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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남원군 이백면 초촌리. 주천면 용담리, 전남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가 집성촌이다.
전북 임실군 지사면 계동에 시조 이능간의 묘가 있다. 한문 본관이 다른 또 다른 영천이씨(永川李氏)가 있다. 전혀 뿌리가 다른 성씨이지만 한글 본관이 같아 구분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
각각 구분하지 않고 조사 발표했는데 당시 인구는 95,473명으로 나타났다.
2000년 현재의 인구조사에서는 두 성을 각각 나누어 발표했다. ▲영천이씨(寧川李氏)…94,491명 ▲영천이씨(永川李氏)… 22,479명으로 두 성씨 간에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영천이씨(寧川李氏)는 대부분 전북 일원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반면 영천이씨(永川李氏)는 전국에 걸쳐 퍼져 있는데도 오히려 인구가 적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영천이씨(寧川李氏)
시조 이능간(凌幹 1286∼1357)은 고려조의 문신으로 호는 송헌이다. 전북 남원에서 출생한 그는 충숙왕 7년 반전별감으로 원나라에서 상왕(충선왕)을 호종했다. 상왕(上王)이 죽자 재궁(梓宮, 임금의 유해를 모시던 관)을 모시고 본국으로 돌아왔다.
원나라가 고려에 성(省)을 두려고 하자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로 원의 황제에게 주청하여 이를 중지케 함으로써 1등공신에 책록되었다. 충혜왕 때 정승에 올랐고 조적의 난 때는 임금을 시종한 공으로 영천부원군(寧川府院君)에 봉해졌다.
조선개국을 위한 역성혁명이 일어나자 자신이 살던 집을 모두 불 살러버리고 자손들을 고향으로 내려보내고 자신은 관과 옷을 찢고 두문동(杜門洞)으로 들어가 일생을 마쳤다.
그는 자손들에게 절대로 과거를 보지 말 것을 당부하였는데, 그래서 그 후손들은 조선조에 한 명도 과거를 본 사람이 없다고 한다
한편 영천이씨(寧川李氏)는 한글은 같으나 한문 본관이 다른 또 다른 영천이씨(永川李氏)가 있다. 전혀 뿌리가 다른 성씨지만 한글 본관이 같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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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안녕 영자가 어떤 한자인지
옥편에도 없는데 어이하면 찾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