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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푸른 집에 머물다]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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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집에 머물다]
오유정 시집 / 현대시시인선 113 / 한국문연(2012.01.25) / 값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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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집에 머물다
오유정
등나무 아래
한 사내가 잠들어 있다
꿈이 깊어지면 등나무 실감기를 시작한다
뿌리에 걸쳐놓은 실타래 돌아 나오며
점점 커지는 실뭉치처럼
사내의 삶이 부풀어 오른다
한 잎 한 잎 눈망울 터트리며
실 꾸러미 한 채 집으로 남는다
둥글게 둥글게 말려 있는 집,
사내가 쪼그려 앉았던 발길을 열어
실을 따라 가면
거기 열매처럼 달려 있는 집
둥근 창문 닫고
차곡차곡 쌓여있는 길을 올려다본다
이데 등나무 안에 삶을 시작한 사내,
상처로만 알았던 매듭 위로 햇살 내려와
툭툭 싹을 틔우면
눈물방울 같은 옹이를 턴다
등나무 줄기 하나 뻗어 내려와
사내의 뺨을 어루만진다
레일 위를 달리는 나이테
오유정
막차가 지붕 위를 밟고 지나가면
그녀의 꿈길에도 나란히 레일이 놓인다
열차가 지난 뒤 레일은
날카로운 이빨 번득이며
열차가 싣고 가버린 몸의 나이테를 쫓는 중이다
걸음 옮길 때마다 척척
발밑에 놓이는 무거운 짐들
뒤따르는 길도
자글자글 울음 그치고
측백나무 도열하여
그녀의 발목 삐걱거리는 소리 듣는다
사라져버린 열차의 뒷모습
등에 지고 온 세월의 침목들
레일 위에 하나씩 던지며 철길 걸어가면
무게를 견디느라 굽었던 허리가
발걸음 옮길 때마다 조금씩 가벼워진다
시간의 공간 속에 멈춰버린 나이테
갈라지고 헐거워져 버려진 침목처럼
공허감으로 두려운 몸
이제 작은 바람에도 쉽게 흔들리는 그녀,
철길에 앉아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레일을 바라보면
올록볼록 철로가 그녀 몸에 박힌다
새벽녘 가로등 불빛이
가느다란 호흡 끝에 매달려 있다
수목장
오유정
산중턱 참나무 아래 아버지를 묻는다
내 손 놓지 못하던 情 끊어내려
평평한 무덤 힘껏 두드리면
가늘고 질긴 행살 툭툭 끊긴다
그 진동에 땅이 깨어나고 나무뿌리 흔들린다
참바람 견디느라 돌돌말린 잎들
무덤 위로 모여들고
나는 그들의 둥근 몸 다시 밟으며 찾아오리라
표석에 새겨진 이름자 따라가면
순간 점화된 영상 속으로 가로지르는
색 바랜 가죽점퍼 핏발 선 눈동자
축 처진 어깨가 목발에 의지한 채 걸어가고 있다
삼월의 서툰 발자국에 겨울이 서둘러 녹으면
겨우내 아버지의 기억 빨아들인 참나무
발깃발깃 봄물 오르기 시작하고
지난 기억들 낮달처럼 점점 희미해질 때
나무둥치 밑 물관에서 물길 트는 소리 들리리라
슬픔으로 감전되기 전
성한 손으로 아버지 가슴쯤에 수간주사樹幹注射*를 꽂는다
헛가지 키우던 아픔 이젠 알 것 같다
단단한 겹눈하나 둘 터지고
예전에 알지 못했던 사랑의 옹이가
입으로 빨아내다만 종기처럼 살 속 깊이 머물러 있다
*수간주사樹幹注射 : 나무에게 주는 영양주사.
종소리
오유정
초승달 같은 신발 한 켤레
섬돌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어
바람이 신고 떠난 뒤
날마다 혼자 울었지
그 울음소리
달처럼 차고 기울고
그래도 새벽은 오지 않았어
석호리* 비가
오유정
마을이 차츰 물에 잠기고
청년은 사람들을 따라 길을 떠났다
마을이 다시 떠오르리라
믿음 위에 물이 밀려와 쌓였다
마을은 곧 물이 되었고
남은 생명들은 숨을 거두었다
수몰지구라는 새로운 이름의 그곳
사람들은 고갤 꺾고 바라보다 돌아갔다
청년은 매일 새로운 이름 위에 낚싯대를 드리웠다
저녁마다 머리 감던 대야
죽은 개의 몸과 함께 갈대숲 언저리로 떠올랐다
천년은 성황당 아래 뜨거웠던 처녀의 기억조차 물이 되자
우거진 갈대숲에서
수몰지구를 향해 전송하던 낚시 도구를 벼리기 시작했다
호수가 된 마을
한가로운 물고기처럼 은빛 지느러미 출렁일 때
낚싯대를 말아 넣었다
깊은 곳 어디쯤
무너지는 모래성이 신음했다
바람이 상심한 듯 물 표면을 가르며 지나갔다
물고기가 된 청년,
물에 잠긴 마을길을 찾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 대전 대청댐이 생기면서 수몰시킨 마을. 낚시의 명소
세상은 온통 묵지墨池다
오유정
소낙비가 내린다 아이가
손으로 빗방울 둥글둥글 굴리며 키운다 아이가
손에서 자란 빗방울 둥둥 띄운다 아이가
그 끝을 잡고 들을 건넌다 강을 건넌다 아이가
바다 속으로 잠수를 한다 아이가
쉬지 않고 바닷물을 들이킨다 아이가
점점 커다랗고 둥근 웅덩이를 만든다 아이가
바닥 드러나기를 기다린다 아이가
에미를 애비를 나무를 햇살을 나비를 버린다 아이가
놀이터를 그네를 로봇을 버린다 아이가
입 벌리고 닥치는 대로 삼킨다 아이가
PCB가 DDT가 BHC가 녹아 있는 바닷물을
기형물고기를 기형조개를 기형꽃게를
떠내려 온 비닐봉지를 녹슨 자전거를 부서진 붕붕카를
콘돔을 삼킨다 아이가
배 위에 GREENPEACE라고 쓴다 아이가
삼킨 것들 육지 위로 토해낸다 아이가
육지 위로 또 다른 묵지가 생긴다 아이가
바닥 드러난 바다의 깊고 둥근 웅덩이를 닦는다 아이가
소낙비가 된다 아이가
*PCB(poly chlorinated biphenyl) : 폴리 염화 비페닐
*DDT(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 : 과거에 쓰이던 살충제
*BHC(benzene hexachloride) : 농약으로 쓰던 염소제 살충제
소나무 도시에 데뷔하다
오유정
솔향기가 숲에만 있는 것이 아니네
소나무가 화단으로 오던 날의 기억으로
놀란 가슴은 늘 쿵쾅거리는 듯하네
햇살 받으며 반짝이는 잎
붕대 감은 뿌리 땅에 묻혔네
소나무 아래 서서
솔잎 사이로 쏟아지는 싱그러움을 헤아리면
태평스러움이 제 도시로 왔네
솔숲 싱그러움 이제 도시로 왔네
홍도육교 아래 화단
소나무가 무리지어 살고 되었다네
그곳에 산과 숲이 있고
높아진 하늘을 발견했다네
숲에 잠긴 대전시 삼성동
자그마한 화단 소나무 곁을 걷는 동안
바람결에 솔방울 청명한 소리도 들리네
도시 중심에서 싱그러운 자연과 절제를 읽네
가느다란 그 잎에서 전율을 느끼네
싱싱한 백지
오유정
전자사전에 꽃이 피었다
피는 순간은 언제나 의욕적이고 아름답다
나는 막 피어나는 꽃밭에서 백지를 펼친다
밤낮없이 찾아다니던 자음과 모음을 불러들인다
싱싱해지는 머릿속
줄지어 들어오는 문자들 엮어 문장을 만든다
거친 문맥 들여다보며 어휘의 삭막함에 짓눌린 나를 발견한다
전지사전을 다시 펼친다
전체가 정지된 화면 속의 시선
꽃향기가 아직 백지 전체에 퍼지고 있다
입에 침이 마른다
향기가 날아가기 전
떠오르는 영감을 자신 있게 낚아채야 한다
긴장을 늦추면 실패다
나는 소재들만 백지 구석구석에 심는다
하나씩 꺼내 잎을 피우기로 한다
만개한 꽃밭에 모여 앉은 문자들, 번뜩이는 눈에 달라붙어 있다
망설임은 매캐한 연기되어 화면이 뿌옇게 가려진다
머릿속에서 배회하던 문자들, 모조리 나체 되어 붉은 정원에 숨어 있다 수북이 쌓인 꽃들의 목이 느린 영상 속도로 툭툭 꺾인다
내가 써놓은 백지 위 문장 아래 선명하게 짐승 발자국 생긴다
어디선가 화약 냄새가 내 코를 스쳐 지나간 것 같다
결과를 예상하는 내 가슴에 시원스런 구멍 하나 생겨난다
벌거벗은 소재에 급히 옷을 입힌다 그러나,
문자들은 푸른 눈빛만 뿜어댈 뿐 아직 꿈쩍하지 않는다
정원에서 총소리가 난다 탕, 탕, 탕, 탕
잎들이 일제히 깨어난다
꽃피는 시장
오유정
장이섰다
유치원 꼬마들처럼
오글오글 시장 입구를 차지한 참외들
사내는 좀 더 빛이 좋은 것을 고르느라
요리조리 살핀다
이른 새벽부터 여름을 끌어다
잘 익은 놈부터 가지런히 진열한다
아침 안개가 걷힐 무렵부터
시장이 꽃으로 만발하리라 부풀어 있다
무심히 지나치던 사람들
입담 좋은 흥정으로 하나 둘 불러들이며
사내의 입가에도 꽃이 피기 시작한다
옆에 앉아 꼭지 다듬던 아내
기우는 오후처럼 졸기 시작하면
하루가 멈칫멈칫 쉬기도 할 것이다
지난 며칠 간 비가 계속 내려
사내의 서툰 귀갓길이 더 빨랐었다
곰삭은 놈을 골라 아이들 몫으로 풀어놓고
배꼽참외보다 더 볼록해지던 시간도 있었다
그때마다 사내에겐
며칠 더 비가 내리기도 했었다
낯선 사람들과 섞여
여름 내내 시장에서 지내다보면
시장 사람들 터지는 꽃망울처럼 마음 열리고
싱싱한 여름이 가득 담긴다
시장 안이 온통 환해지고 있다
역경의 꽃
오유정
누구에게나 역경을 이겨내는 능력이 있다
신은 능력 그만큼의 고통과 시련을 준다
추위와 더위, 배고픔 없는 생명이 어디 있으랴
외로움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길을 따라서 가는 일이다
우리는 홀로 땅에 떨어졌을 때 놀라움에 울고
홀로 태어났으므로 외로움에 떤다
가녀린 몸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나팔꽃은
가장 먼저 일어나 꽃을 피우고 삶을 지운다
불평도 원망도 버린 채
여린 줄기 허공에 던지다가
기둥에 매달려 하나하나 피워내는 꽃
눈물도 한숨도 아름다운 생명의 힘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가장 찬란한 꽃이다
나팔꽃
오유정
그녀가 길을 가네
놓치지 않으려는 듯
온몸으로 휘감아 버리며 걷네
누굴 못 잊어 저토록
뒤척이며 뒤돌아보나
꺼질까 두려웠겠지
깃 없는 등불
회향懷鄕
오유정
폭염 다독이던 풀벌레들 잠들고
마른 풀잎만 남은 지새울길*
그 길을 제 집에 맡아 넣는 푸른 달팽이,
모두 떠나버린 강아지풀 위에서
가끔씩 달팽이 눈이 젖어든다
까칠한 줄기 밟고
길의 마른 생을 읽어보면
물관과 체관 사이에 길게 놓여 있는 강
어느 풀숲으로 꼬리 감추고
스르르 사라지는 것일까
돌아설 수 없는 좁은 길,
그 길을 집 속에 다 채워 넣으면
그때서야 휘청
머리를 바닥에 대는 강아지풀
달팽이가 아픈 기억들 흘려버린 듯
잠시 뒤돌아보다 강물의 꼬리 찾아
다시 땅 위를 걷기 시작한다
* 충북 진천군 백곡면에 있는 길.
원앙보러 갈까요
오유정
길을 내어
왕암저수지* 산 그림자 아래
원앙새 무리 따라가
그곳에서 한 쌍 원앙이 되겠다
한낮 즐기는 틈에서
내 가슴 이내 덜컹거리고
늦은 봄 제 몸 태우는 목련처럼
쓸쓸한 이별 돌아올 때면
떠나려 발버둥치는 그를
온몸으로 막아서겠다
부리 묻고 고요히 머물러
물과 하나 되어 출렁거리면
황산벌 핏빛 사무친 깃발
아주 정답게 흩날리겠다
* 논산시 가야곡면에 있는 원앙새 보호 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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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세월을 돌아보게 하는 비가 내린다
잡힐 듯 잡힐 듯
눈앞에서 어른거리던 것들로 인해
밤을 지새우고 완성되지 않던 끈들 놓지 못해
육체로 전이되어 앓던 시간들
태양을 돌아온 공전이 몇 번이었던지
무척 멀리 돌아왔다는 생각이다
숱한 시간 잠들지 못하고 괴롭히던 흔적들이
작은 소출로 묶이고 있는 지금
그리 허망한 세월만은 아니었다고 자조해본다
긴 세월 참아준 내 시와 마주 앉아
지나온 길을 도란도란 내려놓고 싶다
=============== == = == ===============
오유정 詩集 [ 푸른 집에 머물다 ]
[ 오유정의 시 세계 ] -
지붕 위를 달리는 열차,
수족관 속에 갇힌 물고기
김 익 균
(문학평론가)
1.
오유정의 첫 시집『푸른 집에 머물다』는 일상의 무게, 관습적인 이미지에 짓눌려 있는 집 안의 우주를 구제해 내고 있다. 달리 말하면 인간에게 내재하는 원초적인 단순성으로서 우주가 오유정의 ‘푸른 집’을 통해 재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이 이미지 앞에서 감동하는 일은 쉬우리라. 하지만 정열적으로 감동을 느낀다고 해서 시인의 창조적 상상력의 깊이를 함께 경험하는 것은 아니기에 시 읽기의 운명은 또 다른 글쓰기를 낳는다. ‘나’의 글쓰기는 시인의 상상력을 ‘다시 살아내야 하는’ 시 읽기의 운명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 시집의 요체는 낮의 일상에 억압되어 있는 집이 푸른 생기를 생성해내기까지 현실-세계와 대결해 나가는 변증법적인 운동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이란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기 이전에 집이라는 요람을 갖는다고 중얼거린 것은 바슐라르일 것이다. 인간은 원초적으로 존재에 결합되어 있는 안락의 상태에서 문 밖으로, 집이라는 이미지 밖으로 내쫓기는 경험을 한다. 인간은 세계의 비인간성, 세계의 부정성으로 불려 나가는 바 이때의 세계는 인간적인 것의 부정이다. 하지만 시적 상상력 혹은 시적 몽상은 집 밖의 경험을 집 안에서 다시 살아내게 하며 이를 통해 집은 원초적인 세계 혹은 대립하는 것들이 공존하는 우주적 공간으로 통합된다. 오유정의 첫 시집은 집 안과 밖의 대립에 대한 의식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때 의식이라 함은 정신분석학에서 규정하는 무의식의 대척점에 놓이는 의식이나 명확한 인식에 연루되는 개념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조르쥬 풀레의 설명을 빌면 그녀의 시적 의식은 바슐라르적인 의식, 즉 밤의 무의식과 빛이 가득한 의식 사이의 중간지대 그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는 그러한 의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비-의식의 상태로부터 떠오를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의 밝기만을 가진 의식, 가능한 가장 작은 존재인 의식을 표현하려는 시인의 열망은 「시인의 말」에 드러난 그녀의 육성에 가 닿는다. “세월을 돌아보게 하는 비가 내린다/ 잡힐 듯 잡힐 듯/ 눈앞에서 어른거리던 것들로 인해/ 밤을 지새우고 완성되지 않은 끈들 놓지 못해/ 육체로 전이되어 앓던 시간들”(「시인의 말」)은 집 밖의 경험을 재현하지 않고 다시 살게 되는 시간일 것이다. 창밖으로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순간 속에서 현현하는 기억은 상상력과 결합해 육체로 전이되며, 앓는다. 그리하여 창밖으로 내리는 비와 마주 서는 순간 현현하는 의식은 다시 한 번 시 독자의 “육체로 전이되어 앓”는다.
자동차가 빠르게 지나가나보다
창밖으로 내 귀가 빨려든다
날카로운 소음 뒤로
띄엄띄엄 터지는 발자국 소리 섞여 있다
수많은 보도블록 따라가면
하루의 긴 끝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생각의 조각들을 줍는 동안 땅거미 몰려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내 기억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는 기억들
까칠한 오후가 기록된 장부와
노란 참외가 주는 풍요한 여름의 가격
모든 것은 현실과 평행하다
서서히 땅거미가 소음과 섞여 둔탁하게 길 위로 깔린다
그들은 아직 타협하지 않은 대립자들처럼
서로 다른 번식을 꿈꾸고 있다
초저녁 속으로 잠식하는 막걸리 같은 일상
하루가 겹겹이 내려앉고 있다
-「질주하는 초저녁」전문
위의 시는 집 안에서 자동차 소리를 듣는 시적 주체의 상태를 잘 보여준다. 집 안에서 창밖의 자동차 소리를 듣는 주체는 바깥의 흡인력에 의해 빨려 나간다. 벌거벗은 주체의 ‘기억=현실’이 “날카로운 소음”으로 가득 찬 거리에 흩어져 떨어진다. “까칠한 오후가 기록된 장부”와 “노란 참외가 주는 풍요한 여름의 가격”들로 환기되는 주체의 현실 위에서 “땅거미”는 그 현실을 냉엄하게 내려다보고 있다. 주체는 내려다보는 땅거미의 시선과 길 위의 기억으로 수직적으로 분열되어 대립하며 공존한다. “서서히 땅거미가 소음과 섞여 둔탁하게 길 위로 깔”린다. 초저녁 땅거미의 공간으로 “막걸리 같은 일상”은 오후의 기억을 이끌며 파고 들어온다. “까칠한 오후”의 기억인 현실이 초저녁의 땅거미와 경합하며 대립하는 이 시적 공간은 오유정의 시세계 전반을 주조하고 있다. 그곳에서 “모든 것은 현실과 평행” 하며 “타협하지 않은 대립자들처럼/ 서로 다른 번식을 꿈꾸고 있다”.
막차가 지붕 위를 밟고 지나가면
그녀의 꿈길에도 나란히 레일이 놓인다
열차가 지난 뒤 레일은
날카로운 이빨 번득이며
열차가 싣고 가버린 몸의 나이테를 쫓는 중이다
걸음 옮길 때마다 척척
발밑에 놓이는 무거운 짐들
뒤따르는 길도
자글자글 울음 그치고
측백나무 도열하여
그녀의 발목 삐걱거리는 소리 듣는다
사라져버린 열차의 뒷모습
등에 지고 온 세월의 침목들
레일 위에 하나씩 던지며 철길 걸어가면
무게를 견디느라 굽었던 허리가
발걸음 옮길 때마다 조금씩 가벼워진다
시간의 공간 속에 멈춰버린 나이테
갈라지고 헐거워져 버려진 침목처럼
공허감으로 두려운 몸
이제 작은 바람에도 쉽게 흔들리는 그녀,
철길에 앉아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레일을 바라보면
올록볼록 철로가 그녀 몸에 박힌다
새벽녘 가로등 불빛이
가느다란 호흡 끝에 매달려 있다
-「레일 위를 달리는 나이테」전문
오후의 일상과 초저녁의 땅거미가 섞이며 경합하는「질주하는 초저녁」위에 더욱 짙은 어둠이 깔리는 한밤의 세계가 펼쳐지면 오유정의 시 중 가장 강렬하면서도 ‘대립자’의 긴장이 흐트러지지 않는「레일 위를 달리는 나이테」가 탄생한다. 오유정이 첫 시집의 서시로 놓아둔 위 시는 달리는 열차의 이미지를 통해 한결 생기를 얻고 있다. 집 안에서 집 밖의 세계와 만나는 순간 현현하는 의식은 ‘그녀’의 신체 위에 강력한 동력動力을 가진 열차의 이미지를 결합시킨다. 그녀의 시에서 집 밖 거리의 표징으로 반복해서 소환되는 자동차와 달리 열차는 집 안에 거주하는 시적 주체의 우주적 도약을 보여준다. 한 번 승차하면 멈춰 서려는 유혹을 허용하지 않는 열차는 광활한 우주적 상상력으로 나아가는 시인의 상상력에 견인차 노릇을 한다. 또한 열차는 다른 차량과 달리 독특한 길의 상상력을 요구하는바 ‘레일’은 단순한 길이기 때문이다. “올록볼록 철로가 그녀 몸에 박힌다”는 시행에 도달할 때까지 그녀와 철로(레일)의 각축과 합일의 상상력은 오유정의 시 전반에서 집 안의 시적 주체의 의식이 집 밖의 길과 변증법적으로 합일 지양되는 과정을 통해 변주되어 나타난다.
시의 첫 행에 눈길을 찬찬히 돌려보자. 시는 “막차가 지붕 위”를 지나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막차”는 현실의 세계와 꿈의 세계를 연결하는 가느다란 수송선이다. 막차가 지붕위를 밟고 지나가는 순간에 대한 희미한 의식이 존재의 지붕인 “꿈길”에 접속되는 것이다. 하지만 꿈길은 그저 낭만적인 공간은 아니다. 이 꿈길은 곧장 “레일”로 변용되면서 “날카로운 이빨”의 이미지를 드러낸다.「질주하는 초저녁」의 “날카로운 소음”에서 변용되고 있는 “날카로운 이빨”의 이미지는 집 밖 거리의 이미지이다. 안락한 존재의 집을 떠나는 모험, 길 떠나기의 신산함을 환기하는 거리의 이미지는 급박하게 열차를 좇아가는 레일로 구체화된다. 꿈길 위를 달려 나가는 열차, 혹은 그녀의 ‘몸의 나이체’, 그녀의 세월, 기억, 추억, 고통, 울음……을 날카로운 이빨의 레일이 쫓고 있다. 그녀의 나이테에 담겨 있는 기억의 총체는 이 쫓고 쫓기는 질주를 통해 실뭉치처럼 풀려져 나간다. 그녀의 존재는 “발걸음 옮길 때마다 조금씩 가벼워”지며, “이제 작은 바람에도 쉽게 흔들리는 그녀”는 “가느다란 호흡”이 되어 있다. 마침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레일을 바라보”는 가느다란 호흡은 ‘레일=그녀의 몸’이 되는 순간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길 떠나기의 이미지가 갖는 매혹은 집 안에 있는 존재의 안정을 위협하기 마련이다. 세월 속에서 자기를 만들어온 존재의 무게 “세월의 침목들”을 벗어던지는 경험은 열차의 전력질주를 통해서 자기 안의 비본질적인 것들을 모두 날려 버리고 심원한 자기 자신의 정수로서 가느다란 호흡만을 남기는바 그녀는 존재 해체의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수많은 보도블록 따라가면/ 하루의 긴 끝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질주하는 초저녁」)고 했던 막연한 심상이 극단적으로 구현되는 순간 산출되는 이미지의 역동성은 이 시집이 도달한 순금의 시간을 펼쳐 보인다.
2.
오유정의 상상력은 일견 집 안에서 집 밖으로 나아가려는 의식에 기반해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때 집 밖은 집 안의 반대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녀의 몽상이 창조하는 세계 속에서 집 밖의 현실은 상상적 세계 내부로 흡수된다. 지붕 위를 달리는 열차의 질주는 앞으로 펼쳐져 있는 레일과 그 뒤를 좇아오는 레일 양쪽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처럼 자신의 “가느다란 호흡 끝”에 이르러서 오유정의 시는 실뭉치처럼 풀려져 나갔다가 다시 감겨들면서 순간적으로 한 채의 실뭉치, 즉 ‘푸른’ 집에 머문다. ‘집 안=집 밖=우주’로 확장되는 시적 공간은 역설적으로 길의 끝을 눈앞에 대면하고 있는 ‘갇힌 주체’를 산출한다. 주체가 선 자리, 길의 끝은 다시 집 안이 되는 것이다.
물 표면이 잔잔해지자
꼬리를 흔들며
물레방아에서 내려와 수족관 구석구석 유영한다
한낮을 향해 달리는 햇살 눈부시다
수족관 속의 묾고기, 나
멀뚱히 쳐다보며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물고기, 가끔 헤엄을 멈추고 밖을 내다본다」부분
위의 시에서 수족관에 갇혀 있는 물고기는 밖을 내다보고 있다. 수족관 속에 있는 물고기와 노골적으로 동일시되는 “나”에 의해 현현하는 의식은 다시 한 번 ‘집 안’에 머문다. 하지만 이 시에서 물고기-나의 의식은 거리의 매혹에 끌려 나가지 않는다. “사람들과 자동차들이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것 같다”는 시행은 이러한 변별점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집 밖 거리의 세계는 집 안으로 투영되어 들어온다. 물고기인 ‘나’와 거리의 ‘사람들-자동차’는 수족관 안의 공간을 함께 유영한다. 물고기는 열차를 타고 지붕 위로 날아가거나 거리의 보도블록 위를 걷지 않는다. 갇힌 수족관 안에서 물고기가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것은 자명하지만 오히려 문제적인 것은 오유정의 시적 몽상이 물고기의 ‘나가지 않음’에 바쳐져 있다는 점일 것이다. 나가지 않음, 좀 더 극단적으로는 작은 공간으로 걸어 들어감.
호수가 된 마을
한가로운 물고기처럼 은빛 지느러미 출렁일 때
낚싯대를 말아 넣었다
깊은 곳 어디쯤
무너지는 모래성이 신음했다
바람이 상심한 듯 물 표면을 가르며 지나갔다
물고기가 된 청년
물에 잠긴 마을길을 찾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석호리 悲歌」부분
이 시에서 수족관은 ‘석호리’라는 수몰 마을로 변주되었다고 보아도 좋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개연성을 얻으면서 청년은 호수가 된 마을에서 기꺼이 물고기가 된다. 오유정이 몽상의 힘으로 창조하는 이미지는 추억 속이든 물리적인 장소이든 갇힌 시간-공간과 그곳에 강력하게 결속되어 있는 주체라는 것이 명료하게 보인다. 이러한 갇힌 공간에 대한 몽상은 일련의 아버지 모티프에서 하나의 실마리를 제시한다. 그중「꽃무늬 벽지」를 읽는 일은 오유정의 시세계를 읽는 한 보람이 될 것이다.
아버지는 사업을 실패하고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네
우리는 닭장처럼 작은 방을 얻어 이사했네
어머니가 수리하는 동안
나는 꽃무늬 벽지를 샀지
나와 동생은 꽃향기가 풍겨 나오도록
꽃무늬 부분을 꼭꼭 눌러 붙였네
활짝 핀 꽃송이 아래
우리는 닭장 속 닭들처럼
머리를 서로 묻고 잠을 잤네
홰를 치며 새벽을 열 때
아침은 구름을 몰고 찾아왔네
구름 속 태양을 향해 더 크게 울었지만
외로움만 문틈으로 고갤 내밀어 익숙한 길에 기댔네
아버지한테 나던 나무 타는 냄새는 희미해져 갔네
나는 닭장을 벗어나기 위해 세차게 푸드덕거렸으나
희망은 유성처럼 쏟아져
쓸쓸한 꿈이 또 절망했네
바람이 지날 때마다 흔들리는 하늘
아버지가 돌아올 계절을 헤아리며 잠들던 날
얼굴을 더 깊게 묻으며 돌아눕는데
나무 타는 냄새가 코끝을 스쳤네
별들이 제자리로 돌아가 반짝이고
춥고 비좁은 방에 따스한 온기가 돌았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웅크렸던 몸을 풀었네
햇살이 이불 위로 내려앉을 때까지
꽃무늬 송이마다 피어나는 향기 속에서
오래도록 늦잠을 잤네
-「꽃무늬 벽지」전문
「꽃무늬 벽지」는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가 떠난 후 가족들이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서 살았던 유년의 공간을 그리고 있다. 이 시는 아버지늬 부내와 가난한 유년의 집이라는 개인의 트라우마를 재현하는데 바쳐지지 않는다. 인간의 의식이 생성하는 순간 상승하는 시의 창조성은 개별 시인의 과거라는 중력에 무기력하게 끌려 내려가지 않는 법이다. 위 시에서 오유정의 독특한 몽상의 힘은 현실 세계를 흡수해 원형적 세계로서 집을 구현해내고 있다. 이번 시집의 상상력의 원형질을 잘 보여주고 있는 이 시는 “작은 방”으로서의 집 안에 머무는 주체의 탄생을 목격하게 한다. 바슐라르가 주목한 ‘은자의 오두막집’의 한 구현으로 보이는 위의 시는 원초적인 판화로서 이미지들을 새기고 있다. 그 작은 방은 개인의 추억을 초월하는 전설의 나라이며 절대적인 피난처이다. 그곳에서 ‘꽃무늬 벽지’는 고대의 낙원을 환기하며,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는 신성을 담지하게 된다. 시적 주체는 “아버지한테 나던 나무 타는 냄새”가 배어 있는 “닭장을 벗어나기 위해 세차게 푸드덕거렸으나” 그럴수록 그 닭장은 벗어날 수 없는 엄연한 우주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아니 그녀가 세차게 푸드덕거릴 수 있는 그곳, 그 공간이야말로 진정한 거주의 공간이며 전설의 나라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특히 마지막 연은 시 전반에서 암시한 발버둥과 “절망”을 무효화시키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 “춥고 비좁은 방에”는 “별들이 제자리로 돌아가 반짝이고” “따스한 온기가” 돈다. ‘꽃무늬 벽지’의 “꽃무늬 송이마다”에는 향기가 피어난다. 오유정의 꽃무늬 벽지로 둘러싸인 작은 방은 개인의 추억을 넘어서는 전설의 나라이기에 그 속에서 “늦잠”은 집이라는 관념의 원형을 상기시킬 수 있는 것이다.
오유정 시의 원초적 공간은 작은 방이며 그곳을 벗어나려는 희미한 의식에 의해 재창조되는 몽상의 공간이다. 집에서 벗어나려 하는 주체의 운동은 그 자신을 해체해 실날 같은 호흡만을 남기는 애초의 희미한 의식으로 되돌아와 다시 세계와 한 몸이 된다.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그 원초적 공간으로 되돌아가려는 몽상 속에서 주체는 한없이 작은 공간으로 웅크려 들어가고 동시에 그 공간에서 “웅크렸던 몸을 풀”게 된다.
딱 하루만 아이스박스 속에서 산다면
캄캄하고 적막해도 아늑할 것이다
몸보다 긴 수염을 척 내려놓은 냉장 새우처럼
문득, 팔과 다리를 쭉 펴고 누워본다
갑자기 숨이 막힐 듯 답답해도
끝없이 견뎌야 하는 죽음의 관보다 수월하리라
새우가 머물다간 배처럼 바다 냄새가 난다
밀폐되어 밖은 보이지 않고
상상의 크기만 더욱 자란다
바람이 지나고 난 뒤
단풍잎이 박스 모서리를 두드린다
나는 문득 붉은 단풍잎 위에 오래도록 편지를 쓴다
소나기 지나간 후 뭉게뭉게 피어나던 구름처럼
불어나는 기억이 빛바랜 잎맥에 쌓이고
내 눈물 쓸쓸하게 모여 바닷물 된다
파도 밀려와 기포들로 백사장 씻기면
나는 이제 한 마리 눈물이 마른 채
날개를 털고
막막한 아이스박스에서 빠져나올 것이다
-「외딴 섬」전문
이 시는 ‘작은 방’에서 발원한 오유정 시의 원초적 상상력이 ‘아이스박스 속’을 몽상한다. 그것은 “밀폐되어 밖은 보이지 않고/ 상상의 크기만 더욱 자란다”. 자라나는 상상과“ 불어나는 기억”의 힘으로 “나는 이제 한 마리 눈물이 마른 새/ 날개를 털고/ 막막한 아이스박스에서 빠져나올 것이다”는 주체의 선언은 가능해진다. 오유정의 시적 공간은 현실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는 절대적인 공간이다. 자신에게서 태어난 몽상의 공간에서 인간은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열차를 타고 존재의 지붕 위를 달려 나가는 시적 주체와 아이스박스 속으로 들어가 스스로 새우가 되는 ‘나’는 분리되지 않는 것이다.
오유정의 첫 시집은 개인적 경험과 현실-세계의 구속력으로부터 벗어나는 원초적 거주 공간으로서 집의 이념을 되살려 내고 있다. 오유정의 시를 읽는 일은 행복한 유폐, 그 푸른 집에 머무는 경험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3.
“행복은 늘 새롭게 다가오기에/ 갇힌 현실이 두렵지 않다/ 흐린 동공으로 꿈꾸는 나라/ 더딘 적응력에도 자유를 그곳에 묻고/ 오늘도 투명한 유리벽을 닦고 있다”(「달력」)는 진술이 어떻게 오유정의 시를 구축하는지 이제 우리는 알고 있다. “참된 의미로 거주되는 일체의 공간은 집이라는 관념의 본질을 가지고 있다”(바슐라르)고 한다면 오유정 시세계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집이라는 관념의 본질에 가닿는 집을 건축하는 데 있을 것이다. 아래의 시는 오유정의 몽상이 궁극적으로 축조하는 집의 내밀성을 잘 보여준다.
등나무 아래
한 사내가 잠들어 있다
꿈이 깊어지면 등나무 실감기를 시작한다
뿌리에 걸쳐놓은 실타래 돌아 나오며
점점 커지는 실뭉치처럼
사내의 삶이 부풀어오른다
한 잎 한 잎 눈망울 터트리며
실 꾸러미 한 채 집으로 남는다
둥글게 둥글게 말려 있는 집
사내가 쪼그려 앉았던 발길을 열어
실을 따라가면
거기 열매처럼 달려 있는 집
둥근 창문 달고
차곡차곡 쌓여 있는 길을 올려다본다
이제 등나무 안에 삶을 시작한 사내
상처로만 알았던 매듭 위로 햇살 내려와
툭툭 싹을 틔우면
눈물방울 같은 옹이를 턴다
등나무 줄기하나 뻗어 내려와
사내의 뺨을 어루만진다
-「푸른 집에 머물다」전문
위의 시는 오유정의 ‘집’이 구현하는 내밀한 공간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한 사내가 등나무 아래에 잠들어 있다. 사내의 꿈은 사내의 삶과 구분되지 않으며 삶은 등나무에 의해 감겨 나오며 부풀어 오른다. 그 꿈=삶은 실꾸러미 한 채의 집이 된다. 따라서 사내의 집과 삶 역시 구분되지 않는다. 또한 등나무에 “열매처럼 달려 있는 집”은 “둥근 창문 달고/ 차곡차곡 쌓여 있는 길”이라는 점에서 집과 길 역시 합일된다. 마침내 오유정의 집과 세계, 열차와 철로, 몽상과 현실의 격투 혹은 변증법은 등나무 열매의 이미지처럼 응집된다. 시인의 유년의 기억으로 한정되지 않는 보편적이면서 진정한 거주 공간을 창조해낸 시인에 대한 보답으로 “등나무 줄기하나 뻗어 내려와/ 사내의 뺨을 어루만진다”.
오유정이 창조하는 집은 언어의 존재성이 의심되고 희화화되는 지금-여기에 햇살을 끌어들이고 “양산의 꽃무늬” “여문 씨앗들”(「따스한 봄날」)이다. 그래 그래, 그녀의 첫 시집은 눈먼 건축가의 몽상이 던져주는 선물이구나. 자 이제 각자에게 안긴 선물 상자를 열어젖히자.
나는 눈먼 건축가
손끝으로 설계도면을 읽고
대지에 말뚝 박네
대들보가 서면
황토 개어 만든 벽돌의 부피 가늠하여 하나하나 쌓아가네
손가락 사이로 계절이 지나가네
얼마 남지 않은 겨울 생각에 벽돌을 쌓고 틈새 꼭꼭 메우네
천장 위로 비늘 같은 기와를 올리네
보일러 선을 깔고 바닥을 평평하게 고르네
핏줄 닮은 보일러 선에 온기 돌면
추억 묻고 등을 기대네
더듬을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내 슬픈 사랑
아직 몸에서 욱신거리네
옹이 빠져나간 자리 메우듯 조각조각 마루를 잇네
그러다가 한낮을 만지면 생인손 같은 그녀가 웃네
창문을 걸고
베란다에 물고기형 풍경을 달면
굳었던 아가미 반짝이고 잠자던 동공이 열리네
새들 추녀 끝으로 날아들 수 있게
콘솔 위에 포근한 둥지 올려놓으면
그녀가 풍경 소리 들으며 새들을 기다리겠네
손 끝에 뜬 내 눈도 반짝이네
-「선물」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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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사의 글 ◆
마음의 곁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가 마음에서 벗어나 진실로 홀로 있음을 살고자 할 때 우리는 마음의 곁에 아무도 없음을 느낀다. 오유정의 시는 여기서 출발한다. 마음의 곁에 아무도 없을 때 마음은 마음을 용납한다. 그것을 용납하기까지 시인은 마음 안에서 어떤 고투를 겪어왔을까. 이 시집은 자신의 삶을 용납하기까지 시인이 겪어온 트라우마를 담고 있고 또한 용납이란 커다란 마음의 품을 얻기까지 시인이 자신을 둘러싼 삶의 트라우마를 성찰하며 용서하고 있다. 자신을 용서하는 시, 오유정 시인이 펴내는 이 시집에서 나는 용납이라는 삶의 큰 품을 만난다. 그렇다. 그의 시 편편에 예사롭지 않게 숨어 있는 고독하고 겸허한 언어는 수심을 알 수 없는 호수처럼 투명하며 더없이 깊다. _ 조정권(시인)
오유정의 시작 삶에서 세상은 “온통 묵지墨池”에 가깝다. 그것은 “울컥거리는 계절”의 “입원실”이거나 “칼바람”부는 “갱도 위의 마을”이거나 도망갈 수 없는 “쓸쓸한 방”의 이미지로 자주 변주된다. 그러나 그의 시편들은 결코 어둡고 무겁고 침울한 자리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겨우내 아버지의 기억 빨아들인 참나무/ 발깃발깃 봄물 오르기 시작”하는 기운과 “달빛이 검은 원석 위에 비치면/ 지상에 대한 희망이 제 빛을 내뿜는” 풍광을 누구보다 간곡하고 섬세하게 감지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아니 그는 스스로 특유의 “따스한 손”과 “질주하는 초저녁”의 명랑한 시적 속도로 “상처로만 알았던 매듭 위로 햇살”을 불러들이는 주술적 능력을 지니고 있음에 틀림없다. 오유정은 처녀시집에서 ‘흰그늘’의 미학을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치유와 살림의 시인으로서의 가능성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_ 홍용희(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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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유정 시인∥
∙경기도 안성출생
∙1999년〈해동문학〉2004년〈시사사〉로 등단
∙경희 사이버대학교 문창과 편입학 졸업.
∙한남대학교 대학원 문학예술과 졸업
∙혜산박두진문학작품상 수상
∙한국둥지 교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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