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서 문학관
류중천 시인
<한국 한비문학 작가협회 수석 부회장>
원서 문학관
원서 문학관 정문
쪽빛 하늘을 머리에 이고 누렇게 익은 황금 들판,
잘 익은 가을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자연 속에서 활짝 열린 오감은
좋다 이런 느낌보다, 찌 들린 영혼 여기에 영원히 머물고 싶은 충동을
더욱더 자연의 깊은 속살로 끝없이 인도한다.
차창 바깥으로 펼쳐지는 자연은 언제나 새롭다.
산 색깔이 변하고 철마다 피우는 꽃이 다르고 계절 따라 물 깊이도 달라진다.
곡식이 익어가는 10월 12일 원서 문학관을 찾아가는 농촌의 풍경은 보는 것으로도 부자가 된 양
풍만 함을 가져다준다.
구르는 낙엽과 감나무의 감 정겨운 가을 들녘을 보노라면 어머니 품 같은 따뜻함, 머물고 싶은 아릿한 향수에 푹 젖어들게 한다.
새로운 풍경 기대에 찬 원서 문학관을 발걸음엔 사실 망설임도 있었건만, 눈앞에
풍경이라고는 그 흔한 하늘과 농촌 그리고 곧 단풍이 들어갈 산뿐이데
이처럼 마음이 뿌듯하고 편할 수가 없다.
제천 IC를 빠져나와 대중가요로 유명한 금봉낭자의 사연이 얽힌 울고 넘는 박달재의 , 박달재 터널을 지나
천등산을 끼고 흐르는 원서천을 따라가면 백운면 애련리 백운초등학교 옛 애련 분교자리에
원서 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다.
까마득하게 흐려져 버린 내 사랑의 호적등본만한 빈터가
실은 내 생애의 전부였음을 이제야 알겠다.
술지게미 먹고 깨금발로 뛰어놀던
내 사랑의 빈터에 말 안해도 마음 다 알아줄
아주 예쁜 사람이 살고 있음을 이제야 알겠다.
지에밥에 누룩 풀어 담근 술 항아리에서
상강날 해거름쯤 술이 익으면
첫서리 내린 들창문 반쯤 열어놓고 마주 않아 잔 비우고 싶은
내 마음의 노른자위가 될 아주 예쁜 사람을 전생에 꿈을 꾸듯 찾아가야겠다.
-낙향을 위하여- (오탁번)
원서 문화관은 제천 백운면 평동리 출신의 오탁번(고려대 교수) 시인께서 부인 김은자(한림대 교수) 시인과 함께 가꾼 문학관이다.
돌아보면 고향에 얽힌 어린 시절의 사연은 너무도 절절했다.
사무치도록 그리운 어머니의 삶이 이곳에 있고 내 생애 한복판에 /민들레꽃으로 피어서/배고픈 열 한 살의 나를 /숨 막히게 했던(영희누나) “누나 선생님”의 추억도 있었다. 라고 오탁번 시인은 적고 있다. 이곳 슬래브 교실 3칸 애련분교 건물을 강의실 사무실 자료 전시실로 개조하고 주변을 가꾸어 2003년 문을 열었다.
원서 문학관에 도착하니 굳게 철문은 닫혀 있어 암담했다. 분명 문학관 안내 책자에는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관람 일로 되어있어 금요일이니 오탁번 관장님은 안 계셔도 관람에는
별 의심 없이 찾았는데 낭패였다.
입구에서 서성거리고 있을 때 참깨밭에 일을 하고 계시던 동네 어르신께서 오셔서 오탁번 시인의 고향 친구 분이라면서 어떻게 왔느냐고 물어 오셨다.
오탁번 시인과 통화를 시켜주었고 관람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 주셨다.
전시된 수천권의 도서
옛날 운동장에는 아담한 연못과 소담하게 가꾸어진 나무 한그루 풀 한 포기에도 오탁번 시인의 손길이 묻은 정겨운 문학관 뜰이다.
여러 군데의 문학관을 답사하였으나 이곳은 분위기부터 삶의 냄새가 나는 정겨운 문학관이라는 느낌부터가 다르게 다가온다.
자로 잰 듯한 다른 문학관들의 건물과 정원이 아닌 소담스런 키 작은 나무들,
반기듯 따라다니는 강아지 아무 곳이나 누워서 하늘을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원서 문학관에 오면 모두 철부지 된다고 말한다.
원서 문학관에서는 문학은 잠시 엄숙주의 옷을 벗는다.
여기서 글은 형해화된 문자가 아니라 살아 뛰노는 동심이며 시심이다.
야생화가 벌과 나비를 유혹하고 제비가 날아와 새끼를 치는 곳
반딧불이 밤하늘을 수놓고 백로가 산허리를 베며 날아가는 곳
박달재와 천등산 사이에 수줍은 야생화처럼 숨어 있는 원서헌이라는 말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곽 찬 느낌의 조용하고 소담스럽게 살아 숨 쉬는 문학공간으로
와 닿는다.
유명 시인 육필원고및 얼굴 사진 전시 복도
복도에는 김남조, 허영자, 고은, 신달자, 문효치 시인 등 100여 분의 얼굴사진과 구상, 조병화, 김춘수, 서정주, 문정희 이성부 시인 등 100여 점의 육필원고를 전시하고 있으며
전시실에는 정지용(지용시선)(백록담) (김기림 시론) (이기영의 서화)등과 1000권의 시집
수천 권의 도서로 가득 채워져 있다.
특히 1950년대 초등학교 교과서 등 소중한 자료를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대지 1700평에 건물 95평 사택, 숙직실 교실 3칸(사무실, 전시실, 세미나실)으로 전시실은
숙박도 가능하도록 보일러 시설이 되어 있다.
제4회 원서 문학관 시의 축제 (9월 8일)현수막 앞에서
여름방학에는 어린이 시인학교, 문예창작교실, 시 낭송회, 시인과의 대화 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 문화예술 위원회 후원 올해 4회로 시의 축제가 9월 8일 신경림, 이근배, 이성부, 허영만, 시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고 한다.
주인이 안 계신 터라 이모저모를 꼼꼼히 살피지는 못하고
문을 열어준 어르신의 입장을 생각해 서둘러 전시실을 나왔다.
오늘 원서 문학관에서 관장이신 오탁번 시인님을 뵙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원서문학관을 빠져나와 500년 되었다는 느티나무 쪽 박하사탕 촬영지로 향했다.
스무 살의 영호는 순임이 건네준
박하사탕 하나가 “세상에서 최고로 맛있다”
20년 만의 야유회가 열리던 날. 느닷없이 영호(설경구)가 나타난다. 그는 이미 실성한 모습이다. 의아한 눈길로 영호를 바라보는 친구들. 영호의 광기는 더욱 심해지고 급기야는 철교 위에 올라 울부짖는다. 거꾸로 가는 기차를 따라 시간을 거슬러 가면 영호의 과거가 펼쳐진다.
20년이란 세월이 흘러 찾아간 곳
순임과 함께 소풍을 나갔던 그곳 기찻길 철로 위,
"나, 다시 돌아갈래!" 영호의 알 수 없는 절규는 기적소리에 묻혀 버리고 만다."
아름다운 계곡을 가로질러 철로가 놓이고
절벽 밑 동굴 속에서 기차의 검은 머리가 괴물처럼 튀어나온다.
영화 '박하사탕'의 촬영지엔 주인공 설경구의 마지막 절규가 있었다,
나 돌아갈래 촬영장소
박하사탕 촬영지를 가는 길은 그런대로 다듬어진 옛 신작로 비포장도로 옆으로
맑고 아름답게 흐르는 진소천, 느리게 때론 쏜살같은 흐름으로 얕은 물길 아래 엎드린 바위들이 진소천의 파수꾼인 냥 조절하고 있다.
가을을 머금은 바람의 감촉과 따사로운 햇살에 이끌리 듯 여유로운 풍경 ,
보면 볼수록 티 나지 않게 자기를 드러내고 있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 아마도 오탁번 시인께서도 이 풍경이 그리웠을 것이다.
어머니 젖줄 같은 진소천(제천천) 유난히 검은 돌들 아직 포장되지 않은 도로, 더욱더 느리게 이곳을 돌아보고 싶다.
특별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다 다만 맑은 가을 하늘 깨끗한 물 여유롭고 모나지 않은 풍광이 소박한 삶의 이야기를 전해 주는 듯하다.
박하사탕 촬영장소 기념비
신작로를 따라 한참을 가다 보니 촬영지 진소마을과 충북선
나 돌아 갈래를 외쳤던 철길이 나온다.
박하사탕 촬영지에서 사람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다.
촬영지라는 기념비가 반기고 뒤로 여름내 피서객들의 버리고 간 쓰레기가 군데군데 뒹굴고
매점과 민박집 주변은 가을의 싸늘함만이 휭 하니 맴돈다.
누구나 한번쯤 영화 속 주인공을 꿈꾼다.
따분한 일상에서 벗어나 보다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고 싶어 한다.
오늘 나도 나 돌아 갈래의 철길을 위에 서서 생각만으로도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보는 재미도 잠시 잠깐 느껴 보았다.
영화 속 인물들은 보이지 않지만 상상만으로도 행복하고 영화에 대한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아내와 함께하여 더 없이 특별한 여행길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 들에는 트랙터로 벼 수확에 한참이고 시야에 들어오는 서정적인 풍경은 물론
쉽사리 찾아가기 힘든 자연 깊은 곳까지 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해마다 가을이 선사하는 결실을 마주할 때마다 이보다 더 감사할 일이 또 있을까 싶다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맺는 특별한 가을 추수모습까지 속마음 곽 채워 풍요롭다.
오탁번 시인
오탁번 시인
1943년 충북 제천 출생
1964년 고려대학교 영문학과 입학, 동대학원 국문학과 졸업 후 문학박사학위 수여
1966년 동화 「철이와 아버지」로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1967년 시 「순은이 빛나는 이아침에」로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1969년 소설 「처형의 땅」로 대한일보 신춘문예 당선
1970년 시인 김은자와 결혼
1978년 고려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
1983년 하버드대학 한국학 연구소 객원교수
1987년 소설 「우화의 땅」으로 한국문학작가상 수상
1994년 시집 「겨울강」으로 동서문학상 수상
1997년 시 「백두산 천지」로 정지용문학상 수상
2003년 시집 「벙어리 장갑」으로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시집으로는 「아침의 예언」 「너무 많은 가운데 하나」 「생각나지 않는 꿈」 「겨울강」 「1미터의 사랑」 「벙어리 장갑」, 소설집으로는 「처형의 땅」 「절망과 기교」 「저녁연기」 「겨울의 꿈은 끝날 줄 모른다」 「순은의 아침」 등이 있다. 작가는 우리말의 숨결을 시적 상상력으로 형상화하면서 세계와 자아의 아름다운 화해를 추구하고 있다.
특히 1998년 시안(시를 볼 줄 아는 안목과 식견)계간지를 창간하여 현재 통권 37권을 발간 하고 있다.
1994년 여름에 나온 네번째 시집 {겨울강}(세계사)에는 나의 이러한 시적 몰입이 몽땅 담겨 있다. 시집을 내고 나서 이제야 나의 몸과 마음 이 시의 혼령에 의하여 확실하게 운행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 운명이 그 스스로의 힘에 의하여 시혼을 작동시키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나는 {겨울강}을 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시를 생각하며 새벽잠을 깨고 시를 쓰며 자정을 넘길 때처럼 내 영혼과 가장 똑바로 마주볼 때는 없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길들여진 孤立과 疏外의 세계관이 나의 시에서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얼굴을 그냥 내어밀고 있다.
그러므로 나의 시는 그대로 나의 自畵像이며 미완의 自敍傳이며 차마 남에게 보여주기가 민망한 日記와도 같다. 젊을 때부터 익혀온 시의 방법이나 장치도 내 작품의 맨 몸뚱아리 앞에서는 도무지 가당치가 않다. 비유나 구조를 이야기하며 칠판 앞에서 백묵을 잡는 일 또한 나의 쓸쓸한 시가 지닌 눈금과는 사뭇 동떨어진 것이 된다. 얼음 밑에 허리 숨긴 하양 나룻배 한 척처럼 호젓하게 꿈꾸고 싶다. 산매미 날갯빛으로 흘러가다가 종당에는 이름도 몸도 無化되어 버릴 그날을 위하여 건배 !
오탁번 시인의 글 중에서
겨울강 얼음 풀리며 토해내는 울음 가까이
잊혀진 기억 떠오르듯 갈대잎 바람에 쓸리고
얼음 밑에 허리 숨긴 하양 나룻배 한 척이
꿈꾸는 겨울 홍천강 노을빛 아래 호젓하네
쥐불연기 마주보며 강촌에서 한참 달려와
겨울과 봄 사이 꿈길마냥 자욱져 있는
얼음짱 깨지는 소리 들으며 강을 건너면
겨울나무 지피는 눈망울이 눈에 밟히네
갈대잎 흔드는 바람 사이로 봄기운 일고
오대산 산그리메 산매미 날개빛으로 흘러와
겨우내 얼음 속에 가는 눈썹 숨기고 잠든
아련한 추억이 버들개아지 따라 실눈을 뜨네
슬픔은 슬픔끼리 풀려 반짝이는 여울을 이루고
기쁨은 기쁨끼리 만나 출렁이는 물결이 되어
이제야 닻 올리며 추운 몸뚱아리 꿈틀대는
겨울강 해빙의 울음소리가 강마을을 흔드네
-겨울강- 오탁번
오탁번 시인의 “여기쯤에서” 라는 시를 예전부터 개인적으로 참 좋아한다.
여기쯤에서 그만 작별을 하자
눈뜨고 사는 이에게는
생애의 벼랑은 언제나 있는 법
거기 피어있는 이름 모를 풀꽃
하나 따서 가슴에 달고
뜻없는 목숨 하나 따서
만났던 그 자리에 그 어둠 앞에
우리의 죄로 젖어 있는 추억을 심고
그만 여기쯤에서 작별을 하자
똑같은 항아리가 어느 한쪽에
깨어져서 들어가야 한다면
그것은 이미 사랑도 아니다
우리의 입술은 아침저녁 비가 오고
내 몸에 묻어 있는 눈썹 하나
머리칼 한 올이 나의 새벽까지
따라와서 죄를 짓자고 속삭인다 해도
너의 찬 손이 뜨거워지고
나의 안경이 흐려진다 해도
말하지 마 아무 말도 하지 마
작별을 하자 그만 여기쯤에서
생애의 벼랑에서 뛰어내려
젖은 입술을 입술에 비비며
말하지 마 아무 말도 하지 마
-여기쯤에서- 오탁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