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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유수(思惟修) 원문보기 글쓴이: 통달무아법자
03 왕관을 얻기까지
불교문화연구회 / 문영출판 / 1981.9.
석존께서 사위국(舍衛國)의 기원정사(祈園精舍)에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설법하고 계시던 때의 일이다.
바라나시 국에 쟈크우코우라는 왕이 있었다. 그리고, 이 왕에게는 소(所)라는 천성이 어질고 학문, 기예(技藝), 그밖의 모든 일에 정통한 아들이 있었다. 이 아들이 커서 태자가 되었다.
그런데, 늙은 왕은 달마라는 예쁜 여인을 특별히 사랑하여 마침내 그 여인은 임신을 하였다. 이 사실을 안 늙은 왕의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으며 얼마 아니하여 태어날 아이에 대하여 점장이를 불러다가 급히 점을 쳐 보았다.
『태어나는 아기는 왕자입니다. 그 왕자님은 훗날 반드시 왕을 죽이고 제가 왕위에 오릅니다.』
이 무서운 예언에 늙은 왕은 매우 걱정을 하였다. 자기는 늙어서 죽을 날도 멀지 않으니, 내가 죽은 뒤에 태자 소(所)는 그것이 두려워 달마부인의 아들을 죽일 것이 틀림없다. 만일, 그렇게라도 된다면 달마가 불쌍하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 불행을 없앨 도리는 없을까 하고 사이고라는 대신에게 의논을하였다. 그리하여 달마부인과 태어날 아이의 일에 대하여 모든 것을 이 대신에게 맡기고 이윽고 늙은 왕은 태어나는 아기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숨을 거두었다.
그래서 늙은 왕의 아들인 소태자가 왕위를 이었다. 왕위를 이어받은 소왕은 어느 때,
『달마 부인을 죽여라.』
하고 명령하였다. 왕의 명령을 들은 사이고 대신은,
『임금님이여, 까닭없이 선왕의 부인을 죽이는 것은 잔혹합니다. 불륜(不倫)입니다. 부인은 지금 임신중이며, 아직 태어날 아기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확정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부인을 죽인다는 것은 지나친 일입니다. 제발 그 일은 그만두어 주십시오. 만일 태어난 아기가 아들이라면 그때에 가서 죽여도 늦지는 않을 것입니다. 잠시 두고 보시는 편이 좋으리라고 생각되옵니다.』
하고 말리었다.
『네 말도 그럴듯하다. 그러면, 잘 주의해서 낭패 없도록 해라.』
왕은 이렇게 사이고 대신에서 명령을 하고 달마부인을 죽이는 일은 중지하였다. 그 뒤, 부인은 달이 차서 토실 토실한 사내 아이를 낳았다. 놀란 것은 사이고였다. 사내아이를 낳으면 어쩔 수 없이 부인과 태어난 아기를 함께 죽이지 않으면 안되므로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라 쩔쩔매고 있을 때, 부인이 분만한 것과 같은 시간에 어느 어촌의 어부의 아내가 계집애를 낳았다는 소리를 듣고, 곧 그 어부의 집으로 몸소 가만히 찾아 가서 약간의 돈을 주고, 부인이 낳은 아기와 그 계집애를 바꾸어 데리고 와서, 시치미를 떼고 왕에게,
『임금님, 달마부인은 오늘 아침에 계집애를 낳았습니다.』
하고 보고하였다.
『그래, 그거 잘되었다. 나에 대한 화근(禍根)은 이제 사라졌다.』
하고 거짓인 줄은 모르고 왕은 안심하였다.
한편, 아기를 바꾼 어부는 그 아기가 성장하였으므로 학교에 보내었다. 나면서부터 슬기로운 그 아이는 성적이 매우 뛰어났으며, 특히 문장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이름을 「호작문장(好作文章)」이라고 지어주었다. 어부의 집에서 돌아온 사이고는 달마부인에게,
『부인의 아드님은 문장에 뛰어나 장래가 아주 유망합니다.』
하고 조용히 알렸다.
『그래요. 꼭 한번 데려다 줄 수 없겠소.』
하고, 자기가 낳은 귀여운 아들이 성장했고, 더욱이 성적이 뛰어났다는 소리까지 들었으니 한번 만나보고 싶어하는 것은 어버이의 심정이 아니겠는가.
『모처럼이오나, 그것은 하시지 않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하고, 사이고는 이 모자의 대면이 도리어 문제를 일으키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고 해서 거절하였다. 그러나, 부인은,
『단 한번 잠깐 동안이라도 좋으니.』
하고, 각별히 부탁하니 그 정에 끌려 그 부탁을 물리치지 못하고,
『그러면 만나게 해 드리지요.』
하고, 승낙을 했다. 거기서 사이고는 한 꾀를 생각해 내었다. 어느날 밤 어부의 집에 가만히 가서 내일 아침 「호작문장」에게 생선을 가지고 생선장수의 모습으로 대궐로 들어오라고 하였다. 아무 것도 모르는 그는 생선장수가 되어 이튿날 아침 대궐로 들어갔다. 이미 달마부인에게 이야기가 되어 있었으므로 이에 어머니와 아들은 몇 년만에 그리운 대면을 하였다.
그때, 한 점장이가 이 생선장수 아이를 보고, 이 아이는 반드시 우리 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리라고 점을 쳤다. 이 점장이의 말이 어느 사이에 한 사람 두 사람 퍼져서 결국 왕의 귀에 들어갔다. 이 소리를 들은 왕은 여러 신하들을 모아 놓고,
『어부의 아들이 나를 죽일 나쁜 상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하니, 그를 놓치지 않도록 하여라.』
하고, 명령을 하였다. 왕이 자기를 찾아내어 죽이려고 한다는 소문을 들은, 어부의 아들 「호작문장」은 큰일이 났다고 정처없이 동쪽으로 도망하여 어느 노파의 집에 숨었다. 그랬더니 노파가 노란 가루를 개어서 그의 몸에 발라 송장처럼 만들어 숲속으로 데리고가 산속에 내버렸다.
노파의 도움으로 산 속까지 도망쳐 온 그 아이는 숲 속을 정처없이 헤매고 숨어 다녔다. 그때, 숲 속에서 꽃과 열매를 따고 있던 어떤 사나이가, 아이의 행동이 수상하므로 뒤를 쫓았으나 도중에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때, 왕의 명령을 받고 그를 찾는 사자가 와서 꽃을 따는 사나이에게 말하였다.
『너는 이 이근처에서 이러 이러한 모습을 한 아이를 보지 못했느냐.』
『지금 말한 것과 같은 모습을 한 아이는 얼핏 보았읍니다마는, 이 길로 달아났습니다.』
하고, 꽃을 따는 사나이가 대답을 하였다. 뒤쫓는 사나이는 가르켜 준 길로 황급히 아이의 뒤를 따라갔다. 한편, 「호작문장」은 잡으려는 사람들이 뒤쫓아오므로 어린 마음에도 몹시 겁이 나서 열심히 도망을 하여 어떤 빨래집 안으로 뛰어들어가 도움을 청하였다. 빨랫집 주인은 옷가지를 여러 겹으로 아이를 싸서 나귀에 싣고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어떤 강가에 와서 나귀에서 내려 놓아주었다. 그는 사방을 살피면서 인기척이 없는 곳을 향하여 자꾸 달아났다. 그런데, 도중에서 한 사나이를 또 만났다. (이거, 또 발각되었구나.)생각하고 더 빨리 달아났다. 왕의 사자는 몇 패로 갈리어 방방곡곡을 산이며, 강이며 구석 구석까지 찾아다니며,
『이런 아이를 보지 못했는가.』
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물어봤다. 그때, 어느 사나이는,
『찾고 있는 그 아이는 저쪽으로 달아났습니다.』
하고 가르쳐 주었다. 추격하는 사자들은 알려 준 방향으로 쫓아갔다. 그 아이는 이번엔 구둣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나는 지금 사람에게 쫓기고 있습니다. 잡히면 죽습니다. 제발, 잠깐만 숨겨 주세요.』
『그거, 안되었구나, 불쌍도 하지.』
『미안하지만 아저씨, 나에게 뒤꿈치가 앞으로 오고 발끝이 뒤로 된 구두를 만들어 주셔요. 그렇게 하면, 추격자가 쫓아와도 발끝이 뒤로 향해 있기 때문에 그 발자국을 보고 반대 방향으로 갈터이니.....』
『그런 구두를 난 만들어 본 일이 없는데......』
『살려 주는 셈치고, 제발 부탁합니다.』
구두장이는 어부 아이의 말하는 구두를 여러모로 애를 써서 만들어 주었더니, 그는 그 구두를 신고 「이제 됐다.」하고 마을을 벗어났다. 자꾸 가노라니 앞길에 높은 담장이 있어 넘어 갈 수가 없어 그는 하수구로 빠져나가 가까스로 밖으로 나왔다. 추격자들은 아이의 발자국을 따라 구둣집에 와서 그에게 방향을 물어가지고 또 추격하였다. 한편, 여기까지 도망쳐 온 그는 앞으로 도망칠 길이 없으므로 할 수 없이 물속으로 뛰어든 것은 본 용왕은 자기 궁전으로 그를 데리고 왔다. 이리하여 이 땅위에서 사라진 그의 모습은 아무도 몰랐다. 그 뒤, 그의 행방은 전연 알려지지 않았으나 왕은 수색의 손길을 조금도 늦추지 아니하였다,
그런데, 어느 사이엔가 「호작문장」이 물속에 들어가 용왕의 도움을 받고 용궁에 가 있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하여 그 이야기가 왕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다. 왕은 대신을 불러.
『나라안의 주술사(呪術師)를 모조리 불러 들려라.』
하고 성난 어조로 명령하였다. 왕의 갑작스러운 부름을 받고 나라 안의 주술사들은 모두 왕궁으로 모여 왔다.
『주술의 힘으로 너희들은 용궁에 가서 용왕과 어부의 자식을 데려 오너라.』
하고 엄명을 내렸다. 주술사들은 바닷가에 제단을 만들어 울긋불긋 꾸며 놓고 열심히 주문을 외어 왕을 괴롭혔다. 주문에 시달린 용왕은 이제 아이를 잠시도 더 숨겨 둘 수가 없어 빈가라 야차(夜叉)가 살고 있는 광야(曠野)에 아이를 내어버리고 주술사들에게 말하였다.
『주술사들이여, 너희들이 주문의 힘으로 나는 이제 더 아이를 숨겨 둘 수가 없어 광야에 돌려 보내었다. 아마 지금쯤은 야차한테 먹혀 버렸을 것이다. 그러니, 본국에 돌아가서 왕에게 그렇게 전하여라.』
주술사들은 용왕의 말대로 왕에게 보고하였다. 한편, 용왕의 보호로부터 다시 광야에 내어 쫓긴 그 아이는 동서로 헤매다니다가, 빈가라 야차가, 많은 사나운 개들과 함께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랬다. 그것은 이 끝도 없이 넓은 광야에서 야차와 사나운 개들에게 발견되면 지금까지의 고생도 수포로 돌아가고, 이 목숨도 야차와 개들의 밥이 되어 버릴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사람의 그림자도 구경 못한 사나운 개들이 그 아이의 모습을 발견하고,
『와아, 저기 사람이 있다. 잡아라.』
하고 두목인듯한 개가 말하자 한놈은 벌써 무서운 기세로 아이를 향하여 달려갔다. 개가 자기를 향하여 달려오는 것을 복 그는 황급히 나무 위에 올라가 그 난을 일단 피하였다. 개는 나무 밑에서 멍멍하고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어 짖고 있다. 거기에 빈가라 야차도 또 달려왔다.
『요 녀석아, 누구든지 광야에 오면 다 내 먹이가 되는 법이다.』
하고 협박하였다.
『목숨이 다할 때까지 나는 여기에 있겠다.』
하고 아이는 대답하였다.
『좋다. 그러면 나도 네가 할 수 없이 내려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고 있지.』
하고, 야차는 옷을 벗어 개어서 그 나무에 묶어 놓고 아이와 버티기 내기를 시작하였다. 야차와 버티기 내기로는 도저히 이길 가망이 없으므로 아판사판, 나무에서 뛰어내려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나무 밑에 버티고 있던 야차와 개들이 일제히 그 뒤를 추격하였다. 그는 이제는 절대절명(絶對絶命)이라 생각하고 입고 있던 옷을 벗어서 야차에게 힘껏 던져 야차의 몸뚱이를 덮어 씌웠다. 옷에 덮인 야차를 개들은 사람인 줄 알고 달려들어 물었다. 이기적 같은 우연한 일로 말미암아 그는 위기일발(危機一髮)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범의 아가리를 가까스로 벗어난 그는,
『나에게는 부모도, 조부모도 있다. 숫제 이제부터 신선을 찾아가서 출가(出家)나 하리라.』
생각하고, 걸음을 재촉하여 신선이 살고 있는 곳을 찾아갔다. 신선이 사는 곳은 희귀한 꽃도 피어 있고, 진기한 열매도 열려 있으며, 예쁜 새들이 지저귀고 있는 조용한 곳에 살고 있었다. 그는 가까스로 이 신선들이 사는 곳을 찾아 들었던 것이다.
한편, 왕은 아이가 광야에 내여 쫓기었다는 주술사(呪術師)의 보고를 듣고 광야를 뒤졌으나 없으므로, 주술사의 보고가 거짓임을 알고 더욱 엄중한 탐색망(探索網)을 펴도록 명령하였다. 구석구석을 뒤진 결과, 아이가 신선이 사는 동산 수풀에 숨어 있음을 알아내었다. 수많은 추격자들은 이 조용한 동산 수풀에 마구 뛰어들어 아이를 붙잡으려고 하였다. 아이는 붙잡혔다가는 큰일이라고 몸을 날려 골짜기에 뛰어 내렸다. 그 때 추격자는 아이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으므로 뛰어내리는 순간 잡힌 머리털이 몽땅 뽑힌 채 그는 골짜기 밑으로 떨어졌다. 뽑아진 머리털을 손에 움켜쥔 추격자는,
『오랫동안 말썽을 부린 저녀석도 드디어 무참히도 죽고 말았구나. 이제 한숨 놓았다. 이 머리카락이 둘도 없는 증거다.』
하고, 뽑은 아이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왕에게로 돌아왔다.
『임금님이여, 소인은 애쓴 끝에 어부의 자식을 죽였습니다. 이렇게 머리털을 가지고 왔습니다.』
하고, 그 머리털을 왕에게 보였다. 왕은 그것을 보고 그 사나이에게 상을 내렸다.
이 신선이 사는 곳을 지키고 있던 천신(天神)은 곧 신선을 찾아와서,
『당신의 조카가 지금 골짜기에 떨어져 죽어가고 있는데, 왜 구해주려고 하지 않는가.』
하고 꾸짖었다. 이 말을 들은 신선은 뜻밖의 일에 놀라,
『그것은 큰일이다. 내가 구해 주지 않으면 그 아이는 죽어버릴 것이다.』
하고 주문을 외면서 이상한 신통력(神通力)을 가지고 골짜기로부터 그 아이를 구해 내었다. 빈사상태에서 떨고 있는 아이를 껴안으면서,
『너는 안심해도 좋다. 너를 괴롭히는 자는 이제 없다.』
하며 등을 쓸어 주면서 이상한 신통력으로 지금까지 남자이었던 그는 갑자기 아름다운 여자로 바뀌었다. 매우 위험하였던 아이는 신선의 자비로운 손에 구조되고 더욱이 절세의 미인이 되었으므로 깊은 감사를 드리고 바라나시국의 왕의 동산으로 돌아왔다. 남자가 여자로 변했으므로 그 아무도 이것이 어부의 아들이었던 「호작문장」으로 아는 사람은 없다. 왕의 동산에 가니, 등산지기는 아리따운 아가씨가 혼자서 동산에 온 것을 보고, 마음속에 수상히 여겨,
『지금 막 동산에 미인이 들어왔읍니다.』하고 왕에게 보고하였다.
『그럼 그 미인을 데리고 오너라.』
하고 왕은 여러 사람들에게 성장(盛裝)을 시키고 그 미인을 맞이하게 하였다. 왕은 한눈에 그녀에게 반하여 온 정신을 빼앗겼으나 그녀는 왕의 말을 귀전으로 받아 넘기고만 있었다. 이리하여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그녀는 돌연히 전과 같은 남자의 모습이 되어, 소왕의 머리에서 황금으로 된 왕관을 빼앗아 자기 머리에 쓰고,
『나를 세워 왕으로 삼으라.』
하고 중신들에게 추상같이 명령하였다. 이에, 좌우의 중신들은 달마부인이 낳은 「호작문장」을 세워 왕위를 잇게 하였다. 이 「호작문장」이란 지금의 석가모니다.
( 毘奈耶破僧事第十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