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교사 번개여행
안 종 문
한 직장에서 근무하는 남자교사가 무작정 동해바다를 향해 떠났다. 여덟 사람의 대상자 중에 일곱 명이 소속 학교 교문 앞에 모였다. 어디로 가면 좋을 것인가로 한참을 왈가왈부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시간이 아까우니 어서 출발하여 차 안에서 결정하자는 나의 말에 모두가 동의하였다. 예상되는 여행의 즐거움을 상상하는지 너나 할 것 없이 싱글벙글한 얼굴들이다. 나이를 잊은 듯 어린아이들과 같은 행동을 보여서 꽃을 보듯 보기가 좋았다.
번개 모임을 좋아하는 것이 요즈음의 세태인가 보다. 동호인끼리의 깜짝만남 모임 저녁 식사도 삶의 즐거움을 더해주거나 어떤 고통의 무게를 나누는 현대판 품앗이로 생각된다.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없었다. 무작정 바다 바람을 쐬고 오는 것이 좋겠다는 선배 선생님의 연락을 받았다. 11인승 승합차를 타고 다니는 내가 임시 총무 역할을 수행하란다. 여행의 취지는 구정을 맞이하기 전에 같은 학교 남교사들의 한 해의 회포를 풀고, 한편으로는 곧 이임하게 되는 두 분 선생님을 미리 송별하자는 구실을 내세웠다. 곧장 문자를 보냈다. 몇 월 며칠 몇 시 학교 앞에서 출발하니 알아서 응하라는 다소 일방적이었다.
출발하자마자 서로 이야기하고자 하였다. 여교사가 아닌 남교사임에도 가슴에 할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감포로 갈 것인가 구룡포로 갈 것인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였기에 차에 올라타서 결정하자고 하였던 탓이었기도 하였지만 며칠 전에 티베트 오지를 여행하고 돌아온 한 선생님은 자신의 여행담을 들려주고자 안달이었고, 나이가 가장 연장자인 선배 선생님은 특유의 여성과 관련된 재담으로 빨리 웃기고 싶었던 까닭이다. 또 한 사람의 뜨거운 소리가 있었는데 바로 생활지도 담당 부장교사로서 최근에 있었던 학생지도와 관련된 마음 응어리 이야기들을 쏟아내는 것이 그 옛날에 겨울철 군불 쇠죽 끓일 때 볼 수 있었던 김 새는 모습과 같았다. 말하는 시간을 서로 다투었기에 모두가 재미있게 들어보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특히, 나에게 관심이 유별하였던 것은 교육부 장관과 면담하게 된 기회를 가지면서 그 자리에서 요청하였던 여러 참석자의 대책 논의 이야기와 그동안 발생하였던 학교에서의 뒷이야기들이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두서너 건의 학부모 간의 기 싸움이 자신의 다른 업무를 마비시킬 정도로 골칫덩어리란다. 그리고 학생들의 최근 행동 특성들과 동료 선생님들에 대한 이런저런 선생님 저마다의 평가소리였다. 이야기 주고받음에 몰입되어 그 누구도 승합차의 승차감을 전혀 불평하지 않았다. 어느덧 구룡포 항구 근처 목적지에 도착하여 도로 갓길에 임시 주차를 해놓고 어시장을 둘러보면서 집에 가져갈 선물을 준비하자며 차에서 내렸다.
시원하면서도 따사로운 동해안 날씨의 바람이 전신을 감싸주었다. 깨끗한 공기가 가슴에 한 아름 담기는 같아 심호흡을 자주 하면서 어판장을 찾았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고, 발밑 바닥에 살아서 알몸으로 꿈틀거리는 수많은 대게가 크기와 품질에 따라 분류되어서 경매를 하는 진풍경이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해풍에 움츠린 자세로 구경하려 좀 더 가까이 가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경매현장의 색다른 모습에서 여행을 잘 왔다는 생각에 마냥 즐거운 표정들이었다. 아버지의 동해바다 여행에 뭔가를 기대하고 있을 가족분들을 생각하는 몇몇 선생님들은 비싼 대게를 상인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사고 싶어 하였다.
나도 문득 어릴 때 오일장에 갔다 돌아오는 어머님을 마중 나가 기다리던 옛 추억이 불현듯 떠올라 상념에 잠겨있었는데 함께 공동 구매하는 일에 참여하기를 권하는 물음에 잠시 망설였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불과 며칠 전 고향에 다녀오는 길에 사 먹었기 때문이다. 싱싱한 게를 비싼 값에도 세 분 선생님은 어느 중개인의 도움으로 살 수 있었다. 세 박스로 나누어 포장해서 차에 싣고는 점심을 머기위해 잘 알고 있는 단골집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에 감포에 있는 어느 식당을 향해 출발하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삼십 분 거리가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이야기는 강물같이 끊임없이 흘렀다.
보기에는 허름한 식당이었으나 웃으며 반기는 할머니 얼굴에는 이마의 주름만큼 정이 담겨 있었다. 따뜻한 방에 다리를 뻗고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큰 쟁반 같은 그릇에 가득 회를 담아 양손에 들고 와 내려놓으면서 번개여행의 만찬은 시작되었다. 신선하여 맛이 있었다. 한 쟁반을 추가로 주문하였고, 배를 채우고도 회가 제법 남았다. 나에게도 식사 주문이 있었으나 더는 먹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표시하였건만 수고하는 기사 양반을 잘 대접해야 한다며 공깃밥을 나누어서 기어코 먹기를 권하자 하는 수 없이 몇 숟갈의 밥을 먹었다. 준비된 다른 밑반찬은 도시의 횟집식당과는 비교될 수 없었지만, 매운탕과 김치만으로 뚝딱 먹고 났더니 그간에 쌓인 피로가 몰려왔다. 따뜻한 방에 드러누워서 한숨을 잤다. 다른 선생님들은 술잔을 오가며 끊임없이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지난날 밤에 참석하고 돌아왔던 고등학교 반창회 여독으로 나는 이내 잠이 들었고 눈을 떴을 때는 돌아갈 약속시각이 다 되어 있었다.
동해를 제대로 감상하고자 바닷가로 나왔다. 작은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서 바로 해변에서 거닐며 잠시 놀 수 있었다. 갈매기들이 외로운 듯 바위 위에 모여 앉아 있었고, 몇 마리는 물에 떠다니며 출렁이는 파도에 몸을 맡기고 있었는데 나 자신을 보는 듯하였다. 통통한 체구의 큰 갈매기 두 마리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 두 눈을 동그랗게 이쪽저쪽을 살피려 고개를 쳐들고 기웃거렸다. 무리들을 이끄는 대장 갈매기로 보였다. 얼른 동영상 사진기를 주머니에서 꺼내어 사진을 이리저리 찍었다. 바다의 세월과 하늘을 알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경외심마저 느껴졌다.
오늘의 여행을 만족해하며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웃음꽃이 피었다. 배가 불러서인지 재담이 좋은 선배 선생님의 여성에 관한 진한 농담과 분재와 관련된 취미 생활 뒷이야기가 돌아오는 길의 주메뉴가 되었다. 아무리 들어봐도 이성에 관한 이야기는 마르지 않는 여름날의 고향 샘물처럼 모두가 맛있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갈 때는 포항고속도로를 이용하였으나 올 때는 경부고속도로를 달려왔다. 주로 국도를 이용하였던 탓에 오랜만에 다시 달려보는 도로였고, 옛 생각이 무성 영화 옛 필름처럼 중간마다 구멍이 뻥뻥 뚫린 모습으로 회상되었다.
학교에 도착하였더니 어느새 어두컴컴하였고, 작년 이맘때 거가대교 구경을 위한 단체여행 다녀왔을 때의 기분과 같아서 서로 쳐다보며 웃었다. 눈발을 헤치며 돌아왔던 아련한 추억을 이심전심으로 나누었기 때문이다. 비록 짧은 하루의 '번개팅'여행의 흔적을 가슴에 담고 함박웃음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다.
여행은 삶을 재충전하는 좋은 약임에 틀림이 없다. 자신과 연관된 많은 일을 곰곰 돌이켜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다. 살아갈 용기를 다시금 북돋아 주고, 잘못된 일들에 대한 마음의 상처들도 깨끗이 청소해주어서 고마운 느낌이다. 마치 배변을 하지 못한 뱃속의 더부룩한 느낌을 해결하고 난 상쾌함이다. 현관문을 열고는 환한 웃음으로 행복의 눈웃음 선물을 보냈다. 아내는 덩달아 미소를 띠며 반겨주었다. 노트컴을 켜서 습작품 시와 수필 글을 게시하였던 나의 글들에 대한 댓글들을 확인하면서 맞장구 응답 댓글을 달아놓고는 잠시 눈을 감고 하루의 여행이 가져다준 행복의 무게를 달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