고, 그 잘못을 각성하여야 되는 데 가장 좋은 각성의 방법이 단식입니다. 단지 일시적인 치료를 위한 단식을 하면 잘못된 것입니다. 가장 머리가 맑을 때 각성하게 되면 즉각 바꿀 수 능력이 생기는데, 머리가 탁하면 즉각 바꿀 수는 능력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머리를 맑게 하는) 단식이 정말 중요합니다. 단식을 할 필요가 없는 삶은 곧 온전히 많이 씹어서 넘치지 않게 먹는 삶입니다. 위에서는 소화가 되는 게 아니라 중화가 됩니다. 밥이 들어가게 되면 즉각 피로 변합니다. 맥은 심장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장에서 시작됩니다. 먹을 게 들어가면 위산이 피를 만드는 역할을 하는데, 강한 위산이 나오면 성분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요즘 씨앗을 변이종으로 만들 때 방사선같은 강한 무엇을 주면 변화가 일어나듯이. 큰 변화를 일으키는 것 가운데 하나가 독이고, 그 독 가운데 하나가 염산이나 위산인데요~ 밥을 넘치게 허겁지겁 먹을 때, 침샘이 약할 때 위산이 강할때, 신경썼을 때 침샘의 알칼리가 7.0~8.0 사이일 때는 밥을 그냥 꿀꺽 삼켜도 중화가 잘 됩니다. 신경을 많이 쓰거나 말을 많이 하면 침이 마르는데, 그때 알칼리는 7.0으로 떨어지고 위산 1.5로 떨어져 중화를 못시키게 되므로 몸이 산도가 높아져 산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그때 밥을 허겁지겁 먹지않고 천천히 먹게 되는 습관을 갖춰나가면 위산이 떨어져 몸의 산화를 방지하게 됩니다.
메통쌀을 반숙을 해서 먹게 되면 허겁지겁 안먹게 되고 자꾸씹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님(쌀을 비롯한 천지만물)을 입에서 만나고 삭히게 되는 셈입니다. 위에서는 하나가 되는 겁니다. 중화가 되는 겁니다. 이처럼 조급함이 없는 삶, 날마다 이처럼 밥모심이 잘되면, 곧바로 나눔이 되고 사랑이 잘 됩니다. 진주목사님들께 강의하면서 목사님들께 믿음의 말뜻을 물었더니 말뜻을 모르십디다. 그러면 사랑의 말뜻은 뭡니까? 사랑의 말뜻은 더 말할 것도 없구요^^ 믿음은 성경의 의미적 풀이로는 앎이고, 우주만물의 앎은 살리고 있는 것-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살리는 것이고 사랑은 온전한 것입니다. 사랑하게 되면 죽도록 다 주고 싶은 이유가 그것입니다(웃음) 사랑은 위 아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할머니께서는 우리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우리는 흔히 사랑이라하면 아랫사람(며느리)이 어른(시어머니)을 모시는 것인데요~ 남편을 일찍 여읜 가여운 며느리를 아끼고 모셔야 할 대상으로 삼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친정어머니보다 더 깊은 사랑의 관계, 끊을 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 사랑!!! 사랑은 본래 계시는 것으로, 본래부터 계시는 것은 다 소중합니다. 모기까지도 파리까지도!!! 여러분 파리 마사지 받아보셨습니까? (웃음) 정말 최고의 경지입니다(웃음) 여기는 파리가 거의 없는데 파리가 있으면 파리귀신이 계십니다.이 산속에^^ 참으로 균형이 잘 갖춰져있습니다. 계시다는 건 조화롭다는 것이고 이 새상만물은 모두가 조화롭습니다. 농사도 이처럼 조화롭게 가야하고 팥,콩,조,수수,옥수수,강낭콩, 율무,검정 쌀, 붉은 쌀,파란쌀, 찹쌀,맵쌀 등 다양하게 가는 것입니다.
제가 벼농사를 짓는데 교배도 하는데요, 교배를 하게되면 다양하게 생명이 펼쳐집니다. 하얀색과 검정색이 합쳐지면 재색(F1)이 나오고, 재색의 다음 세대는 어미도 아니고 아비도 아닌 다양한 것이 나옵니다. 진흥청에서 하는 일 가운데 비료를 줘야되는 종자를 골라내는 일이 있습니다(이런 종자를 개발해내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땅에서는 비료를 줘도 되고 안줘도 되는 종자들로 다양하게 제 생명들을 펼쳐냅니다. 땅이 다양하게 펼쳐져 있고 그래야 그속에서 스스로의 생명이 영속적으로 이어나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그속에 야생이 갖춰진 채로 말이지요.
황대권씨의 야생초 편지쓴 황대권씨가 와서는 '사람이 갖고 있는 씨앗은 야생을 잃었다'고 하는데 이 또한 잘못된 말입니다. 절대 야생성을 잃지않습니다. 저는 유전자 조작한 종자 자체도 야생성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봅니다. 어떻게 농사를 짓느냐에 따라 야생을 잃느냐 잃지않느냐가 결정될 뿐입니다.
제가 거름을 안주고 농사지어보니, 심지어 퇴비를 안주어도 되는 종자가 수도 없이 튀어 나옵니다. 사람이 가장 많이 먹는 벼가 가장 많이 (다양하게) 펼쳐집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얼마나 삶이 쉽습니까! 많이 먹어야 되는 게 많이 펼쳐지니!!!^^ 얼마나 재미집니까! 이렇게 나온 종자를 고정시키는 데 5~15년정도 걸립니다. 고정된 씨앗은 사람들과 씨앗나눔을 하고있습니다. 씨앗나눔이 큰 나눔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서 잘 되는 것은 남한에선 어디가나 잘 됩니다.오히려 비료를 많이주면 벼가 망쳐집니다. 태풍때문이 아니라 비료를 많이 줘서 벼가 안됩니다^^ 땅에 거름기가 없으면 뿌리발달이 아주 잘 되고 더불어 줄기 발달까지 잘 됩니다. 태풍이 불어도 땅이 받쳐주는 데까지 휘어지기만 하지 절대 꺽여 쓰러지지 않습니다. 태풍이 지나가면 다시 일어납니다.
이것이 본향의 삶입니다, 저버리지 않는 삶입니다. 온 세상에 계신 것은 통으로 가고 더불어 갑니다. 누구하나 빠짐없이 털끝하나 빠짐없이 다 잘사는 것입니다. 그때라야 비로소 잘 산다고 말할 수 있고, 그것이 바로 종교입니다. (벼가 갖춰져 있어 생명을 무한히 펼치고 태풍을 견디듯) 지금 우리가 나누는 말씀은 내 안에 갖춰져야 가능합니다. 내 안에 다 갖춰져 있으면 힘들지 않은데, 이미 갖춰져 있어 힘들지 않은데 갖춰지지 않은 걸로 착각하게 만들고, 그래서 자꾸 괴로운 일을 만들고 자꾸 달라면서 회개할 것, 뉘우칠 것을 만들며 가는 것이 오늘날의 종교입니다. 종교란 회개할 것, 뉘우칠 것이 없어야 비로소 종교입니다.
우리말로 두레와 대동은 서로 서로 오고가는 것입니다. 서로 돕고 함깨 가는 것입니다. 많이 짊어지고 가서 많은 변화를 이루어 다시 오는 것입니다. 우주만물은 창조가 아니고 진화가 아니고 변화입니다. 변화의 삶, 함께 변화해 가는 것입니다. 통으로 조화가 이우러지는 과정을 거치며 두루두루 만나졌을 때, 밥속에 콩,조,옥수수 조화가 이루어지면 효율이 높아지고 효율이 높아지면 적게 먹어집니다. 쌀만 먹으면 효율이 떨어져 양을 엄청 먹게 됩니다. 이처럼 통으로 가야됩니다. 농사도 그래야 합니다. 우리의 눈이 많은 것을 보게 되어있고 우리의 혀가 여러가지 맛을 느끼게 만들어져 있지요. 농사도 우리의 삶도 통으로 가야합니다. 반대로 돈이란 건 하나밖에 보는 것이 없기 때문에 우리 삶은 돈에 맞춰지면 안되는 것입니다.
통으로 (함께) 가는 삶, 이것이 완성된 삶입니다.
큰 농부 한선생님의 손
3
질의응답
1.조식 폐지의 원리에 대해(니시건강법과 관련하여)- 아침을 먹지 않으면 독소가 몸에서 많이 빠져나온다는 걸로 아는데 선생님 말씀은 또 다른 차원의 것인 것 같습니다. 그것과는 다른 말씀이신지요?
제 얘기 또한 니시요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물의 순환을 노래에 덧붙였듯 그 원리와 의미를 덧붙여 풀어내어 더 울림이 클 뿐입니다. 아침은 거르고 점심저녁만 먹는데, 저녁은 야채만 주로 먹는 게 좋습니다. 처음 시작은 저녁을 1/3만 먹고 시작하고 아침을 안먹게 되면 통로가 확 열려 독소가 배출됩니다. 쌓였던 것이 대청소가 되는 것으로, 현기증이 일어나고 힘이 빠지고 하는 건 독소가 빠지는 현상으로 인해 생기는 것입니다. 영양부족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넘치게 먹게 되면 내보낼 것이 더많게 되니 더 배고픔을 느끼게 됩니다. 그땐 물을 먹어주면 됩니다.
2. 물먹는 방법론- 아침에 물먹는 것이 좋은지, 밥과 물을 따로 먹는 건 어떤지요?
우리몸의 수분은 70%인데 밤새 수면에 의해 날아간 수분을 보충해줘야 합니다. 위산이 높아지면 물을 먹게되면 신장이 다칩니다. 허겁지겁 먹게되면 안됩니다. 우리 전통적인 얘기에 버들잎 띄워주는 대목이 있는데요 물도 허겁지겁먹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오줌색이 희면 안먹어도 되고, 진하면 물이 부족하다는 것이므로 먹어야 됩니다.
3. 오줌색의 연하고 진한 원인은?
물부족 때문, 피곤하게 되면물이 부족하게 되므로 조금씩 물을 먹어야 합니다. 니시 선생이 도쿄 지하철 1호선 설계자고 우리나라 마지막 왕의 자손을 보게 해준 분인데, 저는 그분께 직접 배우진 않았고, 자연을 생각하게 되면서 니시의학을 만났습니다. 기준성 선생의 부황요법에 니시의학에 대한 얘기가 있는데 대충 보고나서 증상적 요법이란 말을 앓이란 말로 제가 바꾼 말입니다. 저는 흔히들 놓치고 가는 증상적 요법이란 말을 자연을 보게되니 그걸 이해터득하게 됩니다.
4. 하루 금식을 해보니 저녁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던데요(임영숙)
그건 많이 쌓여있던 독이 빠져나감으로 생기는 증상입니다. 단식시 미리 밥을 조금씩 줄여나가게 되면 독소를 내보내는 능력이 아주 커지게 되고 많이 내보내고 나서 굶게 되면 앓이가 잃어나지 않게 됩니다.
5. 선생님이 자랑하신 스스로의 건강의 증상은?
건강의 증상은 뒷굼치에 굳은 살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걸 보면 압니다. (말랑하고 주름이 없어 사진찍는 데 촛점이 안잡힙니다) 요새 일본에서 유행하는 발목펌프 운동의 이치를 들여다 보니 참 좋습니다. 상대성 원리에 입각한 운동입니다. 우리나라의 (도리도리) 잼잼도 좋습니다. 아무리 좋아도 적게 먹고 해야지 넘치게 먹고 하면 어떤 것도 안좋습니다. 아이들 아토피 같은 것도 넘치게 먹어서 장 마비를 통해 생기는 앓이입니다.
먹는 건 전체식으로 먹는 게 좋고, 육류도 한달에 한번 정도 가끔 먹어주면 혈관 확장을 도와주는 등 채식보다 좋은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많이 그리고 너무 자주 먹게되면 확장능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어떤 것이건 넘치지 않게 천천히 먹어야 합니다.
한 선생님의 발
변 선생님의 발
아까 밥짓고 밥먹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지요? 먹을 게 없는 아기는 태어나면 울게 되는 데 이게 밥짓는 것입니다. 아이 울음소리로 인해 엄마젖이 울리게 되고 젖이 돌게 됩니다. 그로부터 24시간이 지나면 젖이 저절로 나오게 됩니다. 이것이 밥짓고 나서 밥먹는 원리입니다. 태어나자 마자는 사고기능이 없고 감각기능만 있습니다. 그래서 첫번 울 때에 젖을 주지말고 두번째 울 때 젖을 물리되 하루에 세번정도 줍니다. 넘치게 주면 아토피같은 앓이가 생기게 됩니다.
자꾸 울리면 아기 성격이 안좋아진다는 데, 아기에겐 감각기관만 있는 상태가 그렇지가 않습니다. 변쌤이나 순례님께서 아기때 젖을 못먹고 미음만 먹어 성격이 괄괄하고 불같다는 말씀인데, 그래서 심하게 체하거나 했을 땐 반드시 굶어야 합니다. 그리고 7년주기로 성격의 변화 싸이클이 오므로 온전히 천천히 먹는 습관을 가져가면 좋습니다. 그리고 이런 불같은 성격은 남을 이해시키려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내가 스스로 남을 온전히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지시면 맘이 편해져 좋습니다.
6. 이 지구별이라는 온전한 생명체가 문명화로 인해 피폐해지고 훼손도 심각한 데 이것 또한 온전한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물론이다. 여전히 온전하다. 오염된 땅에 세상 만물이 적응해 살아가고 있고 가물어도 나무와 풀이 살 듯, 이 세상의 지금까지 잘 못된 것들 모두 온전하므로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게 되어있습니다. 저는 자연농을 하지만 유전자 조작을 한 종자도 그 자체의 온전함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입니다(물론 유전자 조작의 지배적 음모나 자본화는 단호히 거부합니다) 저는 미래를 긍정적으로 봅니다. 그래야 재미지지요^^ 옛날에 사람들은 저를 공산주의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여러분같이 제 얘기를 들으러 와주시는 분들도 많고, 올 12월쯤엔 서울의 나눔문화에서 말씀나눔도 가질 예정입니다.
봉사를 우리말로 하면 쓰임입니다. 우주만물은 예외없이 쓰임으로 갑니다.니시 선생을 통해 터득했듯이 저 역시 쓰임으로 가야하고 그래야 재미가 있습니다^^ 한OO 이라는 나 개인이 유명해질 이유는 없지만, 나의 삶 자체는 유명해져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게 쓰임이니까요. 흔히들 말하는 기부나 11조는 엄밀히 말해 나눔이 아닙니다. 나눔은 돈으로만 하는 것 같이 일부가 아니고 온전한 전부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7. 선생님께서는 처음부터 자연농을 하셨는지요?
아닙니다. 처음엔 저도 관행농을 하다가 정진영씨로부터 유기농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농약을 점진적으로 줄여라' 그랬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농약은 절대 먹어서는 안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즉각 농약을 끊어버렸습니다. 농약보다 안좋은 건 화학비고 그보다 안좋은 게 시중에 판매하는 채 발효안된 퇴비입니다. 설사 발효된 퇴비라 하더라도 쓰지마십시요. 많이 쓰면 질소과다 피해를 입어 작물이 비만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뿌리가 일을 안하게 되면 뿌리가 발달하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밝혀진 150개 가량의 미량원소 가운데 80개 정도만 흡수가 되므로 뿌리가 썩게 됩니다. 콩심고 밀을 심는 등 돌려짓기를 하십시요. 팥같은 걸 심으면 뿌리혹 박테리아가 땅에 아주 비옥하게 해줍니다. 그런 이유로 팥심고 감자심고 이렇게 하면 좋습니다.
8. 옥상텃밭의 인공토(사실은 경량토)에도 퇴비를 주어서는 안되는지요?
인공토로 알고계시는 흙은 화학적으로 만들어 진게 아니라, 사실은 경량토입니다. 비료 대신 팥을 함께 심으십시요. 작물이 잘 자라게 되면 다음엔 팥도 심을 필요가 없습니다.
9. 텃밭농사를 짓고 있는데 비닐멀칭을 안했더니 다른 분들에 비해 모든 작물이 시들하고 열매도 시원찮습니다. 오줌이라도 줘야 하는지요?
그 역시 팥을 옆에다 심으십시요. 뿌리 혹 박테리아로 인해 다음 세대에 가면 효과가 나타납니다.
10. 나눔에 대한 깨달음은 언제 왔는지요?
배추를 통해서 깨달았습니다. 제가 드릴 가장 중요한 얘기 가운데 하나가 숨, 숨통인데요... 제가 유기농하면서 초여름 배추를 수확하려던 참에 장마가 와서 몇포기만 빼고 배추가 다 죽어버렸습니다. 땅을 간 곳의 배추는 다 죽어버렸고, 땅을 안 간곳의 배추는 몇포기 살았습니다. 땅을 간 곳은 물이 스며들면 땅 본래의 떼알조직으로 돌아가기 위해 굳어지려하고 굳어지기 위해서는 물을 잡고 움켜쥐게 되므로 땅의 공극을 메워 흙의 숨통을 막아버리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뿌리가 물에 잠겨 숨을 쉴수가 없어 뿌리가 무르게 됩니다. 반면에 땅을 갈지 않은 곳은 숨통이 원래 열려있어 불이 땅 속에 들어와도 잘빠져 나가게 되므로 배추가 죽지 않게 된 겁니다. 이렇게 해서 이때 비로소 숨, 숨통이란 걸 발견하게 된 겁니다.
종교에서 말하는 성부,성자,성령은 진정한 삼위일체가 아닙니다. 진정한 삼위일체란 한곳에서 세가지의 움직임이 동시에 나오는 것으로 우리말로는 맛,멋,흥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주 만물, 온 생명이 펼쳐지는 원리, 숨의 원리인 것입니다. 맛은 맞이하고 멋은 머물고 흥은 흐름입니다. 이처럼 당기고 머물면서 변화되는 것을 숨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 숨이 '없는 곳 없이 온통 가득한 것'을 일컬어 신이라 하고 하느님이라 합니다. 이 중요한 사실을 모르고 있는데, 저는 이것을 니시의학과 냇물노래에서의 막힘없음과 순환, 숨통트임을 통해 알게 된 것입니다.
한번의 광주의 마음공부하시는 분들께 마음이 도대체 뭣이냐고 여쭸습니다. 마음이란 뇌에서 일어나는 것이므로 곧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숨 또한 당기고 변화되어 내뱉어지는 것이며, 모든 공간안에서 안 계시는 곳이 없이 없습니다. 이를 통해 나눔이 저절로 이루어지고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물건, 차가 만들어지고 비행기가 뜨는 것도 이런 숨의 원리-즉 삼위일체의 성립없이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런 세 움직임, 삼위일체가 함께 일어나지 않게 되는 게 바로 앓이입니다.
과거에 유기농하면서 약 1,200만원(서울의 아파트 한채값) 가량의 빚을 진 적이 있습니다. 이때 숨의 원리에 의해 거래하지 않는 삶을 터득하게 되었고,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안되겠기에 빚을 털어버리자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결국에 빚을 떼어먹게 되었지요^^(웃음) 거래하지 않는 삶을 살게되고 부터는 이게 왠걸? 사람들이 오히려 돈을 가지고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제가 어찌 이 길을 벗어나 다른데로 눈길을 돌리겠습니까?^^(웃음) 재미지고 날마다 나누는 삶인데요~~
11. 선생님의 깨달음은 정말로 공부하시지 않고 깊은 생각과 묵상같은 것들을 통해서만 터득된 것인지요?
저는 몸이 약해 초등학교 8년중 3년만 공부했고 글자도 잘 모릅니다. 그러니 작은 것도 아름답다, 사랑, 살린다는 개념같은 것도 배울 길이 없었음이 당연하죠. 마음공부 역시 모릅니다. 한가지, 교회는 열심히 다녔습니다. 저는 이때까지 홀로 삶을 헤쳐 왔습니다. 오로지 교회와 농사만 알 뿐이지요^^ 물론 들은 건 많았지요, 하지만 숨통이라는 걸 알게되고는 공부를 더 이상 할 필요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성경조차도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아픈 자에게 예수가 이야기 하지요? '네 믿음이 너를 구했다. 더 이상 몸짓지 말라' 이 말의 의미는 네 앓이가 너를 살리고 있으니 그걸 알고 더 이상 나를 찾아오지 말고 참 삶을 살아라는 뜻입니다. 예수말씀은 전혀 구원론이란 것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참 삶을 사는 것, 그때라야만 진정 예수와의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사랑의 나눔, 숨통은 온전한 생명이지만 성경책은 온전한 것이 아니므로 읽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12. 지금까지 쭉 말씀해주신 것들은 다 생명에 관한 것들인데요, 그렇다면 죽음에 대한 선생님은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죽음이란 건 없습니다. 그저 변화만 있을 뿐입니다. 막힘이 없는 순환의 한 부분인... 그렇다면, 죽을 때는 과연 어떻게 죽어야 하는 것일까요? 늙으면 애기처럼 되지요? 그런데 애기는 죽음에 대한 공포같은 건 없지요? 따라서 어린 아이처럼 되어 죽으면 됩니다. 제 딸아이가 29살 돼서 죽었고 이곳에서 와서 암환자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제 딸아이가 그랬어요. '아빠 나 이제 죽을 것 같아' 그래서 제가 그랬죠. '응,그래..' 공포가 없었어요. 죽음에 대한 공포가 되었건 뭔 공포가 되었건 공포가 있다는 건 몸에 독소가 있다는 얘깁니다. 죽는다는 건 늙었기 때문이 아니라, 몸 속에 갖춰진 것들을 다 써먹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자연스런 변화일 뿐입니다. 숨이 끊어지는 다른 변화말이지요. 숨이 끊어지기 전 먼저 사고의 기능이 떠나고 감각기능만 남게 됩니다. 즉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가 되므로 죽음에 대한 공포도 없고, 전생이나 내세를 보았다는 것도 있을 수 없습니다. 다 거짓입니다. 다 우리가 속고 있는 것입니다. 죽음은 분명 단지 또 하나의 다른 변화일 뿐입니다. 딸아이는 화장한 후 감나무 밑에 수목장을 했는데, 그러면 감나무 뿌리가 뼈가루를 감싸 녹여서 감나무의 생명으로 변화시킵니다. 또 하나의 생명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한 생명은 똑같은 생명으로는 절대 가지 않습니다. 영원 속에서 또 다른 생명으로 변화합니다.
13. 예수믿으면 구원받고 천당 간다는 말의 의미는?
천당과 지옥, 구원의 의미는 이스라엘 민족들의 잘못된 선민의식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고래로부터 이민족의 침범을 많이 당했습니다. 그때 입은 많은 괴로움과 고통 속에서도 구해주시지 않으니 맥이 빠지지 않으려 영원히 구해주실 분이 오신다 한겁니다. 천당과 지옥도 이렇게 해서 만들어지고, 죽어서도 인도해주신다는 내용으로 성경 또한 만들어져 나온 겁니다. (구원을 팔고 사는) 거래의 삶이 종교의 존재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14. 도시에서 살면서 선생님처럼 살고싶어도 자식이나 여러 걸림돌이 있어 안되는데, 어찌하면 되겠는지요?
저는 못배우고 몸약하고 가난해서 엄청나게 한이 맺힌 사람이었습니다. 제 자식을 유학보낼 정도로요... 그러나 깨닫고 보니 자신 스스로가 참을 보느냐 안 보느냐가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지금 즉각, 털어버리기를 잘 하셔야 합니다^^
선생님이 살고계시는 곳
- 유한대 농부학교 1학기 종강MT -
첫댓글 좋은 내용의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아침을 참 좋은 느낌으로 시작하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