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걱정해야 하는가?
<Z세대를 위한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민들레 편집실 엮음)을 읽고
아이가 스마트 폰을 사용하기 시작한 건 5학년 겨울 무렵이었다. 주기적으로 스마트폰을 사달라고 아이는 성질을 부렸지만 나는 잘 버텼다. 남편이 퇴근길에 중고 아이폰을 사들고 왔고 아이가 얼마나 좋아할지 기대하며 본인이 더 설레였다. 학교에서 게임중독, 미디어 과사용 예방 교육을 받은 아이는 폰 사용을 절제하려고 했다. 주로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니거나 저녁에는 놀이터에서 롱보드를 타고 놀았다. 걱정될 만큼 폰 사용 시간이 길지도 않았기에 제한 시간을 따로 두지 않았다. 제한하면 할 수록 더 하고 싶어질 게 염려되었고 스스로 조절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게임이나 폰 사용에 대한 걱정을 많이 했지만 우리 집은 제한 시간이 없어도 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그 시절에 부렸던 여유가 그립고 한편으로 자신만만해했던 게 부끄럽기도 하다.
중학교 1학년이 되자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급격히 늘어났다. 하교 후 집에 오면 일단 침대에 누워 폰을 보며 쉬었다. 초등 시절과 달리 친구들과 노는 시간이 급격히 줄었다. 아이들은 각자 학원 스케줄 대로 움직이느라 바빴고 짬짬이 온라인에 접속해서 톡을 주고 받았다. 친구 아들은 밤 10시 30분부터 게임을 시작한다고 한다. 학원을 끝나고 친구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시간이 그 시간 밖에 없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모여서 하는 그런 게임들은 한판을 하는데 1시간은 훌쩍 넘기니 결국 수면시간이 늦어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즐겁게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보니 무조건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다고 했다.
“온라인을 통한 접속의 세계가 한 개인에게 그러한 관계망을 제공해주게 되면서, 사람들은 온라인 그 자체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게 되어있다. 접속이 불가능해지는 상황은 이제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p.39 ‘게임에 빠진 아이들을 위한 변명’(<Z세대를 위한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민들레, 편집실 엮음)
내가 자랄 때와는 친구를 사귀는 방법이 다르다. 그때는 학기 초 교실에서 근처 앉은 친구나 집에 가는 방향이 같은, 그런 물리적인 거기라 가까운 아이와 친구가 되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SNS를 통해서 서로를 파악한 뒤에 취향이 비슷한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며 친구가 된다. 친구의 친구와도 쉽게 연결되고 다른 반, 혹은 다른 학교 친구와 더 자주 소통할 수 있다. 온라인에서 피드백이 바로바로 전달되니 오프라인 보다 더 쉽게 친해진다. 그럴수록 아이는 더 많은 시간을 스마트폰에서 머문다. 온라인에서 노는 건 이해한다. 그걸 막을 수도 없으니 막을 생각도 하지 말자.
가장 염려하는 점은 아이가 무분별한 자본주의 마케팅에 노출되고 있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수용할 힘이 없다는 데 있다. 아이는 자신의 눈동자가 너무 까맣다고 컬러렌즈를 끼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코가 낮아서 섀딩을 사고 싶다고 했고 가느다란 허벅지를 잡고는 혹시 이게 셀룰라이트냐고 물었다. 자신의 외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그에 따른 자존감 하락은 사춘기의 특징 중 하나이다. 인터넷을 지배하는 외모지상주와 자본주의는 어떠한 여과장치도 없이 아이들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 버린건 아닌지 우려된다. 인터넷은 예민한 사춘기 아이들의 열등감을 부추기면서 그것을 보상할 물건을 구매하게 유도하고 자신의 몸을 대상화하게 한다. 과연 아이들은 디지털 미디어 세상의 주체로서 존재하는가?
하지만 디지털 학습권에서부터 노동권, 차별당하지 않을 권리, 성적 대상화가 되지 않을 권리 등 아동권리협약에서 논의하고 있는 수많은 권리들이 디지털 속 아동의 삶에는 아직 적용되지 않고 있다. 우리는 오늘날 디지털 미디어 사회를 맞이하여 디지털 시민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아동 인권을 되새기면서, 근대가 만들어 놓은 어린이와 청소년 관련 사회 시스템을 통제가 아닌 보호의 관점에서 다시 한번 견고히 할 필요가 있다. p.172 (같은 책 인용)
아이를 보호하자고 스마트폰 사용을 막을 수만은 없다. 사용 시기를 최대한 늦추는 게 방법이라는데 언제까지 늦출 수 있을까? 고등학교 때 가서 폰을 사줬더니 오히려 그때 더 빠져서 일상이 망가진다. 그때는 부모가 전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으니 차라리 아이가 부모 손에 있을 때 올바른 스마튼 폰 사용 습관을 들이고 조절하는 법을 계속 연습해나가야 한다는 말도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스마트폰에 빠질 일이 없을 만큼 일상의 즐거운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폰을 대체할 다른 즐거움이 아이들에게 제공되면 좋겠다. 친구를 만나서 놀 시간, 취미활동을 할 시간 등.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폰만 보는 아이’가 아니라 아이를 온라인 세상으로 밀어 넣고 있는 ‘스마트폰 권하는 사회’이고 아이들을 보호하지 않는 온라인 세상이다.
첫댓글 많이 늦었지만 구매까지 하며 읽은 책이고 제 고민과 밀접한 주제라 꾸역꾸역 썼습니다. 하아... 근데 이 주제는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