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9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만난 닉라일리(60) GM유럽 총괄사장은 “유럽에서는 연비가 나쁜 대형차를 운전하는 걸 반사회적 행위로 보는 시각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의 큰 줄기는 뚜렷했다. 친환경 소형차다. 경제성과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자가 늘어서다. 모터쇼 전시장에는 연비를 대폭 개선하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인 차들이 줄줄이 매끈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런 경향은 우리나라에서도 두드러진다. 연비는 가격·디자인과 더불어 소비자들이 자동차 구매를 결정하는 핵심 열쇠다. 고연비 차 생산은 자동차 업계의 생존과 직결되는 것이다. 연비가 좋은 디젤 승용차가 대거 나오고, 수입차 브랜드에서 내놓는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잇따라 출시되면서 국내 공인연비 순위도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에너지관리공단과 자동차업체들의 자료를 토대로 국내에서 출시된 자동차의 연비 순위를 차종별로 정리해 봤다.
◇1000㏄ 미만 경차=경차(輕車)는 글자 그대로 ‘가벼운 차’다. 무게·크기·배기량·가격 등 모든 게 작은 차를 경차라고 한다. 무게가 가벼워 연비도 좋다. 나라마다 조금씩 분류 기준이 다른데 우리나라는 배기량 1000㏄ 미만, 전장 360㎝, 전폭 160㎝, 높이 200㎝ 이하를 경차라고 한다. 1991년 국내 최초로 등장한 대우 티코는 차량 무게가 640㎏에 불과했다. 연비는 무려 24.1㎞/L. 가격도 당시 300만~400만원대로 저렴해 출시된 해에 3만 대 이상 팔렸다.
20년의 경차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에서는 연간 14만여 대의 경차가 팔려 나간다. 평균 20㎞/L를 넘는 높은 연비 때문에 출퇴근용으로 인기가 높다. 경차에서 디젤·휘발유 차량을 구분해 연비 순위를 매기는 건 무의미하다. 현재 국내에 시판된 경차는 기아차 모닝, 쉐보레 스파크, 스마트 포투 cdi 세 종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디젤엔진을 탑재한 차량은 스마트 포투 cdi뿐이다. 기아차가 연말께 탐이라는 박스형 경차를 내놓을 예정이지만 아직까지는 모닝과 쉐보레가 시장을 독식하는 모양새다.
연비가 가장 좋은 차량은 디젤엔진을 단 스마트 포투 cdi다. 이 차는 공인 연비가 30.3㎞/L로 하이브리드 차량을 제치고 국내 최고 수준의 연비를 자랑한다. 약 4만2000원의 주유로 서울에서 부산을 왕복할 수 있다(톨게이트 기준, 서울~부산 편도 364㎞, 경유 L당 가격 1744원 가정). 높은 연비의 비결은 차량 경량화와 연료 효율성에 있다. 차량 중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연료탱크 용량은 33L에 불과하다. 엔진도 메르세데스 벤츠 엔진 중 가장 작은 799㏄ 배기량의 직분사식 터보 디젤엔진을 탑재했다. 최고 출력 54마력의 터보엔진은 최대토크 11㎏·g의 성능을 낸다. 스마트 포투의 가솔린 모델 역시 23.3㎞/L의 높은 연비를 자랑한다. 다만 이 차의 가격은 2290만~2890만원으로 경차치고는 비싼 편이다.
국내 경차 시장에서 치열하게 다투고 있는 모닝과 스파크도 20㎞가 넘는 연비를 내세운다. 모닝 1.0(휘발유) 수동모델의 연비가 22㎞/L로 스파크를 약간 앞선다. 그 뒤를 스파크 1.0(휘발유) 수동모델이 바짝 뒤따른다. 이 차는 연비가 21㎞/L다. 두 차량의 배기량은 각각 998㏄, 995㏄,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06g/㎞, 111g/㎞다. 연간 1만3000㎞를 탄다고 가정했을 때 드는 연료비는 모닝이 116만4014원, 스파크가 123만9443원이다(휘발유 L당 가격 1969원 가정).
기아차는 LPG와 휘발유를 겸용하는 모닝 바이퓨얼도 내놨다. 시동을 걸 때는 휘발유를 연료로 먼저 사용한다. 2초 뒤에는 LPG로 전환해 주행할 수 있다. 기존 LPG 차량이 겨울철에 연료가 얼면 시동을 걸기 어렵다는 약점을 보완한 것이다. 또 주행 중에 LPG를 사용하다 힘이 부족하면 연료전환 스위치를 눌러 휘발유로 바꿀 수도 있다. 이 차의 공인연비(자동변속기 기준)는 LPG를 사용할 경우 15.1㎞/L, 휘발유는 18.5㎞/L다. 두 연료를 최대 적재량(LPG 37L, 휘발유 10L)까지 채우면 744㎞까지 운행할 수 있다.
◇1000~1600㏄ 미만 소형차=일반적으로 배기량 1000~1600㏄ 미만 차량을 소형차라고 한다. 휘발유를 연료로 쓰는 소형차 중에서 연비 1위는 최근 출시된 올 뉴 프라이드 1.6GDi 수동변속 모델이다. 기아자동차가 5년간 1900억원을 들여 개발했다. 해외시장에서는 K2라는 이름으로 출시됐지만 국내에서는 프라이드라는 이름을 버리지 않았다. 2005년 부활한 기존 프라이드의 1.4L 가솔린 모델 이외에 1.6GDi 모델을 추가했다. 소형차 부문에서 연비 1위를 기록한 1.6GDi 모델의 공인연비는 18.2㎞/L로 자동변속기를 선택하면 연비가 L당 1㎞ 정도 떨어진다. 연간 1만3000㎞를 탄다고 가정했을 때 1년간 드는 연료비는 140만원가량이다. 출력은 기존 모델의 112마력에서 140마력으로 높아졌다. 차량 크기나 성능은 현대 엑센트와 거의 유사하다. 현대·기아차가 파워트레인(차체와 엔진)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현대 엑센트 수동모델의 연비도 똑같은 18.2㎞/L다.
경유 소형차 중에서 연비 1위는 엑센트 1.6디젤 수동변속 모델이다. 23.5㎞/L의 연비를 자랑한다. 이 차량도 자동변속기를 선택할 경우 연비는 20㎞/L로 다소 줄어든다. 엑센트에 탑재된 1.6L U2 디젤엔진은 엔진 작동조건에 따라 배기가스량을 변화시키는 가변 터보차저(VGT) 같은 신기술을 적용했다. 디젤매연 정화장치(DPF)도 갖춰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14g/㎞로 최소화했다. 최고출력 128마력, 최대토크 26.5㎏·m의 성능을 낸다.
◇1600~1999㏄ 미만 중형차=휘발유 중형차 중 최고 연비는 공인연비 14.6㎞/L의 박스카 닛산 큐브다. 박스카는 차 모양이 박스(상자)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실내 공간이 넓고 아기자기한 적재함이 수십 개나 돼 실용적이다. 국내 시판 중인 큐브는 3세대 모델이다. 국산차와 비슷한 가격에다 큐브만의 독특한 디자인이 화제를 몰고 오면서 예약을 받기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계약이 1700대를 넘어서며 돌풍을 일으켰다. 큐브 디자인의 특징은 동글동글한 외관 외에도 비대칭이라는 점이다. 통상 자동차는 좌우가 대칭이다. 큐브 3세대를 디자인한 구와하라 히로타다(40)가 운전자가 오른쪽에 앉았을 때(일본은 핸들이 오른쪽에 있다) 뒤쪽이 잘 보이려면 대각선 방향인 왼쪽 맨 뒤 필라(자동차 지붕을 지지하는 기둥)를 없애는 게 편하다고 고집해 탄생한 게 이 비대칭 디자인이다. 소비자들은 주차할 때 후방 시야가 좋다며 열광했고 판매량도 급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큐브는 판매를 시작한 8월 416대에 이어 2개월 연속 400대 판매 기록을 세웠다. 가격은 기본형이 2190만원, 고급형이 2490만원이다.
경유 중형차 중에선 쉐보레의 크루즈 2.0 수동변속 모델이 19.7㎞/L의 연비로 1위를 차지했다. 자동변속 모델을 선택하면 연비는 15.9㎞/L로 떨어진다. 엔진파워는 디젤답게 상당하다. 출력은 163마력, 최대토크는 36.7㎏·m를 낸다. 가솔린엔진이 장착된 현대차 아반떼(140마력)보다 높다. 길이 5m, 무게 1.7t이나 되는 BMW의 520d도 공인연비가 18.7㎞/L로 웬만한 소형차보다 높다. 비결은 엔진의 온도에 따라 열리고 닫히는 라디에이터 그릴과 터보엔진 같은 다양한 첨단장비다. 특히 520d에 탑재된 2.0L 디젤엔진은 가변식 터보차저가 장착돼 최고출력 184마력, 최대토크 39.8kg·m의 성능을 뽐낸다.
◇2000㏄ 이상 대형차=일반적으로 배기량 2000㏄ 이상 대형차는 연비가 나쁘다는 인식이 강하다. 실제로도 그랬다. 상대적으로 큰 차체와 중량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대형차들은 공인연비 10㎞/L를 훌쩍 넘긴다. 특히 디젤엔진의 경우 연비가 20㎞/L에 육박한다. 이제 ‘대형차=저연비’라는 편견도 옛말이다. 경유 대형차 중 최고봉은 메르세데스 벤츠다. 벤츠 E220 cdi 모델이 17.1㎞/L의 높은 연비를 기록한다. 이 차는 벤츠의 친환경 기술력이 총체적으로 집약된 차다. 신형 4기통 cdi 엔진은 커먼레인 직분사 방식, 배기가스 재순환장치 개선, 트윈 터보차저 같은 기술이 적용됐다. 디젤엔진 특유의 떨림과 소음도 휘발유 차량에 근접할 만큼 향상됐다. 특히 공기역학적인 사이드 미러와 보닛 디자인은 세계 세단 최고 수준의 공기역학계수(0.25 Cd)를 자랑한다.
휘발유차 연비 1위 K7은 2.4L 직분사(GDI) 엔진을 탑재해 최고 출력 201마력을 낼 수 있다. 공인연비도 L당 12.8㎞로 중형차 수준이다. 이 차는 5년간 4500억원을 들여 개발한 기아의 첫 대형차다. 유럽풍의 ‘알파벳+숫자’로 이름을 지어 고급화를 꾀했다. 감성 디자인은 가장 큰 장점이다. 스마트키를 들고 다가서면 사이드 미러가 자동으로 펴지고, 차에 들어서면 온갖 조명이 켜진다. 수입차처럼 조명, 음향을 적절히 장착해 소비자들의 호평을 이끌어 냈다. 단단한 하체도 장점이다. 전자제어서스펜션(ECS)이 고속에서도 서스펜션이 흔들리지 않게 죄어준다.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연비 상위권은 대부분 수입차가 차지했다. 특히 유럽의 완성차 업체들은 힘 좋고 연비도 높은 디젤엔진 덕을 봤다. 1위를 차지한 푸조 3008 1.6 HDi 모델은 L당 21.2㎞의 연비를 지녔다. 길이 4365㎜, 폭 1835㎜, 높이 1640㎜로 작지 않은 체구다. 1.6L의 작은 엔진을 탑재했지만 최대 토크는 27.5㎏·m로 차량을 이끌기 충분한 힘을 지녔다. 디자인은 파격적이다. 앞유리가 극단적으로 눕혀졌다. 뒷유리도 앞쪽으로 기울어 제법 큰 덩치에도 공기역학계수가 0.29Cd에 불과하다. 다만 이 차는 항상 지적되는 단점이 있다. MCP(Mechanical Compact Piloted) 변속기의 주행감이다. 연비를 높이기 위해 수동 변속기를 전자제어식으로 만든 MCP는 폭스바겐의 DSG와 비교되곤 한다. DSG는 2세대로 넘어오면서 울컥거림을 많이 해결했지만 MCP는 아직 주춤거린다. 이는 두 개의 기어를 동시에 잡고 있다가 재빠르게 변속하는 DSG와 달리 기어를 변속하는 시간이 너무 길기 때문이다. 푸조의 턱밑을 바짝 추격하고 있는 SUV는 폭스바겐의 티구안이다. 이 차는 2007년 첫선을 보인 후 세계에서 70만 대 넘게 팔린 인기 모델이다. 강렬하면서도 날렵하다. 신형 티구안은 2.0L 커먼레일 직분사 엔진과 7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해 최고 출력 140마력을 갖췄다. 공인연비는 L당 18.1㎞.
◇하이브리드 차량=연비가 가장 좋은 하이브리드차는 도요타 프리우스로 공인연비 L당 29.2㎞를 자랑한다. 하이브리드차는 기존 내연기관 구조에 배터리·모터가 보태져 무게가 20~30% 더 무겁고, 가격도 300만~400만원 이상 비싸다. 그런데 공인연비가 20㎞/L를 훌쩍 넘는다는 점 때문에 꾸준히 팔리고 있다. 일반 모델에 비해 비싸지만 개별소비세·교육세·취득세 등 감면 혜택이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프리우스는 1997년 첫 양산모델이 나온 하이브리드차의 원조다. 지금도 도요타 실적을 견인하는 하이브리드의 대표모델이다. 프리우스는 올 9월까지 1220대가 팔려 지난해 같은 기간(764대)에 비해 판매량이 크게 증가했다. 도요타는 1990년대부터 하이브리드차를 선도하면서 ‘높은 기술력을 지닌 회사’ ‘친환경 회사’라는 이미지도 덤으로 얻었다.
첫댓글 엑센트차에 주목하다. 경유도 휘발유도 소형차로서는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