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부터 너무나 정신없고 바쁘기만 한 학교생활과 그러지 않으려 애를 써도 자꾸만 지쳐가는 나날들이 계속됐고, 5월도 그랬다. 그래서 지금 내가 ‘어떤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조차 할 겨를이 없었고, 또 ‘어떤 영화가 개봉 중인지’도 모른채 철저히 문화 생활이나 여유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하루하루를 보냈고, 그렇게 5월이 지나갈 뻔 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내가 본 영화 ‘하녀’는 내가 모두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는 난해하고 어려웠지만, 이번 기회로 ‘칸 영화제’에 진출할 만큼의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를 보고, 잠시나마 내가 학교 생활 이외의 것에도 관심을 가지고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었다.
영화는 번잡한 도시의 번화가에서 한 여자가 자살을 하는 다소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된다. 순진하고 마음씨 좋은 은이는 부잣집 '입주 가사도우미'로 취직한다. 부잣집에는 예의 바른데다 훤칠하고, 피아노 연주를 취미로 삼고 있으며 와인을 즐겨 마시는 주인 남자 훈과 젊고 아름다운데다 뱃속에 쌍둥이를 임신중인 훈의 아내 해라, 그리고 훈과 해라의 여섯 살 난 딸 나미가 살고 있다. 은이는 오랜 시간 이 집의 '하녀'로 살아 온 병식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하녀 생활을 시작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훈의 유혹을 받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를 눈치 병식이 해라의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고해바치게 되고, 은이가 임신한 아이를 없애기 위해 해라와 해라 어머니의 작전이 진행된다. 결국 은이는 아이를 잃고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채로 돈 봉투와 함께 그 집에서 내쳐치고, 너무 갑갑해서 끽소리 한번은 내야겠다고 울부짖었던 은이는 영화의 첫 장면에 나왔던 그 여자와 마찬가지로 결국 훈이네 가족과 병식이 보는 앞에서 목을 매고 불에 타 죽는다.
영화가 끝나고, 영화관에 불이 켜지는 순간에도 영화를 함께 본 친구와 멍하게 서로를 쳐다보며 한참을 앉아있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난 이런 종류의 영화를 즐겨보는 편이 아니지만, ‘칸 영화제’의 진출작이라는 것과 ‘칸의 여왕’이라 불리는 전도연으니 출연작이라는 것이 내가 ‘하녀’를 선택하게 된 이유가 됐고, 그래서 그 영화 자체에 어느 정도 기대를 했던 것 같다. 물론 전도연과 윤여정의 훌륭한 연기력과 다른 배우들의 열연과 감각적이고 화려한 영상이 인상적이기는 했지만 이야기의 흐름 속에 사건은 차곡차곡 진행되지 않고 불쑥불쑥 벌어지는 식으로 진행되었고, 전도연이 연기한 은이의 갑작스럽고 어색한 캐릭터 변화는 물론 다른 인물들의 대사이나 행동 역시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또 목을 매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불타오르는 은이의 마지막 모습이 우리에게 주고자 했던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가장 마지막 장면이었던 나미의 생일 파티 모습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었는지 등등 한 장면, 한 장면에서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던지고자 하는 알듯 말듯 한 메시지가 무엇인지 생각하느라 저절로 고개가 갸우뚱 거려졌다. 이 영화에서 나오는 인물들은, 서로의 육체에 대한 갈망도 대가를 치르면 거기서 그만이었고, 신분상승에 대한 욕망도 끓어 넘치지 못했고, 아기도 죽여 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등 모든 것이 찰나의 순간에 진행될 뿐이었기 때문에 때로는 약간 밋밋하기도 하면서 난해하게 느껴졌던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영화를 보고 와서 오히려 영화에 대해 더 궁금해져 이것 저것 ‘하녀’에 대해 찾아보게 되었는데 내가 은이의 자살로 밖에는 연결하지 못했던 두 가지 자살 장면이 타인의 삶과 죽음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은 현대 사회의 무관심과, 한 여자의 자살 과정을 지켜본 어린 아이(은이의 죽음을 지켜보았던 나미)의 트라우마를 상징적으로 나타냈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이렇게 조금씩 사회 풍자적인 모습을 담고있는 영화로서의 하녀를 곱씹어 보니, 이 영화 안에는 빈부격차로 벌어지는 여러 가지 문제들, 그리고 그들을 조롱하며 죽음을 택한 하녀 은이와 그 집을 떠나는 병식을 통한 지배층에 대한 조롱, 권력과 부에 철저하게 짓밟힌 인권 등을 우리에게 고발하려고 했던 게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영화내용을 모두 이해하고, 감독이 의도한 바를 모두 이해하진 못했지만 우리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 우리 사회에 얼마나 무관심하고 이기적이며 독단적이었나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