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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잠언서 강해(11) /
"하나님 말씀 따라 살아갑시다."
+ 본 문 : 잠 언 7장 1절 - 27절 (구약 p.917)
1.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계명을 간직하라.
2. 내 계명을 지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
3. 이것을 네 손가락에 매며 이것을 네 마음판에 새기라.
4. 지혜에게 너는 내 누이라 하며 명철에게 너는 내 친족이라 하라.
5. 그리하면 이것이 너를 지켜서 음녀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 여인에게 빠지지 않게 하리라.
6. 내가 내 집 들창으로, 살창으로 내다 보다가
7. 어리석은 자 중에, 젊은이 가운데에 한 지혜 없는 자를 보았노라.
8. 그가 거리를 지나 음녀의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 하여 그의 집쪽으로 가는데,
9. 저물 때, 황혼 때, 깊은 밤 흑암 중에라.
10. 그 때에 기생의 옷을 입은 간교한 여인이 그를 맞으니,
11. 이 여인은 떠들며 완악하며 그의 발이 집에 머물지 아니하여,
12. 어떤 때에는 거리,
어떤 때에는 광장 또 모퉁이마다 서서 사람을 기다리는 자라.
13. 그 여인이 그를 붙잡고 그에게 입 맞추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로 그에게 말하되
14. 내가 화목제를 드려 서원한 것을 오늘 갚았노라.
15. 이러므로 내가 너를 맞으려고 나와 네 얼굴을 찾다가 너를 만났도다.
16. 내 침상에는 요와 애굽의 무늬 있는 이불을 폈고,
17. 몰약과 침향과 계피를 뿌렸노라.
18. 오라 우리가 아침까지 흡족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랑함으로 희락하자.
19. 남편은 집을 떠나 먼 길을 갔는데,
20. 은 주머니를 가졌은즉, 보름날에나 집에 돌아오리라 하여,
21. 여러 가지 고운 말로 유혹하며,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므로,
22. 젊은이가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도수장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같도다.
23. 필경은 화살이 그 간을 뚫게 되리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의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같으니라.
24. 이제 아들들아 내 말을 듣고, 내 입의 말에 주의하라.
25.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되지 말지어다.
26. 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
27. 그의 집은 스올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 아멘!
+ 서로 인사를 나누겠습니다. /
+ 찬양하겠습니다. /
교회 안에서 결혼주례를 하다 보면 여러 젊은이들을 만납니다.
한번은 어떤 자매가 와서 결혼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저는 잘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있다 들은 소문은 그 자매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상황을 알아보았더니, 이 남자가 돈이 많습니다. 결혼하는 이유 단 하나입니다.
지금 사귀는 남자는 가난한 학생입니다. 언제 졸업하고 언제 돈을 벌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소개로 이 남자를 만났는데 돈이 많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결심한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을 했는데, 남자가 더 이상 못살겠다고 여자에게 이혼하자고 했답니다.
처음부터 방향이 잘못된 것입니다. 잘못된 방향은 반드시 잘못된 목적지로 인도합니다.
어떻습니까? 성경은 이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오늘 본문 잠언 7장입니다.
잠언 7장에서 솔로몬은 자신의 집 창밖으로 목격한 한 남녀의 사건을 이야기합니다.
오늘 본문 6절, 7절입니다. “내가 내 집 들창으로, 살창으로 내다보다가 어리석은 자 중에,
젊은이 가운데 한 지혜 없는 자를 보았노라.” - 여기 지혜 없는 자가 누구일까요?
젊은 사람이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그는 혈기왕성한 젊은 남자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길을 가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8절, 9절 말씀입니다.
“그가 거리를 지나 음녀의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 하여 그의 집쪽으로 가는데 저물 때,
황혼 때, 깊은 밤 흑암 중에라.” 이 남자가 가는 방향은 바로 기생의 집이었습니다.
화장을 진하게 한 여자가 길모퉁이에서 기다리다가 남자가 오자 달려가 껴안습니다.
오늘 본문 13절 - 15절입니다. “그 여인이 그를 붙잡고 그에게 입맞추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로 그에게 말하되 내가 화목제를 드려 서원한 것을 오늘 갚았노라.
이러므로 내가 너를 맞으려고 나와 네 얼굴을 찾다가 너를 만났도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이 남자가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를 주목해야 합니다.
그는 어둘 때, 황혼이 짙게 깔린 깊은 밤에 기생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이르자 기다리고 있던 한 여자가 그를 맞이했는 데 환영이 대단했습니다.
“그에게 입 맞추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로 내가 너를 찾다가 너를 만났노라.”
오늘 말로 바꿔 볼까요? “아이구, 어서 오세요. 제가 얼마나 사장님을 기다렸는지 알아?”
이쯤 하면 남자는 아마 제 정신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오늘 본문 16절 말씀입니다. “내 침상에서 요와 애굽의 무늬있는 이불을 폈고.”
18절입니다. “오라. 우리가 아침까지 흡족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랑함으로 희락하자.”
오늘 본문은 누구의 이야기일까요? 아마 솔로몬 자신의 이야기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솔로몬도 왕년에 쾌락을 좇는 데 한 가닥 했던 사람입니다.
누구나 자기가 모르는 경험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솔로몬이 훗날 정신을 차린 후에,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회개하는 마음으로, 이런 고백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14절에서 여인이 “화목제” 이야기를 합니다. 화목제는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예배입니다.
이 여인이 과거 어느 순간에, 하나님을 잘 믿었던 여인이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지금은 하나님과 멀리 있지만, 남자나 여자나 한때 성전에서 예배도 잘 드리고,
기도도 잘 드리던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나오는 남자와 여자는,
우리와 상관없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다른 모습이고 곧 우리 자신들입니다.
그런데 방향이 잘못되었습니다. 남자나 여자, 가는 길이 잘못되었습니다.
방향이 잘못되면 어떻게 됩니까? 잘못된 목적지로 갑니다. 22절, 23절 말씀입니다.
“젊은이가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도수장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메이러 가는 것과 같도다. 필경은 화살이 그 간을 뚫게 되리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의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같으니라.”
죽음의 도수장으로 끌려갔습니다. 도수장이 이 남자의 마지막 종착역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젊은이가 이런 결과를 예상했을까요? 예상했을 수도, 안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상했든 안했든 그가 그 길로 들어서자 그가 도착한 곳은 도수장이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이 출발한 길의 마지막 도착지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방향이 같으면 같은 목적지에 도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긴 변명이나,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성경에서는 고려되지 않습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출발했으면,
잘못된 목적지에 도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책임은 방향을 결정한 자신의 책입입니다.
그러면 희망은 없는 것일까요? 한번 잘못 방향을 잡으면 인생은 끝나는 것입니까?
한 번의 기회가 더 있습니다. 그것이 잠언 27장 12절 말씀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여기에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슬기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입니다. 이 두 사람은 똑같이,
길을 걷습니다. 똑같이 목적지를 향하여 길을 걷습니다. 그런데 “재앙” 을 만납니다.
여기서 “재앙” 이란 잘못된 방향에 따른 잘못된 결과입니다. 지혜로운 자나 어리석은 자나,
인생길에 놓인 재앙을 피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똑같이 재앙을 만났는데 반응이 다릅니다.
슬기로운 자는 어떻게 합니까?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피합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자들은 나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어리석은 사람은 계속 나갑니다.
피하지 않습니다. 재앙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아닙니다. 재앙에 대한 반응의 차이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지혜로운 자에게 재앙이 없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 다가올 재앙을,
예측하지 못했느냐고 묻지 않습니다. 재앙을 처음부터 예측했으면 그는 완전한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의 차이는 똑같이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잘못 시작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은혜입니다. 성경이,
누구나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그나마 희망입니다.
그러나 잘못된 방향으로 인해 나타난 “재앙” 은 누구에게도 오며,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 입니다. 자기가 잘못된 선택을 해서 그 결과 인생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두 번째,
선택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 재앙을 피합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삽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재앙을 보고도 그냥 지나칩니다. 그래서 그는 망합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누구나 잘못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할 수 있으면 잘못,
시작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날까지 충성스러운 종으로 서 있겠습니까?
혹시 길을 잘못 들어 나중에라도 그것을 알았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전히 진리는,
이것입니다. “방향이 목적지를 결정한다.” 이것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 볼까요?
먼저 우리가 알 것은 상황을 따르지 말고 원리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방향은 곧 원리를 따르는 것입니다. “오즈의 마법사” 라는 재미 있는 영화가 있습니다.
영화 초반에 도로시란 여자가 글린다라는 마녀를 만납니다. 도로시란 여자는 잃어버린,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때 글린다는 도로시에게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마법사 오즈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해 줍니다. 그런데 마법사 오즈를 만나려면,
에메랄드 도시로 가야한다고 말합니다. 그때 도로시란 여인이 글린다에게 묻습니다.
“에메랄드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때 글린다가 말합니다. “노란 벽돌 길을,
그냥 따라가면 돼.“ 도로시가 노란 벽돌 길을 따라가자 에메랄드가 나왔습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이 있을까요? ”노란 벽돌 길을 따라 가라.
그 길로 가면 하나님 만나.“ 이런 길이 있을까요? 이것을 ”원리“ 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좋은 방향의 길은 항상 원리를 따라가는 길입니다.
노란 벽돌 길을 따라가다 보면 집이 나오듯이 믿음의 길도, 하나님께 이르는 길도,
”원리“ 가 있습니다. 환경을 따르는 길은 많습니다. 감정을 따르는 길은 더 많습니다.
그러나 원리를 따라야 끝까지 좋은 목적지에 이릅니다. 미국 격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돌아오지 않는 네 가지가 있는데, 첫째 내 뱉은 말, 둘째 쏜 화살, 셋째 지나간 시간,
넷째 무시해 버린 기회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원리를 떠나면 다른 방향으로 갑니다.
어느 젊은이가 사회적으로 매우 성공한 사람에게 물었답니다. “성공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가 대답했습니다. “바른 결정이지요.” “어떻게 바른 결정을 배우셨지요?”
“경험을 통해서지요.” “어떻게 경험을 통해 배우셨습니까?” “잘못된 결정을 통해서요.”
그가 성공한 것은 잘못된 결정을 통해 바른 결정을 내리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랍니다.
그렇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입니다. 우리는 실패를 통해서 성공을 배웁니다.
영국 속담처럼 길을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길을 잃어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길을 잃다보면 길도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그러기에는 너무 짧습니다.
짧은 인생길에 조금 더 목적지에 빨리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원리를 따라가면 됩니다.
원리는 길을 예측하게 합니다. 그 길로 안 가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그래서 잘못된 선택을 처음부터 막아 줍니다. 그리고 올바른 길을 가도록 인도해 줍니다.
아르키메데스 원리는 “부력의 원리가 작용하면 물체가 물 위에 뜬다.” 는 것입니다.
이 원리는 아르키메데스가 발명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는 발견했을 뿐입니다.
그가 태어나기 전에도 물체는 물에 가라앉기도 하고 뜨기도 했습니다. 다만 그 원리의,
발견으로 배가 발명되었습니다. 물위에 뜨는 원리는 하나님이 만드셨지만 그 원리를,
적용하여 사람들이 배를 만들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누구나 물위에 있으면,
가라앉지만 구명조끼를 입으면 뜹니다. 그래서 배에 부표와 배의 평형수가 필요합니다.
죽지 않고 바다에 뛰어들려면 원리를 알면 됩니다. 아르키메데스 원리를 몰라도 좋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뜨는 원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미리미리 구명조끼를 입습니다.
만유인력의 원리는 뉴톤이 발견했습니다. 높은 데서 떨어지면 땅으로 떨어집니다.
그래서 이 원리를 아는 사람은 사나 죽나 보려고 고층 빌딩에서 뛰어내리지 않습니다.
뛰어내리면 누구나 죽습니다. 날개를 달면 됩니다. 그래서 비행기가 발명된 것입니다.
이걸 아십시오. 나의 좋은 생각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생각을 따르십시오.
우리에게 좋은 것은 우리에게도 가끔 좋은 생각이 있고, 착한 생각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착한 양심도 있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있고, 정의로운 생각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은 이기적이요. 자기중심적인 것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생각은 주로 현실적이고, 나를 위한 것이고, 지금은 보기에 아주 좋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주로 미래적이고, 잘 보이지 않고, 가끔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나의 생각을 앞세우기 보다는,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좋은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생각을 따르면 그 생각은 반드시,
하나님의 미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생각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이 계획하신 미래와 연결시키십니다. 그때는 그 그림이 안 보이지만,
10년, 20년이 지나면 반드시 그 그림이 보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생각을 따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미래에 동참합니다. 시간이 가면 반드시 보이지 않는 퍼즐 조각이 보입니다.
”아, 그래서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구나.“ 그때 드디어 하나님의 큰 그림이 보입니다.
우리가 사업을 합니다. 열심히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이것입니다.
나는 누구의 생각을 따라 사업할 것인가? 우리의 좋은 생각입니까? 하나님 생각입니까?
하나님의 생각을 따르면, 우리의 사업은 하나님의 큰 계획안에 잘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자녀를 가르칩니다. 열심히 공부하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누구의 생각을 따라,
살도록 할 것인가? 내 좋은 생각입니까? 하나님의 생각입니까? 하나님의 생각을 따르면,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머지않아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의 손에 놓여 있음을 보게 됩니다.
내 생각은 내가 이루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하나님이 이룹니다. 내 생각은 지금 볼 때,
좋지만 하나님 생각은 언제나 좋습니다. 내 생각은 왔다 갔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전혀 변함이 없습니다, 방향이 목표지를 결정합니다. 올바른 방향이 올바른 목표지로,
안내합니다. 올바른 방향을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생각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이 축복의 시작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말한 원리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선택해야 할 방향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방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인생의 원리입니다.
모든 것이 여기서 나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의 방향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원리라면 우리가 할 일은 복종입니다. 우리가 가는 모든 길의 끝은 하나님으로 연결됩니다.
우리가 우리 길을 걷고 달려 목표지에 도착하면 그 길 끝에 하나님이 서 계실 것입니다.
길의 끝에 서신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아십니다. 나의 앉고 일어섬, 멀리 있고 가까이,
있는 것도 아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은 그를 알고 그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어떻게 걸었습니까? 민수기 9장 18절에 잘 요약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행진하였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진영에 머물렀고.” -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이것이 핵심입니다. 길은 길의 주인이 인도합니다. 길은 길을 아는 분이 안내합니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사람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따릅니다. “여호와아의 명령을 따라 진치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머물고” “따라 가고, 따라 오고” 모든 것이 그에게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자기 백성을 위하여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예비하시는 일이요.
하나님 백성들이 할 일은 아침저녁으로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잠언은 솔로몬이 기록하였습니다. 오랜 세월, 인생의 많은 경험을 통하여 솔로몬은,
잠언의 결론을 이렇게 말합니다. 잠언 3장 5절, 6절 말씀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여기 “지도하시리라.” 가 가장 먼저 나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도” 는 가장 마지막에 나옵니다. 그 보다 먼저 나온 말은 “신뢰” 라는 단어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신뢰” 라는 말은 “몸을 기댄다.” 는 뜻입니다.
그 다음이 “의지” 입니다. “의지” 는 지팡이를 잡거나 보조기를 끼고 걷는 것입니다.
다음이 명철입니다. 명철은 우리의 지적 능력을 말합니다. 그것은 의지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다시 “인정” 이란 말이 나옵니다. “인정” 이란 범사에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마지막에 주어지는 약속이 “내가 네 길을 지도하리라.” 라는 말씀입니다.
어떻습니까? 지금 여러분은 방향이 목표를 결정한다는 것을 믿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까? 혹시 그렇지 않을 때 지혜로운 자처럼,
지금이라도 바른 길로 바꾸겠습니까? 환경과 감정을 따르지 않고 원리를 따라 가겠습니까?
내 생각이 좋아 보여도 늘 하나님의 생각을 따르겠습니까?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복종하여, 하나님이 지도하시는 길을 따라 가겠습니까?
방향이 목표지를 결정합니다. 지금 이후, 우리의 삶이 더 하나님을 목표하기 바랍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 하나님 말씀을 더 붙잡기 바랍니다.
방향이 목표를 결정합니다. 하나님 방향대로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