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체포 (1620)
안토니 반 다이크
안토니 반 다이크(Anthony Van Dyck, 1599-1641)는 17세기 플랑드르에서
활동한 화가로 이 지역의 바로크 미술 양식을 대표하는 화가이다.
특히 초상화는 반 다이크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가져다주었으며,
이후 약 2세기 동안 유럽의 궁정 초상화의 기준이 되었다.
반 다이크라는 이름은 ‘우아하고 세련된’ 초상화와
그런 분위기를 가진 인물을 가리키는 일반 명사로 사용되었다.
그가 1620년경에 그린 <그리스도의 체포>는 현재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고,
마태오복음 26장 47-56절, 마르코복음 14장 43-50절,
루카복음 22장 47-53절, 요한복음 18장 1-11절이 그 배경인데,
이 작품은 반 다이크가 스승 루벤스에게 선물로 주었고,
루벤스가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었다가,
스페인 국왕 필리페 4세가 구매하여 현재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있다.
이 작품은 반 다이크가 젊은 시절에 그린 그림이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니 동산에서 고난의 기도를 바치고 있을 때,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유다가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보낸 큰 무리와 함께
칼과 몽둥이를 들고 와 예수님을 체포하는 장면을 묘사했다.
반 다이크는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그림을 세 점이나 그렸는데,
현재 이 그림들은 미국의 미네아폴리스 미술관과
영국의 브리스톨 시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림에 약간의 차이는 보이지만 기본 구도와 구성은 세 작품이 똑같다.
예수님을 체포하러 온 무리를 뒤로하고, 유다가 체포할 사람을 지목하기 위해
예수님께 다가가 “스승님!”하고 나서 입을 맞추는 순간을 포착했다.
그러자 무리가 예수님께 손을 대어 그분을 붙잡았다.(마르 14,45-46)
예수님께서는 인성을 상징하는 붉은색 겉옷을 벗고
인성을 상징하는 푸른색 옷만 입었다.
그분은 수난을 상징하는 맨발이고,
하느님의 시선으로 유다를 애처로이 바라보고 계신다.
횃불에 비치는 그분이 얼굴은 거룩하게 빛난다.
그러나 등을 돌린 유다의 엉클어진 머리와 검은빛의 얼굴과 손과 발이
그의 불안한 심리를 대변해주고 있다.
그는 예수님께 다가가 예수님의 손을 어슴푸레 잡으며
예수님의 볼에 입을 맞추려 한다.
“내가 입 맞추는 이가 바로 그 사람이니 그를 붙잡으시오.”(마태 26,48) 하고
유다가 무리에게 미리 신호를 일러두었기에
무리는 예수님에게 달려들어 밧줄을 걸어 예수님을 붙잡으려 한다.
뒤에 있는 군사들은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창을 들고 달려들며,
머리에 흰 두건을 두른 사내는 횃불을 들고 이 광경을 비추고 있다.
그런데 왼쪽 아래에 있는 푸른색 옷을 입은 베드로가
칼을 들어 대사제의 종 말코스의 오른쪽 귀를 자르고 있다.
성경에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대사제의 종을 쳐서
그의 오른쪽 귀를 잘라 버렸다.”(루카 22,50) 하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만해 두어라.”(루카 22,51) 하시고,
그 사람의 귀에 손을 대어 고쳐 주셨으며, 스스로 체포되어 가게 되신다.
세 그림은 모두 베네치아 스타일로 낮은 쪽에서 올려보는 시점과
단일 조명원을 사용하여 극적인 효과를 준 구도를 취하고 있다.
비슷한 주제의 다른 그림들에 비해 무척 동적이고, 극적인 구성이다.
초승달이 떠 있는 밤의 어두움이 짙게 깔린 겟세마니 동산,
예수님을 붙잡으러 온 무리가 높이 쳐든 횃불,
예수님의 빛나는 얼굴이 빛과 어두움의 강한 대비를 보여주면서
바로크 미술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루벤스의 작품에 비해 색채가 훨씬 흐려지고 부드러워졌으며
붓질이 더욱 섬세해졌고 인물 개개인의 표정들이 하나하나 빠짐없이 살아 있어
반 다이크의 세련되고 예민한 감수성을 엿보게 한다.
반 다이크의 천재적인 자질이 유감없이 발휘되어있는 이 작품을
루벤스는 너무나 좋아해서 죽을 때까지 늘 식당 벽난로 위에 걸어놓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