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군위1924년–괴산 연풍–청주2024년
할아버지의 청주 移住(이주) 100년을 기리고 추모하다.
양천허씨 합천공파 31대이신 할아버지의 족보에 나와 있는 함자는 㮤(송)이며,호적상 함자는 檳(빈)이며 호는 岩村(암촌) 이시다.
할아버지께서는 1922년 가을 극심한 가뭄으로 살기가 어려워 지자, 평소 생각하시던 “말을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이 나면
한양으로보내라“라는 옛 어른들의 말씀대로 전답을 정리하고 10여명의 식솔들을 이끌고 고향인 군위를 떠나 경성으로 향하다
문경새재를 넘어 괴산 연풍에 도착하여 잠시 머무시던 중 아버지의 병환과 별세로 장례를 치루고,칠성면 외사리에 사는 의성김씨 총각과 여동생을 혼례를 치르느라 2년여를 머무르시다 연풍장터에서 청주에서 온 민씨 성을 가진 소장수를 만났는데
뜻이 통하고 친분을 쌓게 되어그 분이 내가 사는 청주로 가자고권유하여
1924년 청주시 흥덕구 강서동 용정마을에 정착하게 되었고, 이러한 사실이 할버지가 쓰신 책자에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 후 할아버지께서는 서당을 열어 후학을 양성하시다 1955년에 별세하셨다.
할머니께서는 1980년 84세때 당신 혼자서 조치원역에서 기차를 타시고 부산역에 내려 부산에 사시던 친정올케를 만나
내가 군 입대후 하사관에 차출되어 병과교육을 받고 있는 부산시해운대구에 있던 육군병기학교를 찾아 오셔서 손자 면회를 왔다고 하자 평일에는 면회가 안된다고 함에도 막무가내로 우겨 기어코 면회를 하여 나를 놀라시게 하였다.
그후 할머니는 100세가 다된 연세에도 내가 율량동 아파트로 이사를 하자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났음에도 13층까지 걸어 올라
오셔서 또 다시 나를 놀라게 하셨다.
할머니께서는 건강히 사셔 1997년 백수잔치를 여는 등 천수를 누리시고, 100세가 되는 해에 눈이 침침하여 충북대학교병원에서 눈 수술을 하여 충북대 교수님들이 다 구경을 오시는 등 건강하게 사시다 2004년 107세로 세상을 뜨셨다.
2017년 내가 충청북도 북부출장소장으로 부임하여 기관방문을 하던중 구인사를 방문하여 천태종 총무원장님과 차담중
할머니께서 지금의 영춘교...다리가 없을 시절에 뗏목을 타고 구인사를 다니셨다고 하자 총무원장님이 박수를 치시며 좋아하고 반가워 하시던게 눈에 선 합니다.
청주로 가자고 권하셨던 민씨 어르신은 그분의 조카딸을 할아버지의 큰며느리(큰어머니)로 주셨고, 서당의 제자중 큰사위, 작은 사위를 삼는 등 자손을 번창시켜 대 가족을 이루고 오늘에 이르렀다
우리 자손들은 청주 정주 100주년이 되는 올해 한식을 맞아 할아버지를 비롯한 조상님들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하여
기념제를 올리게 되었다.
첫댓글 준비하신 준비위원님들 감사드립니다
영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