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한적한 공원. 한 노숙자가 구걸을 하고 있었다. 그는 가슴에 "I am blind(나는 앞을 보지 못합니다.)"라고 쓰인 팻말을 걸고 있었다. 하지만 거리를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때 한 남자가 노숙자 앞으로 다가섰다. 남자는 노숙자 목에 걸린 팻말에 뭔가를 쓰고는 자리를 떠났다. 그런데 놀랍게도 팻말을 본 사람들이 노숙자에게 돈을 건네기 시작했다. 팻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Spring is coming soon. But I can't see it. (봄이 와도 나는 봄을 볼 수 없습니다).노숙자의 팻말에 쓰인 글을 고친 남자는 프랑스의 초현실주의를 주창한 시인 앙드레 브르통이었다. 그는 글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알았던 것이다
매주 수요일에 열리는 삼성 사장단회의. 주요 경영전략도 논의하지만, 다른 분야의 외부강사를 초청해 기업경영에 시사점을 배우기도 한다. 삼성 사장단 회의에 아주 특별한 강사가 초청됐다. 전 양궁 국가대표 감독을 지낸 서거원 대한양궁협회 전무. 1986년부터 2004년까지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한국양궁의 신화를 창조한 인물이다. 이인용 삼성 커뮤니케이션팀 부사장은 "수 많은 강의 중 이번처럼 사장들이 몰입하고 감동을 받은 강의는 처음"이었다고 했다. 서 전무와 별도 전화인터뷰를 통해 '활의 경영학'을 들어봤다. 장식용 활에서 출발 1996년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남자 양궁 국가대표팀은 단체전에서 미국에 1점차로 져 금메달을 놓쳤다. 당시 감독이었던 서 전무는 패인을 따져본 결과, 활이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당시 양궁용 활은 미제와 일제가 최고였다. 여자 대표팀은 일제, 남자 대표팀은 미제를 썼다. 그러나 미국의 활 제조사가 최신 제품을 미국 선수들에게만 공급하고 외국선수들에게는 팔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서 전무는 "미국이 일부러 한국 팀을 견제하기 위해 성능 좋은 신제품을 팔지 않았던 것 같다"며 "그 일이 있고 나서 감독들이 훈련보다 좋은 활을 사러 외국 시장을 돌아다녀야 했다"고 회고했다. 그때부터 우리 양궁계는 국산 활 개발에 뛰어들었다.좋은 선수를 길러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비의 자립이 급선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국내엔 활 제조사가 세 군데 뿐이었고, 그나마 경기용이 아닌, 장난감 같은 2달러짜리 장식용 활을 만들고 있었다. 그래도 방법이 없었다. 양궁계 인사들은 활 제조사들을 설득했고, 결국 삼익스포츠와 윈엔윈 두 군데가 개발에 뛰어들었다. 대신 활을 배우는 초ㆍ중등학생들에겐 1년 동안 외산 활을 쓰지 못하게 했다. 학부모들의 거센 항의가 이어졌고 양궁협회가 업체들과 결탁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지만, 기술독립을 위해선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마침내 국가 대표팀은 국산 활을 들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휩쓸었다.좋은 선수들과 만난 좋은 장비는 주가가 치솟았다. 세계 각국에서 주문이 밀려들었고, 지금은 국산 활이 세계시장에서 67%를 차지하며 1위를 달리고 있다.한때 세계 1,2위를 다퉜던 일본 업체들은 문을 닫았고,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외국선수 10명 중 9명이 국산 활을 들고 나온다. 양궁은 현재 대한체육협회 산하 55개 종목 중 유일하게 100% 국산 장비를 쓰는 종목이다. 지어 국기인 태권도도 수입산 보호장구를 쓰는 현실이다. 서 전무는 "어려움도 많았지만 만약 그때 국산 활 기술개발을 포기하고 계속 수입 활에 의존했다면 지금의 한국양궁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반전 여기까지는 서 전무가 삼성 사장단 회의에서 공개한 내용. 서 전무는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미국 업체들의 마케팅 공세 일화를 털어 놓았다.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미국의 호이트와 이스턴 등 활 제조사들은 최근 들어 한국 선수들을 개별 공략하고 있다. 값 비싼 활을 무상 제공하는가 하면 성적이 좋으면 별도포상금까지 약속하며 국내선수들을 유혹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행히 아직까지 미국산 활을 쓰는 선수는 없다. 감독과 코치, 협회 관계자 들이 국산 장비가 없어 설움 받던 이야기를 하며 우리 활을 쓰자고 독려하기 때문이다. 국산 활 제조사들도 미국업체들의 마케팅공세를 이겨내기 위해 전략을 바꿨다. 선수 개개인에 맞는 활을 따로 만들어 주는 맞춤형 전략이다.전무는 "태풍이 불어도 경기를 취소하지 않는 유일한 스포츠가 양궁"이라며 "국산 업체들은 대회 개최지 날씨와 선수 신체 조건에 맞는 활을 따로 만들 정도로 공을 쏟아 선수들이 경기하기 가장 좋은 완벽한 활을 들고 대회에 나간다"고 말했다. 세계 대회에서 쾌거를 이룰수록 국산 활의 명성도 함께 올라간다. 덕분에 국산 활은 국내에서 싸게 팔고 해외에서는 두 배가 넘는 가격에 판다. 서 전무는 "초ㆍ중등생용 국산 활은 국내 가격이 60여만원이고, 외국에서는 150만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경기용 활도 국산이 해외에서 200만 원에 팔리다 보니 수백 만원을 호가했던 미국산 활도 가격이 같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서 전무는 이날 강연에서 삼성 사장단에게 굴하지 않는 도전의 리더십을 강조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환경을 탓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와 혁신을 추구함으로써 세계 최정상에 선 국산 활 의 성공스토리에서 기업경영의 해답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리더는 다른 의견을 귀를 기울여 듣고 변화를 추구해야 하며 뜨거운 열정을 가슴에 품고 일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