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공화국] 유정수 - 시놉시스
2005 특별기획 주말드라마
제5공화국
-SYNOPSIS-
기 획: 신호균
극 본: 유정수
연 출: 임태우
김상래
방 송: 2005년 1월
1. 기획의도
<제5공화국>은 사실(fact)만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작가의 상상력만으로 만들어내는 허구(fiction)도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사실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작가의 상상력이 추가된 팩션(faction=fact+fiction)이다. 이 팩션의 성공여부는 역사의 맥락을 얼마나 정당하게 묘사하는가에 있지 세세한 사실에 들어맞느냐, 아니냐 하는 것 등에 있지 않다.
영원한 역사의 잣대는 국민의 의사여야 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영원한 이정표가 바로 국민 주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5공화국인가?
한 시대를 마감하는 출발점에 전두환과 노태우가 있기 때문이다.
IMF이후 정리해고가 판을 치던 2001년경 거리에서는 ‘전두환처럼 해야 돼!’라는 말들이 택시운전사들을 중심으로 떠돌았다. 택시운전사들이 누구인가? 바로 민심의 척도이다. 이들은 ‘전두환시대가 살기 좋았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 때문이다.
‘자유와 빵’중에서 국민 대다수가 자유보다는 안전한 빵을 원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국민들 대다수가 독재를 원했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전두환이 옳지 않은 방법으로 정권을 잡고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은 천지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는 사형선고도 받았었고, 전직 대통령으로서 2년 이상의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면서 죄의 대가를 치렀다. 하지만 그의 권력욕으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2년 정도의 기간은 너무 짧은 것일 수도 있다.
전두환 신군부는 군부내 사조직인 하나회라는 패거리를 중심으로 권력을 잡고 자신들만의 행복을 추구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반대하는 이들에게는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그래서 박정희를 뒤이어 부당한 권력과 동조해 타인의 불행에 눈감은 이들이 행복을 독점하는 시기가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아직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를 거쳐 성장한 독재잔존세력들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다.
그것은 우리가 일제 치하에서 광복을 맞이하고 이승만정권이 들어섰을 때, 친일파 제거를 위한 반민특위를 구성하고서도 정치적 책략에 밀려 친일파 청산이 안됨으로써 이 나라의 도덕이 땅바닥에 떨어져 아직까지도 친일파 후손들이 우리 사회의 주류로 행세하고 있는 것과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이제야말로 전두환시대를 마감해야 할 때다. 왜냐하면 이 땅에 소수의 행복이 아니라 다수가 행복해지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이다....그것은 개인과 집단의 이익만 생각하는 일부 사람들이 아무리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희망이 있는 나라를 꿈꾸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다. 마찬가지로 과거란 그저 덮어버린다고 하여, 그리고 그저 잊어버린다고 하여 자동적으로 청산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미래는 과거와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현재를 매개로 하여 과거와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과거가 만들어놓은 매듭을 올바로 풀지 않고서는 아무리 우리가 앞을 향하여 나아가려고 해도 더욱 더 그 매듭을 꼬이게만 할 뿐 허사가 되고 만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묵은 상처를 다시 헤집어내서 국민화합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앞날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는데, 언제까지나 과거의 일에 연연해 있으려고 하느냐는 질책성 문제 제기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문제제기가 역사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진정한 민주화를 바라는 국민들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정치적 불감증과 역사적 무지의 산물이라 생각한다. 어떻게 과거 정권의 부당성과 부정축재비리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딱지가 가라앉고 또 아물어간다는 것인가?
문제는 이 나라에 한 국가의 상징인 대통령이 “국민이 역사의 주인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다시한번 다짐하고 싶다...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나는 그렇게 드라마를 쓰고 싶다. 또한 우리의 현대사를 우리의 젊은이들이 다시한번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지는 것이라는 편한 마음가짐으로 [5공화국]을 시작하고 싶었고, 또 그렇게 이 드라마의 끝까지 갔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2. 줄거리
1979년 10월 26일. 부마사태로 부산과 마산에 위수령이 내려진다. 정국이 혼란에 빠져가자 대통령 경호실장 차지철은 박정희의 절대 신임을 등에 업고 김재규 정보부장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궁지에 몰린 김재규는 그날 밤 궁정동 안가에서 대행사가 있을 것을 알고 이를 이용, 차지철을 제거할 거사를 계획한다. 권총에 실탄을 장전하며 복수심에 불타는 눈으로 결의에 찬 김재규의 눈이 빛난다.
김재규는 거사를 위해 미리 정승화 육참총장을 궁정동 안가에 불러들이고, 대통령 비서실장인 김계원에게 차지철을 응징할 것이라는 암시를 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직속부하들인 박흥주와 박선호 등에게 거사 직전 자신의 거사 계획을 알리고 동참하도록 만든다.
심수봉의 기타반주에 맞춰 신재순이 노래를 부르는 도중, 김재규는 마침내 차지철에게 권총을 발사하고 곧이어 박정희에게도 총을 쏜다. 18년간 대한민국을 지배하던 절대권력자가 숨을 거두는 순간이었다.
한편, 김재규의 초청으로 궁정동 안가에 와있던 정승화 육참총장은 김재규의 말을 듣고 차지철이 박정희를 저격했으며 청와대에서 쿠데타를 지휘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 사태수습에 나선다. 그러나 그 시각 사건 현장에 있었던 김계원은 박정희의 사망을 확인하고 최규하 총리를 찾아가 김재규가 박정희를 저격했음을 밝히고 이를 안 김재규는 최총리와 김재규를 육본으로 들어오도록 종용한다.
전군에 비상조치가 내려지고, 김재규는 육본 벙커 상황실에 모인 군수뇌부들에게 전국에 비상계엄조치를 내릴 것을 강력히 주장하지만 최규하 총리 일행의 도착과 함께 계엄조치에 대한 결정은 쉽게 내려지지 않는다. 국무위원들과 군수뇌부들은 김계원으로부터 박정희를 저격한 것이 김재규라는 사실을 듣게 되고 결국 정승화는 김재규 체포에 성공한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최규하 총리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정승화 육참총장은 계엄사령관이된다. 그러나 최규하 총리의 경우 김재규가 범인이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범인에 의해 장악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곳으로 무방비상태로 들어갔다는 것, 정승화 육참총장의 경우 10.26 사건 당시 궁정동 안가에 있었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전두환이 정승화 총장을 연행할 명분이 되어 신군부로 하여금 그를 제거할 기회를 주게 된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합동수사본부장으로서 10.26사건을 수사의 총책임자가 된다. 전두환은 김재규를 조사과정에서 김계원과 정승화, 그리고 최규하의 석연치 않은 대응태도에 대해 알게 되고, 이를 처리하는 문제에 대해 참모들과 고민한다.
박정희라는 절대권력자의 죽음은 국민들에게 절망과 민주화의 봄에 대한 희망을 동시에 가져왔다. 김종필, 김영삼, 김대중씨 등 3金씨는 저마다 정국의 향방에 주의를 기울이며 대권을 꿈을 키워가고, 재야세력들 역시 이때가 조국 민주화의 절호의 기회라고 여겨 재야세력 규합, 민주화 촉구 모임 등을 활발히 하지만 계엄사에 의해 저지된다. 한편 미국은 한국의 정국이 혼란스러워지자 북한의 도발을 우려, 최규하 과도정부에 민주적 절차를 거쳐 평화적으로 정권을 이양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새롭게 위상이 강화되기 시작한 전두환 합수본부장을 주목한다.
정승화 계엄사령관은 위상이 강화된 전두환 중심의 하나회 정치군인들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던 차에 전두환이 합수본부장이라는 직책을 이용, 차관들을 불러들여 지시를 하는 등 정치에까지 직접 관여하자 전두환을 위시로 정치군인들을 축출할 결심을 한다. 이 같은 정승화의 계획을 알아차린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세력은 자신들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10.26 당시 궁정동 안가에 있었던 경위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연행을 감행하기로 한다. 허화평, 허삼수, 이학봉 등의 보안사 참모들이 치밀한 계획에 따라 정총장 연행과 연행을 위한 총리 재가를 동시에 시도하지만 최규하 총리가 재가를 하지 않음으로 해서 12·12 사건이 발발한다.
병력들이 출동하고 서울 시내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는 등 정총장 측과 전두환 측의 사투가 벌어지지지만 이미 군을 장악한 전두환은 정총장 연행에 성공하고 결국 쿠데타에도 성공, 전두환은 단숨에 실력자로 부상한다.
하지만 한미군사협정을 무시하고 미8군사령관의 지휘하에 있는 전방부대병력을 움직인 문제로 미국은 전두환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에 전두환은 美CIA 서울지국장 브루스터와의 개인적 교분을 이용, 미국 측에 접근해간다. 신군부의 12.12 군사쿠데타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위컴 미8군사령관에게 글라이스틴 美대사는 이미 계엄상황에서 군내부를 장악한 전두환의 위상을 무시할 수 없음을 강조하고, 브루스터 역시도 전두환이 미국에 협조적인 인물이며 군을 효과적으로 장악하고 있다는 이유 등으로 전두환 쪽에 무게를 실어준다.
쿠데타의 성공으로 신군부세력은 군을 완전히 장악하고 그중에서도 쿠데타를 주도한 육사11기의 위상은 최고의 위치에 올라서게 된다. 전두환은 명실상부한 막후 최고실력자가 된다. 이제 허화평 등 그의 참모들은 서서히 그가 직접 정권을 잡을 것을 권유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최규하 대통령의 과도 정부가 들어서고 제야세력과 대학생들은 고조되어가는 민주화의 열망 속에 ‘서울의 봄’을 준비하고 최고실력자 전두환 역시도 과도 정부 이후 대권을 위해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한다. 한편 군내부에 잔존한 정승화 추종 세력은 전두환 제거를 위한 역쿠데타 도모하며 미국 측에 협조를 요청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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