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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8 편
예수의 어른 시절 초기
128:0.1 나사렛 예수는 성년 초기로 접어들면서, 평범하고 보통 인간의 삶을 땅에서 계속 살았다. 예수는 다른 아이들이 태어나는 것처럼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는 자신의 부모를 선택하는 것과 전혀 관련이 없었다. 그는 이 특별한 세계를 일곱 번째이자 마지막인 그의 육신화를 수행하려는 행성으로 선택했지만, 그외에는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 이 세계의 아이로 성장하며, 다른 인간들처럼 이 세상과 비슷한 세계들에서 환경의 우역곡절을 겪었다.
128:0.2 항상 미가엘의 유란시아 수여에서 두 가지 목적을 반드시 기억하라:
1.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인간 존재로서 온전한 삶을 사는 체험을 완전히 익히는 것, 네바돈에서 그의 주권을 완성하는 것이다.
2. 시-공간의 세계에 살고있는 인간들에게 우주의 아버지를 드러내고, 이 인간들이 우주의 아버지에 대해 더 잘 이해하도록 효과있게 인도하는 것이다.
128:0.5 다른 모든 생명존재의 혜택과 우주의 이점들은 인간 수여의 주요 목적에 부수적이고 2차적인 것이었다.
1. 스물 하나 되던 해 (서기 15년)
128:1.1 성년이 되면서, 예수는 가장 낮은 형태인 지적 생명존재의 삶에 대한 지식을 터득하고, 마침내 자신이 창조한 우주의 무제한 통치권을 획득하는 일에서, 완전한 자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과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이중 본성을 깨닫고 이 엄청난 일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이미 한 사람―나사렛 예수―로 이중 본성을 효과적으로 결합했다.
128:1.2 요셉의 아들 요수아는 자신이 여자에게서 태어난 남자, 필사 인간임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이는 그의 첫 번째 칭호로 '인자(人子)'을 고른 데서 나타나 있다. 그는 진정으로 피와 살로 된 몸을 가진 자였고, 우주의 운명에 대한 주권적 권위를 행사하고 있는 지금도 '인자(人子)'는 그의 수많은 호칭에 속하고 있다. 우주 아버지의 창조적인 말씀―창조 아들―로서 “유란시아에서 육체가 되어 그 땅의 사람으로 살았다”는 것은 글자 그대로 진실이다. 일을 하고, 지치고, 쉬고, 잠을 잤다. 배고픔을 느끼고 그런 욕구를 음식으로 채웠다; 목이 말랐고, 갈증을 물로 해소했다. 그는 인간의 모든 감정과 느낌을 체험했다; “모든 일에서 너희처럼 시험을 받았으며” 고통을 받고 죽었다.
128:1.3 이 땅의 다른 필사자와 똑같이, 지식을 얻고 체험을 쌓았으며, 이것들을 통합하여 지혜로 만들었다. 세례를 받기까지, 아무런 초자연적 힘을 이용하지 않았다.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서 받은 인간 본질의 일부가 아닌 어떤 다른 수단도 사용하지 않았다.
128:1.4 인간 이전의 존재로서 가졌던 속성은 자신 안에서 비웠다. 그는 대중 봉사를 시작하기 전까지, 사람들과 사건들에 관해서, 전적으로 인간적 체험으로 얻어진 지식에만 의지했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는 진정한 사람이었다.
128:1.5 그것은 영원하고 영광스러운 진실이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을 공감하는 높은 통치자가 있다. 우리에겐 모든 점에서 우리처럼 시험받고 단련 받은 죄가 없는 주권자가 있다.” 그리고 그 자신이 고통받고, 시험받고, 시련을 받았기 때문에, 그는 혼란과 곤궁에 빠진 자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보살필 수 있다.
128:1.6 나사렛 목수는 자기 앞에 닥친 일을 충분히 이해했지만, 인간 생애가 자연히 흘러가는 경로를 따라서 살기를 택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 중 몇 가지에서 기록된 바와 같이 그는, 그의 필사 생명존재들에게 실제로 본보기가 되고 있다:“이 mind를 너희 안에 품으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도 있던 것이니, 그가 하나님의 본질이 되었으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생명존재 형태를 취하여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났다. 이렇게 사람의 모습을 입어 자기를 낮추어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서 죽기까지도 복종하였다.”
128:1.7 그는 다른 모든 인간 가족이 그들의 삶을 사는 것처럼, 필사자로 살았으며, “육체로 있던 시절에 모든 악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분께 간절한 마음과 눈물로 기도와 간구를 자주 드렸으며, 그의 기도는 믿었기 때문에 효력이 있었다.” 그러므로 모든 면에서 형제들과 같이 되어 자비롭고 이해심 많은 주권 통치자가 되는 것이 그에게 요구되었다.
128:1.8 그는 자신의 인간 본성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그것은 자명했고 항상 그의 의식 속에 존재했다. 그러나 그의 신성한 본성에는 항상 의심과 추측의 여지가 있었고, 적어도 이것은 그의 세례 행사 바로 직전까지 사실이었다. 신성한 자기실현은 느리고,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자연스럽게 점진적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신성이 드러나고 이를 자각한 것은 예루살렘에서, 열세 살이 채 안 되었을 때, 그가 사람으로 살면서 처음으로 초자연적 사건이 일어난 것과 함께 시작되었다; 신성한 성품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이 체험은, 육체로 있는 동안 두 번째 초자연적 체험을 거칠 때 완성되었다. 이 사건은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을 때 따라서 일어났고, 이 사건은 봉사하고 가르치는 공생애의 시작을 표시했다.
128:1.9 한 번은 열세 살 때, 한 번은 세례받을 때, 이렇게 두 번 하늘의 방문이 있던 사이에 육신화된 이 창조 아들의 생활에서 아무런 초자연이나 초인간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기는 해도, 베들레헴의 아기였고, 나사렛의 소년이, 젊은이였던 이 나사렛 사람은 실제로, 한 우주의 육신화된 창조자였다. 그러나 결코 이 힘을 조금도 쓴 적이 없다. 또한 인생을 살면서, 요한에게 세례받는 날까지, 수호 세라핌의 안내를 제외하고, 하늘 존재들의 안내도 받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증언하는 내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처럼 증언한다.
128:1.10 그래도 육체를 입고 살았던 이 여러 해 동안, 그는 참으로 신성한 존재였다. 실제로 파라다이스 아버지의 한 창조 아들이었다. 통치권을 얻는, 순전한 필사자 체험을 절차에 따라 완수하고 나서, 일단 공생애를 채택했을 때, 그는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대중 앞에서 서슴지 않고 인정했다. “나는 알파요 오메가라, 시작이요 끝이라,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서슴지 않고 선언했다. 후일에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일컬었을 때, 그는 조금도 마다하지 않았다: 영광의 주, 우주의 통치자, 모든 창조의 주 하나님,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 만민의 주, 우리의 주 우리의 하나님, 우리와 함께 있고 어느 세계에 어떤 이름보다도 높은 이름을 가진 하나님, 우주의 전능자, 이 세계를 창조한 우주 mind,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물을 몸에 감춘 분, 만물을 채우는 충만한 분, 영원한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을 몸 안에 담고 계신 분, 하늘과 땅의 창조자, 우주의 지지자, 온 땅의 재판관, 영생 수여자, 참 목자, 세상의 구원자, 우리를 구원하는 선장이다.
128:1.11 그는 이러한 칭호들 중 어떤 것도 반대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이러한 칭호들이 그의 순수한 인간 생활에서부터 후기에 인간성 안에서 신성한 봉사에 대한 자아-의식이 나타나면서 차후에 그에게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그에게 적용된 단 하나의 칭호에는 반대했다. 그가 한때 임마누엘이라고 불렸을 때, 그는 단지 "내가 아니라, 그분은 나의 형이다." 라고 대답했을 뿐이다.
128:1.12 언제나, 땅에서 생활의 폭이 넓어진 뒤에도, 예수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에 온순하게 복종하였다.
128:1.13 세례 후에 그는 성실한 신자들과 감사하는 추종자들이 그를 숭배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가난과 씨름하고, 가족을 위해서 생활에 필요한 것을 마련하려고 두 손으로 수고하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의식은 짙어지고 있었다; 인간의 존재로서 지금 살아가고 있는 바로 이 땅과 하늘을 만든 이가 자신임을 알았다. 바라보고 있는 큰 우주에 두루, 하늘 존재들의 무리도 마찬가지로, 이 나사렛 사람이 사랑하는 주권자이며, 아버지인 창조자인 것을 알았다. 이 여러 해 동안 내내, 심오한 긴장감이 네바돈 우주를 휩쓸었다. 하늘의 모든 눈이 줄곧 유란시아에, 팔레스타인에 집중되어 있었다.
128:1.14 이 해에 예수는 요셉과 함께 유월절을 지내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성화 예식을 치르려고 야고보를 성전에 데리고 간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요셉을 데리고 가는 것이 의무라고 판단했다. 예수는 가족을 대할 때 결코 편애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요셉과 함께 늘 다니던 요단강 계곡을 따라 예루살렘에 갔고, 돌아올 때는 아마투스를 지나 동쪽 요단길을 통해 나사렛으로 돌아갔다. 요단강을 내려가면서 예수는 요셉에게 유대 역사를 이야기했고, 돌아오는 길에는 강 동쪽 지역에 거주했던 전통이 있는 루벤, 갓, 길르앗 지파들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128:1.15 요셉은 형의 일생의 사명에 관한 질문을 많이 했으나 이 대부분의 물음에 예수는 “나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만 대답했다. 그러나 이 친밀한 대화에서 많은 말들이 오갔고, 후일에 세상을 뒤흔드는 사건들 가운데서 요셉은 그 말을 기억했다. 예수는 요셉과 함께, 베다니에서 세 친구와 함께 이 유월절을 지냈는데, 이는 그가 예루살렘에서 이 절기 기념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항상 하던 일이었다.
2. 스물 둘 되던 해 (서기 16년)
128:2.1 이 해는 예수의 동생들이 청년기의 문제와 적응에서 특별한 시련과 고난을 겪고 있던 여러 해 중의 하나였다. 예수는 이제 일곱 살에서 열여덟 살 사이의 동생들이 있었고, 그들의 지적이고 감정적인 삶의 새로운 자각에 적응하는데 도움을 주느라 바빴다. 그는 어린 동생들의 삶 속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사춘기 문제들과 씨름해야 했다.
128:2.2 이 해에 동생 시몬은 학교를 졸업했고, 예수의 오랜 소년 시절 놀이 친구이자 항상 준비된 그의 방어자인 석공 야곱과 함께 일을 시작했다. 몇 차례 가족회의 결과, 모든 소년이 목수 일을 하는 것은 현명치 않다고 결정했다. 직업을 다양화함으로 건물 전체를 짓는 계약을 따낼 준비가 될 것이라 생각되었다. 다시 말하면, 세 사람이 풀-타임 목수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 바쁘지 않았다.
128:2.3 예수는 이 해에 주택의 마무리 손질과 가구 만드는 일을 계속했지만, 대부분 시간을 카라반 수선장에서 보냈다. 야고보는 그와 번갈아 가며 작업장 일을 교대하기 시작했다. 나사렛에서 목수 일이 한가했던 이 해 후반에, 예수는 야고보에게 수선 작업장을 맡기고, 요셉을 집 벤치에 두었고, 한편 그는 대장장이와 함께 일하려고 세포리스로 갔다. 그는 6개월 동안 금속을 다루고 모루를 다루는 상당한 기술을 익혔다.
128:2.4 세포리스에서 새 일자리를 잡기 전에, 예수는 정기 가족회의를 열고 그때 열여덟 갓 넘은 야고보를 엄숙하게 임시 가장으로 임명했다. 동생에게 마음을 다하여 지원하고 충분히 협조하기로 약속했고, 가족의 한 사람 한 사람으로부터 야고보에게 복종하겠다는 정식 약속을 받아냈다. 이날부터 야고보는 가족을 위하여 완전한 재정 책임을 맡았고, 예수는 동생에게 주마다 정해진 돈을 냈다. 예수는 다시 야고보의 손에서 고삐를 빼앗지 않았다. 세포리스에서 일하는 동안, 필요하다면 밤마다 집으로 걸어갈 수 있었지만, 날씨와 다른 이유들을 대면서, 일부러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진정한 동기는 야고보와 요셉에게 가족을 책임지는 훈련을 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서서히 가족이 혼자 서게 만드는 과정을 시작했다. 안식일마다 예수는 나사렛으로 돌아왔고, 새로운 계획의 실행을 관찰하고 조언과 도움 되는 제안을 하려고 때때로 주중에도 왔다.
128:2.5 6개월 동안 세포리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은 예수에게 이방인의 생활 관점을 더 잘 알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그는 이방인들과 함께 일하고, 함께 살았으며,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이방인의 생활 습관과 mind에 대해서 자세히 공들여 연구하였다.
128:2.6 헤롯 안티파스의 고향인 이 도시의 도덕 수준은 카라반 도시 나사렛의 수준에도 훨씬 못 미쳤기 때문에, 세포리스에서 6개월 머무른 뒤에, 예수는 기꺼이 나사렛으로 돌아오는 구실을 찾았다. 그가 소속되어 일하던 집단은 세포리스와 새로운 도시 티베리아스, 두 곳에서 공공사업에 종사하기로 되었고, 그는 헤롯 안티파스의 감독 밑에서는 어떤 종류의 일자리도 관여하기 싫었다. 예수의 견지에서 다른 여러 이유로 그가 나사렛으로 돌아가는 것이 현명하였다. 수선 작업장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가족의 일을 직접 지도하는 일을 다시 맡지는 않았다. 그는 작업장에서 야고보와 함께 일했고, 가능한 한 야고보가 집의 감독을 계속하도록 두었다. 그는 야고보가 가족 경비를 관리하고 가정 예산을 처리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다.
128:2.7 예수는 이처럼 현명하고 사려 깊은 계획을 통해 가족 일에 적극 참여하지 않고 물러서기 위한 길을 준비하였다. 가족의 임시 책임자로서 야고보가 2년 동안 체험을 가졌을 때 - 그(야고보)가 결혼하기 꼭 2년 전에 - 요셉에게 집안 살림을 맡기고 집안의 전반적인 관리를 맡겼다.
3. 스물 셋 되던 해 (서기 17년)
128:3.1 이 해에, 네 사람이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재정의 압박이 조금 덜어졌다; 미리암은 우유와 버터를 팔아서 어느 정도 벌었고, 마르다는 천 짜는 데 솜씨 있는 전문가가 되었다. 수선 작업장의 구입 가격은 3분의 1이 넘게 지불되었다. 형편이 좋아서 유월절을 치르기 위하여, 시몬을 예루살렘으로 데려가려고 예수는 3주 동안 일을 중단했고, 이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가 일상의 노동에서 벗어난 가장 긴 기간이었다.
128:3.2 그들은 데카폴리스의 길로, 펠라, 게라사, 필라델피아, 헤스본, 예리고를 지나서, 예루살렘으로 여행했다. 바닷가 길로 리다, 요파, 케자리아를 지나치고, 다음에 갈멜산을 돌아서 프톨레마이스로, 그리고 나사렛으로 돌아왔다. 이 여행으로 인하여 예수는 예루살렘 지역 북쪽의 팔레스타인 전체에 익숙하게 되었다.
128:3.3 필라델피아에서 예수와 시몬은 다마스커스에서 온 한 상인을 알게 되었는데, 그는 나사렛에서 온 두 형제를 크게 좋아하게 되었고, 그래서 함께 자기의 예루살렘 본부에서 함께 있자고 고집하였다. 시몬이 성전 행사에 참석한 동안에, 예수는 잘 교육받고 많이 여행한 사람, 세상일에 훤한 이 사람과 이야기하느라고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 상인은 카라반 낙타를 4천 마리 넘게 소유했고, 로마 세계 전역에 걸쳐 사업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 로마로 가는 길이었다. 예수에게 다마스커스로 와서 그의 동양 수입 사업에 뛰어들자고 제안했지만 바로 그때 자기 가족을 그렇게 멀리 떠나는 것이 정당하다 느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이 먼 도시들과 극서와 극동의 훨씬 더 먼 나라들, 카라반 승객들과 안내들로부터 그렇게 자주 들었던 나라들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128:3.4 시몬은 예루살렘 방문을 매우 즐겼다. 그는 계명의 새로운 아들들의 유월절 봉헌 때 정식으로 이스라엘 연방에 가입되었다. 시몬이 유월절 예식에 참석하는 동안, 예수는 많은 방문자들과 어울렸고, 개종한 수많은 이방인들과 함께 흥미 있는 시간을 개인적으로 많이 가졌다.
128:3.5 아마도 이 모든 접촉 가운데 가장 주목할 것은 그리스어를 말하는 스테반이라는 이름의 젊은이를 만난 것이었다. 이 젊은이는 예루살렘을 처음 방문하는 길이었고, 유월절 주간 목요일 오후에 우연히 예수를 만났다. 둘이서 아스모니아 궁전을 구경하며 거니는 동안, 예수는 가볍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렇게 그들은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것은 생명의 길과 참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관하여 네 시간의 토론으로 이어졌다. 스테반은 예수의 말씀에 엄청나게 감명을 받았고, 결코 그 말씀을 잊지 않았다.
128:3.6 이 사람이 나중에 예수의 가르침을 믿게 된 바로 그 스테반이었다. 이 초기의 복음을 대담하게 전파한 것 때문에 그는 화가 난 유대인들의 돌에 맞아 죽었다. 새로운 복음에 대하여 스테반이 자기의 견해를 선포하면서 보인 특별한 대담성은 어느 정도, 전에 예수와 가졌던 이 회견에 직접 영향을 받은 결과였다. 그러나 스테반은 15년쯤 앞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 갈릴리 사람이, 나중에 세상의 구원자라고 자신이 선포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는 것을 결코 털끝만큼도 짐작하지 못했다. 스테반은 예수를 위해서 오래지 않아 죽게 될 운명이었고, 이처럼 새로이 생성되는 기독교의 첫 순교자가 되었다. 유대인의 성전과 그 전통적 관습을 공격한 값으로 목숨을 바쳤을 때, 타르수스 시민, 사울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구경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 그리스인이 신앙을 위하여 죽을 수 있는지를 보았을 때, 사울의 가슴 속에 어떤 감정이 북받쳐 올랐고, 이것은 마침내 그로 하여금 스테반이 목숨을 바쳐 싸운 그 운동을 지지하게 만들었다; 후일에 그는 과감하고 꺾일 줄 모르는 바울이 되었고, 비록 기독교의 유일한 창시자는 아니라도, 기독교의 철학자가 되었다.
128:3.7 유월절 주간이 지난 일요일, 시몬과 예수는 나사렛으로 돌아가려고 출발했다. 시몬은 이번 여행에서 예수가 가르쳐준 것을 결코 잊지 않았다. 그는 항상 예수를 사랑했지만, 가장인 형을 이제야 알기 시작했다고 느꼈다. 그들은 시골을 여행하며 길가에서 식사를 준비를 할 때 진심어린 많은 대화를 나눴다. 목요일 정오에 집에 도착했고, 시몬은 자기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느라고 그날 밤, 가족을 늦게까지 붙들어 두었다.
128:3.8 마리아는 예수가 예루살렘에 있을 때 대부분 시간을 "이방인들, 특히 먼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 했다는" 시몬의 보고에 마음이 상당히 언짢았다. 예수의 가족은 그가 왜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가지는지, 왜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그들의 생활 방식에 대하여 듣고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지,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128:3.9 나사렛 가족은 점점 더 당면한 눈앞에 닥친 여러 인간적 문제에 정신을 빼앗겼다; 예수의 미래 사명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았고, 그 자신도 앞날의 생애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약속의 아이라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녀는 예수가 땅에서 어떤 신성한 사명을 다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서서히 포기하고 있었지만, 때때로 아이가 태어나기 전 가브리엘의 방문을 떠올리며 잠시 멈췄을 때 그녀의 믿음은 되살아났다.
4. 다마스커스 에피소드
128:4.1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필라델피아에서 처음 만났던 상인의 초대 손님으로, 예수는 다마스커스에서 이 해의 마지막 넉 달을 보냈다. 이 상인이 보낸 어떤 사람이 나사렛을 지나면서 예수를 찾았고 다마스커스까지 그를 수행하였다. 이 유대인 상인은 다마스커스에 종교 철학 학교를 설립하는 데 큰돈을 기부하겠다고 제안해 왔다. 그는 알렉산드리아를 능가하는 학문의 중심지를 만들 계획이었다. 그리고 예수에게 이 새로운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되기 위해 전 세계 교육 중심들을 순회하는 긴 여행을 즉시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이것은 예수가 순전히 인간으로 살아오는 과정에서 직면한 가장 큰 유혹 중 하나였다.
128:4.2 바로 이 상인은 예수 앞에 이 새로 계획된 학교를 지원하기로 동의한 12명의 상인과 은행가들을 데려왔다. 예수는 학교를 만드는 제안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그들의 조직을 계획하는 것을 도왔지만, 언제나 다른 의무, 표현하지 못하지만, 이전의 의무들이 그가 그렇게 야심 찬 사업을 지도하는 책임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의 후원자는 집요했고, 집에서 예수를 고용하여 번역을 하는 한편, 그와 그의 아내, 그리고 그들의 아들과 딸들은 예수에게 내민 명예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땅에서 자신의 사명이 학문 기관의 지원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해도, “사람의 위원회”에 의해 자신이 조금이라도 얽히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128:4.3 자신의 리더쉽을 증명한 후에도 예루살렘 종교지도자들로부터 거부당했었던 그는, 다마스쿠스의 기업인들과 은행가들로부터 스승으로 인정받고 환영받았는데, 이 모든 것이 그가 나사렛의 무명 목수였을 때였다.
128:4.4 그는 이 제안에 대하여 가족에게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고, 이 해 말, 마치 다마스커스의 친구들이 치켜세워 내민 제안에 전혀 유혹받은 일이 없었던 것처럼 나사렛으로 돌아와서 일상적인 일을 계속했다. 이 다마스커스 사람들도, 후일에 온 유대인 사회를 뒤엎은 가버나움 시민, 부를 합쳐서 얻을 수 있는 명예를 과감히 거부한 나사렛 목수 출신을 연결지어 생각하지 않았다.
128:4.5 예수는 삶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의도적으로 분리하였고, 세상의 눈에 한 사람이 행한 일로 연관되지 않도록 하였다. 이후에 그는 알렉산드리아와 경쟁하기 위해 다마스커스에 학교를 세울 기회를 거절했던 한 이상한 갈릴리 사람의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128:4.6 예수가 땅에서의 체험의 일부 특징을 분리하려 했을 때 염두에 두었던 목적 중 하나는, 후대 사람들이 그가 살고 가르친 진리를 따르기보다는 선생을 숭배하게 만들 수 있는 다재다능하고 눈부신 경력을 쌓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예수는 인간으로 이룬 업적의 기록을 쌓음으로 사람들이 자신의 가르침 대신에 다른 데 한눈 팔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는 아주 일찍이 자신이 세운 하늘나라 복음을 세상에 전하려는 목적에 경쟁이 될 수 있는, 그에 대해 종교를 만들려는 유혹을 그의 추종자들이 받을 것임을 인식했다. 따라서 그의 가르침을 선포하는 대신에, 가르치는 그 선생을 높이는, 자연스러운 이 인간적 성향에 이용될지 모른다고 생각한 것은 무엇이나 그의 파란 많은 생애에서 억제하려고 늘 애썼다.
128:4.7 이러한 동기는 그가 땅에서 다양하게 살았던 삶의 시기에 왜 그가 다른 칭호로 알려지도록 허용한 이유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그는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진실된 신념과 반대로 그를 믿게 할 어떤 부당한 영향력이 미치지 않기를 원했다. 그는 항상 인간의 mind에 부당하거나 불공정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거부했다. 그는 사람들이 그의 가르침에서 드러난 영적 실체에 반응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이 그를 믿는 것을 원치 않았다.
128:4.8 이 해 말까지 나사렛 가정은 꽤 순조롭게 운영되고 있었다. 아이들은 자라고 있었고, 마리아는 예수가 집을 떠나 있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는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서, 번 돈을 계속 야고보에게 넘겨주었고, 아주 작은 금액만 당장 개인이 쓸 비용으로 남겨 두었다.
128:4.9 세월이 지나면서 이 사람이 땅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더 어려워졌다. 그는 마치 이 세상의 존재처럼, 그저 또 다른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된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그의 수여가 바로 이런 방법으로 펼쳐지도록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예정하신 것이었다.
5. 스물 넷 되던 해 (서기 18년)
128:5.1 이때는 예수가 가족에 대한 책임을 벗고 비교적 자유를 얻은 첫해였다. 야고보는 예수의 조언과 재정적 도움을 얻어 가정을 아주 훌륭하게 관리하였다.
128:5.2 이 해 유월절 다음 주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한 젊은이가 팔레스타인 해안의 어느 지점에서 알렉산드리아 유대인들의 무리와 예수의 만남을 주선하기 위해서 나사렛으로 왔다. 이 회담은 6월 중순으로 정해져서, 예수는 알렉산드리아의 저명한 유대인 다섯 명을 만나기 위해 가이사랴로 건너갔고, 그들은 자기네 도시에서 종교 스승으로서 자리를 잡으라고 간청했으며, 그들의 최고 회당에서 하잔의 조수 자리로 시작할 것을 제안하였다.
128:5.3 이 위원회의 대변인들은 예수에게 알렉산드리아는 전 세계를 위한 유대인 문화의 본부가 될 운명이라고 설명했다; 유대인들의 관심사인 헬라파 성향은 사실상 바빌로니아 학파를 앞서고 있었다. 그들은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 전역에 반란에 대한 불길한 소문을 상기시키고,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이 어떤 폭동을 일으키더라도 이는 민족의 자살 행위와 다름없으며, 로마의 철권은 석 달 안에 반란을 짓밟을 것이고, 예루살렘은 멸망하고 성전은 무너져서 돌멩이 하나 없이 파괴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128:5.4 예수는 그들이 했던 모든 말을 듣고서, 그들이 자신을 신뢰한 것에 감사하고, 알렉산드리아로 가는 것을 정중히 거절하며, “나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는 내용의 말을 하였다. 애써서 그들이 주려 했던 명예에 그가 관심이 없는 듯이 보여서 그들은 어리둥절했다. 그들은 예수를 떠나보내기 전에, 알렉산드리아 친구들의 존경과 그들과 의논하기 위해 가이사랴로 오는 시간과 비용을 보상하기 위해 그에게 봉투를 주었다. 그러나 그는 그 돈을 거절하며 말했다. “요셉의 집은 결코 구제를 받지 않았으며, 내가 강한 팔을 가지고 있고 내 동생들이 일을 할 수 있는 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빵을 먹을 수 없습니다.”
128:5.5 이집트에서 온 친구들은 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고, 그들은 몇 년 뒤 팔레스타인에서 그렇게 큰 파문을 일으킨, 배 만드는 가버나움 사람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때, 그가 장성한 베들레헴 아기요, 알렉산드리아에서 큰 선생이 되라는 초청을 단호히 거절한 바로 그 이상한 그 갈릴리 사람이었다는 것을 거의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128:5.6 예수는 나사렛으로 돌아왔다. 이 해의 나머지는 전 생애에서 가장 사건이 없었던 평온한 반년이었다. 그는 문제를 해결하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보통 일과에서 벗어나 잠시 이 휴식을 즐겼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많이 대화를 나누었고, 자신의 인간 mind를 통달하는 데 크게 진전을 보았다.
128:5.7 그러나 시-공간의 세계에서 사람의 일은 그리 오랫동안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다. 12월에 야고보는 예수와 사사롭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가 나사렛의 젊은 여인 에스타와 깊이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하였고, 조건이 허락한다면 언젠가 결혼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그는 요셉이 곧 열여덟이 될 터이고, 가족의 임시 가장으로서 수고하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 좋으리라는 사실을 환기시켰다. 예수는 야고보가 결혼하기 전에, 요셉이 집안일을 책임지도록 적절히 훈련시킨다는 조건으로, 2년 뒤에 야고보가 결혼하는 데 찬성하였다.
128:5.8 이제 일이 터지기 시작했는데 ― 결혼이 줄을 잇게 되었다. 야고보가 결혼 일로 예수의 승낙을 얻는 데 성공한 것은 미리암으로 하여금 자기 계획을 가지고 용감히 오빠인 가장에게 다가가게 만들었다. 석공인 아들 야곱은 한때 예수의 보호자로 자처하였고, 지금은 야고보와 요셉의 사업 동료이며, 오랫동안 미리암과 결혼하려고 애썼다. 예수 앞에 미리암이 자기의 계획을 내놓았을 때, 그는 야곱이 찾아와서 여동생을 얻으려고 아내로 맞이하기 위한 청혼을 정식으로 해야 한다고 지시하고, 동생 마르다가 장녀로서의 의무들을 충분히 맡을 능력이 있다고 그녀가 느꼈을 때, 곧 바로 결혼을 축복하겠다고 약속했다.
128:5.9 집에 있을 때, 그는 매주 세 번 야간 학교에서 계속 가르쳤고, 안식일에는 종종 회당에서 성서를 낭독하고, 어머니와 일상 대화를 나누며, 아이들을 가르쳤다. 대체로 그는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나사렛의 존경받는 시민으로서 품위 있게 행동했다.
6. 스물 다섯 되던 해 (서기 19년)
128:6.1 이해는 나사렛 가족 모두가 건강한 가운데 시작되었고, 마르다가 동생 룻을 위해서 해야 할 어떤 일을 제외하고 모든 아이들의 정규 학교 과정이 끝나는 것을 보게 되었다.
128:6.2 예수는 아담 시절 이래로, 땅에서 나타난 남성 중에 가장 건장하고 세련된 표본이었다. 그의 신체 발달은 최고였다. 그의 지성은 활동적이고, 예리하며, 통찰력이 있었다 ― 동시대 사람들의 평균 정신 수준과 비교해 볼 때, 그의 지능은 엄청나게 발달했다 ― 그의 정신은 정말로 인간으로서 신성했다.
128:6.3 요셉의 재산이 사라진 이후, 가족의 재정 조건은 최상으로 좋아졌다. 카라반 수선 작업장에 대한 마지막 지불금을 치렀다; 아무에게도 빚지지 않았으며 몇 년 동안 처음으로 얼마큼의 저축이 남았다. 이것은 사실이고, 다른 동생들을 예루살렘으로 첫 유월절 예식을 위하여 데리고 간 일이 있었으니까, 예수는 (회당 학교에서 막 졸업한) 유다가 처음으로 성전을 방문하는 데 함께 가기로 했다.
128:6.4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가, 사마리아를 통해서 동생을 데리고 가면 문제가 생길까 염려되어, 요단강 유역으로, 같은 길로 돌아왔다. 급한 기질과 아울러 강한 애국심 때문에, 유다는 이미 나사렛에서 몇 번이나 하찮은 문제에 말려들었다.
128:6.5 시간이 되자 그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했고, 성전을 처음으로 방문하러 갔다. 성전의 바로 그 광경은 혼의 아주 깊숙한 곳까지 유다를 뒤흔들고 짜릿하게 만들었는데, 이때 베다니 사람 나사로를 우연히 만났다. 예수가 나사로와 이야기하고, 유월절 합동 저녁을 주선하려 애쓰는 동안, 유다는 모두에게 진짜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가까이에 로마인 경비병 하나가 서 있다가, 지나가는 어느 유대인 여자에게 예의에 벗어나는 말을 몇마디 던졌다. 유다는 불같이 분개하여 얼굴이 달아올랐고, 그 군인에게 직접, 귀에 들리는 거리 안에서, 예절 없는 것에 대하여 바로 분통을 터뜨렸다. 그시기 로마 군인들은 유대인이 불경에 가까운 어떤 태도를 보이는 것에 무척 민감했다; 그래서 경비병은 당장에 유다를 체포했다. 이것은 젊은 애국자에게 너무 한 것이었고, 예수가 경계의 눈으로 그에게 주의를 줄 수 있기 전에, 유다는 참았던 반로마 감정을 담은 비난을 거침없이 퍼부었으며, 이는 모든 일을 더욱 악화시켰을 뿐이었다. 예수를 동반하여, 유다는 당장에 군대의 감옥으로 끌려갔다.
128:6.6 예수는 유다를 위해서 즉석 재판이나, 아니면 그날 저녁 유월절 축하에 때를 맞추어 석방을 얻어내려고 애썼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튿날에 예루살렘에서 “거룩한 집회”가 있었기 때문에, 로마인들도 감히 한 유대인에 대한 고발을 심의하려 하지 않았다. 따라서 유다는 체포된 뒤 다음날 아침까지 갇혀 있었고, 예수는 그와 함께 감옥에서 보냈다. 그들은 율법의 아들들이 이스라엘의 완전한 시민으로 받아들이는 예식을 치룰 때까지 성전에 있게 하지 않았다. 그 다음 어느 유월절에, 열심당을 위한 선전 활동과 관련하여 예루살렘에 갔을 때까지, 유다는 이 정식 예식을 몇 년 동안 치르지 못했다. 그가 속한 열심당은 애국 조직이었고, 그는 그 당에서 크게 활약했다.
128:6.7 감옥에 갇히고 둘째 날이 지난 아침에 예수는 유다를 대신하여 군 법관 앞에 섰다. 예수는 동생이 나이 어린 것을 사과하고, 동생을 체포하게 된 사건의 도발적인 성질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이지만 현명한 진술을 하였고, 재판관은 어린 유대인이 사납게 분을 터뜨린 것에 아마도 어떤 이유가 있었을지 모른다는 의견을 표현했다. 그러한 경솔한 잘못을 다시 저지르지 말라고 유다에게 경고한 뒤에, 그들을 내보내면서 예수에게 말했다. “너는 그 아이를 잘 지켜보는 것이 좋겠다. 그는 너희 모두에게 많은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그 로마인 판사의 말은 사실이었다. 유다는 예수에게 상당한 문제를 일으켰고, 언제나 같은 성질의 문제였다 ― 그의 무분별하고 현명하지 못한 애국심 폭발로 인해 늘 시민 당국과 충돌했다.
128:6.8 예수와 유다는 밤 동안 베다니로 걸어가서 유월절 만찬 약속을 지키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고, 이튿날 나사렛으로 출발했다. 예수는 가족에게 어린 동생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것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았지만, 돌아온 뒤 3주쯤 되어, 이 사건에 관하여 유다와 길게 이야기했다. 예수와 이 말을 나눈 뒤에, 유다 스스로가 가족에게 이야기했다. 그는 이 고달픈 체험 전부를 통해서 가장인 형이 참을성을 보이고 관용을 베푼 것을 결코 잊지 않았다.
128:6.9 이것은 예수가 자신의 가족과 함께 참석한 마지막 유월절이었다. 점점 인자(人子)는 자신의 혈육과 가까운 관계에서 점점 더 멀어지게 될 것이었다.
128:6.10 이 해에 깊이 명상에 잠기는 시간은 룻과 그 놀이 친구들 때문에 가끔 중단되었다. 이 꼬마들의 기쁨과 어린이다운 즐거움을 같이 나누려고, 예수는 언제라도 세상과 우주를 위하여 미래의 할 일에 대해 묵상하는 것을 다음으로 미룰 준비가 되어 있었다. 꼬마들은 예수가 여러 번 예루살렘으로 여행한 체험담을 듣는 데 지칠 줄 몰랐다. 또한 동물과 자연에 대하여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크게 즐거워했다.
128:6.11 수선 작업장에서는 아이들을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었다. 예수는 모래와 나무토막과 돌을 작업장 옆에 마련해 놓았고, 아이들은 떼 지어 재미를 보려고 모여들었다. 놀다가 지치면, 대담한 아이들은 작업장을 들여다보았고, 주인이 바쁘지 않으면, 용감히 들어가서 말하곤 했다, “요수아 아저씨, 나와서 우리에게 신나는 이야기를 해주세요.” 그리고 나서 아이들은 손을 잡아끌면서 그를 바깥으로 이끌곤 했다. 작업장의 모퉁이 옆에 가장 좋아하는 바위 위에 예수가 앉고, 아이들은 예수 앞에 반원을 지어 땅 바닥에 앉았다. 작은 꼬마들이 얼마나 요수아 아저씨를 좋아했는지! 꼬마들은 웃는 것, 마음껏 웃는 것을 배우고 있었다. 제일 작은 꼬마들 가운데 하나나 둘이 그의 무릎에 기어오르고 거기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표현하는 모습을 놀라워하면서 올려다보는 것이 버릇이었다. 아이들은 예수를 사랑했고, 예수는 아이들을 사랑했다.
128:6.12 친구들은 그가 정치나 철학 또는 종교에 관한 깊은 토론을 하다가 어떻게 그가 그렇게 갑자기, 아주 완전히 다르게 다섯 살에서 열 살에 이르는 이 꼬마들과 명랑하고 즐겁게 장난하는 기분에 젖는지, 그의 지적 활동의 범위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동생들이 자라고 여가를 더 얻게 됨에 따라서, 그리고 조카들이 생기기 전에, 그는 이 꼬마들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조카들과 즐길 수 있을 만큼 땅에서 오래 살지 못했다.
7. 스물 여섯 되던 해 (서기 20년)
128:7.1 이 해가 시작되자, 나사렛 예수는 그가 폭넓은 잠재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의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똑같이, 적어도 때가 오기 전까지 인자(人子)로서 자신의 성격으로 이 능력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충분히 납득했다.
128:7.2 이때에 그는 자신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관계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했지만 말을 아꼈다. 이 모든 생각의 결론은 산꼭대기에서 드린 그의 기도에서 표현되었다. “내가 누구이든, 내가 어떤 능력을 행사할 수 있든 없든 간에, 나는 언제나 파라다이스 아버지의 뜻에 따랐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사람이 나사렛을 돌아다니며 그의 일터를 오갈 때, "그의 안에는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물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은 말 그대로 진실이었다.
128:7.3 이 해 내내 유다를 제외하고 집안 사정은 순조로웠다. 몇 년 동안 야고보는 막내 동생과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유다는 정착해서 일하고 싶어 하지 않았고, 생계비의 제 몫 내는 것을 기대할 수도 없었다. 그는 집에서 살고 싶어 했지만, 가족 유지비에서 자기 몫을 버는 데 성실하지 않았다.
128:7.4 예수는 평화로운 사람이었고, 유다의 호전적 행위와 잦은 애국적인 격발 때문에 당황했다. 야고보와 요셉은 그를 집에서 쫓아내는 데 찬성했으나 예수는 승낙하지 않았다. 그들의 인내심이 혹독한 시련을 겪을 때 예수는 오직 이렇게 충고하였다. “참아라. 어린 동생이 먼저 더 나은 길을 찾고 그 길 안에서 자제하여 너희를 따르도록, 지혜롭게 조언하고 너희의 삶으로 모범을 보여라.” 예수가 지혜와 사랑으로 주는 조언은 가족의 분열을 막았고 그들은 함께 살았다. 그러나 유다는 결혼 후에야 비로서 정신을 차렸다.
128:7.5 마리아는 예수의 미래 사명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았다. 이 문제를 언급할 때마다 예수는 “나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로만 대답했다. 가족이 예수를 가까이 두고 의존하려는 경향을 벗어나게 만드는 어려운 과제를 그는 거의 마쳤다. 그는 이 나사렛 집을 떠나 사람들을 위한 그의 진정한 봉사를 더 활동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날을 위하여 서둘러 준비하고 있었다.
128:7.6 예수의 일곱 번째 수여에서 첫 번째 사명은 인간의 체험을 얻는 것, 네바돈 통치권의 획득이라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라. 바로 이 체험을 쌓으면서, 그는 유란시아와 지역 우주 전체에게 파라다이스 아버지를 최상으로 계시하였다. 이 목적에 부차적인 것으로서, 그는 또한 루시퍼 반란에 관련되었던 이 행성의 복잡한 사무를 처리하는 데 착수했다.
128:7.7 이 해에 예수는 평소보다 더 여가를 누렸고, 수선 가게의 경영에 야고보를 훈련시키고 또한 집안일을 지도하도록 요셉을 훈련시키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 마리아는 그가 떠나려고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자기들을 두고 어디로 가려고? 무엇을 하려고? 그녀는 이미 예수가 메시아라는 생각을 거의 버렸다. 그녀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단지 맏아들을 헤아릴 수 없었다.
128:7.8 예수는 이 해에 가족들과 개인적으로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 산으로 오르는 길에, 그리고 시골 길을 통해서, 오랫동안 걸을 때 자주 그들을 데리고 가곤 하였다. 추수하기 전에, 유다를 나사렛 남쪽에서 농사짓는 삼촌에게 데리고 갔으나 유다는 추수가 끝난 뒤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달아났고, 나중에 시몬은 호수에서 유다가 어부들과 함께 있음을 발견했다. 시몬이 그를 집으로 데리고 돌아왔을 때, 예수는 달아난 소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가 어부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에, 함께 막달라로 가서, 어부인 어느 친척의 보호 밑에 그를 맡겼다. 유다는 그때부터 죽 결혼할 때까지, 꽤 무던하게 정규적으로 일했고, 결혼한 뒤에 어부로서 계속 일했다.
128:7.9 마침내 예수의 남동생들이 다 일생의 직업을 고르고, 자리를 잡은 날이 왔다. 예수가 집을 떠나는 것을 위해서 무대가 준비되고 있었다.
128:7.10 11월에 쌍 결혼이 있었다. 야고보와 에스타, 그리고 미리암과 야곱이 결혼했다. 이때는 참으로 기쁜 때였다. 마리아도 다시 한번 행복했지만, 이따금 예수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머니는 아주 불안해하며 고통스러워했다. 예수가 소년이었을 때 했던 것처럼, 앉아서 어머니와 터놓고 이야기하면 좋으련만. 그러나 그는 변함없이 소통하지 않았다; 장래에 대해서 깊이 침묵했다.
128:7.11 야고보와 신부 에스타는, 그녀의 아버지가 선물한, 마을 서쪽에 있는 깔끔하고 작은 집으로 이사했다. 야고보가 어머니의 집을 계속 지원했지만, 결혼했기 때문에 그의 몫은 반으로 줄어들었다. 예수는 요셉을 정식 가장으로 임명했다. 유다는 이제, 달마다 아주 충실하게 자기 몫의 돈을 집으로 보내고 있었다. 야고보와 미리암의 결혼은 유다에게 대단히 유익한 영향을 미쳤고, 쌍 결혼이 있은 다음 날, 고기잡이 터로 떠날 때, 그는 “내 임무를 충실히 하고, 필요하다면 더 할 것”을 믿어도 좋다고 요셉을 안심시켰다. 그는 약속을 지켰다.
128:7.12 아버지 야곱이 선조들과 함께 묻혔으므로, 미리암은 야곱의 집, 마리아의 이웃에서 살았다. 마르다는 집에서 미리암의 자리를 차지했고, 새로운 조직은 이 해가 저물기 전에 순조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128:7.13 이 쌍 결혼이 있은 다음 날, 예수는 야고보와 중요한 회의를 가졌다. 그가 집을 떠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야고보에게 비밀로 말했다. 야고보에게 수선 가게의 완전한 권리를 주었고, 정식으로 엄숙하게 그가 요셉 가문의 가장인 것을 포기하였다. 그리고 무척 감동스럽게 동생 야고보를 “내 아버지 집의 가장이자 보호자”로 세웠다. 비밀 계약을 작성하고 그들 둘이 서명했다. 수선 가게를 선물로 주는 대신에, 이제부터 야고보가 가족을 위하여 완전히 재정 책임을 맡으며, 이렇게 이 문제에 관해서 예수는 더이상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고 분명히 적었다. 계약서에 서명한 뒤에, 예수가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아도 가족의 실제 비용을 치르도록 예산을 맞춘 뒤에, 야고보에게 말했다. “그러나, 얘야, 나는 내 시간이 올 때까지 매달 너에게 얼마큼의 돈을 계속 보낼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내는 것은 경우에 따라 네가 써야 한다. 네가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가족의 필수품이나 즐거움을 위해 쓰거라. 병이 있을 때 쓰거나, 가족의 어느 식구에게 뜻하지 않게 생기는 긴급 사태를 대비하여 쓰도록 해라.”
128:7.14 이렇게 예수는 아버지의 일을 공식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성인 삶의 두 번째, 집을 떠날 단계로 들어갈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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