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수필】
느티나무와 인생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 필자의 말
내가 특별회원으로 참여하는 인터넷 카페가 있다. ‘올바른 역사를 사랑하는 모임’. 존경하는 원로 역사학자 정구복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가 운영하는 카페이다.
자주 방문하는 카페인데도 오늘은 ‘카페 대문’ 앞에서 눈길을 멈췄다. 사계절 변함없이 독자에게 푸르름과 시원한 그늘을 선사하는 ‘대문 사진’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 ‘올바른 역사를 사랑하는 모임’[올사모] 카페 대문 사진
500년 수령의 남원 광한루 느티나무라고 한다. 나무 아래 돌의자도 인상적이다. 빙 둘러앉아 담소하고, 시문을 짓던 옛 선비들의 야외 학습장 모습이 연상된다.
이 느티나무 사진은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이 사진을 카페 대문 사진으로 걸어 둔 지 꽤 오래됐는데도 쉽사리 교체하지 않는다. 나는 이 대문 사진을 오래 오래 걸어 두길 바란다. 보기가 좋다.
야외 노인정이라 해도 좋고, 시문을 짓고 노변정담을 즐기는 선비들의 친목 공간이라는 상징성도 있다.
또 다른 <보기 좋은 이유>를 세 가지만 든다면 ▲ 첫째, 사계절 푸른 잎이다. 무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제공한다. ▲ 둘째, 노령의 나무지만 비바람에 쓰러지지 않는다. ▲ 셋째, 이 카페에 참여하는 원로 학자와 문인의 모습을 꼭 닮았다.
나는 바로 세 번째 ‘보기 좋은 이유(원로 학자와 문인의 모습)’를 설명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먼저, 학문과 인품으로 존경받는 낙암 정구복 박사는 팔순을 넘긴 연세다.
▲ 樂庵 정구복 교수
또 삶의 유익한 정보와 아름다운 문학적 정서가 담긴 귀한 옥고를 정성껏 올려주시는 철학자이자 수필가이신 고림 지교헌 교수는 구순을 훌쩍 넘긴 연세다.
▲ 高林 지교헌 교수
동양철학을 전공하신 구순의 지교헌 박사님, 한국사를 전공하신 팔순의 정구복 박사님. 높은 학문과 온화한 인품의 두 어르신의 귀한 옥고를 읽고, 자상한 가르침을 받는다는 것은 실로 영광스러운 일이다.
국내 어느 인터넷 카페 공간에서 이렇게 존경스러운 어르신들을 만나 뵐 수 있는가.
두 어른 외에도 귀한 옥고로 카페에 참여하시는 원로 학자와 문인이 다수 계시지만 오늘은 일단 두 분 학자 문인을 ‘느티나무 닮은 어르신’으로 자랑스럽게 예를 들어 본다.
느티나무와 같은 학자와 문인.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노년의 모습인가.
얼마나 훌륭한 인생의 본을 후학들에게 보여주시는 존경스러운 어르신의 모습인가.
남을 칭찬하고 인정을 베풂에도 두 분 학자님은 아낌이 없다.
거칠고 삭막한 세상에서 따뜻한 사랑과 인정이 묻어나는 이 시대 원로 학자의 댓글, 격조와 품격이 느껴지는 원로 문사의 정성스러운 옥고, 아무리 나이가 아래인 사람에게도 존대를 하시는 한국적 아름다운 전통의 예(禮)와 올곧은 삶의 본을 보여주시는 어르신.
힘든 직무 현장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늘 용기와 힘을 주시는 따뜻한 격려, 사회 정의가 아닌 것에는 절대 굽힘 없이 대쪽 같은 성품을 보여주시며 진정한 선비 정신을 가르쳐 주시는 분들.
무언가 배우고 싶고, 정서적인 도움이 될만한 유익한 원로 어르신들의 옥고를 만나려면 올사모 카페를 찾으면 된다.
나는 올사모 카페에 참여하면서 두 어르신으로부터 잊지 못할 과분한 찬사를 들었다. 낙암 교수님은 몇 해 전에 나의 졸저 수필집에 사랑과 격려의 추천사를 써주셨고, 귀한 호(號)와 호기(號記)도 지어주셨다.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넘치는 역사학자님의 귀한 옥고다.
고림 교수님은 나의 손자 돌봄 에세이집 출판에 사랑이 넘치는 서평을 써 주셨다. 집안 어르신 못지않은 따뜻한 눈길로 격려의 감상평을 써주셨는데, 구순 원로 학자 문사의 그 자상함에 온 식구가 크게 감탄하고 감동했다.
온갖 세상 풍파 다 겪으신 원로 학자의 넘치는 사랑, 그리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넉넉한 인정 베풂이다.
나는 과거에 대전 수필문단의 원로 문인 추천으로 대전수필문학회장 임무를 수년간 맡아 봉사하면서 동인지에 ‘느티나무와 수필’ 제목의 ‘권두 에세이’를 쓴 적이 있다. (※하단에 덧붙임)
이 글을 다시 꺼내 보면서 내가 사는 고장에는 어떤 느티나무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내 고장 대전 서구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괴곡동 느티나무’가 있다. 수령이 무려 700년이다. 마을 이름(槐谷)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 대전 서구 ‘괴곡동 느티나무’ 목신제(사진출처 = 대전광역시 서구청 보도자료)
대전 괴곡동 느티나무 [ 大田槐谷洞─ ] 천연기념물(보호수) 제545호 2013년 7월 17일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수령은 700년으로 추정되며 나무높이는 16m, 가슴높이 둘레는 9.2m에 달한다. 느티나무는 1주이며 해당 면적은 389㎡로 나무의 규모나 나이, 모양면에서 천연기념물로서 손색이 없다. 느티나무는 은행나무와 함께 천여 년을 헤아리는 노거수가 많다. 서양에서 월계수를 신성시하듯 우리나라에서는 느티나무를 신령한 나무로 여기고 있어 많은 전설 등이 있다. 느티나무는 옛 신라에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금벌(禁伐)과 보호의 덕을 입어 노거수가 많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대개 동구 밖에 한두 그루씩 심어져 있으며 여기에는 금기의 전설이 많다. 대전 괴곡동 느티나무는 마을에서 오랫동안 마을의 수호목으로 여겨, 매년 칠월칠석이면 마을사람 모두가 나무 앞에 모여 목신제를 올릴 만큼 주민들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해 왔다는 점에서 그 문화적 가치가 크다. 한편 나무의 생물학적 가치도 높은 것으로 인정되어 대전광역시, 산림과학원, 문화재청은 괴곡동 느티나무의 유전자원 보존을 위해 우량유전자(DNA)를 뽑아 복제나무 키우기에 나서기로 했다고 한다. 머지않아 괴곡동 느티나무의 우량 유전자 복제나무가 나올 전망이다. ※ 자료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대전 괴곡동 느티나무 [大田槐谷洞─]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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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칠월칠석에는 느티나무 아래에서 ‘목신제(木神祭)’도 지낸다. 마을의 안녕과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지역주민들의 화합행사다.
‘올사모 카페 대문’ 사진으로 걸려 있는 ‘남원 광한루의 500년 수령의 느티나무’와 내 고장 대전 서구 ‘괴곡동 700년 수령의 느티나무’를 유심히 바라보면서 <느티나무와 인생>을 비유한다.
사계절 푸른 느티나무처럼 세상을 이롭게 사랑과 넉넉한 인품으로 ‘베풂의 삶’을 살아오신 이 시대 존경스러운 훌륭한 어르신들을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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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붙임 : 느티나무와 수필 / 윤승원
▲ 대전수필문학회 동인지 『수필예술』 권두 에세이(2010)
느티나무와 수필
― 좋은 수필을 만나는 일상의 기쁨
윤승원 수필가, 대전수필문학회장
느티나무는 우리나라 거의 모든 지역에서 잘 자라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마을 어귀에 수호신처럼 우람하게 버티고 서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느티나무는 정겨움 넘치는 동네 어르신들의 담소 마당이자, 나그네의 쉼터가 되기도 한다.
얼마 전 승용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대전의 외곽 마을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어 반가운 마음에 잠시 내려 사진도 찍고 쉬어 간 적이 있다. 느티나무 아래에는 널찍한 평상(平床)이 있어 동네 할머니들이 큰 대자로 누워 쉬고 있었다. 여기서 만난 할머니 한 분은 “우리 집 안방보다 좋아, 세상 얘기를 다 들을 수 있거든!”하셨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천년 이상의 수령을 가진 60여 그루의 나무 중 25그루가 느티나무라고 하는 기록도 있다. 이들 대부분은 천연기념물이나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30여 년 전통의 대전충남수필문학회 원로 회원들을 보면서 이 시대 수필문학이 추구하는 멋도 느티나무의 품격을 닮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왕성한 잎을 거느리고 5월에 꽃이 피어 가을에 황금색으로 물든 느티나무의 모습은 얼마나 그윽한 정취를 풍기면서 삶에 지친 인간에게 안식을 주는가. 느티나무를 닮은 원로 문인들은 남달리 ‘곱게 늙으신 분’들이다. 그 분들은 7, 80 고령임에도 젊은이 못지않은 왕성한 작품 활동과 전문적인 식견을 살린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다.
우리말과 글 사랑에 남다른 열정을 기울이는 존경스런 원로문인도 계시고, 춘추(春秋)도 잊은 채 각종 크고 작은 봉사단체에 참여하여 부지런한 교육자의 철학을 열정적으로 보여주시는 원로 문인도 계셔서 자랑스럽다. 이 어르신들은 언제 뵈어도 인품이 온화하여 가까이하면 할수록 마음이 절로 푸근해지고, 유머도 풍부하신 분 들 이어서 세대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
지난 해 안타깝게 타계하신 고 논강(論江) 김영배 수필가는 비록 고인이 되었어도 여전히 이 지역 문인들 사이에서는 훌륭한 인품이 회자되고 있다. 생시에 보여준 반듯한 삶의 철학과 무르익은 연륜에서 나오는 유려한 문체, 그리고 남달리 힘들게 겪은 인생체험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에게도 가르침이 되고 있다.
그 분은 무엇보다 수필문학을 통하여 충청도 선비 정신과 자긍심을 보여주려고 노력하였다. 논자(論者)들은 흔히 수필의 신변잡사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문자로 표현되는 ‘사람 사는 이야기’중에서 신변잡사의 속성을 지니지 않은 것이 어디 있는가.
소시민적 평범한 삶 속에서 찾아내는 ‘작지만 보석 같은 이야기’들이 모두가 꾸밈없는 진솔한 생활 속에서 용해되어 나온 것들이다. 때로는 느티나무 이파리처럼 일상의 사소한 이야기들이 한 가정의 가족사로 엮어지고, 사회에 유용한 가치로 밑거름이 되어 할아버지, 할머니의 정신적인 유산으로 전해진다면 그보다 더 가치 있는 글쓰기 작업도 없을 것이다.
고단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위안을 주는 수필 한 편이야말로 느티나무의 그늘이 될 만하다.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일상의 희로애락이 객관적으로 용해되거나 작품으로 승화되었을 때, 독자들은 깊은 감명과 함께 인생의 지혜를 얻는 데 있어서도 소중한 실마리가 된다.
영화관엘 가끔 간다. 걸핏하면 욕설이 튀어나오고 무자비한 폭력 살상 장면이 등장한다. 언제부턴가 이러한 요소들이 흥행의 성공 요소라고 믿는 ‘스크린’을 보면서 이 시대 순진무구한 어린 학생들의 입에서까지 쌍욕이 일상어처럼 예사 튀어 나오고, 정서가 날로 거칠어져만 가는지, 작품의 리얼리티를 이해하기 이전에 그 부정적인 영향력을 걱정하게 된다.
알맹이 없는 말장난으로 이어지는 10대 취향의 일부 심야 방송도 그렇다. 들어 봄직한 유익한 프로그램이 없다고 안타까워하시는 어르신들도 많다. 그렇다고 활자매체가 영상매체를 압도할 만큼 흥미유발과 ‘시선 전환’의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격조 있는 언어로 잘 직조된 수필 한 편, 비록 가진 것은 넉넉지 않지만 마음의 풍요와 품격을 느낄 수 있는 수필 한 편, 고단한 일상에서 산뜻하게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수필, 삶의 여유와 낭만을 제공해주는 멋스러운 수필, 소박하지만 따뜻한 인정으로 잔잔한 울림을 주는 진솔한 생활수필 한 편이 삶의 보배다. 언제 어디서 두 번 세 번 읽어도 좋은 느티나무와 같은 멋스러운 수필을 만나는 일은 일상의 큰 기쁨이 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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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올바른 역사를 사랑하는 모임’[올사모] 카페에서
◆ 낙암 정구복(역사가,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3.07.30.10:32
장천 윤승원 선생의 글은 그의 호처럼 논리가 정연하고 내려가는 물처럼 막힘이 없어 아무리 긴 글이라도 싫증이 나지 않아 끝까지 읽게 된다.
高林 지교헌 선생님은 철학을 전공하셔서 깊은 의식을 일깨워주신다. 두 분은 ‘올사모’ 카페를 이끌어주시고 앞으로 역사를 과거의 것과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역사창조자의 기둥이시다.
제가 두 분에게 “역사창조자 증서” 1호(장천 윤승원), 2호(고림 지교헌)에게 올렸다.
저를 포함하여 전공으로 따지면 ‘문사철(文史哲)’ 전공자이다. 문사철은 인문학의 중심학문이다.
대문 사진에 느티나무를 칭송해주셔서 계절마다 바꾸었는데 겨울철 하얀 눈이 온 누리를 덮을 때까지 놔두고 싶다.
나무가 장수하는 나무로 이에 비견되는 나무는 은행나무이다. 행(杏)나무는 천년의 수명을 가진다고 한다.(계속)
은행나무를 향교와 성균관 앞뜰에 유유히 세월을 머금고 서 있다. 이런 은행나무는 가을이면 노란 잎이 정겹게 물들지만, 열매가 냄새를 내어서 도로의 수목으로는 천시를 받고 있다. 이에 비해 느티나무는 열매를 맺지만 그리 많이 열리지 않는다.
느티나무는 옛날 마음의 중심지에 공동으로 사용하는 우물이 있고, 그 가에 심어 놓는 나무이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정구복)
▲ 답글 / 윤승원
저는 살아가면서 福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능력이 아니라 하늘이 주시는 복입니다.
人福, 冊福(글복), 이런 복은 인연에 기초합니다.
인연이 아닌 게 없습니다.
존경하는 낙암 교수님, 고림 교수님을 우람한 느티나무 아래에서 뵙고
가르침을 받은 것은 실로 인복, 글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느티나무는 그냥 바라다보기만 해도 얻는 게 있습니다. 배우는 게 있습니다.
인정과 사랑 베풂도 느티나무의 푸르름이 아닌가요.
학문과 인품도 느티나무 그늘이 아닌가요.
오늘도 존경하는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낍니다.
사랑과 격려가 담긴 귀한 댓글 옥고 감사합니다. (윤승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