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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3월3일
j3클럽 호국산행
산행시간:8시간50분 산행거리:23km
6.25전쟁 격전지 둘러보기 호국산행
전국에 방방곡곡 나라를 위해 싸우시다가 전사하신 분들에 발자취를 찾아 떠나는
호국산행
지평리전투 호국산행 이후 오랜만에 참가를 해본다.
전국에 걸쳐있는 험난한 산악 지대에서 치열하게 싸우시다 밝은 빛을 못보고
오직 나라를 위해 순직한 그분들에 그 당시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끼며
걸을수 있는 방법뿐 우리가 해야 할일은 없는것 같다...
하지만 하나는 그분들에 당시의 그 현실감은 못 헤아릴지라도
유해발굴지를 보고 느끼는 감정은 사뭇 다를거라 봅니다...
전국에 걸쳐있는 분들을 만나고 산행지 들머리를 향해 가는중...
오늘은 대간길에 그분들에 영혼이 담겨있는 뜻을 찾아보려 한다.
긴 세월동안 안부만 묻던 소석님도 만나고...
그 뒤는 누구신가요?
반가운분들 오늘 의미있는 산길 알고나 가시는지....
상록수님이 낫들고 톱들고 등로 작업했다는 들머리에서 한컷
이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 합니다..
앞에 우뚝서있는 산등선 그걸 올라 쳐야 한다니
시작도 하기전에 숨이 가뿌고...
까짓것 코한번 휭하니 풀고 가면되지....
저 마다 생각은 하겠지요...
저기에 올라서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어떤 모습으로 산길이 펼쳐질지...
그 모습은 정상에 가봐야만 알기에
묵묵히 걸음을 합니다...
인원이 많습니다..
호국길 하면 다섯명이 넘기 힘든데
오늘 어찌하여 사람이 많네요....
대경.경북.수도...누가 누군지...
저쪽으로 가야 하나 봅니다...
대간길 졸며졸며 가다보니 저기가 어딘지 모르겠고...
정상에 가면 잘아는 방장님한테 물어 봐야지 하며...
오르고 봅니다...
길도 없고 땀은 삐질삐질
호국길은 다 이렇습니다...
희양산 방향인가...
알게 뭐람 밤에 지나가 보이
비몽사몽 뵈이는게 없어서....
여차저차 큰것 하나 넘고 보니 정상석이 하나 있네요...
칩거생활 끝네고...
반가운 상록수님.
이제는 도망 안가시겠죠.^^
누군고?
반가운 아랫지방 사람들...
그리고 윗지방 사람들..
이곳저곳 짬뽕...
여기도 윗지방...
이제부터 퉁 쳐야할 대간길 ...
대간 하시는 분들 알아서 퉁 치세요...
확실한 희양산..
하나 건졌네요..
상록수님 뒷태...
현정님도...
수안님 ..
조아님....
가야하는 방향인가...
괜시리 아는척 하기 싫어서...
좋은 능선...
방장님은 저기가 어딘지 아세요?
봐도 모리겠죠...
얼마나 졸면서 걸었는데
알리가 없을테죠...
베낭에 든것 싹쓸히 하고 갑니다...
산행이 빡세 베낭이 무거워서....
베낭 안에 있는것 모두 꺼내기...
나중에 베낭 검사 합니다..
지나온 길인가?
오늘은 도통 어딘지 모르겠다....
삼일 밤낯을 걸으며 뵈는게 없었는데
요런길도 있었나 봅니다...
기억이 안나니 원....
호국길 보다는 대간을 하는 기분이 더 업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러면 방장님 한테 혼나는데 뒤에서 이러고 갑니다...
수도권
아름다운 미소
이사람은 누귤???
선두는 보이지 않고 후미는 이렇게 여유를 부립니다...
시간도 없는데....
이러다가 끝은 짤릴텐데...
스스로 짤리기를 바라는 사람들...
수도권에 네명뿐
이러다 미운털 박히지나 않을까...
요즘 꾀만 잔뜩 부리는 누구는????
이제 겸허한 자세가 필요 합니다...
우리가 여기온 이유가 이분들에 넋을 기리기 위해 왔으니 말입니다...
이제 느끼며 가야할길...
이화령 전투 전 상황
사단은 춘천과 홍천에서 서전을 치른 뒤에 급변하는 전황의 추이에 따라
7월 초에 충주로 이동하여 여기에서 서부전선의 군 주력이 철수함에 따른 수용진지를 확보함과
아울러 차령산맥 북쪽의 중원을 지키고자 하던 바, 육군본부에서 다시
소백산맥과 금강하반으로 연한 새로운 방어선을 설정하여 통제 있는 작전을 세움으로써
이에 따라 이곳 문경으로 한걸음 물러서서 본 전투에 임하게 되었다.
이화령 전투 작전계획
이 작전을 북한군 측에서는 이른바 그들의 『제 1단계 제3차 작전』이라고 하여
표방하기를 『급속한 공격과 맹렬한 추격으로 한국군 및 UN군을 대전-소백산맥 선에서
격멸하는 동시에 단시일 내에 전주-논산-대전-문경-울산선까지 진출한다.』
라고 그 시행방침을 내세우고 그 시한을 7월 20일까지로 미리 정하여 채찍을 휘두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은 곧 국군에게 재편성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고,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여 일거에 도모코자 한 작전이거니와,
당시에 육군본부에서도 이 같은 그들의 진의를 이미 간파한 나머지 대전으로 지휘본부를
이동함과 아울러 그 대응책을 논의한 끝에 작전명령 제 42호로써 다음과 같이 하달하였다.
이화령 전투 작전 실시
7월 13일: 이날은 흐린 날씨에 동남풍을 동반한 가랑비가 때때로 내렸다
. 따라서 해발고도 1000m 내외를 헤아리는 이 곳 주흘산
(1106고지)-조령산(1107고지)-증봉(914고지: 속칭 시루봉)으??????숀?o?????로 잇닿는
소백산맥 준령에는 계절답지 않게 한기가 맴도는 가운데
제2, 제19 양 연대의 병사들이 이른 아침부터 진지를 구축하고 통신망을 구성하는 등 방어진지를 강화하였다.
이는 사단장이 문경부근의 조령과 이화령에 방어진을 편성키로 결심하고
신농국민학교(수안보 남쪽 7km)에 임시 설치된 지휘소를 11일 02:00에 문경국민학교로
이설하는 즉시 수안보 일대에 배치된 사단의 주력을 철수케 함으로써,
전날(12일) 밤에 야간 철수한 이 양연대가 일출과 더불어 병력을 조정배치하고 진지를 보강한 것이다.
사단장의 명령에 따라 제19연대는 우일선인 조령을 맡고 제 2연대는
좌일선인 이화령 지역을 담당하여 각각 책임지역내의 요선을 막아 거점방어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이 무렵 제 7연대는 제 1사단과 함께 음성 동악리 지역에서 쾌승을 거둔 뒤로
괴산에서 배속이 해제되어 뒤늦게 당도함으로써 사단의 예비부대가 되어 문경에서
기동태세를 갖추고 있었으며, 제 16 포병대대는 각 포대단위로 분할하여
일선 양연대의 직후방에 진지를 선정하는가 하면 공병대대도 또한
문경-연풍간의 도로요소를 폭파하는 등, 지원부대들의 활동목표도 오직 이 방어 일전에만 집약되었다.
이것은 지역의 중요성도 있으려니와,
사단이 춘천에서 물러선 뒤로 연대 단위로 분진하며 각각 다른 임무를 수행하다가
여기에서 비로소 서로 손잡게 된데다 좌우인접사단과 연대하면서
전선을 형성케 됨으로써 일전을 할 태세를 갖추게 되었는데,
이때에 당면의 북한군 제 1사단도 또한 수안보에서 침공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이날은 피차간의 수색과 정찰만으로 맞섰다.
7월14일: 사단이 문경 방어에 들어간 지 이틀째 되는 이날,
당면의 북한군 제 1사단은 이윽고 공격을 감행하였다.
이들은 사단의 좌일선인 제 2연대 정면에 공격의 중점을 두고,
비교적 부대기동이 용이한 3번 도로를 따라 이화령을 돌파하고자 함으로써
타지역에서는 거의 교전이 없고 여기에서만이 격돌을 보게 되었다.
이곳 이화령은 전날 하오까지 가랑비가 오락가락 하더니 이날 새벽에는 비가 그치고,
7월 중순의 고산지대의 기상 그대로 짙은 안개가 산속을 메워 지척을 분별키 어려웠다.
이러한 가운데 날아든 적의 122mm 유탄포와 82mm 박격포 등의 포화가 집중하니,
연대장 함병선 대령은 드디어 적의 공격이 시작된 것으로 판단하고
각 대대로 하여금 더욱 경계를 철저히 하도록 독려하던 바, 영봉에 어둠이 걷히면서 돌연
이화령 북쪽 계곡이 수류탄의 폭음과 총성으로 가득하였다.
이 시각이 대체로 04:30을 전후한 무렵으로 연대는 3개 대대가 모두 전날 점령한 진지에서 대전태세를 취하고 있었는데,
연풍까지 침습한 북한군 제 1사단이 연대규모의 병력으로
농무(濃霧)를 틈타 진지 앞으로 바싹 다가선 다음
제2, 제3 양 대대의 진내로 뛰어 들어 공격을 감행함으로써 일순간에 백병대결의 혈전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전진진지를 맡고 있는 제 2대대(장, 이종기 대위)의 경우를 보면,
국지 경계병으로 매복시킨 나일균 일병으로부터
『3번도로 부근에서 수냉식 기관총을 끄는 소리가 난다.』는 보고를 받고
이를 확인토록 지시하였던바, 이보다 800m 더 올라온 측후방에서
홀연히 수 미상의 적이 올라와 수류탄 투척에 이은 총격으로 공격하였으며,
또한 여기에서 교전이 시작된 지 30분이 채 못되어 이화령 동쪽 능선을 점령하고 있는
제 1대대의 3중대장 최희대 대위가 진전에 적의 선봉이 침습하였음을 확인하였다고 하니
, 이때에 이들은 이미 주력으로 제 2대대 진지의 서측을 통과하여 이화령으로 도착하고 있음이 분명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연대의 좌측 제일선을 담당한 제 3대대(장, 이운산 소령)는
20여분 동안의 격돌 끝에 일부의 병력이 분산되어 혼선을 빚는가 하면
연대 관측소에서도 포격의 피해가 심각하였다.
이렇듯 제일선에서 고전을 치르고 있을 무렵 연대장이 이화령의 관측소에서 전방을 살펴보니,
운무에 쌓인 진지는 확인할 길이 없고 작열하는 총포성 만이 계곡을 메웠는데
특히 초기에 격돌한바 있는 제2, 제3 양 대대와는 교신마저 끊겨 그 정황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상태로 3시간??????숀?o?????을 지나 어느덧 08:00을 넘어서자
점차로 농무가 걷히면서 북쪽 능선이 시야에 들어오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현진지를 고수하고 있었을 것으로 믿었던
제2, 제3 양대대의 병사들이 이화령쪽으로 철퇴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를 본 연대장은 고개 마루로 뛰어 올라 지휘봉을 빗겨들고 떨리는 노성으로 『일보도 물러설 수 없다
. 즉각 돌아서서 반격하라.』고 하는 동시에
이화령 동측에 배치한 제 1대대장 박노규 중령을 전화로 불러 『곧 역습을 단행하여 633고지를 탈환하라.』고
엄명을 내리는 즉시 자신이 직접 진두에서 이를 지휘하였다.
이 명령을 받은 제 1대대장이 2중대장 김인문 중위와 3중대장 최희대 대위로 하여금
3번 도로의 동쪽 능선을 따라 역습케 하니,
진지를 박차고 나선 양 중대가 함성을 높여 서쪽 능선으로 돌진하면서 계곡에 폭로된 적군을 무찔러 나갔으며,
이와 때를 같이하여 안개가 서서히 걷히자 고개를 오르던 병사들도 반전하여 역공대열에 가담하기 시작하였다.
이 무렵 제 3대대장 이운산 소령도 또한 적들이 동요하자
혼전 중에 분산된 병력을 수습코자 심혈을 기울이던 바,
시계가 트이자 제 9중대장 남백봉 대위와 제 11중대장 채수용 대위를 불러 역공케 하니,
이제 제1, 제3 양 대대가 운분의 일전을 전개케 되었거니와 이와 보조를 같이하여
제16포병대대도 또한 2개 포대로써 적의 증원을 차단키 위하여
연풍 일대에 철화를 퍼부으니 전황은 바야흐로 크게 역전되어 갔다.
7월15일: 전날 밤에 비상태세로 들어간 사단은 철야로 진지를 지키고 있는데
이날 아침에도 또한 농무가 짙게 깔렸으며
, 산 허리에 매복한 병사들이 겉옷이 젖을 정도로 습도가 높았다.
이것은 마치 전날의 무중격투를 연상케 하는 음산함이 흘러 각 연대마다
더욱 경계를 엄히 하고 있던 바, 과연 06:00을 전후하여 광파가 밀려드는데
이번에는 산악기동으로 진지 앞까지 근접한 적이 집중적으로 조령관을 돌파코자 발악하였다.
따라서 이 지역을 담당한 제 19연대가 이를 막아 격돌을 벌이게 되었는데,
특히 이 지역은 삼림이 울창한 주흘산(1106고지)과 조령산(1017고지)
이 좌우측방에 높이 솟은데다 안개가 짙게 덮이고 보니 처음부터 일대 혼전이 야기되었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전날 혈투를 벌인 바 있는 이화령에서는 소규모의 교전이 있을 뿐이었으며
또한 서측방의 구왕봉 부근으로 남하한 적 제 13사단도 측후방을 위협하는 정도에 그침으로써
사실상 이날의 전투는 제 19연대와 제 16포병대대의 협동작전으로 시종되었다.
7월 16일: 전날 조령을 점령한 북한군 제 1사단은 이윽고 이날 06:00을 기하여 총공격을 감행하였다.
그 침공양상을 보면 조령을 점령한 부대로써 문경 정면에 계속적인 압력을 가하는
동시에 2개 연대 규모의 병력을 들어 동서 양 측방으로 우회, 침습코자 하였다.
즉, 그들의 예비부대로 알려진 제 14연대는 이창권의 지휘 하에 사단 동측의 갈평리 계곡으로 근접하는가 하면
증원부대로 밝혀진 그들 제 13사단 예하의 21연대는 이승준이 이끌고
서남쪽의 백화산으로 침습하였으며 또한
이와 아울러 조령과 이화령에서도 정면병타를 가하여 단숨에 문경을 삼키려는 듯하였다.
후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당시에 북한군 제 2 군단장 김무정은 UN군이 가담하기 전에
소백산맥을 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동시에 제 1사단장에게 제 13사단 예하의 1개 연대를 뽑아 증원시키면서
조속히 문경을 탈취토록 엄명하였다고 하니, 이들이 중부지역의 조기진출을 얼마나 서둘렀는지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이화령 전투의 결과
사단에서 본전투를 일단 매듭짓고 영강 하반으로 물러선
17일 현재에 인접부대의 전황을 살펴보면 우인접인 제 8사단은 죽령에서 북한군 제 8사단과 대결 끝에 이곳을 내놓고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풍기-영주 간에 요역을 확보코자 주야로 전개하고 있었으며
좌인접인 제 1사단은 미원에서 적 제 15사단의 침공을 막아
13일 이후 이날에 이르기까지 방어태세를 취하고 있다.
따라서 이날 현재의 병력배치 상황을 표면상으로 구별할 때에는 풍기-적성리-마성
(문경 남쪽??????숀?o????? 8km)-은성-미원으로 이어지는
소백산맥 남록의 진지를 아직도 견지한 것으로 여겨졌으나
사실은 오히려 서반부에서 큰 변화가 일고 있었던 것이다.
그 까닭은, 전투가 점차로 치열함에 따라 각 사단마다 담당 지역내의 요선을 방비하는데 치중하게 됨으로써
문경-미원간의 45km에 달하는 고산지대에 틈이 생기게 되자
이점을 노린 북한군 제 2군단장 김무정이 이지역으로 2개 사단을 투입하여
그중 제 13사단은 문경 서남쪽의 은성을 향하게 하고
제 15사단은 당흥리(미원 동북쪽 10km)-화북-화서-상주 축선으로 돌입케 하니
이 양 사단이 어느덧 소백산맥을 넘어 현 배치선 남쪽으로 밀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작전명령 제 42호
『① 군은 제 1군단 서측의 각 사단을 통합하여 중부지역으로 침공하는 적을 저지 격멸하려 한다.
② 제 2군단장은 제8. 제 6 양 사단을 통합하여 죽령-문경 간을 고수하면서 적을 진전(陣前)에서 격멸하라.
㉮ 제 6사단은 11일부로 제 2군단장의 지휘를 받으라.
㉯ 제 8사단은 제25연대의 1개 대대를 통합한 채로 제 2 군단장의 지휘를 받으라.
㉰ 제25연대의 제 1대대를 제 8사단에 배속한다. 이하생략』
두 서너번 좋으길 열으신다고 수고 하신 상록수님 고딩탕 잘 먹었구요...
이제 칩거.은둔.그런 것 하지 마세요..^^
늘 뵙고 싶었는데 소석님 너무 반가웠습니다.^^
다음 호국길도 많은 관심 부탁드리며
참가하신 분들 수고 많으셧습니다...
오래전 석골사 환종주 이후 산행은 처음인것 같습니다.
만나서 반가웠구요..
대간길도 무사히 잘 다녀오세요.
이번 호국산행에 지부에서 많이 동참하셨군요.
뇌리속에서 점점 잊혀가는 호국영령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추운날씨에 수고하셨습니다. -옹-
앞으로도 호국산행에 많은분들이 참여해서 뜻깊은 산행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감사 합니다.
아아아아아앙....... 이 기분..... 무어라 표현할수없구려.
좋아도 너무 좋아서 미추어 버리겠다.
우리 절친...
막걸리 챙겼어야 했는뎁...미안하이요.
글구, 걱정하게 한거.. 정말루 면목이 없으요.
자주 만나지 못하고 전화통화 하지 못해도 마음은 언제나 늘 변함없이 절친과 함께 한다는 거...
믿어주시기를...
고맙고 감사하고..
또한 멋진 사진과 소중한 글 올려주셔서 감사하구요.
저도 너무 반가웠습니다.
시람이 그리 그리운건 처음이었던것 같구요..
그래도 별일없이 다시만나 그것 만으로도 행복 했답니다.
앞으로는 휭하니 사라지지 마시고
좋은산길 오래도록 같이 다닙시다.
두분 대화만 보믄 걍 사귀는거 같오... 그리운 님들...
근데 읽는 내가 왜이리 짠해오는지....ㅎㅎ 함께한 걸음은 아니었지만
이래저래 네분이서 만신창이가 되어오시는 모습을 하도 많이 봐서 그런가
나도 함께했는듯 착각.... 네분의 산우의 정이 정말이지 가슴 시리도록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