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부르심.. 매순간의 삶이 성직이다.
처음부터 신학을 했다. 이과출신이었던 고3때 성적에 맞춰 공대를 지원하기도 했고, 재수시절에는 체대를 시험보기도 했었지만, 결국 시작은 처음부터 신학를 공부했다. 다른 길로 빠진 적이 없고 처음부터 계속해서 목회자로 훈련받으며 그 삶을 살았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내 인식과 의식 속에는 '목사로서의 소명과 부르심'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32살 젊은 나이에 목사가 되었고 당시 800명가량 출석하는 중대형 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하면서 부모님보다도 더 연세가 많은 어르신들의 존대를 받으며 마치 내가 대단한 주의 종이 되어 있는 줄 알았다.
막연하게 꿈꾸던 유학의 길은, 뜻하지 않은 순간 급작스럽게 기회가 찾아왔다. 가족과 함께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낯선 땅 영국으로 떠났다. 타국에서 공부하며 가족과 함께 살아남기위해서는 일을 해야 했다. 처음에는 현지 대학교에서 강의실과 화장실 청소하는 일을 맡았다. 수퍼바이저는 내게 청소요령을 가르쳐주면서 시범을 보였다. 그러면서 내게 물었었다... "너희 나라에서 너는 무슨 일을 했었니?" 그때 내가 얼마나 당당하게 자존심을 세워 말했었던지 모른다. "나는 목사야! 나는 많은 대중들 앞에서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라구!!"
어느 날인가, 평소와는 달리 화장실 변기가 오물로 막혀서 나는 더이상 청소를 할 수 없었다. 그 날도 역시 수퍼바이저가 나타나 내게 시범을 보였다. 내가 상황을 설명하자, 현장에 나타난 수퍼바이저는 조금의 지체함도 없이 바로 맨손으로 오물을 제거하며 내게 말했다. "can you see that? just like that! allight?"
물론, 그것은 나의 기를 꺾기 위한 조금은 과장된 행동이라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너는 지금 목사로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야! 지금 너는 청소부야! 그러니 너의 일을 충실히 해야 한다구!" 수퍼바이저는 그렇게 내게 말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처음 청소부일을 할때, 나는 속으로 수없이 외쳤다. "나는 목사다. 비록 지금은 청소부일을 하고 있지만... 나는 하나님의 부름받은 종... 말씀을 전하는 복음전도자 목사다! 너희들이 나를 몰라줘도 하나님은 나를 아신다. 나는...청소부가 아니야. 나의 본질은 목사야...목사라구!!"
영국에서 8년을 생활하는 동안... 나는 참 많은 것을 배웠다. 유학생활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배운 것은... 글쎄.. 솔직히 지금은 별로 기억에 없다. 하지만, 그곳에서 청소부로, 또 피자와 인도 차이니즈 음식등 온갖 배달일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느끼고 배웠는지 모른다. 배달일은 밤 늦게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면 가게 주인이 늘 수고했다고 피자 한판, 메뉴 하나 선택해서 손에 쥐어주곤 했는데... 이 봉다리 하나가 집에 있는 꼬맹이 딸들에게는 얼마나 기대되고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었는지 모른다. 또 그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험지에서도 꿋꿋하게 나를 버티게 하는 든든한 힘이 되어주었다.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목사다. 하지만 나는 변기를 청소하고 휴지통을 비우는 청소부이고... 피자를 배달하고 인도음식을 배달하는 배달부이기도 하다는 것을...
매순간이 '나'이다. 나의 본질이 어느 한 특정한 직업에 국한되어 묶여있는 사람이 아니라, 매순간 모든 모습이 '나'이다. 하나님은 그 모든 순간의 나를 바라보시면서 말씀하시는 분이시고, 그런 매순간의 나를 사랑하신다.
내가 꼭 목사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때에만 '나 자신의 본질'을 되찾은 듯 생각하는 자존심이, 얼마나 스스로를 비겁하고 못나 보이게 만드는지..... 그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협소하게 만드는지.... 깨닫게 되었다.
화장실 변기 청소하는 일에도 설교말씀 전하는 일에 못지않은 복음이 담겨있다. 짜장면 한 그릇 배달하는 일에도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누는 일에 결코 뒤쳐지지 않는 사랑이 담겨있을 수 있다.
부르심은 구별과 구분이 없다. 모든 부르심… 매순간의 삶이 성직이다.
24.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