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2장33-42절 우리가 어찌할꼬!(케리그마와 디다케) 260502 원주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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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다윗은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아멘.행2장33-42절 우리가 어찌할꼬!(케리그마와 디다케) 260502 원주희 목사
1.수 많은 설교 중에도 복음에 반응하지 않는 사람들
모든 목사에게는 공통적이고도 거룩한 환상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정말 최선을 다해 설교를 준비하고, 뜨겁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면, 그 말씀을 듣는 모든 교인이 그 자리에서 거꾸러져 회개할 것'이라는 기대입니다. 설교 한 번에 수천 명이 회개했다는 성경의 기록처럼, 나의 강단에서도 그런 기적 같은 영적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 믿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목회 현장에서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쌓이다 보면, 어느덧 그 뜨거웠던 기대는 차가운 허망함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현실 속의 교인들은 좀처럼 회개하지 않습니다. 수십 년을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말씀을 들어도 삶의 궤적이 전혀 변하지 않는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남을 탓하기 전에 더 무서운 현실이 있습니다. 내 자신을 정직하게 돌아보면, 설교를 선포하는 목사인 나 자신조차도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고 있는 기가 막힌 현실을 목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2. 설교가 의미 없게 느껴질 때
제 설교의 뿌리는 '십자가 신학'입니다. 김덕신 목사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제 신앙의 기초는 그 피 묻은 십자가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또한 제가 전공한 상담학적 관점이 가정 문제나 위로의 말씀에 양념처럼 들어갑니다. 영성 관련 서적을 100권 이상 탐독하며 훈련했기에 영성에 관한 고찰들이 함께 전하지요. 여기에 우리 통합측 목사들의 특징인 교회와 세상을 아우르는 신학적 흐름, 즉 교회가 세상을 어떻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품고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섞입니다.
제 설교는 가정, 사회생활, 성령의 은사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것 같지만, 사실 그 모든 이야기의 중심축은 언제나 '피 묻은 십자가의 은혜'라는 한 지점으로 모입니다. 이것이 제 신학의 뼈대입니다. 여러분이 제 신학의 이 축을 알고 나면 제 설교가 뻔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십자가 얘기하다가 가정을 거쳐 영성으로 가겠구나" 하고 말이죠. 늘 복음만 말하고 늘 십자가만 붙들다 보니 듣는 분들 입장에서는 지겨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베드로의 선포: 복음과 변증 가르침
오늘 본문은 설교자들에게 마치 꿈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베드로가 오순절 첫 설교를 전하는데, 그 결론인 3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베드로는 다윗의 시편을 인용하며,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고 하셨음을 설명합니다. '발등상'이 된다는 것은 승리자가 패배자의 목을 밟는 고대의 관습입니다. 즉, 사단의 권세를 완전히 굴복시키고 승리하실 그 재림의 때까지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 통치자의 자리에 앉아 계신다는 선포입니다. 베드로는 육신으로 계실 때 병을 고치고 기적을 행하셨던 그 예수가 지금 단순히 죽은 영웅이 아니라, 온 우주의 통치자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심을 선포했습니다. 베드로가 이 광경을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성령 안에서 확신을 얻은 것입니다. 그는 확신을 가지고 이스라엘 온 집을 향해 외칩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4. "어찌할꼬"의 역사: 마음을 찌르는 복음의 능력
베드로의 선포가 떨어지자마자 기적 같은 반응이 일어납니다. 37절입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이 '마음에 찔려'라는 표현은 나중에 스데반 집사의 설교 때도 등장합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자들은 마음이 찔리자 분노하여 스데반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베드로 앞에 선 자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자 사도들에게 간절히 묻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저는 이 대목에서 설교자로서 형용할 수 없는 희열을 느낍니다. "은혜받았습니다"라는 말은 많이 듣지만,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물으며 자신의 삶을 180도 전환하겠다고 결단하는 사람은 정말 보기 드물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설교가 강력했던 이유는
첫째, 복음의 생명력,
둘째, 베드로의 성령 충만,
셋째, 베드로 뒤에 병풍처럼 버티고 있던 120명의 강력한 중보기도 부대 때문입니다.
중보기도를 통해 강력한 성령의 임재가 그 공간을 확 덮어버린 것입니다.
5. 케리그마와 디다케: 복음 선포와 가르침의 조화
마음이 찔린 자들에게 베드로는 해답을 제시합니다. 회개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죄 사함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그는 현란한 은사를 자랑하지 않고 철저하게 본질적인 복음을 외쳤습니다.
여기서 신학적인 용어 두 가지를 기억하십시오.
복음의 핵심을 선포하는 것을 '케리그마(Kerygma)'라고 하고,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는 것"을 '디다케(Didache)', 즉 가르침이라고 합니다.
현재 한국 교회는 강단에서 '케리그마'는 사라지고 생활의 지혜와 같은 '디다케'만 무성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가르침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복음의 선포(케리그마)가 빠진 가르침은 위험합니다.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기독교 신앙과 동일시하는 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은 어떤 처지에 있는 자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죄 사함의 은혜입니다.
교회 학교 아이들에게도 너무 가르치려고만 하지 마십시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 이전에 자신의 죄와 부딪히고 성령을 체험하는 케리그마의 역사입니다. 복음을 먼저 받아야 그 후에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가르침이 의미가 있는 법입니다.
6. 사도의 가르침(멘토링)을 따라: 초대교회의 회복
마지막으로 42절은 복음을 받은 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 이것이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본격적인 디다케의 결과물입니다.
목사의 말이 전혀 씨알도 먹히지 않는 교회는 목사에게 죽으라는 소리와 같습니다. 10년을 설교해도 성도들이 변화되지 않으면 목사는 진이 다 빠져버립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리고 저 자신이 나이가 들어서도 복음 안에서 열정의 사람으로 세워지기를 축복합니다.
초대교회는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과 종이 한 상에서 밥을 먹고 떡을 뗐습니다. 옛날 우리나라도 아버지 상 따로, 여자들은 부엌에서 따로 먹던 시절이 있었지 않습니까? 하지만 교회는 모두가 어우러져 겸상했습니다. 단순히 식사만 한 게 아니라 마음을 나누고 기도 제목을 공유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교제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힘이었고 우리 모두의 꿈입니다.
7. 결론: 복음의 능력을 회복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주님 안에서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저 또한 설교자로서 새롭게 결단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복음 앞에 정직해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십자가 복음(케리그마)을 가슴에 품고, 올바른 성경적 가르침(디다케) 안에 거하며, 성령 안에서 서로 뜨겁게 교제하고 기도하기를 힘쓸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단순히 우리 교회 하나 잘되는 것을 넘어, 이 도시와 민족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독교의 위대한 이상들이 우리를 통해 회복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우리는 복음의 사람입니다. 한 마음으로 주를 향해 나아가는 복된 공동체가 됩시다.
기도하겠습니다.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주신 생명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안일함을 일깨워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단순히 예배의 자리에 머무는 종교인이 아니라,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승리하며 살아가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어가며, 하나님의 의를 선포하고, 아버지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릴 수 있는 은혜를 우리 모두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우리 성도들이 세상 속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하시고, 복음의 확신 속에서 "어찌할꼬"의 애통함을 가지고 이웃을 품게 하옵소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