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요한복음 20장 24절입니다. 열두 제자 중에 디두모라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에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1차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저녁때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되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손을 내시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근데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던 모양이예요. 제자들이 보여달라고 했는지 예수님께서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다그러셨거든요. 좀 사실은 한심한 얘기예요. 이것은 완전히 의식 차원의 얘기죠. 그거를 보지 않고서는 제자들은 믿기 힘든 상태에 있었어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그거를 보여주셨습니다. 그거를 보여줘야만 믿는 상태는 좀 한심한 상태예요. (근데 제 생각에는 영적인 존재, 돌아가셨다가 나왔기 때문에 육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죠. 그것도 그당시에 이원론에 사로잡혀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몸으로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그랬을 겁니다. (문을 닫았는데 예수님이 그들 중에 계신 것은 투명인간처럼 들어오셨다고 하는 얘기 아니예요?) 그렇지. 그야 물론이지. 그렇다고 해서 몸이 없는 것은 아니지. (되게 무서웠을 것 같애. 문을 닫았는데 예수님이 거기 탁 있는거야.) (이게 보통 한심한 게 아니예요. 4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고서 문을 두드렸을 때 여종이 나와서 베드로와 제자들 거의가 봤거든요. 부활하고 나서 마리아도 봤잖아요. 그래도 안믿었어요 부활한 것을. 얼마나 한심한 거요.) 그러니까 이게 믿기지가 않는거라 (예수님이 전부터 여러번 얘기를 하셨는데 내가 부활해서) (근데 제 생각엔 제자들이 다 로마의 압제로부터 구원할 이 세상의 왕으로 생각하고 자리다툼하고 그랬잖아요. 그렇게 왕으로 될 사람이 너무 힘없이 끌려가서 그야말로 그 시대에 가장 개죽음 아니예요. 십자가형이 그때에는 제일 극형이었다며. 힘없이 돌아가시니 제자들이 다 떠나간거 아니야. 그러니까 힘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지 실망하고 그러고 자꾸 나타나시니까ㅎㅎ) 문을 닫아놔도 들어오실 수 있는 그런 몸이 있어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해서 물질과 에너지는 왔다갔다 하는 거니까 우리도 앞으로 그런 존재가 될 거예요우리가 부활하면은. 확실히 몸은 있는데 에너지 차원이 높아지면은 그냥 통과하는 그건 불가능한게 아니예요절대물리학적으로. 근데 이 도마는 내가 실제로 그렇게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노라 라고 하는 말 이거는 믿지 못하겠다는 말은 괜찮은데 믿지 않겠다는게 상당히 대단한 사람이예요. 도마라는 사람은 완전히 의식 차원의 체험주의자예요. 그러니까 무의식을 무시하는 거예요.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는 영적 체험에 대해서는 전혀 가치를 부여하지를 않는 사람이예요. 내 의식으로 실제로 감각을 하고 내가 의식적으로 느껴서 믿겠다 그렇지 않으면 안믿겠다. 상당히 확실한 사람이예요. 26절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또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 시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는 복되도다 하시니라 이 말이 중요한 말이예요. 그러니까 너는 의식 차원에서 체험해야만 믿느냐 문제는 뭐예요?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우리는 사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입니다. 보지 못해도 확실하다고 하는 사람들인데 사실 우리가 진짜 무의식에도 믿는 건지 그렇지 않으면 습관이 되서 믿는 건지는 모릅니다. 그건 하나님만이 아실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만이 판단하실 수 있는 거지 우리는 누구도 제 3자를 가타부타 얘기할 수가 지금 현재는 없어요.(체험적으로 느꼈고 자기 자신만 아는) 그렇죠. 오늘의 주제가 그겁니다. 보지 못해도 믿을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기적이라. 그것은 결국 내가 믿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나로 하여금 믿게 해주시는 것으로 인하여 믿는 자가 복되다 내가 믿는게 아니야 사실은. 나도 하나님을 믿게 된 순간을 생각하면은 그건 내가 아니야 전혀 무신론자가 갑자기 아! 찌지직이 탁 온거야. 아! 그러네! 이렇게 되버리니까 그 어떻게 하겠어 그것은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된 거라 성령께서 강한 역사로 믿게 해 주신 자가 복이 있단 말이지 물론이지 그 다음에 21장으로 넘어갑시다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또 제자들에게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이 이러하니라 지금까지는 계속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자기가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계속 말을 걸고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리고 나타날때마다 보여줬어. 시몬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니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날이 새갈 때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자 여기 보면은 아무리 자주 봐봐야 성령의 역사 없이는 예수를 알 수가 없는 거예요.그 얘깁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자기를 알게 해 주시지 않는다면은 우리는 알 수가 없다는 얘기죠. 예수께서 이르시되 예수께서 자기를 또 나타내십니다.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이번에는 상당히 간접적입니다. 처음에는 상처를 보여주셨는데. 대답하되 없나이다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데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수가 없더라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요한이죠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내리더라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상거가 불과 50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육지에 올라와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잡은 생선을 가져오라 하신대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올리니 가득히 찬 큰 고기가 일백쉰세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은 찢어지지 않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신줄 아는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3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여기서 보시면 예수님께서 바닷가에 서계시는데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알아보게 하기 위하여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물고기가 있느냐 없나이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어도 몰라요.글니까 우리 인간의 감각으로는 즉 도마 차원에서는 알 수가 없다는 얘깁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도마가 큰 소리 떵 쳤습니다. 내가 못자국과 허리에 손을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노라 그 말은 내가 손을 넣어 본다면은 믿는다는 얘긴데 손 넣어 보고도 모르는 거예요. 그런 얘기예요.이게 굉장히 중요한 얘기예요. 우리는 손 넣어보면은 절대로 안 잊어버릴 거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예수님이라면 답답했을 것 같애. 참 참을성이 있으시죠. 계속해서 체험을 하게 하십니다. 고기는 없느냐 없나이다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었더라 그때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가 요한이 고기가 콱 잡혔어 땡겨보니까 이거뭐 대단해 그때 사도요한이 아! 이번엔 손바닥과 허리를 보지 않고 주시다!! 자 이때 사도 요한이 왜 알았겠느냐 이것도 그 순간에 예수님이 찌지직을 보냈어 이게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찌지직을 아무리 보내도 우리가 예수님이 사용하실 수 있는 시냅스가 있어야 되요. 뇌신경세포가 연결된 그게 있어야 돼요. 그래서 고거를 찌지직하면은 주시다! 할 수 있는 시냅스가 있어야 돼요. 다른 사람들은 주시다 안그랬거든 베드로는 모르고 있다가 사도 요한의 말을 듣고 아! 맞다! 이렇게 해서 뛰어든거지 사도 요한이 제일 먼저 알아차렸어.그래서 사도 요한이야말로 진짜 요한 계시록을 쓸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 그만큼 예수그리스도의 나타나심에 대해서 가장 예민한 사람이야 그럼 사도 요한이 왜 알았겠어 그물을 딱 땡겼을 때 주시다 그랬거덩 누가복음 5장에 나옵니다. 여기에 예수님과 함께 고기잡는 얘기가 나오죠.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어도 얻은 것이 없지만은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을 손짓하여 와서 도와달라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이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이때 요한이 있었어요 거기에. 요한도 함께 놀랐어. 이때는 초창기예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땐데 여기서는 그물을 어떻게 던지라고 했어요 좀더 깊은데로 던지라고. 이 얘기는 무슨 얘길까 내 생각에는 지금 너희들이 알고 있는 성경은 참 얕다 좀더 깊이 이해하면은 고기는 잡힌다. 사람을 많이 하나님께로 이끌 수 있다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베드로가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 이러한 표현 자체가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아주 얕다는 것이 나타나죠. 정말 자기가 하나님을 찾고 있었으면 아, 이분이구나 해서 나를 떠나지 마시라고 해야되는데 이때는 베드로의 자존심이.. 여기서는 떠나소서 그랬죠 요한복음 21장에서는 뛰어갔지. 이만큼 바뀐거야 신앙의 깊이, 자존심의 작용함이 훨씬 적어졌죠. 이때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참 아름다운 추억이야 누가복음 5장이 사도 요한도 예수님을 몰랐는데 이때 예수님을 처음 만나는 순간인데 우리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 우와! 그때 그물이 다 찢어졌어 예수님 하면 고기 많이 잡힌 그 시냅스가 형성된 거야 다른 제자들은 그래도 이 분이 누군지 몰랐는데 그 시냅스가 형성되어 있는데 물론. 베드로도 시냅스가 형성되어 있겠지 근데 사도요한이야말로 이 시냅스가 가장 확실하게 연결되어 있는거라. 근데 최근에 와서 과학자들이 시냅스가 어떤 상태에서 가장 확실하게 연결되어 있느냐 시냅스가 세월이 가면 자꾸 떨어져요 세월이 너무 많이 가버리면 기억이 없어져버려 그런 일이 있었는가도 모른다고. 시냅스가 가장 확실하게 아직도 그 생각만 하면 아! 그렇지 하는 것은 계속 사랑이 있어야만 돼요. 예를 들어서 에스더하고 나하고 중국 계림에 갔을 때 계림! 하면 아! 하는데 둘 사이가 사랑이 식어 버리면 계림도 별 볼일 없어지는 거라 사랑과 뇌신경세포들이 연결을 이루는 시냅스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사도 요한이 그의 사랑하시는 제자, 항상 그 사랑을 가장 많이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가장 시냅스가 확실하게 유지되어 있는 제자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즉시 주시다!이렇게 된거지.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이 바로 내 옆에 서 있어도 이것은 무슨 얘기냐 하면은 나와 예수님과의 순수한 개인적인 관계 그 개인적인 관계로 인하여 만들어진 추억 그것이 필요한 거야 그 시냅스가 그것이 바로 요한계시록에서 말한 예수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더라 그러지 않거덩 남은 자의 정의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거덩. 시냅스가 형성된 자더라..예수님이 자기가 예수인 줄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야 (맛보아 알게) 시냅스가 형성되어 있어야 자기가 자기임을 알게 할 수 있는 자들이 된다 이 말이야 우리가 그것은 뭐냐 예수님이 형성해 주신 그 시냅스가 있어야 된다는 참 중요한 얘깁니다.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내 혼자 알아봐야 소용이 없어. 내 혼자 예수님을 안다고 해봐야 이원론의 앎일 뿐이야 우리가 일상 생활 속에서 어려움이 닥쳤을 때 구태여 큰 어려움이 안닥쳐도 괜찮아요 순간순간 내가 어떤 직장 생활 속에서 힘든 사람과의 관계, 이세상은 나가면은 부딪히게 되어 있잖아. 안나가도 안에서도 부딪히지 맨날 방구석에서도 마누라하고 ㅎㅎ 혼자도 부딪히는데. 그러니까 우리 죄의 세상은 어디서나 부딪히게 되어있다니까 사망과. 그때 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체험이 필요해. 그래서 운전하다가도 상대방이 잘못할 때 그때 거침없이 욕이 튀어나오면 안돼. 그 순간에 정말 예수님의 힘을 얻어서 이거를 상대방 중심으로 '아 저사람이 참 급하다 나도 저런 적이 있다' 그러면 얼마나 마음 편한지 몰라요. 욕하고 나면 속 더 상하지. 우리는 항상 보면은 그 쪽을 선택하고 있는거야 자꾸. 행복해지는 쪽보다 불행해지는 쪽을 강력하게 선택합니다. 그게 정상이니까 그게 왜 나쁘냐 이렇게 되면 할 말이 없지. 그러나 생명 차원에서는 분명히 사망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 하나님 내입에서 또 비판이 나오고 또 부정적인 얘기가 나올라 그럽니다. 하나님 이말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할 때 희한하게 예수님께서 다시 찌지직을 보내서 '아, 그래 저 사람이 급한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났을 때 이게 훨씬 더 편하잖아. 라는 것을 계속적으로 쌓아나가면서 이 시냅스를 바꾸어 나가야 돼요.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거기에 사용되어야 돼. 그래서 우리가 아니꼬운 사람도 있구 다 그렇지만은 그 순간이 우리의 시냅스를, 예수의 증거를 형성하는 중요한 순간이요 그 순간이. 그 순간이 제수없는 순간이 아니라 사실은 내가 예수님과 개인적인 체험의 그 추억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죠. 그래서 아! 주시다!!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시다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라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걸치고 바다로 뛰어내리더라 탁, 이래서 베드로도 사도 요한의 말을 듣고 아! 맞다! 두 사람 다 누가복음 5장의 추억이.. 그래서 우리는 이 인생이라는 것은 예수님과의 추억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아멘) 그러한 시간이기 때문에 참 중요한 겁니다. 한순간한순간이 예수님과의 아름다운.. 그게 없으면 예수님이 나중에 내가 아무리 찌지직을 보내도 너는 시냅스가 없더라 그게 뭐냐면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이렇게 되는 거라 주여 내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병자를 고치며 많은 권능을 행치 않았나이까 하리니 그게 문제가 아니란 말이야 얼마나 큰 일을 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일은 뭐예요? 그 참 하나님과 그 보내신 자 예수를 아는 것이 일이지 이 일이 일이 아니래니까 (아멘) 우리는 이 일을 해나가는 동안 우리가 이 일을 하는 것은 그러한 아름다운 추억을 더 많이 만들 수 있는 일을 선택한 것뿐이야 우리는. 이 일을 우리가 얼마나 잘했느냐 못했느냐 가지고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참 중요한 얘기죠? 우리는 자꾸 일 중심으로 생각하는게 그럼 뭐냐 일이 뭐냐 그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 그것이 우리의 일이라 그래서 절대로 그 추억을 만드는 일을 포기하면 안됩니다.(아멘)에이, 이럴바에야 집어쳐버려. 그럴 때 우리는. 그래서 전 이래요. 야! 그런 순간에 이렇게 처리해 버릴 수도 있었으나 하나님을 믿고 이렇게 처리했더니 과연 그게 잘 했구나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런 것들이 자꾸 쌓입니다. 내가 이렇게 한 마디 던졌을 수도 있었으나 내가 그렇게 참았을 때에 참 일이 이렇게 풀려있구나 참 감사합니다. 계속적으로 우리는 그러한 그러니까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는 얘기지. 이런 것을 깨닫지 못하면 맨날 별로 감사할 것도 없는데 자꾸 감사하라 그러는 것처럼 들리지만은 그것은 뭘 모르는 사람들이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는 순간이 연속이 될 수 있도록 우리 예수님과 아름다운 추억을 형성하는 한순간 한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저희들의 아버지, 주님 참 이렇게 우리에게 주어진 이 시간과 공간이 중요한지를 몰랐습니다. 우리는 그 중요성을 배제한 채로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나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완전히 외부적인 차원에서 중요성을 생각하면서 내 인생에 대한 가치를 점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어떤 입장에 있든지 우리가 할 일은 당신을 아는 일이며 당신을 깊이 알아갈수록 당신께서 우리의 뇌 속에 아름다운 시냅스를 만들어 주시는 추억을 형성하시는 그러한 시간임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 예수님께서 저희 눈 앞에 있을 때도 모르는 자가 되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내 혼자만 안다고 큰 소리하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이 보실때에 우리가 당신을 아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시냅스는 조용한 가운데 무의식에서 그대로 남아있는 것 아닙니까 주님, 우리가 무의식 속에 있는 시냅스로서 당신을 아는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 되고 싶사오니 저희와 함께 하셔서 매순간 힘든 순간마다 그 순간이 아름다운 순간으로 변모하기 때문에 감사하는 우리들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우리 한선혜님 정말 감사해요. 우리 넘치는 은혜 받고 있는 중입니당~!
저두요.. 큰 은혜 속에서 살아요. 덕분에..여러분도 한번 해보세요. 되게 은혜로와요. 실제 상황은 훨씬 은혜롭구요. 글로 치면서 자근자근 씹을 수 있어서 좋아요.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