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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세상에 제가 이걸 쓰네요. 4년동안 틈날 때면 종종 들어와서 선배들 합격수기 읽곤 했는데 제가 어느새 이걸 쓰다니. 시간 참 빠른 걸 새삼 느낍니다. 고 3 올라와서도 위에 언니오빠들이 하나도 없고 제가 제일 선배란게 어색해 죽었는데, 벌써 문장을 졸업할 때가 되었네요. 오래 다닌만큼 할 말도 너무 많아서....음....아 눈물나..ㅠ
아마 제 추억 넋두리가 될 것 같은데, 그래도 읽다보면 뽑아먹을 것들이 있을 거에요, 후배님들.
시작부터 되게 스크롤 압박일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ㅋㅋ
일단 제가 문장이란 학원을 처음 접했을 때는 중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그땐 아마 논술이데아 때였을 거에요. 지금 학원보다 더 작았었는데, 아마 상담만 받고 집에 왔을 겁니다. 다니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어요. 문특반이 아니라 논술반으로. 예전에는 중학생들 몇 모아놓은 논술반이 있었거든요. 그땐 아무것도 모르고 와, 원장샘 너무 재밌당 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ㅋㅋㅋㅋ;;;;;;; 그렇게 2학년이 거의 다 지났을 때, 운명의 그날이 찾아옵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하루는 부원장샘께서 저를 다른 교실로 따로 부르시더니 시제를 하나 주시며 저한테 시와 소설을 둘 다 써 보라고 하셨어요. 아직 영문을 몰랐던 저는 둘 다 써서 냈고, 엄마와의 상담을 거친 끝에, 저는 갑자기 고 3 언니들과 한 교실에 앉아있게 됩니다;;. 전 좀 특이케이스죠. 사실 논술반에 있을 때만 하더라도 학원에 문특반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ㅋㅋㅋ 아마 이 운명의 날이 없었더라면, 저도 남들처럼, 그저 책과 글쓰기를 좀 더 좋아할 뿐인 학생에 그쳤을 겁니다. 이걸 어떻게 써먹어야 할 줄도 모르고요.
그렇게 같이 논술반에 있던 여자애 둘은 경기외고로, 저는 문특반으로 나뉘었고, 중학교 3학년 1월달부터 저의 문장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글이 생활이고, 재미였어요. 그냥, 썼어요. 좋고, 재밌고, 손에 소꿉놀이 세트보다는 연필 쥐고 있는 게 더 좋으니까. 초등학교땐 일기도 쓰기 귀찮으면 동시 지어서 내고, 진짜 있는 책인 것처럼 동화 하나 지어서 독후감까지 써서 내고, 중학교 땐 대학노트 두 권 분량의 연애...소설도 쓰고(가끔 자다가 이불 속에서 하이킥하는 흑역사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좀 아쉽네요. 버리지 말고 놔둘걸..ㅋㅋ)... 이제껏 글을 누가 강요해서 쓴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나중에 뭘 하며 먹고 살진 뚜렷하지 못했지만, 막연히 글 써서 먹고 사는 직업을 하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며 하루를 보냈지요.
그리고 저의 그 막연함을 현실로 실현시키는 방법을 알려준 것이 문장이었습니다. 학교에선 알려줄 일 없죠, 당연히, 모르니까....가끔 문장에 오지 않았으면, 정확히 말해서 엄마가 저를 믿지 못하셔서 고등학교 진학 후에도 문장에 보내주지 않았더라면..하고 생각하면 앞날이 깜깜합니다. 고작해야 배치표 들여다보고 앉았겠죠.
남들보단 1~2년 빠를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문장 문특반에서 수업을 듣기 시작하며, 말 그대로 새로움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쓴 소설은 인간의 본질적인 내면과 그 속의 어두움이 항상 주제가 되어야 했기 때문에, 문장에서는 그 내면에 자리한 두려움을 마주하고 이것을 소설 속에 녹여내는 법을 배웠습니다. 당연히 학교에선 가르치지 않는 것이었고, 학교와 집만 오가며 문제집을 들이파야 하는 아이들은 생각할 겨를도, 필요성도 느끼지 못할 것들이었지요. 제가 앞에서 말한 새로움은, 단순히 소설과 시를 처음 쓰면서 느끼는 새로움보단, 더 나아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사람과 삶을 진지하게 마주하는 법을 배우는 데에서 느낀 새로움이었습니다. 여태껏 문제풀이에만 길들여져 있던 뇌의 깊이가 더 깊어지는 느낌이었어요.
중학교 3학년 땐 가볍게 학원을 다녔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때가 아무 생각 없이 가장 순수하게 즐거웠던 시절이었지요. 제가 조물주처럼 이야기의 배경, 사건, 인물 하나하나에 숨결을 불어넣는 것이 너무 재밌었고, 중하반기쯤에 막 시작한 학원 동아리 활동도 너무 재밌었어요. 중학생부가 있는 백일장보단 고교백일장이 더 많아서 언니오빠들 대학백일장 도느라 바쁠 때에도 전 널널해서 남이 제시한 주제에 맞춰 쓴 글보다 정말 제가 쓰고 싶은 글을 쓸 기회도 더 많았고, 또..상도 잘 터졌지요ㅋㅋㅋㅋㅋ
제 입으로 말하기엔 부끄럽지만 이땐 뭐..중학생부에 있다 보니까 상이 아주 잭팟이었지요..아마 백일장을 열한개 정도 나갔을 건데, 두 번 빼고 전부 상을 손에 쥐었습니다. 차상, 장원, 금상 등의 비중 있는 상도 꽤 받았지요..아..수시 준비하면서 저 상들을 딱 1년만 더 앞당겨 받았으면 얼마나 더더더더더 좋았을까 하는 상상을 자주 했습니다.ㅋㅋㅋㅋ
그렇게 핑크빛 생활에 젖어있다가 마침내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항간에 떠돌았다던, 예고에 진학할 것이라는 루머를 깨고 일반고에 평범하게 진학했지요ㅋ.
다행히 야간자율학습을 빼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중학교 때 받은 상장들을 모두 들고 담임선생님을 찾아가셔서, 생각보다 그리 큰 마찰은 없이 학원에 다닐 수 있었어요. 다만 일곱시부터 학원 수업이 시작하는데 일곱시에 심화반 수업이 끝나서 남들보다 한시간 더 수업을 듣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아 이건 엄마한테도 말씀 안 드렸던 건데..심화반 수학시간에 다른 수학문제집 풀다가 걸려서 다신 내 수업 들어오지 말라고 쫓겨났는데...같이 걸린 친구 둘은 안절부절하는 사이에 저는 옳다구나 하고 학원에 가서ㅋㅋㅋㅋㅋ 열시까지 꽉꽉 문장 수업 들을 수 있게 되었지요. 수학 뭐하러..흥...
(그런데 지금 곰곰히 생각해 보니까 이게 저의 3학년 불행의 씨앗이었습니다.;;)
고 1때까지만 하더라도 여전히 생활은 핑크빛이었지요. 아직 1학년이라 큰 입시의 부담감도 없었고, 이제 대학백일장들도 나갈 수 있어서 좋았고, 동아리 활동도 한창 물오를 때쯤이었거든요. 책 읽을 시간도 많았고요. 상을 거의 장려상만 타 와서 학교에서 별명이 장려상 킬러가 되었지만, 그래도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사실에 마냥 행복했습니다. 담임도 저한테 관심이 없는 건지 어쩐건지, 크게 마찰도 없었고요. 저는 아, 다행이다, 선배들 수기에서 읽었던 것만큼은 마찰이 별로 없네, 하고 안도했더랬지요.
그래요, 적어도 2학년때까지는 그랬는데..ㅠ
고등학교 3학년 때, 저는 헬을 맛보게 됩니다.
담임 배정을 받고 나서 교실에 들어가 보니까, 익숙한 얼굴이 있었습니다. 그래요...위에서 말했던 심화반 수학선생님이 제 담임이 되었던 거지요...하하..제 첫인상이 과히 좋지는 않았겠지요...
저는 고 2 1학기까지는 주 3일반이었지만, 2학기때부터는 매일반으로 돌린 상태였습니다. 3학년 준비를 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당연히 3학년 올라오고 나서도 매일 야자를 뺄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여기서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합니다.
하루는 담임이 상담이랍시고 저를 진학실로 불러내더니 앞에 앉혀놓고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했습니다. 학원을 주 2회로 돌리라는.. 3회도 아니고 2회를;;;;;;;;;;;;;평일에 한 번, 토요일에 한 번 다니라는 소리였어요. 아니 3학년때, 오히려 일주일 내내 다녀도 모자란 시점에 학원을 줄이라고;;; 중학교 때부터 오래 다닌 학원이니까 이제 끊어도 되지 않녜요. 그간 쌓아놓은 게 있을 테니. 당시 저는 입사로 대학에 갈 거라고 종이에도 적어 낸 상태였는데, 그걸 꺼내며 그러십니다. 네가 입사로 가면은 지금까지 받은 상들이며 활동들이 유효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시로 가면 그게 모두 무용지물이다... 애초부터 제가 입사로 가지 못할 것이다, 라는 전제가 아주 두껍게 깔려 있었습니다. 제가 써서 낸 희망 학과들이 경쟁률 쟁쟁한 신방과라, 문특으로 간다면 모를까 입사에서는 제 성적이 높은 편도 아니라고 하시면서(당시 아마 2등급 중후반대에서 맴돌고 있을 때였습니다) 저를 압박하시기 시작합니다.
속앓이가 심했어요. 2학년 때까지는 비교적 학원을 편하게 다닌 편이라, 이런 상황을 전혀 맞닥뜨린 적이 없어서 제 내공이 좀 부족했습니다ㅠㅠ 어찌어찌하다가 겨우 학원은 매일 다닐 수 있게 되었는데, 이젠 백일장에서 삐걱거리게 됩니다. 하필 대학백일장이 졸업앨범 단체촬영날이랑 겹치게 되는 바람에 또 마찰이 심하게 일어났습니다. 결국 엄마까지 학교에 오시고 나서야 일이 일단락되었습니다. 상도 큰 상 없이 자잘한 서너 개만 받아와서 담임한테 은근한 무시도 많이 받았어요. 마지막 백일장이었던 만해축전에서 마침내 장관상 하나 타며 기쁘게 마무리하게 되었는데, 상장 들고 학교 가서 보여드려도 왠일이냐? 하는 반응이 전부였습니다. 상금으로 진학실에 떡까지 돌렸는데...하하..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다 보니 대망의 입시철이 다가왔습니다.
학원에 입사 한두 군데 쓰는 애들은 많아도, 6개 전부 다 입사로 넣는 애는 드물었습니다. 선배한테도 말했더니 몸이 남아나지 않을 거라고 하더군요. 그 말 그대로에요. 후배님들, 한두 개면 몰라도, 6개 다 입사로 넣을 생각이 있다면 각오를 단단히 하셔야 됩니다. 정말 몸이 남아나질 않거든요ㅎㅎㅎㅎㅎ 그래도 입사가 가장 힘들지만, 가장 보람있습니다. 제가 여태껏 해 왔던 활동들을 깔끔히 갈무리해서 빛이 나게 갈고 닦아 이쁘게 리본까지 묶어서 남들한테 보여주는 거거든요.
2학기 되서부터는 공부도 아예 놨습니다. 사실 할 시간이 없어요. 자기소개서 6개 다 준비하고, 포트폴리오 만들고, 독후감까지 쓰고, 면접예상질문지 받아서 예상답변 정리해 모의면접 계속하고....집에 엑셀 최신판이 안 깔려있어서, 새벽까지 연습장에 포트폴리오 계획서 그린 거 들고 일요일 아침 7시에 피시방 가서 포트폴리오 다 만들어서 열시에 학원 가서 검사맡고 하는 나날들이 이어졌습니다. 완성본 보면 뿌듯하지만, 사실 아주 죽을맛이에요. 기분은 좋은데 몸은 힘들어 죽습니다. 뭐, 그래도 나중 가면 자소서도 다 요령 생깁니다.
중학교 때 문장 생활의 꽃이 3학년 1년 전체였다면, 고등학교 때 꽃은 이 시기를 꼽고 싶습니다. 특히 면접대비수업이요.
주로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 등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문특 면접과는 조금 달리, 입사 면접은 다루어야 하는 폭이 좀 더 넓습니다. 자신이 진학하려 하는 과에 관한 전반적인 이해는 기본이고 그 위에 과와 관련되어 있는 사회 전반의 현황, 시사 등등에도 찬반을 논할 정도의 견해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문장에서 받았던 면접 수업은 꿀이었지요. 특히 원장샘과 하는 면접 수업이 기억에 남습니다. 아마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도 이때 배웠던 것들은 요긴하게 쓰일 겁니다. 소설에 관련한 이론들, 국제, 정치, 경제, 사회, 예술 등 각 분야의 최신 시사들을 뽑아 수업을 진행하셨는데, 나중에 집에 가서 수업받은 것들을 정리해 답변을 만들다 보면 제가 엄청 유식한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어요. 수업받은 것들을 머릿속에 잘 정리해 놓으면, 나중에 면접에서 다른 질문이 나와도 여기저기서 배운 것들을 끌어다 답변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눈 깜짝할 새에, 문자 그대로 눈 몇 번 깜짝하고 나니까 본격적으로 원서 제출할 날이 되었습니다. 출발은 좋았습니다. 맨 처음 발표한 대학 세 개 일차를 모두 붙었거든요. 그 뒤에 세 개는 모두 떨어졌지만..ㅋㅋㅋ 그래도 면접 보러 왔다갔다하고, 가슴 졸이면서 합격발표 기다리고...(이것도 정말 문자 그대로에요. 심장이 아주 콩알만하게 쪼그라듭니다. 정말 대학 가기가 이렇게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아주 절실하게 들어요. 아..이때 이 감정은 말로 해도 안 와닿습니다. 직접 경험해야지. 저 같은 경우는 처음 최종발표한 대학교에서 예비 7번인가, 받고 나서 동국대 발표를 기다렸는데, 아침에 일어나도 붙게 해주세요, 화장실에서도 붙게 해주세요, 밥 먹으면서도, 수업 들으면서도....그렇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담임 콧대를 봐서라도, 정시는 죽어도 싫었거든요. 사실 면접 전에도, 면접 다 보고 나서 최종발표 기다리는 동안에도 공부따위 안 하고 맨날 책만 읽었습니다. 보다못한 친구들이 너 진짜 공부 안 한다..할 정도로. 겉으론 태연해 보이겠지만 속은 덜덜덜 떨었지요. 작정하고 기도하지 않아도 틈만 나면 저도 모르게 자동으로 손이 모아집니다. 나중에 엄마가 이때 제 얼굴이 못 볼 정도로 누렇게 뜨고 난리였다네요..ㅎㅎ;;)
그러다 동국대에 붙었고, 지금 이렇게 무사히(?) 수기를 올리고 있네요. 최종합격 발표 났는데, 담임한텐 축하한단 소리 한 글자도 못 들어봤네요. 어제도 학교 가니까 그냥 고지서 뽑아서 주면서 예치금 입금하라고만 하고...뭐, 기대도 안 했습니다. 너 안 붙을 수도 있다는 소리만 들었지, 붙을 수 있을 거란 소리는 절대 못 들었거든요, 담임 입에서.
쓰고 보니 정말 추억 넋두리가 되어 버렸네요. 그래도 후배님들을 위해 몇 가지만 더 말할게요. ^^:;
첫째, 동아리 활동도 중요하지만, 이걸 어떻게 관리하느냐도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아마 학원 내에 동아리가 몇 있을 거에요. 저도 중 3때부터 고 3때까지 학원 내에서 만든 한 동아리에서 주욱 활동했는데, 선배님들이 잘 관리해 준 덕이 컸지요. 우선, 이 동아리를 공식 기관에 소속화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활동한 동아리는 광주남구청소년수련관에 소속되어 있는데, 학원생들끼리만 알고 있는 동아리보다 이렇게 소속되어 있는 동아리가 나중에 인정받기도 쉽습니다. 공식 활동증명서를 뗄 수도 있고요. 담임 설득하는 데에도 좋아요. 3학년 올라와서 동아리 활동 때문에 토요 자습을 오전만 하고 빼야 했는데, 처음에 말 꺼낼 때는 딱 잘라 말하던 담임이 남구청소년수련관에 정식 소속되어 있는 동아리라고 하니까 보내주더군요. 또, 활동을 성실히 잘 하면 지원금을 탈 수 있다는 이점도 있습니다. 또, 인터넷에 카페를 하나 만들어서 틈틈히 활동사진 찍어 올리고, 보고서 올리고, 결과물 올리고 하세요. 이거 필요하나, 재지 말고 그냥 닥치는 대로 한 거 다 찍어서 올리고 하세요. 이건 필수입니다. 나중에 포트폴리오 만들 때 여기서 사진 많이 써요. 아니, 거의 다 써요. 하찮은 것까지, 나중에 어떻게 쓰일 지 모릅니다.
둘째, 고등학교 1~2학년 때는 책을 많이 읽는 것을 최대 목표로 삼으세요. 아마 다른 선배들, 이전 선배들 합격 수기에서도 빼놓지 않고 봐 왔을 이야기일 겁니다. 사실 필요성 느끼기가 쉽진 않죠. 그럼 그냥 필요성 느낄 생각 하지 말고 읽으세요. 어차피 3학년 되기 전에는 실감 안 납니다, 독서의 중요성. 이때가 여러 작가 책 두루 읽으면서 자연스레 좋아하는 작가를 만들기에 최적의 시기입니다. 3학년 닥쳐서 급하게 만들려고 해 봤자 이전부터 읽어왔던 아이랑은 차이가 현저하게 납니다. 두세명 정도는 문단 한 단락만 읽어도 어떤 작품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읽어두고, 남들이 읽지 않는 작가 작품을 읽어두는 것이 좋습니다. 나중에 3학년 되서 면접준비하느라 추려내다 보면 애들끼리 다 거기서 거기에요. 다 1~2학년때 누가 더 많이, 두루 읽어두었느냐에서 판가름이 납니다.
셋째, 백일장 하나하나에 진지하게 임하고, 늘 칼날을 새롭게 가세요. 이건 저처럼 2년 이상 오래 다닌 후배님들에게 특히 해 주고 싶은 말이네요. 아마 제가 고등학교 올라와서 상이 잘 터지지 않았던 것에 이것도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거라 생각이 드는데요. 백일장을 돈 지 일년이 넘어가면 백일장에 익숙해지는 시점이 옵니다. 매년 열리는 백일장이 거기서 거기니 장소도 익숙해지고, 시제 받아서 정해진 시간 내에 제출하는 패턴도 익숙해지고요. 그러다 보면 백일장이 여행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워낙에 전국을 돌면서 안 가봤던 데도 가고 하니까. 이 익숙함의 딜레마를 깨야 합니다. 물 흐르듯이 백일장 다니다 보면 상도 물 흐르듯이 옆을 스치고 지나가요. 또 백일장 오래 다니다 보면 이런 부류의 시제에는 이런 이야기, 하는 나름의 공식이 생길 겁니다. 그리고 그런 공식이 생긴 아이가 전국 백일장 키드들의 80%는 되고요. 남들이 하지 않는 20%의 생각을 해야 상을 타는 겁니다. 부원장샘께서 늘 말씀하셨다시피, 심사위원들 우리 글 다 안보는 거 아시죠? 지루함에 빠진 심사위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도록 새롭되, 주제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는 새로움을 추구할 수 있도록 늘 노력하세요. 이건 저도 잘 되지 않았던 부분이라, 후배님들에게 꼭 강조하고 싶네요..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백일장에 소풍 가는 거 아니에요.
넷째, 콩고물 떨어질 때를 기다리지 말고 늘 스스로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특히 글 검사 받을 때와 수시 준비할 때에 이걸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 선생님들께서 그냥 던지시는 것 같은 콩고물들도 사실은 다 하나하나 귀하고 소중한 아이디어입니다. 학원에 다니지 않고 홀로 백일장 도는 아이들은 돈을 주고서라도 받고 싶어하는 그런 아이디어들이에요. 그걸 우리는 매일 공짜로 받아먹고 있으니, 우리는 홀로 백일장 도는 아이들보다 배의 노력을 하는 것이 예의입니다. 무턱대고 샘ㅠㅠ 스토리 하나만 주세요..하는 것보다 허접하더라도 열심히 노력해 플롯이라도 짜 가야 그냥 받아먹는 것보다 배의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수시 준비하다 보면 정신이 없어요. 자소서, 포폴, 독후감 등, 검사맡아야 할 것들은 넘쳐나는데 순서는 자꾸 밀리죠. 순서 밀리는 것에 불만 가질 게 아닙니다. 사실 가질 수가 없어요, 우리한텐 한두개지만 그걸 검사하고 계시는 선생님들한텐 어마어마한 양이니까..그러니 불만 가질 시간에, 면접 대비용으로 책 한줄 더 읽고, 정보 하나 더 찾고, 스스로 해야 합니다. 선생님들의 말씀을 믿고 따르되, 너무 모든 것을 기대려 하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다섯째, 되도록이면 공부 놓지 마세요. 우린 모두 알고 있습니다. 학교 내에선 공부 잘하는 애가 곧 착한 애고, 성실한 애고, 좋은 애라는 것을. 억울하지만 절대 고쳐지지 않는 부분이지요..사실 제가 이런 말 할 정도로 공부를 빼어나게 잘 하는 아이는 아니었습니다. 공부 놓으면 아빠가 학원 줄 역시 놓으실 것을 알기에, 또 딴에 자존심은 있어서, 공부와 글쓰기를 병행했어요. 그러다 보니 2등급 후반대에서 그럭저럭 성적을 마무리했네요. 되도록 공부를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학교에서 무시 안 당하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공부하는 애들, 예체능 대놓고 무시합니다. 공부 놓지 않고 3등급 중반대 안으로라도 성적 유지하면 최소한 니가 어떻게 이런 대학을, 이런 소리는 안 들어요. 우리 글 쓰는 것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님을 학교 내에서는 아무도 안 알아주거든요.. 자랑으로 하는 소리 아니지만, 2학년 때 제가 축제 무대에 올린 연극 대본을 썼습니다. 그 무대로 대상을 받기도 했고요. 나중에 영어수업 시간에 그 연극이 화두에 올라서 누가 그 대본 썼냐길래 제가 썼다고 했더니, 너 공부도 좀 하지 않느냐고, 글 잘 쓰는 것은 진정한 재능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사실, 두 개 병행하는 거 힘들어요. 잘 되지도 않고요..시험기간마다 2주씩 학원 빠지고 시험공부하다 다시 학원 오면 감 찾느라 고생하고, 힘듭니다. 그래도 학교 내에서 무시 안 받으려면 공부를 놓지 않는 것이 좋아요. 좋아하는 거 하는 건데 무시당하면 진짜 서럽잖아요ㅠㅠ
그리고 여담으로 하는 소리지만, 9월달 초에 일주일 좀 넘게 원서접수기간이 올 겁니다. 이때 컴퓨터실은 자소서 쓰는 3학년들로 빈 자리를 찾을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분명 다른 아이들 자기소개서 첨삭을 요구하는 담임선생님이 있을 겁니다. 물론 공부 잘 하는 애들 자소서지요. 아...이것 때문에 속앓이가 또 심했지요..ㅠ 성격 탓에 똑부러지게 거절도 못 하고.. 전 수시 준비하면서 담임 손 탄 적 한 번도 없어요. 심지어 교사추천서도 제가 다 써서 드렸는데. 다른 애들은 컴퓨터실에서 빈 자리 찾아가며 겨우겨우 자소서 쓰지만 공부 잘하는 애들은 따로 모아서 진학실 뒤편 회의실에 자리 마련해주고 하루 종일 자소서 쓰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전 그 사이 낑겨서 자소서 첨삭을 해 줘야 했고요. 그렇게 내내 무시하더니, 필요할 때 되니까 담임 뻔질나게 저 불러서, 반 1, 2등 자소서 다 첨삭해 주고...저 뿐만 아니라 같은 반에 소설반인 친구 하나 더 있었는데, 저만큼은 아니지만 그 친구도 몇 번 불려갔습니다. 후배님들은 이럴 때 똑부러게 거절하는 야무짐을 가지세요. 꼭!
이제 정말 끝이네요. 제가 문장을 졸업할 날이 올 줄이야..늘 문 열고 들어가면 계단 오를 때부터 나는 냄새가 있어요, 문장학원 특유의 냄새. 눈 감고 갖다놔도 여기 학원이구나, 할 정도로 기억에 남아 있는데. 제 생활의 일부분이었는데 이제 졸업하려니까 이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가 쉽지가 않네요. ^_ㅠ
원장샘, 아 계속 남샘 남샘 하다가 원장샘이라고 하니까 입에 잘 붙지는 않는데..ㅎㅎ;; 사실 이따금씩 선배 언니오빠들 오셔서 상담실에서 원장샘과 편하게 이야기 나누고 할 때마다 좀 부러웠어요. 저는 늘 선생님 포스 때문에 글 검사맡을 때도 상담실 안에 같이 있지 못하고 맨날 나와있다가 부르면 들어가고 했었는데.... 그래도 선생님이 무심한 듯 던져주시는 아이디어, 스토리 하나하나가 얼마나 제게 큰 도움이 되었는지 몰라요. 늘 묵직하게 중심 잡고 계시면서 제가 알게 모르게 항상 큰 힘이 되어 주셨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아직도 선생님이 무서워요^^; 그래도 그 포스는 잃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ㅎㅎ 선생님의 수업을 또 언제 들을 수 있을까...싶네요. 아쉽습니다ㅠ
부원장샘, 제가 3학년 때 담임 때문에 힘들어할 때, 저를 믿어주시는 것은 선생님뿐이셨어요. 담임도 해 주지 않았던 격려와 믿음과 마지막 축하의 말까지, 선생님이 계서서 흔들림 없이 4년 동안 학원을 다닐 수 있었습니다. 수업 뿐만 아니라 동아리 활동도, 선생님의 적극적인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렇게 다양한 활동을 하지 못했을 텐데. 팔랑귀인 저를 끝까지 잡아주시고 믿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잊지 못할 거에요, 선생님, 대학 가고 나서도 자주 올게요. 제가 여기 아니면 어디 가겠어요 ㅠㅠ
노샘, 스스로도 동안이신 거, 알고 계시죠? ㅎㅎ 사실 옛날엔 교실이었던, 지금은 책방이 된 곳에서 노트북 자판 두드리고 계시는 선생님을 처음 뵜을 때는 누구지, 작가 지망생인가, 하는 생각에 인사도 안 드렸는데;;; 부끄럽네요..ㅎㅎ;; 늘 저희와 함께 한 교실에 계시면서 사소한 것까지 챙겨주시고, 퇴근하고 가셔도 저희 작품 봐 주시고...말로 표현한 적 없지만 그때도 정말 감사했고, 지금도 감사드려요. 그러니 작품 늦게 봐 주어서 미안하다는 말씀 안 하셔도 되요ㅠ 죄송한건 전데ㅠ 사실 선생님 결혼하시기 전에 백일장 같이 다니실 때, 선생님이 저희 때문에 주말에도 백일장 같이 다니고 하시느라 결혼이 늦어지시는 거란 말도 돌았었는데, 혹시 아세요?ㅎㅎ;; 그만큼 저희를 늘 먼저 생각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김샘, 비록 오래 지내지 못해서 선생님 수업을 들은 적도 몇 번 없지만, 모의면접 준비할 때 이런저런 사이트며 자료까지 알려주시며 저를 챙겨주셔서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사실 좀 막막했었는데, 선생님 덕이에요. 제가 답변 막힐 때마다 선생님께서 알려주시는 것들, 꼼꼼히 정리해 두니까 다 그게 피가 되고 살이 되더라고요. 졸업 후에도 자주 찾아뵐게요. 감사합니다 ㅠ
마지막으로 학교 친구들과는 하지 못하는 이야기들, 수시 준비 얘기들, 소설 이야기들을 늘 터놓고 나눌 수 있어서 정말 고맙고 소중했던 문장 친구들, 서울에서도 자주 만나자. 고맙고, 사랑해.
문장은 제게 학원 그 이상의 존재에요. 생활이죠, 학교 집 학교 집 이렇게 도는 것처럼, 밥먹고 자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끼어 있는... 문장 다니면서, 글을 쓰고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정말 제 학창시절을 보람있게 보냈네요. 이건 제가 면접때 하고 싶은 말 하라 했을 때 한 말인데, 글 쓰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나름 소설 썼다는 앤데, 이 기분을 글로 다 표현 못 하겠네요... 정말 귀중하고 행복한 시간들이었어요. 지금까지 행복했고, 앞으로도 행복하겠죠.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하니까. 그런 행복을 알려준 문장 선생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제 정말 끝내야 하는 타이밍이네요. 모니터에 눈물 떨어지기 일보직전이라 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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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동안 고생많았다.
이렇게 환한 날이 올 줄 알았다.
넌 전구형 얼굴이니까.
축하한다. 혜원아.
후배들에게 도움 많이 될 거야.
난 동안이야. 안녕
정말 딸 자식 키워서 시집 보내는 기분이구나. 이젠 정말 잡고 있던 손을 놓는 것 같아서..... 목울대가 ... 흠흠....
혜원이랑 영준이, 주원이, 건녕이, 도영이.... 사실 내가 이뻐하던 애들...
네 꿈을 이루는 데에 조언이 필요하거든 언제든지 연락하렴.
언제나 네 편이 되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