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네파 / 사두가이파
유다교 안에 있던 종파 가운데 율법을 가장 철저히 지키고 엄격한 금욕생활을 했던 에세네파에 대한 설명이다.
첫째, 가장 엄격한 금욕생활을 하고 율법을 철저히 준수함.
둘째, 사해 근처에 독자적 공동체를 형성하고 일반 백성과 완전히 격리된 생활을 함.
셋쌔, 이들의 규칙은 너무나 엄격해서 바보스런 웃음을 지으면 두 달 동안 목욕 금지, 말을 거칠게 하면 여섯 달 동안 목욕 금지, 거짓 말하다 발각되면 여섯 달 동안 목욕 금지시키고 음식을 4분의 1로 감량, 남을 비난했을 경우 1년 동안 목욕을 금지시키고 음식을 감량함.
넷째, 바리사이파 이상으로 수많는 정결례법이 있었으며, 율법에 순명하지 않는 자는 공동체를 떠나야 했음.
이들은 바리사이파와 마찬가지로 기원전 167년 유다인들이 헬레니즘의 거센 풍랑 속에서 좌초의 위기에 있을 때 율법을 충실히 지킴으로써 유다교를 지키려 했던 "경건한 사람들"이다.
에세네파와 바리사이파의 가장 큰 차이점은 율법의 실천 방식이다.
에세네파는 여러 종파 가운데 마지막 남은 거룩한 집단이라는 의식 속에 다른 이들과 완전히 격리된 속에서 생활하며 율법을 한 획도 어기지 않고 지킴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준비하였다.
반면에 바리사이파는 백성들 사이에 있으면서 율법을 실천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 "거룩한 이들"과 "죄인들"을 분리함으로써 다가 올 메시아 시대를 준비하였다.
한편 바리사이파와 사두가이파 사이에도 뚜렷한 구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성서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바리사이는 성문 율법(모세오경)과 구전 율법을 동시에 수용했지만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모세오경으로 하느님의 계시가 끝났다고 봄 으로써 성문 율법만을 인정하였다.
그런데 유다교의 이 종파들은 서기 70년 로마 티투스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파괴됨으로써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다시 말해 다른 종파들(사두가이파.에세네파.열혈당파)은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바리사이파만이 살아 남게 된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바리사이파 쪽에서 율법에 대한 꾸준한 해석과 적용이 있었기 때문인데, 시대가 어려우면 그때의 상황에 맞게 성서를 해석하고 적용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성전 파괴 이후 구약성서 46권을 정경으로 확정짓고, 이제 성전 중심이 아닌 말씀(회당) 중심으로 살아가게 된다.
이때부터 여러 분파로 갈렸던 유다이즘이 하나로 묶이게 되었으며, 율법에 따르는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가지고 후기 유다이즘을 창출한다.
그래서 후기 유다이즘을 바리사이즘이라 한다.
- 김지영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