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 1권을 읽으면서 내 온 몸에는 감동과 전율이 흘렀다.
장발장, 가난 때문에 빵 훔쳤다면 유죄인가? 무죄인가? 등과 같은 피상적인 내용만 어렴풋이 알고 있는 정도였지 구체적 내용은 전혀 알지 못했다가 지인의 추천으로 레 미제라블(1)을 읽기 시작했다.
놀라운 사실은 500여쪽 분량으로 5권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극장에서 방영된 영화는 원본을 그대로 반영하지 못했다고 한다. 영화를 보기 전에 책으로 만남을 갖는다면 더 유익할 것 같다.
왜 장발장은 중죄인이 받게 될 가혹한 형벌을 받기 위해 자수를 하였을까? 디뉴의 주교를 통해 변화 받은 이후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선행을 베풀며 살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소년으로부터 빼앗은 작은 돈에 대한 형벌은 훌훌 털어버려도 되지 않을까?
사실, 장발장이 19년 동안 중죄인의 신분으로 감옥에 갇혀 있었던 것도 배고파하는 조카들을 위해 빵을 훔친 결과였다. 단지 빵 훔친 것에 대한 처벌이 19년 동안의 감금이라면 너무 가혹한 형벌이 아닌가?
장발장의 죄라기 보다는 당시 프랑스의 법 구조의 문제점이 더 크지 않을까?
19년의 감옥 생활은 그를 포악하게 만들었고 진짜 죄인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디뉴의 주교의 헌신적인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는 변화되기 시작했다.
변화된 삶의 결과가 어땠는가? 도시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였고, 특히 가난한 사람들의 이웃이 되어 주었다. 시장으로 임명받아 청빈한 삶을 살았으며 '팡틴'이라는 가엾은 여인을 위해 디뉴의 주교가 했던 것처럼 헌신적인 사랑으로 그녀를 돌봐주었다.
무거운 마차에 짓눌려 죽게 된 노인을 살리기 위해 쉰이 넘은 장발장은 자신의 목숨을 걸어 그를 구출해냈다.
자베르 형사로부터 의심을 받을 수 있음에도 왜 그는 무거운 마차를 들어 올렸을까?
이 정도면 그의 작은 죄가 덮어 질 수 없을까?
포악한 형사 자베르의 모습을 떠올리면 소름이 끼친다. 왜 장발장은 당시 시장으로 있으면서 그를 처단하지 않았을까?
왜 장발장은 샹마티외라는 사람이 장발장으로 오해를 받아 재판을 받는 곳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가야만 했을까?
법정에서 자신이 진짜 장발장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던 용기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시장이라는 옷을 벗고 다시 죄인으로 돌아간다면 그가 받아야 할 고통이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실을 밝혀 낸 그의 용기는 어디에서 나왔는가?
자신으로 오해 받아 법정에서 징역을 받게 된 피고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아무런 힘이 없는 나약한 이가 죄인으로 낙인 찍혀 억울한 징역을 받게 된다면 그의 양심의 법은 그를 평생 괴롭혔을 것이다.
장발장은 최고의 법을 '양심'으로 보았다.
그리스도 예수도 가난한 사람들을 무관심하지 않았다. 억울한 송사를 당한 이들을 외면하지 않으셨다.
레미제라블 1권의 1부 제목은 '팡틴'이다.
팡틴은 당시 프랑스 사회의 가난한 여인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한 남자에게 버림받아 어린 딸을 홀로 키워야 하는 그녀는 사람들의 꾀임에 넘어가 자신의 영혼과 몸까지 진흙탕 속으로 팽개치게 되었다. 딸을 키우기 위해 멀쩡한 생 이빨을 뽑아야 했고, 아름다운 자신의 머리칼을 잘라야 했으며, 나중엔 자신의 몸까지도 낯선 이들에게 바쳐야 했다.
기구한 인생이다. 오늘날에도 과부들이 자녀들을 키우며 살기가 어려운 데 1800년대에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백치와도 같았던 장발장이 미들렌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직을 멋지게 수행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수 많은 공문서를 다루고 시정을 돌보는 지성과 감각은 어디에서 배웠을까?
책 속에 이런 대목이 있다.
"그는 언제나 앞에다 책을 펴 놓고 읽으면서 혼자 식사를 했다. 그는 잘 꾸민 장서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책을 사랑했다. 책은 냉정ㅇ하고 안전한 벗이다. 재산과 더불어 여가가 생김에 따라, 그는 책을 정신 수양에 이용하는 것 같았다. 몽트뢰유쉬르메르에 온 이후 해가 감에 따라 그의 언어는 한결 정중해지고 고상해지고 부드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