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4장 12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은 무한히 어렵다. 우리 신학도들은 말씀을 준비하는 게 가장 어렵고, 그것을 전하는 것도 엄청나게 어렵다.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가 살아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냥 전하기만 하면 된다. 예수님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온 천하에 예수님 외에 다른 방법으로 구원을 받을 길은 없다고 그냥 전하기만 하면 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전도지에 적힌 간단한 말씀에 이끌려서 교회를 찾아오는지 모른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씀을 전할 때에 말씀이 친히 역사하게 하신다. 예수님이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성경을 풀어 주셨을 때에 그 두 제자들은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한다. 그것은 예수님이 전하실 때만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같이 부족한 종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또박또박 강하고 권위있게 전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신다. 우리가 재미있게 재치있게 잘 전해야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왔을 때에 어떤 선비들은 기독교가 일부일처를 주장한다는 말을 듣고 무릎을 쳤다고 한다. "맞아! 일부일처야 해!" 축첩의 폐해를 잘 알고 있던 분들은 기독교에 희망을 걸었다. 이슬람은 아직도 일부다처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봄이 되면 눈이 녹듯이 결국은 진리 앞에서 무릎으을 꿇을 것이다. 나는 말씀을 전하면서 많은 은혜를 체험했다.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이 말씀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거기에 초점을 맞추고 설교했는데, 그런 사람들은 멀뚱멀뚱 그냥 있고, 엉뚱한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은혜를 맏는 것을 많이 보았다. "아! 하나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에게 말씀을 주시는구나! 내가 주려고 해도 그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구나!" 말씀을 전하는 것은 씨 뿌리는 일과 같다. 어쩌다 길에 떨어지는 씨도 있고, 어쩌다 자갈밭에 떨어지는 씨도 있고, 가시덩굴 속에 떨어지는 씨도 있고, 옥토에 떨어지는 씨도 있다. 그 사람의 마음밭이 옥토인지 가시밭인지 우리는 잘 알기 어렵다. 그러나 성실하게 전하다 보면 옥토의 마음밭을 가진 사람은 받아들이게 되어 있다. 바울사도는 전도여행을 다니며 주로 회당에 가서 복음을 전했다. 유대인들 중에는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반대자들이 더 많았다. 그래서 돌에 맞기도 하고, 쫓겨나기도 했다. 그러나 최소한 한두 사람은 반드시 복음을 받아들였다. 그러면 그 사람들에게 집중적으로 말씀을 전하여 그 지역의 교회를 세웠다. 바울은 며칠만에 그 도시를 떠날 경우도 있었다. 길게 있어야 에베소와 같이 3년 머물렀다. 고린도는 2년 있었다. 나머지는 다 몇 달 머물렀다. 그런데도 그렇게 뿌려진 말씀은 살아서 역사를 했다.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다른 사람에게 전도하게 하였다. 아르테미스 신을 섬기던 에베소는 은 오만이나 되는 마술책을 불사르는 등으로 도시 전체가 변화하자, 우상을 만들던 업자들이 폭동을 일으키게 하여 바울을 내쫓았다(행 19). 바울이 늘 머물면서 가르쳐야 잘 되는 게 아니었다. 빌립보는 잠간 있었지만, 가장 열심히 가장 오래 바울을 지원하였다. 말씀은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담대히 전하기만 하면 말씀은 누군가의 가슴에 파고들어 그 사람을 변화시키게 되어 있다. 나는 미션스쿨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학생들은 예배시간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선생님들도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러나 아담스 선교사가 세운 학교인지라, 일 주일에 한 번은 꼬박꼬박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많은 학생들이 앉아서 졸았다. 그러면 선생님들이 돌아다니며 매로 쿡쿡 지르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억지로 예배에 참석하던 친구들이 지금은 거의 다 장로나 집사가 되어 있다. "어! 자네도 교회 다니나?" "일 주일에 한 번씩 예배 드렸는데, 어떻게 안 믿을 수가 있나?" 성령께서 어느새 그들의 마음속에, 자기들도 모르게 말씀을 심어 두신 것이다. 나는 말씀에 대해 의심이 많았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는 이야기나, 천국이 있다는 게 다 허황하게 들렸다. 그러나 내가 외롭고 춥고 배고픈 삶을 살다 보니, 시편의 말씀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특히 시 13편에서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하는 말씀에서 나는 나와 같이 의심하고 탄식하는 시인을 발견하고 나 같은 놈도 예수를 믿을 수 있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무조건 믿는 것만, 무조건 아멘 하는 것만 좋은 게 아니고, 있는 그대로 질문하고 원망하고 탄식하고 의심해도 좋은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고, 나 같은 죄인을 받아주는 하나님이 좋았다. 하나님이 좋아지니까, 의심스럽던 것이 차츰 사라졌다. 지금은 하나님이 무조건 좋다. 나를 어떻게 하시든지 나는 감사한다. 나 같은 죄인이 이렇게 살아 있는 것만도 감사하다. 나는 말씀을 만나려면 그냥 꾸준히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문득 어떤 말씀이 여러분의 머리를 때릴 것이다. 재미없어도 그냥 조금씩 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찾아 주실 것이다. 아무리 읽어도 하나님이 안 찾아주신다 생각하면, 일 년만 더 읽어라! 그래도 안 만나주시면 죽겠다고 서약하고 읽어라! 나는 성경에서 하나님을 못 만나면 자살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 1학년부터 열심히 영어로 성경을 읽었다. 한국 성경이 잘못 번역된 게 많은 것 같다는 불신에서였다. 그리고 일 년이 조금 넘은 때에 나는 나를 찾아다니시는 하나님을 발견했다. 하나님은 나를 찾아다니신다. 나는 하나님을 만나도 못 만난 척하고 그냥 지나갔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계속해서 나를 따라 다니신다. 나같이 못난 놈을 어디다 쓰시려고 그렇게 찾아다니셨을까! 나는 아직 그 의문을 다 풀지 못했지만, 나를 죽지 않게 하고 살아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나는 말씀 때문에 살았고, 말씀으로 살았고, 말씀을 가르치며 살았다. 지금도 말씀은 언제 보아도 좋다. 그리고 살아있는 말씀인 예수님을 좋아한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하나님은 지금도 내가 바로 서기를 바라시고, 내가 더 열심히 주님의 종 역할을 하기를 바라신다. 그리고 내게 주실 선물 꾸러미를 잔뜩 들고 계신다고 믿는다. 산타 할아버지는 아무 것도 아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늘 말씀에 영감을 얻고 말씀에 떠밀려, 말씀에 실려, 말씀을 타고, 말씀을 전하고, 말씀에 취해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17.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