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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아름다움의 세계(BC4세기~AC 1세기)
2)고전기의 절정, 플락시텔레스 그리고 헬레니즘의 시작 알렉산더
BC5세기말~~
전쟁이 끊임없던 시대로 잠깐의 번성이 종식되고 그리스내의 패권 다툼인 펠레폰네소스 전쟁(BC431~404)가 이어진다.
전쟁에서 패한 아테네는 해상의 힘을 잃고 정치 군사적으로 약화되었으며, 승자인 스파르타도 내부의 문제로 BC 371년 레우크트라 전투에서 테베에 패하며서 약화되었다.
나훈아의 노래에서 "너 자신을 알라"던 테스형은 무지와 오판으로 아테네를 패전으로 내몬 위정자들을 비판하며 전문성과 혜안을 가진 지도자의 주도를 주장했으며, 제자 플라톤은 "철인정치"라는 사상적 기초를 완성했습니다.
☆라파엘로가 당시의 시대상을 묘사한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
"아테네 학당"
*아테네 학당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인 라파엘로 산치오가 교황 율리오 2세의 주문으로 27세인 1509~1510년에 바티칸 사도 궁전 내부의 방들 가운데서 교황의 개인 서재인 '서명의 방(Stanza della Segnatura)'에 그린 프레스코화. '아테네 학당'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라파엘로의 방에 있는 다른 그림들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서명의 방의 네 벽면은 각각 철학, 신학, 법, 예술을 주제로 벽화가 그려졌는데 이중에서 아테네 학당은 철학을 상징하는 그림이다. 가로 823.5cm, 세로 579.5cm 크기의 벽면에 모두 58명의 인물이 배치되어 있다. 철학자들이 모여서 토론하고 있는 공간은 이 벽화가 그려질 당시 도나토 브라만테가 설계해 막 공사에 착수한 성 베드로 대성당의 내부를 모티브로 1점 투시도법을 사용해 묘사되었다. 벽기둥 양쪽에 있는 두 석상은 왼쪽이 아폴론, 오른쪽이 아테나이다. 아폴론과 아테나는 이성과 지혜를 상징하는 신이므로 그림의 의미에 적합한 소재라 할 수 있다.
고대의 대학자들을 한 자리에 모은 상상화이다. 달리 말하면 고대 학자들을 모아놓은 올스타 내지 크로스오버라 할 수 있겠는데, 실제로는 이 사람들이 활동한 시기나 지역이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한 자리에서 있는 게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가 사망할 당시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고, 조로아스터는 그리스 철학이 태동하기도 전 페르시아에 살았던 사람이다.
플라톤의 얼굴은 레오나르도이며, 헤라클레이토스는 미켈란젤로의 얼굴이다. 라파엘로 자신 또한 그림 속에 그려 넣었는데 오른쪽 아래의 검은색 모자를 쓴 관객을 바라보는 남자가 바로 라파엘로이다.
참고로 이슬람 학자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아랍어로 번역해 이슬람에 소개한 이븐 루시드. 유럽에는 아베로에스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학자의 저서가 유럽에 알려지면서 유럽이 아리스토텔레스 열풍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림의 7시 방향에서 터번을 쓴 인물이 그다.
아테네 학당에 올려진 당대의 대학자 명단도 등장하지만 라파엘로 본인이 누가 누구라고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주 유명한 대학자들 몇몇을 제외하고는 누가 누구인가에 대해서 해석이 갈리는 등장인물이 여럿 있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그리스에서 공공이 주도하던 예술은 성장동력을 잃었으며 사람들은 사회를 휩쓸던 영웅주의에서 탈피하여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인간의 모습에 관심을 가지게된다.
이런 분위기에서 BC350년 고전기 후기를 대표하는 미술가인 "프락시텔레스"가 등장한다.
*프락시텔레스(고대 그리스어: Πραξιτέλης)는 고대 아테나이의 조각가이다. 조각가 케피소도투스의 아들로, 기품 있는 정서를 아름다운 형태 속에 표현하고, 소위 우미한 양식을 수립한 고전 후기의 대표적 작가로서, 그 활약기는 기원전 370년부터 기원전 330년 경이라고 생각된다.
그는 신에게 인간의 모습을 투영하여 신도 인간의 감성을 지닌 감성적인 존재로 표현하는데 탁월한 재능을 보였으며 "크도니스의 아프로디테"의 표현으로 재능을 유감없이 표현한다.
크도니스의 아프로디테와 우피치에 소장된 보티첼리의 아프로디테..
*유명한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기원전 350년경, 로마 시대 모각. 바티칸 미술관)는 여신을 전라(全裸)의 모습으로 나타낸 최초의 걸작으로서, 미의 여신은 여기에서 인간 감정의 대상이 되고 이후의 여성 나체 표현의 원형이 되기에 이르렀다. 1877년 올림피아의 헤라 신전에서 발견된 <헤르메스>(올림피아 미술관)는 그의 원작이냐 아니냐가 문제되지만, <도마뱀을 죽이는 아폴론>(로마 시대 模刻. 루브르 미술관)이나 <목신(牧神) 사티로스>(로마 시대의 모각. 카피톨리니 미술관) 등에는 여성적인 감미로운 감정이 나타나 있기도 하다.
"크도니스의 아프로디테"는 미술사에서 신화속 여신을 나체로 표현하여 전해지는 최초의 조각상이며 "신성에 인간적인 매력과 아름다움"을 결합시켜 많은 미술가들이 답습하며 "비너스 포즈(Venus Pudica)"라는 전형적인 포즈의 원초가 되었습니다.
"헤르메스와 어린 디오니소스"라는 작품에 대해서 곰브리치는 저서에서 "<클레오비스와 비톤>과 대비하여 200년동안 엄청난 발전을 볼수있으며 그의 작품에서 부자연스러움은 더 이상없다.
사실 그리스 조각상처럼 균형잡히고 아름다움만 있는 육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 외모를 묘사하면서 이념에 일치하지 않는 불균형이나 특징을 교묘히 배제함으로 인체를 미회시켰다고 생각한다."라고 극찬했다..
저 역시 그의 의견에 동조하기에 옮겨봅니다..
조각을 감상하며 완벽한 육체를 꿈꾸는 필부들 꿈깹시다..
허점많고 약점많은 인간이니 자존감을 가지고 스스로에게 만족하면서 삶을 영위합시다..ㅎ
*프락시텔레스의 〈헤르메스와 어린 디오니소스 Hermes and the Infant Dionysus〉 상은 전령의 신인 헤르메스가 어린 디오니소스를 팔에 안고 놀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해 고대로부터 200년이 지나는 동안 그리스 미술이 얼마나 탁월한 성과를 남겼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프락시텔레스의 작품에는 딱딱한 흔적을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헤르메스의 조각상은 매우 편안한 자세로 우리 앞에 서 있지만 그것이 위엄을 손상시키거나 가볍게 하지는 않는다.
지지대에 걸려 있는 옷 주름과 인물들의 얼굴 묘사는 이전의 조각상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자연스럽다.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우아한 가운데 헤르메스의 자세가 편안해 보인다. 동작에서 다른 동작으로 옮겨 가는 움직임도 한층 부드럽다.
프락시텔레스는 헤르메스의 오른쪽 다리에 중심을 두고 왼쪽 무릎을 살짝 굽혀 뒤로 빼는 콘트라포스토 contraposto자세라는 방식을 사용하여 자연스러운 동작을 연출하고 있다. 이후 후대 미술가들에 의해 콘트라포스토 자세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나타내는 하나의 규범으로 여겨져 르네상스 시대의 도나텔로 Donatello, 베로키오 Andrea del Verrocchio,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등의 대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프락시텔레스는 조각에서 자연스럽게 근육과 뼈가 부드러운 피부 아래서 부풀어 오르고 움직이는 것처럼 표현할 수 있었으며, 우아하고 아름다움을 지닌 살아 있는 육체 같은 인상을 형상화할 수 있었다.
프락시텔레스는 기원전 5세기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면서도, 폴리클레이토스 Polykleitos이후의 서 있는 조각에 힘을 빼고 기대고 있는 모티브를 취하면서 유연함에 따른 균형감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런 흐름은 프락시텔레스의 또 다른 작품은 〈아폴로 사우로크토노스 Apollon Sauroktonos〉 상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아폴로 사우로크토노스〉는 나무를 기어오르는 도마뱀을 응시하고 있는 아폴론을 묘사한 작품이다. 이 조각상은 〈헤르메스와 어린 디오니소스〉 상과 마찬가지로 유연한 S자의 곡선이 몸 전체에 흐르고, 한쪽 무릎을 살짝 굽혀 뒤로 빼는 콘트로포스토 자세를 취하고 있다. 연약한 소년의 신체 모티브를 잘 살린 훌륭한 작품으로 정평이 났지만 애석하게도 원작은 없어졌다.
그러나 여러 종류의 로마 시대의 모각들이 루브르 박물관, 바티칸 미술관, 로마의 빌라 아르바니 등에 산재해 있다.
1925년 마라톤 앞바다의 바다 속에서 발견된 〈마라톤의 소년〉 청동상은 기원전 45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오른팔을 가볍게 들고, 시선을 약간 앞으로 내민 왼손 위에 두고 있다. 전신은 프락시텔레스풍의 부드러운 S자형 축으로 균형이 잡혔다. 유연한 곡선이나 살결이 부드럽고 우아하게 뻗어 있는 걸로 보아 아마도 프락시텔레스의 계통을 따르는 작가의 작품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플락시텔레스는 전기의 미술을 이상적 조화와 비례를 유지하면서 완성도를 높여 후기로 이끌었고 "인간의 감정과 부드러운 곡선을 통해 신의 인간적 측면을 부각시켜 감정선을 동일화를 유추"하도록 하면서 헬레니즘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역할을 충실히 했습니다.
플락시텔레스를 소재로 한 작품 한점 멘트없이 소개~~
궁금하시면 한번 찾아보시라고..ㅎ
헬레니즘 시대는 감성적이고 사실적인 표현을 계승 발전시켜서 더 극적이고 동적인 스타일을 추구하게 됩니다!
헬레니즘은 그리스어인 "헬레니스모스"에서 파생된 단어로 그리스화, 그리스의 영향력에 있는 상태를 지칭합니다.
19세기 독일학자 드로이젠이 체계화했으며 마케도니아 출신인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그리스 문화가 여러지역으로 확산되고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며 융합된 시기를 지칭한다.
헬레니즘이란 그리스 문화가 지역의 한계를 벗어나 확장이 되면서 문화적 혼합이 이루어진 시대라고 정의할 수 있다.
헬레니즘 미술은 BC4세기~BC1세기 즉 알렉산더의 사망(BC 323년)부터 로마제국이 그리스 전역을 정복하기까지로 알렉산더 정복 활동을 포함하지 않을수 없다.
알렉산더는 정복지에 그리스인을 이주시켜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정복정책을 펼쳐 그리스의 문화가 융합되어 새로운 정체성이 형성되었으며 그의 갑작스런 죽음과 방대한 영토로 여러개의 헬레니즘 왕국으로 분리되었다.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국, 서아시아의 셀레우코스 왕국, 마케도니아와 그리스의 안티고노스 왕국이 대표적인 분리 왕국들이다.
BC5세기 위대한 각성이후 신중심에서 인간중심으로 변모하면서 알렉산더의 왕실 조각가인 "리시포스"(BC4말~3초)에 의해 초상이라는 개념이 정립되었다.
그는 외모의 재현을 넘어 조각에 성격과 정신적 특성을 구현했으며 그의 재능을 알아본 알렉산더가 그에게만 초상의 제작을 허락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조각의 비례와 형태를 혁신하여 "8등신의 비례기준을 만들고, 전보다 자연스럽고 현실적인 표현에 주력"하여 헬레니즘 미술의 선구자로 추앙받는다..
*리시포스
BC4 세기 후반에 활약했던 그리스의 조각가. 인체의 아름다운 비율을 팔등신으로 나누어 조각에 표현한 것으로 유명. BC 5세기의 유명한 폴리클레이토스는 칠등신으로 인간의 치수를 표현한 데 대하여, 리시포스는 머리 부분을 전체 길이의 1/8로 하는 것으로 전체에 날씬한 경쾌함과 부드러움이 있는 아름다움을 표출하였다. 올림피아 경기 승리자의 상을 만든 것으로도 유명한데, 다작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원작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리시포스가 만든 "알렉산더 대왕의 두상"은 로마시대의 복제품으로 추정됩니다.
이 두상은 기원전 332년 알렉산더가 이집트를 정복한 후 세운 도시인 알렉산드리아에서 획득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알렉산드로스의 마케도니아 장군 중 한 사람이었으며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후 땅을 분할할 때 이집트를 받았습니다. 알렉산드리아는 알렉산더의 무덤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Ptolemy I Soter)가 기원전 305/304년에 자신을 왕으로 선언한 때부터 알렉산더는 신이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조상으로 숭배되었습니다.
그리스 후기의 미술은 대왕의 후계자들이 동방에 건설한 제국의 이름을 따서 헬레니즘 미술로 미술사에서 정의됩니다.
이 제국들은 기존 건축양식인 이오니아, 도리아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건축 양식을 발전시켰는데 코린트라는 부유한 상업도시에서 시작되어 코린트 양식으로 부르면서 우리가 아는 고대의 3대석주가 완성된 것도 헬레니즘 시대입니다..
곰브리치는 오리엔트왕국의 규모및 전통과 융합된 그리스의 미술의 양식과 창의성이 헬레니즘이라면서 다분히 서구에 경도된 결론을 도출하는데, 최근의 학자들은 서양문화의 확장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의 상호작용으로 복잡하고 다층적으로 변모한 현상을 헬레니즘으로 정의합니다.
바티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아폭시오메노스 Apoxyomenos〉는 고대 조각상 중 처음으로 8등신의 몸매를 자랑하고 있는 작품이다. 〈아폭시오메노스〉는 '긁어내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고대 그리스 신전에서 신에게 바치는 봉헌 조각의 전형적인 주제의 하나로, 경기 후에 몸에서 나는 땀과 먼지를 긁어내는 운동선수를 나타내고 있다.
로마시대의 모각으로 알려져 있다.
고대 로마의 박물학자 플리니우스 Plinius는 리시포스가 다른 조각가들에 대해 말하기를 "언제나 그들은 사람을 보이는 실제 그대로 말한다."고 언급했다고 기록하였다. 리시포스는 이 조각상에서 몸에 붙은 땀과 모래를 긁어내려고 어깨를 약간 들어 올리는 포즈를 만들어내 전체적인 인체의 운동감과 이에 따른 관람자의 시선의 범위를 확장시켜 놓는다. 이를 통해 전체적으로 변형된 콘트로포스토 포즈를 창출해내고 있다. 이러한 양식은 도나텔로, 베로키오, 미켈란젤로 등의 르네상스 거장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원작은 청동으로 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리시포스의 또 하나의 걸작으로는 그리스 신화의 사랑의 신 〈에로스 Eros bending his bow〉가 있다. 로마 카피톨리니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조각상은 로마 시대의 모각으로 두 손으로 활을 들고 있는 어린 에로스의 균형 잡힌 몸매와 전체적으로 우미함이 넘치는 인체의 조화가 아름답게 형상화된 작품이다. 에로스는 〈아폭시오메노스〉처럼 두 팔을 내밀고 있으나 팔이 측면으로 향해 있어 미려한 역동성이 돋보인다.
리시포스의 걸작 중의 걸작은 〈파르네제의 헤라클레스 Farnese Hercules〉 조각상이다. 이 작품은 기원전 1세기 아테네의 조각가 그리콘 Glykon이 스코파스의 작품을 모각한 작품이다. 나폴리 국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작품의 모습은 헤라클레스가 12가지 노역을 수행하며 지친 몸을 잠시 쉬고 있는 모습을 묘사했다. 신화에서 헤라클레스는 12가지 노역 중 첫 번째 과제였던 '네메아의 사자'를 제압하고 나서 그 사자 가죽을 벗겨서 언제나 머리에 쓰고 다녔다. 또 사자를 잡으러 갈 때 올리브 나무 하나를 꺾어 몽둥이로 만들었는데, 그때 이후 헤라클레스는 항상 사자 가죽을 쓰고 올리브 몽둥이를 들고 다녔다.
헤라클레스 신화의 전형적인 모티브를 차용해와 몽둥이에 사자 가죽을 걸쳐놓고 그것에 살짝 기대어 쉬고 있는 헤라클레스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이 작품의 숨겨진 비밀은 그가 뒤로 돌리고 있는 한 손에 담겨 있다. 헤라클레스는 뒤로 돌리고 있는 손에 헤스페리데스의 황금사과 세 개를 쥐어 있었던 것.
리시포스가 제작한 기회의 신인 〈카이로스 Kairos 〉 부조는 크로아티아 남부의 항구 도시 트로기르 역사지구의 골목이나 식당 등에서 모조품으로 쉽게 볼 수 있다. 〈카이로스〉 부조상이 이처럼 유명한 것은 고대의 예술가 리시포스의 원작이 트로기르 성 니콜라 수도원에 소장되어 있는 것뿐만 아니라 기회의 신 카이로스에 얽힌 이야기로도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한 철학자가 제자들을 데리고 과수원 앞을 지나갈 때였다. 과수원의 주인은 그들에게 과수원에서 가장 크고 잘 익은 과일을 하나씩 가져가게 했다. 제자들은 앞다투어 과수원 안으로 뛰쳐 들어갔다. 철학자는 과수원의 반대편으로 걸어가 제자들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데 과수원을 빠져나온 제자들은 하나같이 빈손이었다. 제자들은 조금 지나면 더 큰 과일을 딸 것 같아 결국은 아무것도 못 따고 과수원 길이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다시 과수원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철학자는 말리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리시포스가 발에는 날개가 달려 있고, 앞머리에는 숱이 많고, 뒷머리는 대머리인 〈카이로스〉 조각을 만들었지. 이 우스꽝스러운 조각을 보고 웃던 사람들은 그 조각 아래에 쓰인 글을 읽고는 웃음을 뚝 그쳤네."
리시포스의 〈카이로스〉 조각 아래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그대 이름은 무엇인가?"
"내 이름은 기회다."
"왜 발에 날개가 달렸는가?"
"빨리 사라지기 위해서다."
"왜 앞머리는 무성한가?"
"내가 오는 것을 보면 누구든지 쉽게 붙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왜 뒷머리는 대머리인가?"
"내가 지나간 뒤에는 사람들이 붙잡을 수 없게 하기 위해서다."
곰브리치의 저서에도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기는 하지만 없는 실력에 서양 문화의 시작이자 원류라고 할수 있는 그리스 문화를 소개하려고 하니 글이 점점 길어집니다..
저도 힘들고 손가락도 아프고 머리는 지끈지끈~~
그렇지만 새털같이 많은 시간에 허송세월은 NEVER~~
다음 시간에 본격적인 "헬레니즘"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며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