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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고항~왜목마을~당진화력발전소~도비도항~삼길포항 17.2k, 5.5h
장고항
포구가 자리한 바닷가의 지형이 장고를 닮았다 해서 장고항이라 불리는 당진의 전형적인 어촌 마을이다. 일출과 일몰을 모두 감상할 수 있어 수도권 인근에서 찾아오는 나들이객이 많으며 낚시 마니아들 사이에선 배낚시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대호방조제를 오른편에 두고 있어 물결이 잔잔하고 배를 빌려 바다로 나가면 우럭, 놀래미, 광어 등이 많이 잡힌다. 포구 입구에는 직접 잡거나 인근 포구에서 공수한 싱싱한 해산물과 횟감들을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는 포장마차들이 성업 중인데 3, 4월에는 실치가 많이 잡혀 실치 회를 맛보려는 미식가들이 즐겨 찾고 전어가 많이 잡히는 가을에는 바다를 바라보며 전어회와 전어구이를 맛볼 수 있다. 배들이 정박 중인 방파제 반대편으로는 기암절벽과 소나무가 어우러진 작은 자갈밭이 있어 멋진 일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출처:(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왜목마을
인구는 25명(2003)이다. 일출(日出)과 일몰(日沒), 월출(月出)까지 모두 한 장소에서 볼 수 있는 전국 유일의 장소로 유명하다. 충청남도 서해의 땅끝 마을로서, 해안이 동쪽을 향해 돌출되어 있고 인근의 남양만(南陽灣)과 아산만이 내륙으로 깊숙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왜가리의 목처럼 불쑥 튀어나온 모습이라고 해서 왜목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모두 8가구가 살고 있으며 7가구는 어업, 1가구는 농업에 종사한다. 독특한 지형구조 때문에 바다 너머 경기도 화성시까지는 서로 육지가 멀리 떨어져 있고 수평선이 동해안과 같은 방향이어서 일출·일몰·월출을 모두 볼 수 있다. 또한 지구의 공전에 따라 태양이 경기도 화성시 앞바다의 국화도와 장고항 사이로 이동해가면서 떠오르고 지기 때문에, 석문산(79m) 정상에 오르면 일출과 월출의 위치가 시기별로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화려하고 장엄한 동해의 일출과는 달리, 이곳의 일출은 한순간 바다를 가로지르는 짙은 황톳빛의 물기둥이 만들어지면서 소박하면서도 서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일몰은 대난지도(大蘭芝島)와 소난지도 사이의 비경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활활 타오르던 태양이 서서히 빛을 감추며 바다와 하늘을 동시에 검붉게 물들이면서 바닷속 깊이 잠겨버리는 장관을 연출한다. 특히 일출과 일몰 광경을 볼 수 있는 날이 최소 180일이나 된다. 태양이 국화도 위로 뜨는 7월과 장고항 틈 사이로 떠오르는 1월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출처:(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한국동서발전 충남당진확본부[韓國東西發電忠南唐津火力本部]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에 있는 화력 발전소.
설립 목적
전력 생산을 목적으로 설립된 에너지 공기업으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한국 전력 공사 당진 화력 본부는 1993년 7월에 당진 화력 발전소 건설 사무소를 개소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2001년 4월 2일에 전력 산업 구조 개편[발전 부문 분리]에 따라 한국동서발전 주식회사(주)로 사명이 변경되었다. 1999년 6월 30일에 1호기 준공을 시작으로 2001년 3월에 당진 1~4호기가 준공 완료되었고, 2005년 10월 1일에 5호기 준공을 시작으로 2007년 12월 31일에 당진 5~8호기가 준공 완료되었으며, 2016년 7월 3일에 당진 9호기 상업 운전을 시작으로 9월 30일에 당진 9,10호기가 상업 운전을 하며 현재 당진 화력 1~10호기가 운영 중에 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당진 화력 본부는 설비 용량 604만kW[1~10호기, 195만 가구 전력 공급 가능] 전력 생산 설비를 보유하여 전력 생산을 하여 전력 거래소에 판매하고 있으며, 전력 생산에 따라 부수적으로 발생되는 탈황석고를 생산 판매하고 있다. 아울러 발전소 주변 지역에 대한 지역 지원 사업과 사회 공헌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현황
당진 화력 본부의 조직은 2016년 현재 본부장 산하에 5개의 처 1개의 반, 5개의 부서, 32개의 팀으로 구성되어져 있으며, 인원은 총 838명이다. 또한 발전 기술 개발원에 4개의 팀과 54명의 인원이 별도 조직으로 발전 기술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협력 회사 직원이 882명 가량 근무하고 있다. 주요 설비는 10기의 발전 설비와 신재생 설비인 태양광 발전 설비[터빈 건물, 자재 창고 옥상에 태양광, 발전소 앞/뒤 취수로 수상 태양광]와 소수력 발전 설비[발전소에서 방류되는 온배수로 발전]를 운영 중에 있다.
의의와 평가
당진 화력 본부는 전력을 생산하여 국가 산업 발전에 이바지 하고 있다. 환경 오염 물질 발생을 최소화하고 있는 친환경 발전소 구현을 위해 탈질, 탈황, 전기 집진 설비를 운영하고 있다. 또 이산화탄소 저감을 위해 태양광 발전, 소수력 발전, 우드 필렛, 유기성 고형 연료 연소 등 다양한 신재생 설비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지역의 균형 발전 및 실질적 소득 증대를 위한 치어 방류 사업, 전기 과학 교실 운영 등 육영 사업, 당진 다목적 체육관 건립 등을 통한 특별 지원 사업, 다양한 사회 공헌 프로그램 운영 등 지속적인 지역 지원 및 사회 공헌 활동을 통해 향토 기업으로서 국가와 지역 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있다.
참고문헌
당진 화력 홍보 리플렛(2016)
한국동서발전(http://www.ewp.co.kr)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도비도항[搗飛島港]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난지도리에서 선박이 안전하게 입출항 및 정박 할 수 있는 설비를 한 항구.
개설
도비도는 충청남도 당진시의 최북단 석문면 난지도리에 속하는 바위섬으로 옛날에는 가비도(加飛島)라고 불렀다. 1984년 대호 방조제 준공으로 현재 연륙화되었다. 대난지도를 오가는 연락선이 출항하는 포구 역할을 하고 있는데, 섬의 절벽이 깎아지른 듯하다. 지금은 도비도 휴양 단지가 조성되어 당진 6경으로 불린다. 조선 시대에 발행된 『해동지고』 당진 편에 ‘가비도’가 조도와 초락도 사이에 있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더할 가(加)’ 자로 보아, ‘더비도’가 ‘도비도’로 변한 후 ‘도비도’로 정착된 것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주민에 의하면 섬 모양이 새처럼 생겨서 언젠가는 ‘날아갈 섬’이란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1984년 대호 방조제 완공으로 안쪽의 넓은 갯벌이 간척으로 대규모 답이 되면서, 전면에 떠 있던 도비도 섬은 연륙되었다.
건립 경위
자연 발생적 어업과 난지도 정기적 배의 접안·정박을 위하여 선착장 등의 계류 시설이 필요했다.
변천
초락도에서 패총이 발굴되어 이 지역이 인류의 터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어업은 이와 같이 자연의 어패류를 채집하는 맨손 어업에서 살, 통발 등의 도구를 이용하는 도구 어업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인지의 발달로 그물, 배를 이용하는 근해·원양 기술 어업으로 발전했다. 현재 도비도는 방조제 축조로 넓은 갯벌이 사라져 극히 제한적으로 어업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어민들은 양식 어업인 공생 어업으로 전환 중에 있다.
구성
도비도항은 비지정 어항이며 계류 시설인 선착장은 372m이다. 어선 어업은 연근해 어업이 주종을 이루며 어업 인구는 108명이다. 바지락 양식은 당진 수산업 협동조합에서 45㏊, 난지도 어촌계 160㏊ 등을 한다. 굴 양식은 난지도 어촌계에서 10㏊를 한다. 전복 양식은 당진 수산업 경영인회에서 4㏊, 난지도 어촌계에서 13㏊를 한다. 가비리 양식은 소난지도 영어 조합 법인에서 20㏊, 서해 디에스 영어 조합 법인에서 20㏊, 서해 영어 조합 법인에서 10㏊ 등을 한다. 가두리 양식[넙치, 우럭]은 7.9㏊을 한다. 대호 방조제 축조로 간척지가 조성되면서 내륙과 연결되었다. 바위섬에 휴양지가 조성되었다. 섬과 바다, 갯벌과 호수, 낙조와 낚시, 문화와 휴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자연 생태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배에서 즉석 회를 만들어 먹을 수 있고, 유람선을 타고 섬 사이를 돌아보는 시간도 즐길 수 있다. 도비도는 해수면과 내수면이 만나는 휴양지로서 서해 천혜의 갯벌과 유람선, 암반 해수탕이 있으며 내수면에서는 승마, 카악, 수상 자전거의 체험 놀이터가 있어 오션 휴양지의 새로운 방향을 시도하고 있다. 대호 암반 해수탕은 지하 200m 암반에서 끌어올린 천연 해수를 이용하기 때문에 미네랄이 풍부하여 성인병, 피부병, 피로 회복, 피부 미용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해수탕에서 몸을 가볍게 하고 나오면 횟집, 목조각 공원, 무지개 다리를 거너면 유람선 선착장에 도착한다.
현황
근해에는 새우, 조기, 민어, 갈치, 꽃게, 숭어, 우럭, 고등어 등이 잡히고 있다. 또한 굴, 바지락, 낙지, 갯지렁이 채취 등의 맨손 어업을 하고 있다. 넓은 간척지를 이용한 바지락, 백합, 굴, 맛조개 등의 양식이 활발하다. 특히 초락도 낙지는 크고 맛이 좋아 관내는 물론이고 서울과 인근 예산, 온양, 천안 등의 지역에서도 초락도 낙지가 '푸레기 낙지'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1984년 대호 방조제 공사가 완공된 후 생태계의 변화로 구경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농어민 휴양단지는 쉬어라[Health], 배워라[Experience], 즐겨라[Joy]의 3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생태 휴양 단지로 운영하고 있다. 난지도 해수욕장을 가는 배가 운영되고 있으며, 어선과 낚싯배들이 포구에 정박하고 있어 바다낚시도 즐길 수 있고 횟집들이 많다.
참고문헌
당진군지 편찬 위원회, 『당진군지』(당진군, 1997)
『당진항 지정 백서』(당진군, 2005)
김추윤, 『당진의 지명 유래』(당진 문화원, 2012)
『당진 시정 백서』(당진시, 2015)
『석문면지』(석문면지 편찬 위원회, 2015)
『당진시 통계 연보』(당진시, 2016)
당진시청(http://www.dangjin.go.kr)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삼길포항[三吉浦港]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화곡리에 있는 국가 어항.
변천
삼길포항은 조선 시대부터 인천을 왕래하던 범선이 출입하던 포구였다. 1972년 지방 어항으로 지정되었으며, 1994년부터 현대식 항구로 바꾸기 위한 기본 조사 및 시설 계획을 수립하였다. 1999년에는 서산시에서 유일하게 국가 어항으로 지정되었고 2000년에 어항의 기본 설계 용역을 발주하고 2002년에는 실시 설계 용역을 발주하여 그 결과에 따라 2003년에 3만 2575㎡ 면적에 방파제, 물양장, 선착장, 호안, 선양장, 준설, 진입 도로 등의 공사를 착공하여 2011년 완공할 예정이다.
구성
2009년 어항 통계에 의하면, 어선 109척에 전체 톤수 242.23톤, 평균 톤수 3.14톤이며, 유람선 2척이 정박하고 있다. 계류 시설로 선착장이 167m, 2008년에 공사가 완료된 방파제는 299.5m이다. 물양장은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데 상·하부 357m 중 하부 공사는 2010년에 완료되었고 상부의 잔량 77m가 공사 중에 있다. 어항 면적은 4만 9000㎡, 어획고는 84억 100만 원, 어획량 4,331M/T이며 주 어종은 우럭, 노래미 등이다.
현황
2005년부터 우럭을 테마로 하는 ‘삼길포 우럭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2009년까지는 5월에서 6월 사이에 열렸으나 2010년부터 10월에 개최되고 있다. 2009년 1월에는 대산지방해양항만청에서 삼길포항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을 형상화하여 삼길포 붉은등대를 건립하였는데 등대 주변에는 우럭을 형상화한 조형물과 쉼터 등이 조성되어 있어 우럭 등대로도 불린다. 한편 유람선은 대산항과 대산임해산업단지, 주변의 유·무인도를 구경하는 코스로 운영하고 있으며, 여름철에는 일시적으로 충청남도 당진군의 난지도를 연결하는 항로가 운영된다.
참고문헌
농림수산식품부 서해어업관리단(http://westship.mifaff.go.kr/)
서산시청(http://www.seosan.go.kr/)
한국어촌어항협회(http://www.fipa.or.kr/)
전화 인터뷰(서산시청 수산과)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아래 게시물은 조선조 태조 이성계의 왕찰이었던 경기도 양주시 "회암사지"가
세계문화유산이 될 유네스코 등재를 앞두고 2023년5월 5,6,7일 연휴 기간동안
어린이 날 행사를 필두로 볼꺼리 많은 각종 문화행사가 펼처진 회암사지에
다녀와서 스마트폰에 담아온 사진으로 행사일부 소개하는 간단한
게시물을 만들어 첨부합니다.
상여[喪輿]
상례 때 시신(屍身)을 운반하는 기구.
내용
상례 때 쓰이는 운반기구는 시신을 운반하는 상여와 혼백을 운반하는 영여(靈輿)로 나누어진다. 이 둘을 통칭하여 상여라고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앞의 것만을 이른다. 상여라는 말은 우리 나라의 문헌에서 최초로 나타나며, 중국의 문헌에서는 대여(大輿)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중국에서는 온량(轀輬)·온량거(轀輬車)·영거(靈車)라고도 하였다. 온량이라는 말은 원래 평안하게 누어 쉬는 수레를 뜻하였으나, 나중에 관(棺)을 싣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예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중국의 예서들인 주희(朱熹)의 ≪가례≫나 구준(丘濬)의 ≪가례의절 家禮儀節≫에는 대여라는 이름만이 보이고 있는 데 반하여, 이러한 중국의 예서들을 두루 참작하여 18세기 중엽에 편찬되고 19세기 중엽에 간행된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예서인 이재(李縡)의 ≪사례편람≫에는 대여라는 이름과 함께 상여라는 이름도 같은 기구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대여를 사용하면 정말로 좋으나 가난한 사람은 쉽게 구비할 수 없는 점이 있으니,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따라서 상여를 사용해도 무방하다.”고 설명한 것으로 보아, 한편으로는 이 두 기구를 구별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그 밖에도 “요즈음에 아래 위에서 모두 두루 사용하는 것으로, 그 만드는 법은 대여를 모아 간단하게 만든 것”인 소여(小輿)라는 것도 소개하고 있다.이러한 설명을 종합할 때 아마도 상여는 소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회다지
흙에 회를 섞어 다진다는 말로, 관을 광중壙中에 안치한 뒤 일꾼들
이 흙으로 채우거나 봉분을 축조하면서 발로 단단하게 밟는 일.
개관
회다지를 하는 이유는 나무뿌리 혹은 뱀・쥐・여우 같은 동물이 광중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서이다. 회다지를 ‘다구질’ 또는 ‘달구질’이라고 부르는데, ‘흙을 다지는 일’이라는 점이 공통적이기 때문에 이러한 명칭들이 사용되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래서 달구질을 하면서 <회다지소리>를 하기도 하고, 회다지를 하면서 <다구질소리>를 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노동의 장소만 다를 뿐 노동의 행위나 노래는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을 반영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흙을 다지는 경우는 보통 광중을 흙으로 채우거나 봉분을 만들 때, 집을 짓기 전에 집터를 단단하게 다질 때, 제방을 단단하게 쌓을 때 등이다. 또한, 흙을 다지는 것은 기본적으로 흙을 운반하여 쌓은 후에 이루어지는 작업이기 때문에 흙을 운반하는 도구인 가래를 이용하면서 부르는 노래인 <가래질소리>를 부르기도 한다. 가래질은 1인이 하거나 3인이 하는 작업인데, 주로 흙을 많이 운반해야 할 때는 3인이 1조가 되어 가래질을 했다. 이를 ‘장부질’이라고 불렀고, 장부질을 하는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를 <가래질소리>라 하였다. 이 노래는 흙을 쌓는 때뿐만 아니라 흙을 다질 때에도 불렸다. 그래서 흙을 다지면서 부른 노래의 명칭으로 <회다지소리>·<다구질소리>·<가래질소리> 등이 뒤섞여 사용된 것으로 판단된다. 흙을 다지는 일을 하면서 사용한 막대기를 ‘횟대 ’ 혹은 ‘달굿대’, ‘연춧대’ 등으로 부른다. 보통 ‘달구’에는 굵은 통나무 토막 위에 손잡이가 2개 혹은 4개가 달려 있다. 쇠로 된 것을 ‘쇠달구’라고 하고, 나무로 된 것을 ‘목달구’라고 부른다. 돌덩이에 줄을 달아서 사용하기도 하는데, 2인 또는 그 이상의 사람들이 힘을 모아 달구를 공중에 높이 들었다가 땅에 떨어뜨려 흙을 다진다. 작업의 능률을 올리고 노동의 피로를 덜기 위해 노래를 부르면서 달구를 들어 올렸다 놓았다 한다. 이를 ‘달구질’ 혹은 ‘달구방아’라고도 부른다. 선소리꾼은 북을 치면서 노랫말을 선창하고, 일꾼들은 달구질하면서 후렴을 부른다.
내용
상여가 장지에 도착하면 관을 묘상각墓上閣에 안치하고, 하관 시간이 되면 복인들이 관을 묶은 새끼를 풀어 하관한다. 그다음, 내광內壙과 관 사이에 회를 채우고 명정銘旌을 덮은 뒤 상주 이하 복인들이 조금씩 실토實土한다. 실토가 끝나면 일꾼들이 본격적으로 내광에 흙을 붓고, 흙이 어느 정도 쌓이면 한번 회다지를 한다. 한번 다진 후에 다시 흙을 넣어 중광中壙을 채운다. 내광이 흙으로 메워져 평지와 같이 되면 평토제平土祭를 지낸다. 평토제에 이어 봉분을 만드는데, 성분成墳을 계속하고 흙을 달구로 다지면서 일꾼들이 노래를 부른다 . 이때는 광중에 흙을 채운 뒤 일꾼들이 선소리꾼의 소리와 북장단에 맞추어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다지기도 한다. 간혹 달구질을 하는 동안 망인의 사위나 조카 등을 데려다가 봉분 위에서 춤을 추게 하여, 그들로부터 담뱃값이나 술값을 받기도 한다.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작사 도종환
작곡 정의송
노래 윤태화
견우 직녀도 이날만은 만나게 하는 칠석날
나는 당신을 땅에 묻고 돌아오네.
안개꽃 몇 송이 땅에 묻고 돌아오네.
살아 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해 주고
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입혔네.
당신 손수 베틀로 짠 옷가지 몇 벌 이웃에 나눠 주고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오네.
은하 건너 구름 건너 한 해 한번 만나게 하는 이 밤
은핫물 동쪽 서쪽 그 멀고 먼 거리가
하늘과 땅의 거리인 걸 알게 하네.
당신 나중 흙이 되고 내가 훗날 바람 되어
다시 만나지는 길임을 알 게 하네.
내 남아 밭 갈고 씨 뿌리고 땀 흘리며 살아야
한 해 한 번 당신 만나는 길임을 알게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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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버전】 윤태화 -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미스트롯2 토크 콘서트 2회❤ TV CHOSUN 210325 방송 - YouTube
2023-05-14 작성자 명사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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