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발과 온천
2015. 01. 19(월요일)
☞ 난조인 와불 - 다자이후 텐만궁 - 케널시티- 면세점쇼핑- 구마모토 세키아 호텔
새벽6시 날이 밝자 불이나케 노천탕으로 내려갔다. 신선이 노니는 히노끼탕 속에 몸도 마음도 푹~ 절궈야 한다. “손상! 간밤에 거시기 만들었남?” 성배(?)에는 신선주를 담아야 했지만 아쉽게도 짜릿한 독주를 부었으니 몸을 부릴만한 여유가 있었을까. 밤새 찌들은 몸을 담그니 피부로 드며드는 뜨거운 열이 가슴까지 전해진다. 몸은 뜨거운 겨울에 있고 가슴은 시원한 여름이 녹아온다. ‘후끈 달아 오르는 구마이’
싸한 새벽공기가 탕밖에 드러난 얼굴을 스쳐간다. 지난밤 증기와 불그스레한 전구 빛에 감춰져 가시거리 짧은 밤의 안온한 느낌과는 또 다른 속살이 드러난 풍경이었다. 알싸한 새벽바람이 불어 겨울 낙엽이 흔들거리고, 경사진 산이 굽어보는 노천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한 폭의 산수화 그림은 자연 그대로 숨김이 없다. 비가 살짝 뿌린 산야, 먼 산엔 가물거리는 새벽안개가 걸쳐있고, 가까운 산림에는 삼나무 숲이 울울창창하다. 탕 주변에는 애써 가꾸지 않은 사철 푸른 나무, 장미 몇송이, 키 작은 동백꽃이 붉게 피어있다. 함께 어울려 공존, 자생하는 자연그대로의 모습이 정겹다.
‘온크리’ 료칸의 일박은 유난히 짧았다. 며칠여정을 이곳에 묶어두고 올곧은 삼나무(측백나무?) 숲의 정기(氣)를 받고, 낮잠 한 움큼 때리고, 배고프면 벤또 까묵고, 다시 노천탕 수증기속 선녀와 노니는 휴양 프로그램으로 눌러 앉으면 좋지 않을까? 현 패밀리 여인들은 충분히 쉴 자격이 철철 넘쳐흐르나이다.
새벽부터 좋은 물의 효험을 얼마나 보려고 푹 담갔는지, 조식 시간도 제대로 못 지킨 현 패밀리 일행 용갈이 모친은 몸이 유황성분에 불었는지 ‘마이 두꺼버’ 졌더라. 재돌이 모친은 온천수를 박차고 나온 물 찬 제비, 도자기 피부를 만들었던데. 우쨌거나 료칸의 조반도 맛나게 먹고 아침시간은 후딱 흘러갔다. 다시 호송버스에 오르기 전 잊지 못할 추억을 한 장의 그림으로 남겼다.
데자이부 천만궁, 캐널시티 관광을 위한 호송버스에서 가이드 언니의 본격적인 연설이 시작되었다. 아베노믹스, 정치, 경제로부터 차장에 지나는 풍경해설, 문화, 빠질 수 없는 쇼핑정보까지 이어지는 그녀의 입, 말은 청산유수로 이어졌다. 귀에 쟁쟁한 말이 머릿속의 감상과 정서를 반감시키는 것을 제외하곤 제법 심심히 않은 잇 점도 있긴 하다. 깃발여행은 깃발다운 장점이 이런 것이였지 싶다. 죽자 살자 밤새도록 공부해도 다음날 생소한 목적지를 찾아다니며 시행착오를 겪는 외로운 배낭하고는 또 다른 차원이었다.
그래 별건가. 무념하게 모세의 지팡이에 걸린 불 뱀만 보고 나아가면 되지. 흘러가는 시간에 휩쓸려 표류하는 인생여정이니 남으면 남는 대로 아쉬우면 거기에 마침표 찍고 또 다음 기다리면 되지뭐. 현 패밀리들! 여행지 첫날밤에 뭔 사연이 길었던지 닭 병 걸린 모양으로 졸다, 듣다, 보다를 반복하며 남장원(난조인)에 도착했다. 편안하게 머리를 괴고 누워있는 와불상은 라오스 붓다공원에서 본 듯한 느낌이었으니, 발바닥인가 배꼽인가를 만지면 득남한다는데 천개(天開)가 닫혀버린 우리 거시기는 만져볼 생각도 없이 시큰둥했다.
‘가방 크다고 공부 잘하남?’
‘학문의 신’을 모셨다는 다자이후 텐만궁은 제법 일본인들이 많았다. 그림에서 보아온 일본신사를 보는듯한 느낌이었다. 화려하지 않지만 잘 보존된 건축물, 정원과 고목, 나무에 기생하는 식물들이 함께 어울려 편안한 고궁을 산책하는 기분치고 좋았다. 입구를 메운 상점들은 오물딱 조물딱 볼거리, 먹거리를 제공하며 관광객을 호객하니 눈이 제법 호강을 할 수 있었고. 이면골목도 관찰하고, 가두의자에 낯선 나라의 거리, 인생들을 바라기하며 향이 진한 커피도 마셔 보았다.
캐널시티. ‘깃발’에서 빠질 수 없는 코스가 쇼핑타임이라고 했던가. 손상이나 꺼벙이나 그리 달갑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깃발특성이니 별 수 있을까. 아이쇼핑이라도 해 보기로 했다. 혹시 길을 잃을까 걱정이 된 현 패밀리들 헤쳐모일 장소를 정(사진)하고 서울댁 꽁무니를 따라 나섰다. 거대한 복합 쇼핑몰은 운하라고 하는데, 그러기엔 조금 어색하다. 강물을 건물 내로 끌어 들여 운치를 더한 착시(?)효과가 아닌가 싶다.
건물의 규모에 비해 쇼핑 인파는 붐비는 편은 아니었다. 그것도 대부분이 코너마다 한글발음이 들렸다. 도시산책에 미숙한 나. 얼마지 않아 일행의 꽁무니를 놓치고 말았다. 주어진 시간까지 여기저기 눈요기를 하고, 느긋하게 정해진 약속장소를 향해 2층을 향했으나 갑자기 ‘비상출구’는 이사갔다. 두 세바퀴 돌아도 흔적은 없었다. 호송버스 주차장은 거기가 거기 같고 도무지 맴도는 인생이 되어버렸다. 말 안 통하는 입가지고 배낭 짐을 적잖게 쌓던 내가 무슨 낭패란 말인가. 종국은 기다리던 대전댁이 픽업을 나온 덕에 상황은 종료되었다. 호송버스에서 기다리던 일행들에게 민폐를 끼치며 ‘쪽’이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서... ” 궁색한 변명이 먹혔을까. ‘나이 탓’인가?
구마모토현 산중에 위치한 세키아 호텔에 도착이 늦어진 것이 내 탓이라나! 보고 듣고 깃발을 따라다닌 것도 꽤나 소화력 좋았다. 저녁 식사는 뷔페에 무제한 ‘오삭게’ 제공 이라고 했다. 밥통 작은 현 패밀리들 식사와 함께 귀여운 호리병 정종, 칵케일 몇 잔에 풀꺽이고, 이바구로 연회장을 제일 끝까지 지키고 말았다.
곱창도 채웠다. 밤은 잦고 끓는 물은 땅속에서 펄펄 올라오니 별미의 목간시간은 반갑지 아니 한가. 목간 복장을 걸치고 온천장 향하던 손상과 꺼벙이! 호송버스 이동중 비몽사몽간에 흘려들었던 가이드 언니의 혼탕(?)이야기를 반추해 그 장소를 추적하기로 했으니...호텔내부, 외부를 순찰했으나 결국 허사에 그치고 말았다. 다음날 코스에 포함되어 있으니 체험자는 접수받는다는데, 묘한 문화 충돌의 현장을 목도하고 고정관념의 틀을 깨부술 맴의 준비, 정서는 고양高揚되어 있었던가.
노천탕에 누워 바라보는 하늘의 달, 별들은 제자리에 있었다. 겨울 공기에 피어오르는 증기 속에 너울거리는 변곡점은 내 시야의 노안 탓! 천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몸이 휘어질듯 부드러운 질감이 몸을 통해 마음으로 밀려드는 노천탕의 밤, 먼 하늘의 이야기가 지구의 땅속으로 스며들고 다시 솟구쳐 맨 몸의 피부로 순환되는 모양이더라. 현패밀리 두 여사님의 피부는 오늘도 도자기 피부가 되어 방으로 배달될까 모르겠다.
“곤 니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