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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선생, 기독교의 아웃사이더?"
독설 안에 숨겨진 도올의 신앙고백
2011년 04월 04일 (월) 11:40:43 국인남 .
하늘아래 당당한 독설가
이 시대 거침없는 하이킥을 날리는 하늘아래 겁 없는 독설가가 있다. 지성과 영성, 그리고 우리사회 어정쩡한 곳에 직격탄을 날리는 한 달인을 김주한 교수(한신대학 교회사학)가 만났다. 지난 2월 8일 도올 선생과 동숭동 서재에서 랑데부를 한 것이다. 잠시 도올 선생이 말하는 영성의 세계를 들여다보며 한국교회 현실을 새롭게 만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독설 안에 숨겨진 도올선생의 신앙고백을 들어본다.
도올 김용옥은 동양고전 강의로 널리 알려진 우리 시대의 사상가이자, 의사, 극작가, 교육자이다. 충남 천안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보성중고등학교, 고려대학교, 한국신학대학을 다녔고, 국립대만대학, 일본 동경대학, 미국 하바드대학에서 양(洋)의 동서를 통섭하는 연구를 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1982). 고려대학교 철학과 교수 재직시 양심선언을 발표(1986), 사회 불의에 항거하였고 오늘까지 우리 사회의 사상적 좌표를 세우는 데 치열한 정신을 발휘하였다. 중앙대, 원광대 석좌교수 등 여러 대학의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문화일보, 중앙일보 논필로 활약하면서 시대의 지성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사진/당당뉴스
김주한: 도올 김용옥 선생님을 모시고 한신과 기장, 한국교회와 관련된 선생님의 의견을 들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됨을 큰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선생님, 요즘 주로 하고 계신 일은 무엇인지요. 최근 근황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도올: 저는 고전철학자입니다. 한문으로 된 고문헌은 젊은 세대들이 읽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 남은 인생의 대사업으로
중국고전을 모든 학문분야에 응용될 수 있는 격조 높은 보편적 언어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중국 유교경전을
대표하는 것으로 13개의 경전이 있는데 이것을 모두 한글로 역주하고 있습니다. 현재 <논어> <효경> <대학> <중용>이
완성되었으며, 올해는 <맹자>를 탈고할 예정입니다.
나는 기독교 아웃사이더 아니고 인사이더
김주한: 이번에 한신대학교에서 명예졸업장을 받으셨습니다. 졸업장을 받으신 소감이 어떠신지요?
도올: 한국교회가 저를 기독교의 이단아처럼 취급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국기독교의 아웃사이더가 아니고
인사이더이지요. 더구나 기독교 장로교단의 입장에서 본다면 저는 기장의 골수분자에 속합니다. 평생을 기장 분위기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어려서는 함석헌 선생님의 씨알 농장 곁에서 살면서 정신적 자양분을 섭취했고, 청년
시절에는 안병무 선생님이 귀여워해 주셨고, 한국신학대학에 들어가서는 김재준 선생님이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기장은 제 삶의 뗄 수 없는 일부이며 고향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기장 교단 전체에 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개인으로서는 20대 청운의 꿈을 품은 한 젊은이로 다시 환생하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김주한: 당시 한국신학대학에 입학하신 동기가 궁금합니다. 집안의 반대는 없었습니까?
도올: 원래 제 꿈은 농장을 경영하면서 그곳에 교회를 짓는 거였어요. 그래서 농장을 경영하겠다는 생각에 고려대학교 생물학과에
들어갔죠. 하지만 건강이 나빠져서 고향으로 낙향하면서 신앙 문제가 등장한 거죠. 관절염 같은 질병을 앓으면서
“내가 왜 아픈가? 하나님이 왜 나에게 이렇게 혹독한 시련을 주시는가?” 고민하고, 나름의 실존적인 의문을 품게
되었어요. 하나님과의 대결 국면 끝에, 목회자가 되겠다는 각오로 신학대학행을 결단한 거죠. 부모님은 평생 목사님을
모셨기에 목회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아셨던 분들이라서 “네가 신학자가 된다면 허락하겠으나 목사의 길은 가지 마라”
하셨죠.
김주한: 고려대학교 입학 후 질병으로 낙향하셨다가 성직자가 되기 위해 신학대에 입학하셨다고 했는데요, 신학대에 가서
실존적인 고민은 풀리셨습니까?
도올: 풀린 것은 별로 없었어요. 하지만, 제 인생에 어마어마한 자극을 주었어요. 그때 한신은 당대 우리나라 최고의
지식사회였다고 자부합니다. 일 년 동안 배웠던 문익환 선생님의 구약학 개론, 문동환 선생님의 교육학 개론,
이우정 선생님의 신약학 개론, 김재준 선생님의 동양학 강의, 홍의섭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 소홍렬 선생님의 철학개론,
당시로서는 우리나라 최고 지성들의 최고급 언어였어요.
한신은 지식의 홍수였지요. 서울대나 연고대 같은 명문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분위기였어요. 당시 제가 받은 지적 자극이
한신을 떠나게 만든 아이러니이기도 해요(웃음). 그러나, 새벽 아침 일찍 일어난 학생들이 채플실로 향할 때 누군가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사중창이 되어 교정의 푸른 새벽기운에 물결치었던 조용한 감동은 제가 평생을
간직하고 있는 낭만이에요. 수도사들의 수도 생활을 그린 “위대한 침묵”이라는 영화가 있는데, 그 영화를 볼 때 느꼈던
거룩함이 제가 삶 속에서 받는 느낌보다 더 거룩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아요.
김주한: 선생님의 어머님은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선생님은 강연이나 책에서 자주 어머님에 대해
언급하셨는데, 선생님께 어머님의 존재는 무엇인지요?
▲ 도올 김용옥 (사진/당당뉴스)
도올: 저희 어머니는 피에티스무스적인 신앙인의 삶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지요. 일제시대부터 큰 병원을 하신 아버님
사업의 대부분이 교회에 바쳐졌습니다. 전국의 부흥사들 가운데 저희 집을 거처가지 않은 분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평생을 교회에 헌신하시고 경건한 생활을 하셨어요. 어머니는 “기독교 신앙이란 새벽기도다. 새벽에 혼자 기도하는 것이
나의 신앙의 전부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새벽기도를 평생 거르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집에서 교회까지 오고가시면서 부르시는 찬송가 소리를 들으면서 길 주변의 사람들이 일어나 하루를
준비하고, 밥을 짓기 시작했었다는 이야기는 동네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죠. 그러면서도 우리 어머니는 무서운
사람이에요. 인자하면서도 권위가 있고 조선 말기 대갓집의 풍모가 서린 위풍당당하신 분이셨습니다. 어머니의 자태는
제 인생의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 제가 윤리적인 삶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모두 어머니로부터 받은
영향입니다. 또, 어머니 덕분에 성경을 많이 읽었죠. 왜냐하면 성경 구절을 꼭 외어야 용돈을 주셨거든요(웃음).
민족주의적이고 정의로운 교단이 부흥하는 것만이 한국기독교 살리는 길
김주한: 인터뷰 첫머리에 선생님께서는 당신이 기독교의 아웃사이더가 아니고 인사이더로 살아오셨다고 하셨는데요.
인사이더로서 선생님은 어떤 역할을 해 오셨고, 또 앞으로 무슨 역할을 하실 예정이십니까?
도올: 한국기독교는 우리 민족의 힘으로 쌓아올린 종교이고 공동체입니다.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가 아닙니다. 기장 교단처럼
개방적이고 건강한 공동체가 제구실을 해야 합니다. 기장 같은 민족주의적이고 정의로운 교단이 부흥하는 것만이
한국기독교를 살리는 유일한 길이지요. 제가 기독교에 대해서 때론 격렬하게 비판적인 발언을 해왔고 하고 있지만,
아웃사이더로서 교회 전체를 공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장에서 한국기독교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위대한 목회자가 나와야 합니다. 위대한 목회자란 일차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흡인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에게 인간으로서 위대한 가치관을 줄 수 있는 역량이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목회자이기 이전에 인간이 먼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목사님들이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인문학을
나쁜 것처럼 말씀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편협한 인간중심주의는 그런 요소가 있을지 모르지만, 저는 목사님 설교가
영적인 동시에 인문학적 설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풍요로운 인문학적 소양을 가지고 예술적 감성에
뛰어난 인물이 될 때 목회는 결코 실패할 수 없습니다.
김주한: 귀담아 들어야 할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장공 김재준 목사님의 신학과 사상은 그 출발에서부터 기장교단의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신학적으로는 케리그마 그리스도보단 역사적 예수에 더 가까우셨고요. 그러나 교회공동체는
기독론적인 고백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예수교장로회”보단 “기독교장로회”란 명칭을 선호하셨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오히려 “예수교”를 사용하고 저쪽이 “기독교”를 사용해야 되지 않나 생각도 해 봅니다만 장공 선생님의
신학사상을 어떻게 보고 계신지요?
도올: 불트만은 복음서의 출발이 교회 공동체에 있었고, 교회공동체는 기독론, 즉 그리스도를 믿는 종말론적
회중(eschatological congregation)이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기독교의 출발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는데,
이 논의 자체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교회사적 시각을 가진 진보적인 생각이었습니다. 반면에 최근 신학은 역사적
예수에 어떻게 접근할 것이냐는 문제를 고민하면서 “예수운동”(Jesus Movement)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장공 김재준 목사님의 신학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우리 민족의 현실을 바탕으로 기독교가 서야지 서구 선교사들에 의한
교리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사건이 어떻게 우리 삶의 현재적인 지평에서 일어나게 만들 수 있는지를 우리는 끊임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추구라는 것은 결국, 교회·교리 중심적 사고에서 탈피하려는 시도입니다. 우리 기장이야말로
살아있는 역사적 예수를 끊임없이 만나려는 노력을 하면서 서구의 교리적 신학에서 벗어나려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가 내면화되면서 우리 민족과 자연스럽게 융합되는 길이었죠.
김재준, 안병무, 서남동 선생님께서 주창하셨듯이, 제도로부터 해방된 살아있는 예수가 한국의 역사적 지평에서 새롭게
우뚝 서도록 하는 일을 21세기 기장 교단이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공 선생님은 기장 교단을 만들 때에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교회의 병폐와 같은 병폐를 보시고 순수한 본래적 예수의 모습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셨던
것입니다. 기장의 분리만이 유일한 신학적 이념의 정통성에 의한 분리입니다.
그 이후의 합동이니 통합이니 하는 분열은 모두 헤게모니 쟁탈의 분열일 뿐입니다. 장공 선생의 모습이 지금 우리 시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죠. 장공 선생님의 신학 언어 자체를 분석해서, 개념적으로 단정 지어 평가하면 안돼요.
장공 선생님께서 교회의 병폐를 예견하고 진정한 혁신을 부르짖었던 그 역사적 맥락을 영원히 새로운 역사의 지평
속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 도올 김용옥은 "지금 민주 사회에서의 교회는 선택과 기호의 대상일 뿐입니다. 그런데 대형교회의 목사들은 대한민국 전 국민이 중세 시대에서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고 말한다.(사진/당당뉴스)
십자가 없는 한국교회
김주한: 선생님은 교회 인사이드에 계셨다고 말씀하시지만, 한국교회, 특히 보수교단으로부터 많은 비난(비판이 아닌)을 받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비난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비난 받을 때마다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도올: 속상하지요. 내 본 뜻을 몰라주니까요. 건강한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는 보수 기독교는 급격히 쇠망하게 될 겁니다(웃음).
기독교 선교의 역사를 보면 대원군 시대 조선유학으로부터의 압박 구조가 있었고, 그 후에는 일제의 압박구조가
있었습니다. 그 시대가 지나서 해방 후에는 독재 투쟁으로 민주화에 헌신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때 기장이 그 역사의
선두를 지켜오면서 오늘날 민주화 사회를 이룰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이 기장의 투쟁역사에 대하여 교단의 문제를 초월하여 우리 민족 전체가 감사해야 합니다. 이건 교회사의 문제가 아니라
민족사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결국은 독재 투쟁이 외면적으로 사라지면서, 소위 말하는 대형교회가 부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금 대형교회 현상이라는 것은 극히 일시적인 것입니다. 한국교회사 200년에서 대형교회가 나타난 것은
기껏 2~30년 현상인데, 스스로 혁신하지 않으면 금방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문화, 정치, 사회가 하나로 융합되었던
중세 시대에는 종교적 신앙은 회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민주 사회에서의 교회는 선택과
기호의 대상일 뿐입니다. 그런데 대형교회의 목사들은 대한민국 전 국민이 중세 시대에서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어요.
이탈되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빠져나가리라는 것을 모르고 한심한 짓들을 계속하고 있어요.
김주한: 그렇다면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어라고 생각하십니까?
도올: 토인비는 자신의 저서 <세계 종교 속의 기독교>에서 기독교가 고등종교가 된 이유는 “가치의 천정이 높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어요. 도덕의 기준이 지고하다는 것이지요. 흔히들 기독교의 본질을 코린토전서 13장에 나오는 사랑과 같은 것인 양
말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플라톤의 <향연>에도 바울의 언어와 거의 비슷한 사랑 이야기가 나옵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십자가”입니다. 도덕 기준이 높다는 것은 모든 세속적 이해를 버릴 수 있고, 무엇보다도
“자기”(我)를 버린다는 것이죠. 사실 불교도 “무아”의 개념이 더 본질적인 것이지 “자비”와 같은 것은 오히려 파생적인
개념입니다. 그런데 한국교회에는 십자가가 없어요. 십자가를 지고 죽어야 부활도 있는데, 십자가는 지려하지 않고
부활만을 원한다는 것이죠.
사도 바울의 정신도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는다는 것이 핵심이거든요. 이렇게 치열하고 철저한 자기부정 정신이
기독교인들에게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우리 삶에 나타나는 것은 개인적인 욕망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깟 놈이 뭐가 어렵다고 목회자들이, 하찮은 현실적인 것에 욕심이 결부돼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까?
부귀가 그토록 중요한가요? 세끼만 먹을 수 있으면 되는 게 아닙니까? 대형교회에서 매주 그렇게 많이 걷히는 헌금이
과연 이 민족을 위해서 어떻게 쓰여지고 있습니까?
아직도 건물 크게 짓는 데만 몰두하고, 목사들의 상식을 이탈하는 비리는 날로 증가하니까, 진실하게 살아가는 목사님과
교회공동체가 퇴색되어가고 있습니다. “콩크리트 기독교”가 결국 현 정권의 4대강콩크리트사업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우리 기장교단이 힘을 내서 새롭게 워밍업을 하면 놀라운 부흥을 이룩할 수 있습니다. 가짜는 곧 붕괴합니다.
사기꾼들은 일시적으로 해먹을 수 있어도 지탱할 수 없어요.
진보교회는 부흥이 안 되나?
김주한: 기장교단이 어떻게 하면 부흥할 수 있을는지요?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도올: 우선 진보교회는 부흥 안 된다는 관념을 바꿔야 합니다. 기장교단 사람들이 팽창주의를 싫어해서 교인확보에 소극적인
경향이 있는데 이런 관념을 바꾸어야 합니다. 당장 교인배가운동을 해야 합니다. 기장교단이 최소한 100만 명은 되어야
합니다. 보수교단 속에서 길 잃은 교인들을 기장교단으로 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진보적인 목사야말로 목회를 하면 크게 부흥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어야 합니다. 진보하면 그냥 십여 명 앉혀 놓고,
교회 부흥도 못시키는 사람들로 생각하는 고정관념을 깨야 합니다. 진보의 정신, 이 민족의 정의로운 기장 정신을 널리
확산시키는 것이야말로 한국교회와 사회를 건강하게 개혁하는 지름길이라는 소신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이번에 저의
강의를 수강하게 될 학생들에게 건강한 상식을 가진 매력적인 인간이 되도록 가르칠 겁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백만 명을
계도할 수 있는 목사가 되도록 교육시킬 겁니다. 아무튼 기장교단이 앞으로 100만 명은 되어야 합니다(웃음).
김주한: 가슴 설레는 말씀이군요. 현 단계 한국교회 현상에 대한 비판을 하다보면 끝이 없을 것 같습니다. 비판은 접어두고
기독교가 우리 한국 근현대 사회에 끼친 선한 영향력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도올: 우리 민족의 교육과 의료에서 뚜렷한 공헌을 했습니다. 또 우리 민족을 세계 보편의 장으로 끌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자유와 평등, 인권, 민주의 기초적인 가치들, 아무튼 이 모든 것들이 기독교와 관련이 있습니다.
지난 세기 동안, 우리가 기독교를 받아들인 것도 주자학을 적극 수용한 것과 비슷한 현상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를 보면
퇴계 주리론의 변형과도 유사한 심층구조가 있습니다. 이념적이고 독단적인 면에서 상통하거든요.
그러나 주자학의 핵심도 “존천리(存天理), 거인욕(去人欲)”이거든요. 인욕을 버리고 천리를 심성 속에 간직해야 합니다.
양반들이 소인배처럼 행동하면 안 되지요. 다른 종교에 대해 증오의 시선을 가지면 나중에 그 증오가 결국 자기에게로
되돌아옵니다. 한신대학원 학생들이 교정에 걸린 석탄 축하 프랭카드를 찢어버렸다는 것은 참으로 졸렬한 짓입니다.
종교인들은 근원적으로 세속적인 보수와 진보라는 틀을 벗어나야
김주한: 교회와 세상과의 관계에 대해 말해보지요. 교회 안의 보수-진보가 세상의 보수-진보의 스펙트럼과 대부분 일치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교회의 보수파들은 대부분 정치적으로 우파이고 여당 지지자들이 많고, 반대로 교회의 진보파들은
정치적으로 좌파이고 야당을 지지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교회와 세상의 관계방식은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도올: 종교인들은 근원적으로 세속적인 보수와 진보라는 틀을 벗어나야 합니다. 진정한 종교인에게 좌우가 있을 수 없어요.
자기 부정, 끊임없는 자기 초월이 있을 뿐이지요. 기독교인이라면 항상 역사를 선도해 나가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하는
구체적 원인이 우리 민족의 “6·25병”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6·25이전 북한의 많은 교회가 남한으로 내려오면서 공산당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와 혐오감을 갖도록 만들었어요. 게다가 미국이 우리나라를 지켜주었다는 뼈골 사무치는 고마움
같은 왜곡된 가짜인식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아직도 우리 사회가 6·25질병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중국 공산당이 변화한 것에 비교하면 한심한 수준입니다.
남북의 대치상황이라는 것도 중국역사의 시각에서 보면 1949년 이전의 국공분열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셈이죠.
지금 한국은 중국과 비교 해봐도 이념적으로는 거의 60년이 뒤져 있는 터무니없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기독교를
일찍 수용하였던 장공 선생님을 포함해 그 이전 명동교회의 규암 김약연 선생님 같은 분들은 “우리 민족이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서 자유로운 민족이 되어야한다”라는 민족주의적인 자각을 확고하게 지니고 있었지요.
최소한 남북문제에 있어서만은 한국 교회가 좌우를 논하기 전에 화합의 국면으로 가야만 우리 민족의 살 길이 있습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것이 기독교의 기본 신앙 자세 아닙니까? 하물며 어떻게 같은 동족끼리 용서하지 않습니까?
연평도에 대포가 떨어졌으면 한 대 더 쏴 보라면서, 너희의 잘못을 자각하라고 말할 수 있는 기독교인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왼뺨을 맞으면 오른뺨을 내주고, 겉옷을 달라하면 속옷까지 내주라는 기독교 신앙이 감명을 주었기 때문에,
많은 선각자들이 항일투쟁하고 이 민족을 지켜 낸 거지요.
그런데 이런 기본적인 신앙이 이념의 문제 때문에 좌우로 갈라져 있는 겁니다. 특히, 조선신학교의 설립 취지가
우리 민족 전체가 선교의 주체가 되어서 “우리” 기독교를 만들어가겠다는 구체적 자각이었다고 본다면, 기독교인이라면
무조건 친미가 되고, 빨갱이를 응징해야 하고, 서양풍으로 살아야 한다는 치졸한 생각들은 빨리 청산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서구 문명 중심의 패러다임이 중국이라는 새로운 문명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미국이 모든 것을 주도하는
방식으로 이제는 세상이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우리가 다양한 국제 관계를 다원적으로 활용하면서 오히려 주체적인 민족의 자각을 가지면 가질수록 한미 공조가
더 잘된다는 것이지요. 한미 공조라는 게 미국의 똘마니 노릇 잘하는 것이 아니지요. 오히려 우리가 주체적인 사고를
가지고 배짱을 튀기면 미국은 한국을 잃을까봐 두려워 정당한 공조를 할 것입니다. 한국처럼 미국에게 충성심을
보인 나라는 이 지구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을 터득하는 것이 인간됨의 자존인데, 이 기본을 망각하고 있어요.
내 주변의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친구들, 정말 한심합니다.
예수 사건은 우리 삶의 모든 지평에서 일어나야
김주한: 기독교인들의 사회참여가 진보 세력의 정치운동과 혼재되어서, 사회운동을 통해 형성된 자기 정체성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이 충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민주화 이후 진보 진영의 교회들이 자기 정체성에
혼돈을 느끼고 있습니다. 기장 교단도 예외가 아닙니다. 진보 진영의 교회에 대해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는지요?
또 진보적인 교회의 방향성에 대해 조언해 주실 말씀이 있습니까?
도올: 민중 신학의 본질이 왜곡되었다고 봅니다. 민중 신학은 70년대 당시의 청계천 피복 노동자만이 민중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민중 신학은 전태일과 같은 사람이 자기를 희생해서 십자가를 지는 모습을 보고 이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예수 사건”이라고 봤던 것이죠. 그런 것이 꼭 빈민들에게서만 일어나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 사건은 우리
삶의 모든 지평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민중 신학의 본질적인 철학이나 논리는 지금도 충분히 살려갈 수 있는 것이죠. 민중 신학이 사라진 것처럼
여기면 안 됩니다. 또 저는 민중 신학이라는 언어개념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중용의 신학”을 말했습니다.
중용의 신학이라는 것은 인간 주체 내면의 심화입니다. 실존의 내면 속에서 하나님을 심화하는 과정입니다.
그것은 종적인 동시에 횡적인 수신(修身)의 심화과정입니다.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 진보적인
생각을 모든 사회 지평 위에서 폭넓게 구현해야 합니다. 특정한 정치적 이념이나, 특정 공동체에 국한되는 것으로 여기면
안 됩니다. 모든 영역에 걸쳐 건강한 사유를 실천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심오한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해요. 안병무 선생님은 학문적인 깊이가 대단했습니다. 삶의 지평에서
경험하는 사건들을 철학화하고 신학화하는 인문학적 바탕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래야 큰 인물이 됩니다.
신학만으로는 해결이 안돼요. 보수 교단에서는 비판적 시각을 곤두세우겠지만, 저 같은 사람을 수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보편적인 이념을 향해 뭉쳐야 합니다. 우리 기장은 강점이 많습니다.
수유리 한 곳에서 통일적으로 목사를 배출하고, 또 71년의 치열한 정의로운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쉽게
건드릴 수 없어요. 그 전통을 고수해야만 21세기를 헤쳐 나갈 힘이 생깁니다. 일사불란하게 우리의 아이덴티티를
지켜야 합니다. 신학대학원에서는 경쟁력 있는 자기초월의, 자기창신의 인재를 교육해내야 합니다. 그것이 효율적으로
이어지기만 하면 한 세대면 한국 기독교와 한국 사회가 혁명될 수 있습니다.
김주한: 진보적인 기독교인이든 보수적인 기독교인이든 해석에 대한 차이는 있지만 성경을 유일한 경전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동양 고전들을 번역하시고 역주도 하시면서 대중들에게 강의도 많이 하셨습니다.
기독교 경전인 성경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신학적 토론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절대적으로 보장해야
도올: 제가 기독교에 대해 발언을 할 때 저를 함부로 비난 못하는 이유는 제가 성서를 누구보다 많이 읽고 있기 때문이라고
봐요. 신학 서적도 어떤 신학자 못지않게 많이 소장하고 있지만, 저는 성서를 위대한 말씀으로 봅니다. 무궁무진한
진리들로 가득합니다. 다만 해석의 지평은 열려있어야 해요. 그게 장공 선생님 주장 아닙니까? 특히 신학대학에서만은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해야 합니다.
교단에서는 신학적 토론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절대적으로 보장해야 합니다. 타 교단이 망해가는 이유는 교권이
신학을 억압하기 때문입니다. 그깟 돈 몇 푼 대준다고. 우리 기장은 최대한 자유로운 사고력을 가진 말랑말랑한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신학대학원을 도와야 합니다. 도마복음, 영지주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다 수용케 하고 자유로운
토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대신 졸업 이후에 목회자로서 또 다른 교육이 필요하면 교단 차원에서 재교육하면
됩니다. 그러나 신학대학에서만은 경직되지 않은 교육을 해야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우리 기장 교단처럼 경쟁력을 가진
교단은 없습니다.
김주한: 기독교인에게 성경은 단순한 학문적 연구 대상 이상의 절대적인 가치와 규범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선생님이 말씀하신 인문학적 가치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도올: 어려운 문제입니다. 일례로 불트만을 진보적인 신학자로 보지만, 그는 실상 경건주의자입니다. 저는 불트만보다
덜 경건합니다(웃음). 성경무오류적 신념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타협하기 어려운 요소가 분명 있겠지요.
그러나 지극히 지고한 경지에서는 인문학적인 지평에서 성서를 바라보면서도 자신의 심오한 신앙적 신념을 지킬
수 있다고 봅니다. 신앙의 궁극적인 절대성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전적인 타자로, 인간을 넘어선 인격으로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체가 실존의 궁극적인 내면에서 자기를 절대적으로 타 자화하는 경지까지 가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내가 나를 절대적으로 타자화한다.”는 것은 자신을 완전히 부정할 수 있다는 것이고, 자신의 욕망까지도 전적으로
타 자화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한 내면적인 경지가 확보되지 않는 한, 그들의 절대적 하나님 신앙이라는 것은
위선적이고 얄팍해서 깨지기 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적 의존이든, 절대적 타자화든, 절대적 인격화이든,
아무튼 그에 상응하는 나 실존의 내면적인 깊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밖에다가 절대자를 설정해 두고 믿는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의 문제는 실존의 지평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
제 인생의 체험이며 확신입니다. 저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할 때에, 하느님이 명령하기 때문에 이렇게 행동한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명령이라는 전제 없이도 인간 내면에서 과연 그러한 행동을 스스로 실천할 수 있는지를 늘 반성해
봅니다. 신앙생활의 절대성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세속적 삶의 상황 성을 가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속적인 삶의
상황에서 절대적인 신앙을 가진 자로서 어떻게 보다 더 위대하게 결단하고 사는가, 그 현실적인 모습이 입증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도올은 구약 폐기를 주장했다"는 비판에 대해
김주한: 화제를 돌려보지요. 근자에 기독교와 관련된 책을 몇 권 집필하셨습니다. 그 책들을 중심으로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보겠습니다. 먼저 <기독교성서의 이해>에서 구약성서에 대한 기존의 사고를 재고해야 된다는 주장을 하셨는데요,
선생님을 비판하는 측에서는 구약폐기론이라는 자극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도올은 구약 폐기를 주장했다”고 조금은
악의적으로 비판했습니다.
그에 대해 선생님은 구약 폐기가 아니라, 신약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채 구약의 특정 구절을 악의적으로 인용하는
잘못된 관행을 지적했을 뿐이라고 응답했고 또 율법을 폐기하자는 말이 아니라 “율법주의”를 폐기해야 한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말하는 율법이 무엇인지가 분명치가 않습니다. 예컨대 율법이라는 것도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완성하고자 했던 율법, 즉 계약법전이나 신명기법전과 같은 명문화되어 있는 것으로 하나님의 해방사역과
그 해방의 자유를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보존하고자 하는 제도적 장치로서의 율법이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일종의
“장로들의 유전”으로 알려진 생활규정 법조문(율법)이 있습니다. 이것은 율법의 역사적 토대를 상실한 것으로 말하자면
탈역사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무튼 선생님의 책에는 이런 구분이 생략된 채 담론이 진행되어 선생님의
구약관이 전체적으로 모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올: 제가 그런 것에 관해서 사회적으로 충분히 말씀드리지 못한 것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는 고전학자이기 때문에
구약에 대한 사랑이 깊습니다. 구약은 문학적으로도 무궁무진한 인류의 보고이고, 또 한 민족의 전체적 체험이란
맥락에서도 그 의미는 큽니다. 중동의 고문명을 재구(再構)하는 데도 결정적인 자료입니다. 저는 그런 구약 자체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단지 기독교 신앙의 근거는 예수님의 말씀 즉 로기온자료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약과 구약이라는 말 자체가 우리 기독교인의 개념이지 유대교의 개념이 아닙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새사람과 하나님의 새로운 약속이기 때문에 신약이라 했고, 구약이라는 것은 신약에 대비적인
부정적인 측면에서의 토라였습니다. 예수시대에는 오늘 우리가 말하는 구약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물론 토라도 이스라엘 민족의 삶의 현장 속에는 우리와 연결되는 무궁무진한 의미가 발견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유대교적인 믿음을 기독교 신학의 배경으로서가 아니라 고착적인 기독교인들의 신념의 체계처럼 설교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구약은 해석의 대상이고 어디까지나 참고의 수준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 제 신념입니다.
김주한: <요한복음 강해>에서 로고스 기독론의 기원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선생님은 신학자들이 플라톤주의나 헬레니즘 사상
등에 대해 더 깊이 연구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아마 로고스 기독론은 헬레니즘 영향 아래서 형성되었다는 취지를
말씀하신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왜 로고스 기독론을 헬레니즘 사상에만 기대어서 설명하는지 의문입니다.
즉 구약의 지혜전통 안에서 로고스 기독론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말하자면 요한복음의 로고스 기독론은
구약 지혜전통의 헬레니즘적 표현이라고 볼 수는 없을까요?
도올: 지금 말씀하신 것을 충분히 인정합니다. 결국 요한복음이 처한 교회 상황의 특수성이 일차적일 것 같습니다.
AD 100년 전후의 상황에서의 로고스 기독론이라는 것은, 기독론의 완성태라고 말할 수 있는 성숙한 담론이었고,
그것은 이후 2세기부터의 기독교가 성장할 수 있었던 실제적 동력이 되었다고 봅니다. 헤브라이즘의 지혜전승과
헤라클레이토스로부터 시작된 모든 헬레니즘의 로고스 전통을 수용했기 때문에, 어떤 이방인의 공격에도 대항하면서
초기 기독교를 융성시킬 수 있었던 힘이 요한복음에 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복음서는
초기 문서인 마르코복음보다 예수의 신적인 그러면서도 매우 인간적인 양면을 극단적으로 동시에 보여주는 문학적
걸작이기도 합니다.
"도마복음서가 제5 정경이 되면 좋겠다"
김주한: <도올의 도마복음한글역주>를 세 권으로 출간하셔서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선생님의 연구는
기원 일 세기를 종합적으로 논구해 들어가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도마복음서를 연구하신 동기를
말씀해 주시지요.
도올: 제게 평생의 고민은 초월과 내재의 문제, 또 과학적 상식과 종교적 구원의 진리에 관한 여러 담론의 상충을 제 자신
안에서 어떻게 융화시킬 것인지, 또 신을 전제하지 않는 유교의 담론과 기독교 담론을 어떻게 절충할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도마복음서의 출현은 서광이었습니다. 도마복음서는 그간의 고민을 최소한 내 내면
속에서 융합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즉 도마복음에 실린 로기온 자료에서 나타나는, 신화적 염색이 없는
적나라한 예수의 모습 속에서 인류의 보편 종교, 보편 신앙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김주한: 도마복음서를 정경으로 받아들입니까?
도올: 저는 제5복음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김주한: 그런데 교회사에서 정경이라는 의미는 교회공동체가 받아들이고 인정할 때만 성립됩니다. 이는 도마복음서의 위상과
권위에 관련된 문제이기도 합니다만 도마복음서의 학문적인 가치나 의미가 대단히 크고 심오하다는 것과 교회공동체가
그것을 수용하느냐의 문제는 별개라고 봅니다. 정경이라는 것은 학자 한 두 사람이 외친다고 될 문제가 아니라는 거지요.
도올: 물론 정경이라는 것은 교회 공동체의 합의에 의한 것이라는 말씀은 맞습니다. 단, 도마복음은 경전 이상으로 역사적
예수를 아는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앞으로 교회 공동체의 의식이 변해서 이것을 인정한다면 정경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한 예로 마르틴 루터는 요한묵시록을 정경에서 빼자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현재의 27서 정경이
역사성을 초월한 절대적인 것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요.
김주한: 예수 전승의 모체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그리고 기원 일 세기의 복잡한 구도를 파악하려는 노력에 도마복음서가
많은 도움을 준 것은 사실입니다. 예수의 역사적 실체에 대해 도마복음서가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신다면 선생님 주장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도올: 도마복음의 성립연대에 관해서는 AD50년부터 100년 사이라는 폭넓은 스펙트럼이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다양한 전승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그런 문제를 떠나서 도마복음에서 명백한 것은,
현 복음서 내의 큐(Q)자료의 입장과 일치하듯이,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낳았고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부활했다는, 즉 사도신경에 나타난 교리상의 모습을 담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신화적 담론이 형성되기 이전의 자료가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또 여러 문헌학적 정황으로 볼 때,
상당히 오리지널한 자료라는 것이 입증되며, 따라서 마르코복음 이전의 자료가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한국 교회에 시급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단지 학자적 관심의 차원에서는 다양한 논의가
활성화되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저의 도마복음연구가 이 시대의 한국신학계의 체면을 세워주고 있다는
역설도 가능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도마복음서는 동서양 소통의 열쇠 제공
김주한: 도마복음서가 동서양을 소통하게 하는 구체적인 열쇠를 제공한다고 하셨는데 무슨 말입니까?
도올: 도마복음서는 피상적인 초월의 담론이 아닙니다. 인간 예수가 “따르는 자”인 인간들에게 삶의 진리를 설파할 뿐입니다.
그렇다고 현행성서 이외의 색다른 담론을 말하지 않습니다. 4 복음서 안에 있는 예수의 말씀의 진의가 파악되도록
도움을 주고 깊이를 주는 오리지날한 로기온자료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비유담론 같은 것도 알레고리화가
전혀 없습니다. 그것 자체로 순수하게 인간의 심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비유란 설명이 없이도 사람들이
당장에서 이해할 수 있을 때만이 비유입니다.
그야말로 현행 4복음서 해석의 새로운 차원을 확장해주는 복음서이지요. 최근에 중국에서도 도마복음 같은
새로운 자료가 많이 발굴되었습니다. 간백자료(簡帛資料)라고 부르는데 최소한 BC 350년 이전의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의 고전이 후대의 날조라는 모든 의고풍(疑古風)의 역설을 무색하게 만드는 위대한 자료입니다.
고대인의 사유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오하다는 것이지요. 간백자료는 인간의 정(情)에 관해 매우
깊은 담론을 말합니다.
그런데 서양 사람들은 이성을 모릅니다. 이성(ratio)이라는 것은 수학을 할 줄 아는 인간의 계산능력 정도입니다.
예를 들면 인간의 욕정, 감정이라고 하면 이성보다 천한 것인 양 생각하는데, 동양사상에서 정(情)이라는 말은
리(理)보다 훨씬 고차원의 것입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쉽게 이야기하자면, 과학적인 판단을 인정하고 또
그 한계를 설정하자는 비판철학입니다.
예를 들어 한 여자가 한 남자와 선을 본다고 칩시다. 여자 부모 입장에서 신랑 될 남자가 과학적 인과관계로 따져볼
때 완벽한 남자라고 생각되어 성사를 시키려 해도, 여자가 싫다고 하면 끝입니다. 그러면 부모는 감정적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하겠지요. 그러나 “싫다”는 것은 저차원의 감정이 아니라, 이성을 포괄하는 더 높은 차원의 판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과 감정의 문제를 대립적으로 파악할 수 없습니다.
신앙의 문제도 이성이냐 감정이냐를 논하기가 어렵습니다. 동양에서 “신앙”이라는 문제는 서구적 의미에서의
감정(emotion)이 아니라, 인간의 깊은 내면의 모든 이성적 판단을 포괄하는 정감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언어가 초월되는 차원이지요. 정(情)적으로 항상 옳은 판단을 내리는 세련된 인간, 그것이 바로 종교가 지향하는
인간입니다. 인간에 대한 비서구적, 심오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중용>의 첫 마디는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입니다. 이와 같은 고도의 언어를 말하는 사람을 보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쉽게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장공 김재준 선생 같은 분 역시 그런 고도의 차원에서 생각하셨던 분입니다. 인간의 구원은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구원하겠다는 것입니까? 목사님이 풀 한 포기를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제 기독교를 서구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시각을 본질적으로 탈피해야 합니다. 선택적으로 해석하는 편협함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신학은 반드시 이성을 포괄해야 합니다.
이성을 거치지 않은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은 이성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수용하면서도
그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성이라는 것이 별것은 아니죠. 이성이라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능력이지,
신봉할 무엇은 아닙니다. 인간의 감정은 더 복잡한 것입니다. 흔히 본능적으로 행동하지 말라고 하지만,
한낱 동물을 봐도 그들의 본능이 얼마나 복잡다단한지 모릅니다. 인간은 동물의 본능에도 못미치는 흉악한 이성적
행동을 마구 저지르고 있습니다. 인간의 문제, 생명의 문제는 어떠한 형이상학적 문제보다 더 형이상학적인 오묘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학문의 대중화
김주한: 지금까지 선생님의 기독교관련 저술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도올 학문의 큰 매력은 지식의 대중화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또 어떤 것을 보여주실지 기대하고 있을 텐데요.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
주시지요.
도올: 학문의 대중화는 제가 이 시대와 교류하는 여러 방식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조금 전에 지식의 대중화라는 말씀을
하셨지만, 대중화 작업은 오히려 저에게는 부차적인 일이었어요. 앞으로 한국 민족은 치열한 학자 도올을
보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대중적인 작업을 지양하여 미래를 위해 치열한 동서융합의 학문적 작업에
들어갈 것입니다. 이제 좀 철이 들어가는 것 같고 머릿속이 통합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독서가 좀 되는 것 같아요.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정보가 들어오고 있어요. 제 인생에 이런 황금기가 없었어요.
지금부터 저는 엄청나게 창조적인 시간을 보낼 거라고 확신합니다. 지금 제가 매일 독서하는 책의 양이 엄청납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제가 체험한 세계를 정리하여 시스템을 구축해갈 것입니다. 저는 제 자신에 대한 항상 “젊은” 기대가
있어요. 공부를 더 해야 한다고 자신을 독려하지요. 이제 유·불·도·기독교·이슬람을 종합해서 동아시아 문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해요. 자유와 평등이라는 인류의 이상은 이미 낡았거든요. 자유는 방종을,
평등은 획일주의를 가져왔어요. 거기에는 “환경”이라는 개념이 없었어요. 이런 것이 이제는 완전히 바뀌어야 해요.
저는 서양의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의 담론을 우습게 알아요. 그따위 진부한 것이 아닌 새로운 담론이 필요해요.
그런 것을 저도 만들어 가겠지만, 우리 한신대학교 학자들이 만들어 갔으면 해요.
김주한: 전반적으로 정리가 잘 된 것 같습니다. 여러 주제에 대해 장시간 동안 매우 유익하고 깊이 있는 말씀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평안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 대담은 기장회보 3월호 인물탐방 시리즈에 실린 대담 내용들이다. 동양고전학자로서 도올 선생의 지혜와 학문이 한국교회와 개혁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모든 교회에 큰 도움이 되길 기원해 본다>.
김주한 교수는 한신대 신학과와 동대학원(신학석사)을 졸업하고 미국 에모리대학교 대학원(신학석사)과 보스톤대학교 대학원(신학박사)에서 교회사학과 기독교사상을 전공하였다. 주요 저역서로는 <마르틴 루터의 삶과 신학이야기>, <2천년동안의 정신 1,2,3>, <이야기로 읽는 기독교신학> 등이 있으며 현재 한신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기사제휴/ 당당뉴스 2011년 3월 29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