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사마골 오백금(賈死馬骨 五百金) 죽은 천라마 뼈를 사오는 지혜가 필요하다
郭隗曰(곽외왈)-곽외가 말하기를
古之人君有以千金(고지인군유이천금)-옛날 한 임금이 천금을 주고
使涓人求千里馬者(사연인구천리마자)-관리를 시켜 천리마를 구하려 보냈는데
馬已死(마이사)-말이 이미 죽어버려
買其骨五百金歸(매기골오백금귀)-관리가 죽은 말의 뼈를 오백금을 주고 사가지고 오자
君大怒(군대노)-임금이 크게 노하거늘
涓人曰(연인왈)-관리가 말하기를
死馬且買之(사마차매지)-사람들은 죽은 말뼈도 오백금을 주고 사는데
况生者乎(황생자호)-산말은 얼마나 비싸게 사겠느냐고 생각 할 겁니다.
馬今至矣(마금지의)-곧 반드시 천리마를 팔려고 들어올 것입니다.
사기 창승일(史記蒼蠅日)
중국 춘추전국 시대 때 연나라는 제나라의 공격을 받아 영토의 절반을 빼앗겼다. 연나라 소왕(昭王)은 즉위하자 빼앗긴 영토 회복을 위해 인재를 구하는데 힘썼다. 어느 날 소왕이 재상 곽외(郭隗)에게 인재를 구하는 방법을 묻자, 곽외는 이렇게 말했다.
『옛날 한 임금이 천금을 주고 천리마를 사려했으나,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말단 관리가 천리마를 구해오겠다고 자청해서 그에게 천금을 주어 보냈습니다.
그 관리는 고생 끝에 겨우 천리마가 있는 곳을 알고 급히 갔으나, 애석하게도 그가 가보니 말은 이미 죽어버린 뒤였습니다.
그런데도 그 관리가 죽은 말의 뼈를 오백금을 주고 사가지고 돌아오자, 임금은 크게 분노해서 말했습니다.
난 살아있는 말을 원했다. 누가 죽은 말의 뼈를 오백금이나 주고 사오라고 했느냐?
그러나 말단 관리가 대답하기를
임금님 제 말을 들어 보십시요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죽은 말도 오백금을 주고 사는데 하물며 산 말은 얼마나 비싸게 사겠느냐고 생각할 겁니다. 아마 머지않아 반드시 천리마를 팔려고 몰려 올것입니다. 과연 몇 달이 안가서 천리마가 세 필이나 들어왔다고 합니다.』
『지금 임금께서 진정 인재를 구하시려 한다면, 먼저 저 곽외부터(선시어외先始於隗)선생의 예로 대하십시오. 임금님께서 저 같은 자가 그런 대우를 받는다면, 저보다 훌륭한 자가 어찌 천리길을 멀다하겠습니까?』
소왕은 그의 말을 받아들여 황금대(黃金臺)라는 궁전을 세워 곽외를 스승으로 극진히 예우했다. 이 소식이 퍼지자 명장 악의(樂毅),음양가의 시조인 추연(鄒衍) 등 천하의 인재들이 모여 들어 소왕은 이들 인재의 도움을 받아 제나라를 정벌했다.
이것이 유명한 곽외(郭隗)의 천리마지골(千里馬之骨)이며 자천(自薦)의 고사인
“주머니 속의 뾰족한 것이 밖으로 삐져 나온다(처낭중 내영탈이출(處囊中 乃穎脫而出))” 이 다.
지금 전세계가 기름값 폭등에 살아남기위해 전 국력을 모은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미국 소고기 수입으로 온나라가 촛불에만 정신이 팔리고 있다.
화룰차 레미콘등 온나라가 파업을 하고있다.
가정이고 국가고 어려움이 처하면 해결책을 모으는기 위해 머리를 맞대어야 한다
파업과 시위말고도 국민의 생각을 정부에 알리는 길이 얼마든지 있다.
개인이고 가정이고 국가고 습관 나름이다. 차분하게 시비를 따지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있고 툭하면 술을 먹고 고함을 지르고 욕을하면서 폭력으로 풀려는 사람이 있다.
이제는 촛불시위도 할만큼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처럼 너무 과한 것은 모자란 것 보다 못하다.
지금은 소고기가 아니라 그 어떤일로도 시간 낭비할 때가 아니다.
국회의원들도 툭하면 어깨띠 두르고 밖으로 나가는 촌스러운짓 이제 그만하고
국민을 위한 법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선출받은 의원의 의무요 도리다.
정말 기름값여파로 물가를 잡지못하고 사회및 경제불안이 과중하면
소고기는 고사하고 고구마밥도 제대로 못먹을 때가 올지 모른다.
아직까지는 배가 덜 고플때 대책을 세워야 한다.
진정으로 애국하는 마음으로 권력을 버리고 권위를 회복하여 정부나 국민이
죽은 천리마 뼈를 사오는 지혜를 생각해야 한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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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독작(月下獨酌) 달 아래 홀로 잔을 들며
花下一壺酒(화하일호주)-꽃 아래 한 병 술을 놓고서
獨酌無相親(독작무상친)-친한 벗 없어 홀로 앉아 마시노라
擧盃邀明月(거배요명월)-잔 들자 이윽고 달이 떠올라
對影成三人(대영성삼인)-그림자 어우러져 셋이 되었네!
月旣不解飮(월기부해음)-달이야 원래부터 못 마신다만
影徒隨我身(영도수아신)-그림자는 부질없이 따라만 하네.
暫伴月將影(잠반월장영)-달과 그림자를 함께 데리고서
行樂須及春(행락수급춘)-같이 즐기는 이 기쁨이여
我歌月徘徊(아가월배회)-내 노래하면 달도 거니는 듯
我舞影凌亂(아무영능란)-내 춤을 추면 그림자도 따라 추네
醒時同交歡(성시동교환)-술깨이면 함께 즐기는 것을
醉後各分散(취후각분산)-취한후면 모두 헤어지니
永結無情遊(영결무정유)-길이 이 정을 서로 맺어
相期邈雲漢(상기막운한)-다음날 은하에서 또 만나리.
이백(李白)
중국은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대를 통일한 수(隋)나라를 거치면서 중국대륙을 약 300년간 통일정권을 유지한 당(唐)나라는
고도의 문화를 수립하였고 이어 등장한 통일국가 송(宋)대에 완성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이름도 여기에 기인된 것이다.
당(唐)시대에도 초당(初唐) 중당(中唐) 성당(盛唐) 만당(晩唐)으로 나누는데 이백(李白)은 가장 화려했던 성당(盛唐)시절의 시인이다.
필자는 우리시대에 필요악(必要惡)이라는 컴퓨터가 존재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이 컴퓨터의 전파를 통해서 만고(萬古)의 대시인(大詩人) 이백(李白)과 두보(杜甫)의 시를 친구들과 같이 나누어 읽고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 통신망이 없고 일일이 편지를 쓴다고 하면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말이 있듯이 필자 또한 한시를 소개함으로 인해서 다시 읽게 되는 것도 좋은 배움의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사실 시문학(詩文學)을 직업으로 하는 문인(文人)이나 고전문학(古典文學)에 특별히 취미가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라 해도 요즘처럼 바쁘고 다양한 생활문화속에서 노래방이나 TV드라마 외국여행이나 등산 가기는 쉬워도 당시(唐詩)나 한시(漢詩)를 읽어 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일생동안 단 한번이라도 한시(漢詩)를 읽을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달과 술의 시인 이백!
이백(李白)의 시를 읽으면 “술”은 건강과 인생을 망치는 악마가 아니라 인생은 낭만이요 순정이요 눈물이며 사랑으로서 희로애락의 반려자(伴侶者)가 되는 것이다.
위의 시는 이백의 시중에서도 달과 술을 내용으로 한 대표작에 속하며 그의 우주와 인생관이 여실히 들어나는 시이다. 시 제목인 월하독작(月下獨酌)이 시 내용의 전부를 잘 설명하고 있다.
꽃잎이 한두잎 떨어지는 교교(皎皎)한 달빛아래 혼자 잔을 들고 있는 시인!
꽃, 달빛, 술, 시인, 그림자, 은하수, 우주와 자연, 그리고 시인!
시의 서두에서 혼자 외로이 술을 마시는 듯 짐짓 너스레를 떠는 듯하더니 곧 바로 그의 시세계로 들어가 달과 우정을 맺고 후일 은하수 저쪽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다. 시인의 넓은 사고와 우주관을 엿 볼 수 있는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자유에로의 나아감이 참으로 느껴지는 이백다운 시이다.
이 시를 읽는 우리도 멋을 아는 사람이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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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오당감흥시(樂吾堂感興詩) 험한 세상 지혜롭게 살아야
居卑急於進(거비급어진)-낮은 지위에서 출세하기 급급하면
所與亦匪人(소여역비인)-사귀는 사람 또한 나쁜 사람일 것이니라.
若跣不視地(약선불시지)-맨발로 땅을 살피지 않고 걷고
行險幾危身(행험기위신)-험한 데 다니면 몸이 위태로워지노라.
河流當前急(하류당전급)-강이 흘러 큰물이 내 앞에 닥쳐올 때
欲度須問津(욕도수문진)-건너려 하거든 반드시 나루터를 물어라.
小安且勿躁(소안차물조)-조금만 안정하여 조급하게 굴지 말라.
勇往恐淪湮(용왕공륜인)-날래게 나가서는 빠져들까 두려워라.
이달충(李達衷)
조용한 시간에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걸어온 지난 세월 가만히 돌아본다.
『여보게, 내 오늘 당신 사는 것을 보고 너무 답답하여 진심으로 충고를 하는 것이니 내말을 보석처럼 듣게나.
당신은 참 답답할 때가 있네. 출세를 하려면 사고방식을 바꾸어야 하네. 이제는 매년명절 고향 부모님 찾아가는 것을 중지하고 높은 사람께 세배를 가기를 충고하네.
인간관계는 철저히 이해관계를 따지고 맺어야 성공할 수 있네. 친구라고 덕도 안 되는 사람들을 우정이니 의리니 하는 것은 시간 낭비네
TV 동물의 왕국에 먹이를 발견한 하이에나들이 떼를 지어 사냥하는 광경을 보지 못했는가. 정말 좋은 교훈이네.
출세를 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상대가 누구든 간에 악착같이 달려들어
물어뜯어야 승리자가 될 수 있네.
출세하는 자들은 항상 거짓말을 잘하고 상대방을 의심하며 경계하는 훈련이 잘 되어 있네.
국회의원이다 사장이다 하는 자들의 대부분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은 좋은 교훈임을 명심하게.
거짓말과 의심을 부도덕한 행동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은 출세를 할수 없는 자들이네.
적당하게 눈치껏 사는 것이 장땡이네.
법은 무슨놈의 법을 지켜? 신호등도 적당히 어기고 눈치껏 쓰레기도 버리고
10억팔면 3억만 매출신고하는거야,
시골에 가짜 농부증명서로 땅 사는 사람들 많아, 능력 있는 사람들이야,
주민등록 자주 옮기는것이 능력있는 사람들의 이력이야---
찬스만 있으면 투기든 사기든 횡령이든 무조건 돈을 긁을 줄 아는 결단력이 출세의 큰 힘이네.
넓은 강은 맑은 물 탁한물을 가리지 않는 것이네.
웬만한 큰 문제는 돈으로 해결하고 정 안되면 감옥에 갔다오는 시늉만 하면 되네. 높은 벼슬을 지낸 자들이 돈을 먹고는 검찰청에 끌려와 신문에 사진찍히는 모습못보았어?. 그것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 돈만 있으면 명예는 언제든 회복되네.
당신같이 평생 파출소 한번도 못가고 경찰관이라면 벌벌떠는 쫌생이 짓으로는 평생 기한번 못펴고 살어.
출세의 첩경은 아부라 것을 잊지말게.
아부 앞에는 염라대왕도 분별을 잃고 죽을 놈을 살리는데 하물며 이 땅의 속물들에게는 무슨말이 필요 하겠는가.
목에 힘주고 성인군자인양 점잔빼는 자들도 아부앞에는 실눈 웃음을 짓고 입이 귀밑까지 찢어지네.
아부 잘하고 출세 못하는 자 보았나?
아부는 출세 가도의 최고단계의 능력이라는 사실만 깨달으면 당신의 출세는 보장받은 것이네.
눈치껏 빼돌릴 것은 빼돌려 놓고 마누라와 자식들은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적당한 외국에 살게 하고 여차하면 내 한몸만 빠져나가면 되는 것이네.
이보게! 내가 이렇게 금과옥조같은 교훈을 주는데도 당신은 귀를 기울이지 않는것을 보니 출세는커녕 평생 좀스럽게 게우 밥이나 먹고 사는 주제를 면치 못하겠군. 한다는 짓이 애들하고 인라인이나 타고 새가슴보다 더 작은 뱃장이니 맨날 비실비실 사람노릇 제대로 못하고 점잔은 자리에 앉지도 못하지.
에이, 바보 머저리 같은 사람 붓들고 괜이 시간만 버렸어.
모처럼 큰 맘먹고 좋은 충고 해준 보람도 없이 기운만 뺐나,
쯧쯧 쯧쯧!?』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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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양지 밤에 홀로 임금을 그리며
終宵默坐算歸程(종소묵좌산귀정)-밤새도록 홀로 앉아 돌아온 길 헤아리는데
曉月窺人入戶明(효월규인입호명)-새벽달 사람 엿보며 문에 들어와 밝도다.
忽有孤鴻天外過(홀유고홍천외과)-갑자기 외기러기 하늘 밖에서 지나가니
來時應自漢陽城(래시응자한양성)-올 때는 응당 한양성에서 출발했으리라
이항복(李恒福)
조선 15대 광해군이 자신의 왕위를 지키기 위하여 부왕인 선조의 적자인 영창대군을 죽이고 그의 어머니인 인목대비를 폐위시키려는 계략을 세우고 있었다. 이항복은 이것을 반대하다가 함경도 북청(北靑)으로 유배를 당하였는데 귀양지에서 죽기 전에 한양에 있는 광해군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이다. 중국의 관중과 포숙아 못지않게 충신과 우정으로 유명하던 오성(鰲城) 이항복(李恒福)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이 이 사람이다.
사실 광해군은 청백리요 충신인 이항복을 무척 사랑했는데 주위의 반대파에 밀려 귀양을 보내게 된 것이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선조의 정비인 의인왕후가 죽은 후 선조는 다시 새 왕비를 맞는데 인목왕후(인목대비)이다. 인목왕후는 영창대군과 정명공주를 낳는데 이때부터 조정은 권력다툼이 시작된다.
의인왕후가 낳은 장자 임해군과 광해군이 있는데도 선조는 영창대군을 총애하였고 그를 세자로 세우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때 선조의 뜻을 잘 읽은 사람이 바로 영의정 유영경이다. 유영경은 선조의 의중을 따라 광해군 흔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항복, 이덕형, 이원익, 등 조정의 중신들은 광해군이 임진왜란 시절에 새운 공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러한 선조와 유영경의 시도를 결사적으로 막는다. 마침내 선조는 병이 들어 죽고 결국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게 되고 이때 이항복은 광해군을 도와 전쟁 직후의 국가 혼란상을 극복하는데 큰 도움을 주게 된다.
이후 정치적 입장이 다른 대북파의 이이첨 등이 주장한 인목대비 폐모론에 반대하다가 삭탈관직당하고 북청으로 유배되어 죽음을 맞은 것이다.
옛날의 왕이나 지금의 대통령에게는 헌신적으로 충성을 다하여 최고 리더를 보좌하는 브레인(brain)이 절대로 필요하다. 주군(主君)을 위해서 목숨을 담보할 정도는 되어야 참모라 할 수 있다.
출세를 하기위한 기회주의자를 주변참모로 둔 지도자만큼 불행한 사람은 없다. 잘 될 때는 전부 자기가 세운 공(功)처럼 생색을 내다가 어려움이 닥치면 전부 주군(主君)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제 몸 사리기에 급한 것이 요즘의 세상이다.
운명을 같이할 충신을 볼 수 없는 것이다.
새삼 백사 이항복 같은 충신이 그리워지는 세상이다.
고신원루(孤臣寃淚)
『철령 높은 봉에 쉬어가는 저 구름아
외로운 신하의 한 서린 눈물을 비삼아 띄어다가
님계신 구중심처에 뿌려본들 어떠리』
이 시조는 이항복이 북청으로 귀양 가면서 함경도 철령 고개를 넘으면서 임금(광해군) 이 그리워 지은 글이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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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낮이 차츰 길어지네
燕子將雛語夏深(연자장추어하심)
제비는 새끼와 지저귀니 여름은 깊어가고
綠槐庭園不多陰(녹괴정원부다음)
정원의 느티나무엔 아직 녹음이 짙지 않도다.
西窓一雨無人見(서창일우무인견)
서창에 비 내리니 사람은 아무도 안 보이고
展盡芭蕉數尺心(전진파초수척심)
파초는 깊디깊은 사람의 마음을 펼쳐 보이는 듯하구나!
왕조(王藻)
어느덧 하지(夏至)도 얼마 남지 않고 올해는 더위도 빨리 오는 것 같아 본격적인 여름이다.
지금은 도시에다 아파트 생활을 하니 제비보기가 매우 힘들다. 공원이나 한강가에 나가보아도 비둘기는 귀찮을 정도로 사람가까이 오지만 제비는 보기 어렵다. 흥부(燕興夫)에게 박 씨를 물어주는 선행의 새라서인지 도시나 시골에서도 제비는 매우 신성한 대접을 받는 새다.
연흥부(燕興夫)는 燕-제비연 興-흥할흥 夫-사나이부 자로 이름 풀이를 하면 제비로 인하여 집안이 일어났다는 뜻이다. 연놀부(燕 奴+乙 夫)는 燕-제비연 奴+乙노예놀 夫-사나이부 자로 제비로 인하여 집안이 망하여 노예처럼 되었다는 뜻이다. 같은 제비로 인하여 흥망(興亡)의 갈림을 보면 하찮은 미물에게도 선(善)한 공덕(功德)이 얼마나 크고 귀한 것임을 말해준다. 이것은 필자의 개인적 생각이다.
※참고- 놀자를 서버가 인식을 못해서 “奴+乙”로 표기 하였음.
지금쯤 제비새끼도 상당히 클 때다. 여름날 마루에 한가하게 누워서 처마 밑에 있는 제비집으로 먹이를 물어 나르는 어미를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보통 3~4마리는 되는데 제각기 노랑 입을 벌리는 새끼에게 빠른 동작으로 벌레를 집어넣고 다시 사냥을 나간다. 굼벵이 나비 메두기새끼등 먹이도 다양하다.
여름이라 텃밭의 상치는 유들유들하지만 이제 올라오는 옥수수 잎을 보면 깊은 여름은 아니다. 때로는 여름비가 내릴 때가 있다. 시골에는 비가 오면 사람발길이 뚝 끊긴다. 주위는 조용한 적막이 흐른다. 돼지우리도 조용하고 마루 밑에 있는 삽살개도 조용하다. 간혹 똥파리가 윙 하고 날라들어 정적을 깬다. 마당에 두꺼비가 어정어정 기어 마루 밑으로 오는 것을 보면 비가 좀 많이 올 것 같다.
돌담 밑에 심어놓은 넓적한 토란잎에서 약수터의 홈대처럼 빗물이 쪼르르 흐르고 멀리 산모퉁이는 비안개로 뿧여게 시야를 흐린다. 처마의 낙숫물이 마당에 떨어져 마치 배구코트의 라인같은 홈이 파이고 마당을 가로지른 빨랫줄에 제비가 자주 앉으면 올 여름도 다가는 것이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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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우(驟雨) 여름 소나기
牛尾烏雲潑濃墨(우미오운발농묵)-소꼬리 쪽 검은 구름은 먹물 뿌린 듯
牛頭風雨번車軸(우두풍우번거축)-소머리 쪽 비바람 두레박 물 쏟는 듯
怒濤頃刻卷沙灘(노도경각권사탄)-성난 물결 삽시간에 백사장을 휩쓸고
十萬軍聲吼鳴瀑(십만군성후명폭)-십만 군대 함성처럼 폭포지는 물소리
牧童家住溪西曲(목동가주계서곡)-개울 서 쪽 모퉁이 집에 사는 목동이
侵早騎牛牧溪北(침조기우목계북)-이른 새벽 소 타고 풀 뜯기러 갔다가
慌忙冒雨急渡溪(황망모우급도계)-비 맞으며 황망히 개울물을 건넜더니
雨勢驟晴山又綠(우세취청산우녹)-씻은 듯 비가 개고 산은 다시 푸르러
화악(華岳)
우리 어렸을 시절 지금쯤이면 벌써 매일 냇가에서 살고 있다.
밑만 안터진 삼베고쟁이에 머리는 기계독으로 부스럼이 동전처럼 붙어있고 윗도리는 아예 입지도 않아서 초여름인데도 새까만 흑인이다.
제대로 먹지를 못해 팔꿈치 뼈가 튀어나온 팔이지만 그래도 반질반질하게 윤기가 난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흘러내린 누런 코를 연신 빨면서 반디에 대낙시대를 하나씩 들고 당내천으로 내닫는다. 돼지마구에 풀 베어 넣어라 는 어머니 야단은 귓전으로 흘린다.
쑥을 뜯어 귓구멍에 밀어 넣고 삼베고쟁를 발끝으로 걷어차고 개구리처럼 뛰어든다. 바닥이 훤히 보이는 수정 같은 맑은 물이다. 물속에서 눈을 뜨고 별짓을 다한다. 물고기를 찾기도 하고 개구쟁이는 동무의 거시기를 만지다가 서로 엉겨 물을 먹기도 한다.
한참을 물속에 있다가 밖에 나오면 귀에 물도 들어가고 눈은 벌겋게 충혈 되고 머리도 띵 하다. 옆을 보면 기다란 여치가 풀 위를 어정거리고 논두렁 콩심은 사이로 너불단지(꽃뱀) 한 마리가 스르르 꼬리를 감춘다.
맑은 하늘에는 솜뭉치 같은 구름이 한가롭게 떠가는데 물속에 오래 있은 탓인지 배가 출출한 것이 점심때인 것 같다. 집에 가도 별 먹을 것도 없고 오히려 돼지마구 풀을 베지 않아서 부짓갱이에 혼날 일만 남아있다.
그때 !
저 멀리 남산모퉁이에서 시커먼 구름이 몰려온다.
취우(驟雨), 소나기다!
재빨리 삼베고쟁이를 입고 냅다 집으로 향해 달아난다.
장난끼 심한 동무가 몰래 감추어둔 고쟁이를 늦게 찾은 놈은 급한 김에 한가랭이에 두다리를 넣다가 넘어지기도 한다.
낡은 검정고무신이 미끄러워 벗겨진 것을 들고 달린다. 뒤를 힐끔 돌아본다. 성난 소나기가 잡아먹을 듯이 뒤쫓아 온다.
삼베고쟁이 비 맞는 것이 무엇이 아까운지 온 힘을 다해 달리다가 논뚜름에 이슬 맞은 소똥에 미끄러진다. 비맞기 전에 벌써 뻘죽이된 삼베고쟁이를 걸치고 죽을힘을 다해 집 앞까지 왔을 때 소나기를 흠뻑 맞는다.
에이 씨-- 하고 뒤돌아보면 소나기는 간곳없고 저 멀리 당천 향교 뒷산에서 남산 모퉁이로 아름다운 무지개다리가 놓여있다.
한여름의 서정(抒情)이요 한 폭의 그림이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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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우(驟雨) 소내기
樹樹薰風葉欲齊(수수훈풍엽욕제)
우수수 훈훈한 바람이 나뭇잎을 일제히 흔들어 대고
正濃黑雨數峯西(정농흑우수봉서)
서쪽 봉우리 너머에 먹구름이 짙게 깔려있네
小蛙一種靑於艾(소와일종청어애)
놀란 청개구리 쑥 빛 보다 더욱 파랗게 질려
跳上蕉梢效鵲啼(도상초초효작제)
파초 잎 끝에 뛰어 올라 까치 울음 흉내만 내는 구나
추사(秋史)
요 며칠 동안에는 정말 소나기라도 한줄기 시원하게 내렸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에어컨이다 선풍기다 해도 더위 가실때 더 없이 좋은 것은 한줄기 시원한 소나기다. 그런데 방송국에서는 벌써 장마가 시작된다고 한다. 여름맛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벌써 장마라니 참재미 없는 계절이다. 촛불에다 파업까지 분위기가 착잡할때는 날씨라도 사람 기분 좀 알아 줘야지---
무더운 날 별안간 쏟아지는 빗발 뒤에 불어오는 리본 꼬리 같은 바람은 눅눅한 땀을 시킨다. 소나기는 갑자기 내리기 때문에 한자로 취우(驟雨)라하고 또는 지나가는 비라하여 과로우(過路雨)라고도 하며 우박(雨雹)을 동반할 때는 백우(白雨)라고도 한다.
소나기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한다.
무더운 여름날 농부 두 사람이 밭에서 일을 하는데 갑자기 비구름이 몰려오더니 비가 내리는 것이다. 그러자 두 사람은 저만치 오는 비가 어디까지 올 것인가를 두고 내기를 했다.
이때 내기를 건 것이 소였다. 여름날 갑자기 내리는 비의 속성을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아무튼 소를 내기로 건 비라 하여 “소내기” 라는 말이 있다.
또 한 이야기는 무더운 어느 여름날 스님 한분이 어느 마을에 들어섰다. 마을 앞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어 더위도 식히고 다리도 쉴겸 나무 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마침 그 옆밭에서 농부 한사람이 더위도 잊은 채 농사일에 여념이 없었다. 스님이 농부에게 말을 걸었다.
“농부님 더운데 잠깐 쉬었다가 하시지요.” 그러자 농부는
“놀면 누가 밥먹여 준답디까?” 하고는 계속해서 일을 했다.
그러자 스님은 다시 “이제 곧 한줄기 할 테니 그만 쉬세요” 하고 다시 말을 건넸다. 그 소리를 들은 농부는 하늘을 한 번 쳐다보았다. 하늘은 햇볕만 쨍쨍했다. 농부는 일을 계속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비는 무슨비 하늘이 멀쩡한데”
그러자 스님이 다시“ 그러다 비 맞지 마시고 이리 오시지요”
순간 농부는 기발한 생각이 떠올라 스님에게 내기를 제안했다.
만일 비가 안오면 스님의 걸망을 받기로 하고 비가 오면 농부는 소를 스님에게 내어주기로 한 것이다. 스님의 걸망에는 쌀 두어 됫박 정도가 들어 있었고 소는 농부에게 가장 큰 재산이었다. 농부가 이처럼 불평등한 내기를 과감히 건 것은 비가 안올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농부의 말이 끝나자 곧 남쪽 하늘이 컴컴해지더니 이내 비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농부는 깜작 놀라 느티나무 밑으로 비를 피했다. 잠시 숨을 돌린 농부는 그제야 조금 전에 스님에게 건 내기를 생각했다. 앉지도 못하고 황당해 하는 농부에게 스님은 웃으며 말했다.
“농부님 안심하세요 아무렴 제가 소를 가져가겠습니까”
그제야 농부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생각했다.
갑자기 비가 내린 것은 필시 스님의 도(道)가 높았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다. “스님 너무 고맙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도를 닦으셨기에 비를 내리게 하실 수 있는지요?“ 스님은 “도를 많이 닦아서가 아니라 이곳저곳 다니다 보면 옷을 빨아 입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땀이 나서 옷에 배고 밴 땀은 마르고 이렇게 여러 날이 지나면 옷이 온통 소금 푸대가 된답니다. 그래서 날이 좋으면 옷이 빳빳해지고 비가 올라치면 옷이 눅눅해 진답니다.”
농부는 비로소 스님이 비가 올 것을 미리 안 이치를 알 수 있었다. 이 이야기도 내기에 소를 걸었기 때문에 “소내기”다.
서부 경남지방에서는 맵고 짜게 먹어서인지 강한 억양으로 "쏘내기"라고 한다.
잠 못 드는 사람에게 밤이 길고 먼 길을 걸어가는 피곤한 나그네에게 땀은 몸으로만 흘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흘린다. 살아가는 동안 때로는 땀이 말라 살갓을 긁는 아픔이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눅눅해져서 내리는 비에 마음을 빨 때도 있다.
언제쯤 원하는 일이 이루어질까 조급한 마음이 마치 소나기처럼 급하다. 겨울에는 소나기가 잘 안 오듯 아무리 급해도 옷이 눅눅해 지는 소나기가 오는 것은여름철이다. 때없이 기다림은 철없은 짓이다. 기다림이 올 때는 옷만 눅눅해지는 것이 아니라 청개구리도 호박잎에 뛰어오르며 소리를 낸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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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달은 자루 없는 부채
月爲無柄扇(월위무병선)-달을 보니 자루 없는 부채 같고,
星作絶瓔珠(성작절영주)-별은 끈이 끊어져 흩어진 구슬 같도다.
馬行駒隨後(마행구수후)-말이 앞장서 가니 망아지가 뒤를 따라가고,
牛耕犢臥原(우경독와원)-소가 밭을 가니 송아지는 들판에 누워 있도다.
추구(推句)
위의 한시는 추구(推句)의 시집에 나오는 다섯 글자를 서로 짝을 지어 놓은 대구(對句) 시(詩)입니다. 추구(推句)라는 책은 옛날 초등학동(初等學童)들이 천자문(千字文) 소학(小學)과 함께 가장 먼저 익히는 책입니다. 이 시집의 내용은 천지자연과 인간관계와 끝에는 학문을 권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 아름다운 책입니다.
중국 당시(唐詩)나 우리나라의 한시(漢詩)를 정리하면서 느끼는 것은 시인들로부터 가장 외면당하는 계절이 여름입니다. 만물이 가장 활발하게 약동하는 계절보다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과 저장하는 겨울 그리고 다시 돋아나는 봄이 시인의 정서를 더 파고드 는가 봅니다.
그런데도 위의 추구는 여름 달을 가을달 부럽지 않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도시에야 맛볼 수 없지만 시골의 여름밤은 또 다른 정취가 있습니다.
대나무 평상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밤 자정이 지나면 짧은 여름밤이 고요히 깊어갑니다. 이슬 속에 흐르는 적막을 간간이 깨는 것은 멀리서 들리는 개 짖는 소리뿐입니다. 마치 자루 없는 부채 같은 여름밤의 달도 가을달 못지않게 눈물지어 서럽습니다. 하늘에는 별들이 마치 끈이 끊어진 구슬처럼 흩어져 있습니다.
푸른 방둑에 살찐 어미말 뒤로 졸랑졸랑 따라가는 망아지
작열하는 태양아래 입에서 침을 흘리며 힘겹게 밭을 가는 어미 소는 아랑곳없이 한가하게 풀밭에 누워있는 송아지는 평화의 상징입니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가난하지만 이런 추구(推句)의 정서 속에 자랐습니다. 꽃과 바람이 음악이요 별과 조약돌이 산수책입니다.
어미 소와 송아지는 우리 삶의 모정(母情)입니다.
지금 어린이들은 너무 삭막합니다.
컴퓨터 속에서 스타크래프트 리니지등 수많은 게임들이 전부 무서운 무기로 잔인하게 상대방을 죽이는 놀이입니다.
지금 어린이들의 말투는 매우 도전적이고 시비조입니다.
순박하고 천진난만(天眞爛漫)은 없고 매우 어른스럽습니다.
자연(自然)이 실종된 기계적 하드웨어 환경 속에서 자란 탓인지 모릅니다.
어린이의 정서 순화를 위해 추구(推句)를 권하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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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못 가 나무에 깃드고
鳥宿池邊樹(조숙지변수)-날이 저무니 새는 못가 나무에서 잠자고
僧敲月下門(승고월하문)-스님은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리네.
天長去無執(천장거무집)-하늘은 높아서 올라가도 잡을 수 없고
花老蝶不來(화노접불래)-꽃이 시드니 나비조차 오지를 않네.
추구(推句)
추구(推句)를 쓰다 보니 너무 아름다운 글이라 하나더 소개 합니다. 필자는 30대 초반 예향(藝鄕)으로 이름 높은 전남 광주에 직장이 있을 때 지인(知人)으로부터 받은 추구(推句) 한권이 계기가 되어 너무 아름다운 오언(五言)에 매료되어 상당히 많은 구절을 외우고 있습니다.
위의 1~2절을 조용히 눈을 감고 날이 저문 못가 나무에 깃드는 새, 그리고 밤깊은 산사(山寺)의 하얀 달빛 아래 고요히 문을 두드리는 스님 한분을 연상합니다.
혹시 퇴고(推敲)란 단어를 기억 하십니까?
이 단어는 시나 소설등 글을 쓸 때 내용을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치는 일을 말합니다.
추(推)자는 훈(訓)과 음(音)이 옮길추(推) 또는 밀퇴(推)의 두 가지로 읽으므로 세간(世間)에서는 추고(推敲)또는 퇴고(推敲)로
읽고 있는데 퇴고(推敲)로 사용함이 마땅하다 생각 됩니다.
퇴고(推敲)의 뜻은 미느냐(推퇴) 두드리느냐(敲고) 라는 뜻으로 이 말은 아래의 고사에서 유래 되었다고 합니다.
당나라의 시인 가도(賈島)가 길을 가다가 문득 좋은 시상(詩想)이 떠올라서 즉시 정리 해 보았는데 아래의 시입니다.
閑居隣竝少(한거린병소)-조용히 살고 있으니 이웃은 적고
草徑入荒園(초경입황원)-풀밭 길은 숲우거진 정원에 든다.
鳥宿池邊樹(조숙지변수)-날이 저무니 새는 못가 나무에서 잠자고
僧敲月下門(승고월하문)-스님은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리네.
그런데 끝맺음인 결구(結句)를 밀다(推퇴)로 해야 할지, 두드리다(敲고)로 해야 할지 몰라 손짓을 하면서 가다가 자신을 향해 오는 어떤 고관(高官)의 행차와 부딪쳤습니다. 그 고관은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의 한 사람이며 부현지사(副縣知事)인 한유(韓愈)였습니다.
가도는 먼저 길을 피하지 못한 까닭을 말하고 사죄 하였습니다. 역시 대 문장가인 한유는 뜻밖에 만난 시인의 말을 듣고 길을 막은 꾸짖음은 잊어버리고 잠시 생각하더니, 그것은 두드릴 고(敲)가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이들은 둘도 없는 시우(詩友-시의 친구)가 되었고 이후로 문장을 고치는 것을 퇴고(推敲)라고 하였습니다.
성경 창세기 11장 4절에 하늘에 닿게 탑을 쌓아 인간들의 이름을 떨치려는 사건이 있는데 이것이 유명한 바벨탑입니다.
그러나 추구는 “하늘은 높아서 올라가도 잡을 수 없다(天長去無執)”고 부질없는 인간의 욕망과 집착을 일깨워 주고, 노자 도덕경 제7장에도 천장지구(天長地久)라하여 하늘과 땅은 끝없고 영원하여 인간과 비교 할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뒤이어 “꽃이 시드니 나비조차 오지를 않네.(花老蝶不來)”라고 인생의 유한(有限)한 늙음에 대한 외로움을 한탄하고 있습니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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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열행시혜부(苦熱行示徯父) 하지(夏至) 무더위
夏至過後夜初長(하지과후야초장)-하지 지난 뒤에 밤이 비로소 길어지니
下土漸滄宜漸凉(하토점창의점량)-땅이 식으면 날씨도 서늘해져야 하거늘
應衰不衰愈益熾(응쇠불쇠유익치)-약해져야 할 더위 더더욱 타오르니
未信炎熱由太陽(미신염열유태양)-불같은 이 열기 해에서 온다니 못 믿겠네.
積威成形物莫抗(적위성형물막항)-엄청난 위력에 어떤 것도 대항 못하고
分秒進退休商量(분초진퇴휴상량)-잠깐이라도 출입하는 건 생각도 못하네
請君高臥勿搖扇(청군고와물요선)-그대여 높이 누워 부채를 흔들지 마오!
心平氣定我體康(심평기정아체강)-마음과 기운 안정되면 내 몸도 건강하니
정약용(丁若鏞)
오늘은 일 년 중 낮이 제일 길다는 하지(夏至)다.
필자는 12월 31일, 새해 1월 1일보다 동지(冬至)와 하지(夏至)를 맞으면 한해가 바뀌는 기분이 난다. 이유는 밤낮의 길이가 바뀌기 때문이다.
하지가 되면 묵정밭과 산이나 들에 하얀 개망초꽃으로 뒤덮인다.
신정동 인라인 트랙으로 가는 개울가에도 개망초꽃이 강뚝을 덮어 멀리서 보면 마치 메밀꽃처럼 하얗게 보인다.
24절기는 중국의 고대 국가인 주(周)나라 때 제정되었다고 하며 하지(夏至)란 말의 출전(出典)은 중국의 설원존현(說苑尊賢)이란 문헌에 “하지지일 이욕야장(夏至之日 而欲夜長)-하지일에 밤이 길었으면” 하는 글이 있는데 하짓날 긴 밤의 욕심이란, 생각할 수도 없을 것으로서 이는 곧 “불가능한 무리한 소원”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풍습에는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하여 하지에는 부채를 선물하고 동지에는 달력을 나누어 가진다.
한의학적으로는 춘분(春分)부터 하지(夏至)까지는 양(陽) 중의 양(陽)으로서 인체의 양병(陽病)인 열병(熱病)쪽에 신경을 써야 한다.
하지에는 쑥으로 호랑이 모양을 만들어 머리에 꽂고 다녀 재액을 예방하였다고 하는데 쑥은 염증을 다스리는 약효가 있다.
서양에서도 유럽 가톨릭 국가에서 하지에 불(火)을 축복하는 축화제(祝火祭)를 성경 요한복음의 주인공 세례자 요한의 이름으로 거행했다고 전해진다.
독일(獨逸)의 옛 풍습에는 쑥과 마편초(馬鞭草)로 만든 목걸이를 걸고 축화제(祝火祭) 불구경을 하면 그 해 눈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전한다.
마편초(馬鞭草)는 말채찍이란 뜻으로 개망초꽃과 비슷하게 생겼으며 성질이 차서 혈액순환과 피부병 염증에 사용되는 한약재다.
하지(夏至) 이전에 모심기는 모두 끝나며 장마가 시작되는 때이기도 하다. 반면에 하지에 가뭄이 들어 모내기를 못하고 심하면 기우제(祈雨祭)까지 지내는 경우도 있다.
중국의 시인 소동파(蘇東坡)의 희우정기(喜雨亭記)에 하지 무렵 날이 몹시 가물 때에 정자를 짓고 있는 중에 단비가 내렸는데 얼마나 기쁘고 반가운지 정자이름을 희우정(喜雨亭)이라고 지었다 한다. 고대하던 비가 내리려 기쁜 정자라는 뜻이다.
다산은 위의 한시 제목을 고열(苦熱)이라 했으니 괴롭게 찌는 듯한 더위라는 뜻이다. 일년 중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를 지나면 해는 다시 짧아지기 시작한다. 뜨거운 불길을 뿜는 시간이 줄어들면 이치상으로는 더위는 꺾여야 마땅한데 오히려 무서운 기세로 더 타오른다.
정약용은 이 무섭게 타오르는 열기를 식히는 방법으로 마음의 열를 식히라고 권한다. 아무리 더워도 마음이 평안하고 기운이 안정되어 있다면 몸은 건강하리라는 것이다. 높은 곳에 누워서 부채질을 아무리 한다 한들 더운 바람만 나온다는 건 당연한 일이다. 더위를 이기는 방법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것 만한 게 어디 있겠는가.
여름철 불볕더위에 마음을 다스리는 제일 좋은 처방은 전부를 내려놓아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덥다”는 생각도 던져 버려야 한다.
방하착(放下着)!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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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를 버려라 그러면 시원하다. 방하착 !
嚴尊者問(엄존자문)
엄존자가 묻기를
一物不將來時如下(일물불장래시여하)
한 물건도 갖인 것이 없을 때는 어떻습니까?
師云(사운)
스승이 말하되
放下着(방하착)
내려 놓아라!
종용록(從容錄)
중국 선불교(禪佛敎)에 유명한 고승(高僧)중에 “조주선사(趙州禪師)”라는 분이 계십니다. 조주선사(趙州禪師)는 선종(禪宗)의 종조(宗祖)인 1조 달마(達磨)에서~6조 혜능(慧能)~마조도일(馬祖道一)~조주(趙州)~임제의현(臨濟義玄)으로 이어지는 선종(禪宗)의
인맥(人脈)중에서 대단한 스타의 위치에 있는 인물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선종(禪宗)의 중심인 조계종(曹溪宗)은 위의 법통(法統)에서 이어져 신라에 들어와 지금에 이르는 임제종(臨濟宗) 선종(禪宗) 계통입니다.
어느날 엄양존자(嚴陽尊者)라는 젊은 스님이 당대의 고승(高僧)인 조주(趙州)스님에게 질문을 합니다.
『스님, 저는 다 버리고 한 물건도 가지고 있지 않으니 어찌하면 됩니까?”』 -일물장래지시여하(一物不將來之時如何)-
조주(趙州)스님이 대답하기를
『전부 내려놓아 버려라』 -방하착(放下着)-
젊은 스님은 생각하기를, 물건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는데 버리라니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이미 한 물건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버리라고 했어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하고 반문하자
조주스님은,
『그렇다면 짊어지고 가게나.』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이것은 한 물건도 가지고 있지 않는다는 생색내는 그 마음 자체도 버리라는 것입니다.
즉 무소유(無所有)에 집착(執着)하는 마음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방하착(放下着)은 대승불교인 선종(禪宗)의 무소유(無所有) 사상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입니다. 생(生)과 사(死), 고(苦)와 락(樂), 선(善)과 악(惡), 자(自)와 타(他)의 유(有)와 무(無)의 대립관념을 버리는 것인데, 버린다는 관념조차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괴로움은 소유욕(所有慾)의 집착(執着)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천당(天堂)과 극락(極樂)을 바라는 것도 소유욕 집착입니다.
한 스님이 길을 가는데 장님 한분이 “사람살려달”라고 소리를 칩니다. 스님이 가보니 길옆에 푹 꺼진 곳에 장님 한분이 나무 가지를 붙잡고 대롱대롱 매달려서 울부짖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님이 보니 장님의 발바닥과 지면은 불과 10cm 정도의 높이였습니다. 그래서 스님이 장님에게 하신 말씀이 바로
“그 나무 가지를 붙잡은 손을 놓아라! 그러면 살 수 있다”
방하착(放下着)! 나뭇가지를 붙잡고 있는 집착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욕심을 내려놓아라!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가장 손쉽게 원숭이를 잡는 방법입니다.
먼저 가죽으로 자루를 만들되 입을 좁게 합니다.
원숭이의 손이 겨우 들어가고 나올 정도입니다.
다음에는 그 자루 속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과실을 넣어서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습니다.
원숭이가 자루 속에 손을 집어넣어 과실을 잡고 꺼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원숭이의 손은 자루에서 빠져나오지를 못합니다.
과실을 쥐고 있으니까요.
나뭇가지에 매여 있는 가죽자루,
그 가죽자루 속에 붙들어 있는 원숭이의 손.
손안에 쥔 먹이를 놓아버리면 손이 빠져 나오는 이치를 원숭이는 모르고 있습니다.
원숭이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은 과일을 잡고 있는 원숭이의 욕심입니다.
하지(夏至)가 지나서 본격적인 여름입니다.
시원한 여름으로 보내기 위해서 내 몸에 있는 많은 것을 벗어버리십시오. 부채도, 덥다는 생각도, 버리십시요
但願空諸所有(단원공제소유)-있는 것을 비우기를 원한다면
切勿實諸所無(절물실제소무)-없는 바를 채우지도 말아라.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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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과독고(鰥寡獨孤) 천하에 가장 불쌍한 사람
老而無妻曰鰥(노이무처왈환)-늙어서 아내 없는 것을 환(鰥)이라하고
老而無夫曰寡(노이무부왈과)-늙어서 남편 없는 것을 과(寡)라하고
老而無子曰獨(노이무자왈독)-늙어서 아들 없는 것을 독(獨)이라하고
幼而無父曰孤(유이무부왈고)-어려서 아버지 없는 것을 고(孤)라 한다. 此四者(차사자)-이 네가지 부류의 사람들은
天下之窮民而(천하지궁민이)-천하의 가장 어려운 사람들로서
無告者(무고자)-호소할 때가 없는 사람들이다.
詩云哿矣富人(시운가의부인)-시경에 말하기를 부자들은 괜찮지만
哀此煢獨(애차경독)-고독에 지쳐버린 이들이 불쌍하다
맹자 양혜왕편(孟子 梁惠王篇)
위의 글은 맹자의 양혜왕편에 나오는 글로서 임금의 어진 정치는 홀아비(鰥환) 과부(寡과) 무자식(孤고) 고아(獨독)들이 세상에서 제일 힘들게 사는 백성들로서 어디 하소연 할 곳도 없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돌보라는 글이다.
시경(詩經)에서도 “부자들은 괜찮지만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하였다.
정부나 사회가 어려움을 당한 주위를 돕고 남을 배려 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이것은 국가나 그 사회의 저변에 깔려 있는 전통적인 가치관이라 볼 수 있다. 필자는 이 부분에 대한 우리 국민의 사회의식에 대하여는 비판적이다.
우리국민은 어릴 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하여 “입신출세”를 하거나 “가문을 빛낸”다에 상당한 목적을 두고 있다. 이것은 “나” 개인과 “내 가문”에 대한 목적이지 “우리”와 “사회” 에 대한 포부가 아니다. 이런 정서(情緖)의 토양(土壤)에서 자랐기 때문에 크고 작은 모든 행동이 남을 배려 하지 않고 “내 편리한대로” 행하는 것이다.
기업정신도 부(富)를 축적하는 목적이 개인과 가족의 이익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에 유산이나 경영권승계가 항상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서구의 개인주의가 동양의 정서에 비하여 때로는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이들 민주주의의 정서에는 “나”가 아닌 “우리” 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 우리와 크게 다르다.
미국이나 영국 중국 일본 등의 강대국이 반드시 땅이 넓고 인구가 많고 돈이 많아서만은 아니라고 본다. 이 나라 지도자들은 경세치국(經世治國)과 부국이민(富國利民)의 국가 경영의 가치저변에는 항상 “우리”를 본(本)으로 삼고 있다.
구멍난 구두를 신고 10년된 낡은 잠바를 입어 중국인을 감동시킨 중국지도자들이나, 교통법규를 위반하여 경찰의 제지를 당하는 영국수상의 모습 등은 항상 나보다는 “우리속의 나”를 의식하는 몸가짐이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이다.
퇴임시에 국민으로부터 존경과 명예 권위를 유지하기 보다는 호화로운 집이나 장만하고 재물 치부로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소인(小人)지도자 들과는 대조적이다.
불과 200년의 일천(日淺)한 역사를 가진 미국이 넓은 땅과 자원이 풍부해서 세계의 지도국이 된 것은 아니다.
미국 국기(國旗)와 국가(國歌)의 상징인 “Star Spangled Banner”는 미국과 영국의 전쟁에서 미국의 한시민이 죽음을 무릅쓰고 포로와 격전지의 난민을 구하고 펄럭이는 성조기의 감동을 노래한 시이다. 용산 전쟁기념관의 현관에는 6.25때 전사한 수많은 미국과 유엔군 병사의 명단이 붙어있다. 이들은 Korea가 지구상 어디에 있는 줄도 모르면서 민주수호라는 명분아래 산화한 영령들이다. 민주주의는 “나”가 아닌 “우리”인 것이다.
며칠전 신문기사에 중국 사천성(四川省) 대지진 현장에서 한 여경(女警)이 어머니를 잃은 9명의 갓난아이에게 젖을 물린 사실이 보도되어 여경은 단번에 3계급 특진이 되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신문에서는 천리(天理)를 순(順)하게 만든 모성(母性)에 대한 보답이라고 칭찬하고 있다.
경우는 좀 다르겠지만 이정도의 감동은 우리주변에서도 간혹 볼수 있었다. 우리 어렸을 때 기억으로도 출산 후 산모가 젖이 나오지 않을 때나, 혹은 산모가 죽거나 유고(有故)시에 동냥젖을 얻어 먹이는 것이 기억난다.
유독 여경(女警)이 어머니를 잃은 갓난아이에게 젖을 물린 보도가 눈길을 끄는 것은 만연되어가는 우리사회의 남을 배려하지 않은 이기주의(利己主義)에 대한 자성(自省)을 바라는 가르침의 의미 아닐까.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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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례야(是禮也)!
子入大廟(자입대묘)-공자께서 태묘에 들어가 제사가 진행됨에
每事問(매사문)-매사를 물으시었다
或曰(혹왈)-혹자가 말하기를
孰謂鄹人之子(숙위추인지자)-그 누가 저 추인의 자식을 일러
知禮乎?(지례호)-예를 안다고 하는가?
入大廟每事問(입대묘매사문)-태묘에 들어와 매사를 물으니
子聞之曰(자문지왈)-공자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是禮也(시례야)-묻는 것이 곧 예이다!
논어(論語)
위의 내용은 논어(論語) 팔일(八佾)편 15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산동반도에 있는 곡부(曲阜)는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의 출생지이며, 2,400여년의 역사를 가진 노나라의 수도였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에 주(周)나라의 정치가인 주공(周公)을 모시기 위해 세운 웅장한 사당이 있는데 이를 태묘(太廟)라하며 이곳에서 매년 제사를 지낸다.
공자가 대사구(大司寇-형조판서)의 벼슬에 있을 때 공자의 학덕을 존경한 노나라의 임금과 신하들이 그해의 태묘제(太廟祭)에 공자를 제관(祭官)으로 임명한 적이 있었다. 옛날 제사의 법식은 천자(天子)의 예에 준하는 것이므로 매우 까다로웠으며 국왕이 여러 신하들과 함께 제사에 참석하기 때문에 더욱 신경을 썼다.
그런데 제관으로 임명된 공자는 모든 것을 빈틈없이 행하여야 되는데 태묘에 들어가서 제식이 진행됨에 따라 모든 단계마다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옆 사람에게 묻고 있다. 공자는 원래 “예의 전문가”로 이름이 높다. 공자는 누구보다도 옛날의 문헌에 밝기 때문에 대사구(大司寇)라는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대사구가 되어 태묘에 들어오니까 하나도 모르는 듯 제사 절차의 순간마다 구차스러울 정도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옆에 있는 사람이 중얼거리기를 “아니 그 누가 저런 추인(鄹人)의 자식을 예(禮)의 전문가라고 한단 말인가. 저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묻기만 하는 멍청한 자를 제관으로 임명 할수 있단 말인가” 하는 비난의 소리가 나왔다. 당연한 말이다. 장엄한 제식이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어야 할판에 대사구가 일일이 묻고 있으니 얼마나 실망스럽게 보였겠는가.
위의 추인(鄹人)의 자식이라는 말은 매우 심한 모욕적인 말이다.
추인(鄹人)이란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叔梁紇)을 말하며
추(鄹)는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叔梁紇)이 지방관(地方官)으로 근무하던 고을 이름으로 이 고장에서는 좀 괴팍하고 골치 아픈 요즘 같으면 어중이떠중이 깡패 같은 인물들이 배출된 곳으로 이곳 사람들을 업신여긴 지방색으로 추인(鄹人)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때 공자는 주위사람들의 불만에 대하여 상대방을 조금도 탓하거나 자신을 변명하는 기색도 없이 말하기를 “내가 묻는다고 하는 것, 바로 이것이 예(禮)다”
시례야(是禮也)!
우리는 함축된 이 한마디에 공자의 예악(禮樂)사상과 위대함을 볼 수 있다. 예(禮)라는 것은 고정불변의 절차가 아니고 형편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공자의 말은 “내가 아무리 예의 전문가” 라 할지라도 이곳 태묘의 제식은 또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이곳 예식을 물어 알고 나야 실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내고 있는 제사도 지방마다 풍속이 조금씩 다르다.
이렇게 묻는 것이 오히려 태묘의 제사를 차질 없이 지내는데 사려 깊은 정중한 행위며 바른 예라는 것이다.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 것은 예가 아니라는 것이다.
논어는 공자와 제자들 간에 대화 내용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많이 배우라는 내용으로 일관되어 있다. 이중 공자의 사상을 요약하여 볼 수 있는 것이 논어 술이편(述而篇)에 나오는
술이불작(述而不作)이다.
공자는 『나는 전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것을 기술(記述)할 따름이지 새로운 것을 지어내는 것은 아니다. 옛 것을 믿고 좋아하기 때문이다. 자왈 술이불작 신이호고(子曰 述而不作 信而好古)』
이 얼마나 위대한 겸손의 모습인가!
필자는 논어를 읽는 과정에서 이 『시례야(是禮也)』를 읽고 내스스로 얼마나 부끄럽고 뉘우쳤는지 모른다. 잘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르는 것을 묻는 것이 더 소중하고 귀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어 『시례야(是禮也)』가 내생활의 좌우명(座右銘)으로 자리 잡고 있다. 끝없이 물어야 하고 평생을 배워야 겨우 서울길을 걸어갈 수 있을 정도라 생각된다.
바르게 가르친다는 것은 바르게 묻고 배움이 전제 된다.
지금 우리의 사회교육이나 학교교육 가정교육들이 바르게 물어서 배우지 못한자들 때문에 학교에서나 자녀들의 가정교육을 바르게 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남을 제대로 가르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시례야(是禮也)!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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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
天怒南侵北攻先(천노남침북공선)-하늘도 분노할 북한의 남침으로
兄弟相爭山河血(형제상쟁산하혈)-형제는 서로 싸워 피로 물든 산과 강
悠悠歲過六十年(유유세과육십년)-세월은 아득하게 60년을 흘렀건만
今日餘淚離散恨(금일여루이산한)-오늘도 남은 눈물 이산가족 한이로세
雁飛往來自金剛(안비왕래자금강)-기러기는자유롭게 금강산을 오가는데
休戰障壁如泰山(휴전장벽여태산)-휴전선 장벽은 태산같이 높구나!
농월(弄月)
6.25 !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6.25 노래 가사의 한 구절입니다.
막상 58년전 이날을 상기 하니 무슨 말을 먼저 써야 할지 타자위의 손가락이 어눌해 집니다.
무더운 여름날 오늘 !
국민학교 1학년 때입니다.
전쟁이 일어났다고 어른들이 보리를 볶아 미숫가루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다음날 피가 흐르는 부상자를 실은 미군 차량이 알라듣지 못할 말을 외치며 마을 앞을 지나갑니다.
며칠 후 비행기가 마을을 폭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날 이웃 서포면 오리방천으로 피난을 가서 또 비행기 폭격을 받았는데 다행히 우리 가족은 무사하고 그 도랜몰 마을주민이 많이 죽어 지금도 온 마을이 같은 날 제사를 지냅니다.
다음날 북한군 탱크가 마을에 들어오고 밤에는 기마대(騎馬隊)도 들어 왔습니다. 마을에는 북한군에 동조하는 치안대(治安隊)가 조직되어 평소에 잘 아는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붉은 완장을 두르고 주민들을 동원하여 시장에 방공호를 파고 그 안에서 김일성 노래를 가르쳤습니다.
이웃집 아저씨가 북한군에 끌려갔다가 말을 빼앗기고 도망을 와서 숨어 있다고 합니다. 다시 폭격이 무서워서 피난을 갔는데 그때부터 식량이 떨어졌습니다.
우리 식량을 누가 훔쳐갖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쌩 하는 금속성 비행기 일명“호주기” 소라만 나도 전율이 생겨 몸이 떨립니다.
1952년 7월 27일에 휴전 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1952년에 출생한 분은 1960년 4.19혁명, 1961년 5.16혁명을 거쳐 1970년까지 전쟁으로 피폐된 경제적 어려움을 기억 하실 것입니다. 그 배고프고 가난한 참상은 다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며칠 전 신문에 6.25를 기억하게 한다고 주먹밥을 먹이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아마 고대 이스라엘 국민이 애급을 탈출할 때 유월절에 먹었던 누룩을 넣지 않는 무교병(無酵餠)과 쓴나물을 먹었던 고통의 떡을 흉내 낸 것 같습니다.
6.25를 상기시키는 교육이라면서 요즘 먹는 것이 남아돌아가고 부정적인 대명사로 “밥맛”이라는 어린이들에게 사치스럽고 장난 같은 인상을 주는 주먹밥이 무슨 교육이 되겠습니까?
어제 신문 여론조사에는 청소년 절반이 6.25전쟁을 잘 모른다고 하고 발발연도도 모른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놀라운것은 남한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응답도 있습니다. 기가 막힐 일입니다.
누가 우리 청소년들을 이렇게 가르쳤습니까!
이제 우리 어른들은 부끄러움도 없어졌는가! 전부 우리 어른들의 책임입니다.
역사속의 기록으로만 남아있고 골동품 취급받는 이데올로기를 유치하게도 우리는 좌파니 우파니 하고 야단들입니다. 이제 부끄러움도 모릅니다.
좀 세련된 국민이 되기를 바랍니다.
두세대의 세월이 흘러서 6.25는 마치 옛날이야기처럼 감각이 없지만 휴전선은 현실로 존재하고 북한의 도발과 대한민국의 분열을 책동하는 만행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6.25를 공휴일로 제정하여 그나마 잊혀져 가는 민족의 아픔을 영원히 기억해야 될것입니다.
-농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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夏夕(하석) 백년전 여름저녁
夏夕亦時凉(하석역시량)-여름도 저녁이면 때로는 시원한데
窓間野風入(창간야풍입)-창문 틈으로 한데 바람이 스며든다.
田家無宿粮(전가무숙량)-가난한 농가에는 묵은 양식 떨어져
杵臼夜來急(저구야래급)-밤 되자 풋바심 절구질이 바쁘다.
이기(李沂)
먼 기억 6.25가 일어나던 해 여름도 무던히 더웠다.
하지를 넘긴지 얼마 안 되는 여름 낮은 덥기도 하지만 낮은 어찌 그리도 해가 긴지--
먹을 것이라곤 겨우 고구마밥에 열무김치인데 그것마저도 하루 세끼 먹기가 어려웠다. 요즘 같으면 윌빙식단이라 하겠지만 그때는 일은 많이 하고 달리 단백질 지방질 있는 영양식품이 없었기 때문에 아침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팠다. 그냥 놀고 있어도 네끼는 먹어야 될 해가긴 여름날이다.
이기(李沂)가 위의 시를 쓴 때가 1909년경이고 보면, 1882년에 임오군란, 1884년에 갑신정변, 1894년에 동학농민운동과 갑오개혁, 1895년에 명성황후가 일본의 깡패에 의하여 시해된 을미사변, 1898년에 대원군이 87세로 사망, 1905년이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을사보호조약의 해다. 이런 일련의 조선말과 대한제국의 격변의 시대상을 유추해보면 당시 국내의 정치와 사회질서는 사공 없는 배와 같고 혼란 그대로라 추측된다.
여기에 대외적으로는 사자와 이리 같은 주변 열강들이 한반도를 서로 뜯어 먹으려고 으르렁 거릴 때 조정과 대신들은 제 몸 사리기에 정신이 없고 백성들의 삶은 황야에 팽개쳐 걸레조각같이 되었으니 늑대 같은 일본이 “웬 떡이냐” 하고 이빨을 드러낸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지금도 국내가 혼란하면 북한이 훈수를 거들고 일본이 독도를 자기 영토라 집적거린다.
이런 시절이니 백성들은 여름에도 추위에 떨 수밖에 없었다. 밥을 굶어 배가 고프면 더운 여름에도 몸이 시린데, 허물어져 가는 낡은 집 창문 틈으로 여름찬바람까지 들이쳐 궁상이 더 심하다. 작년 가을추수한 양식이 다 떨어져 풀뿌리 나무껍질로 연명하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덜 익은 보리를 베어다 절구질을 하고 있다. 이 시가 발표된 백 년 전에는 보릿고개를 못 버티고 굶어 죽는 아사자(餓死者)가 수없이 많았다고 한다.
2만불을 넘어서는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밥 굶는 사람들이 있고 학교 점심 급식으로 하루를 넘기는 학생들이 있다고 한다. 달러의 약세로 미국경제가 어려우니 기름 값은 하늘높은줄 모르고 물가는 계속 오르고 있다. 정부는 기름 값이 150불을 넘으면 비상(非常)조치를 취한다고 한다.
비상(非常)이란 정상(正常)이 아니라는 말이다.
비상시에 가장 중요한 것은 화목(和睦)이다.
비상(非常)을 정상(正常)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구수응의(鳩首凝議)를 해야 한다. 구수응의(鳩首凝議)란 비둘기들은 다투는 경우가 거의 없으므로 금실 좋은 부부의 상징이며 서로 머리를 맞대고 사이좋게 먹이를 먹으면서 소곤소곤 의논하는 모습을 말한다.
화(和)자를 파자(破字)해보면 벼화(禾)에 입구(口)자로 벼가 입에 들어간 형상으로 밥을 사이좋게 나누어 먹는 형상이다.
평화(平和)는 밥을 고르게 나누어 먹어야 유지되는 것이다.
배가 고프면 절대로 평화는 없다.
배가 고프지 않으려면 가정이고 국가고 화목(和睦)해야 한다.
화목하지 않으면 절대로 행복은 없다.
제대로 된 가정이나 국가는 어려움을 당할 때 진면목이 나타난다.
눈만 뜨면 가족끼리 서로 옳다고 싸우는 가정이나, 국정의 독선이나 문제만 생기면 데모나 하는 나라는 절대로 비젼이 없다. 화목한 가정에는 나쁜 이웃이 함부로 덤벼들지 못한다.
비록 반쪽 나라지만 귀하게 여기고 우리 국민의 마음속에 정신적 물질적 “풋바심”을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흥분하지 말고 얼음처럼 냉정해야 한다.
그리고 서로 존경하고 상처를 덮어주고 칭찬해주고 귀하게 여기고 어깨를 다독거려야 한다.
※참고
풋바심-곡식이 익기 전에 베어 양식을 마련하는 순수한 우리말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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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하일(山亭夏日) 여름날 산속 정자
綠樹濃陰夏日長(녹수농음하일장)-짙푸른 나무 그늘 긴긴 여름날
樓臺倒影入池塘(누대도영입지당)-연못에 누대 그림자 거꾸로 드리웠네!
水晶簾動微風起(수정렴동미풍기)-수정 발 움직일 때 살랑 바람 일고
滿架薔薇一院香(만가장미일원향)-시렁에 가득한 장미 뜰안이 향기롭네.
고병(高騈)
참 한가한 여름날의 풍경이다.
위의 시를 읽으면 여름날 창덕궁 후원(後苑비원) 부용지(芙蓉池)에 그림자를 드리운 부용정(芙蓉亭)의 여유로운 모습이 떠오른다.
참 편안하고 한가한 전경(全景)이다.
무더운 여름날 숨이 탁탁 막히면 시간조차 더디 간다.
급한 해결은 건강에 나쁘니 어쩌니 해도 에어컨 바람이다.
하지만 에어컨바람이 피부는 시원해도 마음속에 있는 울화(鬱火)는 해결 못한다.
그러나 짙푸른 나무 그늘과 연못에 거꾸로 드리운 누대 그림자를 보면 사람들은 유장(悠長-길고 오램)한 시간의 흐름 가운데 잠시 파격적 긴장을 푸는 맛을 보게 된다.
산중의 정자인지라 이따금 주렴(珠簾)을 흔들며 스쳐지나가는 바람이 몸과 마음을 시원케 하고 뜰 안에 가득한 장미향도 여름 한철에나 맡을 수 있는 계절의 향미(香味)다.
이 모든 것이 은밀(隱密)한 가운데 맛볼 수 있는 여름날 만의 정취(情趣)가 아니겠는가?
느슨함이 소복하게 담겨있는 여름 낮의 한시(漢詩)이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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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夏景) 여름 풍경
蒲席筠床隨意臥(포석균상수의와)-부들방석 대나무 침상에 편히 누우니
虛欞疎箔度微風(허령소박도미풍)-창과 성긴 발로 미풍이 불어든다
團圓更有生涼手(단원경유생량수)-둥근 부채질에 다시 서늘해지니
頓覺炎蒸一夜空(돈각염증일야공)-찌는 듯한 더위 이 밤에는 없겠구나.
기대승(奇大升)
기대승(奇大升)은 조선 13대 명종때의 성리학자로서 퇴계 이황(李滉)의 제자이며 스승인 이황과 12년 동안 서한을 주고받으면서 8년 동안 사단칠정(四端七情)을 주제로 논란을 편 것으로 유명하며 호남의 역사적 자존심의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전남 광주 일대에 기(奇) 고(高) 박(朴)이라는 말이 있다.
이곳에서는 위의 세 성씨를 명문(名門)으로 여기는 풍속이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기(奇)씨는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을 말하고 고(高)씨는 제봉 고경명(高敬命)을 말하며 박(朴)씨는 눌재 박상과 그 아들 박순을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이 세 성씨보다 레벨이 낮은 집안에서 이들 세 성씨 집안과 혼사를 맺으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고 다행히 혼사가 성공하면 주위 사람들이 “턱”걸이 혼사라고 불렀다고 하며 선망의 대상이었다.
기(奇)씨 집성마을이 광주시 광산구 광곡마을이다. 이곳을 “너브실” 이라고 부르는데 나주평야의 한 부분이다. 이곳에 고봉 기대승을 추모하는 월봉서원이 있고 그 옆에 칠송정(七松亭)이 있다. 위의 한시는 추측건대 고봉(高峰)이 칠송정(七松亭)에서 한여름의 경치를 노래한 것으로 생각한다.
여름에 부들방석과 대나무 침상에 등을 대면 차가운 감각이 시원함을 더해준다. 거기다가 창을 열고 처 놓은 듬성듬성한 발사이로 불어오는 가는 바람은 흔들던 부채질을 멈추게 하고 눈을 스르르 감기게 한다. 자연 속에서 더위를 보내는 고고한 선비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한가한 모습이다.
-농월

서과(西瓜) 수박
瓊漿玉液舌瀾飜(경장옥액설란번)
맛있고 단 물이 사람의 혀를 부지런히 움직이게 하는데,
種出西方品可論(종출서방품가론)
이 씨앗은 서양에서 온 것으로 그 품질이 좋기도 하다.
莫說張郞多好事(막설장랑다호사)
수박을 들여온 장랑 같은 이는 참으로 좋은 일을 한 사람이구나.
世間不乏渴文園(세간부핍갈문원)
세상에는 조갈증이 난 사마상여 같은 이가 없어지지 않을 것을.
서거정(徐居正)
더위를 해소하는데 수박을 빼 놓을 수 없다.
수박은 더위를 식혀주는 대표적인 여름채소로 박(朴)같이 생기고 물이 많다고 하여 수박(水朴)이라 명명 되었다고 한다. 수박은 중국에서 실크로드를 따라 서역(西域중앙아시아)으로부터 들어왔다 하여 서과(西瓜)라 하며 물이 많다는 뜻으로 수과(水瓜), 시원하고 차다하여 한과(寒瓜), 여름의 귀중한 과일이란 뜻의 하과(夏瓜)라고도 불린다.
여기서 과(瓜)란 과실(果實)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외과를 뜻하며 수박은 야채(野菜vegetable)에 속한다.
수박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연산군일기 에 수박의 재배에 대한 기록이 있지만 약 700년 전인 고려 충렬왕 때에 홍다구가 원나라에서 수박을 가져와서 개성에 처음 옮겨 심었다고 한다. 홍다구(洪茶丘)는 고려의 장군으로 원(元)나라에 귀화(歸化)하여 후에 몽고가 고려를 침범할 때 조국인 고려의 삼별초군을 토벌하였다. 반역자 홍다구가 오랑캐나라에서 수박을 가져왔다고 해서 고려 말 조선 초기의 선비들은 수박을 먹지 않는 것이 선비다움을 의미했다고 한다.
아무튼 수박은 여름더위에 빼놓을 수 없는 건강 야채다.
임인규 시인은 수박을 노래하기를
『푸른 지구를 쩍 갈라놓으니 붉은
마음들이 알차게 들어찼다.
한입 태양을 입에 무니
가슴속 깊은 갈증이 달아난다.
오뉴월 더위쯤은 꿈마저 달아나라!
속 시원한 과즙이 미운 정까지 가져가니
오호라! 여름 진객 중에 이 아니 최상인가?
둘러앉아 서로 마주 보는 웃음
하늘의 구름은 뭉게구름
땅은 기운은 대자리 품어
바람 없는 바람을 불러 모아
둥근 쟁반에 세상을 풀어놓자!
붉은 속살에 여미는 겨울
사각사각 눈 밟는 소리
검은 씨 툭, 뱉어 내는 입 바람
한시름 여름이 그리 간다.』
※참고
*위의 한시 3구에서 장랑(張郞)이라는 사람이 수박에 관계된듯한데 자료를 찾지 못했습니다. 한나라 고조 유방(劉邦)의 공신인
장량(張良)은 아닌 듯합니다.
*사마상여는 중국 한나라 무제때 부(賦)를 가장 아름답게 쓴 사람으로 전하여 집니다.
부(賦)란 한문체에서, 글귀 끝에 운을 달고 흔히 상대(對)를 맞추어 짓는 글을 말합니다. 사마상여의 조갈증(燥渴症)이란 소갈증(消渴症-당요병)을 앓았다는 뜻입니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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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과(寒瓜) 여름 백호탕 수박
念我孤居進此誰(념아고거진차수)
나의 외로움 알고 누가 이를 보냈는고?
西瓜一介感回心(서과일개감회심)
수박 한 개에도 감사한 마음을 안다
賣去行人思老將(매거행인사노장)
팔고 가는 사람은 어느 노장 인가 생각 되는데
綿綿其瓞入周詩(면면기질입주시)
길게 뻗은 외 넌출 주나라 시에도 들어있다
剖得霜光除暑可(부득상광제서가)
쪼개면 서릿발에 더위가 식혀지고
食當蜜味飽脹宜(식당밀미포창의)
먹으면 꿀맛이 창자를 채우누나
因爲膳物家家買(인위선물가가매)
선물을 하려고 집집마다 사가니
竝賀中堂喜展眉(병하중당희전미)
정승의 어버이가 좋아하여 눈썹이 펴진다.
함덕립(咸德立)
여름철에 몸에 좋다고 전통적으로 많이 먹는 음식으로 삼계탕 보신탕 옻닭 등을 손꼽는다. 그러나 필자는 위의 음식보다 수박, 열무김치에 냉면, 돼지고기 보쌈, 열무김치에 보리밥, 메밀국수 토마토 등을 권하고 싶다. 이중에서 수박을 우선순위에 놓는다.
구지 땀을 많이 흘리고 기운이 진하여 지면 “맥문동 인삼 오미자”가 처방된 생맥산(生脈散)을 차처럼 마시는 것도 권할 만하다.
위의 전통적인 탕(湯)들은 전부 열(熱)이 많은 음식이다.
삼계탕은 인삼중에서 열이 가장 많은 수삼(水蔘)과 양(陽)의 절정인 닭이다. 보신탕도 구육(狗肉)이 전부 열량이 많은 고기다.
옻닭의 건칠(乾漆)은 한약에서 열이 가장 많은 약재며 독성이 많은 것으로 이 약재가 꼭 필요한 병을 갖인 사람을 제외한 일반인들이 몸에 좋다고 아무나 먹는 약재가 아니다. 옻을 함부로 먹으면 보약이 아니라 독약을 먹는다고 생각해야 한다. 간과 피부에 아주 위험한 물질이다.
위의 음식들은 최소한 50년 이전에는 가난해서 열량이 많거나 단백질이 많은 음식을 먹을 수가 없어 몸이 전부 바싹 말라 있었다. 그래서 기회 있는 대로 열이 많은 음식을 먹어 몸에 양기(陽氣)를 보충하라는 생각이 지금까지 내려 온 것이다.
지금은 너무 좋은 음식이 많고 칼로리가 넘쳐서 전 국민이 살 빼는 운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음식을 몸이 뚱뚱하고 얼굴이 벌겋코 피부에 기름이 질질 흐르는 사람들이 땀을 뻘뻘흘리며 그것도 폭염의 여름에 먹다니 귀가 막힐 노릇이다.
“이열치열(以熱治熱)” !
이말은 열은 열로 다스린다는 말인데 이말은 순리(順理)를 벗어난 극한 처방을 의미한다. 열(熱)은 반드시 서늘한 량(凉)으로 식히고 찬 냉(冷)은 열(熱)로 데워야 한다. 이것이 자연이치요 지혜요 지식이다.
지금은 이열치량(以熱治凉)으로 더위는 서늘한 것으로 고쳐야 할 때다.
음식뿐만 아니고 인간의 삶의 이치(理致)가 다 그렇다.
창끝과 칼끝은 극(極)과 극(極)이다.
이열치열은 이성(理性)이 아니고 감성(感性)이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이 잘못 답습(踏襲)되면 사회병리현상이 된다.
지금 공부를 많이 하고 속이 깊은 한의사는 보약이라고 무조건 인삼이나 녹용을 습관대로 사용 안할 것이다. 물론 인삼 녹용이 매우 좋은 약재임에는 틀림이 없고 꼭 써야 될 때는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온 국민이 너무 잘 먹어 체중이 늘어 열이 많고 콜레스테롤과 고혈압 당뇨가 많은 때에 열이 많은 약재를 고정관념으로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옛날 한의사들은 기름지고 열이 많은 음식을 권했지만 지금의사들은 소식과 야채과일과 물을 많이 권한다. 옳은 말이다. 야채과일은 서늘하고 기름과 열을 중화시키는 음식이다.
수박은 하늘이 주신 은혜로운 음식이다.
음양오행으로도 수박은 서로 도와주는 상생(相生)의 식물이다.
검은 씨는 수(水)이며 푸른 껍질은 목(木)이고 붉은 속살은 화(火)로서 이 세 가지는 순서적으로 서로 도와주면서 열(熱)을 식히는 관계이다. 수박의 현대식품학적 영양소는 여기에 기술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풍부하며 특히 항산화물질인 리코펜이 많다.
1952년 우장춘 박사가 처음으로 개발한 “씨없는 수박”은 부친이 친일로 조국에 지은 죄를 속죄하는 일념으로 개발한 결과라고 전하지만 수박에 검은 씨가 없는 것은 자연의 순리를 어기는 것이다. GMO(유전자변형식품遺傳子變形食品)는 지구의 인간을 외계의 한 생물체로 변형시킬지도 모른다.
동의보감에는 “성질이 찬 담백한 과채”로 속이 타고 열이 나는 번갈(燔渴)과 더위먹음(署毒서독)을 제거하는데 쓴다. 피똥을 싸는 혈리(血痢),입이 허는 구창(口瘡)을 다스린다. 몸을 차게 하는 수박은 밤보다는 낮에 먹는 것이 좋다. 냉증(冷症),장염,설사를 자주 하는 사람은 권장되지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수박을 천연(天然)의 백호탕(白虎湯)이라한다.
백호탕은 감기 폐렴 기타의 열성전염병으로 입안이 마르고 갈증이 심할 때 열을 내리는 처방이다.
본초강목에 “수박은 답답함과 갈증을 해소하고 더위를 시킨다. 위장부분(중초)을 편안하게 하고 기(氣)를 내리고 수(水)를 유익하게 하면서 주독(酒毒)을 해독한다.
수박은 색이 붉어서 심포(心包넓은의미의 심장영역)의 열을 제거 한다.
“붉으면서 차다” 이런 모순(矛盾)은 하느님만이 할 수 있는 오묘(奧妙)한 아이러니다.
붉은 수박살을 먹는 것이 차원 높은 이열치열(以熱治熱)이다.
붉은 수박살을 물고 열을 식히면서 냉(冷)과 정(靜)으로 돌아가 조용히 생각하자.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이 진정 내건강을 위하고 내나라를 위한 것이지---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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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몇일전에본 모내기를 마친 평화로운 들판도 생각나고...잘 읽었습니다~~~사진도 멋지구요~~`
미주학당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한것이 많습니다. 좋은 충고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