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사회문화 관련 책을 읽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과거 일본에 있던 무라하치부라는 관습에 관한 것이다. 지금도 집단따돌림과 이지메에 있어서 일가견이 있는 일본사회가 고대에 행했던 이 관습은 집단따돌림의 전형을 보여 준다.
일본의 전통적인 촌락을 가리켜 무라(村)라고 한다. 무라는 집들이 모여 촌락을 형성하고 있는 곳으로 생산활동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사회관계에 기초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생활공동체였다. 이 무라에는 공동생활을 운영해 나가는 자치조직이 필요했는데 이 조직은 마을의 대표조직으로 무라를 운영했고 각종 규제를 성문화한 무라法이 있는 곳도 있었다.
그런데 이 규정된 법규를 무시한다든지 위반한 경우에는 제재가 가해졌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무라하치부(村八分)라고 불리는 관행이었는데 이것은 열가지 교제 중 화재와 장례식의 두 가지를 빼고 나머지 여덟 가지에 대해서는 일체 교제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무라를 단위로 자급자족적인 생활을 해왔던 전통적 촌락에서 공유지를 이용하지 못하거나 상호부조적인 사회관계로부터 배제되는 것은 실질적으로 생산 및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제재의 대상이 되었던 일탈행위에는 살인이나 폭행,방화,절도, 자신의 무라에 불리한 행위를 하는 경우, 공동작업을 태만히 하는 경우가 해당되었다. 이런 점에서 무라하치부는 일탈행위를 방지하고 매우 강한 집합의식을 강요하는 공동체적 규제였다. 이런 제재를 해소하는 절차도 있었는데, 일정기간이 경과하면 중개자를 통해 사죄하는 절차를 밟아 해소되었다. 그러면 그 때까지의 제재가 풀리고 촌락 내의 교제가 정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러한 관행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사람들로 하여금 일탈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관행이 일본의 집단일체화를 도모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 관습은 문맹률이 높고 교육수준과 인권의식이 낮았던 고중세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놀랍게도 이 관습은 여호와의 증인의 [제명처분]제도와 상당 부분 일치한다. 과거 세계 최고수준의 전도인 파이오니아 비율을 자랑했던 일본증인사회를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증인조직 또한 여타 컬트종교들과 마찬가지로 일탈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통해 조직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해 왔다. 흔히 정통성을 갖추지 못한 독재정권이나 공산혁명정부는 국민들을 힘과 규율로 규제하려고 한다. 강한 제재가 없으면 일탈은 쉽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신권을 빙자해 선민들을 억압했던 카톨릭 또한 중세에 [파문]이라는 제도를 통해 자유로운 의사와 일탈을 처벌하고 집단따돌림을 자행했다. 정당성,정통성, 합당한 논리가 있다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제도나 권위에 순종한다. 하지만, 그런 것이 결여될 때 사람들은 반발하게 되기에 독재자들은 사람들의 자유로운 의사와 행동을 억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성서를 온전히 오용한 이 [제명처분]의 철퇴는 많은 탈증인들을 괴롭혀 왔으며 지금도 탈증인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흥미롭게도 일본고대의 무라하치부 관습은 (여호와의 증인의 제명처분과 마찬가지로)절교라는 벌을 통해 집단따돌림을 자행했다.그럼에도 그들은 화재나 장례식때는 그 절교를 풀었다. 하지만 증인들의 절교는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다. 참으로 무시무시하다. 절교를 통한 사교적 처벌은 많은 증인들에게 이중생활의 원인을 제공한다. 아무리 많은 죄를 지었어도 장로들에게 고발되거나 고백하지만 않으면 그 어떤 직책도 수행하며 대회연설도 번지르하게 할 수 있는 이상한 나라의 신권조직이다. 도대체 그들을 인도한다는 하느님은 위선적이고 이중생활적인 사람들을 왜 그리 오래도록 용서하고 있는 것일까.
제명처분이라는 집단따돌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 일본의 탈증인사회는 [자연소멸]을 권장한다. 비정규와 무활동을 거쳐 서서히 증인사회에서 퇴장하는 것이다. 증인조직의 모순과 오류를 지적하거나 신권조직을 부정하는 발언을 하지 않는 탈증인의 숫자는 점점 늘어가고 있다. 이런 추세는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개인의 가치선택권을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탈증인의 방법이 탈퇴서를 통한 선언이든 무활동을 빙자한 퇴장이든 비난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모두가 자연소멸을 선택하고 침묵한다면 남아 있는 증인들에게 소중한 진실을 던져줄 사람은 누구이겠는가. 관념의 포로인 열성증인들 중에도 진실을 알기만 한다면 증인조직의 실체를 순식간에 깨닫게 될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제는 사라진 일본의 무라하치부와 중세유럽의 파문제도, 그러나 현대까지도 고스란히 그 비인권적 제도를 보여주는 JW조직의 제명처분....집단절교를 통한 조직에의 강요된 연합, 과연 그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짓밟고 있는가.
=================================================================================================
* 배교와 사법처분에 관한 성구들? 그리고 생각해 볼 질문 *
- 증인들이 제명처분과 사법제도의 근거가 된다고 주장하는 성구 -
(마태 18:15-20) 더욱이 당신의 형제가 죄를 짓거든, 가서 당신과 그 사람 사이에서만 그의 허물을 드러내십시오. 그가 당신의 말을 들으면, 당신은 당신의 형제를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듣지 않으면, 한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십시오. 그것은 두세 증인의 입으로 모든 일이 확증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만일 그가 그들의 말도 듣지 않으면, 회중에게 말하십시오. 만일 그가 회중의 말도 듣지 않으면, 당신은 그를 이방 사람이나 세금 징수원같이 여기십시오.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무엇이든지 여러분이 땅에서 매는 것은 하늘에서 매여 있는 것이며, 무엇이든지 여러분이 땅에서 푸는 것은 하늘에서 풀려 있는 것입니다.
- 위 성구를 근거로 증인조직은 다른 사람을 사법처분한다. 그렇다면,,, 다음 사실들을 무시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마태 18:21 그때에 베드로가 다가와서 그분에게 말하였다. 주여, 형제가 제게 죄를 지으면 그를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입니까?” 22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당신에게 말하는데, 일곱 번까지가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 하십시오.
( 게다가 이 성구는 위의 JW식 제명처분 근거 성구 다음에 나오는 것이다.)
고린도 첫째 5:9,10 의 다음 내용도 유의해 보아야 한다.
"나는 편지에서 여러분에게 음행하는 자들과 더는 사귀지 말라고 썼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욕스러운 자들, 강탈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자들과 전혀 사귀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려면, 여러분은 실제로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물론 위의 구절은 형제라고 하는 사람들이 아닌 외부인에 대한 원칙이지만, 또한 형제라고 하는 사람들이 죄를 지었을 경우에 주어진 지침에 대해서도 글자 그대로 엄격한 규칙으로 전혀 대화도 못한다는 뜻이 아닐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이사야 33:22) 여호와는 우리의 재판관, 여호와는 우리의 법규 수여자,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다. 그분이 친히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다.
파97 11/15 21면 9항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우리에게 속한 권한이 아닙니다"
(로마 14:4) 당신이 누구이기에 남의 집 하인을 판단합니까? 그가 서거나 넘어지는 것이 그의 주인에게 있습니다. 참으로 그는 서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서게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 7:1-2) 여러분이 판단을 받지 않으려면 더는 판단하지 마십시오. 2 여러분이 판단하는 그 판단으로 여러분도 판단을 받을 것입니다.
[JW조직이 절교와 제명처분의 근거로 내세우는 또 하나의 성구]
요한 둘째 9, 10: “앞질러 나가며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 머물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하느님을 모시지 못합니다. ··· 어떤 사람이 이 가르침을 가지지 않고 여러분에게 오면, 그를 결코 집에 받아들이지도 말고 그에게 인사하지도 마십시오.”
하지만 생각해 보라.
위 성구에서는 어떤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사람과 인사하지 말라고 했는가,
특정종교조직의 가르침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가르침인가.
누구 마음대로 JW조직의 자의적 교리를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동일시한단 말인가.
한편, 워치타워는 이른바 배교에 대한 "죄" 역시 제명처분에 해당하는 것으로 가르친다. 물론 거짓 가르침에 대한 경계는 해야 하지만 다음과 같은 원칙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의심을 품은 사람들에게 계속 자비를 보이고, 그들을 불에서 끌어 내어 구원하십시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도 계속 자비를 보이되, 두려움을 가지고 그렇게 하십시오. 그러나 육체로 더럽혀진 속옷까지도 미워하십시오."(유다22-23.)
첫댓글 날카로운 지적이십니다.
예수를 메시야로 부인하는것이 배교이며 적그리스도 입니다. 그때까지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지지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j.w는 예수의 말씀을 악용하는것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재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