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4 - 도동에서 섬일주 버스로 태하에 내려 모노레일 타고 바다를 보다!
어제 8월 24일 포항 에서 09시 20분에서 출항하는 썬라이즈호를 타고 3시간 40분
후인 13시에 울릉도 도동항 에 도착해 팬션을 찾아 체크인을 하고는
성인봉 등산 을 한후 내려와 울릉도 시가지와 부두를 구경하고는 하룻밤을 잤습니다.
8월 25일 도동 버스터미널 에서 버스 시간표를 보니 시계 방향 으로 한바퀴 도는
버스는 9시 40분이라 기다릴수는 없으니..... 또 다른 버스는 울릉도 북쪽
천부 에서 출발해 시계방향으로 한바퀴 도는 버스가 8시 35분에 도착하기로 탑니다.
어제 울릉도로 들어올 때는 날씨가 나빠 파도가 쳐서 멀미 로 고생한지라 내일은 도동에서
포항으로 나가는 배는 3시간 40분이 걸리지만, 사동항에서 후포 로 가는 배는 2시간
30분 걸리는 지라 휴대폰으로 제이에이치 페리 인터넷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예약 합니다.
동구미 에 내려서 동구미 몽돌 해변 과 화산 폭발로 특이하게 생긴 바위 와 또 마을을 구경하고는 다시
버스를 타고 남양을 지나 10시 25분에 태하 라는 마을에 내려 울릉수토 역사전시관 을 구경합니다.
울릉수토역사관이란 울릉도에 주민들이 이주해와 살게된 역사를 전시하는데 혹시나 싶어 둘러
보았더니 역시나 없는게..... 조선 태종과 세종 은 왜구 때문에 울릉도를 지킬수가 없으니
주민을 육지로 소환하고는 울릉도에 공도령 을 내리니, 빈 섬이라 대마도에서 눈독 을 들입니다.
조선 태종이 공도령(空島令) 을 내려 울릉도가 빈 섬이 되자 1407년 대마도주 종정무 는 평도전(平道全)을
보내 무릉도(울릉도)에 왜인들이 이주 하기를 청원합니다. “종정무가 무릉도에 부락을 거느리고 가서
살고자 하므로 이를 허락한다면 일본 국왕이 반인(叛人)을 불러 들였다 하여 틈이 생기지 않을까” 하니,
남재(南在)가 대답하길 “왜인의 풍속은 반(叛) 하면 반드시 다른 사람을 따릅니다.” 해서 허락하지 않습니다.
광해군 1614년에 2차 청원 을 하는데 “비변사에서 아뢰기를 울릉도에 왜노의 왕래를 금지하라는 뜻으로
예조의 서계 가운데 사리에 근거하여 회유하였습니다. 그런데 대마도의 왜인이 아직도 울릉도에 와서
살고 싶다고 또 서계 를 보내었으니 놀랍습니다. 본도가 우리나라에 소속 되었음은 여지승람(輿地勝覽)
에 기록되어 있는데, 방물을 거두기도 하고 도민을 조사 정리하기도 한 전고(典故) 가 명확히 있습니다.”
“ 이 일을 회답하는 서계 가운데 갖추어 기재하고 의리에 의거하여 꾸짖어서 간사하고 교활한 꾀를 막는
것이 편리하고 유익합니다. 경상 감사와 부산의 변신에게 공문을 보내 이번에 온 배에 유시하고 이
글을 가지고 속히 돌아가 도주에게 보고하여 조정의 금약을 준수하도록 하소서 라 하여 그대로 하였다.”
1614년 조선 조정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막부와 울릉도에 왜인의 왕래를 금지 하기로 하는 외교문서
를 주고받은 바 있으니, 이런 상황에서 대마도주가 울릉도 이주를 청원 한 것이라 조선은 당연히 이를
허락하지 않았으며, 1881년 이규원의 순시선 이 불법 거주한 왜인 120명을 적발 하자 고종은 470년
간 계속된 공도 정책을 포기하고 1883년 에 전라도와 경상도등 조선인들을 울릉도에 이주 시킨 것 입니다.
오징어를 말리고 있는 해안가 덕장을 지나 5분여를 걸으니 태하항목관광 모노레일 건물이 보이기로 들어
가서 4천원에 표를 사서 조금 기다렸다가 15명 가량 사람이 모이니 드디어 모노레일 이 출발합니다.
20명 정원인 모노레일은 등판 각도 39도 절벽길 로 304미터 산을 6분 에 걸쳐 오르는데
경사가 아주 급합니다만...... 모노레일 내부는 자동수평 유지 장치 때문에
안정적이라 그 경사를 느낄수 없는게 신기한데 걸어서 오르자면 40분이 걸린다고 합니다.
울릉도 비경을 한 눈에 감상할수 있는 관광 모노레일 덕분에 태하향목의 정상 을 편안하게 감상할수 있는데
304m 의 레일에 20인승 카2대 가 동시 운행하며 분당 50m 의 속도로 산정까지는 6분 정도가 소요됩니다.
산정에서 하차해서 도보로 이동하여야 하는 울릉도항로표지관리소(태하등대) 까지는 약
500m 정도의 거리로 아주 완만한 경사린지라 10분~15분 정도 걸어가면 됩니다.
이 산길은 동백나무, 후박나무 등이 빼곡히 자리잡고 있으므로 시원한 그늘 을 만들어 주고
있고 굽이굽이 돌아가는 산길은 숲이 우거지고 또 호젓해서 걷기에는 안성 맞춤 입니다.
또한 무리가 없는 10여분의 트래킹 은 상쾌한 기분을 만들어 주어 눈앞에 펼쳐질 자연풍광
이 더 없이 아름다울 수 밖에 없도록...... 사전 분위기 연출을 멋지게 해주고 있습니다.
여름철이 지나고 본격적인 오징어 조업철 이 다가오면 야간의 웅포해안과 천연기념물 울릉 대풍감 향나무
자생지에 펼쳐지는 오징어잡이 어선들의 어화(漁火) 풍경 또한 놓칠수 없는 울릉도 밤 볼거리라고 합니다
나무 데크를 올라 드디어 정식 이름으로는 울릉도 항로표지 관리소 라고 하는
향목전망대 에 도착하니 여기 벌어지는 풍광 에 모두들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울릉도 등대 또는 태하 등대 는 높이 7.6 미터로 1958년 4월에
점등해 동해를 오가는 배들에게 항로를 비춰준다고 합니다.
여기 전망대에서 오른쪽으로 내려다 보면 절벽 아래 해변에는 현포항, 송곳봉에 공암 (코끼리 바위) 이
보이는데 공암 은 현포항에서 제대로 보이니 코끼리가 바닷물을 마시고 있는 형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전망대에서 왼쪽을 보면 우리나라 10대 비경 에 속한다는 대풍감 이니 고종 19년
1882년에 울릉도 개척령이 발표되고..... 다음해인 1883년 전라도와 경상도 에서
16가구 54명 이 최초로 울릉도로 이주해 오니 처음엔 여기 태하마을 에 정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전에 조선 태종과 세종 이래 공도령 이 내려 조선인들이 울릉도에 거주할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고기잡으러 어선들이 오는 가운데 전라도 어부들이 울릉도에 배를 만들기 좋은 나무 에 착안 합니다.
물론 이는 불법 이지만 전라도 어부들은 헌 배를 몰고 와서 울릉도에서 나무를 찍어 새
배 를 만들고는 돛을 높이 달고 바위구멍에 밧줄 을 메어 놓고는 본토 쪽으로
바람이 불기를 기다렸다가 마침 바람이 불면 닻줄을 끊으면 쏜살 같이 달렸다고 합니다.
또 여기 태하는 향나무 로 유명하니 예전에는 본토와는 다른 향나무가 지천이었다는데 큰
불이나서 타버리고 일제강점기에 남벌하니 지금은 절벽에만 남았다는데, 불이 났을때
강원도와 경북 북부 해안에서 바람에 향나무 냄새 를 맡고 큰 불이 난줄 알았다고 합니다.
또 저 향나무는 증거물 이니 조선은 왜구 때문에 울릉도를 지킬수가 없으니 조선 태종과 세종때 주민들을
육지로 옮기고는 공도령 을 선포했지만 영토를 포기한건 아니니.... 3년마다 한번씩 순시선 을 보냅니다.
순시선은 울릉도에 상륙해 불법 거주하고 있는 조선인들을 잡아와 태형 으로 다스렸으며
섬에 거주하며 어업과 벌목에 종사하던 일본인 들은 강제로 내쫐았는데.... 그때
울릉도에 다녀왔다는 증거물에 삼척부사에게 제시한게 황토 흙과 향나무 였다고 합니다.
조선 고종 때인 1881년에 순시선을 보냈더니 공도령으로 빈 섬인 울릉도에 조선인 60인과
일본인 120인이 거주 하는지라 모두 쫓아내고는.... 1883년에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들
16호를 이주시키니 현재 울릉도 주민들의 조상 으로 처음 자리를 잡은게 태하 라고 합니다.
아름다운 섬 해안을 보면서 생각하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야 "동해바다 독도 는 당연히
우리땅" 이건만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 로 가면 우리로서는 어찌될지 알수가 없는데...
몇년 전에 미국은 천안함과 연평도 피격 사건후 가진 한미연합 군사훈련 에서도 훈련장소 를
미군은 "동해" 가 아닌 "일본해" 로 명시해 발표한 바가 있으니.... 이것이 현실 인 것이지요!
1951년 미일간의 샌프란시스코 평화협정문 에서 조선에 반환할 영토를 적을때 1947년 초안
에는 독도가 있었다지만(?) 결국 협정문에서 빠져 New Japan 영토 로 편입됩니다.
이에 대해 "딘 러스크" 국무부 극동지역 보좌관은 독도가 1905년 이후로 한번도
한국 영토로 천명된 적이 없고, 일본의 주장이 오래 되었고 분명해서 라고 말했던 것이지요?
독도는 일본주둔 미공군 폭격 훈련으로 한국 어부들이 많이 죽자 1952년 2월 폭격훈련장에서 해제된
후 일본 어선의 침범이 잦아 8월에는 일본인이 상륙해 다케시마 라는 팻말을 세우기도 합니다.
이에 특무상사로 제대한 울릉도 주민인 홍순칠 이 1953년 4월에 33명의 대원 으로 독도
의용대를 조직해 7월과 11월에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에 기관총을 발사해 16명을 사상케 합니다.
이후 1956년 12월 한국 경찰 이 그 임무를 인계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지요. 위키리크스에 따르면
주일 미대사 "토머스 시퍼" 는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 야치 를 만나..... "일본은 국제법에 맞게
행동하지만 한국은 비이성적으로 행동하고 있으니 정신나간 짓 을 할까 우려된다" 고 말했다고 합니다.
외교부가 전세계 지도등 3,380건을 조사한 결과 독도로 표기된 것은 1.5%(49건) 에 불과하고
분쟁 지역 2.8%, 다케시마 1.4%, 리앙쿠르등 1.6% 미표기가 92.7% 라고 하는데.....
다른 조사에는 700여개 지도 중 섬이 표시된 것은 20% 정도로 독도 단독표기는 거의 없습니다.
다른 조사에서 대개는 리앙쿠르 로 그외 다케시마 단독 표기나 공동표기가 10여건 씩이라....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호는 1847년 1월 27일 세계 최초(?)로 독도를 발견 했다며 리앙쿠르 암초 로
발표했는데 물이 없고 사람 이 살지 않으니 섬(Island) 이 아니라 암초 Rocks) 로 표기한 것입니다?
구글 지도 애플리케이션 구글맵스에서 독도 는 '리앙쿠르 암초' (Liancourt Rocks) 로 표기되는데
전 세계 네티즌들의 제보를 취합한 결과 26개국 구글맵스에서는 독도가 모두 리앙쿠르
암초 로 검색되며 독도로 표기된 경우는 한국에서 검색 했을 때 뿐이고 일본에서는 다케시마 입니다.
이런 저런 옛일을 회상하다가 시간이 오래 되었으니 다시 상부 정류소 에 도착하니
무더운 날씨인지라 선풍기 2대 가 돌아가고 있으니 울릉도군에서
설치한건지...... 아님 모노레일 회사에서 설치한 것인지 아무튼 고마움 을 느낍니다.
다시 모노레일을 타고 내려와 이번엔 마을 안길을 걸어서 한바퀴 돌며 구경하는데 골목길은 좁은데
그래도 1902년 까지는 도동이 아니라 삼척 맞은편인 여기 태하가 울릉도의 중심 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을에는 울릉도에는 유일하게 벽화 그림이 그려져 있으니 하나하나 재미있게 구경
하고 정류소로 돌아오니, 큰 나무 밑에 고양이 가 심심한지 하품을 하는 모습을 봅니다?
첫댓글 울릉도등대를 태하등대라고도 하는군요.울릉도에서 모노레일이 잇다니 놀랍네요.
전망대에 올라 절벽 아래에 펼쳐진
바다를 보니.... 가히 환상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