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무예는 그 자체가 갖는 신비로움이 있다. 이로 인해 전통무예에 대한 이해가 추상적이 된다거나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무협지 식의 서술을 하는 경우도 있다. 유래가 근현대이면서도 조선시대나 고려시대 혹은 이보다 더 이전 시기로 그 근원을 가져다 붙이는 경우도 있으며 전통무예의 위력에 대해 과장된 서술도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언급이 가능했던 것은 아직까지 학문적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했던 영향이 크다. 물론 1990년대 후반부터 무예 관련 연구자들이 증가하고, 객관적인 논의가 이루어지면서 그러한 경향은 많이 사라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그러한 경향을 완전히 벗어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현재 국내의 전통무예에 관한 논의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무예제보(武藝諸譜)'나 '무예제보번역속집(武藝諸譜飜譯續集)',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등 각종 무예서를 바탕으로 조선후기 제도권내의 무예에 대한 연구가 한 갈래이고, 택견이나 수벽치기 등 현재 소수 전수자들에 의해 전승되고 있는 무예들의 정통성 혹은 전통성을 논의하는 연구가 다른 하나의 갈래이다. 물론 여기에는 생성된 시기가 확실하고 아직까지 창시자(학문적 용어로서 적당한가는 유보하고 사용한다)가 생존하고 있는 경우도 전통무예로 간주하고 연구하는 경우도 있다(필자는 이 경우는 전통무예가 아닌 별도의 용어-예를 들자면 ‘현대(형성)무예’-로 구분해서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제외한다).
'무예도보통지' 등을 중심으로 한 무예서의 연구는 현재에 와서는 단순히 그 자체만의 연구를 벗어나 중국?일본의 무예와의 관계에 대해 논의하려는 경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 연구 경향은 2,000년 이후 연구가 세분화되면서 점점 대세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기존의 논의를 창조적 연구 없이 재반복하는 사례도 없는 것은 아니나 그러한 논의는 점차 설자리를 잃어갈 것이다.
전통무예에 대한 논의가 재반복 되는 예가 아직까지 존재하는 것은 자료의 부족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문자로 남겨지기 어려운 무예의 특성과 관련되어 자료를 찾기가 힘들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가장 큰 원인일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무예를 연구하는 학자들이나 관계자들이 자료 발굴에 소홀했다는 비판도 면하기는 힘들다. 자료의 수집은 전통무예를 연구하기 위한 기초작업으로 반드시 행해져야 하는 것이다. 각양각색의 논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는 자료가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2004년에 국립민속박물관에서 '한국무예사료총서' Ⅰ(삼국시대편)Ⅱ(고려시대편)와 '무예문헌자료집성' 등이 출간되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런 논의들은 문헌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다. 문헌이라는 것이 기원이나 무예의 역사 등을 알려주는 근거가 되긴 하지만 움직임까지 자세히 알려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무예는 글만 가지고 이해할 수 있는 학문이 아니다. 무예는 글보다는 몸으로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예도보통지'에는 중국에서 유래된 ‘권법(拳法)’?일본에서 유래된 ‘왜검(倭劍)’ 등의 기예가 포함되어 있고, 이런 기예마다 연원 및 역사 등에 대한 서술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기록을 통해 학자들은 중국 혹은 일본과의 영향 관계 등을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무예의 본질은 몸의 움직임이라고 하면서도 실제 대부분의 국내연구자들은 문헌적 연구를 벗어나고 있지 못한 상태이다.
이는 무예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무예수련 경험이 적어 동작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도 있고 동작 연구에 대한 인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각 동작의 비교 연구는 아예 생각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움직임에 대한 이해는 무예단체에서 주도적으로 행하고 있으며, 학자들은 이를 방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권법조에 보이는 ‘탐마세(探馬勢)’을 보자. 탐마세는 “처음에는 탐마세를 하되 오른손으로 왼어깨를 쳐서 열고(初作 探馬勢 右手打開左肩)”라는 설명과 함께 자세가 함께 그려져 있다. 탐마는 정탐(偵探, 적의 동태를 파악하는 것)의 의미를 지지고 있다. 따라서 결정타라기보다는 동작을 가볍게 취해 적의 대응을 알아보기 위한 동작으로 보인다. 그림을 살펴보면, 시연자의 왼발 뒤꿈치가 들려 있으며, 오른 발은 바닥에 전체가 붙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오른손은 손바닥을 편 채 머리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듯이 그려져 있다. 글 설명과 함께 동작을 이해하면 오른발을 앞으로 내딛으며 오른 손으로 상대방의 왼어깨를 공격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해석은 단순히 '무예도보통지'만의 경우에 한정해서 이해한 것이므로 조심할 필요는 있음은 분명하다. 다른 무예서와의 비교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는 하나의 예시인데, 이런 동작 연구는 '무예도보통지' 등의 옛 무예서들 가운데 중국 혹은 일본에서 유래된 무예 전반에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중국 혹은 일본에 존재하는 기법과의 유사점이나 혹은 이들과는 다른 우리만의 독특한 특징을 발견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방법론은 무예의 본질적인 면을 연구한다는 점에서 필요한 부분이고 앞으로 많은 연구가 실제로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방법론은 소수의 전수자들에게 의해 전해지는 전통무예나 전통무예인지 자체에 대해 논란이 되고 있는 무예들에도 적용된다. 무예의 특성상 문헌으로 남겨지지 않고 동작만 전수된 경우도 있다. 역사가 불확실하다 해서 전통이 아니라고 무작정 배척하는 것도 전통무예를 연구하는 올바른 태도는 아니다. 그런 무예의 경우는 그 무예의 움직임 연구를 통해 전통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무술이든지 각각의 독특한 움직임을 지니고 있을 것이며, 다른 무예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그 무예만의 기법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전통무예라고 해서 중국 혹은 일본 무술에 나타나는 동작이 아예 없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움직임이라는 것은, 특히 힘을 쓸 수 있는 동작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작과 동작 사이의 움직임이라는 것은 결국 그 민족 특유의 움직임이나 박자가 들어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전통무예라고 말하는 무예의 움직임이 현대 격투기에 가깝다거나, 중국 무예나 일본 무예에서만 나타나는 기법이 그 무술 체계 안에 포함되어 있다면 그 무예를 전통무예라고 지칭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이런 움직임 연구는 역사나 전승체계가 불확실한 전통무예를 연구하는 하나의 방법론으로 필요하며, 앞으로 문헌을 통한 역사 연구와 아울러 활성화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연구 이전에 먼저 전통무예에 대한 기준과 범위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어 전통무예를 어떻게 한정한 것인가 하는 점에 기본적인 합의가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전에 전통무예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학문적 틀 안에서 객관적인 논의가 이루어진 적은 없었다. 논의하는 사람에 따라 그 기준과 범위가 각각 다르게 적용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무예도보통지' 등의 무예가 우리의 동작이 아니라고 하면서 전통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고, 혹자는 전수체계가 명확한 것만을 전통무예라고 하기도 한다. 아직까지 전통무예에 대한 논의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연구가 행해지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따라서 전통무예에 대한 치열한 논의를 통해 전통무예의 범위 등에 대한 대체로 공감할 수 있는 합의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전통무예라는 용어는 말 그대로 ‘전통’과 ‘무예’가 혼합된 용어이므로, 전통무예를 논하는 것은 전통에 대한 개념과 무예에 대한 개념을 먼저 이해한 후에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바탕 위에 문헌적인 고찰 혹은 움직임 비교 등의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 허인욱 : 고려대에서 한국사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삼척대 강사로 활동중이다. 18년간 무예수련을 해 온 그는 최근 '옛 그림에서 만난 우리무예 풍속사'(푸른역사)를 발간해 그림속 조상들의 무예모습을 선 보였다.
[소마연구소] www.soma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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