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본문내용
|
다음검색
맺음말
이제 나의 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내가 신과의 대화에 이르기까지 나에게 일어났던 몇 가지 일들과 내 삶의 흐름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신과 나눈 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것이 어쩌면 이 책을 이해하는 데 약간의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쓰기 전까지 어떤 종교도 믿지 않았고 종교인들처럼 신을 인정하지도 않았다. 나는 지극히 논리적이고 따지기 좋아하는 인간이어서 순수하게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믿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성경에서처럼 신이 우리들 인간의 삶에 개입한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고, 불공평한 일이라고까지 생각해왔다. 그런데 어떻게 신과 대화하게 됐는지 잘 모를 일이다. 나는 신에 대한 믿음도 없었고 남을 간절히 사랑해 본 일도 없었다. 나에게 어떤 운명의 흐름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신은 내 안에 없었다.
신과 대화하기 전까지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나의 삶은 내내 고독했다. 내가 기억하는 맨 처음의 그 순간을 포함해서 나는 늘 고독했고 친구가 별로 없었다. 나는 거의 외톨이였고 혼자서 남 모르는 시간을 보내곤 했다. 나는 늘 사람들을 두려워해서 또래들과도 잘 어울려 놀지도 못했다. 이런 나의 태도는 나를 외면적인 인간관계보다는 내면세계에 귀 기울이도록 했고, 혼자 있는 대신 자연을 즐기는 방법을 배워도록 했다. 나는 사람보다 자연을 좋아했다. 나는 나무와 풀들을 좋아했고 이따금 그들에게 이야기할 수도 있었다. 나는 그들과 이야기하는 버릇 때문에 어느 샌가 나 자신에게 말을 거는 방법을 배울 수도 있었다. 특히 해질 무렵의 모든 것들을 좋아했다. 해가 지고 고요해진 바람과 이야기하다보면 어느새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어둠은 모든 인간을 지워내서 내가 친구가 없다는 것마저 지워주었다. 나는 별들과 친해질 수도 있었다.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나는 항상 바른생활의 정답을 선택하고,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다. 대학생으로서 나는 시대의 현실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긴 했지만 주어진 평범한 길에서 벗어날 용기는 없었다. 나는 아버지의 희망이었고 꿈이었기 때문이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까지 나는 평범한 학자가 되기를 꿈꾸고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학기에 일이 터졌다. 나는 그때 몇 살 연상의 여자를 사귀었고 결혼할 생각을 굳히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그 여자와의 결혼에 반대한 것이었다. 나는 내 선택이 잘못됐더라도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생각은 달랐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아버지의 뜻에 정면으로 반대한 최초의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이전까지의 내 삶이 아버지의 뜻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삶의 연속임을 알고 있었다. 나는 내 자신을 찾고 싶었고, 결혼에 대해서만큼은 내 자신의 선택을 고집했다. 내가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기로 했을 때 당신은 나를 저버리셨다. 나는 그때 당신의 사랑이 조건이 붙어 있는 사랑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사랑했던 그녀로부터도 버림받았다. 그것은 집안의 분위기를 이해시키려던 말들을 그녀가 오해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두 사람의 사랑이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건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사랑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이 두 분에게 감사한다. 그때 내가 그분들로부터 버림받지 않았다면 내가 신과 대화하는 행운을 얻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사건은 내 삶을 새로운 길로 이끌어가고 말았다. 나는 더 이상 안주할 가정을 꿈꾸지 않았고 대학원도 포기했다. 그리고 이전에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곳에서 새로운 진로를 찾았다. 나는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몸이 나빠져 단전호흡을 시작했다. 몇 달 동안 도장에 나가면서 내 몸은 많이 좋아졌고 세상을 위해 일하겠다는 그 곳의 취지도 괜찮아 보였다. 나는 그 도장에서 나의 새로운 인생을 꿈꾸기로 했다. 나는 그 도장의 일꾼이 되기로 했고 덤으로 수행자가 되었다. 그것은 내 삶에서 새로운 흐름의 시작이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나는 몇 달 동안 훈련을 받고 그 도장에서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나는 건강과 기, 정신세계를 다루는 잡지의 기자로 일하게 되었다. 그것은 이전에 내가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처음에 나는 기사를 쓰는 일들이 매우 힘들었다. 그런 글에 익숙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사람들을 만나기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내가 쓴 기사는 절반 이상 수정되기 일쑤였고, 그건 내 자존심이 견디기 힘든 상처를 주곤 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그 일에 적응해갈 수 있었다. 나의 신분은 기자인 동시에 수행자였다. 나는 수행자로서의 규칙을 따라야 했고 단체 생활에도 적응해야 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집단을 위해 봉사하기보다는 이기적이었고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용력도 부족했다. 내 몸은 여전히 깨지기 쉬운 유리 같았고 그 때문에 나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몇 가지 자기 절제 방식과 이기적인 규칙을 갖고 있었다. 나는 항상 갑작스럽게 무엇인가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기자로서, 수행자로서 나는 항상 단단한 틀을 가지고 나 자신을 고집하곤 했다. 그것은 나에게나 동료들에게나 모두 힘든 일이었고, 그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 적지 않은 갈등을 겪어야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자로서의 경험은 결과적으로 나를 크게 변화시켰다. 나는 1년 가까이 특집기사들을 담당하면서 초능력, 대안의학, 전생과 사후의 세계, 풍수, 꿈, 운명, 뇌, 교육, 기(氣) 등과 같은 주제들을 다룰 수 있었다. 그것들은 인간의 정신세계와 물질세계를 망라하는 것들이었고 나는 인간을 전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또한 많은 종교의 세계와 깨달음을 얻은 현자들의 세계도 접할 수 있었다. 나는 종교와 세계관을 초월하여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의 세계를 만날 수 있었다. 또한 2년 가까이 세계관이 다른 여러 수행 단체들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고 그들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었다. 그 속에서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객관적인 눈을 갖게 되었고 인간 관계를 맺는 방식을 터득하기도 했다. 나는 인류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어떤 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나의 미래가 될, 나의 아이들과 그 후손들이 맞이할 어떤 재앙들이 눈앞에 떠오르는 것 같았다. 노스트라다무스나 요한 계시록의 예언들이 문제가 아니었다. 현실의 흐름이 그대로 21세기로 이어진다면 인류는 머지않아 핵과 환경 오염, 인간관계의 파탄으로 멸망해버릴 것 같았다. 적어도 더 나아질 수는 없었다. 이 흐름을 바꿀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무엇인가 새로운 삶의 방식이 필요했다. 사람들의 현실을 지배하는 물질 욕망과 가치 방식 대신에, 사람들의 삶을 뿌리부터 바꿀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그것은 현실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했고, 사람들이 따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하고 매력적인 것이어야야 했다. 나는 과학과 종교 사이에 어떤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정신과 물질을 통일한 완전한 과학을 갖게 된다면, 인류는 지구와 자신을 파괴하는 삶의 방식 대신에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할 지 모른다고. 인간이 삶을 바르게 바라보고 살아가려면 물질과학을 초월해서 물질과 영혼을 공평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과학이 필요했다. 그런 과학의 힘이 아니라면 현실의 흐름은 바뀔 것 같지 않았다. 종교에서 말하는 신들은 너무 거만하고 너무 게을러서 인류를 구원할 생각이 없어 보였고, 과학은 물질에 푹 빠져서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돌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나는 이 우주와 인간의 현실이 근원에서는 하나의 전체로 통일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 통일성을 과학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완전한 과학이라고 생각했고, 현실의 흐름을 바꿀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과학자들처럼 오랜 연구도 필요했지만 진리를 구하는 사람들처럼 깨달음을 얻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과학을 얻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완전한 과학을 갖게 될 지는 장담할 수 없었지만 어쩌면 새로운 희망을 만드는데 약간의 디딤돌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어쩌면 그때가 내가 신을 선택한 최초의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전에 신이 있다면 그는 인격신이라기보다는 이 우주를 움직이는 진리이거나 이 우주 그 자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신이라면 인간의 현실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고, 신에 대해 기도하거나 특별한 신앙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내가 인간세계를 지배하는, 완전한 과학을 얻고 싶어했을 때 나는 ‘하나의 전체, 즉 신으로부터 모든 것이 비롯되었다’는 생각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학은 신의 일부였고, 종교도 신의 일부였다. 내 스승의 세계 역시 그 일부였고, 그 때문에 현실적인 많은 한계를 안고 있었다. 이제 문제는 하나의 전체인 신의 세계와 인간의 현실을 잇는 사다리를 복원하는 일이었다. 나에게 과학과 종교는 물질과 정신이라는 길이 다를 뿐 근본적으로 다른 것 같지 않았다. 본래 이 우주가 하나의 근원으로부터 나왔다면 과학과 종교, 물질과학과 정신과학은 궁극적으로 하나로 통일되어 있을 것이었다. 과학과 종교가 신의 세계에서 통일되어 있다면 그것을 드러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건 물질세계와 정신세계를 통일하고 진리라는 궁극의 언어로, 하나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자 하는 일이었다. 과학이 물질세계를 하나의 언어로 말할 수 없는 현실에서 이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고 무모한 일이었다. 하지만 과학이 넘을 수 없는 벽은 어쩌면 과학자들의 탐구가 아니라 깨달음을 통해 넘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과학자들은 이 우주의 모든 힘들이 하나의 힘으로 통일되었다는 통일장이론을 추구하고 있었다. 그건 물질의 언어로 물질세계를 통일하려는 노력이었다. 다른 한편에서 종교인들은 저마다 진리의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었고, 그 궁극에는 이 우주와 인간 본성의 근원이 되는, 무한한 사랑을 가진 신이 있었다. 수많은 종교와 많은 깨달음의 방편들이 있었지만 그것들은 모두 궁극의 신으로 통하는 계단을 오르기 위한 것이었다. 나는 과학자들이 우주를 움직이는 근본적인 힘을 찾으려는 노력이나 종교인이 신의 세계를 체험하고자 하는 노력, 수행자들의 깨달음이 궁극적으로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어쩌면 과학자들이 실패한 초통일이론을 내가 만들어낼 수 있을 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된다면 인류는 새로운 과학에 주목할 지도 몰랐다. 나는 과학과 종교가 외면하고 있는 기에 대해서도 탐구했다. 기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에너지인데, 그것을 개발한 사람들 중에는 투시나 치병, 텔레파시나 공간이동과 같은 초능력을 갖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건 과학과 종교가 아직 완전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어쩌면 기가 물질의 근원이 아닌가 생각했다. 어쨋거나 물질과 정신, 그리고 그들과 기의 관계를 밝힐 수 있다면 하나의 완전한 과학이 만들어질 지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을 관찰하기 시작했고, 그 전체적인 질서를 찾기 시작했다. 내가 한창 이런 생각들을 정리해가고 있을 때 나는 출판사에서 우연치 않게 한 권의 책을 쓰게 되었다. 그 이전에 단 한 권의 책도 써 본 적이 없었지만 2년 동안 기사를 쓴 경험과 어떤 확신이 나를 믿어준 때문이었다. 그것은 『운동을 하면 운이 좋아진다』는 제목으로, 운명론과 운동을 하나의 주제로 연결한 것이었다. 그런 중에도 나는 꾸준히 완전한 과학에 이를 수 있는 길을 탐구해갔다. 그 책을 완성하고 나서 나에게 새로운 시간이 왔음을 알게 되었다. 내 안에서 이따금씩 스승을 떠나서 원하던 일을 할 때가 되었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완전한 과학을 혼자서 완성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나를 캄캄한 동굴 속으로 난 길로 이끌어가는 듯 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점점 더 강해져갔고, 나는 그것을 외면할 수 없었다. 나는 거기서 스승을 떠난다면 다시는 스승에게 돌아가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나는 스승을 따라가는 길과 알 수 없는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가는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의 선택이었다. 스승을 따라가는 길은 보다 안전했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은 황당해서 장차 스승을 욕먹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한 달만에 나는 내 미래가 어떻게 되든 결코 후회하지 않겠다는 내면의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시간을 선택했다. 확신은 없었다. 내 앞에 불가능에 가깝기는 하지만 약간의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그 가능성만으로 충분했다. 나는 내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나를 맡기기로 했다. 나는 이제 나를 어디로 흘려보낼지 모를, 미지의 강물에 내 영혼을 맡긴 것이었다. 그것은 내 삶에서 두 번째의 모험이었다. 나는 3년 동안의 생활을 청산하고 혼자서 책을 쓰기로 했다. 그 길로 나는 고향에 돌아가서 내가 생각하던 것에 『기과학의 시대』라는 제목을 붙이고 글을 써 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새로운 천년이 기(氣)라는 새로운 원리가 지배하는 시대가 될 것임을 말하려는 것이었다. 과학과 종교는 기라는 새로운 언어로 통일될 수 있고, 기는 신의 세계를 전체적으로 통찰할 수 있음을 보이고자 했던 것이다. 나는 종교와 과학을 기를 통해 하나로 통일하지 않는 한 인류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몇 달 후에 나는 스승이 머무르던 미국 세도나에 갔다. 출판사를 그만둔 다음에 나는 스승과 만났고, 스승은 그 자리에서 나의 후견인이 되겠다고 약속하면서 당신이 머무르던 세도나에 한 달 정도 와 있으라고 초청하신 것이었다. 나는 거기서 내가 쓸 주제와 관련된 자료들을 조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애초의 희망과는 달리 나는 세도나에서 스승을 만나지도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세도나에 도착한 다음 나는 스승이 제시한 조건을 수용하지 않으면 면담 불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것은 내가 스승의 단체 한 곳에 소속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나의 생각과 자유를 속박하리라는 것을 알았고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스승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원하고 있었다. 그것은 내 내면의 명령이었고 나는 그것을 따라야 했다. 나는 스승의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스승은 나에게 일주일의 시간을 주었다. 나는 그 일주일 동안 나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처음부터 되돌아보았다. 내가 왜 그 글을 쓰고자 하는지, 내가 왜 그렇게 무모한 일에 뛰어들려고 했는지, 내 가장 밑바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고자 노력했다. 나는 거기서 내가 신을 만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뭐라 말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그때 같이 있던 친구에게 나는 분명히 내가 신과 만나고 있음을 말할 수 있었다. 신은 내 안에서 나에게 길을 인도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뜻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신에게 말할 수 있었다. ‘내가 이 길을 가다가 어떻게 되더라도 후회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미국까지 나를 불러서 나의 선택을 묻는 스승을 원망하지 않았다. 이제 나에게는 몇 십 만원의 생활비와 컴퓨터 한 대가 전부일 뿐이었지만 그것으로 나는 충분했다. 그때 나는 내가 스승이 아니라 신을 선택했음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온 나는 곧 봉천(鳳天)이라는, 한 친구를 찾아갔다. 나는 이전에 그를 서너 번 만난 적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내가 책 쓸 곳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부탁도 하기 전에 나를 받아주기로 했다. 그는 도를 공부하는 사람이어서 상대방의 현실과 생각, 원하는 바를 정확히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나이는 나보다 스무 살 가까이 많았고, 수행도 그 나이만큼 더 했고, 세상의 이치에 거의 막힘이 없는 사람이었다. 말이 친구이지 그는 내가 스승으로 모셔야 했을 사람이었다. 덕분에 나는 원하는 글을 걱정없이 써 갈 수 있었다. 그 집에서 나는 이따금씩 그의 제자들이 기회로를 그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제자들은 그 집에 며칠이나 몇 달씩 머물러서 가르침을 받거나 잠깐잠깐 오가면서 그동안 공부한 바를 지도받곤 했다. 그는 기회로를 통해 삶과 우주의 이치에 대해 가르치고 있었다. 그에게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은 간단한 원이나 도형 같은 기회로를 주로 그렸다. 그것은 어찌 보면 애들 장난 같기도 했다. 오래된 사람들은 매우 정교한 부처나 만다라를 그렸고, 문장을 그리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이 어떤 것이든 그 친구의 손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 입에서 심상치 않은 우주 이치가 나왔고 삶의 이치가 나왔다.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내게서는 도대체 어떤 것들이 그려질 지 자못 궁금하기만 했다. 그래서 기회로를 해보라는 그의 권유를 선뜻 받아들였다. 나는 곁눈질로 보던 대로 기회로를 그려가기 시작했다. 첫 번째 기회로를 명령하는 순간 내 손이 기운에 이끌려 움직여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종이 위를 이리저리 불규칙하게 움직이면서 원도 그리다가 누운 8자 모양도 그리다가 큰 원을 그려갔는데 거의 1시간을 그렸다. 그리고 그 다음의 기회로는 원이 되더니 몇 개 지나서는 가운데 원을 중심으로 사방에 원이 생기고 점점 복잡해져서 네모가 되기도 했다. 친구는 내가 그린 기회로들을 보더니 내가 살아온 방식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이전까지 그에게 내 과거를 말해준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기회로를 통해서 그것을 그린 나의 정보를 읽을 수 있었다. 그의 설명을 통해서 나는 내 자신에 대해 새롭게 생각할 수 있었다. 나는 조금씩 뭔가 알듯하긴 했지만 친구처럼 명쾌하게 그것을 해석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그것은 나에게 알맞은 장난거리였다. 나는 글을 쓰는 중간 중간에 몇 십장씩 기회로를 그려보곤 했다. 원도 그려지고, 도형도 그려지고 집도 그려졌다. 때로는 문자가 나와서 변해가기도 했고, 문장이 나와서 지구의 미래를 예언하는 듯한 글이 되기도 했다. 때로는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좀 알 것 같은 느낌이 오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거의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기회로를 그려 가는 동안 나는 내 몸에 어떤 에너지가 들어오는 듯한 느낌을 자주 받았다. 그것은 나에게 무엇인가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따금씩 친구에게 기회로를 봐 달라고 부탁했고 도가 높은 그 친구의 설명은 내가 거의 상상하지 못한 것일 때가 많았다. 내가 그 친구의 말을 알아듣는 것은 그와 같이 앉아있을 때뿐이었다. 나는 여전히 새로운 기회로들이 나에게 무엇을 말하는 지 알아들을 수 없었고 그것은 나에게 일종의 벽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해 10월말쯤 일주일 정도의 여행을 다녀와서 나는 새로운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마음을 비우지 않고 나를 고집하고 있으면 내 친구로부터 아무 것도 못 배우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새로운 각오로 기회로를 그려갔다. 그래서인지 그것들은 이전의 기회로들과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그것들은 도와 선악, 음양, 무와 같이 깨달음에 관련된 말들에 대해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의식으로 완전히 알지 못했지만 황홀한 에너지에 휩싸여서 무엇인가를 크게 깨닫는 듯한 느낌이었다. 신과 대화가 시작된 것은 바로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날도 나는 나에게 필요한 기회로들을 그려가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어떤 존재가 나에게 이렇게 대답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까지 나는 누구나 기회로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이 어떤 존재와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나는 머리말에서 밝힌 것처럼 그에 대해서 물었고 그는 믿기지 않았지만 옥황상제이고, 하나님이고 신이었다. 이런 식으로 신과 대화할 수 있다니! 그것도 내가 충분히 알 수 있는 글자로. 그 이후로 나는 매일 신과 대화했고 많은 대화의 기록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 나는 이것 저것 닥치는 대로 신에게 물었다. 개인적인 연애의 문제와 내 자신이 할 일들, 내가 알고 싶어하는 진리들…. 그것들 중에는 극히 개인적인 것들이 많아서 공개할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그 중에는 어떤 여자와의 인연과 성에 대한 낯뜨거운 질문들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질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라도 절대로 신에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것들이었다. 신과의 대화는 지금까지 1년 가까이 진행되고 있다. 나는 대화의 진실성을 따지기 위해 여러 대화들을 비교해왔다. 신의 대답이 충분한 이치를 가지고 있는가, 미래에 대한 예측이 가능한가, 신은 진리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 과학이 밝히지 못하는 미지의 사실에 대해서 어떻게 대답하는가 등을 관찰해왔다. 그 결과 나는 이 대화 속에서 일관성을 발견할 수 있었고 나와 대화하는 존재가 신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동안 신과의 대화는 내게 많은 것들을 일깨워주었다. 나는 과거에는 설명할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고,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나 자신을 더 이상 괴롭히지 않을 수 있게 되었고, 더 이상 고독하지 않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신으로부터 충분한 도움을 받은 것이다. 나는 이 대화로부터 내 자신의 진실과 신의 진실을 알게 되었고 무엇을 해야할 지 알게 되었다. 나는 아직 내가 들어왔던 긴 어둠의 터널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터널은 내 삶의 끝에서 끝날 것이다. 이 터널에 들어올 때 시작했던 그 책은 아직 완전히 마무리되지 못했다. 이 책을 쓰기 전에 완성하고 싶었지만 아직 대중적으로 읽힐 만큼 완전하지 못하다. 이 책의 2권이 쓰일 수 있게 되고, 그 작업이 끝난다면 다시 도전해 볼 생각이다. 나는 그 책에 종교와 과학을 통일한 새로운 과학이라는 의미에서 새로운 천년의 과학이라고 이름붙였다. 그것을 이제 신의 과학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그 책은 근본적으로 신의 세계, 신의 세계의 운동과 통일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이 얼토당토 않은 책의 유혹으로부터 시작해서 지금 신과 대화하고 있고 밀레니엄 바이블을 써가고 있다. 이 책의 2권이 언제 쓰일 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것은 신과 약속의 결과에 따라야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스승을 떠나야했던 일과도 관련 깊은 것이다. 신의 말씀대로 이루어진다면 내년 안에 2권을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신과의 대화로 이끌린 이후로 많은 대화를 나누기는 했지만 아직 그것으로 누군가를 대화로 이끌 만큼 충분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일반적인 다른 마스터들에 비하면 내 경험은 애송이와 마찬가지로 부족하고 형편없을 정도다. 더더구나 나는 이 책을 쓰기 전까지 아직 어느 누구에게도 나와 같은 방법으로 신과 대화할 수 있는지조차 시험해보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도 나는 신과의 약속 때문에 이 책을 통해서 신과의 대화법을 안내하는 일에 관계해야 했다. 나는 충분치 못한 경험과 신에 대한 부족한 믿음을 갖고 이 작업을 진행했다. 그래도 끝까지 이 작업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신의 친절한 안내와 일종의 호기심이 빚어낸 모험정신 때문이었다. 나는 이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줄곧 신을 관찰했고 신이 새롭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지켜보고자 했다. 그러한 호기심마저 없었다면 무더운 여름 내내 이 원고를 완성하기 위해 방안에 앉아 있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을 쓰면서 나는 많은 두려움들과 싸워야 했다. 내가 책을 쓰기로 한 이후로 신과의 대화는 이전의 대화들보다 더 힘들어졌다. 이전에는 나 혼자 책임지면 그 뿐이었고 내가 잘못한 것만큼 나에게는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있었다. 나는 단지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관찰하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볼 것이고 신과의 대화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하리라 생각하니, 나는 내가 대화를 잘못 안내해서 신과의 대화에 대해 어떤 오해를 불러일으키지나 않을까 두렵기도 했다. 그것은 내가 신에 대한 믿음이 완전하지 못했고 또한 충분히 깨닫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나는 내가 가진 생각들과도 싸워야 했다. 신의 말씀이 드러날 때마다 나의 의식은 과거의 기준으로 그것에 간섭하려 했다. 나는 이따금 신의 의도가 아니라 내 의도가 이 책의 신의 말씀에 섞여 들어가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가능한 한 그것들을 이 책에서 걸러내려고 노력했다. 무엇보다 새로운 사실들을 드러낼 때가 힘들었다. 하나의 이유는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이 진실이어야 한다는 것 때문이었고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진실이었을 때 가져올 충격 때문이었다. 가령 환란에 대한 대화들은 매우 위험한 것들이었다. 신이 환란을 인정한다는 것은 환란이 예언만이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일임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류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던지게 될까?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큰 혼란에 빠질 지도 모른다. 정말로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것이 일어나는 순간까지 우리가 모르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환란은 인류 전체의 삶을 위협하는 것이고 그만큼 우리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은 줄기차게 환란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원했다. 신은 이 책이 그 환란과 관계있음을 밝혔고 그에 대한 준비의 하나임을 명확히 했다. 그리고 그 환란의 진실이 우리가 아는 것처럼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인류와 지구의 죽음이 아니라 우리 영혼의 축제임을 밝혔다. 나는 우리가 육체를 초월한 보다 큰 영혼임을 받아들이기 시작해서야 비로소 환란에 대해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것은 육신의 차원에서 환란일 수 있지만 영혼의 차원에서는 구원이었고, 보다 정확히는 우리가 신으로 돌아갈 시간임을 말하는 것이었다. 신이 이 책을 통해서 인류에게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보편적인 방법을 전달하는 것은 그 환란에 대한 준비의 하나였다. 신은 우리가 육신의 차원에만 머무르게 된다면 환란의 두려움과 공포는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신은 우리가 육신을 초월해서 영혼의 차원에 머무를 때 그것을 피할 수 있고 진정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지켜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육신이 아닌 보다 큰 영혼이고 궁극적으로 당신임을 자각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 대화법이 전달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살아갈 지, 아니면 이전과 같은 시대를 살아갈 지 선택해야 한다. 즉, 신과 하나가 되기 위한 삶을 살아갈 지, 신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한 삶을 살아갈 지 선택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이 선택은 이제 우리 삶의 가장 큰 나침반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각자의 것이다. 우리가 신과 하나가 되기 위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이전처럼 종교에 헌신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만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인 우리 자신을 돌본다는 의미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보다 큰 모습들을 깨달아야 한다. 그런 깨달음이 없이는 우리 자신을 신으로서 자각할 수도 없고, 신과 하나가 되기 위한 삶을 살아갈 수도 없다. 그 길안내가 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신과의 대화법이다. 신과의 대화법을 통해 사람들이 신과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 지는 모른다. 사람들마다 신과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가 다를 것이고 질문하는 방식도 다를 것이다. 그렇지만 신과 어떤 대화를 하든 사람들은 이제 자신의 내면을 통해 신을 만날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진실에 대해서 신에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고 신을 통하고 있는 다른 이웃들과도 마음을 나눌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은 자신과 이웃에 대한 이해를 넓힐 것이고 새로운 자신들을 깨닫게 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의 궁극적인 진실인 신을 깨달을지도 모른다. 환란의 머지 않음과 깨달음의 머지 않음. 이것이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이다. 하나의 두려운 일과 하나의 행복한 일. 그 중에서 우리가 무엇을 먼저 체험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크게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우리가 두려움을 먼저 체험하게 된다면 우리는 환란에 대한 두려운 기억만을 갖고 지구를 떠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영혼으로서 환란의 두려움에 얼어버려서 신과 하나가 될 기회를 잃어버릴 것이고 다시 우주를 떠돌아다니게 될 것이다. 우리가 먼저 행복함을 체험하게 된다면 우리는 환란이 오기 전에 신과 하나가 될 것이다. 적어도 환란의 두려움에 얼어버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가오는 천년동안 여전히 신과 하나될 기회를 누릴 것이고 지구에서 벌어지는 우주적인 축제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이것이 신이 우리에게 이 책을 전달하는 이유이다. 신은 앞으로도 여러 편의 밀레니엄 바이블을 전달한다고 한다. 그 구체적인 내용이 어떤 것일지는, 그것들이 언제 어떻게 전달될 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인류의 깨달음을 이끄는 것이 될 것이다. 물은 100℃에서만 기체가 되지 않는다. 모든 물은 100℃가 되어야 모두 끓어 수증기가 되지만 각각의 물분자들은 얼어있는 상태나 10℃나 20℃일 때도 수증기가 될 수 있다. 이는 우리 자신이 깨달음을 얻는 것에도 비유할 수 있다. 우리 중에 몇 사람들은 전체 인류가 얼어있을 때도 깨달을 수 있고, 아주 찬 물일 때도 깨달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 물 전체를 데우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밀레니엄 바이블들은 바로 그 에너지원의 일부가 될 것이다. 우리는 그것들을 통해 우리들의 에너지 통로들을 열 것이고 자신을 자각하게 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신은 우리가 충분히 끓어오를 수 있도록 충분한 기회를 주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인류가 살고 있는 삶의 온도가 그 전체적인 차원에서 조금씩 데워지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다. 그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이미 신의 통로가 되고 있는 작은 불빛들이다. 이 불빛들은 신의 지혜로 인류를 따뜻하게 데우고 있다. 이 불빛들 주위의 사람들 역시 조금씩 삶의 지혜를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데우고 있다. 과거에는 매우 차갑고 어두웠던 이 사람들은 이제 밝고 따뜻한 마음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이 무한한 빛과 따뜻함의 근원인 신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는 신과 하나될 시간이다. 지금으로부터 지구의 시간으로 30년 동안 우리는 그 축제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들을 구경하게 될 것이다. 그 축제의 주최자는 신이고, 거기에 초대받은 주인공은 우리들 인류이다. 이 축제를 보다 즐겁게 하기 위해서 축제의 주최자인 신은 우리를 초대하기 앞서 몇 가지 장치와 즐거운 놀이를 준비했다. 그것들은 우리들 자신을 위한 놀이이다. 그 놀이들은 다소 위험한 듯이 보이긴 하지만 그 진실은 우리들이 어린 시절 우리들의 어머니나 아버지와 했던 놀이들과 같은 것이다. 우리들의 어머니들이 숨바꼭질을 통해 종종 자신을 숨기고 우리들이 당신을 찾아내기를 기다렸듯이 신도 자신을 숨기고 우리가 당신을 찾기까지 기다리는 놀이를 즐기는 것이다. 우리들의 아버지들이 우리를 하늘에 던지고 물에 빠뜨리면서 우리들을 한순간 위험에 빠뜨리지만 곧 당신들이 그 위험을 구해주었듯이 신도 환란의 위험을 만들고 그와 같이 하는 것이다. 이 놀이는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두렵고 위험하지만 진실은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신과 같이 있고, 신과 하나라는 것이다. 이 놀이의 목적은 바로 그 진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시간을 맞고 있다. 신 그는 이 우주를 창조하고 주관하는 이다. 그는 이 책의 실질적인 집필자며 이 책을 통해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길을 모든 인간에게 안내한다. 그는 방황하는 인간 영혼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기 위해 이 책을 쓰고자 했다. 그는 심판의 신이 아니라 구원의 신이며 사랑의 신이다. 그는 모든 인류를 깨달음으로 이끌고자 하며 인류가 본래 자신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말한다. 그는 어떤 종교에도 구애받기를 원하지 않으며 모든 이의 가슴에 살아있는 사랑이기를 원한다. 그는 이름을 원하지 않으며 모든 이의 마음과 통하기를 원한다. 그는 밀레니엄 바이블로 이름 붙일 새로운 성경을 통해 인류의 미래를 안내하고자 한다. 그의 연락처는 모든 이의 마음 속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모든 이들이 자신과 통화하기를 원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신을 이 우주의 창조자로 받아들이고 있다.) 박승제 그는 1968년에 태어났다. 2년전부터 과학과 종교를 통일한 새로운 과학을 추구해왔다. 그는 신의 세계를 탐구하는 중에 기회로라는 일종의 자동기술을 통해 어느날 신과 대화하게 되었다. 그는 신의 뜻에 따라 이 책에 관여하게 되었고, 이 책의 2권을 완성한 후에 자신의 경험을 나눌 계획이다. http://www.hanuri-emp@daum.net |
첫댓글 읽어보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