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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출발장소 : 순천 기적의도서관앞(금당 동명초등학교정문)
광양읍 승차 07시 40분(광양읍 로타리 국민은행 앞)
천문과학관 - 지푸재 - 억불약수터 - 천문과학관주차장
6. 준비물 : 회비 20,000원
중식,간식,식수, 등
*. 산행후 장흥 한우고기 파티합니다.
7. 개념도
전남 장흥에는 명산이 많다. 장흥이 가진 이들 천관산(723m), 제암산(778.5m), 사자산(668m) 등이다. 이 산들에 못지 않은 절경의 산임에도 불구하고 그간 장흥사람들만 즐겨온 좋은 산이 또 하나 있으니 바로 장흥의 진산이라 할 억불산(億佛山, 518m)이다.
억불산은 멀리서 볼 때의 외양은 그리 매력적이지 못하다. 평평한 평지에서 봉긋하게 투박한 종, 혹은 가마솥뚜껑 모양으로 솟아올랐다. 때문에 애써 남녘 끝자락까지 길을 떠나온 외지인들로선 힐끔 일별하는 것으로 그만 주변의 다른 산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장흥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르는 산은 천관산도, 제암산도 아닌 바로 이 억불산이다. 산이 작기는 해도 산이 갖추어야 할 것은 다 갖췄고 기암능선이 제법 그럴듯하고 정상 주변은 넓은 철쭉밭이라 5월 초순이면 꽃밭이 멋진 풍경을 연출하고 그뿐이랴 기슭에 편백 숲이 있는데, 도시 사람들은 그것만으로도 매우 만족해 한다.
억불산의 숲과 바위는 예상을 훌쩍 넘어서는 밀도와 규모있는 짜임세로 서있다. 동진하여 산 중복을 넘은 뒤 산행로 입구의 도로변 작은 공터에서 편백나무 숲속으로 들어가면 길고 곧게 잡아 늘인 듯 수십 미터 높이로 치솟은 편백나무숲의 저쪽 끝은 동서남북 사방 어디로든 보이지 않는다. 이 억불산 북사면의 편백숲은 40년쯤 전 조성한 것으로 무려 27만 평이나 된다고 한다.
편백나무는 절반쯤까지는 이파리 하나 없이 불그죽죽한 살을 그대로 드러냈고, 그 위로는 더벅머리처럼 무성한 가지와 잎으로 하늘을 가렸다. 임도를 따라 200m쯤 가면 우측으로 갈림길이 뵌다. 갈림길은 저기 산중턱까지 일직선 길이다. 완경사로 높아지는 그길의 끝에는 양쪽에 가지런히 도열한 붉은 편백나무 줄기들로 인해 흡사 장엄한 의식이 치러질 제단이 차려져 있을 것만 같다.
짙은 편백숲 직선 길의 끝에 다다랐을 즈음 갑자기 한꺼풀 벗겨지며 숲 위로 검은 암봉이 드러난다. 영락없이 다부진 어깨의 장군 형상인 이 바위는 하지만 며느리바위라는 이름을 가졌다. '노승이 착한 며느리를 불쌍히 여겨 홍수가 나면 절대 뒤돌아 보지 말고 산정으로 오르라고 했으나 궁금증을 못이긴 며느리는 그만 중턱에서 고개를 돌렸다가 바위로 굳고 말았다'는 전설이 있다.
편백숲 우거진 산비탈 길이 결국 급경사로 변한다. 지형도를 보면 억불산은 동서로 길게 늘어선 한편 장흥읍이 자리한 북사면이 특히 가파르다. 이 북사면의 급경사 지역으로 들어선 것이다. 로프를 매두었을 정도로 급경사인데도 길은 곧게 직선으로 내두었다. 숲을 벗어나자 큼직한 바윗덩이들이 들어찬 너덜지대가 이어진다. 바위에 붉은 페인트를 손바닥만한 크기로 점점이 찍어두어 길을 찾아가기엔 초행자라도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산행을 시작한 지 40분쯤 뒤 큼직한 암부 밑둥의 갈림길목에서 페인트 표식이 된 왼쪽의 산죽밭 사잇길로 나아가면 작은 계곡이 물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다. 그 오른쪽 바로 옆으로 로프가 매어진 급경사 바윗길이 시작된다. 굵은 로프가 없다면 다소 위험하고 어려울 길이다. 너덜길을 조금 오르면 집채만한 바위덩이 아래의 컴컴한 굴로 길이 빨려든다. 자칫 잘못 떠밀기라도 하면 굴러 내리지 않을까 싶은 그 바윗덩이 아래 통천문 속에도 밧줄이 매어져 있다. 머리가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조심 컴컴한 굴속을 빠져나와 10m쯤 오르면 또한 갈림길이다. 여기서는 리번이 달린 우측 길로 이어진다. 며느리바위가 바로 옆으로 다가와 있다. 저편에서 며느리바위며 여러 암괴들은 검게 윤곽선을 드러냈는데, 해발 500m급의 작은 산답지 않은, 흡사 설악산 공룡릉의 어느 한 부분 같은 웅장한 멋이 느껴진다.
안부 주변의 잡목 더미들은 암회색 암괴들과 밝디밝은 신록빛의 조화로 억불산은 이 순간 절정의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하고 있다.
가파른 너덜겅을 우측으로 비스듬히 더듬어 며느리바위 남측 안부에 올랐다. 얼핏 안개가 터지며 며느리바위의 전모가 나타난다. 어림짐작으로 이 안부에서부터 잰다고 해도 며느리바위는 높이가 30m 남짓 돼 보인다. 그러니 저 아래쪽 뿌리께부터 재보면 사뭇 100m에 육박하는 높이가 될 것이다. 며느리바위를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코앞에 뜻밖에도 오랜 석축이 다가든다. 그 위는 옛 절터로 여기에 억불사란 절이 있었다고 한다. 공터 구석의 바위 아래엔 물이 가득 고였고, 바닥엔 샘터도 있다.
절터에서 얼마 걷지 않아 억불산 주능선 위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천천히 걸어 오르는데, 특히 왼쪽(남쪽)완경사 지대는 온통 철쭉밭이다. 5월 초에 만발한다. '억불산 연대봉 518m'라 새겨진 표지석이 선 정상 북쪽 아래로 내려서니 우측 저편으로 구름장이 며느리바위를 감싸며 쏜살같이 흐르는 풍경이 또한 탄성을 산다. 억불산 정상에서 하산로는 두 가닥이다. 철쭉밭 정남쪽 100m 아래 무덤에서 우측으로 꺾어지는 편하고 넓은 길이 있고, 서릉 등날을 곧이곧대로 따르는 길이 있다. 능선길도 많은 사람들이 다녀서 길이 잘 나 있다.
물고기 지느러미 형상을 한 도중의 암릉에서 30여 분 걸어 폐타이어를 이용한 계단길을 지나 주 등산로와 만난다. 곧이어 다다른 헬기장 표식이 돼 있는 작은 공터에서는 직진 길로 접어든다. 우측 길도 있건만, 장흥산꾼들이 이 길로 든 것은 50여m 아래 공터를 지키고 선 거대한 소나무를 구경하기 위함이다. 무덤이 2기 있기는 했지만 제법 넓은 잔디밭이고 옆엔 밑둥 지름이 세 아름쯤되는 노송이 지키고 있어 해가 뜨거운 때는 쉼터로 안성마춤일 곳이다. 이 소나무는 장흥읍내에서도 빤히 바라뵐 정도로 억불산에서는 도드라진 존재다.
100m 아래 콘크리트 식탁이 놓인 쉼터 바로 옆이 임도다. 도로를 따라 100m쯤 가서 옆 샛길로 내려가는 길이다. 그러나 걷는 거리뿐 아니라 숲 구경을 위해서라도 이 샛길로 들 일이다. 송림만도 괜찮았는데, 나중에는 아까의 산행 시작 직후 지났던 것만큼이나 울창한 편백 숲이 또한 산행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다시 나선 임도 오른쪽 옆에는 표고버섯 형상의 장식을 한 억불약수터가 있다. 장흥은 우리나라 총 생산량의 10%나 되는 표고버섯의 고장이라. 이렇게 곳곳에서 표고버섯 형상이 보인다. 셈터에서 또한 지름길로 들어 50m쯤 가자 이번에는 아름드리 정자나무 세 그루가 섰고 돌 식탁도 꾸며진, 절로 앉아 쉬고픈 마음이 이는 멋진 곳이 나선다.
참으로 구석구석이 매력적인 산이다. 이윽고 내평마을이 내려다뵈는, 임도가 시작되는 지점의 널찍한 주차장도 가진 약수터로 내려섰다. 장흥의 태반이 여기 물을 길어다 먹는다는 약수터다. 산행은 여기서 사실상 끝나지만, 아직 볼 것이 남아 있다. 콘크리트 포장이 된 마을 길을 빠져나가 2차선 아스팔트 도로로 나선 다음 왼쪽으로 주욱 가면 '平化里(평화리)' 라고 쓰인 큼직한 돌비석이 보인다. 여기서 왼쪽 대숲이 우거진 길을 따라 들어가면 전통 보존가옥으로 지정된 고영완 가옥이 있거니와 그 앞의 연못가로는 1930년 독립운동가인 고영완이 심었다는 굵은 배롱나무 50여 그루가 또한 볼만하다.
억불산은 작지만 이렇듯 곳곳에 매력적인 장소를 가졌고, 또 맛갈스런 음식으로 유명한 남도땅이니 다소 멀리서 원행을 하더라도 불만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억불산 오르는 등산로의 시작점은 여러 군데를 꼽을 수 있으나 그중 장흥읍 남쪽 내평 마을 약수터, 남도대학 서쪽 약1km 지점의 도로변(편백숲) 두 군데가 가장 이용도가 높고 또 경치도 좋은 기점이다. 이 두 지점을 연결할 경우 풍치가 뛰어난 편백숲에서 시작하고 끝나며, 억불산의 상징인 며느리바위, 그리고 정상의 철쭉밭을 지난다. 이를테면 억불산의 핵심만을 골라 도는 코스 구상이라 할 수 있다. 방향은 어느 쪽에서 시작해도 좋다. 다만 노약자가 있다면 하산 때의 실족 염려 등을 감안해 남도대학 - 며느리바위 - 정상 - 내평 마을을 순서로 돌기를 권한다. 총 산행 거리는 6km 안팎이므로 반나절로 충분하다. 며느리바위까지 오르기가 다소 가파르고 힘들 뿐, 그외는 별반 위험하거나 힘든 곳이 없다. 그러나 경치는 역시 며느리바위 지나 정상까지가 최고다.
정상 - 수양리 간 등산로는 길은 잘 나 있지만 숲도 그리 좋지 못하고 암릉도 없으므로 권할 만하지 못하다. 다만 정상까지 거의 다 간 지점의, 제법 큰 소나무가 시원하게 그늘을 드리기도 한 무덤에서 동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며느리바위 근처의멋진 기암 풍치를 볼 수 있다. 남도대학쪽 편백숲 길로 올라간 다음 이곳까지 내려가도 좋다. 억불산 정상 남쪽에는 연대봉(396.7m)이 있는데, 이 봉 정상에서 남쪽 능선 두 가닥을 이용한 옛 산성인 학성이 있다. 이 학성을 낀 등산로는 거의 길이 없다시피 하다.
9. 주변의 명소
(1) 동학농민혁명 기념탑
장흥읍 충열리 공설운동장 좌측 윗편에 있다. 어지러운 정치와 외세를 몰아내어 패망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건지려는 농민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의로운 선현들의 행적을 기념하기 위해 군민들의 후원 속에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최후의 혈전지였던 석대들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1992년도에 세웠다.
송기숙 선생 탑문을 쓰고 고은 선생이 "장흥농민군을 기리는 노래"를 적었으며 이 지방 서예가인 김승남 선생의 글로 새겼다.
(2) 억불산 며느리바위 전설
장흥읍 우목리 한들 뒤에 억불산이 우뚝 솟아 자리 잡고 있다. 이 고장의 명산이라 불리는 이 산의 정상 바로 밑에 며느리바위가 장흥읍을 내려다보고 있다.
옛날하고도 아주 오랜 옛날, 어느 고을에 마음씨 착하고 효성이 지극한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모시고 어린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런데 비단처럼 고운 며느리와는 반대로 구두쇠로 유명한 시아버지였다. 밥을 지을 때는 쌀알을 세어서 내어줄 정도로 깍쟁이 노인이었다
하루는 어느 가난뱅이가 동냥을 하러 왔다. 그 노인은 동냥은 커녕 무색을 주고 때려서 쫓아 보냈다. 다른 동냥치가 가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어떤 동냥치가 使道에게 가서 구두쇠 노인이 이러 이러하다고 일러 바쳤더니 그 노인을 불러 오라 했다 노인은 사도의 명령을 받고 관아에 끌려왔다. 사도는 노인에게 “장자 이놈 듣거라, 네가 동냥하는 사람을 못살게 군일이 있었느냐”? 하니 노인은 “그런 일이 절대로 없습니다.” 했다
사도는
“그럼 알았으니 돌아가라” 하면서 노인을 돌려보냈다.
그런 일이 있는 후 어느 날 어떤 대사가 탁발승으로 가장을 하고는 그 집에 가서 시주 좀 하십시오” 하니
“이놈 네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얼씬거리는 거야? 썩 물러가지 못해?” 하면서 시주는커녕 똥을 한 바가지 퍼서 대사의 몸에다 부어 버렸다 그리고는 “저기 쌀통에서 한 번만 퍼 가시오” 했다. 그 통은 못을 박고 철사를 똘똘 말아서 마루바닥에서 떨어지지 않고 한 손이 겨우 들어가서 쌀 서너알 밖에 내지 못하도록 만든 통이었다. 그 중은 하는 수 없이 그 집 며느리에게 배가 고파서 그러니 밥을 좀 달라고 했다. 며느리는 노인 몰래 밥과 쌀을 주었다.
“어버님을 용서하시고 받아 주십시오”.
“부인, 부처님의 뜻에 따라 한 번 의 회개할 기회를 주었는데도 반성을 하지 않으니 하는 수 없군요.” 하면서
“내 말을 잘 들으시오. 모일 모시에 천둥이 치고 장대 같은 소나기가 쏟아질 테니 그 때가 되면 뒷산으로 피하십시오. 단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뒤를 돌아보면 아니됩니다.” 하고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며칠이 지나고 중이 말한 날이 왔다. 그렇게 맑은 날씨가 갑자기 구름이 끼고 천둥이 치면서 물을 붓는 듯한 소나기가 쏟아졌다 .며느리는 중이 일러 준 대로 뒷산을 향해서 피하려고 노인에게 말했으나 구두쇠 영감은 재산이 아까워서 말을 듣지 않고 막무가내였다. 하는 수 없이 며느리는 애기를 업고 산을 올라갔다. 그런데 얼마를 가자 뒤에서 시아버지의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얘 며늘아! 나 좀 구해다오.”
너무도 애절한 부르짖음에 깜박 중의 말을 잊고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 순간 “꽈르릉”하는 소리와 함께 며느리는 돌로 굳어져 며느리 바위가 되었으며 그 마을은 온통 물바다가 돼버렸다.
그런데 바로 이 마을에 박(朴)씨와 임(林)씨의 두 성씨가 살았다고 해서 박림소라 부르게 되었으며 며느리가 돌로 변할 때 며느리의 수건이 날아간 곳에 수건 건(巾)자와 메 산(山)자를 써서 건산리(巾山里)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지금도 탐진강 중류인 장흥읍 연산리(蓮山里) 길씨의 창랑정 앞에 깊이 패인 소가 있으며 건산리란 마을이 있어 옛 전설을 되새기게 한다.
(3) 정남진 (正南津)
북에는 중강진, 동에는 정동진, 남에는 정남진!” 서울을 중심으로 정북쪽 방향의 가장 추운 지방 중강진이 있다면 서울의 정남쪽에는 가장 따뜻한 지방 정남진 이 있다.
서울의 중심인 광화문에서 정남쪽에 자리한 전남 장흥군 관산읍 신동리 사금마을에 대한민국의 정남쪽 임을 알리는 정남진 조형물이 지난 달 30일 들어섰다. 바닷가 모래에서 금을 채취한 곳이라는 관산읍 신동리 사금마을은 국토지리정보원이 밝힌 경도 126도 59분 위도 34도 32분에 자리한 지역으로, 서울 광화문 기점으로 정남쪽에 있으며 수평선 동쪽 약 20㎞ 지점에 고흥반도 소록도와 아름다운 섬으로 유명한 완도군 금당도(꽃섬) 등 바다가 훤히 바라다 보이는 해변이다.
서울 광화문 기점 정남쪽완도 꽃섬등 보이는 해변 강릉에 있는 정동진은 조선시대에 한양의 광화문에서 출발하여 동쪽으로 내달으면 바다와 접하는 나루라는 뜻으로, 구전문학형식으로 유래된 지명이다. 즉 정동진은 그 당시 위도와 경도의 개념없이 말을 타고 가든지, 걸어서 가든지, 우마차를 이용해서 가든지, 그냥 동쪽을 향해서 똑바로 달려가다 육지의 끝에 다다른 나루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에는 광화문을 중심으로 정방향의 연륙위치를 표현하면 정서진도 있을 것이고 정남진 도 있을 것이다. 장흥군에서는 이런 점에 착안하여 국토 정남쪽이라는 상징적 가치 자원을 활용한 지역의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 경도 126도 59분을 통과하는 관산읍 신동리 사금마을 앞 지점 에 ‘ 정남진 ' 이라는 이름짓기를 추진해왔다.
정남진 가까이에는 삼산 방조제를 비롯하여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으로부터 명량대첩 과정에 이르는 호국역사의 마당인 회진(1종항)과 회령진, 도립공원 천관산과 천관산 문학공원, 고려 인종왕비이자 의종·명종·신종의 어머니로서 장흥이란 지명을 낳게 한 공예태후 임씨의 탄생지, 그리고 방촌 문화마을과 지석묘 군, 영화 <축제>의 촬영지로 해맞이 행사가 일품인 남포 소등섬, 안양 수문의 해수탕 등 해안 주변에 관광자원이 많다.
참석 하실분은 꼬리말에 메모나 전화예약 바랍니다.
선비산악회 (011-633-8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