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9.
외숙모의 꿈 이야기
전화벨이 한 번만 울고 뚝 끊긴다. 4시 50분.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왜 웃음이 날까. 고희(古稀)를 넘긴 연세에 궁금한 게 있어 전화를 걸고는 ‘아차’하며 통화 정지 버튼을 누른 것으로 추측이 된다. 스스로 너무 이른 시간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곧이어 휴대폰 문자 메시지 알람이 뜬다. “일어났제? 꿈, 아버지 봤다.”
꿈에서 깨자, 댓바람에 전화를 건 모양이다. 내 친인척 중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교양미 가득한 외숙모님이다. 마음이나 몸이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신데 세월을 이기기에는 무척 벅차 보인다. 요즘도 예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으시니 소녀 같은 아름다움은 여전하다.
많이 참고 또 참았으리라. 7시가 넘은 시간까지 몇 번이나 시계를 쳐다보며 망설였을까. 전화벨이 울린다. “예, 숙모님! 잘 지내….” 조카의 인사말까지 끊어버린다. 한참을 쉴 새 없이 꿈 이야기만을 풀어 놓는다. 처음이라며 한 번도 어머니나 아버지의 꿈을 꾼 적이 없었다고 강조한다. 말의 마디마디에 사랑을 실려있고 단어 하나하나에 그리움이 묻어 있으며 목소리 높낮이에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여전히 소녀의 감성이 느껴진다.
“너그 아버지가 젊었을 때 모습으로 정정하고 당당하게 꿈에 나왔데이. 널따란 어깨로 지현이를 두대기로 등에 업고 있는 기라. 가 보이 알라라. 모자를 벗기니까 김이 난다 아이가. 장서방은 저짜서 빗질을 하고 있고. 말은 않고 웃으시기만 하더라. 이기 뭔 꿈이고? 좋은 꿈이제?”
꿈을 풀이할 능력은 없다. 근거 없는 아주 주관적인 해몽을 해본다. 일인칭 외숙모 시점으로 살펴보면 등장인물은 고인이 된 시누이의 남편과 딸 그리고 사위이다. 사위는 현재의 모습이고 둘은 과거 모습이니 과거의 어떤 상황이 현재에 다시 반복됨을 뜻한다. 어린 딸이 등에 업힌 것은 보살핌을 받는다고 뜻일 테고 모자를 벗기니 김이 난다는 것은 골치 아픈 일을 시원하게 해결한다는 의미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아버지의 미소는 걱정과 근심은 접어두라는 좋은 소식의 전달쯤으로 판단된다.
꿈은 간절함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이 끌리니 통제되지 않아 잠결에 만들어지는 상황이 아닐까. 아버지와 어머니. 외숙모와 외숙부. 형제간의 우애가 남달랐음은 이미 알고 있다. 김장 김치 한 통에 사랑이 담겼고 서로의 대화 속에 겸손과 존경을 담았으니, 주변인의 견지에서도 이해가 된다. 내 눈에 비친 당신들의 아름다움은 족히 배울 만한 사랑이었다.
꿈은 예지력을 가진다. 꿈으로 행운을 잡은 것은 작은 것이고 꿈으로 위험을 헤쳐 나간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크든 작든, 무슨 의도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보고 싶은 얼굴을 봤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