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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도 금강(幻島金剛)-5 통권 134
귀림의 드워프들은 이미 라혼이 드래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눈앞의 귀선이라 일컬어지는 존재가 드래곤을 때려잡는 신룡들을 때려잡은(?) 어마어마한 자라는 것 또한 알았다. 그러나 중간계를 지배하는 드래곤이 아니라면 드워프가 머리를 조아릴 이유는 없었다. 드워프가 드래곤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하는 이유는 엘프, 드워프, 오크는 요정(妖精)족이고 드래곤족은 태어나면서 정령(精靈)과 친화력이 깊었기 때문이었다. 정령과 요정은 같은 테두리에 드는 것이었으므로, 그들이 드래곤을 무서워하고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본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상대가 인간이라면 또 달랐다. 그가 아무리 드래곤을 압도하는 힘을 지닌 자라 할지라도….
“우리는 당신이 드래곤이 아니라는 것을 아오.”
“….”
라혼이 원석을 들고 드워프 마을을 찾았을 때 드워프 촌장 신중한 블로는 말끝에 턱을 긁적이며 쓴웃음을 지었다.
“당신이 비록 우릴 속였지만 우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았고, 또 친구로 대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더 이상의 협조는 기대하지 마시오.”
“….”
라혼은 드워프 촌장의 최후 통첩에 할 말을 잊었다. 그러나 이내 한숨을 내쉬고 드워프의 말을 선선히 받아들였다. 어차피 그들을 속여서 많은 일을 하게 했고, 앞으로도 그들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드워프의 고집을 알고 있는 라혼은 그대로 물러났다.
“그대들의 뜻은 알겠소.”
“하지만 젊은 드워프들 몇몇은 계속 당신을 돕기를 원하오. 그들을 거둬줄 수 있겠소?”
귀림의 드워프들이 라혼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은 라혼이 북천에서 앙(殃), 우(于)와 싸울 때 천하의 신선들이 그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굉(宏)이 그를 금강의 주인으로 삼자, 천하 십대선맥들은 귀선이 금강의 주인이 되었다며 큰 우려를 나타냈다. 그중 남례성에 적을 둔 선산 봉래(蓬萊)의 선인들이 친분이 있는 귀림의 토지신들에게 귀선에 대한 것을 물었고, 그 과정에서 드워프들은 라혼이 드래곤이 아님을 알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날로 마을에선 그를 계속 도울지 말지를 결정하는 회의가 벌어졌고, 결론은 돕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목우유마라든지 역석 등 새로운 것에 관심을 보이며 거기에 빠져 있는 젊은 드워프들은 개인적으로 라혼과 거래할 것을 소망했다.
“그래서 마을 차원이 아닌 그들 개인 차원에서 당신과 함께하겠다고 했소.”
“그들은 당연히 마을을 떠나야 하겠지?”
“그렇소.”
“몇 명이나 되오?”
“34명이오.”
“좋소. 그럼 불새의 깃털과 드래곤 본, 완성된 역석, 그리고 귀왕곡에서 찾아낸 마법 물품을 돌려주시오.”
“…!”
블로는 그의 당당한 요구에 일순 말문이 막혔다. 그가 요구한 것들은 마을의 전부였지만 물건의 주인은 다름 아닌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목수에게 좋은 목재만큼 탐나는 것이 없고, 석수에게 좋은 돌만큼 값진 것이 없다. 마찬가지로 뛰어난 장인인 드워프들에게 드래곤 본만큼 좋은 재료가 또 없으며, 불새의 깃털만큼 좋은 도구는 세상에 또 없었다. 그날로 다시 마을 회의가 벌어졌고, 결론은 인간과는 거래하지 않지만 봉래의 신선들과는 종종 거래를 했다는 예를 들어 금강의 주인인 그와 거래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으로 내려졌다. 그렇게 한순간 라혼을 난감하게 했던 드워프들의 파업은 그렇게 흐지부지 넘어갔다.
***
설화는 지금 유운검선을 어찌 불러야 할지 난감했다. 첫 만남 이후 한동안 서방님을 차지하고 앉아 신선들이 쓰는 술법을 전수하고 갑자기 사라지는 바람에 그에 대한 호칭에 대해선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렇게 며칠 같이 지내게 되니 왠지 어색했다. 그것은 나이 많은 남편(?)을 둔 여자의 공통적인 고민이었다.
“저어, 진지 잡수세요.”
“….”
한참 호칭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꺼낸 말이 결국은 ‘저어’였다. 겉으로 보기에 약관의 청년인 유운검선이었지만 200여 세가 넘은 나이에 지금도 그 이름이 칭송되는 존재이다 보니 설화는 무척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유운검선의 입장에선 꽃같이 아름다운 설화의 이처럼 불편해하는 태도가 무척 걸렸다. 오랜만에 만난 할아버지이며 마음을 터놓아도 될 스승이자 지기인 라혼의 어린 아내가 계속 이런 식이면 아마도 엉덩이를 걷어차서라도 쫓아보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랜 기간 최고의 자리에 있으면서 타인과의 교류가 보통 사람과 달랐던 현석에게는 어찌해야 양할머니(?)이자 사모(師母)인 그녀가 불편해하지 않을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지금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따라 가니아의 통나무집 안으로 들어갈 뿐이었다.
가니아가 직접 텃밭을 일구어 가꾼 야채들로 상이 차려지고 간단한 식사가 끝난 후 설화가 차를 준비하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가자 가니아가 현석에게 말했다.
“검야, 설화가 당신을 어려워하는 것은 당신을 어찌 부를지 난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당신에 대해 아주 많은 것을 알고 있더군요. 옛날이야기 속의 전설로나 있던 사람이 갑자기 가족이 되면 어색해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지요.”
“….”
“설화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성정을 가진 아이이니 검야도 너무 어색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가요? 그렇군요. 내가 그녀를 어색해했던 것이군요.”
그렇게 현석과 가니아의 짧은 대화가 오가는 사이, 설화가 쟁반에 차가 담긴 주전자와 찻잔을 받쳐들고 거실로 나왔다. 설화는 손님인 유운검선에게 차를 먼저 따라주었다.
“고맙습니다, 천녀. 하지만 순서가 틀리셨습니다. 신모(神母)님에게 먼저 차를 드려야지요.”
“예?”
“잊으셨습니까? 저는 천녀의 양손자(?)입니다.”
“…?”
설화는 유운검선의 갑작스런 말에 어쩔 줄 몰라했다. 아직 아이도 갖지 않은 자신에게 200살은 훨씬 넘은 손자가 생긴 셈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당황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천녀와 저는 이미 가족이니 손님 취급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예에. 죄송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검야라고 불러주십시오.”
“예, 검야!”
그렇게 차 한 잔을 비우고 서로의 관계가 정립되어 어색함이 덜어지자 현석에게 설화의 질문이 쏟아졌다.
“저어, 어떻게 해서 서방님의 양손자가 되신 거예요?”
“….”
현석은 설화의 질문을 받고, 늙은 노인 모습을 하고 있던 해노 할아버지의 모습을 회상하며 이야기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야기가 끝나고 내린 설화의 결론은….
“어쩜, 지금하고 똑같네요. 같은 사람이니 당연한가?”
***
은섬충의 위력은 대단했다. 일정한 방법에 따라 사육된 은섬충(銀蟾蟲)에 당한 사람은 근본적으로 성정이 바뀌었다. 은섬충을 번식시키려면 은섬충에 감염된 사람을 가사 상태로 만들어 골수를 파먹고서야 서너 개의 개체로 분리된다. 은섬충에 당한 사람이 하독한 사람을 위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바로 은섬충의 사랑(?) 때문이었다. 은섬충이 번식을 하려면 암컷과 수컷이 교미를 해야 하는데 양고(陽蠱)에 당한 사람은 음고(陰蠱)를 지닌 사람의 명에 절대 복종, 아니 경애하고 아끼게 되는 것이었다.
라혼은 그 은섬충을 귀왕림의 귀왕, 강시지존 흑산자, 남상부도독 토사귀, 귀호기주 귀호령 주란문 그리고 호영(虎影)에게 사용했다.
천림왕이 라혼을 도모할 것을 맹세한 그 자리에 호영은 몸을 숨긴 채 호황과 천림왕의 대화를 들었고, 호영기는 그때부터 쭉 천림왕의 행보를 감시했다. 잠시나마 한때 호영기를 이끌었던 천림왕은 그들의 감시를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중요한 정보가 노출되어도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것은 전환을 통해 고학에게 전달되었으며, 게으른 주인을 둔 고학은 눈곱 뗄 새 없이 바쁜 공무의 와중에도 그것을 바탕으로 천림왕을 일거에 제거하는 묘책을 짜내야 했다.
“독점도는 천험의 험지이고 대군을 풀어놓아도 자객교의 살수들이 반항하면 큰 피해가 발생할 겁니다. 그러나 그들을 상대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들을 섬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틀어막고 강호의 세력에 그들의 토벌을 부탁하면 됩니다. 특히 철사성은 자객교의 자객에게 변을 당한 인물들이 많다고 하니 복수를 위해서라도 동조할 겁니다.”
라혼은 고학의 설명을 들으며 독점도의 위치가 표시된 지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고학은 그런 주군을 길게 읍하며 굵고 차분한 어조로 주위를 환기시켰다.
“주군.”
“말하라.”
“호황이 주군과 저흴 버린 이상 우리도 호황에게 더 이상 지킬 의리는 없다고 봅니다.”
“….”
고학은 잠시 말을 끓고 주군의 반응을 살피고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세간에 수인 천하를 두고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누런 산에 터를 닦고, 청목으로 집을 짓네.
하얀 범은 마루 위에, 붉은 새는 대문 위에,
검은 거북이 지붕 위에 오르면,
찾아온 옛 벗과 천배(千配)를 나누리.
누런 산은 토(土) 황룡을 뜻하고 청목(靑木)은 청룡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 노래는 황룡이 토덕(土德)으로 요괴에 불과하던 수인들을 계도하고, 목덕(木德)을 가진 청룡이 수인 천하를 이룩했음을 말했다. 그리고 그 뒤에 금덕(金德)을 지닌 백호와 화덕(火德)을 상징하는 주작, 수덕(水德)의 현무까지 노래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의 옛 친구는 인간을 말했다.
“주군, 민심(民心)은 곧 천심(天心). 주모는 백호이고 주모의 외증조모는 주작의 신모이십니다. 이는 천명(天命)입니다.”
“….”
고학은 조용히 생각에 잠긴 주군을 바라보며 단호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천하인들이 말하길, 한결같이 당금 천자인 호황에게는 덕이 없다고 합니다. 그는 진명천자(眞命天子)가 아닙니다. 그에 반해 주군은 용황을 대신하시는 분이십니다. 호황이 진정 천하를 위하는 마음이 있다면 천하가 어지럽고 위태로운 지금, 용천검의 주인을 도모하는 것을 묵인하는 과오는 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라혼은 고학의 말에 자신이 멈추면 넘어지는 외바퀴 수레를 굴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라혼이 조정에 출사한 것은 사실 확실한 신분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설화가 여인천궁의 소궁주가 되고, 얼떨결에 공을 세운 자신은 하루아침에 장수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게다가 사실 라혼이 참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모석 때문이었다. 모석은 라혼이 병법에 밝고 무예가 출중한 숨은 인재라는 것을 소문냈고, 부수문장이었던 모석이 백호문의 수문대장 자리를 스승이었던 라혼에게 양보함으로써 출사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장군이 될 수 있었다. 당시 청류파로 분류되던 황진성부윤 사관산(獅官山)과 사문수비대장 견헌승(犬獻勝)은 천하 정세가 어지러워지자 훌륭한 인재들을 조정에 끌어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잘난 마누라 건사하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이었을 줄이야.’
그렇다. 라혼의 목적은 오직 설화를 건사하는 것뿐이었다. 처음 생각했던 대로 그저 호제가의 사생아(?) 정도였다면 여인천궁의 궁주로 비교적 평탄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설화는 백호였다. 호랑이로 화했을 때 털이 누렇지 않고 하얗다는 것뿐이었지만 문제는 백호는 제왕이라는 세간의 속설이었다.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여인천궁의 여인들과 라혼 자신뿐이었지만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이었다. 게다가 당시엔 앙신성에서 ‘거정의 난’이 일어나고 정립 천하 운동이 각지에서 소란을 일으키던 시기였다. 그래서 라혼은 천하의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지려 했고, 결국 가졌다. 그런데 고학은 그러한 힘을 바탕으로 천하를 두고 도박을 하라 말하고 있지만 라혼에겐 또 다른 힘이 있었다. 천하와 싸우기에 부족하나 천하를 위압하기에 충분한 힘.
“고학.”
“말씀하십시오.”
“오는 원단에 천자가 무후(武后)로 바뀔 것이다. 십제는 물론, 흑막 웅랑교와 후선에 용호왕의 이름으로 교지(敎旨)를 보내 입조를 명해라!”
“예? 그런….”
고학은 자신의 생각을 뛰어넘는 주군의 말에 입이 ‘쩍!’ 벌어졌다. 게다가 ‘용호왕(龍虎王)’이라니….
“십제에게 천림왕과 호황의 음모와 함께 설화가 백호라는 사실과, 가니아의 존재를 알려라. 전 용호군에 용호왕의 이름으로 집결을 명하라.”
“하, 하지만 일은 은밀하게….”
“고학, 설화는 호황가의 핏줄이다. 은밀하게 일을 진행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호황 스스로 용황을 대신하는 나를 도모하는 것을 알고서도 묵인했다. 그대의 말대로, 그는 스스로 천자의 덕이 없음을 증명했는데 무엇을 주저하리.”
만추(晩秋)에 접어드는 때 천하는 백호나한의 거병 소식에 크게 술렁였다. 장강대하의 수로를 타고 백호나한 휘하의 십대장군들이 10만 정병을 이끌고 상경에 집결하기 시작했고, 스스로 용호왕이라 칭왕한 백호나한은 백호인 천상천화야말로 진정한 진명천자임을 주장하며 천하 제후들에게 격문을 띄웠다. 진골십가의 십제 중 계제가가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고, 을주 마제가와 정주 사제가가 이 일은 호황가의 내부 문제라는 이유를 들어 중립을 천명했다. 그것을 기화로 다른 진골십가도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지만 갑주의 서제가는 백호나한의 거병에 극렬하게 반대하며 원주 남부를 위협했다. 이에 임주를 장악하고 있던 학가(鶴家)는 계세자가 백호나한을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는 사실에 불안을 느끼며 그가 일으킨 거병을 성토했다.
“이런 무모한 사람을 보았나. 은밀하게 움직여도 될까 말까 한 일을 이렇듯 대놓고 하다니….”
중경 청인성과 청인성부의 인구는 무려 500만에 육박했다. 중경이 위험했지만 지금이라도 당장 100만 대군을 모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중경이었다. 그러한 성시를 고작 10만으로 정면 승부를 하려는 백호나한의 시도는 아무리 좋게 봐도 무리 그 자체였다.
“태상회주, 일은 벌어졌습니다. 일단 중경의 병권을 쥐고 있는 무골후를 움직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흐음.”
백수회의 태상회주 호사천은 천림왕을 충동질하여 그로 하여금 백호나한을 도모케 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사위인 그에게 위험을 알리고 호황과 알력이 생기도록 일을 꾸미도록 했다. 그러나 자신이 알리기도 전에 이미 천림왕이 자객교에 청부한 사실까지 알고, 자객교의 비밀 근거지를 천하에 알리기까지 했다. 호사천은 그것을 전해 듣고 호황의 비밀 세력인 호영에 사위의 간세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일을 이토록 크게 벌일 것이라곤 상상치 못했다.
“묘낭, 나도 밝은 곳으로 나가야 할 것 같소. 어떻게 하든 모든 책임은 호천린에게 미뤄야 하오. 아직은 때가 아니야.”
“알겠습니다. 제가 직접 백호나한을 만나보겠습니다.”
그렇게 지하에 숨어 있던 백수회가 전면에 나서 백호나한과 호황 사이를 오가며 중재를 시도하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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