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 나팔절(레 23:23-25절)
1. 레위기 23장 23 – 25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곧 그 달 일일로 안식일을 삼을찌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아무 노동도 하지 말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찌니라.”하십니다.
레위기 23장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키라고 명하신 7대 절기에 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 유월절(23:5), 무교절(23:6), 초실절(23:10), 오순절(23:16), 나팔절(23:24), 대속죄일(23:27), 초막절(23:35)이 그것입니다. 출애굽의 사건과 40년 광야 생활 가운데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기억하기 위해 제정된 이 절기들은 예수님이 행하실 구속의 사역을 순서적으로 예표하고 있습니다. 성막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구별된 장소로 예수님의 인격과 대속의 사역을 예표하고 있다면, 절기들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구별된 시간으로 예수님이 행하실 구속의 사역을 순서적으로 예표하고 있다는 겁니다.
여기서 봄 절기인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오순절은 예수님의 초림을 예표하는데, 각기 유월절은 십자가의 사건을, 무교절은 누룩없는 떡처럼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무덤에 안치되신 사건을, 초실절은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 되신 사건을, 오순절은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교회의 시대 은혜의 시대가 시작된 사건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봄 절기가 예수님의 초림 사건을 예표한다면 가을 절기는 예수님의 재림 사건들을 예표하고 있는데, 가을 절기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절은 교회의 휴거 사건을, 대속죄일은 7년 대환난 기간동안 이스라엘이 민족적으로 회개할 사건을, 초막절은 예수님이 우리와 머물기 위해 이 땅에 다시 찾아오시는 지상 재림의 사건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2. “나팔을 불어”(24)
나팔절이라는 명칭을 가진 ‘로쉬 하샤나’는 나팔을 부는 행위와 뗄 수 없는 연관을 가지고 있는데, 7월 1일 달이 그믐달에서 초생달로 바뀌는 순간이 되면 나팔절(로쉬 하샤나,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100번의 나팔을 불게 되는데, 이 100번의 나팔은 각기 다른 의미를 가진 4가지 나팔소리를 일정한 순서에 따라 반복해서 불게 됩니다.
a. 먼저 테키아 -Tekiah (תקיעה)라고 해서 힘차게 한 번을 부는 나팔 소리인데, ‘왕의 대관식’을 알리는 소리입니다.
b. 두 번째는 쉐바림 - Shevarim (שברים)이라 해서 짧게 세 번을 부는 나팔소리가 있는데, 이는 ‘회개를 요청하는’ 나팔소리입니다.
c. 세 번째는 테루아 - Teruah (תרועה)라고 해서 스타카토로 짧게 아홉 번을 부는데, ‘영적인 각성을 요청하는’ 나팔소리입니다.
d. 그리고 마지막에 가장 웅장하고 길게 부는 100번째 나팔소리가 있는데, 이를 테키아 하가돌 - Tekiah Ha’Gâdôl (גָּדוֹל –תקיעה)이라 합니다. ‘테키아 하가돌’은 ‘하나님의 음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100번째로 부는 ‘테키아 하가돌’이 바로 고린도전서 15장 51절에서 설명하는 “마지막 나팔”(고전 15:51)이요,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에서 설명하는 “하나님의 나팔”(살전 4:16)인 것입니다.
II.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데살로니가전서 4장 13절 – 5장 11절)
앞에서 우리가 휴거의 사건을 예표하는 나팔절과 이 나팔절에 부는 100번의 나팔소리에 대해서 살펴보았는데, 이제는 휴거 사건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말씀인 데살로니가전서 4장과 5장의 말씀을 통해 휴거 사건의 의미와 휴거 사건을 기다리는 성도들이 가져야 할 믿음의 자세에 대해 살펴봅니다.
1. 정의(4:17)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하십니다.
17절에 등장하는 ‘끌어올린다(caught up)’이라는 단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휴거’(携擧, Rapture)라는 단어입니다. 끌 휴(携), 들 거(擧)자를 써서 휴거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단어는 아니지만, 이 사건을 묘사하는 가장 적절한 용어라 여겨져서 이렇게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는 이 휴거의 사건을 묘사하는 몇몇 중요한 말씀들이 등장합니다.
a. 감람산 강화가 기록된 마태복음 24장에서는 이 휴거의 사건을 택함받은 자들을 데려가시는(remove) 사건으로 묘사합니다(마 24:40,41).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마 24:40,41)하십니다.
b. 요한복음 14장에서는 휴거의 사건을 주님이 예비하신 처소로 영접하는 것(reception)으로 묘사합니다(요 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3)하십니다.
c. 고린도전서 15장에서는 휴거의 사건을 주님께서 성도들을 변화시키는(reform), 혹은 부활케(resurrect)하시는 사건으로 묘사합니다(고전 15:51,52).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전 15:51,52)하십니다.
d. 본문에서는 휴거의 사건을 그리스도께서 그의 택하신 성도들과 함께(reunite)하시는 사건으로 묘사합니다(살전 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하십니다.
휴거의 사건(rapture)은 예수님께서 택함 받은 성도들을 데려가(remove), 당신이 예비하신 처소로 영접하시는(receive) 사건입니다. 휴거의 사건으로 성도들은 부활의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화되어(reform, resurrect) 영원히 주님과 함께(reunite)하게 될 것입니다.
2. 휴거의 대상 - 그리스도 안에서(16,17절)
오늘 본문 16, 17절에서는 이 휴거의 사건에 참예할 자들을 설명하시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한다는 겁니다. 휴거 사건에 참예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로 제한될 것입니다(마 25:1-13).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과 살아남은 자들이 휴거된다는 말씀이 그런 뜻인 것입니다. 휴거의 사건은 신랑 되신 예수님이 그의 신부인 교회를 혼인 예식을 위해 예비하신 처소로 데려가시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휴거의 사건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과 살아남은 자들” 곧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로 한정되는 것입니다.
3.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리라(17절).
오늘 본문 17절에서는 휴거의 사건을 “우리가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는” 사건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휴거의 사건을 예수님의 공중 재림 사건이라고도 표현하는 것입니다. 공중 재림(휴거)의 사건은 7년 대환난의 마지막 순간 감람산으로 오셔서(슥 14:4) 적그리스도의 군대와 세상 나라를 심판하실 예수님의 지상 재림 사건과 명확히 구분되는 사건입니다.
교회가 경험할 종말의 사건이 ‘공중재림’이고, 이스라엘이 경험하게 될 종말의 사건이 ‘지상재림’입니다. 지금의 이스라엘은 아직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기에 일부 메시아닉 쥬를 제외한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휴거의 사건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휴거의 사건에는 참여하지 못하지만 저들에게 허락 된 한 이레의 기간, 즉 7년 대환난의 기간 동안 민족적으로 회개하고(슥 12:10) 환난을 통과한 뒤에 비로소 감람산으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듯 이 땅에서 7년 대환난이 펼쳐질 동안 예수님이 예비하신 처소에서 혼인예식을 치룬 교회는 지상 재림 때 신랑되신 예수님과 함께 재림하여(유 1:14) 천년왕국의 기간 동안 왕후의 권세를 가지고 세상을 통치하는 것입니다.
4. 휴거의 시점 - 도적같이 오리라(5:1,2)하십니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그 날과 그 시는 알지 못한다.”(마 25:13)하셨습니다. 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과 평화 협상을 맺고 정확히 두 번의 “한때와 두 때와 반 때(1,260일)”(단 12:7)를 지난 뒤 오시게 될 지상 재림의 사건은 7년 대환난이 시작되는 날짜만 알면 정확히 재림의 날짜도 알 수 있지만, 공중 재림인 휴거 사건의 날짜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기에 누구라도 성경에서 알 수 없다 하신 날짜와 시간을 안다고 주장하면 100% 이단인 것입니다. 31년 전 이장림이 만든 다미 선교회가 1992년 10월 28일 예수님이 오신다는 주장을 해서 한국교회 안팎을 뒤집어놓은 적이 있는데, 알 수 없다 하신 날짜를 안다고 했으니 이단인 겁니다.
5. 홀연히(suddenly) 이를 것이라 하십니다(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하십니다.
여기서 ‘평안’이라는 단어의 헬라어 ειρηνη(에이레네)는 ‘마음의 평온’을 의미하고, ‘안전’이라는 단어의 헬라어 ασφαλεια(아스팔레이아)는 ‘외부의 위협으로부터의 안전’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부로부터의 어떤 위협도 느끼지 못하고, 마음으로부터의 어떤 위기감도 느끼지 못한 상태에서, 마치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갑자기 종말의 날이 찾아온다는 겁니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이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마 24:40,41)하신 말씀처럼, 모든 사람들이 평안하고 안전한 가운데 일상적인 삶을 살고 있을 때 홀연히 휴거의 사건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6. 너희에겐 도적같이 임하지 못하리라(4,5) 하십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에겐, 또 영적으로 잠자고 있는 교인들에겐 도적같이 임할 것이지만, 어두움에 있지 아니한 성도들에겐 그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못할 것이라 하십니다. 휴거의 사건이 일어날 구체적인 날짜와 시간은 알 수 없지만, 빛의 자녀들(5)에겐 그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왜입니까? 성경의 예언을 알고 있는 빛의 자녀들은 이 예언의 말씀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시대의 징조들을 보면서, 구체적인 날짜는 몰라도 그 날이 임박했음을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지금 펼쳐지고 있는 중동의 지정학적 상황을 보면 에스겔 38장과 39장에서 예언하고 있는 곡과 마곡의 전쟁이 머지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처처에서 이례적인 지진과 홍수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는 모습을 보면서,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 세상이 말세로 향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언론들마다 외계인과 UFO에 관한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는데, 이는 교회의 휴거 사건이 머지않았음을 직감한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이 휴거의 사건을 ‘외계인 납치 사건’으로 호도하기 위한 밑밥인 것입니다. 여하튼 듣고 믿지 못하겠다면, 종말에 관한 성경의 예언들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시대의 징조들을 보고라도 그 날이 가까웠음을 깨닫고 믿어야 한다는 겁니다.
7. 깨어 근신하라 하십니다(살전 5:6,9,11).
모든 사람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때에 홀연히(suddenly) 종말의 사건(휴거의 사건)이 찾아올 것을 경고하시면서, 사도 바울은 주의 오심을 소망하는 성도들에게 몇 가지 권면과 위로의 말씀을 주고 계시는데, 하나씩 살펴봅니다.
a. 먼저,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찌라”(6)하십니다.
“깨어 근신하라”하시는데 그러기 위해선 먼저, ‘깨어있어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깨어 종말에 관한 예언들이 성취되고 있는 시대의 징조들을 분별하고, 더 나아가 잠자는 자들을 일깨우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겁니다.
두 번째는 “근신하라”하십니다. ‘근신하라’는 단어가 헬라어엔 ‘네포멘’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술취하지 말라(sober) 혹은 절제하라(self-controlled)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술 취하고 방탕한 모습으로 주님을 맞이해선 안 되고, 모든 일에 절제하고 근신하는 모습으로 주님을 맞이해야 한다는 겁니다.
b. 9절에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wrath)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하십니다.
‘노하심’에 해당하는 헬라어 οργην(오르겐)은 예수님의 지상 재림(παρουσια) 직전에 있을 환난과 심판 즉, 7년 대 환난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택함받은 성도들을 위해 예비하신 것은 ‘노하심’ 즉 7년 대환난이 아니라, 환난과 심판 임하기 전에 노아와 롯을 구원하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실 것이라 하십니다. 교회가 기다리는 종말의 사건이 ‘노하심’ 즉, 7년 대환난이 아니라 이 노하심에서 구원을 받는 사건이기에 디도서 2장 13절에서도 이를 “복스러운 소망(the blessed hope)”(딛 2:13)이라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구원이지 진노와 심판이 아닙니다. 은혜의 시대를 사는 성도들에게 주신 소망은 복스러운 소망인 혼인 예식이지, 노하심에 이르는 7년 대환난이 아니라는 겁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이 복스러운 소망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기에 만날 때마다 ‘마라나타’로 인사를 나누며 그 날을 기다렸다는 겁니다.
c. 세 번째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라”하십니다(11).
‘권면하고’에 해당되는 헬라어 ‘파라칼레이테’는 ‘위로하다.’, ‘충고하다’, ‘용기를 북돋우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마지막 때를 알리는 사역을 10년이 넘도록 진행하다 보니 중도에 낙심하여 넘어지는 분들이 계시는데, 우리가 그런 분들을 찾아가 권면함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님이 휴거의 사건을 설명하신 열 처녀의 비유를 보면 열 처녀 모두가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 때”(마 25:5) 신랑이 찾아왔다 했습니다. 지쳐서 졸더라도 기름을 예비할 수 있도록 피차 권면하여 용기를 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덕을 세우다’에 해당되는 헬라어 ‘오코도메이테’는 본래 ‘집을 세우다’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여기서의 집은 성도들 각자가 세워나가는 ‘믿음의 집’을 의미하는데, 우리가 어떤 집을 짓는가에 따라 휴거 된 뒤에 받게 될 베마의 심판대에서 상급이 결정되기에 ‘덕을 세우는 일’ 다시 말해 ‘믿음의 집을 세우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전 3:13-15)하십니다.
- 예레미야 -
|
첫댓글 💖" 사람은 망설이지만 시간은 망설이지 않는다
잃어버린 시간은 되돌아 오지 않는다 ".라는 말처럼
오늘도 내일도 ...순간 순간을 놓치지 말고
최고의 하루를 보내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