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준비모임
얼마 전 복막염으로 병원에 1주일간 입원하고 퇴원하신 박 씨 아저씨를 위해 나들이를 계획했습니다. 평상시 복지관 일에 많은 도움을 주셔서 나들이를 통해 기운을 내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아저씨에게 먼저 누구와 함께 가고 싶으신지 어디로 가고 싶으신지 여쭤보았습니다.
아저씨는 아무하고나 가도 상관없다 하셨습니다. 장소도 딱히 가고 싶은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좀 생각해봐 달라고 다시 부탁드렸습니다.
며칠 후 아저씨께서 최근 친하게 지내기 시작한 두 어르신을 소개해주셨습니다. 두 분과 함께 나들이를 가기를 희망하셨습니다. 저는 평소 관계가 있는 황 씨 아저씨나 식사마실을 함께 했던 한 씨 아저씨와 같이 가는 것은 어떠신지 여쭈었습니다. 아저씨는 그것도 괜찮다 하셨습니다.
다음날 복지관 앞에서 만난 아저씨는 다른 어르신들이 나들이 언제 가냐고 성화라며 빨리 갈 수 있는지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그럼 한번 모일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아저씨께서는 다음날 점심식사 후 아저씨 댁에서 회의하자고 하셨습니다.
다음날 아저씨 댁에 가니 4명이 가기로 했는데 한명만 와서 앉아계셨습니다. 잠시 기다려 3명이 더 와서 우선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서로 모르는 분이 계셔서 인사를 먼저 나눴습니다. 그런데 인사 후 황 씨 아저씨가 본인은 빠지고 싶다며 일어나셨습니다. 그러자 한 씨 아저씨도 자기도 빠지고 싶다고 하고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비키셨습니다.
갑자기 두 명이 자리를 비우시니 분위기가 좀 어색해졌습니다. 다행히 그때 들어오신 이 씨 어르신 덕분에 화제전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 친해지셨다는 박병호, 이연근, 이영구 어르신은 농담을 하시면서도 죽이 잘 맞았습니다. 서로서로 챙기시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경로식당에서 한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면서 친해지셨다고 합니다.
나들이 이야기가 나오니 다들 신이 나셨습니다. 담당자 마음대로 하라고 하시긴 했지만 몇몇 이야기를 유추해보니 해수욕을 했으면 좋겠다. 회를 먹고 왔으면 좋겠다. 새만금 신시도 다리를 구경하고 왔으면 좋겠다. 조개를 캐고 왔으면 좋겠다. 등이었습니다.
다시 정리했습니다. 부안에 가서 해수욕을 하고 새만금 구경을 하고 조개를 캐고 오는 일정으로 정했습니다. 다들 동의하셨습니다.
날짜를 정하는데 본인들은 상관없다며 담당자가 가능한 날짜로 가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다음 주 수, 금 중 날씨가 좋은 날로 가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나들이 가기 전날 복지관에서 최종 점검을 하였습니다. 세 명이 함께 가기로 했고 해수욕장에 들렸다가 점심 먹고 새만금 돌아서 돌아오는 코스로 정했습니다. 간식을 사야하는데 부안에 만두집이 있다고 하니 좋다 하셨습니다. 각자 필요한 준비물을 이야기 나눈 후 돌아가셨습니다. 해수욕을 기대하시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재미있었습니다.
-꽃보다 할배. 격포해수욕장 편
나들이 당일 아침 약속한 시간에 복지관으로 모이셨습니다. 가방에 봉투에 필요한 준비물을 담아오셨습니다. 격포로 가는 길 이연근 어르신께서 죽산이 고향이라며 고향을 지난다고 좋아하셨습니다. 젊어서 외지에 나가 고생하다가 고향을 가본지 꽤 오래되셨다고 하셨습니다. 오랜만에 지나는 고향 풍경에 감회가 새롭다며 꿈같다 이야기하셨습니다. 동진강 다리를 건너면 이모님이 살고 계셨다고 하면서 옛 기억을 쫓아 어디쯤일지 유심히 창밖을 내다보셨습니다.
이렇게 나들이 데려와줘서 고맙다고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며 고마워하셨습니다. 그렇게 감상에 젖어 해수욕장에 도착했습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해수욕장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다행이 날씨도 햇볕에 내리쬐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한쪽 구석 바위 위로 올라가셨습니다. 이쪽에 옷을 벗어놓고 놀면 좋다고 알려주셨습니다.
훌러덩 훌러덩 옷을 벗고 조심조심 바다로 들어가셨습니다. 노출 수위가 높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바위에서 내려와서 물에 몸을 담그는데 이연근 어르신이 자꾸 비틀비틀하셨습니다. 이상하게 몸이 안 좋다 하시면서 자꾸 넘어지시려고 해서 걱정이 되었습니다. 바위틈에 조개들이 날카로워서 혹 다치실까 마음 조렸습니다. 잠깐 바닷물에 담그고는 추워서 안 되겠다 하고 나가십니다. 다른 어르신들도 바닷물에 담가서 좋다 하셨는데 파도 때문에 위험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저쪽으로 내려가서 모래사장에서 해수욕을 하자고 제안했는데 늙은이들이 가면 싫어한다고 사양하셨습니다. 저는 그런 게 어디 있냐며 그냥 내려가자 했는데 어르신들이 한쪽 구석 바위로 간 이유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어르신들의 안전이 중요했고 안전요원도 조개가 위험하니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러 와서 그 김에 모래사장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바닷물에 몸을 담그니 박병호 아저씨가 '염장해서 올 여름은 안 썩고 잘 지내겠다' 며 농담을 하십니다. 수술부위가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았다며 잠시 놀고 나셨고 해수욕을 좋아하시는 이영구 어르신은 한참을 놀다가 나왔습니다.
그렇게 해수욕을 마치고 샤워를 하고 점심식사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회를 먹고 싶다는 이영구 어르신과 그냥 아무거나 먹자는 이연근 어르신이 의견을 조율해서 횟집으로 이동했습니다. 횟 값은 어르신들이 갹출해서 내시기로 하고 찌개 값만 카드로 결재했습니다. 회를 오랜만에 먹는다는 이연근, 박병호 어르신과 회라면 자다가도 눈을 뜬다는 이영구 어르신이 맛있게 먹었습니다. 평소 소주 한잔씩만 드신다는 이영구 어르신이 안주가 좋아서 먹는다며 다섯 잔이나 드셨습니다. 그래도 괜찮다 하셨습니다.
오랜만에 해수욕과 맛있는 점심에 어르신들 기분이 좋으셨고 마지막으로 새만금 구경을 가기로 했습니다. 새만금을 구경하면서 정치인 이야기, 새만금과 김제 발전에 대한 토론 등 여자어르신들을 모시고 나들이 할 때와는 다른 주제의 이야기들이 오고갔습니다. 신시도에서 무녀도까지 5개의 섬을 잇는 연륙교가 최근에 개통되어 구경을 했습니다. 무녀도 앞에서 차량을 회차 하는데 바로 앞에 선유도가 보여서 신기했습니다.
예전 섬으로 난 캐러 다니셨던 박병호 아저씨가 예전 무용담을 들려주셔서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돌아와서 사진을 정리하는데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을 보니 어르신들의 한창때 어떤 모습이셨을지 그려졌습니다. 꽃보다 할배, 젊은 날의 찬란했던 어르신들, 해수욕을 하면서 즐거워하시는 모습, 세 명이서 서로 챙기는 모습이 정말 꽃보다 할배를 찍는 기분이었습니다. 살아계시는 한 끝까지 당신들의 삶을 재미있게 이어가셨으면 하는 바램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