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민사 입구의 안내판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무민사(武愍祠)
경남 남해군 미조면 미조라 539-3번지
비지정 문화재
고려말의 명장 최영(崔瑩, 1317~1389) 장군을 모신 사당이다.
최영장해군은 왜구체 복사 (倭寇體覆使) 및 해사도통(海師都統)으로서 서남 해안에 침입하는 왜구를 크게
무찔렀던 장군으로서 위화도회군 이후 이성계의 역성혁명을 반대했던 고려의 충신이다.
조선조 성종 때에 이르러 장군의 호국 전공과 충의심을 현양 하기 위해 이곳에 사당을
마련한 것이 이 무민사의 시초이다.
1954년 최영장군 유적보존회를 결성하고 이 사당을 다시 세우는 한편 1978년에 이곳을 정화하였다.
우리 미조 미조면 미조리에 있는 무민사 (武愍祠)란 이름은 1397년 (태조 6) 태조가
고려말 충신 최영장군의 시호를 무민(武愍)이라 내리면서 붙어진 이름이다.
1595년 미조항 첨사 성윤문의 꿈에 한 노장이 나타나 장군의 진영(眞影)이 해안에 있으니 잘 모시라고 했다.
첨사는 잠을 깬 후 봉장군(수문장)을 보내 찾아보게 하였다.
『남해 군 지』에는 무민사에 대한 구전(口傳)을 기록했는데 내용은 아래와 같다.
『어느 날 남해도 첨사가 잠자리에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늙은 장사(노인)가 나타나서 "최영장군의 영정과 칼이 바닷가(지금의 미조 앞바다)에
있으니 찾아서 잘 모셔 놓아라,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첨사는 곧 잠에서 깨어 수문장인 봉장군에게 시켜 찾아오라 하였다.
봉장군이 바닷가에 가보니 나무로 만든 궤짝이 놓여 있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최영장군의 영정과 칼이 들어 있었다 한다.
첨사는 이것을 짚으로 싸서 모셔다 놓았는데 어느 날 화재가 일어나니
영정이 날아서 지금 의 장군당 자리에 놓였다.
여기에 첨사는 조그만 사당을 짓고 칼과 영정을 모셔 놓았다.
그 후부터 사람들은 이 무민사에 와서 최영장군에 대해 제사를 지내게 되었으며 아이 못 낳는 부부가 무민사에
와서 엎드려 절하면 아이를 낳게 되고 고기잡이배가 출항할 때는 언제나 이 무민사에 와서 제사를 지내고 배가 출항하는 풍습이 있게 되었다. 』한다.
그라하여 미조면 현충회는 매년 4월 13일 무민사 최영장군 사당에서 석 제례를 올리고 있다.
올해도 2024년 4월 13일 오전 11시 제례행사를 진행하였다.
행사를 주관하신 조 정열현충회 회장님과 제관님들 그리고 행사 진행 관계자분들께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진심으로 노고를 취하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바쁘신 중에도 불구하고 참석하신 내빈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남해군컴퓨터봉사회 미조면분회 카페에 최영장군 석 제례 행사 진행 사항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올려 기록에
남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리고 남해군컴퓨터봉사회 회원 여러분과 미조면 분회컴퓨터봉사회 회원 여러분
그리고 미조면 면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항상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2024년 4월 19일
남해군컴퓨터봉사회 미조면분화 분회장 구 현준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